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드로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4
플라톤 지음, 김주일 옮김 / 이제이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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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도 형체도 없으며 만져지지도 않는, 있는 것답게 있는 실재가, 즉 혼의 키잡이인 지성에만 관조되고, 참된 앎의 부류가 관계하는 실재가 이 자리(천계 바깥)를 차지하고 있지. 그리하여 순수한 지성과 앎에 의해 양육되는 신의 생각, 그리고 자신에게 적합한 양식을 섭취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는 모든 혼의 생각은 때가 돌아오면 회전운동이 빙 둘러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시간 간격을 두고 실재를 보고 반기며, 참된 것을 관조하여 양식을 얻고 즐거워하지. 그 궤도에서 그것은 정의 자체를 목격하고, 절제를 목격하며, 앎을 목격하지. 그런데 그 앎은 생성이 곁들여지지 않은 앎이요, 오늘날 우리가 있는 것들이라 부르는 것들 중 어떤 다른 것과 관련될 때마다 달라지는 앎이 아니라, 있는 것답게 있는 실재인 것에 관계하는 앎이지. 247d, 84)

하지만 지혜는 시각에 의해 보이지 않아. 만약 지혜가 자신에 대한 그런 식의 영상을 시각으로 들어오게 했다면 무서운 사랑을 불러일으켰을 테지만 말이야. 250d,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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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아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1
플라톤 지음, 김인곤 옮김 / 이제이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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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 그러면 "배워서 알고 있다"와 "확신하고 있다", 즉 "배움"과 "확신"이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어떤 점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르기아스 : 나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 옳은 생각입니다. 그 차이는 이렇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고르기아스, 거짓된 어떤 확신과 참된 어떤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실 겁니다.
고르기아스 :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어떻습니까? 거짓된 앎과 참된 앎이 있습니까?
고르기아스 : 없지요.
소크라테스 : 따라서 분명히 그것들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고르기아스 : 맞는 말입니다.
소크라테스 : 그렇지만 배워서 알고 있는 자들과 확신하고 있는 자들은 설득된 자들이기도 합니다.
고르기아스 : 그건 그렇지요.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우리가 설득의 종류를 둘로 놓아도 될까요? 하나는 앎 없는 확신을 가져다주는 설득이고, 다른 하나는 앎을 가져다주는 설득으로.
고르기아스 : 물론이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연설술은 법정에서나 그 밖의 군중들 앞에서 정의로운 것들과 부정의한 것들에 관해 두 가지 설득 중에서 어떤 설득을 합니까? 앎 없는 확신이 생기는 설득입니까? 아니면 앎이 생기는 설득입니까?
고르기아스 : 분명히 확신이 생기는 설득이겠지요,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연설술은 정의로운 것들과 부정의한 것들에 관해 확신을 갖게 하는 장인이지 가르칠 수 있는 설득의 장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르기아스 : 그렇지요.
소크라테스 : 따라서 연설가는 정의로운 것과 부정의한 것에 관해 법정이나 그 밖의 군중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자는 전혀 아니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일 뿐입니다. 실로 그처럼 큰일에 관해서 그렇게 많은 군중을 짧은 시간에 가르칠 수는 없을 테니까요. 454d-455a, 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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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튀데모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6
플라톤 지음, 김주일 옮김 / 이제이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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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 사람이 되었든 다른 어떤 것이 되었든 어떤 둘의 중간에 있으면서 그 둘 다에 관여하는 것들은 그 둘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둘이 각기 좋은 것과 나쁜 것일 경우에는 그 둘 중 어느 하나보다는 낫고 다른 하나보다는 더 나쁘게 되고, 그 둘이 좋긴 하되 그 좋음이 동일한 것에 대한 것이 아닐 경우에 그것은 자신을 구성하는 저것들 각각이 유용하게 쓰이는 것에 대하여 둘 다보다 더 나쁘게 되며, 그 둘이 동일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나쁜 것일 경우에 그것들의 중간에 있는 것들만이 자신들이 부분적으로 관여하는 그 둘 각각보다 낫다는 사실 말이지.
...
하지만 그들의 욕망에 대해서는 그들을 이해해 주어야 하고 화내서는 안 되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인지는 생각해야 하지만 말이지. 왜냐하면 분별에 관련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말하고 용기 있게 나서서 싸우며 공들이는 사람은 그게 누가 되었든 그 모든 사람을 아껴야 하기 때문일세. 306a-d, 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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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튈로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4
플라톤 지음, 김인곤.이기백 옮김 / 이제이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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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 잘 붙여진 이름들은 그것들이 붙은 사물들과 닮았으며, 그래서 이름들은 사물들의 상(像)이라고 우리는 여러 차례 동의하지 않았나?
크라튈로스 :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가장 확실하게는 이름들을 통해서 사물들에 관해 배울 수 있지만, 사물들 자체를 통해서도 배울 수가 있다면, 어느 쪽 배움이 더 훌륭하고 명료할까? 상들로부터 이 상(像) 자체가 잘 닮았는지를 배우고 상의 실물인 진리를 배우는 쪽인가, 아니면 진리로부터 진리 자체를 배우고 그것의 상이 적절하게 만들어졌는지를 배우는 쪽인가?
크라튈로스 : 진리로부터 배우는 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 '있는 것들'에 관해서 어떤 방식으로 배우거나 알아내야 하는지는, 아마도 자네와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인 것 같네. 그러나 이름들로부터가 아니라, 있는 것들 자체로부터 배우고 탐구해야 하는 쪽이 이름들로부터 그렇게 해야 하는 쪽에 비해 한층 더 분명하다는데 동의가 이루어졌다는 정도로 만족해야 하네. 439a-b,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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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논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7
플라톤 지음, 이상인 옮김 / 이제이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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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가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들을 발견할 수도 없고 탐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때보다도, 알지 못하는 것을 탐구해야만 한다고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는 더 나아지고 더 남자다워지며 덜 게을러질 거라는 사실, 바로 이것을 위해 난 기필코, 내가 할 수 있다면,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싸우려는 것이네. 8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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