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2
라울 힐베르크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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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에게는 기회주의를 넘어서는 면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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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군은 오데사와 스탈린그라드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전투에 임했고, 편을 바꾼 뒤에는 똑같은 헌신성으로 독일과 헝가리를 공격했다.
...
루마니아인들은 오데사와 골타의 토착 유대인 10만 명을 학살했다. 유대인을 그 정도 차원에서 학살한 나라는 독일을 제외하고는 루마니아밖에 없다. 1056-7)

헝가리 유대인들은 1944년 중반까지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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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대량이송이 특별했던 마지막 측면은, 그 일이 비밀에 부쳐질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이송은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1104)

수용소 수감자들을 살려둔 일차적인 이유는 노동력을 착취하기 의해서였다. 물론 그것은 피살로 가는 중간 단계에 불과했다. 동유럽의 기동학살작전에서도 그랬듯이, 유대인은 죽음이 유예된 존재였을 뿐이다. 폴의 거룩한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능력이 있는 유대인은 여행을 중단하고 군수노동을 해야 합니다." 1275)

(철저한 약탈의 해법은) 간단한 컨베이어벨트 체제에 있었다. 수감자 노동조가 이송열차와 플랫폼에서 짐 꾸러미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수합한다. 다른 노동조는 탈의실에서 귀중품과 옷을 수합한다. 여자들은 가스실 옆의 이발소에서 머리칼을 자르게 한다. 또 하나의 노동조가 시체의 입에서 금니를 뽑아내고, 다른 노동조는 소각실에서 흘러나오는 인간 지방을 화덕에 붓는다. 그렇듯 학살수용소에서 약탈과 살인은 단일한 절차로 통합되었고 동시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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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극도로 정확히 할 것"이라는 힘러의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충분치 않을 정도로 정확히 하시오." 1309)

행정과정 전체를 보면 유대인의 파괴는 전쟁의 요구를 충족시키느라 이미 과부하된 관료기계에 새로 부과된 추가 업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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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관리들은 매일같이 운행 가능한 차량을 배분하고, 과부하된 노선을 군대와 기업의 긴급한 요구에 맞춰 조정해야 했다. 그러나 군과 기업의 우선성에도 불구하고 학살센터에 보낼 차량이 부족해서 살아남은 유대인은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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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완전을 향하여 치달았다. 1405)

파괴과정의 "인간적 차원"은 파괴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다. 물론 그 "인간적 방법"이 희생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해자들의 안녕을 위한 것이었음이 강조되어야 한다. 독일의 관리들은 "과잉"과 "돼지만도 못한 짓거리"를 저지를 기회를 줄이기 위하여 항상 주의했고, 통제되지 않는 행동을 막는 동시에 살인자들을 짓누르던 심리적 부담을 누그러뜨릴 방법과 장치를 고안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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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적인 방법"의 진정한 목표는 효율성이었던 것이다. 1412-3)

전범재판이 시작되었을 때, 절반유대인 물리학 교수를 도와주었다거나, 유대인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좀더 오래 활동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거나, 혼합혼 부부의 주택 문제를 도와주었다는 증거를 말하지 못한 피고는 거의 없었다. 그 호의가 그들이 선행과 동시에 실시했던 파괴와 비교해서 너무도 사소했던 반면, 그 "선행"의 심리적 기능은 대단히 중요했다. 바로 그것을 통하여 그들은 "의무"를 개인적인 감정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품격"을 보존했던 것이다. 1430)

중립은 타인을 돕는 위험과 비용은 부담하지 않으면서, 면전에서 상해를 가하는 가해자들을 편드는 도덕적 부담도 지지 않는 안전한 노선이었다.
...
사람들은 체포에 공개적으로 항의하지 않는 것과 위험에 노출된 희생자들을 돕지 않는 것을 손쉽게 정당화할 수 있었다.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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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1~6 세트 - 전6권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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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형인 한국 문학의 탁월한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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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1
라울 힐베르크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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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는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의 척도가 아니라 "인간이 어디까지 무심해질 수 있는가?"의 척도이다. 히틀러와 그 휘하 사이코패스들의 광기만으로 500만이 훌쩍 넘는 유럽 유대인을 완전히 파괴할 수는 없다. 의지가 실행을 가능하게 한다면, 유대인들은 자신을 "본원적인 범죄자이자 그리스도의 살해자"로, "역병, 페스트 그리고 순수한 불행"으로 묘사한 마르틴 루터의 교수대에서 이미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한 힘은 모든 형태의 악을 하나의 파괴기계로 구현한 근대 문명이다. 유대인들은 "정의(定義) → 경제 기반 삭제 → 약탈 → 집중 혹은 체포 → 노동 착취 및 기아 조치 → 절멸" 과정을 통해 완전히 제거되었다. 이 과정은 지극히 정교한 관료제의 사슬을 통해 최대한 많은 이들을 살육의 현장에서 격리시키고, 개인이 감내할 수 있는 정신적 무게를 짊어지게 함으로써, 파괴에 기여하게 만든 효율적 이성의 산물이다.

이때의 "효율성"은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 참여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경제적 최선이 아니라 특정 체제가 목표로 삼은 과업을 완벽하게 수행하도록 해주는 절차적 최선이다. 홀로코스트는 인간이 "이념의 불꽃 앞에서 눈먼 이성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장애는 안대를 찬 것처럼 허술한 방벽이지만, 현재의 통찰과 과거의 성찰이 없는 세계를 점령한다. 저자가 죽는 순간까지 파괴의 전(全)과정을 아우르는 작업을 남긴 이유이다.





나치의 학살은 무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학살은 오히려 순환적 경향의 정점이었다. 이는 반유대인 정책의 세 주역이 추구했던 목표에서 잘 드러난다. 기독교 전도자는, 너는 유대인으로서는 우리와 함께 살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후 세속 통치자는, 너는 우리와 함께 살 권리가 없다고 선포했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나치는, 너는 살 권리가 없다고 명령했다. 43)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기록들을 검토해보면, 그 즉시 독일의 행정관리들이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는 당혹스러운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독일의 관리들은 흔들리지 않는 방향감각과 기괴할 정도로 놀라운 문제해결 능력을 발휘하면서, 최종 목표에 이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아냈다. 44)

희생자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그다음 조치를 취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정의는 그 자체로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행정적 연속성을 낳는다. 포그롬과 파괴과정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그 행정적 연속성에 있다. 104)

(신분증, 이름, 공적 표식으로 이루어진 유대인 식별 체제는) 유대인들을 마비시켰다. 유대인은 경찰의 명령에 과거보다 빨리, 더욱 순종적으로 반응했다. 유대인의 별을 부착한 유대인들은 만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마치 독일인 전체가 그를 관찰하고 그의 행동을 감시하는 경찰력이 된 듯한 느낌을 가졌다. 266)

제국철도는 외부와 단절되고 그 자체로 완전한 구조로서, 보안경찰이 그랬던 것처럼 겉으로는 `비정치적`이었지만,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로 보면 나치즘의 요약이었다. 슈페어의 군수부가 제국철도에 의존해서 물자를 수송했고, 독일군이 그에 의존하여 부대를 이동시켰으며, 제국보안청은 그에 의존하여 유대인을 이송했다. 그 모든 작전에서 제국철도는 불가결한 존재였다.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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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파시즘 -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전쟁 철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가타야마 모리히데 지음, 김석근 옮김 / 가람기획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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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신주의의 논리적 귀결을 제1차 세계대전과 결부시켜 재구성한 텍스트"

사상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정신', 특히 '언어로 만들어낸 정신'이다. '언어'는 현실에 바탕을 두지만, 현실에 앞선 것처럼 자신을 꾸미며, 대개 그럴 듯한 얼굴을 지닌다. 언어는 빈약한 조건을 딛고 일어서는 정신 승리도, 체계적인 물질적 지원에 힘입은 성취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능숙하다.

주체와 객체의 배치와 구도라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언어'만 강조하면 모든 사상이 실현 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현실화 할 수 있는 사상'을 '현실화된 세계'에 투영하는 일에 매진하면서, 그 실현을 최대한 빨리 이루고자 한다. 자신의 한정된 수명 동안에 어떤 방식으로든 '실현'의 단초를 만들고 싶어한다.

지름길은 낙오자와 반대자라는 불순물을 모두 제거한 길이며, 그만큼 빨리 광신과 아집으로 달려가는 길이다. 광신도들은 자신을 희생으로 내몰지 않는다. '패배'라는 비참한 최후가 결정나기 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방법만 있다면 '옥쇄'와 '가미카제'는 다수의 몫이다. 그들은 다수의 피땀으로 불가능에 도전한다.

그들은 기꺼이 다수의 발을 늪에 밀어넣지만 자신의 헌신은 오직 '정신'으로 무장한 '언어'이며, '의지'만을 허락한다. 그는 몸부림칠수록 늪에 빠진 자의 죽음이 빨리 다가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부림을 요구한다. 그가 자발적으로 돌아나오는 길은 인민의 시체로 막혀 있다. 전쟁은 가장 매혹적인 역사의 비극이 된다.




일본 기업의 불입(拂入) 자본 총계는 1913년에는 20억 엔이었는데, 1차대전 시기 일본 기업의 신규투자액 총계는 무려 143억 엔에 이르고 있다. 경제 규모가 가파르게 수직상승해버린 것이다.
...
일본의 주식시장은 언제나 강화(講和)를 싫어했으며 그런 소문이 나돌 때마다 주가는 내려갔다. 군수 경기가 언제 중지될지 전전긍긍하다가 전쟁이 계속될 것 같으면 다시 올라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32-3)

(러일전쟁 당시) 메이지 후반 일본의 공업생산력이나 자금력으로는 러시아의 대군, 뤼순의 요새를 상대로 탄환을 마구 퍼부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요새 공략전에서도 직접 전투에서도 인명을 경시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맹목적인 돌격에 의존했던 것이다.
...
거기서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몸을 아끼지 않는 정신주의, 혼(魂)의 돌격, 육탄(肉彈)이었다. 78)

(1926년의 <통수강령> 개정안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속전속결의 섬멸전으로 단숨에 결정한다. 천우신조로 갑자기 찾아올지도 모르는 승기를 절대 놓치지 않고 적을 궤멸시킨다. 그런 전쟁 지휘를 하고 싶을 때 외교 따위를 고려해서는 안 된다. 장수의 독단전행을 인정하지 않으면 적의 의표도 찌를 수 없다. 정치를 무시하고 군대가 마음대로 하게 해달라는 식의 바람을 읽어낼 수 있다. 135-6)

오바타는 1931년 만주사변에서의 이시와라의 근사한 작전 지도에 의한 속전속결을 `갖지 못한 나라`의 이상적인 전쟁으로 극찬했다. 그러면 이시와라는 왜 만주사변을 일으켰는가. 만주를 하나의 큰 산업기지로 삼아서, 가능한 한 빨리 `갖지 못한 나라`를 `가진 나라`로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160)

옥쇄(玉碎, 쿄쿠사이)는 섬멸을 뒤집은 개념, 말하자면 섬멸당하는 것이다. 섬멸전에 실패해서 불리하고 열세의 입장에 내몰리더라도 `필승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면, 퇴각이나 항복이라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옥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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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강약 정도에 따라서 섬멸 정신이 쉽게 옥쇄 정신으로 뒤집혀버리는 것이다. 171)

일본 국민이라는 `다`에게 천황이 `일`이라면, 천황이 자신의 본질이므로, 천황만 살아 있으면 개개의 일본인이 아무리 죽더라도 자신의 본질이 살아남는 것으로 되므로, 자신이 죽을 것인지 살 것인지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된다. 천황이 죽으라고 말하면, 자신의 의사(意思)로 죽는 것이다.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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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문제적 인간 10
로버트 서비스 지음, 양현수 옮김 / 교양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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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증오해 마지않았던 히틀러와 스탈린, 스탈린과 트로츠키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오류성'이다. 자신의 결단이 역사의 분수령을 만드는 장면을 목격하고, 열광하는 대중의 환호를 타고 하늘에 오르고 난 후, 이들은 자신이 언제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한낱 인간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성공가도를 질주하는 확신은 사소한 실패가 쌓일수록 오히려 단단해졌다. 그것은 주변인들의 무능과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음모 세력의 존재를 알리는 증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속의 교황에게 반성이란 완전한 패배, 곧 죽음과 동의어였다.

이들은 끊임없이 정상을 갈구했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정상일 때조차 내리막길을 의심했다. 이들에게 정상은 '도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도달해야 하는' 자리, 언제나 지금보다 높은 자리였다. 캄캄한 터널을 달리는 자동차는 출구에서 깜빡거리는 한줄기 빛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어둠은 '대안이 사라진 세계'의 다른 이름이기에, 그 빛이 신기루일지라도 그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터널이 깊어질수록 더 이상 빛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의 연료는 그 무엇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투쟁심이다. 이들은 모두 '영구 혁명론'의 산증인이다.


(1905년 2월 혁명 직전) 그는 비할 데 없이 대담하고 확신에 찬 사람이었으며, 혁명을 위한 연설가가 될 것을 계획해 왔다. 하지만 그는 동료로서는 피곤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의 규율을 무시하고 파괴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지적 탁월함을 칭찬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독립성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가 언제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트로츠키는 이미 진정한 트로츠키가 되어 있었다. 167)

30세가 된 트로츠키는 여러 사람을 모아 하나의 팀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질이 없었다. 탁월한 이 당 통합론자는 자신의 지지자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을 다 쫓아버리는 재주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런 상황이 문제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루나차르스키는 이런 문제가 트로츠키의 `거대한 오만` 때문이라고 했다. 224)

트로츠키는 대중 선동 전술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트로츠키와 극좌 진영에 있는 그의 동지들은, 혁명이란 목표를 눈앞에 둔 현 시점에서는 혁명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트로츠키가 보기에 임시정부는 그들이 모시는 자본가 주인들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기만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트로츠키 자신이 쓰는 속임수는 그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었다. 311-2)

군대 내 규율을 확고하게 다잡기 위해 폭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데에는 스탈린 역시 트로츠키 못지않게 무자비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정치위원들을 위협하는 행동은 삼가 왔다. 정치위원 대다수는 볼셰비키당의 투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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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나서서 트로츠키에 대한 반대 여론을 부추기고 조정할 필요도 없었다. 399)

소비에트 국가는 관료들의 정치적 충성이나 직업적 양심에 기댈 수 없었다. 소비에트 국가에는 또한 당내 경쟁 구조, 자율적 사법기관, 비판적 언론, 나쁜 자들을 골라 공직에서 내쫓을 수 있는 유권자 집단 같은 통제 메커니즘도 없었다. 소련이라는 국가는 감독 기관 없이는 작동할 수 없었다. 즉 관료주의는 이 국가의 유전자 속에 이미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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