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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금보다 비쌌을 때 - 충격과 망각의 경제사 이야기
알레산드로 지로도 지음, 송기형 옮김 / 까치 / 2016년 8월
평점 :
1. 철을 녹이는 데 필요한 온도(섭씨 1,535도)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거의 모든 철은 운석에서 채취하였고 따라서 값이 매우 비쌌다.
2. 키프로스 섬은 청동기시대 말경(기원전 1650~110년)에 절정에 달한 구리 생산의 중심지로서 지중해 지역 전체의 가격을 좌우했다.
3. 아티케, 크레타, 아나톨리아 연안 세 지역의 중앙에 위치한 델로스 섬은 지정학적 요인 덕분에 노예무역의 이상적인 중심지였다.
4. 기원전 12세기경 지중해 문명이 몰락하면서 청동 생산에 필수적인 주석 무역이 급감하자, 야금업자들은 대안으로 철을 다루었다.
5.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 지역의 광산들과 어마어마한 보물을 밑천 삼아 군사들을 후하게 대우하면서 인도 원정에 나섰다.
6.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정복한 스페인 북서부의 최대 광산(라스 메둘라스)은 약 250년 동안 로마에 금을 공급하여 제국의 발판이 되었다.
7. 서기 66년의 유대 반란을 진압한 베스파시아누스와 그의 아들 티투스는 예루살렘 신전을 약탈하여, 콜로세움 공사의 재원으로 사용했다.
8.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 제국을 선포하면서, 이교도들의 신전에서 약탈한 귀금속과 청동을 재원 삼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였다.
9. 사산 왕조를 무너뜨린 우마이야 왕조는 대대적으로 광산을 개발하고 활발한 국제 무역을 주도하여 7~12세기 황금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10. 한나라 황제들은 유목민들과의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비단을 수출했고, 비잔틴 제국의 수도승들은 비단 제조 비법을 훔쳐냈다.
11. 로마 제국의 쇠퇴는 유럽 광산의 생산량 감소와 폐광을 가져왔고, 중세 유럽이 등장하기 전까지 중앙아시아가 주요 광산 지역이 되었다.
12. 귀금속과 향신료, 비단에 이끌려 남쪽으로 진출한 바이킹은 전리품을 얻기 위해 무역뿐만 아니라 폭력에도 의존한 난폭한 정복자였다.
13. 메소포타미아 평원의 광산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노예들(잔즈, Zanj)은 아바스 칼리프국에 맞서 3차례 반란(7~9세기)을 일으켰다.
14. 지폐는 송나라 상인들이 최초로 발명하고 유통시켰지만 금나라, 몽골과 전쟁을 치르면서 인플레이션이 폭증하여 그 가치가 폭락했다.
15. 안데스 산맥 지역에서 산출되는 청금석과 인도산 식물에서 추출한 인디고는 강렬하고 아름다운 청색 염료를 만들어내는 값비싼 상품이었다.
16. 이탈리아 북서부의 롬바르디아인 은행가들은 교황청에 헌금하는 은 수송을 전담하면서 확보한 자금으로 양털과 백반 무역을 장악했다.
17. 13세기 유럽 각지의 도매상들이 모인 샹파뉴의 연례 정기시장은 필리프 4세가 매긴 무거운 세금과 프랑스-플랑드르 전쟁으로 몰락했다.
18. 베네치아의 리알토 시장에서는 하루 두 번 상인들이 모여 귀금속 가격을 공식적으로 정했으며, 그 가격이 유럽 전체의 가격을 결정했다.
19. '화산 겨울'이 초래한 유럽 최악의 기근(1315~1318)으로 인구의 10~15%가 사망했지만, 남유럽 곡물상들의 투기 활동은 최악의 사태를 막았다.
20. 15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 그단스크와 뤼베크를 비롯한 한자 동맹은 낮은 세금과 '발트 해의 평화' 덕분에 곡물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21. 흑사병은 임금 인상, 인력 부족에 따른 기계화, 교회의 권위 추락, 사회의 세속화와 지방 속어 확대 등 사회 구조를 완전히 재편했다.
22. 신앙심보다 이익을 좇은 피렌체 상인들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청동 대포를 대량 생산한 오스만 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23. 인도 데칸 고원의 골콘다 지역은 기원전 4세기부터 1868년 남아프리카 킴벌리 광산이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산지였다.
24. 15세기 말~16세기 초, 개인 장서는 교양과 부의 상징이었으며, 유럽에서 제작되는 도서의 절반은 베네치아의 인쇄업자들이 출판을 도맡았다.
25. 로마부터 중세까지 모든 소식들은 같은 속도로 전해졌으며, 상인과 정치계, 교회는 가장 빠른 정보를 얻기 위해 막대한 돈을 기꺼이 지출했다.
26.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소식은 각국 정부와 상인들에게 속달로 전해졌는데, 기이하게도 베네치아 정치가들은 이 발견의 중요성을 외면했다.
27. 굶주림과 질병, 해상 사고, 풍토병과 성난 원주민 등 미지의 탐험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엘도라도의 부를 향한 열정과 욕망을 꺾지 못했다.
28. 대서양 항로가 열리고 베네치아의 아시아산 제품과 향신료 무역이 치명상을 입자, 베네치아는 맘루크 술탄국에 수에즈 운하 건설을 제안했다.
29. 프랑크푸르트 정기 시장은 유럽 최대의 도서 시장이었으며, 대발견 전후에는 지리상의 발전을 신속하게 반영한 지도 시장으로 군림하였다.
30. 16세기의 세계 양대 강국인 중국과 인도는 정치 혼란과 지역내 분쟁, 제위 계승을 둘러싼 골육상쟁 등에 시달리면서 점차 위상이 무너져갔다.
31. 헨리 8세는 종교시설 폐지법을 근거로 몰수한 막대한 교회 재산을 함대 편성과 해안 방어 시스템 구축 같은 해군 강화 비용으로 사용했다.
32. 1526년부터 본격 개발된 이와미 광산에서 대량 생산된 은은 쇼군들이 내전에 활용할 화승총을 구입할 때 사용된 이상적인 화폐였다.
33. 16~18세기 세계 최대 광산 도시의 하나였던 포토시는 지상에 있는 생지옥인 동시에 (종교)전쟁에 심취한 스페인 군주들의 든든한 돈줄이었다.
34. 중세와 바로크 시대 말기의 4대 해양강국인 베네치아, 제노바, 포르투갈, 네덜란드는 인구 부족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35. 대발견 이후 스페인의 젊은 남성들은 제조업을 버리고 모험 사업에 뛰어들었고, 귀족들마저 사치품 소비에 매진하여 무역 적자를 심화시켰다.
36. 아메리카 은의 유입 규모가 유럽 금융시장의 이자율을 좌우하던 시절, 아비소(선단 정보를 항구에 미리 알려주는 쾌속선)의 역할은 지대했다.
37. 19세기 초까지 멕시코 아카풀코와 마닐라를 오가던 갤리언 선의 은 수송은 중국-아시아와 아메리카-유럽을 연결하는 통화 체제를 형성했다.
38. 스페인 남부 알마덴 광산의 수은은 은을 추출하는 아말감 방식의 핵심 요소로서, 푸거와 로스차일드 가문 같은 금융업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39. 최대 5~6만에 달하는 도공들이 작업하던 징더전(景德鎭)은 10~18세기 동안 세계 최대의 자기 산지였지만, 태평천국의 난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40. 멕시코의 코치닐 연지벌레를 가공한 붉은색 코치닐 염료는 스페인에서 은 다음 가는 세원(稅源)이었으며, 투기꾼과 사략선의 주된 표적이었다.
41. 독일의 군소 군주들은 유대인 은행가들이 중심이 된 호프-팍토렌(궁정 은행가)의 돈으로 30년 전쟁을 치렀으며, 골동품 사치경쟁을 벌였다.
42. 에도 시대에는 고쿠(石, 성인 남성에게 1년 동안 필요한 쌀의 양)로 조세를 거두었고, 도지마 시장에서는 쌀 선도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43. 막대한 물과 에너지(목탄의 재료인 땔나무)를 소모하는 철제 대포 산업과 범선 제작 산업은 윌드 숲 같은 영국 남부의 숲들을 황폐화시켰다.
44. 말라카-고아-리스본, 광저우-나가사키, 마닐라-멕시코 통상로의 중심지인 마카오는 영국과 네덜란드에 앞선 포르투갈 삼각무역의 축이었다.
45. 1580년대부터 이와미 은광은 세계 은 생산의 1/5, 은 공급의 1/3을 점유하면서 동아시아 무역에 기여했고 일본을 국제 무역에 편입시켰다.
46. 오스만 제국은 선박 건조에 필요한 고급 목재가 항시 부족했고, 초석 생산과 철제 대포 제작, 화페 주조 역시 목재 부족 현상을 심화시켰다.
47. 네덜란드는 조가비를 주고 구입한 맨해튼 섬을 영국인들에게 넘기고 런 섬(고급 향신료인 육두구 생산지)을 받았지만, 역사적 실패로 남았다.
48. 기름세, 오줌세, 비누세, 턱수염세, 창문세, 벽돌세, 모자세 등 과도한 세금은 생활규범을 바꿨고 때로는 반란의 도화선 역할을 하기도 했다.
49. 17세기 기온 저하는 세계 각지에서 식량 가격 폭등과 농민 반란을 초래했고, 국가의 멸망(명나라, 콩고 왕국)과 내전(무굴 제국)도 유발했다.
50. 중앙은행과 관련 기관들은 대부분 전쟁 자금 때문에 궁지에 몰린 나라의 재정을 지원하거나 전후 채무를 장기로 전환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51. 18세기 초 우역(牛疫)이 발생하여 유럽 가축의 90%가 죽었는데, 전염병 전파의 본거지였던 이탈리아는 수의학 연구의 본산으로 거듭났다.
52. 전쟁 상대국에 맞선 경제전의 주된 방법은 런던이 미국 콘티넨털 지폐와 프랑스 아시냐 지폐를 상대로 벌인 것 같은 위조 지폐 발행이었다.
53. 영국은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맞서 140억 프랑을 지출했는데, 이 중 10억 프랑은 동맹국들을 지원하여 '성 조지 황금 기병대'로 불리었다.
54. 1855년 미국의 고래기름 산업은 국가 산업 순위에서 5위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활황이었는데, 곧 이어진 석유 생산이 생태계 재앙을 막았다.
55. 러시아는 1861년 농노제를 폐지하면서 토지보상금 1,500만 파운드를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빌렸는데, 이를 갚기 위해 알래스카를 매각했다.
56. 아마존 지역 중앙에 위치한 도시 마나우스는 19세기 말 고무 붐의 혜택을 크게 봤지만, 씨앗이 동남아로 밀반출되면서 독점의 막을 내렸다.
57. 1928년 새로운 유전들이 발견되면서 석유값이 60% 폭락하자, 메이저 업체들이 아크나카리 성에서 밀약을 맺어 반세기 동안 석유 값을 결정했다.
58. 1940년대 중반 나치는 비료, 폭발물, 질산 제조의 우수한 촉매제였던 백금을 확보하기 위해 금괴와 백금의 교환 비율을 5대 1까지 올렸다.
59. 미국은 무기대여법을 제정하여 소련에 450만 톤의 식품 외에도 엄청난 양의 민수 물자와 군수 물자를 지원했고, 이는 전황의 반전을 이끌어냈다.
60. 1927년 탄생한 헝가리 은화 '펭괴'는 1929년 세계 대공황과 2차대전기 헝가리 국토 파괴에 시달리면서 현대사 최악의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