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의 뿌리 - 서구 세계를 바꾼 사상 혁명
이사야 벌린 지음, 나현영 외 옮김 / 이제이북스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1 낭만주의의 정의를 찾아서


"낭만주의의 출발은 프랑스의 18세기, 즉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온하게 시작하며, 삶과 예술은 법칙을 따르고, 일반적으로 이성이 진보하고, 합리주의가 확산되고, 교희의 세력이 약화되며, 비이성적인 것은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호되게 비판을 당하는 우아한 세기다. 거기엔 평화가 있고, 고요함이 있고, 우아한 건축이 있으며, 인간사뿐 아니라 예술적 실천, 윤리, 정치, 철학에까지 보편적 이성을 적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때 느닷없이 명백하게 설명할 수 없는 습격이 일어난다. 갑자기 감정의 거친 폭발, 즉 어떤 열광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고딕 건축과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들은 갑자기 신경증적이고 우울해지며, 타고난 천재의 불가사의한 약동을 찬미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다른 변화들 역시 일어난다. 프랑스 혁명이 터지고, 불만이 팽배하며, 국왕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공포시대가 열린다."(16-7)


"(1760년부터 1830년 사이에 의식의 커다란 단절을 경험한)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고결함과 성실함, 어떤 내적 열정에 기꺼이 자신의 삶을 바치는 태도,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거나 삶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이상에 대한 헌신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학문이나 과학의 발전에 우선적 관심을 두지도 않고, 정치 권력에도 그러하며, 행복에도 관심이 없고, 무엇보다 삶을 조정하여 사회에서 자기 위치를 찾거나, 체제에 순응하거나, 왕이나 국가에 충성하는 것에조차 흥미가 없었다." "그 이상주의의 개념은, 원칙이나 어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고, 배반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며, 오직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을 위해 결사적으로 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심리 상태다. 이처럼 전심 전력을 다하는 태도, 성실함, 영혼의 순수함, 무엇이든 관계없이 자신의 이상에 헌신하는 능력과 망설임 없는 자세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20-1)


"1820년대부터는 마음가짐이나 동기가 결과보다 훨씬 중요하고, 의도가 그 효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 생겨난다. 마음의 순수함과 고결함, 헌신, 전념─오늘날 우리가 큰 어려움 없이도 가치를 인정하는 이 모든 것들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도덕적 태도와 바로 그 면면에 스며들어, 많든 적든 보편적인 것이 되고,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 다음에는 점차 바깥으로 퍼져 나갔다." "칼라일은 『영웅숭배론』에서 수많은 영웅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분석하는 중에 마호메트를 묘사하고 있다." "칼라일은 『코란』의 진리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으며, 『코란』에 칼라일 자신이 믿게 될 만한 어떤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칼라일이 마호메트에게서 높이 사는 점은 그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열정적인 인생에서 엄청난 수의 추종자를 거느렸으며, 무언가 강력하고 장엄한 사건을 통해 인류의 역사에 위대하고 감동적인 순간을 가져왔고, 이것을 실증했다는 점이었다."(22-3)


"지난 두 세기 동안 사상사를 다루었던 학자들 중에서 분명 가장 정확하고 탁월한 이들 중 한 명인 아서 O. 러브조이는 어느 누구도 그것이 낭만주의임을 부인하지 않을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인 원시주의와 독특한 취향─곧 댄디즘─을 들어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원시주의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와 어느 정도는 18세기 초의 영국 산문에서 시작되었으며, 고귀한 야만인들과 소박한 삶, 자연 발생적인 창작의 불규칙한 패턴을 고도로 복잡화된 사회의 타락한 교양과 알렉산더격 시행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찬미한다. 그것은 어떤 자연 법칙이 있어, 이 법칙은 타락하지 않은 원시인이나 인위적으로 교육받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에서 가장 잘 발견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시도였다. 이것이 도대체 붉은 조끼와 파란 머리칼, 녹색 가발과 압생트, 죽음, 자살, 그리고 네르발과 고티에의 추종자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기행들과 무슨 공통점이 있는가? 그는 정말로 둘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도 찾지 못하겠다고 결론 내린다."(35)


2 계몽주의에 대한 최초의 반격


# 서구 전통의 세 가지 기본 명제

1. 모든 진정한 질문에는 대답이 존재하며,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질문이 아니다. 우리가 모른다 해도 누군가는 그 대답을 알고 있으며, 인간이 모른다면 신만은 그 답을 알고 있다.

2. 모든 답은 알 수 있고, 타인에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수단을 통해 발견된다. 즉, 모든 진지하고 대답 가능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가능하다.

3. 모든 대답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진지한 질문에 대한 모든 진정한 대답만으로 설명되는 어떤 이상적 우주에 비추어 우리가 겪는 현재의 불완전함을 측정할 수 있다.


"계몽주의가 기독교도와 이교도,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를 막론하고, 합리주의적인 서구 전통에 가져온 특별한 반전은, 이제까지 대부분의 전통적 방식들로는 그 대답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 점이다. 그 답은 계시로는 얻지 못하니, 여러 사람들이 받은 계시가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까닭이다. 그것은 전통으로도 얻지 못하니, 전통은 종종 인간을 현혹시키는 거짓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까닭이다. 그것은 도그마로도 얻을 수 없고, 권위를 가진 인간의 개인적인 자기 성찰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으니, 너무 많은 사기꾼들이 이 역할을 불법으로 행사해 온 까닭이다─나머지 다른 방식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답을 발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한편으로는 수학적 학문에서처럼 연역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에서처럼 귀납적으로,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진지한 질문에 대한 진정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43)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18세기 초의 지배적인 미학 이론은, 인간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학 이론가들에게 (이때의) 자연은 생명을 의미했고, 여기서의 생명이란 흔히 보게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향해 간다고 생각했던 것, 모든 생명이 지향하는 어떤 이상적인 형태였다." "가장 뛰어난 예술적 재능은 자연과 인간이 지향하는 내면의 객관적인 이상을 시각화하여 그것을 훌륭한 그림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자연이 따르는 패턴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자연은 분명 이성적인 실체니,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일은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그것이 그들의 논거였다)─명백한 자연의 혼란과 혼돈으로부터 그런 영원한 원칙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영원하고 객관적인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필연적인 관계들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 18세기의 공식적인 독트린은 자연 그 자체에서 질서를 발견한다는 것이었다."(48-9)


"역사를 바라보는 볼테르의 관심은 대부분의 시대에 인간이 얼마나 지금과 똑같았는지, 어떻게 동일한 원인들이 동일한 결과들을 가져오는지를 보여 주는 데 있었다." "이 역사의 목적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호기심이나, 그것을 되살리려는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강한 흥미를 느끼거나, 어떤 식으로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우리가 어떤 뿌리에서 자라났는지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계몽주의자들이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단지 구체적 사실 자료를 축적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일반 명제들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역사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몰역사적인 태도이며, 18세기의 가장 특징적인 태도로, 기번 같이 훌륭한 역사서를 쓴 당대의 위대한 역사가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들의 이상은 실제 업적에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52-3)


"(낭만주의의 진정한 뿌리인) 경건주의 운동이 독일 사회 내부에 깊이 자리잡았다. 경건주의는 루터주의의 한 분파로, 성서를 면밀히 연구하였으며 인간과 하느님이 맺는 인격적 관계를 매우 중시했다. 그 결과 자연히 영적 생활을 강조하고, 지식을 경시하며, 의례와 형식, 겉치레와 의식을 멀리하게 되었고, 고통받는 인간 개개인의 영혼이 그의 조물주와 맺는 직접적인 관계에 중점을 두었다. 슈페너, 프랑케, 친첸도르프, 아르놀트 등 이들 모든 경건주의 운동의 주창자들을 사회적으로 짓밟히고 정치적으로 비참해진 인간 군상들에게 구원과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이른바 깊이로의 침잠이 일어났다. 때때로 인간의 역사에는─비교한다는 것이 위험할지도 모르지만─성취로 향하는 자연스러운 길목이 막혀 있을 때, 자기 안에 틀어박혀 자기 내면에만 열중하고, 어떤 사악한 운명이 외부적으로 허락하지 않은 세계를 내적으로 창조하려는 시도가 일어난다."(62-4)


"이것은 매우 웅대한 형식의 〈여우와 신 포도〉 우화다.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세상으로부터 얻지 못하게 되면, 자신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노라고 스스로 세뇌해야만 한다." "그 결과는 열렬한 영적 생활, 대단히 감동적이고 흥미롭지만 고도로 개인적이며 지극히 감정적인 문학, 반지성주의였으며,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프랑스에 대한, 가발과 실크 스타킹, 살롱, 퇴폐, 장교와 황제들, 그 세계의 모든 위대하고 화려한 인물들, 단지 부와 사악함, 악마적인 것의 육화일 뿐인 그들에 대한 격렬한 증오였다. 이것은 굴욕을 느낀 독실한 민중들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며, 이 반응은 그들이 전성기 이래 다른 장소에서도 일어났다. 그것은 반문화, 반지성주의, 외국인 혐오라는 특정한 형식인데, 이는 바로 그 시기에 독일인들이 특히 경도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18세기 몇몇 독일 사상가들이 소중히 생각하고 찬양했으며, 괴테와 실러가 평생을 바쳐 싸웠던 지방주의다."(64-5)


"계몽주의에 가장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으며, 낭만주의의 모든 과정, 즉 지금까지 내가 기술하고자 했던 관점들에 대한 반역의 모든 과정을 촉발시킨 사람이 바로 요한 게오르크 하만이다." "하만은 생명의 흐름을 잘라 구분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 맥을 끊어버린다고 보았다." "하만에 따르면, 볼테르는 인간이 행복과 만족과 평화를 원한다고 생각했으나, (그가 보기에)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각자의 모든 능력을 쏟아 부어 최대한 풍성하고 열정적인 방식으로 삶을 즐기는 것이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창조이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며, 설사 그 과정에서 충돌이나 전쟁, 다툼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그의 몫이었다. 볼테르식의 정원에서 깎이고 다듬어진 채, 물리학과 화학, 수학, 그리고 백과전서파가 추천하는 모든 학문의 지식으로 무장한 어떤 현명한 계몽 철학자가 양육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러한 인간은 이른바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을 것이다."(68-72)


3 낭만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들


"소위 질풍노도 운동 시기라 불리는 독일의 1760년대와 1770년대에 쓰인 희곡들을 읽어 보면, 유럽의 다른 곳에서 유행하던 문학과는 전혀 다른 어조를 발견하게 된다. 독일의 극작가로 이 운동의 이름이 된 『뒤죽박죽, 또는 질풍노도』라는 작품을 쓴 프리드리히 폰 클링거를 예로 들어 보자. 클링거의 『쌍둥이』에서는, 더 힘세고 상상력 넘치며 불같이 낭만적인 쌍둥이 중 한 명이 약하고, 까탈스럽고, 기분 나쁜 자기 형제를 살해하는데, 그 이유는 그의 형제가 자신의 악마적이고 거대한 욕구에 부합하는 기질을 드러내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모든 비극에 깔린 전제는 다른 어떤 사회에서는 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필요가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사회는 악하므로 개선되어야 했다. 인간이 사회에 의해 타락한다면, 인간은 루소가 꿈꾸었던 것처럼 더 나은 사회를 꿈꿀 수 있어야 하며,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일은 가능해야만 했다. 그러나 클링거의 비극에서는 그렇지 않았다."(92-3)


# 낭만주의에 매우 큰 기여를 한 헤르더의 사상들

1. 표상주의 :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 중 하나는 표현하는 것과 말하는 것, 곧 자신의 본성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다.

2. 소속 개념 : 자기가 있는 곳에 소속된 인간, 뿌리를 가진 인간은 자신이 성장한 상징 체계 안에서만 창조 활동을 할 수 있다.

3. 순수한 이상들 : 서로 다른 시대는 별개의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이 이상들은 자신들의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유효했다.


"헤르더는 모든 인간은 어떤 종류의 집단에 소속되기를 희구하거나, 실제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 집단으로부터 쫓겨난다면 낯선 곳에 있는 듯한 소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관념을 발전시켰다." "헤르더는 혈연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며, 인종이라는 기준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18세기의 독일어로 〈Nation〉이라는 단어는 19세기의 〈nation〉이 내포하고 있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 언어는 하나의 결속이고, 국가의 영토 역시 마찬가지인데, 거칠게 말해 그의 논제는 다음과 같으니,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다른 장소의 다른 사람들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 그들이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된 데 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뒤따라오는 낭만주의적 결론들은 18세기에 이해된 바로는 반反합리주의에 영향을 미쳤다."(99-101)


"따라서 이것은 역사주의와 사회진화론, 즉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것과 매우 다른 환경에 처했을 때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개념 전체의 발단이 된다. 이것은 또한 소속 개념의 뿌리이기도 하다. 이 개념은 실제로 헤르더가 최초로 설명했으며, 이것이 바로 세계시민이라는 관념 전체가, 즉 파리, 코펜하겐, 아이슬란드나 인도를 모두 자기 집처럼 여기는 사람이 그에게 그토록 혐오감을 주었던 이유이다. 자기가 있는 곳에 소속된 인간, 뿌리를 가진 인간은 오직 자신이 성장한 상징 체계에 의해서만 창조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말을 거는 어떤 닫힌 사회 안에서 성장한다. 누구든 뿌리 없이 성장한 인간은 결과적으로 약해지기 마련이며, 그의 창조적 역량 또한 자동적으로 약화된다. 이것은 18세기 프랑스의 합리주의자이자, 보편론자이자, 객관주의자인 세계시민주의 사상가들에게는 이해되지도 않고, 절대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생각이었다."(103)


"이것으로부터 더욱 놀라운 결론이 뒤따른다. 모든 문화의 가치가, 그 특정 문화가 추구하는 것에 달려 있다면, 헤르더의 말에 따르면 모든 문화는 자기만의 중력의 중심을 가지고 있으니, 그가 중력의 중심이라 부르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일이, 이들이 과연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에 선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것들을 다른 시대나 문화의 관점에서 판단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헤르더는 바빌론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아시리아에서도 즐거움을 느끼며, 인도에서도, 이집트에서도 즐거움을 얻는다. 그는 그리스인들에게 호감이 있고, 중세에도 호감이 있으며, 18세기도 좋게 생각하니, 그가 처한 시공간에서 당면한 환경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대에 호감을 품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헤르더가 만에 하나라도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배척하는 일이다." "그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억압,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삼켜 버리는 것을 싫어했다."(104-5)


"이 엄청난 다양성에서 경이로운 모자이크가 만들어지겠지만, 어느 누구도 전체 그림을 볼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없으며, 오직 신만이 완전한 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소속된 곳에만 속해 있고, 자신이 사는 곳에만 살고 있기 때문에, 전체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헤르더는 (유럽의 합리주의를 거부하면서) 행동의 영역에서든 사고의 영역에서든, 통일성을 부인하고, 조화를 부인하고, 서로 다른 이상들의 양립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운동을 일으킨 사람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것은 지난 2천 년 동안 서구의 견고한 〈영원한 철학〉이 되어 왔던, 즉 모든 질문들은 진정한 대답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진정한 대답은 원리적으로 발견 가능하고, 이 모든 대답들은 서로 양립 가능하거나, 조각 그림 맞추기처럼 조화로운 단일한 전체 안에 화합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한 매우 새롭고 지극히 혁명적이며 도발적인 태도이다."(108-11)


4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칸트는 낭만주의를 혐오했다. 그는 모든 형태의 방종과 환상, 그가 허황된 생각이라고 부르던 것, 어떤 식으로든 과장된 것, 신비주의, 모호함과 혼란을 싫어했다. 그런데도 그는 낭만주의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 어떤 불가사의함이 있다." "칸트는 과학의 신봉자였으며, 어떤 점에서든 열광적이거나 혼란스러운 것 모두를 싫어했다. 그가 좋아한 것은 논리와 엄밀함이었다. 그는 이러한 성질들에 반대하는 사람을 정신적으로 나태한 이들로 치부했다. 논리와 엄밀함은 인간 정신의 고된 훈련이었으며, 이런 일들이 너무 벅차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른 곳에서 반대의 이유를 생각해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은 그의 사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가 어떤 점에서든 낭만주의의 아버지라면, 이는 과학의 비판자로서도 아니고 당연히 과학자 자신으로서도 아니니, 이는 명확히 그의 도덕철학에 의한 것이다."(113-4)


"만일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는 데 있어 외부적인 무엇,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무엇에 의존한다면, 다시 말해 그가 행동하는 원인이 그의 내부에 있지 않고 다른 어딘가에 있다면, 그때 그는 자신의 행위에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이 없다면 그는 전적으로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도덕적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가 옳고 그름을, 자유와 구속을, 의무와 쾌락을 구분하는 것은 모두 망상에 불과한데, 칸트는 이것을 인정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인정할 생각도 없었다." "어떤 가치가 가치인 까닭은─적어도 욕망과 성향을 뛰어넘는 목표인 의무가 생겨나는─ 인간의 선택에 따른 것이지, 저 멀리 있는 그것 자체의 어떤 본질적인 특성 때문이 아니다. 가치란 어떤 윤리적 천공天空에 떠 있는 별들이 아니니, 그것은 내면적인 것이며 인간이 자유롭게 전념하기로, 또 그것을 위해 싸우고 목숨까지 바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118-20)


"칸트의 사상에 대한 온갖 종류의 해석이 18세기 말에 등장했으나, 우리의 관점에서 가장 생생하고 흥미로운 해석은 그의 충실한 제자이자 극작가, 시인, 역사학자인 프리드리히 실러에게서 나왔다. 실러 또한 칸트와 마찬가지로 의지, 자유, 자율성,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인간이라는 관념에 경도되어 있었다." "실러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자연을 초월하고, 자연에 형상을 부여하며, 자연을 개척하여 자신의 훌륭하고 자유롭고 도덕적인 의지에 복종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실러는 쉬지 않고 정신적인 자유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의 비극 이론은 바로 이 자유라는 개념 위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비극 작가로서 그의 작품 활동과 시작詩作도 이 개념으로 충만해 있는데, 바로 이런 방식 덕분에 문학과 조형 예술 양쪽에 걸친 낭만주의 예술은 칸트의 직접적인 저작보다는 그의 작품을 통해 더욱 강력한 영향을 받은 듯하다."(128-9)


"실러는 연극이 일종의 예방접종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이 (트로이의 마지막 신관이자, 도망치고 싶은 자신의 본능적인 충동에 저항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던) 라오콘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혹은 오이디푸스 및 다른 누구든 운명에 맞서 싸우는 인간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우리는 십중팔구 패배하고 말 것이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 처했다는 두려움이 너무나 커서 무감각해져 버리거나 제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같은 상황을 무대에서 본다면 비교적 냉정하게 거리를 두게 되며, 따라서 그 경험은 교육적이고 설득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우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찰하게 되므로, 인간과 관계된 예술의 목적은, 최소한 극예술의 목적은 우리에게 가장 인간다운 방식의 행동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칸트에게서 곧바로 나온 실러의 신념이다."(131-2)


"한편에는 또 다른 계보가 있는데, 이들은 만일 사회가 악하고 올바른 도덕성을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그 안에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차단되어 있다면, 또 이루어야 할 일 또한 전혀 없다면, 그러한 사회는 때려 부숴 마땅하며, 파멸하거나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고, 어떤 범죄도 허용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나오는 위대한 죄인, 사회를 근본부터 철저히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니체의 초인의 기원이며, 자유로워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우월한 인간은 그러한 사회의 가치 체계에 의거해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그는 차라리 그 사회를 파괴해 버리는 편을 택하며, 진실로 자신이 가끔 따르는 원리들을 파괴하는 편을 택하고, 그저 하나의 대상으로 자신이 제어하지 못하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기보다는 자멸하거나 자살하는 편을 택한다."(135)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셋째 사상가는 피히테로, 철학자이자 칸트의 제자였던 그는 다음과 같은 대표적인 구절이 보여 주는 대로, 이 자유라는 개념에 그만의 독특한 열정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피히테는 말한다. 〈자유라는 이름을 입 밖에 내기만 해도 내 마음은 부풀어 오르고 피어나지만, 필연성이라는 말에는 고통스럽게 오그라든다.〉 이 말은 그가 기질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데, 실제로 그 자신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한 인간의 철학이 곧 그의 본성이지, 그의 본성이 곧 그의 철학은 아니다.〉 헤겔은 피히테가 그저 자연에 영원한 법칙과 엄격한 필연성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우울과 공포를 느끼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질적으로, 이런 엄격한 질서와 깨뜨릴 수 없는 조화,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불가피하고, 질서 정연하고, 완전히 고정불변한 방식으로 나머지 모든 것에 뒤이어 일어나는 어떤 사방이 막힌 세계를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사람들이 있고, 피히테도 거기에 속했다."(143)


"피히테가 가진 전체 개념은, 인간은 행위자도 아닌 끊임없는 행동 그 자체라는 것이다. 자신을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생성과 창조를 지속해야만 한다. 창조하지 않는 인간, 단순히 삶이나 자연이 제공하는 바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자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진리가 아니라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거대한 창조적 충동을 충실히 실현하는 데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거대한 민족주의, 또는 계급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집단적 충동이라는 개념, 곧 인간은 박제되지 않기 위해, 죽은 것과 다름없이 되지 않기 위해, 정적인 자연이든, 제도이든, 도덕적 원리나 정치적 원리, 또는 예술적 원리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원리든 간에, 그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고, 끊임없이 흐르며 변화하는 과정에 있지 않은 정지된 그 무엇에 의해서도 억압받지 않기 위해 창조적으로 매진한다는 신비주의적 개념의 기원에 다다른다."(146-9)


5 해방된 낭만주의


# 낭만주의를 융성하게 만든 세 가지 요인(빌헬름 슐레겔)

1. 피히테의 지식학

2. 프랑스 혁명

3.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


"인간 의지의 살아 있는 원리를 자연─칸트에게 있어서 어느 정도는 죽은 물질이자, 형상을 부여받아야 할 것이었던─과 대비시킨 피히테와는 달리, 셸링은 신비주의적인 생기론을 지지했다. 그에게 자연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것이었으며, 이른바 정신적인 자기 전개였다. 그는 세상이 이성 없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출발해 점차 자기 의식에 다다르게 된다고 보았다. 그가 말하듯이, 세계는 가장 신비에 싸인 근원에서 출발하여 암흑으로부터 무의식적인 의지를 전개하며, 서서히 자기 의식을 발전시킨다. 자연은 무의식적인 의지이며, 인간은 자기 의식에 이른 의지다. 자연은 의지의 다양한 단계를 보여 주는데, 자연은 매 단계마다 특정한 전개의 도상에 있는 의지이다." "셸링에게 신은 이른바 의식이 자기를 전개하는 원리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 신이야말로 알파와 오메가, 곧 시작과 끝이라고 그는 말한다. 알파는 무의식의 상태이고, 오메가는 자신의 대한 충만한 의식에 이른 상태이다."(159-60)


"피히테의 의지에 대한 사상과 셸링의 무의식에 대한 사상이 결합하여 생겨난 최초의 위대한 사상이 상징주의다." "낭만주의 사상에 따르면, 우리를 둘러싼 실재와 우주는 끝없이 전진하며, 거기에는 어떤 무한하고 고갈되지 않는 것, 유한한 것들이 그것의 상징이 되고자 하나 당연히 실패하고 마는 무엇이 있다. 우리는 오직 자신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수단을 통해 전달 가능한 무언가를 전달하려 애쓰나, 이것으로 자신이 전달하고 하는 것을 모두 전달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니, 이 전체는 말 그대로 무한한 까닭이다. 이것이 알레고리와 상징이 사용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점근적인 접근 방법으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는 것뿐인데, 최선을 다한다 해도 그것은 고통스러운 투쟁이며, 만일 우리가 예술가라면, 또는 독일 낭만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어떤 자의식을 가지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우리는 이 투쟁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바친다."(162-6)


# 19~20세기의 사상과 감정이 당면하게 되는 두 가지 현상

1. 과거에 대한 동경 : 낭만주의가 찾아 헤매는 고향[원리, 본성]은 원칙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으나 붙잡을 수는 없는 무엇으로, 이를 향한 노력은 행동이며, 행동은 운동이고, 운동은 완결되는 법이 없으므로, 운동은 영구하다.

2. 근거 없는 불안 : 개인들이 아무리 자신을 해방시키려 발버둥쳐도 우주는 그렇게 쉽게 통제되지 않으며, 우리가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가 항상 배후에, 무의식이나 역사의 배후에 숨어 있어서, 우리의 가장 간절한 바람을 좌절시킨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살아 있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고, 행동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본성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자신이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를 표현함을 뜻한다. 자신이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으나,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표현해야만 한다. 여기서 고통이 생겨나고,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이것은 무한한 동경이자 열망이고, 우리가 먼 타국으로 떠나야 하는 이유이며, 이국적인 원형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이유, 또 동방을 여행하고, 지나간 과거에 대해 소설을 쓰며, 온갖 형식의 몽상에 탐닉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낭만주의의 전형적인 과거에 대한 동경이다. 만에 하나 그들이 찾아 헤매는 고향, 그들이 말하는 조화와 완전함이 허락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거부할 것이다. 정의상, 그것은 원칙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으나 붙잡을 수 없는 무엇으로, 그 이유는 그것이 실재의 본성인 까닭이다."(172)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들에 대해서 느끼는 불안 역시 낭만주의적인 관념으로, 우리의 바깥에 거대하고 파악하기 힘들며 손에 넣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한번 가지게 되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피히테가 바란 열망이나 두려움 중 하나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혹시라도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그 두려움은 막연한 불안이 된다. 이러한 불안은 19세기 동안 계속해서 축적되어 쇼펜하우어에까지 이르고, 바그너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20세기 모든 분야의 예술에서 거대한 정점에 이르러, 우리가 무엇을 하든 거기엔 어떤 암 세포와 같은 것이 있고, 꽃봉오리 속에는 어딘가 벌레가 숨어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간들이든, 저항하려는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인격을 가지지 않은 힘들이든, 우리를 영원히 좌절하게 운명짓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175)


"프랑스 혁명은 인간의 불행에 대해 평화로운 보편주의─끊임없는 진보에 대한 사상으로 그 목적은 고전주의적인 완성이며, 일단 그 목적을 달성하기만 하면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 놓은 어떤 확고부동한 기초 위에 영원히 지속된다─에 입각한 완벽한 해결책을 약속했음에도, 처음 의도했던 길을 가지 못했고(이것은 누구나 인정한 사실이다), 따라서 혁명이 주목하게 한 것은 결코 이성이나 평화, 조화, 보편적 자유, 평등, 해방, 우애─혁명이 차례로 실현하리라 예정되었던 것들─따위가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폭력과 공포, 인간사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 폭도들의 무분별함, 특정한 소수의 영웅과 유명인사들, 곧 선악을 떠나 이들 폭도를 지배하고 역사의 추이를 마음먹은 대로 바꿀 수 있는 이들이 가진 엄청난 힘이었다." "이것은 독일뿐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따라서 프랑스 혁명은 처음 의도했던 바와 정확히 반대되는 영향을 미쳤다."(177)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개념,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숨겨진 실재가 드러나며, 인간이 아무리 바꾸어 놓아도 그것은 갑자기 몸을 곧추세워 인간의 얼굴을 후려치고, 만일 이러한 것들, 자연이나 인간, 또 다른 그 무엇을 변화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도를 넘으면, 〈인간의 본성〉, 또는 〈사회의 본성〉, 또는 〈무의식의 어두운 힘〉, 〈생산하는 힘〉, 〈이데아〉─이 거대한 실체에 어떤 이름을 붙이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라 불리는 무언가가 공격을 시작하며, 우리를 때려눕힌다는 이러한 개념은 틀림없이 자신을 낭만주의자로 생각하지 않았을 수많은 유럽인들의 상상력에 스며들었으며, 갖가지의 섭리론이 성행하게 했으니,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섭리론과 헤겔주의자들이 섭리론을 비롯해, 슈펭글러의 섭리론, 토인비의 섭리론, 그리고 우리 시대의 무수한 다른 신학적 저작들이 그것이다." "이것은 실로 전체 우주를 18세기에 그랬던 것보다 훨씬 두려운 세계로 만들었다."(179)


"낭만주의자들은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를 두 가지 이유로 극찬했는데, 먼저 이 소설이 가진 이야기로서의 힘을 극찬하기보다는 두 가지의 다른 이유로 이것을 극찬했는데, 무엇보다 먼저 이 소설은 한 천재적인 인간이 자신을 형성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어떻게 한 남자가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힘을 얻으며, 자신의 고결하고 구속받지 않는 의지의 자유로운 실천을 통해 성공에 이르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이상으로 낭만주의자들은 또한 이 소설에 매우 갑작스런 전환들이 있다는 사실을 좋아했다." "시에서 산문으로의, 황홀경에서 과학적인 설명으로의 갑작스러운 전환은 낭만주의자들에게 현실을 전복시키는 마술적인 장치로 보인다. 이것은 예술 작품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보이는 모범이다." "괴테는 이들 낭만주의자들을 어떤 불안감을 안고 바라보았으니, 말년에 그는 〈낭만주의는 질병이고, 고전주의는 건강한 상태〉라고 말했으며, 이는 그의 기본적인 어조였다."(179-81)


"아이러니는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창안한 개념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정직한 시민들 앞에서, 잘 쓰인 시─규칙에 따라 쓰인 시─앞에서, 또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평화로운 제도 앞에서, 그것을 비웃고, 조롱하고 풍자하고, 비판하며, 정반대의 것들도 똑같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죽음에 대항하고, 고정화와 생명의 흐름을 멈추게 하고 얼어붙게 하는 모든 형태에 대항하는 유일한 무기를 아이러니Ironie라 부른다." "인간은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단순히 이 규칙들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니, 거부는 또 다른 정설, 원래의 규칙과 상반되는 또 다른 일련의 규칙들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 따라서 규칙은 파괴되어야만 했다. 이 두 가지 요소─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의지와 사물의 본성이 있다는 진리의 거부, 만물에 불변의 구조가 있다는 개념을 파괴하고 전복하려는 시도─는 이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운동의 가장 심오하고, 어느 정도는 가장 비상식적인 요소들이다."(189-90)


6 지속되는 영향력


"과학은 순종이며, 사물의 본질에 인도를 받는 것이고, 대상에 대한 면밀한 주의이자, 사실로부터 일탈하지 않는 것이고, 이해와 지식과 적응이다. 낭만주의 운동은 이와는 정반대를 선언했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지금쯤은 익숙할 불굴의 의지에 대한 개념으로, 인간이 성취하는 것은 가치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가치의 창조라는 것이다. 인간은 가치를 창조하고, 목표를 창조하며, 목적을 창조하는데, 궁극적으로는 마치 예술가가 작품을 창조하듯이─예술가가 어떤 작품을 창조하기 전까지 그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자기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창조한다. 모방과 순응은 없으며, 규칙의 습득이나 외부의 구속도 없고,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이해하고 익혀야 할 구조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과정의 핵심은 발명과 창조이며, 말 그대로 무에서, 또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주어진 질료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194-5)


"두 번째 명제─첫 번째와 연결되는─는 사물의 구조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자기 전진의 과정이자 끊임없는 자기 창조로, 이것은 쇼펜하우어나 심지어 어느 정도는 니체에서처럼, 인간에게 적대적이어서, 그것을 방해하고, 조직하고, 그 안에서 아늑함을 느끼며, 그 안에 머무를 수 있는 어떤 익숙한 양식을 만들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전복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니, 우리 자신을 세계와 동일시하며, 그것과 더불어 창조하고, 이 거대한 과정에 몸을 던짐으로써, 진실로 외부 세계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이 창조적인 힘들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며, 한편으로는 정신과, 다른 한편으로는 질료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전체를 거대한 자기 조직화와 자기 창조의 과정으로 바라봄으로써 마침내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된다."(195-6)


"러브조이가 몹시 쓸쓸하게 불평한 것에서부터 출발해 보자면, 어떻게 〈낭만주의〉라는 단어가 동시에 두 가지 모순되는 것들, 즉 한편으로는 고귀한 야만인, 원시주의, 단순한 삶, 장밋빛 뺨의 농부들, 도시의 끔찍한 복잡함을 피해 신대륙의 청명한 대초원이나, 실제 또는 상상 속의 지구 반대편에서의 다른 형태의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푸른 가발, 초록색 머리, 압생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파리 시내에 바닷가재를 끌고 다니다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제라르 드 네르발을 대표할 수 있는가? 만일 이 둘에 공통된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러브조이는 양쪽 모두에 똑같은 용어가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된다는 데 아주 당연한 놀라움을 표시하지만─ 대답은 양쪽 모두 주어진 것의 본성과 결별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양쪽 다 주어진 것을 파괴하고 산산조각 내는 수단임에는 같다." "우리가 어떤 길을 향하든, 극단적인 세련됨을 추구하든, 어떤 전례 없는 단순함을 추구하든 결과는 같다."(216-8)


"우리는 반드시 질서를 깨야 하고, 또 자신의 내면이나 외부 세계의 바깥을 향하는 것으로 이것을 깨야만 한다. 인간은 결코 그것과 완전히 일체될 수 없는 어떤 위대한 정신적 충동과 하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거나, 절대 실현되지 않을 어떤 신화들을 이상화해야 하는데, 북유럽의 신화든 남유럽의 신화든 켈트의 신화든, 그것은 문제되지 않으며─또는 계급의 신화나 민족의 신화, 아니면 교회나 다른 그 무엇의 신화라도 상관없다─그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전진하게 하고, 결코 성취되지 않으며, 그것의 정수와 가치는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으므로, 만에 하나 성취된다면 그것은 쓸모없어지게 된다. 이것이 내가 알 수 있는 한에서의 낭만주의의 본질로, 곧 의지와 행동으로서의 인간, 끊임없이 창조하고 있기에 묘사할 수 없는 무엇, 그것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되는, 주체도 없고 오직 운동만 존재할 뿐인 그 무엇이다. 이것이 낭만주의의 핵심이다."(222)


"한편으로 우리는 낭만주의의 후예들로, 낭만주의는 인류가 여태까지 거기에 맞춰 걸어온 거대하고도 유일한 틀, 〈영원의 철학〉을 깨뜨렸다. 우리는 어떤 의혹─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들─의 산물이다. 우리는 결과도 강조하고, 동기도 강조하며, 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이것이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치달아 히틀러 같은 인물이 생겨났을 때, 1930년대에는 그의 편을 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나, 우리는 그의 신실함이 반드시 그의 과오를 상쇄해 주는 미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어떤 통합된 전통의 일원들이지만, 이제 우리는 그 영역 안을 자유롭게 오가며, 우리가 허용하는 범위도 예전에 비하며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다. 이것은 상당 부분 낭만주의 운동의 덕분이니, 그것이 이상들의 양립 불가능성, 동기와 품성의 중요성, 또는 어쨌든 결과와 효율성, 효과, 성공과 행복과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보다 우선하는 의도의 중요성을 설파했기 때문이다."(226-7)


"실존주의의 중심이 되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서 이 세계의 그 무엇도 우리를 강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도 자신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듯 가장하며, 결정을 내린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의 결과를 직시하려 하지 않는다." "실존주의자들은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간다. 그들은 세계에 형이상학적인 구조가 있다는 개념 자체와, 신학이나 형이상학이라는 개념 자체, 어떤 사물들은 본질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변하지 않는 어떤 구조를 가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우리는 자신이 만든 것에 책임이 있으며, 어떤 정상참작도 요구할 수 없다. 모든 변명은 거짓이고, 모든 설명은 발뺌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용감하고 충분히 비극적인 인간이라면, 이것을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실존주의가 주장하는 이러한 금욕주의적 교훈은 낭만주의로부터 직접 끌어낸 것이다."(227-30)


"파시즘 역시 낭만주의의 후예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비합리적이거나 선택된 소수에 대한 신념 때문이 아니다. 파시즘이 낭만주의에 무언가 빚을 졌다면 그 이유는, 또다시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예측할 수 없는 의지, 조직하고 예측하고 합리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는 의지라는 개념 때문이다. 이것이 파시즘의 전체 핵심으로, 지도자가 내일 무슨 말을 할지, 정신이 우리를 어떻게 움직일지, 우리가 어디를 향하며 무엇을 하게 될지, 이 모두는 미리 예견할 수 없다. 파시즘에 있어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병적인 흥분 상태에 빠진 자기 주장과 무한한 의지를 제한하는 기성 제도의 허무주의적 파괴뿐이고, 우월한 인간은 그의 의지가 더 강한 까닭에 그보다 열등한 인간을 밟고 일어서니, 이것은 (극단적으로 왜곡되고 혼동되긴 했지만) 낭만주의 운동의 직접적인 유산이며, 이 유산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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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의 야만인들
브라이언 버로.존 헬리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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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당대의 기업 인수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RJR 나비스코의 LBO(차입 매수) 거래 과정을 파헤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누군가는 


1. 개척자 정신(the spirit of pioneer) : '야성적 충동'들이 약동하는 개척자들의 무협 활극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짜릿한 흥분을 즐길 수도 있을테고

2. 선진 금융 기법(advanced financial skill) : 시장이 윤허(!)하는 최대 레버리지가 투여된 LBO(차입 매수) 기법의 메커니즘에 매료될 수도 있을테고

3. 자본과 탐욕(capital and greed) : 제것이 아닌 자본과 제것이지만 통제불가능한 탐욕으로 어우러진 금융시장에 경고장을 날릴 수도 있을 것이다.


긍정/부정적 견해 어느 쪽도 성립 가능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지점은 바로 


4. 사회의 부재(absence of commonwealth) : 그들의 열정, 그들의 행위, 그들의 포식에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공동체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황금을 뒤쫓는 개척자들이 남기고 간 황폐화된 마을처럼, 극도로 복잡한 금융 기법의 허리케인이 강타한 실물 경제는 앞만 보고 달리는 그들의 질주가 피어올린 먼지구름에 잠겨 질식한다.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열정과 고뇌, 회한과 한숨, 절망과 눈물은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가는 그들의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는 인간을 양육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길러진 인간은 자주 자신의 몸에 새겨진 공동체의 맥박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홀로 선 '문 앞의 야만인들(Barbarians at the gate)'은 오늘도 변함없이 자신들의 신세계를 향해 문을 박차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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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쟁 - 군사적 폭력의 탈국가화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 공진성 옮김 / 책세상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서문


# 새로운 전쟁의 세 가지 전개 양상

1. 군사력의 탈국가화 혹은 민영화 : 전쟁의 직접적인 수행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면서 나타난 현상

2. 군사력의 비대칭화 : 폭력 사용의 특정 형태들(파르티잔, 테러리즘)이 하나의 독립적 전략으로 부상

3. 폭력 형태들의 점진적인 자립화 혹은 자율화 : 정규군이 전쟁 발발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상황


1 새로운 전쟁, 무엇이 새로운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국가건설전쟁'과 제3세계 또는 제1세계와 제2세계의 주변부에서 일어난 '국가붕괴전쟁'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가 '외부의' 커다란 영향 없이 진행된 반면에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새로 태어나서 여전히 불안정한 국가들을 붕괴시키는 우리 시대의 전쟁들은 오히려 외부의 지속적인 정치적 개입에 종속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그 전쟁들은 국가경제의 발전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세계경제적 교환체계 속에 포섭되어 있다. 그래서 지하자원, 석유나 광석 같은 국가 재산은 오히려 그 획득과 분배를 둘러싼 충돌들을 강화시켜왔다. 그러므로 오늘날 다수의 실패한 국가들이 좌절한 것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충분히 통합되지 못한 사회들의 부족중심주의 탓만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또한 강한 국가성이 부재한 곳에 파괴적 영향을 끼쳐온 경제적 지구화의 물결 탓이기도 하다."(25-6)


"사태의 전개를 더 극적으로 만든 것은 전통적 부족중심주의와 지구화의 새로운 형태라는 두 요소가, 그것이 국가 건설을 가로막고 그 싹을 파괴한 것과 동일한 정도로, 내전의 발발을 용이하게 했으며 더 나아가서 내전의 지속에도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전쟁들은 그림자 지구화의 통로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경제와 연결되며, 전쟁의 지속적인 수행을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끌어들인다." "전쟁 중에 늘어나는 자원의 소비를 전쟁의 조기 종식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서방 국가들과 UN의 일시적인 통상금지 정책은 거의 모든 경우에 실패했다. 전쟁을 계속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의 확보에 전쟁 당사자들이 거의 언제나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 공통점이나 전략적 이해관계를 지닌 정권의 지원을 받는 전통적 방식으로, 또는 그림자 지구화의 새로운 형태들을 이용하여 그들은 자원 확보에 성공했던 것이다."(28-9)


"시공간적으로 군사력을 집중하는 원칙이 아니라, 분산하는 원칙이 새로운 전쟁들의 진행 양상을 결정한다. 대개 새로운 전쟁들은 파르티잔전쟁의 기본 원칙을 따라 수행된다. 전방과 후방, 본토의 구분이 사라져서 전투 행위가 작은 땅덩어리에 국한되지 않고 도처에서 벌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전쟁에서는 적과 단 한 차례 승패를 가르는 대규모 전투를 치르는 것이 기피된다. 자신들이 그런 전투에 걸맞는 전투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거나, 자신들의 부대가 원래 그런 형태가 전쟁 수행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새로운 전쟁들에서는, 18~20세기의 유럽 역사를 결정했던 전쟁들에서라면 찾아볼 수 없을, 어떤 유형의 무장전투원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 이 자리에서, 이 순간에 적을 이기는 것이 목적이며, 이 목적 안에서 모든 전쟁계획이 실처럼 엮이고 미래에 관한 먼 희망과 막연한 생각들이 만난다."(32-3)


"전쟁의 탈국가화의 주역이자 주요 수혜자는 군벌들과 지역의 장군들, 그리고 지역의 경계를 넘어 활동하는 전쟁사업가들이다. 이들 중에서 붕괴된 국가의 넓은 영토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약탈할 수 있는 일부는 국가의 중요한 속성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 건설이라는 고된 일을 직접 추진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무력을 이용해 챙길 수 있는 전리품 외에, 국가로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에서 생기는 이익을 노린다. 국가로서 인정받게 되면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고, 국제시장에 제약 없이 진출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모은 재산을 외국으로 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벌들이 주장하는 국가의 속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국가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정치적 자기구속과 자기책임의 형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약탈의 지속일 뿐이다."(43-4)


"20세기 중반 이후의 전쟁의 역사는 비대칭적 분쟁이 점점 더 발전하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경제, 기술, 군사, 문화산업 분야에서 미국이 보유한 따라잡을 수 없는 우월성은 세계정치적 비대칭성들을 낳았고, 이는 전투 장소의 이동, 전쟁 수단의 재정의, 새로운 자원들의 동원을 통한 전쟁의 비대칭화로 이어졌다. 이 방향으로의 첫 번째 큰 걸음은 탈식민지화 시대의 게리야[작은 전쟁] 전략의 체계적인 재수용이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파르티잔전쟁의 전략과 테러 전술의 연결이었다. 그것은 1950년대 후반 이후로, 특히 알제리 전쟁에서 관찰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러리즘이라는 정치적·군사적 전략이 형성되었다. 이제 테러 공격은 파르티잔 방식으로 싸우는 해방 운동을 단순히 지원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직접적으로 적의 정치적 의지를 파괴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2001년 9·11 테러로 이 비대칭화는 잠정적인 정점에 도달했다."(65-6)


2 전쟁 수행, 국가 건설, 삼십년전쟁


"독일의 사회학자 트루츠 폰 트로타는 아프리카에서의 국가 붕괴와 그것과 연결된 전쟁이 OECD 국가들의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여준다는 명제를 대변한다. 이스라엘의 전쟁사학자 마르틴 판 크레펠트도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저작 속에서 전쟁의 전형으로 파악되고 분석된 국가 간 전쟁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고, 전쟁들이 작은 불꽃으로 오랫동안 흔들거리며 타오르는 '저강도전쟁'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변화들을 묘사할 때의 언어적 표현이 이미 근본적인 차이를 암시한다. 전쟁이 문장의 주어가 된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에 묶어두기를 원했다. 그러나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라는 목적어의 자리에서 벗어나 자기를 정치의 자리에 놓았다. 이제 전쟁들은, 판 크레펠트의 진단처럼, 더는 누군가에 의해 수행되지 않고, 저절로 흔들거리며 타오른다.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에서 정치에 부여되었던 주어의 자리를 판 크레펠트의 이론에서는 전쟁 자신이 차지했다."(72)


"신속한 군사적 결판을 목표로 삼지 않는 전쟁에서는 거의 언제나 기강 상실이 나타난다. 무장한 병사들은 점차 전쟁을 개인적인 치부의 기회로 삼고, 무기를 자신의 권력환상과 가학욕구의 실현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 점이 삼십년전쟁에 관한 보고들에서 발견되는, 최근의 전쟁 경향과 눈에 띄게 유사한 점들이다. 더 나아가서 전쟁 비용 문제를 점령지역에서 해결한다." "새로운 전쟁은 조세수입으로 채워지는 국고가 없는 대신에 스스로 경제적 활동의 일부가 되었다." "가치를 일방적으로 획득하기만 하는 전쟁은 스스로 어떤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므로 언젠가 그 전쟁경제의 구조 속으로 깊이 빨려들어가 전면적 붕괴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전쟁은 일반적으로 힘의 광범위하고도 신속한 동원의 원칙을 따르지 않고 힘의 느리지만 연속적인 사용의 원칙을 따르므로, 대부분 매우 오래 지속되고 일시적으로 꺼졌다가도 언제나 다시 타오른다."(96-7)


"삼십년전쟁은 개별 전쟁들과 충돌들의 중첩된 연속이지만, 그것들이 서로 얽혀 있어서 마치 하나의 전쟁인 것처럼 취급된다. 이 점에서 삼십년전쟁은 오늘날 벌어지는 일련의 전쟁들과 또한 유사하다. 여기에는 상이한 상대들과 벌인 여러 전쟁들이 중첩된 아프가니스탄 전쟁, 3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앙골라 전쟁, 다양한 혁명 운동들과 외부 세력이 개입한 콩고 전쟁 등이 있다." "이 모든 전쟁들의 공통점은 내전으로 시작해 초국적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그럼으로써 말 그대로 경계를 모르는 전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에서 시작된 전쟁들을 그 지역의 경계 안에 묶어둔 것은 UN, NATO, EU가 거둔 혁혁한 공으로 기록해야 할 것이다. 일국 수준의 내전을 조기에 종료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그것이 국경을 넘어 초국가화하는 것이라도 막는 것이 앞으로는 국제적 평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101-3)


"삼십년전쟁은 사회-정치적 질서의 국가화가 아직 완료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이 전쟁에는 국가 행위자와 반半국가 행위자, 사적인 행위자들이 대립과 협력이 뒤섞여 나타났는데, 이런 현상은 새로운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전형적이다. 지배권의 원래 보유자인 황제와 제국의 신분집단들도 삼십년전쟁의 매우 중요한 행위자들이었지만, 그 외에 전쟁의 발발과 함께 높은 자리에 올라서게 된 전쟁기업가들도 이 전쟁의 매우 중요한 행위자들이었다. 이들은 용병 조직을 구성했고, 고객들의 지시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외부 세력들이 이 전쟁에 개입했다." "이처럼 삼십년전쟁은 헌정적 갈등과 종교적·이데올로기적 대립의 혼합물이고, 사적인 치부욕과 개인적 권력욕의 혼합물이며, 국가이성적 고려와 종교적 가치에 대한 헌신의 혼합물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전쟁들은 매우 드문 경우에만 군사적으로 승패가 결정될 수 있다."(107-8)


3 전쟁의 국유화와 그 결과


"점차 군대의 규모가 커지고 상이한 병과가 결합─보병대뿐만 아니라 기병대와 포병대를 보유한─하면서 전쟁은 점점 더 비싸졌다." "이제 전투의 결과는 투입된 부대의 수적 크기와 세 가지 병과들을 조합해 투입하는 능력이 결정하게 되었다. 이로써 대규모 결투와 전투들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성을 얻었다." "'전쟁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고, 또 돈이 필요하다'는 말은 더 적실성을 얻게 되었다. 이런 비싼 전쟁은 결국 국가만이 수행할 수 있었다. 국가는 15세기 이후로 지속해서 증가한 세금 수입에 의존하여 전쟁에 필요한 재정적 수단을 장기적으로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국가는 용병들의 통제하에서 경제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던 전쟁을 점차 다시 국가의 정치적 지휘권 아래 둘 수 있었다. 이때부터 통치 권역의 크기, 통치의 집중화 정도, 세금 수입의 양이 유럽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116-7)


"군조직이 국유화한 것과 국가가 전쟁의 독점자, 즉 전쟁을 선언하고 수행할 권리를 지닌 유일한 권력으로 등장한 것은 국가들 간의 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경쟁의 메커니즘과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노력을 통해 유럽에서는 하나의 세력 균형 체제가 발전했다. 이 체제를 본질적으로 결정한 것은 대칭성이라는 관념이었다. 유럽에서 근대에 일어난 국가 간의 전쟁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칭적인 형태로 수행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전쟁을 다른 곳에서 나타나지 않은 특별한 형태의 법으로 규정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전쟁이 근대 초기에 대칭적으로 변하면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정당한 전쟁'이라는 오래된 생각이었다." "한 쪽이 범법자로 간주되고 다른 한 쪽이 그 법을 회복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 때에만 정당한 전쟁은 성립한다. 정당한 전쟁에서 전쟁에 대한 권리ius ad bellum는 처음부터 비대칭적으로 분배되어 있다."(132-3)


"전체적으로 볼 때, 정당한 전쟁에 관한 이론에서 더 중요한 것은 폭력의 광범위한 제한보다 오히려 이 이론이 고안될 당시의 특유의 정치적 상황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이론으로 원칙적 평화주의를 맹세하는 기독교 공동체들을 향해 사방에서 몰려드는 야만적인 이민족들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로써 유지되어야 할 현상Status quo이 전적으로 정의롭지는 않지만,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대안들보다는 어쨌든 더 정의롭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생각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한 전쟁은 원칙적으로 비대칭적인 것이었다. 한 편에는 기독교적 평화체제의 정치적 보증인인 로마 제국이 있었고, 다른 한 편에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야만적 정복자들이 있었다. 정당한 전쟁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상은 문명에 적대적인 정복자에 맞서 문명이 자신을 무력으로 방어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134)


"삼십년전쟁 이후 국가 간의 비대칭성을 억제한 세 차원이란 군사적 전략의 차원, 정치적 합리성의 차원, 국제법적 정당성의 차원이었다. 국제법적 정당성의 차원에서 규정되는 대칭적 관계는 (영토의 크기와 인구 규모 면에서 큰 차이가 있더라도) 주권에 대한 상호 인정과, 그 인정 속에 포함되어 있는 동등성의 인정이었다." "가장 중요한 차원인 정치적 합리성의 차원에서는 구조적 대칭성이 이 체계를 안정화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여기서 대칭성의 원리는 개별 국가들의 군사력을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군사력을 자국의 군사력과 비교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미리 동맹을 체결하여 가상의 적국이 군사적으로 우위를 점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울러 각국은 가상의 적이 아니라 실제의 적에 맞서 무장했다. 그 이점은 군사력의 우열을 쉽게 확인하여 보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145-6)


"모든 산업자원들을 투입한 상황에서 치러진 제1차 세계대전은 상당수의 민간인들을 무기 생산에 끌어들였다. 그런데 그렇게 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은 이 노동자들을 준전투원의 지위로 격상시켰고, 이와 함께 한때 분명했던 전쟁에 참가한 자와 참가하지 않은 자 간의 구별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은 오래 지속된 데에다가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서도 군사적 결론에 이르지 못함으로써 과거의 대칭적인 정치적 관계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 전쟁은 국제법의 발전에서 하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제 전쟁의 정당성은 방어전쟁의 경우에 국한되었고, 이와 함께 전쟁의 양 당사자가 원칙적으로 전쟁에 대해 동등하게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는 가정은 사라졌다. 왜냐하면 방어를 위한 정당한 전쟁이란 오로지 상대방이 부당한 침략전쟁을 금지하는 법을 어겼을 때에만 성립하기 때문이다."(147-9)


"(임마누엘 칸트가 자신의 저서 《영구평화론》에서 펼친 논지대로) 국가 간 전쟁은, 특히 고도로 발달한 산업국가들이 벌인다면 더욱, 유익하지 않다.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이익도 확실히 계산할 수 있는 손해보다는 적다. 그러나 이 판단은 오로지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손익을 계산했을 때에만 타당하다. 새로운 전쟁들에서처럼 군벌들과 내전 당사자들, 지역적 민병대들이 각자 나름의 계산서를 작성하는 곳에서 이 판단은 적용되지 않는다. 전쟁의 손익 계산이, 대칭적으로 전쟁을 수행한다는 가정하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비대칭적 전략들을 사용하여 비용을 전가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이루어질 때 계산의 결과는 달라진다. 대칭적 전쟁은 전쟁 참가국들에게 또한 비용을 대칭적으로 분배하려는 효과를 가진다. 그래서 전쟁을 회피함으로써 비용을 줄이려는 동기가 양측에 공히 크게 있다. 그러나 비대칭적 전쟁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154-5)


4 새로운 전쟁 속의 폭력의 경제


# 군사력의 사유화를 이끈 세 가지 요인

1.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경량무기의 중요성 증가

2. 미숙련 전사(특히 청소년과 어린이)의 전투 투입

3. 강탈이나 불법상품 거래를 통한 전쟁 자금 조달


"새로운 전쟁을 수행하는 민병대와 군벌집단들은, OECD 회원 국가들의 군대가 갈수록 비싸지는 것과 달리, 과거 그 지역의 정규 부대보다도 분명히 더 저렴하다. 어쩌면 바로 이 사실이 새로운 전쟁을 그토록 위협적인 것으로 만들며, 또한 이로써 새로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집단의 범위가 넓어지는지도 모른다.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분명히 새로운 전쟁이 정규 국가 간 전쟁보다 사회에 더 많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새로운 전쟁은 시간적으로 지속되고 공간적으로 확장됨으로써 사회를 더 황폐하게 만들며, 사회 질서의 근간을 훼손함으로써 고전적 전쟁보다 사회에 더 나쁜 영향을 오랫동안 끼친다. 거의 모든 전쟁이 확실히 미래의 비용으로 수행되기는 하지만, 국가 간 전쟁에서 이 비용이 다음 세대에게 부과되는 채무인 것과 달리, 새로운 전쟁에서 이 비용은 지속적으로 파괴될 평화로운 삶의 기회 그 자체이다."(160)


"종족 간의 대립이 폭력을 강화하기는 하지만, 폭력을 유발하는 원인은 아니다. 원인은 오히려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이 무기를 이용해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사회 구조에 있다. 이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은 지난 시절 자신들이 당한 굴욕을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때로는 약간의 부를 이룬 사람들에게 되갚는다. 그들 자신이 노동하는 삶을 경험해보지 않았고, 그래서 또한 노고勞苦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 탓에 그들은 시민사회의 구조들을 마음대로 약탈하고 파괴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집단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쉽게 모집할 수 있는 전사들이다. 그들은 생각으로나 행동으로나 죽음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저항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으며, 더 거칠어지고 잔혹해지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새로운 전쟁의 가장 무서운 참여자로 만든다."(167-9)


"원론적으로는 군벌 지배가 국가 지배의 초기 형태로 변하고, 그것에서 다시 일정 시간 후에 어느 정도 안정적인 국가성이 생겨날 수도 있지만, 대개 이런 변화는 좌절된다. 군벌 지도자의 추종자들 가운데 너무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대장이 걸어온 길을 이제 직접 모방하여 뒤따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종식되면 군벌 지도자나 게리야 지도자의 카리스마적인 통솔력은 사라지고, 평화 정착 과정에서 생겨나는 실망들은 전쟁을 계속하려는 자들에게 지지와 추종자들 만들어준다. 명성과 사회적 인정을 좇아 한때 군벌 지도자에게 몰려갔었고, 이제 평화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모두 전쟁을 계속하려는 자들과 결합한다. 이 사람들이 평화를 믿지 못하는 것은 전쟁이 그들에게 약속했던 것들을 평화가 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비용이 이처럼 높은 것은 바로 전쟁이 너무도 값싸기 때문이다."(170-1)


"야만적인 집단 강간에서 여성을 감금하여 체계적으로 강간한 후에 추방하거나 임신시킨 채로 대중에게 노출시키는 것에 이르는 성폭력 전략은 보스니아와 동티모르 등지에서 목격되었는데, 이는 대량학살 없이 대규모로 '인종 청소' 정책을 추진하려는 시도로 파악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두려움과 공포, 폭력과 패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가 형성된다. 이 체계는 인구의 대부분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집과 여타의 모든 소유물을 포기하고 자질구레한 소지품 몇 가지만 가지고서 정든 고향을 떠나도록 강요한다. 공포를 생산하는 이런 전략의 중요한 세 단계는 다음과 같다. 정치적·문화적으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들이나 잠재적으로 무장 저항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을 처형한다. 신성한 건축물과 문화적 기념물을 불태우고 폭파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방해야 할 집단의 여성들을 체계적으로 강간하고 임신시킨다."(175-7)


"페미니스트들은 성폭력을 남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한 형태로 볼 것을 제안해왔다. 브라운밀러는 이렇게 말한다. 〈강간은 패배한 쪽의 남성들이 붙들고 있는 권력과 소유에 대한 남아 있는 모든 환상을 부순다. 능욕당한 여성의 신체는 의례적 전쟁터가 되고, 승자의 전승 축하 행렬을 위한 공간이 된다.〉 이 말은 왜 새로운 전쟁들에서, 삼십년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성폭력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또는 적어도 희생자의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다른 친척들이 있는 자리에서 발생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이런 폭력 행위들이 가지는 유사군사적 의미는 적에게 노골적인 굴욕을 안겨주고 그를 거세하는 데에 있다. 그가 '자신의' 여자들을 더는 보호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이제 여자들과 함께 분쟁지역을 영원히 떠나야 한다는 것이 그에게 문자 그대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여기에서도 공격은 적의 의지를 향하지만,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을 경유한다."(179)


"인도적 지원은 부유한 국가들에서 대부분 좋은 의도로 이루어지고 또 자선 행위로 여겨지지만, 전쟁 지역과 위험 지역에서 종종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전쟁 당사자들이 오히려 그 지원에 의해 후원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전쟁들의 전략가들이 국제원조를 아예 처음부터 그들의 작전 계획 속에서 병참의 한 요소로서 포함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전쟁을 저렴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전쟁 당사자들이 물자 조달 걱정을 덜 할 수 있을수록, 전쟁은 더 쉽게 수행된다. 무장세력들은 구호품 수송 차량을 교량, 산길 또는 도로 차단 시설이 설치될 수 있는 곳 어디에서나 정차시키고 수색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빼고, 필요 없는 물건들만 통과시킨다. 사라예보를 포위하고 있던 세르비아 연방군은 자신들이 구호품의 상당 부분을 얻기 전까지 UN의 수송 차량을 그 도시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185-6)


"난민들의 행렬과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세운 수용소는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덩굴식물의 조직과 같아서 이 덩굴을 따라 처음에 한 지역에 국한되었던 전쟁이 주변 지역으로 확장되고 전쟁의 조직이 새 환경 속에서 뿌리를 내린다. 이런 난민 행렬의 모습으로 한 사회 안에서 일어난 전쟁은 짧은 시간 안에 국경을 넘어 초국가적 전쟁으로 확장된다. 전쟁이 확산을 막으려는 이웃 국가들이나 국제기구들의 노력은 바로 이 난민 행렬에 막혀 번번이 좌절한다. 한편으로, 이웃 국가들이 대체로 연약한 국가 구조와 경제 구조가 난민수용소가 들어서면서 심하게 훼손되고, 다른 한편으로, 그곳에 매우 신속하게 전쟁 당사자를 돕고 지원하는 네트워크가 들어선다. 이 네트워크로부터 전쟁 당사자들은 정치적·군사적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을 상당 부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이 수용소를 상대편의 공격 목표가 되게 한다." "수용소에 대한 공격은 전쟁의 확산을 막거나 아예 종식시키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188-9)


"미디어는 의도치 않게 전쟁 가담자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군인과 군인의 대결이 아니라, 군인과 민간인의 대결로 표현되는 새로운 전쟁의 비대칭적 구조가 낳은 직접적 결과이다. 미디어를 통해 형성되는 전 세계의 여론 또한 전쟁의 한 가지 자원이 되었다. 약한 편의 전투원들은 이 여론을 방패막이로 삼는다. 군사적 충돌의 비대칭성이 증가할수록 또한 그 충돌을 관찰하는 카메라의 중요성도 증가한다. 전쟁 보도의 전통적인 중립성은 확실히 전쟁의 대칭성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점차 증가하는 전쟁의 비대칭성, 즉 다윗과 골리앗 간의 대결로 변해가는 상황은 전쟁의 보도를 어느 한 쪽 편을 들고 지원하는 일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계획할 때에 중요한 것은 자신들을 다윗으로 연출하는 것이다. 난민들과 우는 여인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망에 빠져 저항하는 아이들을 보여주는 것은 이 일을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190)


5 국제 테러리즘


"어떤 폭력 행위를 '테러'라고 기술함으로써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행위가 지닌 일체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정하려고 한다. 이처럼 '테러리즘'은 국제정치에서 배제 개념으로서 기능한다. 어떤 행위를 테러라고 부르는 것은 그 행위와 관련한 사람들의 요구가, 최소한 특정 형태의 폭력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한,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테러리스트 전략이 노리는 것은 폭력 사용이 가져오는 직접적인 물리적 결과가 아니라 심리적 결과이다. 테러리스트 전략은 파괴의 규모나 사상자의 수, 물자공급체계의 붕괴와 같은 공격이 야기하는 물질적 피해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그것을 통해 확산되는 두려움과, 막강해 보이는 적도 다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공격들로 인해 가지게 되는 기대와 희망에 더 큰 관심을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테러리즘은 유달리 떠들썩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파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고 일컬어졌다."(207-9)


# 테러 활동에서 폭력 수단의 자기제한이 무너진 이유

1. 테러리즘의 국제화 :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벌이는 항공기 납치사건은 우연적으로 구성된 피해자 집단에게 의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

2. 종교적·원리주의적 동기의 강화 : 천년왕국적·묵시론적 관념들을 이용하여 세속적 목표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무고한 희생자를 정당화하는 방식


"오늘날 미디어는 새로운 테러전쟁의 급진적인 비대칭 전략이 효과를 누리는 것을 보장해준다." "미디어를 통해 연출되는 상징적 대결은 그 자체가 이미 늘 싸움의 일부이다. 이 싸움의 한 편에는 죽음을 각오한 확신에 찬 용사들의 작은 집단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지배적이지만 탈영웅적인 심성을 지닌 국가들과 사회들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테러리즘은 무기를 이용한 싸움이 이미지를 이용한 진짜 싸움을 위한 구동륜의 역할을 하는 전쟁 수행의 한 가지 형태를 보여준다. 전쟁의 보도가 전쟁 수행의 수단으로 변한 것이 전쟁의 비대칭화 과정에서 아마도 가장 큰 진전이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의 군사적 비대칭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물론 그것은 대칭성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새로운 태러전쟁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듯이, 새로운 비대칭성을 목적의식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231-3)


"테러의 '메시지'가 아무런 설명과 요구 없이 공격하는 이미지만을 통해 퍼져나갈 때 그 메시지의 내용은 불분명해진다. 메시지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그 메시지가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테러집단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게 남게 된다. 이 모호함이 오늘날의 국제적 테러집단에게는 결코 전술적 결함이 아니다. 메시지의 모호함이 과거의 사회혁명적 또는 종족적·민족적 테러집단에게는 결함이었겠지만, 오늘날의 국제적 테러집단에게는 전략의 핵심 요소이다. 공격받는 자에게 수수께끼가 주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공격하는 자가 정치적으로 만족하게 될지, 공격받는 자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책임성명도 발표하지 않고 오로지 이미지만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테러 공격은 대립되는 이익들과 목표들 간의 어떤 타협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것을 요구하는 커뮤니케이션과 분명히 다른 것이다."(236-7)


"국제 테러리즘은 더 이상 폭력을 일정한 메시지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세계의 공중에게 접근할 유일한 수단이나 선호하는 수단으로서 이용하지 않는다. 요란하게 비행기를 납치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와 요구사항들을 공중에게 알리기를 원했던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의 다양한 팔레스타인 집단들과 달리, 새로운 형태의 테러 폭력은 직접적으로 서구 세계와 그 세계에 결합해 있는 국가들의 경제적 순환구조를 겨냥한다. 이때 이 폭력은 폭력의 물리적 효과보다 심리적 효과를 노린다. 그래서 이 폭력이 테러 폭력인 것이다. 이 폭력이 파괴적인 이유는 그것이 한 나라의 기반시설과 공장, 쇼핑센터, 통제 시스템과 운송 시스템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 아니라, 이 폭력이 공포를 퍼뜨리고 그럼으로써 현대 사회의 경제가 지닌 매우 민감한 심리 조직을 부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사회들의 가장 큰 약점이 있다. 그리고 이 약점은 비교적 공격하기가 쉽다."(240-1)


6 군사적 개입과 서구의 딜레마


"20세기에 제기된 민주평화론, 즉 좁은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는 관찰의 일반화는 중요하지도 유익하지도 않다." "민주주의 사회들의 평화지향성을 다소 과잉결정한 세 가지 경향 중 첫 번째는 산업화하면서 처음에는 조금씩, 그러나 점차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전쟁 비용이고, 두 번째는 앞의 경향과 병행해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명성과 명예 중심에서 목적합리성 중심으로 사회적 지향이 바뀐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경향은 이런 목적합리성이 경제적인 결정뿐만 아니라 정치적 결정도 좌우할 수 있게끔 해주는 제도적 조건의 발전이다. 민주평화론은 이 중 세번째 경향에 집중하여 한 사회가 전쟁을 준비할지 평화를 사랑할지를 '전적으로 결정하는' 요소로서 민주적 질서의 기능적 메커니즘을 조사한다." "그러나 전쟁이 비싸지는 것은 다른 두 요소들이 작용하고 전쟁을 수행할 의지와 능력이 감소하게 되는 데에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243-4)


"민주적 평화의 법칙을 오히려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칭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목표지향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고 선거를 통해 정치적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명약관화해진 대칭적 전쟁의 엄청난 손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대칭적 전쟁에는 민주주의 국가들도, 자국의 손실과 경제적 부담이 과중하지 않다는 전제하에, 여전히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프랑스, 영국, 미국은 1945년 이후에도 저항운동이나 독재 정부를 상대로 한 일련의 비대칭 전쟁들을 수행해왔다. 이때 전쟁 상대가 민주주의 국가인지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분쟁 상황이 비대칭적인지 여부였을 것이다. 그럴 때에 사람들은 전쟁이 자국의 큰 손실 없이 신속하게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예상하기 때문이다."(257-8)


"내전의 동학을 눈앞에 떠올리면, 특히 내전의 세 가지 중요한 특징, 곧 미래의 가치를 박탈하는 것을 포함하는 시간의 손실, 평화적인 능력의 주변화와 동시에 일어나는 폭력적 능력의 특권화, 그리고 내전과 연계된 이해관계의 형성을 눈앞에 떠올리면, 왜 내전이 오로지 매우 드물게만 분쟁 당사자들이 직접 협상해 실행에 옮기는 정치적 타협을 통해 종결되는지가 분명해진다." "세계경제와 결합하고, 이 세계경제로부터 전쟁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함으로써 내전은 장기적으로 이웃 나라의 평화경제는 물론, 심지어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이 평화경제도 위협한다. 인권에 대한 고려보다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다른 국가들, 동맹체계, 또는 국제연합은 무력 개입의 힘을 빌려 전쟁을 끝낼 결심을 하게 된다. 이런 개입들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인권정책이나 세계시민권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정치경제적 계산의 명령을 따른다."(264-5)


"새로운 전쟁이 위협적으로 발전해가는 것, 즉 내전과 내전경제가 다른 나라들의 평화경제에 위협을 가하는 것을 초반에 차단하기 위해 위험지역과 전쟁지역에 조기에 과감하게 개입해야 하는, 세 가지 근거들의 이면에는 군사적 비용과 리스크를 떠맡는 것에 유난히 예민한 서구 사회들의 정서가 있다. 이 서구 사회들은 이제 막 발발한 내전으로 인해 (난민 행렬이 몰려오고 비공식경제와 범죄경제가 증가하며, '인종 청소'와 같은 특정 전략을 다른 국가들이 모방하는 등의 형태로) 자신들에게 돌아올 정치적·경제적 부담이 군사적 개입을 할 때에 발생할 비용과 리스크보다 적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서 일단 기다리고 관망하는 정책을 취한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국민 대다수가 지니고 있는 이 탈영웅적 심성이 인도적 군사 개입의 정책이 18세기와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반의 역사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것과 같은 제국적 팽창으로 바뀌지 않게 보장해준다."(271)


# 세 가지 근거

1. 내전은 점점 국경을 가로질러 확대되고 더 많은 나라들을 분쟁 속으로 끌어들여, 평화를 위한 정치 협상을 어렵게 만든다.

2. 내전이 국제 범죄조직과 연결되면서, 한 나라의 내전경제가 이웃 나라들의 평화경제에 침투하고, 국가조직을 붕괴시킨다.

3. 권력지향적 정치인들이 다수의 인구집단을 부추겨 발생하는 '인종 청소' 같은 정책은 지역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OECD 국가들의 관점에서는 어쩌면 이런 군사적 개입들이 정치적 안정의 조건을 수출하는 것으로, 또 국가성의 기본조건을 갖추게 하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정치적 안정은 분명히 공동선이다. 그것은 내전에 의해 위협받거나 이미 파괴된 사회들에 직접적으로 유익하며, 또한 중장기적으로 다른 모든 국가들에도 유익하다. 그러나 중대한 인권 침해가 외부의 개입을 통해 처벌되는 지구적 인권정치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하버마스와 벡의 생각은 그런 정치에 필요한 비용의 분담에 관한 아무런 합의가 없기 때문에도 이미 비현실적이다."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결정적으로 너무 저렴하다. 특히 그 일이 국제 테러리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면 더욱 그렇다. 그 반면에 개입은 정치적 안정과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도 수출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비용이 많이 들고, 그 개입이 성공적이기 위해 오래 지속되어야 할수록 비용이 더욱 많이 든다."(273-4)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군사적 개입과 결합된 재정적 부담보다 군사적 개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리스크이다. 이런 군사적 개입 작전에 참여하는 각국의 정부는 커다란 손실이 발생하게 될 것과, 사망자와 부상자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면 국민들이 일시적으로 보였던 지지가 사라질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군사적 개입은, 그에 대한 커다란 저항이 예상될 때에, 먼저 전투기의 투입과 해상에서 발사하는 순항미사일의 사용에 국한된다." "오랫동안 전투가 대량학살로 변하는 것을 고전적 군인정신이 가장 확실하게 막아왔다면, 이제 그것은 기술적 정확성과 사법적 통제의 조합으로 대체되었다. 대중매체들을 통해 가시화하는 이 불평등은 개입을 종종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만들고, 그 결과로서 국민들이 정치적 지지를 철회하고 다른 편을 들게 된다."(276-7)


"첨단무기에 기반을 둔 개입 전략에 대한 대안은 용병의 투입을 늘림으로써 군사적 피해가 정치적으로 덜 중요해지게 하는 것이다. 용병은 개입국의 정치적 문제들을 적어도 단기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다." "용병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또한 전쟁은 지속적으로 비싸지는 경로를 벗어나게 된다. 정치적 리스크뿐만 아니라 부대의 훈련과 투입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도 줄어든다. 그 밖에도 용병의 모집은 탈영웅적 사회의 자유시장 정신에 가장 잘 맞는다. 이런 발전이 확산되면 당연히 정치적으로 심각한 결과가 생겨날 수 있다. 무장 세력이 오로지 사업관계에만 묶여서 국가의 정치적 통제를 거의 받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민영화는 전쟁 지역과 재난 지역에서만 아니라, 부와 권력의 중심부에서도 촉진되는 셈이다. 이렇게 민영화한 전쟁은 매우 빠르게 자립하여 시장법칙을 따라 파국에 이르는 고유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2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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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취약성 - 왜 백인은 인종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그토록 어려워하는가
로빈 디앤젤로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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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는 여기서 저기로 갈 수 없다


"(인종 스트레스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우리[백인 집단]는 인종주의 체제와 우리를 연관짓는 모든 시도를 마음을 어지럽히는 부당한 도덕적 모욕으로 여긴다. 아무리 적은 인종 스트레스라도 우리는 견디지 못한다. 이 사회에서 백인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암시하기만 해도 대개 일군의 방어적 반응을 보인다. 그런 반응에는 분노, 두려움, 죄책감 같은 감정과 논쟁하기, 침묵하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같은 행동이 포함된다. 우리 백인은 이런 반응으로 도전을 물리쳐 균형을 회복하고, 인종적 편안함을 되찾고, 인종 위계에서의 우위를 유지한다. 나는 이 과정을 '백인의 취약성'으로 개념화한다. 백인의 취약성을 촉발하는 것은 불편함과 불안이지만, 이것을 낳는 것은 백인이 우월하고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의식이다. 백인의 취약성은 그 자체로는 약점이 아니다. 실은 인종을 통제하고 백인의 이점을 보호하는 강력한 수단이다."(24-5)


제1장 백인에게 인종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부딪히는 난제들


"백인을 상대로 인종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혹시 우리 모두가 같은 대본의 대사를 외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뻔한 반응을 접하곤 한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같은 대본을 들고 있는 셈인데, 우리가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백인 대본의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객관적이고도 독특한 존재로 본다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보편적이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은 특수한 문화적 렌즈를 통해 지각과 경험을 이해한다." "우리는 서구 문화를 규정하는 두 가지 핵심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에 (특정한) 문화적 준거틀을 탐구하기가 유독 어려울 수 있다. 바로 개인주의와 객관성이다. 간단히 말해 개인주의는 우리가 심지어 우리의 사회 집단 내에서조차 저마다 독특하고 서로 다르다고 본다. 객관성은 우리가 모든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 때문에 백인은 자신들의 집단적 경험을 탐구하는 데 유독 어려움을 겪는다."(35)


제2장 인종주의와 백인 우월주의


"인종은 인종 간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백인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화하고 있는 사회적 관념이다. '백인'이라는 용어는 1600년대 말에 식민지법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미국은 1790년경 인구조사에서 사람들에게 각자의 인종을 말할 것을 요구했고, 1825년경 이른바 혈통의 등급에 따라 누구를 인디언으로 분류할지 결정했다. 1800년대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민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옴에 따라 미국에서 백인 인종 개념은 더욱 공고해졌다. 1865년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백인성은 대단히 중요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합법화된 인종주의적 배제와 폭력이 새로운 형태로 게속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시민권─그리고 시민권에서 비롯되는 다른 권리들─을 가지려는 사람은 법적으로 백인으로 분류되어야 했다. 비백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법원에 자신을 다시 분류해달라고 청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법원은 어떤 사람이 백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었다."(48-9)


"(누구나 편견을 갖고 있고 누구나 차별을 하지만) 어느 인종의 집단적 편견이 법적 권한과 제도적 통제력의 지원을 받을 때, 그것은 인종주의로, 개인 행위자들의 의도나 자아상과 무관하게 기능하는 광범한 체제로 변화한다." "미국 여성의 참정권 투쟁은 제도적 권력이 어떻게 편견과 차별을 억압 구조로 바꾸는지를 잘 보여준다. 누구나 편견을 품고 차별을 하지만, 억압 구조는 개개인을 훌쩍 넘어선다. 미국 여성은 개인적 관계에서는 남성을 상대로 편견을 갖고 차별을 할 수 있었지만, 여성 집단으로서 남성의 시민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미국 남성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여성의 시민권을 부인할 수 있었고 실제로 부인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모든 제도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이 투표권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남성이 그 권리를 여성에게 부여하는 길뿐이었다. 여성이 스스로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수는 없었다."(54)


"백인 개개인은 인종주의에 '반대'할지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이 백인 집단에게 특권을 주는 체제로부터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웰먼은 인종주의를 〈인종에 근거하는 이점의 체제〉라고 간명하게 요약한다. 이런 이점은 '백인 특권'이라 불리는데, 이 사회학 개념은 같은 환경(정부, 공동체, 직장, 학교 등)에서 백인은 당연시하지만 유색인은 백인과 비슷하게 누릴 수 없는 이점을 가리킨다. 오해를 피하고자 말하자면, 인종주의가 백인에게 특혜를 준다는 말은 백인 개개인이 장벽과 싸우지 않거나 장벽에 부딪히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인종주의의 특정한 장벽에 부딪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종주의는 그 정의상 역사적으로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제도적 권력의 체제다. 인종주의는 유동적이지 않으며, 소수의 유색인 개인들이 가까스로 두각을 나타낸다고 해서 방향을 바꾸지도 않는다."(59-60)


제3장 시민권 운동 이후의 인종주의


"이른바 색맹 인종주의는 문화적 변화에 적응하는 인종주의의 능력을 보여주는 예다. 이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우리가 인종을 보지 않는 척한다면 인종주의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생각의 근거는 1965년 마틴 루서 킹 박사가 일자리와 자유를 위해 워싱턴으로 행진하던 중에 행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에 포함된 한 문장이다." "마틴 루서 킹 연설의 한 문장─언젠가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문장─ 이 특히 백인 대중의 이목을 끌었는데, 킹의 표현이 인종 갈등 문제에 간단하고도 즉각적인 해법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인종을 보지 않는 척하는 방법으로 인종주의를 끝내는 해법이었다. 그리하여 '색맹'이 인종주의의 해결책으로 홍보되었고, 백인은 자신이 인종을 보지 않는다고, 설령 보더라도 자신에게 인종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우기기에 이르렀다." "달리 말하면, 인종을 인정하는 사람이 곧 인종주의자라는 것이다."(85-7)


"회피적 인종주의aversive racism는 스스로를 교양 있는 진보주의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드러낼 가능성이 더 높은 인종주의의 한 형태다. 이것은 의식의 표면 아래에 존재하는데, 인종 간 평등과 정의라는 의식 수준의 신념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할 만한 방식으로(〈나는 유색인 친구가 많다〉, 〈나는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인종주의를 자행한다는 점에서, 회피적 인종주의는 미묘하지만 교활한 형태의 인종주의다." "가령, 한 친구는 자기가 아는 (백인) 부부가 얼마 전에 뉴올리언스로 이사했는데 겨우 2만 5천 달러에 집을 샀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물론 그들은 총도 사야 했고, 조앤은 집 밖에 나가는 걸 두려워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부부가 흑인 동네에서 집을 샀다는 뜻임을 대번에 알아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경멸감을 대놓고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무서운 흑인 공간이라는 익숙한 이미지를 강화하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경계선을 그었다."(90-1)


"어린이와 인종에 관한 많은 연구는 백인 어린이가 일찍이 취학 전부터 백인 우월의식을 키운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회가 백인이 유색인보다 낫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기 때문이다. 다수의 백인 청소년이 인종주의는 과거의 일이며 자신들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여기도록 배웠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연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밀레니얼 세대는 인종 색맹이라는 이상에 더 헌신하면서 인종 문제를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문제로 남겨두고, 인종 간 불평등을 줄이는 조치에 반대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백인 밀레니얼 세대의 41퍼센트가 정부가 소수집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고 생각하고, 48퍼센트가 백인에 대한 차별이 유색인에 대한 차별만큼이나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세대의 다수는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우리가 탈인종 시대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96-7)


제4장 인종은 백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사회에서 정상적이거나 중립적이거나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사실상 모든 상황 또는 맥락에서 나는 인종적 소속감을 느낀다. 이 소속감은 나와 늘 함깨해온 뿌리 깊은 느낌이다. 소속감은 나의 의식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나의 일상적인 생각과 관심사, 삶의 지향과 기대지평에 영향을 준다. 내게 소속 경험은 구태여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이상, 인종주의는 나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책임을 면할 자유 덕택에 유색인은 하루 종일 누리지 못하는 인종적 안도감과 정서적·지적 여유를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다. 유색인에게 이런 혜택이 없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소수이고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오히려 백인이 수적으로 소수다). 유색인이 백인 우월주의 문화─유색인이 설령 보이더라도 열등한 존재로 보이는 문화─안에서 인종화되기 때문이다."(106-9)


"백인 연대란 백인의 이점을 보호하는 한편 다른 백인이 문제 있는 인종적 언행을 할 때 그것을 추궁해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 말자는 무언의 합의를 말한다. 교육 연구자 크리스턴 슬리터는 이 연대를 백인의 〈인종적 유대〉로 묘사한다. 크리스턴에 따르면 백인은 자기들끼리 교류하면서 〈유색인 집단들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정당화하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모종의 경계선을 긋는, 인종 관련 쟁점들에 대한 공동 입장〉을 확인한다. 백인 연대는 백인 위치의 이점을 드러내는 모든 것에 대한 침묵과 백인 우월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인종적 단결을 유지하겠다는 암묵적 합의를 둘 다 필요로 한다. 백인 연대를 깨는 것은 곧 대열을 깨는 것이다." "(인종주의적 농담에 대한) 나의 침묵은 인종 위계와 그 속에서의 나의 위치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제지받지 않는 모든 인종주의적 농담은 우리 문화 안에서 인종주의를 더욱 퍼뜨린다."(113-5)


"백인의 인종 의식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우리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유리하다는 것을 백인 스스로 인정하도록 이끄는 것마저 힘겨운 과제다." "예컨대 나는 백인이 〈나는 그저 피부색 때문에 특권을 가지고 있다〉라고 오만하게 말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런 발언은 특권을 마치 요행인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관여하거나 공모하지 않았음에도 그저 우연찮게 얻은 무언가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제우스 레오나르도는 백인의 특권을 무지의 산물로 보는 이 견해에 도전하면서 〈백인의 인종 헤게모니로 일상생활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지배의 과정으로, 또는 백인 주체가 유색인에게 강제하는 법과 결정, 정책으로 그 헤게모니를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특권을 백인이 그저 건네받은 무언가로 보는 것은 능동적·수동적으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유지해야만 하는 인종주의의 체제적 차원을 가리는 것이다."(123-4)


제5장 좋은/나쁜 이분법


"시민권 운동 이후로는 선량하고 도덕적인 사람인 것과 인종주의에 가담하는 것이 양립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좋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인종주의에 가담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인종주의자라면 나쁜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인종주의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이 변화가 실제로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 패러다임 안에서는 나에게 인종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이 곧 심한 도덕적 타격─일종의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 타격을 받을 경우 나는 나의 인격을 변호해야 하고, 나의 행위를 반성하는 일보다 인종주의자 혐의를 벗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써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좋은/나쁜 이분법은 백인이 인종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역학을 논의하지 못하거나 우리 안에서 발견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인종주의에 계속 가담할 수밖에 없다."(133-5)


"인종주의와 관련해 사실상 모든 백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방어적 태도의 근간에는 이처럼 인종주의를 불친절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의도적인 개별 행위로 한정하는, 지나치게 단순한 견해가 있다." "좋은/나쁜 이분법은 분명 인종주의의 구조적 성격을 가리고 그것을 직시하거나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이분법적 세계관이 우리의 행위에 끼치는 영향도 문제다. 백인으로서 내가 인종주의를 이분법으로 개념화한 다음 나 자신을 '비인종주의자' 편에 놓는다면, 어떤 행위를 추가로 요구받겠는가?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행위도 요구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종주의를 나의 문제로 여기지 않을 것이고, 인종주의를 우려하지 않을 것이며, 더 해야 할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세계관에 서 있을 경우 나는 인종주의에 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역량을 키우거나 나의 위치를 활용해 인종 불평등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136-7)


"백인에게 인종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는 같은 주장들─좋은/나쁜 이분법에 뿌리박은─을 듣고 또 듣곤 한다. 나는 이 주장들을 크게 두 범주로 나누는데, 둘 다 백인을 좋은 사람, 따라서 인종주의자가 아닌 사람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범주는 색맹을 주장한다. 〈나는 피부색을 보지 않는다[그리고/또는 인종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따라서 내게는 인종주의가 없다.〉 두 번째 범주는 다양성을 중시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유색인을 알고 있다[그리고/또는 유색인과 가깝게 지내왔다. 그리고/또는 유색인에게 대체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게는 인종주의가 없다.〉 두 범주 모두 근본적으로 좋은/나쁜 이분법에 의존한다. 내가 이런 주장들을 두 범주로 나누긴 하지만, 이것들은 맞바꿔서 사용될 수 있고 흔히 그렇게 사용된다. 꼭 타당한 주장일 필요는 없다. 그저 발화자를 좋은 사람─인종주의가 없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논의를 끝내기만 하면 된다."(142)


제6장 반反흑인성


"우리는 백인이 우월하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유포하는 문화 안에서 살고 있다. 이와 동시에 흑인이 열등하다는 메시지도 끊임없이 유포된다. 그러나 반흑인성은 우리 모두가 흡수하는 부정적인 고정관념 그 이상이다. 반흑인성은 우리의 백인 정체성의 근간을 이룬다. 백인성은 언제나 흑인성에 기반해왔다. 아프리카인 노예화를 정당화할 필요성이 생기기 전까지는 인종이나 백인종 개념이 없었다. 열등한 흑인종을 따로 만들어내는 것은 동시에 '우월한' 백인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백인종 개념은 흑인종 개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백인은 흑인을 필요로 한다. 흑인성은 백인 정체서을 만들어내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지금 백인의 집단의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백인 개개인은 이런 감정을 뚜렷하게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조금만 도전을 받아도 이런 감정이 얼마나 빠르게 올라오는지를 느끼면서 자주 놀라곤 한다."(164-5)


"우리는 특히 '건방진' 흑인, 감히 자기 위치에서 벗어나 우리를 동등한 존재로 보는 흑인을 증오한다. 대대로 전해지는 메시지는 흑인은 태생적으로 동등하게 대우받을 자격이 없다는 백인의 믿음을 강화한다." "캐럴 앤더슨은 저서 《백인의 분노 White Rage》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백인의 분노를 촉발하는 방아쇠는 다름 아닌 흑인의 전진이다. 문제는 단순히 흑인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야망, 추진력, 목표, 열망, 그리고 완전하고 평등한 시민권을 요구하는 흑인성이다. 복종을 받아들이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흑인성이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진실은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흑인 남성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인 전진이었고, 따라서 궁극적인 모욕이었다. 놀랄 것 없는 결과일 테지만, 뒤이어 투표권이 심각하게 축소되었고, 연방정부가 일시 정지되었으며, 다른 선출직 관료들이 놀랍게도 공공연하게, 공식적으로 한 차례 이상 대통령직에 무례를 범했다.〉"(171-2)


제7장 백인의 인종적 방아쇠


"대부분의 백인은 인종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모른다. 그들에게는 대학에서 단 한 차례 강연을 듣거나 직장에서 요구하는 '문화적 역량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의 인종 현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도전을 마주하는 유일한 경험일 것이다." "혹시라도 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인종주의와 백인의 특권을 직접 거론할 경우에는 대개 분노, 퇴장, 무감정, 죄책감, 논박, 인지부조화 같은 반응(이 모든 반응은 진행자가 인종주의를 직접 거론하지 못하도록 막는 압력을 강화한다)에 직면하게 된다. 이른바 진보적인 백인은 분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이에 대한 수업을 이미 들었다〉거나 〈이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빠져나갈 것이다. 이 모든 반응은 백인의 취약성─인종적 격리가 지속되어 사회심리적 체력이 약해진 결과─을 구성한다."(179-80)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사회화의 결과로서 행위자들의 반복적인 실천, 즉 그들이 서로 간에, 그리고 나머지 사회환경과 주고받는 반복적인 상호작용이라고 말한다. 아비투스는 자신의 지위에 대한 내면화된 의식뿐 아니라 그 지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까지 포함한다." "백인의 취약성이란 아비투스에 최소한의 인종 스트레스만 받아도 참지 못하고 여러 방어적 움직임을 보이는 상태다. 이런 움직임으로는 분노와 두려움, 죄책감 같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기, 논박하기, 침묵하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등이 있다." "백인이 익숙하거나 당연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중단될 때 백인의 취약성은 균형을 회복하고 도전으로 인해 '상실한' 자본을 되찾아온다. 이 자본은 자아상과 통제력, 백인 연대를 포함한다. 백인이 불균형에 반응하는 방식으로는 균형을 깨뜨린 원인에 분노하기, 죄책감이나 '상한 감정' 같은 감정적 무력화를 차단하기 그리고/또는 드러내고 탐닉하기, 이 반응들 조합하기 등이 있다."(181-7)


제8장 그 결과: 백인의 취약성


"백인이 인종과 관련해 도전받을 때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은 자기방어 담론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 담론을 통해 백인은 스스로를 부당한 대우와 혹평, 비난, 공격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이는 발화자를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으로 설정하는 동시에 발화자의 사회적 위치가 갖는 진짜 권력을 가리는 기능을 한다. 또한 사회적 권력을 덜 가진 사람들의 불편함을 비난하고 그런 불편함을 위험한 것으로 그릇되게 묘사한다." "백인은 스스로를 반인종주의적 노력의 희생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자신은 백인성의 수혜자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백인은 자신이야말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주장함으로써─백인의 위치가 도전받는다는 이유로, 또는 유색인의 시각과 경험에 귀 기울일 것을 백인에게 기대한다는 이유로─이런 대우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자원(시간과 관심 같은)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193)


"분명히 말해두겠다. 인종 위치에 대한 도전을 견디는 백인의 역량이 부족하긴 하지만─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취약하긴 하지만─우리의 반응의 영향은 전혀 취약하지 않다. 오히려 역사적·제도적 권력과 통제력을 활용하는 까닭에 매우 강력한다. 우리는 도전받는 순간에 우리 위치를 보호하기에 가장 유용한 방식으로 이 권력과 통제력을 행사한다." "또 분명히 말해두건대 '백인의 취약성'은 아주 구체적인 백인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고안한 용어다. 백인의 취약성은 단순히 방어적 태도를 보이거나 우는소리를 하는 정도를 훌쩍 넘어선다. 이것은 '지배의 사회학'으로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백인의 취약성은 백인의 우월의식과 이 우월의식을 보호하고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법을 내면화하는 사회화 과정의 결과다. 이 용어는 불만을 토로하는 집단이나 그 밖에 다른 까다로운 집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예컨대 '학생의 취약성'은 성립하지 않는다)."(197-8)


제9장 행동으로 나타나는 백인의 취약성


# 백인의 취약성의 기능

1. 백인 연대를 유지한다.

2. 자기반성을 차단한다.

3. 인종주의의 현실을 대수롭지 않아 보이게 한다.

4. 토론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다.

5. 백인을 피해자로 설정한다.

6. 대화를 장악한다.

7. 편협한 세계관을 보호한다.

8. 인종을 논외로 한다.

9. 백인 특권을 보호한다.

10.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에 초점을 맞춘다.

11. 백인을 위해 더 많은 자원을 모은다.


제10장 백인의 취약성과 관여의 규칙


"서구 사회에서 자라는 백인은 백인 우월주의적 세계관에 길들여진다. 그 세계관이 우리 사회와 제도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부모가 당신에게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말했든 말든, 당신이 다닌 교외 백인 학교의 복도에 다양성의 가치를 칭송하는 포스터가 걸려 있었든 말든, 당신이 외국 여행을 했든 말든, 당신의 직장이나 가정에 유색인이 있든 없든, 어디서나 우리를 사회화하는 백인 우월주의의 힘을 피할 수는 없다. 의도나 의식, 동의와 거의 또는 전혀 무관한 메시지들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유포된다. 이 점을 이해하고서 대화를 시작하면 백인 우월주의에서 벗어나 우리의 인종주의가 드러나는지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우리에게 인종주의적 패턴이 없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 애쓰는 일보다 우리의 인종주의적 패턴을 멈추는 일을 훨씬 더 중시해야 한다. 우리는 인종주의적 패턴을 가지고 있고, 유색인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224-5)


제11장 백인 여성의 눈물


"인종 간 교류에서 백인 여성의 눈물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몇 가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백인 여성의 고통 때문에 흑인 남성이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오랜 역사적 배경이 있으며, 우리 백인 여성은 이 역사를 동반한다. 우리의 눈물은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이 역사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백인이 이 역사에 무지하거나 둔감하다는 사실은 백인의 중심성과 개인주의, 인종적 겸손의 부족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다. 인종 간 교류에서 선의를 가진 백인 여성의 눈물은 겉보기에 무해하기 때문에 백인의 취약성의 더 유해한 형태들 중 하나다. 이런 교류에서 우리가 우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리의 인종주의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는 이유로 울 수도 있다. 무의식적인 백인 인종주의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피드백을 도덕적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기분 나빠한다."(229-30)


"백인이 죄책감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일종의 방종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백인 여성이 인종주의의 어떤 측면 때문에 울음을 터뜨리고 나면 모두의 관심이 즉시 그녀에게로 쏠린다. 인종주의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워크숍 참석자들 전원의 시간과 에너지, 관심이 그녀에게로 향한다. 그녀가 관심을 받는 동안 유색인들은 또다시 관심에서 밀려나고 그리고/또는 비난을 받는다." "반인종주의 전략가 겸 워크숍 진행자인 레이건 프라이스는 비판적 인종 학자 킴벌리 크렌쇼의 저술에 쓰인 비유를 이렇게 바꾸어 말한다. 〈응급처치 요원들이 교통사고 현장에서 보행자를 친 운전자를 위로하러 달려가고 그동안 보행자는 피를 흘리며 거리에 누워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이렇듯 백인은 흔하지만 매우 전복적인 방식으로 인종주의의 관건을 백인의 고뇌, 백인의 고통, 백인의 피해자화化 문제로 바꾸어 버린다."(232-4)


제12장 우리는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백인이 내게 인종주의와 백인의 취약성과 관련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을 때, 나는 먼저 이렇게 되묻는다. 〈어떻게 당신은 교양 있는 전문직 성인이면서도 인종주의와 관련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를 수 있죠?〉 이것은 솔직한 질문이다. 주변 어디에나 정보가 있는 마당에 우리는 대체 어떻게 모르는 걸까? 유색인이 그렇게 오랜 세월 우리에게 말했는데도 말이다." "나의 마지막 조언은 이렇다. 〈당신 스스로 주도해서 찾으세요.〉 백인성의 길들임─인종주의에 무관심하게 만들고 인종주의를 저지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게 하는 길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인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는 훌륭한 조언이 너무나 많다. 유색인이 쓴 조언서도 있고 백인이 쓴 조언서도 있다. 그런 조언을 찾아라. 백인성의 무관심과 결별하고 당신이 노력을 기울일 정도로 신경을 쓴다는 것을 입증하라."(246-7)


"차라리 나는 '덜 하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덜 하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인종적으로 덜 억압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덜 하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유색인의 인종 현실에 열려 있고 관심을 보이고 공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다른 인종과 진실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다양하게 맺을 수 있고, 내게 인종주의적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인종주의적 패턴에 방어적 태도를 보이기보다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더 분명하게 확인하는 데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덜 하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백인의 침묵과 연대를 깨고, 인종주의로 인한 유색인의 고통보다 백인의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행태를 멈추고, 죄책감을 넘어 행동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덜 억압적인 패턴은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유색인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해방과 정의감을 위해 백인 정체성을 덜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256-7)


"어느 유색인으로부터 내가 생각하기에 부당한 피드백을 받을 때, 나는 다른 유색인에게 가서 내가 좋은 사람임을 확인받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 행동은 내가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는 데 동의하도록 그 유색인을 압박하여 다른 유색인이 아닌 나의 편에 서게 하는 것이다." "형평성 상담가 데번 알렉산더는 유색인을 압박하는 가장 유해한 형태라고 할 만한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바로 인종주의를 부인하고 방어하는 백인의 태도에 순응하고 백인의 취약성과 결탁할 수 있도록 유색인에게 자신의 인종 경험을 축소하라고 압박하는 형태다. 달리 말하면, 우리 백인이 유색인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그 고통을 우리와 공유하지 말라고 압박하는 형태다. 이 순응 요구에 따라야 하는 유색인은 매우 부당한 비진실성과 침묵을 견뎌야 한다." "결국 백인의 인종주의에 도전하지 않는 것은 곧 인종 질서와 그 질서 내에서 백인이 차지하는 위치를 지탱하는 것이다."(261-2)


※ '인종'을 '젠더'로 변환해서 현재 한국사회를 고찰하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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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젠더와 사회이동 - 한국사회 계층화의 성별 차이는 줄어들었는가? 한국학 총서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 4
신광영.김창환 지음 / 박영스토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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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 젠더와 사회이동: 문제제기


"학벌이 높은 청년들이 고소득 직업을 갖는 현실에서 능력(실력)이 있는 학생들이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능력주의(meritocracy) 이념이 팽배해 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 수준이 달라지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왔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리차드 아네손은 개인이 책임질 수 없는 요인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이익이나 불이익을 결과의 불평등에서 제거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보고, 이를 〈운 상쇄 평등주의(luck egalitarianism)〉라고 불렀다. 개인들이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의 결과에 따른 불평등이 아니라 자신들과 아무런 관게가 없는 요소에 의해서 만들어진 불평등은 부당한 불평등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학생들 사이의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부모의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유아기나 아동기 교육기회의 불평등에 따른 교육 격차는 아동이 책임질 수 없는 불평등이다."(11-2)


"사회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가장 약화된 곳은 교육의 영역이었다. 교육이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인 영역으로 인식되고, 자녀수가 줄어들면서, 교육투자와 교육영역에서 남녀 차별은 크게 약화되었다. 교육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서 성과가 결정되는 영역이다. 그 결과,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들의 교육 기회가 빠르게 확대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젊은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남성들의 교욱 수준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젠더 역전 현상'을 넘어서 '소년 위기(boy crisis)'라는 담론이 등장하였다. 전통적으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취학률과 학업성취에서 평균적으로 높았지만, 점차 이러한 상황이 역전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 하에서 소년들이 정신적으로 사회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병리적인 상황이 나타났다. 그 결과 미국에서 남학생들의 자살이 여학생들보다 무려 6배 정도 더 많고, 비행과 범죄를 저지르는 남학생들이 증가하였다."(19-20)


"그렇다면,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와 여성의 대학 진학률 증가 속에서 교육을 매개로 한 사회이동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 동일하게 나타는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족의 소득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인 남성들에게 교육은 직업 활동과 직접 연계된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남편이 경제력을 책임지고, 여성은 육아와 가사를 책임지는 남성가장가구 모형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90년대 이전까지 교육은 여성들에게 직업 활동보다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거나 높을 수 있는 배우자와 결혼을 하는 데 유리한 조건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비슷한 교육수준의 남녀가 결혼을 하는 동질혼(homogamy)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교육은 결혼을 매개로 한 사회이동의 한 요소로 작용해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고등교육은 배우자의 최고 교육수준에 영향을 미치지만, 역으로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정도는 매우 적었다."(29-33)


"대학교육 확대로 인하여, 대학 졸업자의 프리미엄은 크게 약화되었지만, 젠더에 따라서 그 효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아버지의 학력은 대졸 남성의 관리직과 전문직 진출에 별다른 차이를 만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가족배경이 아직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졸 여성들 가운데 아버지 학력이 높을수록, 관리직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에게 교육은 결혼과 관련하여 또 다른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제한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의 고등교육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졸 여성이 관리직이나 사무직에 종사하는 배우자를 맞을 가능성은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대졸자수와 대졸자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대졸자 프리미엄이 약화된 결과 나타나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34-5)


2 젠더 교육격차: 조용한 혁명의 실체


"(1980년대 들어서 여성들의 고등교육 진출이 급격히 늘어났지만) 사회적으로 고졸자들에게 제한적으로 허용된 대학 진학의 기회는 계급뿐만 아니라 젠더에 따라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당연히 기대되는 것처럼, 최근에 와서 큰 변화를 보였지만, 2008년까지도 남자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여고 졸업생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반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낮았던 1970년 남자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도 10.5%에 불과하였다. 그에 비해서,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더 낮아서 3.6%에 불과하였다. 1980년에 이르러서도 그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확대되어 남자 고등학생 대학 진학률은 16.8%이었던 반면, 여학생 대학 진학률은 여전이 5.6%로 낮은 수준이었다. 전반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시절에도,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남학생보다 훨씬 낮았다."(43-4)


"2000년대에 들어서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서는 젠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의 교육 영역에서 이루어진 젠더 격차의 해소는 소리 없이 이루어진 '조용한 혁명'이었다. 사회 전 영역 중에서 젠더 격차가 가장 빨리 사라진 영역이 바로 교육 영역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서구에서 여성의 고등학교 진학률이 남성을 능가하기 시작하였다. 교육 기회가 확장되면서, 여성들이 새롭게 확장되는 교육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던 것이다. 1970년대 서구의 교육 평등은 페미니즘의 대두라는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한국에서는 교육기회의 평등을 내세운 여성들의 투쟁의 결과라기보다 저출산으로 인한 자녀수 감소에 따른 인구학적인 변화의 산물이다. 평균적으로 자녀수가 줄어들면서, 딸만 있는 가정이 크게 늘었다. 그러므로 교육에 있어서도 딸과 아들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저출산에 따른 변화가 나타났다."(47-8)


"그러나 지난 25년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연령대인 35-44세의 남성과 여성의 학력별 경제활동 참가율 추이를 살펴보면, 학력을 불문하고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여성의 경우보다 훨씬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대졸 남성들이 가장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여준 반면, 대조적으로 대졸 여성들은 가장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여주었다. 대졸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 25년 간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반면, 고졸 여성의 경우는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경제활동 참가율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졸 여성의 경우, 여성 가운데 가장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여주었다. 대체로 소득이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구소득에 기여하기 위한 경제활동 참여로 중졸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게 나타났다." "여기에는 여성에게 학력이 취업 이외에 다른 선택지인 결혼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48-9)


"가부장제 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배제를 내포한 비공식적인 사회적 기제를 통해서 또한 공식적으로 제도화된 규칙을 통해서 남성과 여성에게 각기 다른 방식의 태도와 행동을 요구한다. 대학 진학에서 나타나는 전공 선택의 성별 차이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을 마친 이후에 이루어지는 취업이나 진학 등의 선택에서도 지속적으로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취업을 한 경우, 조직 내에서의 경력과 관련해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결과, 젠더, 교육과 사회이동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 속에서 상호 결합되어 하나의 독특한 '젠더 레짐'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젠더 레짐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법, 제도, 문화와 이데올로기로 구성된 사회 체계로 정의될 수 있다. 젠더 레짐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성에 따른 역할과 행위규범을 포함한다."(63)


"젠더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개인과 가족의 생애 과정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교육에서 일자리로 이동하는 이 과정도 젠더에 의해서 크게 달라진다." "고용 격차는 물론이고, 1년 이상 직장 유지비율을 보더라도 남성과 여성은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의 경우 직장 유지비율은 82.2%로 여성의 경우 75.4%보다 6.8% 포인트 더 높았다. 이러한 사실은 취업을 한 이후 대졸자 여성들의 경우가 대졸자 남성들에 비해서 높은 고용불안정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여성의 결혼과 출산에 따른 경력의 변화는 신입사원 선발 과정에서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뿐만 아니라 취업 이후에서도 이러한 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업무배치와 승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임금이 낮은 직종이나 직장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크고, 취직 이후에도 경력이 고려되지 않은 일자리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64-8)


"그렇다면, 한국에서 고학력 여성들의 임금은 고학력 남성과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나?"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GOMS) 자료를 분석한 결과, 먼저 전체 월평균 임금과 비교해서 전공에 관계없이 모든 대졸 여성들의 평균 임금이 대졸자 평균 임금보다 낮게 나타났다. 2006년 남성 대졸자의 초임은 196.88만원이었고, 여성의 월평균 초임은 남성의 73.7%에 해당하는 144.90만원에 불과하였다. 의·약학 계열인 경우에도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전체 대졸자 월평균 임금보다 낮았다." "교육계열 졸업자들의 경우, 여성들의 취업률이 남성들보다 더 높았지만, 월평균 임금은 남성에 비해서 훨씬 낮았다. 교육계열 남성 졸업자의 평균 임금이 194만 4천원이었지만, 여성 졸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153만 5천 7백원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대졸 여성들이지만, 월급은 상대적으로 낮아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68-70)


3 성별전공분리와 20대 대졸자 성별소득격차


"노동경력 초기에 연령을 통제하지 않은 성별 효과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20대 때는 1~2년의 작은 연령 격차에도 성실성, 심리적 안정성 등 인간적 성숙도에 큰 차이가 있고, 이러한 차이가 노동시장에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설사 노동시장에 들어온 대학 졸업자 개인의 성격이 고용주에게 직접 관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인사담당자들이 경험적으로 이러한 경향을 알고 있다면 채용 시 연령에 기반한 통계적 차별(statistical discrimination)을 할 수 있다. 고용주가 차별의 의도가 없지만, 누가 더 오랫동안 열심히 일할지, 누가 더 성숙한지 지원자 개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이 어린 여성보다 2~3살이 많은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을 말한다. 복학생 출신의 남성을 선호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연령과 군복무가 인간적 성숙도의 대리변수로 작동하는 것이다."(79-80)


"다른 가능성은 연장자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의 연령차별주의(ageism)가 성차별 기제의 하나로 작동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직접적 차별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지만, 연령차별주의는 한국사회에서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대졸자의 연령에 성별로 체계적인 격차가 있기 때문에 연령을 이용하여 노동시장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연령과 군복무가 성숙도의 대리변수가 아니라 여성을 배제하기 위한 정당화 기제로 이용된다. 이 두 가지 가능성을 엄밀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연령 효과가 인간적 성숙도의 대리변수로서 작동한다면, 연령이 같은 경우 성별 격차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반해 연령효과가 성차별기제의 하나로 작동한다면 고연령에서 성별소득격차가 상대적으로 더 높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여성의 고연령은 인간적 성숙도의 척도가 되지 않고 남성의 상대적 고연령만 성숙의 척도로 작용하는 것이다."(80)


"각 연령별로 (학교, 전공, 자격증 등의) 모든 인적자본 변수를 통제한 후 여성의 불이익 정도를 측정해보면, 여성의 불이익은 21, 22세를 제외하고 통계적으로 유의하며, 불이익 정도가 연령에 따라 높아진다. 인적자본을 통제한 후 23세에 여성의 소득불이익은 동일 연령 남성에 비해 평균 14.6%지만, 29세가 되면 불이익은 21.8%로 커진다. 즉, 같은 학교 같은 과를 졸업했더라도 남녀가 연령이 같으면 20대 중반보다는 20대 후반에서 성별소득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대학유형에 따라 나눠보면 4년제는 29세 때 동일 연령, 동일 인적자본 남성 대비 여성의 소득 불이익이 22.1%이고, 2년제는 26.7%에 이른다. 이러한 결과는 연령 효과가 성별과 관계없이 중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차별의 한 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즉, 경력 단절 이전 20대 청년층에서도 여성이 남성 대비 노동시장에서 크게 불리한 위치에 있고 그 원인이 여성차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88-9)


"성별전공분리보다는 같은 전공 내 성별 격차가 전체 성별소득격차를 낳는 주원인이다. 대부분의 성별소득격차는 성차별기제로 작동하는 연령차별주의에 근거한 남성 지원자 선호와 그에 따른 민간부문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할당의 여성차별로 설명된다. 법적 통제가 강한 정부와 교육 부문으로 노동시장을 한정하면 성별소득격차는 2.6%로 크게 축소되고, 성별소득격차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같은 조건의 남성 대비 여성불이익은 엘리트 대학 출신 여성이 비엘리트 대학 출신 여성보다 더 크게 겪는다. 2년제 대학 출신 여성의 소득불이익은 16.9%지만 상위 10위권 출신 여성의 불이익은 21.7%에 이른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차별이 만연한 상태에서 여성의 경력단절 완화에 중점을 둔 정책은 한계가 있다." "성별소득격차의 축소를 위해서는 여성의 경력단절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진입 초기의 여성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는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100)


4 교육, 결혼과 사회이동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가족체제에서 교육은 남성의 경제활동과 직접 관련을 맺는다. 남성이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과 사회 이동과의 관계에서 여성의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서구 사회와 다르게 기능한다. 한국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가구모형인 남성 가장 가구 모형(male breadwinner model)이 강하게 남아 있다. 남성이 가장으로서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며, 가족 내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남성에게 교육은 직업을 얻고, 결혼하여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는 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여성들의 경제적 책임이 강조되지 않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교육은 주로 자녀 양육이나 사회적 자본이라는 또다른 지위재(positional goods)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여성에게 강조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는 직업과 관련된 인적 자본이 아니라 현명한 어머니의 자질로서 학력을 강조하였다."(115-7)


"성별 교육수준에 따른 직업분포(1998년)에서 알 수 있는 점은 직업의 분포가 학력에 따라 크게 달라질 뿐만 아니라, 성별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대 졸(2~3년제 전문대졸) 이상의 고학력 남성의 경우, 48.99%가 관리직/전문직으로 진출하였고, 24.14%가 사무직으로 진출하였다. 반면 고학력 여성의 경우 60.89%가 관리직/전문직으로 진출하여, 관리직/전문직으로 진출하는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았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여성들이 관리직보다는 전문직으로 진출하여, 조직 내에서 권위를 갖는 직업보다는 전문성에 기초한 직업으로 진출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8년 대졸 여성의 관리직 비율은 1.36%로 남성 4.37%에 비해서 낮았으나, 전문직 비율은 34.42%로 남성 31.56%에 비해서 더 높았다. 이것은 여성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배제가 강한 조직문화 대신에 자신의 전문성에 의해서 평가를 받는 직업을 선호함을 의미한다."(122-4)


"교육이 여성들의 결혼 조건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여 동질혼의 비중이 높은 한국사회의 특징은 여성들에게도 가부장제 결혼관이 강하게 내면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가부장제 가족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고학력 여성들이 저학력 남성들과 결혼하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가부장제적 의식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강하게 내면화되어 있어서, 많은 여성들은 당연히 남성의 학력이 여성들과 같거나 혹은 더 높아야 한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수준이 낮은 배우자와 결혼이 이루어지는 강혼(降婚)은 한국 여성들에게서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점은 OECD 회원국들의 교육 수준별 부부 분포와 비교하면 더욱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부부 모두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비율은 2008년 주요 OECD 회원국에서 13.2%에 불과하였고, 본인의 학력이 배우자의 학력보다 높은 경우(강혼)는 남성의 경우 19.2%(한국 28.15%, 2010년 기준), 여성의 경우 15.4%(한국 8.33%)이었다."(133)


5 한국에서 교육은 성별에 따라서 어떻게 다르게 작동했는가?


"적어도 가족과 학교 수준에서 젠더와 관련하여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지만, 교육과 노동시장에서의 젠더는 여전히 전통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대학 전공 선택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은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여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이나 예술에 집중되어 있고, 수학, 과학과 공학을 선택하는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등교육에서 오랜 기간 동안에 형성된 젠더화된 전공 이미지가 아직까지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학 졸업 후 노동시장으로의 진출과 관련해서도 큰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 않다. 여학생들의 경우, 경제활동참가율이 아직도 낮은 수준이고, 경제활동에 참가한 이후,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경우에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출산 이후에 직장을 계속해서 다닐 수 있는 여건이 제도적으로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출산 후 직장을 유지하는 비율은 대단히 낮다."(145-6)


"대학교육의 확대로, 대학 졸업자의 프리미엄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대학의 프리미엄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나타났다. 대졸자가 독점했던, 관리직과 전문직에서 대졸 남성의 비율은 크게 줄어들었다. 대학교육이 확대되면서 가족 배경의 효과도 약화되었다. 남성의 경우, 아버지의 학력은 대졸 남성의 관리직과 전문직 진출에 별다른 차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가족 배경이 아직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 여성들 가운데 아버지 학력이 높을수록, 관리직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의 고등교육은 (배우자의 학력이 더 높은) 승혼(昇婚)을 통한 상승이동 수단으로 기능한다. 교육은 여성들에게 결혼을 통해서도 사회이동을 경험하게 한다. 다만 대졸자의 지속적인 양적 증가로 대졸 여성이 관리직과 사무직 배우자를 맞을 가능성은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47-8)


"그 대신에 대학졸업자가 아니라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가 하는 〈대학의 수준〉이 더 중요해지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학입시 경쟁이 아니라 특정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학생들의 경쟁이 가속화되는 이유이다. 여학생들의 경우에도,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노동시장 진출뿐만 아니라 결혼에서도 학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은 여성들에게는 더 중요해졌다. 이런 점에서 21세기 한국에서 가시화된 교육 부문의 '젠더 역전 현상'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과 여성 배제적 노동시장 사이의 간극은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한국의 가부장제에 더 강한 불만과 저항을 낳게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가부장제 사회에서 동질혼을 통한 대졸자 여성이 누리는 결혼에서의 프리미엄이 유지되는 한, 고학력 여성들의 불만과 저항은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주된 이유는 고학력 여성들에게는 결혼이라는 탈출구가 있기 때문이다."(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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