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1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정혜용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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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노동자가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는 공장은 베트남과 중국의 노동자가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는 공장의 생산성을 이겨낼 수 없다. 공장은 폐쇄되고 노동자들은 장마에 떠내려가는 부유물처럼 흩어진다. 숫자는 많은 걸 말해주지만 그 중 단 한 명의 삶도 담아내지 못한다.

앎은 힘들다. 사실의 본질을 제대로 알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의 무게가 힘들고, 기껏 알아낸 사실의 슬픔과 무기력함이 힘들다. 그래서 차라리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앎이 곁에 오지 않길 바란다. 고통을 외면하고 피해다닌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너무 멀리까지 연결되어버렸다.

산 자는 누구이고 죽은 자는 누구인가? 해고를 피한 자와 생계를 택한 자가 산 자인가? 반대로 해고를 당한 자와 신념을 지킨 자가 산 자인가? 삶은 어느 것으로도 답할 수 없다. 매일 밤 잠들고 매일 아침 다시 깨어나는 자신에게 물어볼 따름이다. 너는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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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2 - 근현대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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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강점기
1) 1860~70년대는 척사론과 개국론이 맞섰고, 1880년대에는 독립론과 (청의) 속방론을 논의했으며, 대한제국기에는 군민공치론을 억압한 황제권 강화론을 추구하였다.
2) 단발령은 을미사변을 무마하고 근대개혁을 추진하려는 개화파의 시도로, 중화문명과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려 했던 보수반동을 정당한 민족적 저항으로 만들었다.
3) 대한제국이 추진한 광무개혁은 외세의 침략 앞에서 국권-군주권과 동일한-을 지키기 위해 지배계급의 주도로 마지막으로 시도된 근대화 개혁이라는 한계를 지녔다.
4) 을사조약은 위임•조인•비준의 어느 과정도 거치지 않았고, 고종이 적극적으로 승인을 거부했으며, 한국 정부의 동의표시도 결여된, 체결되지 않은 강압적 시도에 불과하다.
5) 개신교의 정착은 축자영감설에 기반한 정복자의 태도와 정치•사회 문제를 배제하는 '오직 신앙'의 관점이 주류를 형성하여 민족주의 운동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6) 문화역량 우선주의를 표방한 민족주의 세력의 '김윤식 사회장' 추진은 사회주의 세력이 이들과의 통일전선 논의를 통해 운동론의 차이를 가시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7) 3•1운동의 실패를 내부 역량 강화로 돌린 물산 장려 운동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은 생산력의 증진과 정치혁명 간의 우선성을 논의하면서 노선의 불일치를 해소해갔다.
8) 창조파는 임정의 대표성 부족과 지역적 제한성을 지적하여 새로운 대표회를 주장했고 개조파는 임정의 한계가 시기적 절박함 때문이라면서 법통의 유지를 주장했다.
9) 이승만의 외교노선은 러일전쟁 직후의 대미청원, 3•1운동에 즈음한 위임통치 청원, 1930년대 소련과의 접촉 시도, 해방 직전의 반소•반공 선전과 임정 승인 요청이다.
10)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문화정치 아래에서 친일로 기울던 지주•자본가 계급에게 정치성을 배제하고 역량 강화에 힘쓰자는 개량주의적 민족운동의 길을 열어주었다.
11) 중국정부의 입장에서는 재만조선인들이 일제의 만주 점령의 선봉이자 전위로서 '만보산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대륙침략 정책을 막기 위해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12) 단군신화는 단군을 민족시조이자 동방문화의 연원으로 주장한 최남선에 의해 되살아났으며, 역사적 실증보다는 식민기 및 해방 이후의 국수주의적 우상화에 이용됐다. 
 

2 해방~1960년대
1) '소련 신탁통치 주장, 미국 즉시독립 주장'이라는 오보에서 비롯한 친탁과 반탁의 대결 구도는 친일파들이 적극적으로 반공•반탁을 주장하며 애국자로 둔갑하게 했다.
2) 도강파가 서울 수복 후에 잔류파를 부역자로 몰아 마녀사상을 벌인 일은 전쟁 초기의 패전 책임을 모면하고 반공이 애국이라는 절대 명제를 각인시킨 정치적 폭력이었다.
3) 북한은 1956년 종파사건을 계기로 중공업 중심의 독자적 사회주의를 모색했고, 개인숭배를 배격한 소련의 수정주의를 벗어나 자주적 주체사상의 도식화를 강화했다.
4) 이승만 정권의 반대세력을 옭아매기 위한 신국가보안법은 피고의 변호사 접견을 금지하고 상고심제도를 폐지한 헌법 위의 법이었으며 59년 2.4 날치기 통과되었다.
5) 4•19 혁명 이후 통일은 자립적 경제개발의 선결 조건으로 논의되었으나 체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경제개발 통일유보론이 득세하다 5•16 쿠데타로 가속화되었다.
6) 한일회담은 경제개발 자금이 시급했던 한국, 잉여자본을 해외로 수출하려는 일본, 지역블럭을 구축하여 대소봉쇄의 전초지로 삼으려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은 결과였다.

 

3 1970년대 이후
1) 국사교육 강화 정책은 1972년 10월 유신과 때를 같이 하여 주체성 있는 국민정신 교육을 강조하였고, 이를 위한 방편으로 단일한 국정교과서를 1974년부터 시행했다.
2) 70년대에 역사적 주체로서 재발견된 '민중'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한몸에 지닌 역동적인 세력으로 추상화되었다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시민'으로 전환되었다.
3) 86년 정립된 NL-CA 논쟁은 반미,반봉건의 민족통일전선과 노동계급 중심의 반파쇼 투쟁이 쟁점이었고, 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NL의 대중노선이 우위를 점했다.
4) 87년 대선 때 NL세력의 김대중 비판적 지지, 후보단일화, 소수 운동권파의 독자후보 운동은 각자의 주관적 당위에 객관적 상황과 조건을 꿰맞춘 이론과 실천의 괴리였다.
5) 보호감호는 70년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출소하게 된 해방 직후의 사상범들을 재구금 또는 사상전향시키기 위한 방안이었으며, 일제의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본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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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1 - 전근대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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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시•고대
1) 원시공동체와 고대 국가 사이의 과도기의 성격 규정 문제는 계급과 혈연, 지연 같은 요소를 기준으로 부족국가나 부족연맹, 성읍국가론, chiefdom론 등이 전개된다.
2) 고조선의 요동과 만주 제국론은 '단군민족주의'의 목적론적 주장에 불과하며, 요동 지역에서 발생한 느슨하고 왕권이 공동체에 여전히 예속된 부족 연맹 체제로 판단된다.
3) 임나일본부설은 가야 지방의 일본적 요소가 거의 없는 독자적인 문물 출토를 감안하면, 외교 및 무역 교류 거점이 후대의 과장과 첨삭을 거쳐 정복지로 윤색된 것이다. 
 
2 고려•조선
1) 중세기점 논쟁은 토지 이용방식의 상경화와 조세의 기준이 되는 토지의 사유화 여부, 농촌공동체의 친족적 자연호/군현제 전환 등에 따라 나말여초/여말선초로 나뉜다.
2) 고려는 음서제와 폐쇄적 통혼권을 형성한 귀족제, 상당한 지배세력이 과거 출신이라는 관료제, 다양한 종교와 문화, 신분이동 시도가 공존한 다원사회라는 주장이 있다.
3) 고려 성립에서 호족의 역할에 대해 왕권과의 연합으로 통일을 달성하고, 지방 분권을 유지했다는 호족연합설에, 형식적 배려와 실질적 왕권 우위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4) 고려 사회의 신분제는 전통적 지배체제가 온존한 4신분제론(귀족,중간층,양인,천민)과 천인을 제외한 나머지 신분의 개인적 성취를 강조한 양천제론(양인,천민)이 있다.
5) 사병은 무인 정권을 지탱하는 근간이었지만 공적 활동과 향촌사회 지배에는 삼별초가 동원되었고, 대몽항쟁 역시 민족적 성격보다는 권력 상실에 기인한 반발이었다.
6) 원 간섭기의 개혁 정치는 내부 권력투쟁의 산물이자 계급 갈등을 미봉책으로 해소하려 했지만, 신진 개혁 세력을 중심으로 원의 영향을 벗어나려는 시도도 공존했다.
7) 조선왕조 성립을 보는 관점은 신분•토지개혁을 이룬 새로운 사회의 성립, 농업생산력 발전이 일군 신흥사대부의 성장, 성리학적 지배질서를 전제한 봉건국가론이 있다.
8) 훈구가 국가적 부를 축적하여 사림의 거점인 향촌 기반을 위협하자, 사림은 공론 형성과 정책 반영에 힘을 기울였고, 매서운 사화를 이겨내고 붕당정치 체제를 수립했다.
9) 인조반정은 쿠데타이자 공신세력(서인-노론)의 권력 독점, 대청 외교 실패라는 부정과 광해군대 북인 정권의 전횡을 타파하고 붕당정치를 회복했다는 긍정이 공존한다.
10) 실학은 일제 식민지 시기의 민족주의자들이 한민족의 주체성과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발명한 개념으로, 조선 후기의 개혁안은 주자 성리학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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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철학
로버트 솔로몬 외 지음, 박창호 옮김 / 이론과실천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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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질서에 대한 탐구_고대철학
1) 기원전 6~4세기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통속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를 자양분 삼아 인간과 자연의 본성에 대한 탐구가 자생적으로 피어났으며, 다양한 방식을 취했다.
2) 신화에서 철학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의 사색은 조잡한 신적 유희와 섭리를 배제하는 대신, 의도적인 애매함과 상상력을 받아들여 시적 언어를 산문 언어로 전환하였다.
3) 경이로운 자연 현상에 대한 물음들은 있음에서 시작하는 우주창조론으로 이어졌고, 우주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고민을 인간 행위에 대한 탐구에 동일하게 적용했다.
4) 고대 인도 철학은 창조와 무에 대한 질문이 공허하기 때문에 세계 자체도 환영이라고 보며, 이성보다는 직관으로 단 하나의 실재인 브라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5)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는 자연주의적 조망을 제시한 탈레스, 실재의 본성을 논증한 파르메니데스, 심오한 모호함의 헤라클레이토스, 지혜를 사랑한 피타고라스가 있다.
6)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세계의 근본 범주를 신에서 로고스나 물질로 전환하면서 일과 다의 관계, 실재와 현상 문제 등을 제기했다.
7) 소피스트들은 철학을 실재(physis)의 탐구에서 삶의 규범(nomos)에 대한 고찰로 바꿨고, 지식의 가능성을 긍정하고 진리 탐구를 한계짓지 않는 상대적 진리관을 보였다.
8) 소크라테스는 논박술로 상대의 무지를 폭로하고 스스로 앎을 찾아나서도록 격려한 소피스트였고, 선대의 철학적 물음에서 벗어나 형상을 닮은 실천적 삶을 추구했다. 
9) 플라톤의 '두 세계론'은 올바른 정치철학의 기반이고, 형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아름다움(향연)과 질서에 대한 사랑(국가), 즉 미학적인 관심을 포함한다.
10)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을 개체의 가능성을 인도하는 내적 원리로 간주하여 개별자만을 실체로 봤고, 이 원리는 사물의 운동이 제1원인(신)으로 이어지는 목적이다.
11) 도시국가의 붕괴와 제국의 성립은 정치철학의 종말을 가져왔고, 합리적 이성에 집착한 스토아, 평정심의 에피쿠로스, 모든 신념을 거부하는 회의주의의 입장을 낳았다.
12) 인도 사상은 신비주의와 논리의 결합이라는 역설의 동반 강화인데, 논증으로 상식의 미혹을 밝혀내려는 시도와, 역설로서 지성적 이해를 거부하는 시도가 공존했다. 
 
2 신과 철학자들_종교적인 중세 철학
1) 종교는 정신성의 추구 아래 세계 내 다른 존재들과의 교감과 삶의 행위에 대한 정의로운 보상 체계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한 각종 설명들을 엮어 현재 삶을 변화시킨다.
2) 인도 종교들은 삶의 고통과 그로부터의 '해탈'을 주제로 삼아, 자아의 실체성의 자각과 수양, 세속의 누림과 집착의 구분, 카르마로 대변되는 업보의 순환이 담겨있다.
3) 유교는 하늘의 뜻과 공동체의 질서의 조화라는 주제 아래 개인의 인격 도야를 편입시켜 유기체적 사회를 강조했고, 이를 위해 언어 규정의 의의나 예법 준수를 강조했다.
4) 도교는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를 이성의 가르침보다 우위에 두었고, 이러한 도는 시간 안에 머무는 '항상성'에 대한 깨달음으로서 영원을 추구하는 신적 관조와 다르다. 
5) 유일신 종교는 악이 신의 전능과 자비를 훼손하는 문제와, 신의 계시를 담은 성서 해석의 관점에서 이성의 역할을 고민하고, 존재와 생성을 사유의 주된 주제로 삼았다.
6) 히브리 철학의 3대 개념은 유일신과 선택된 민족 의식, 신의 율법이며, 죄는 신의 율법을 위반한 행위이고, 악은 인간(아담)의 선택으로 이 세계에 들어왔다고 본다.
7) 필론은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꾀하여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형성에 기여했고, 예수는 사랑의 율법을 역설하고, 원죄의 대속과 부활로서 죽음에 대한 승리를 약속했다.
8) 사도 바울은 예수를 신의 아들로 자리매김하고, 대속의 죽음과 재림 후의 선별적인 구원 사상을 역설했으며, 보편주의를 설파하여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를 분리하였다.

9)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로티노스의 유출설과 악이 선의 결여라는 관점 위에 이성적인 신앙의 해석과 신의 은총을 받는 내면을 중시했고, 죄를 자유의지의 산물로 설명했다.
10) 이슬람은 개인의 일상을 규율하여 사회•경제적 정의를 중시하고, 세계의 실재성을 긍정하여 자연과학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종교적 인식을 위한 내면 투쟁을 강조한다.
11) 스콜라 철학은 신에게 받은 이성이 계시에 담긴 진리를 확장하는 수단이라고 보았고, 아퀴나스는 자연을 신의 의지가 관철된 세계로 간주하여 과학 연구를 긍정했다.
12) 스코투스와 오컴은 언어에 대한 논리적 분석으로 실재론과 유명론을 대표하며, 이성적 신앙을 해체하고, 현재와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신의 의지를 강조했다.
13) 루터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의지적인 부정이 죄이며, 신앙만이 구원을 정당화한다고 보고, 칼뱅은 강력한 원죄설과 예정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회 조직을 꿈꿨다.
14) 르네상스는 전 분야에 걸친 아리스토텔레스적 상식에 대한 물음과 변경이며, 과학적 탐구와 기계론적 세계관 등이 등장했지만, 이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진 않았다.
15) 유럽이 교역과 모험, 종교적 열정 등으로 탐험한 문명들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편입 여부를 정체성의 기준으로 삼았고, 인간과 자연을 상호연관의 장으로 보았다. 
 
3 과학과 종교 사이_근대 철학과 계몽사상
1) 근대 철학은 객관성의 강조에서 비롯한 과학의 발전을 계기 삼아 자신의 논거를 강화하는 순환체계이고, 주관적 진리를 객관적 실험으로 증명하려는 야심찬 시도였다.
2) 몽테뉴는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는 관용의 정신을 원했고, 데카르트는 주관적 내면에 대한 철저한 회의-생각함에서 진리를 연역하는-를 통해 객관적 확실성을 확보했다.
3) 필연적 인과성이라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의 합리론과 경험의 다발이라는 로크, 버클리, 흄의 경험론의 이분법적 분류는 오류-확신과 정리-에 기인한다.
4) 만물은 신의 부분이므로 모든 사태는 필연적인 이유의 연쇄에 얽혀 있고(스피노자), 모든 이유는 신의 선택이므로 가장 좋은 가능성이다.(라이프니츠의 '충족이유율')
5) 추론적 이성과 경험적 이성 간의 논쟁은 비합리적인 현실을 개선하는 방법적 우위에 대한 주장이며, 지식의 탐구를 옹호하는 계몽주의를 긍정하면서도 한계를 성찰했다.
6) 미국은 로크를 받아들여 자립적인 국민들의 동의라는 국가이념을 실현했고, 프랑스는 루소의 선한 자연상태를 모방한 '일반 의지'의 사회실험을 폭력적으로 구현했다.
7) 칸트는 경험과 초월 영역을 현상계와 선험계로 구분하고, 세계를 직관과 오성이 내린 판단의 종합이라고 정의하여 과학적 인과율을 구출하고 도덕 원리를 가능케 한다.
8) 헤겔은 의식이 이해와 관찰이 아니라 대립과 투쟁으로 발전하며, 사회 관계를 통해 자아를 자각한 의지가 대립자들을 역사 안에서 포용하여 절대정신에 이른다고 말한다.
9) 낭만주의는 질풍노도의 예술적 감정을 통해 세계의 생명력을 인지하고 그와 하나가 되고자 하며, 칸트 미학의 충동적인 천재를 동경하고 영감어린 상상력을 추구했다.
10) 키에르케고르는 객관적 확실성을 거부하고 '이것 또는 저것' 사이에서 주관적인 삶을 선택하는 '실존'을 강조했고,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은 정치적 격변을 예비했다.
11) 니체는 현세를 부정하고 죄의식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를 거부하고 고통을 삶의 근본적인 비극으로 본 그리스인들을 찬미했으며, 영겁 회귀하는 현재를 중시했다. 
 
4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_20세기
1) 프로이트는 문명화가 본능적 욕구를 억압하여 신경증의 가능성을 높였고, 막스 베버는 이성적 합리성의 개념이 관료제에서 효율적인 도구 형태로 전락했음을 밝혔다.
2) 듀이는 정신과 육체, 초월과 세속의 이원론이 경험을 분열시킨다고 보고, 기능적인 이해를 우선하여 학문의 도구적 실용성과 학교의 민주적인 사회화 교육을 강조했다.
3) 푸코는 현실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역할에 주목하여 지식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작 도구이며, 역사 역시 가상의 사실로 짜맞춘 허구나 담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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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철학과 헬라스 종교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번역) 604
칼 알버츠 지음, 이강서 옮김 / 아카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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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들어가는 말
신화가 인간 행위의 규준으로 작동하던 시절은 퇴색했지만 시인과 철학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신과의 합일을 복원하려 노력했으며, 이것은 존재 전체를 해명하는 일자의 근본 범주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를 뜻한다. 
 
1 아폴론
아폴론은 타자와 거리를 두고 고요함을 유지하는 신으로서, 멀리서 모든 것을 굽어보면서 개별자의 형상을 드러내지만, 그의 시선은 영원한 존재를 지향하며, 존재와 개별을 나누는 이원성은 플라톤에게 스며든다. 
 
2 이데아
고대인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본(보기)는 신화의 신과 인간들이며 제의에서 현재화되어 재현되었는데 신화 속의 이야기는 올바름의 정의가 올바로 구현되지 않았으므로, 올바름 자체의 이데아를 요구하게 되었다. 
 
3 헨
세계가 생성되는 틈인 카오스는 일자(一者)의 분할에서 생겨나는데, 이것은 일자로부터 존재자 전체가 생겨나고, 세계 전체는 다시금 일자로 통일되는 사유의 반영이며, 철학은 일자를 인식하고 합일되고자 한다. 
 
4 아나바시스
샤먼의 무아지경은 혼이 육체를 떠나 피안의 세계로 '올라섬'이며, 신과 인간의 중간 존재가 일자를 직관하는 행위인데, 이 '상승'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어서 인식하지 못했던 진리를 향한 '고개 돌림'이다. 
 
5 에로스
에로스는 지혜를 가진 신도 아니고, 지혜를 추구하지 않는 무지한 인간도 아니며, 지혜에 대한 궁핍한 심정과 충만한 열정을 동시에 지니고 진리를 향해 달려가는 중간 존재로서 앎은 성취보다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6 타우마제인
철학은 인식 주관을 둘러싼 만물의 섭리를 마주 대할 때 떠오르는 놀라움에서 출발하며, 이것은 무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고 앎의 본질을 바라보려는 성찰로 이어지는데, '관조'(테오리아)란 이 바라봄을 의미한다. 
 
7 아타나시아
존재의 불멸성을 획득하는 인간의 방식은 정신적 유산을 출산(남김)하는 것이며, 영속하는 신의 불멸성을 닮거나 잠시라도 체화하는 것은 혼의 특성이자 가능성으로써 영원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시작과 끝이다. 
 
8 미스테리온
혼을 육체에서 분리하는 의식적인 바라봄에서 철학적 '정화'를 얻게 되는데, 이는 비교에서 제의를 통해 신과 함께 하는 체험에 상응하며, 양자 모두 성찰과 믿음의 단련 과정에서 '갑자기' 참된 실재를 발견한다. 
 
9 디오니소스
플라톤의 철학함은 거리를 둔 추상화의 방식이 아니라 디오니소스적 열정에 몰입하여 원초적 세계에 참여하는 방식이며, 개념화에 앞선 개념의 대상에 대한 물음으로서, 바로 일과 다의 결합이며 일자의 철학이다. 
 
맺는 말
일자 형이상학(플라톤)과 존재 형이상학(어리스토텔레스)의 구분은 유효하지만, 역사적으로 사유(논증)와 경험(직관)이 명확히 분리되어 전개된 것은 아니며, 헤겔에 이르면 학문적 탐구와 인식은 역사에 통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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