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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의 뿌리 - 서구 세계를 바꾼 사상 혁명
이사야 벌린 지음, 나현영 외 옮김 / 이제이북스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1 낭만주의의 정의를 찾아서
"낭만주의의 출발은 프랑스의 18세기, 즉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온하게 시작하며, 삶과 예술은 법칙을 따르고, 일반적으로 이성이 진보하고, 합리주의가 확산되고, 교희의 세력이 약화되며, 비이성적인 것은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호되게 비판을 당하는 우아한 세기다. 거기엔 평화가 있고, 고요함이 있고, 우아한 건축이 있으며, 인간사뿐 아니라 예술적 실천, 윤리, 정치, 철학에까지 보편적 이성을 적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때 느닷없이 명백하게 설명할 수 없는 습격이 일어난다. 갑자기 감정의 거친 폭발, 즉 어떤 열광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고딕 건축과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들은 갑자기 신경증적이고 우울해지며, 타고난 천재의 불가사의한 약동을 찬미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다른 변화들 역시 일어난다. 프랑스 혁명이 터지고, 불만이 팽배하며, 국왕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공포시대가 열린다."(16-7)
"(1760년부터 1830년 사이에 의식의 커다란 단절을 경험한)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고결함과 성실함, 어떤 내적 열정에 기꺼이 자신의 삶을 바치는 태도,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거나 삶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이상에 대한 헌신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학문이나 과학의 발전에 우선적 관심을 두지도 않고, 정치 권력에도 그러하며, 행복에도 관심이 없고, 무엇보다 삶을 조정하여 사회에서 자기 위치를 찾거나, 체제에 순응하거나, 왕이나 국가에 충성하는 것에조차 흥미가 없었다." "그 이상주의의 개념은, 원칙이나 어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고, 배반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며, 오직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을 위해 결사적으로 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심리 상태다. 이처럼 전심 전력을 다하는 태도, 성실함, 영혼의 순수함, 무엇이든 관계없이 자신의 이상에 헌신하는 능력과 망설임 없는 자세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20-1)
"1820년대부터는 마음가짐이나 동기가 결과보다 훨씬 중요하고, 의도가 그 효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 생겨난다. 마음의 순수함과 고결함, 헌신, 전념─오늘날 우리가 큰 어려움 없이도 가치를 인정하는 이 모든 것들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도덕적 태도와 바로 그 면면에 스며들어, 많든 적든 보편적인 것이 되고,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 다음에는 점차 바깥으로 퍼져 나갔다." "칼라일은 『영웅숭배론』에서 수많은 영웅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분석하는 중에 마호메트를 묘사하고 있다." "칼라일은 『코란』의 진리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으며, 『코란』에 칼라일 자신이 믿게 될 만한 어떤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칼라일이 마호메트에게서 높이 사는 점은 그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열정적인 인생에서 엄청난 수의 추종자를 거느렸으며, 무언가 강력하고 장엄한 사건을 통해 인류의 역사에 위대하고 감동적인 순간을 가져왔고, 이것을 실증했다는 점이었다."(22-3)
"지난 두 세기 동안 사상사를 다루었던 학자들 중에서 분명 가장 정확하고 탁월한 이들 중 한 명인 아서 O. 러브조이는 어느 누구도 그것이 낭만주의임을 부인하지 않을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인 원시주의와 독특한 취향─곧 댄디즘─을 들어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원시주의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와 어느 정도는 18세기 초의 영국 산문에서 시작되었으며, 고귀한 야만인들과 소박한 삶, 자연 발생적인 창작의 불규칙한 패턴을 고도로 복잡화된 사회의 타락한 교양과 알렉산더격 시행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찬미한다. 그것은 어떤 자연 법칙이 있어, 이 법칙은 타락하지 않은 원시인이나 인위적으로 교육받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에서 가장 잘 발견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시도였다. 이것이 도대체 붉은 조끼와 파란 머리칼, 녹색 가발과 압생트, 죽음, 자살, 그리고 네르발과 고티에의 추종자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기행들과 무슨 공통점이 있는가? 그는 정말로 둘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도 찾지 못하겠다고 결론 내린다."(35)
2 계몽주의에 대한 최초의 반격
# 서구 전통의 세 가지 기본 명제
1. 모든 진정한 질문에는 대답이 존재하며,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질문이 아니다. 우리가 모른다 해도 누군가는 그 대답을 알고 있으며, 인간이 모른다면 신만은 그 답을 알고 있다.
2. 모든 답은 알 수 있고, 타인에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수단을 통해 발견된다. 즉, 모든 진지하고 대답 가능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가능하다.
3. 모든 대답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진지한 질문에 대한 모든 진정한 대답만으로 설명되는 어떤 이상적 우주에 비추어 우리가 겪는 현재의 불완전함을 측정할 수 있다.
"계몽주의가 기독교도와 이교도,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를 막론하고, 합리주의적인 서구 전통에 가져온 특별한 반전은, 이제까지 대부분의 전통적 방식들로는 그 대답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 점이다. 그 답은 계시로는 얻지 못하니, 여러 사람들이 받은 계시가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까닭이다. 그것은 전통으로도 얻지 못하니, 전통은 종종 인간을 현혹시키는 거짓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까닭이다. 그것은 도그마로도 얻을 수 없고, 권위를 가진 인간의 개인적인 자기 성찰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으니, 너무 많은 사기꾼들이 이 역할을 불법으로 행사해 온 까닭이다─나머지 다른 방식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답을 발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한편으로는 수학적 학문에서처럼 연역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에서처럼 귀납적으로,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진지한 질문에 대한 진정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43)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18세기 초의 지배적인 미학 이론은, 인간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학 이론가들에게 (이때의) 자연은 생명을 의미했고, 여기서의 생명이란 흔히 보게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향해 간다고 생각했던 것, 모든 생명이 지향하는 어떤 이상적인 형태였다." "가장 뛰어난 예술적 재능은 자연과 인간이 지향하는 내면의 객관적인 이상을 시각화하여 그것을 훌륭한 그림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자연이 따르는 패턴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자연은 분명 이성적인 실체니,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일은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그것이 그들의 논거였다)─명백한 자연의 혼란과 혼돈으로부터 그런 영원한 원칙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영원하고 객관적인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필연적인 관계들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 18세기의 공식적인 독트린은 자연 그 자체에서 질서를 발견한다는 것이었다."(48-9)
"역사를 바라보는 볼테르의 관심은 대부분의 시대에 인간이 얼마나 지금과 똑같았는지, 어떻게 동일한 원인들이 동일한 결과들을 가져오는지를 보여 주는 데 있었다." "이 역사의 목적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호기심이나, 그것을 되살리려는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강한 흥미를 느끼거나, 어떤 식으로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우리가 어떤 뿌리에서 자라났는지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계몽주의자들이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단지 구체적 사실 자료를 축적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일반 명제들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역사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몰역사적인 태도이며, 18세기의 가장 특징적인 태도로, 기번 같이 훌륭한 역사서를 쓴 당대의 위대한 역사가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들의 이상은 실제 업적에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52-3)
"(낭만주의의 진정한 뿌리인) 경건주의 운동이 독일 사회 내부에 깊이 자리잡았다. 경건주의는 루터주의의 한 분파로, 성서를 면밀히 연구하였으며 인간과 하느님이 맺는 인격적 관계를 매우 중시했다. 그 결과 자연히 영적 생활을 강조하고, 지식을 경시하며, 의례와 형식, 겉치레와 의식을 멀리하게 되었고, 고통받는 인간 개개인의 영혼이 그의 조물주와 맺는 직접적인 관계에 중점을 두었다. 슈페너, 프랑케, 친첸도르프, 아르놀트 등 이들 모든 경건주의 운동의 주창자들을 사회적으로 짓밟히고 정치적으로 비참해진 인간 군상들에게 구원과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이른바 깊이로의 침잠이 일어났다. 때때로 인간의 역사에는─비교한다는 것이 위험할지도 모르지만─성취로 향하는 자연스러운 길목이 막혀 있을 때, 자기 안에 틀어박혀 자기 내면에만 열중하고, 어떤 사악한 운명이 외부적으로 허락하지 않은 세계를 내적으로 창조하려는 시도가 일어난다."(62-4)
"이것은 매우 웅대한 형식의 〈여우와 신 포도〉 우화다.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세상으로부터 얻지 못하게 되면, 자신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노라고 스스로 세뇌해야만 한다." "그 결과는 열렬한 영적 생활, 대단히 감동적이고 흥미롭지만 고도로 개인적이며 지극히 감정적인 문학, 반지성주의였으며,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프랑스에 대한, 가발과 실크 스타킹, 살롱, 퇴폐, 장교와 황제들, 그 세계의 모든 위대하고 화려한 인물들, 단지 부와 사악함, 악마적인 것의 육화일 뿐인 그들에 대한 격렬한 증오였다. 이것은 굴욕을 느낀 독실한 민중들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며, 이 반응은 그들이 전성기 이래 다른 장소에서도 일어났다. 그것은 반문화, 반지성주의, 외국인 혐오라는 특정한 형식인데, 이는 바로 그 시기에 독일인들이 특히 경도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18세기 몇몇 독일 사상가들이 소중히 생각하고 찬양했으며, 괴테와 실러가 평생을 바쳐 싸웠던 지방주의다."(64-5)
"계몽주의에 가장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으며, 낭만주의의 모든 과정, 즉 지금까지 내가 기술하고자 했던 관점들에 대한 반역의 모든 과정을 촉발시킨 사람이 바로 요한 게오르크 하만이다." "하만은 생명의 흐름을 잘라 구분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 맥을 끊어버린다고 보았다." "하만에 따르면, 볼테르는 인간이 행복과 만족과 평화를 원한다고 생각했으나, (그가 보기에)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각자의 모든 능력을 쏟아 부어 최대한 풍성하고 열정적인 방식으로 삶을 즐기는 것이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창조이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며, 설사 그 과정에서 충돌이나 전쟁, 다툼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그의 몫이었다. 볼테르식의 정원에서 깎이고 다듬어진 채, 물리학과 화학, 수학, 그리고 백과전서파가 추천하는 모든 학문의 지식으로 무장한 어떤 현명한 계몽 철학자가 양육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러한 인간은 이른바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을 것이다."(68-72)
3 낭만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들
"소위 질풍노도 운동 시기라 불리는 독일의 1760년대와 1770년대에 쓰인 희곡들을 읽어 보면, 유럽의 다른 곳에서 유행하던 문학과는 전혀 다른 어조를 발견하게 된다. 독일의 극작가로 이 운동의 이름이 된 『뒤죽박죽, 또는 질풍노도』라는 작품을 쓴 프리드리히 폰 클링거를 예로 들어 보자. 클링거의 『쌍둥이』에서는, 더 힘세고 상상력 넘치며 불같이 낭만적인 쌍둥이 중 한 명이 약하고, 까탈스럽고, 기분 나쁜 자기 형제를 살해하는데, 그 이유는 그의 형제가 자신의 악마적이고 거대한 욕구에 부합하는 기질을 드러내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모든 비극에 깔린 전제는 다른 어떤 사회에서는 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필요가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사회는 악하므로 개선되어야 했다. 인간이 사회에 의해 타락한다면, 인간은 루소가 꿈꾸었던 것처럼 더 나은 사회를 꿈꿀 수 있어야 하며,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일은 가능해야만 했다. 그러나 클링거의 비극에서는 그렇지 않았다."(92-3)
# 낭만주의에 매우 큰 기여를 한 헤르더의 사상들
1. 표상주의 :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 중 하나는 표현하는 것과 말하는 것, 곧 자신의 본성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다.
2. 소속 개념 : 자기가 있는 곳에 소속된 인간, 뿌리를 가진 인간은 자신이 성장한 상징 체계 안에서만 창조 활동을 할 수 있다.
3. 순수한 이상들 : 서로 다른 시대는 별개의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이 이상들은 자신들의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유효했다.
"헤르더는 모든 인간은 어떤 종류의 집단에 소속되기를 희구하거나, 실제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 집단으로부터 쫓겨난다면 낯선 곳에 있는 듯한 소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관념을 발전시켰다." "헤르더는 혈연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며, 인종이라는 기준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18세기의 독일어로 〈Nation〉이라는 단어는 19세기의 〈nation〉이 내포하고 있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 언어는 하나의 결속이고, 국가의 영토 역시 마찬가지인데, 거칠게 말해 그의 논제는 다음과 같으니,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다른 장소의 다른 사람들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 그들이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된 데 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뒤따라오는 낭만주의적 결론들은 18세기에 이해된 바로는 반反합리주의에 영향을 미쳤다."(99-101)
"따라서 이것은 역사주의와 사회진화론, 즉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것과 매우 다른 환경에 처했을 때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개념 전체의 발단이 된다. 이것은 또한 소속 개념의 뿌리이기도 하다. 이 개념은 실제로 헤르더가 최초로 설명했으며, 이것이 바로 세계시민이라는 관념 전체가, 즉 파리, 코펜하겐, 아이슬란드나 인도를 모두 자기 집처럼 여기는 사람이 그에게 그토록 혐오감을 주었던 이유이다. 자기가 있는 곳에 소속된 인간, 뿌리를 가진 인간은 오직 자신이 성장한 상징 체계에 의해서만 창조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말을 거는 어떤 닫힌 사회 안에서 성장한다. 누구든 뿌리 없이 성장한 인간은 결과적으로 약해지기 마련이며, 그의 창조적 역량 또한 자동적으로 약화된다. 이것은 18세기 프랑스의 합리주의자이자, 보편론자이자, 객관주의자인 세계시민주의 사상가들에게는 이해되지도 않고, 절대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생각이었다."(103)
"이것으로부터 더욱 놀라운 결론이 뒤따른다. 모든 문화의 가치가, 그 특정 문화가 추구하는 것에 달려 있다면, 헤르더의 말에 따르면 모든 문화는 자기만의 중력의 중심을 가지고 있으니, 그가 중력의 중심이라 부르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일이, 이들이 과연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에 선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것들을 다른 시대나 문화의 관점에서 판단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헤르더는 바빌론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아시리아에서도 즐거움을 느끼며, 인도에서도, 이집트에서도 즐거움을 얻는다. 그는 그리스인들에게 호감이 있고, 중세에도 호감이 있으며, 18세기도 좋게 생각하니, 그가 처한 시공간에서 당면한 환경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대에 호감을 품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헤르더가 만에 하나라도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배척하는 일이다." "그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억압,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삼켜 버리는 것을 싫어했다."(104-5)
"이 엄청난 다양성에서 경이로운 모자이크가 만들어지겠지만, 어느 누구도 전체 그림을 볼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없으며, 오직 신만이 완전한 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소속된 곳에만 속해 있고, 자신이 사는 곳에만 살고 있기 때문에, 전체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헤르더는 (유럽의 합리주의를 거부하면서) 행동의 영역에서든 사고의 영역에서든, 통일성을 부인하고, 조화를 부인하고, 서로 다른 이상들의 양립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운동을 일으킨 사람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것은 지난 2천 년 동안 서구의 견고한 〈영원한 철학〉이 되어 왔던, 즉 모든 질문들은 진정한 대답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진정한 대답은 원리적으로 발견 가능하고, 이 모든 대답들은 서로 양립 가능하거나, 조각 그림 맞추기처럼 조화로운 단일한 전체 안에 화합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한 매우 새롭고 지극히 혁명적이며 도발적인 태도이다."(108-11)
4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칸트는 낭만주의를 혐오했다. 그는 모든 형태의 방종과 환상, 그가 허황된 생각이라고 부르던 것, 어떤 식으로든 과장된 것, 신비주의, 모호함과 혼란을 싫어했다. 그런데도 그는 낭만주의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 어떤 불가사의함이 있다." "칸트는 과학의 신봉자였으며, 어떤 점에서든 열광적이거나 혼란스러운 것 모두를 싫어했다. 그가 좋아한 것은 논리와 엄밀함이었다. 그는 이러한 성질들에 반대하는 사람을 정신적으로 나태한 이들로 치부했다. 논리와 엄밀함은 인간 정신의 고된 훈련이었으며, 이런 일들이 너무 벅차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른 곳에서 반대의 이유를 생각해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은 그의 사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가 어떤 점에서든 낭만주의의 아버지라면, 이는 과학의 비판자로서도 아니고 당연히 과학자 자신으로서도 아니니, 이는 명확히 그의 도덕철학에 의한 것이다."(113-4)
"만일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는 데 있어 외부적인 무엇,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무엇에 의존한다면, 다시 말해 그가 행동하는 원인이 그의 내부에 있지 않고 다른 어딘가에 있다면, 그때 그는 자신의 행위에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이 없다면 그는 전적으로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도덕적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가 옳고 그름을, 자유와 구속을, 의무와 쾌락을 구분하는 것은 모두 망상에 불과한데, 칸트는 이것을 인정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인정할 생각도 없었다." "어떤 가치가 가치인 까닭은─적어도 욕망과 성향을 뛰어넘는 목표인 의무가 생겨나는─ 인간의 선택에 따른 것이지, 저 멀리 있는 그것 자체의 어떤 본질적인 특성 때문이 아니다. 가치란 어떤 윤리적 천공天空에 떠 있는 별들이 아니니, 그것은 내면적인 것이며 인간이 자유롭게 전념하기로, 또 그것을 위해 싸우고 목숨까지 바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118-20)
"칸트의 사상에 대한 온갖 종류의 해석이 18세기 말에 등장했으나, 우리의 관점에서 가장 생생하고 흥미로운 해석은 그의 충실한 제자이자 극작가, 시인, 역사학자인 프리드리히 실러에게서 나왔다. 실러 또한 칸트와 마찬가지로 의지, 자유, 자율성,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인간이라는 관념에 경도되어 있었다." "실러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자연을 초월하고, 자연에 형상을 부여하며, 자연을 개척하여 자신의 훌륭하고 자유롭고 도덕적인 의지에 복종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실러는 쉬지 않고 정신적인 자유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의 비극 이론은 바로 이 자유라는 개념 위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비극 작가로서 그의 작품 활동과 시작詩作도 이 개념으로 충만해 있는데, 바로 이런 방식 덕분에 문학과 조형 예술 양쪽에 걸친 낭만주의 예술은 칸트의 직접적인 저작보다는 그의 작품을 통해 더욱 강력한 영향을 받은 듯하다."(128-9)
"실러는 연극이 일종의 예방접종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이 (트로이의 마지막 신관이자, 도망치고 싶은 자신의 본능적인 충동에 저항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던) 라오콘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혹은 오이디푸스 및 다른 누구든 운명에 맞서 싸우는 인간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우리는 십중팔구 패배하고 말 것이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 처했다는 두려움이 너무나 커서 무감각해져 버리거나 제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같은 상황을 무대에서 본다면 비교적 냉정하게 거리를 두게 되며, 따라서 그 경험은 교육적이고 설득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우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찰하게 되므로, 인간과 관계된 예술의 목적은, 최소한 극예술의 목적은 우리에게 가장 인간다운 방식의 행동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칸트에게서 곧바로 나온 실러의 신념이다."(131-2)
"한편에는 또 다른 계보가 있는데, 이들은 만일 사회가 악하고 올바른 도덕성을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그 안에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차단되어 있다면, 또 이루어야 할 일 또한 전혀 없다면, 그러한 사회는 때려 부숴 마땅하며, 파멸하거나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고, 어떤 범죄도 허용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나오는 위대한 죄인, 사회를 근본부터 철저히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니체의 초인의 기원이며, 자유로워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우월한 인간은 그러한 사회의 가치 체계에 의거해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그는 차라리 그 사회를 파괴해 버리는 편을 택하며, 진실로 자신이 가끔 따르는 원리들을 파괴하는 편을 택하고, 그저 하나의 대상으로 자신이 제어하지 못하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기보다는 자멸하거나 자살하는 편을 택한다."(135)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셋째 사상가는 피히테로, 철학자이자 칸트의 제자였던 그는 다음과 같은 대표적인 구절이 보여 주는 대로, 이 자유라는 개념에 그만의 독특한 열정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피히테는 말한다. 〈자유라는 이름을 입 밖에 내기만 해도 내 마음은 부풀어 오르고 피어나지만, 필연성이라는 말에는 고통스럽게 오그라든다.〉 이 말은 그가 기질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데, 실제로 그 자신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한 인간의 철학이 곧 그의 본성이지, 그의 본성이 곧 그의 철학은 아니다.〉 헤겔은 피히테가 그저 자연에 영원한 법칙과 엄격한 필연성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우울과 공포를 느끼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질적으로, 이런 엄격한 질서와 깨뜨릴 수 없는 조화,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불가피하고, 질서 정연하고, 완전히 고정불변한 방식으로 나머지 모든 것에 뒤이어 일어나는 어떤 사방이 막힌 세계를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사람들이 있고, 피히테도 거기에 속했다."(143)
"피히테가 가진 전체 개념은, 인간은 행위자도 아닌 끊임없는 행동 그 자체라는 것이다. 자신을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생성과 창조를 지속해야만 한다. 창조하지 않는 인간, 단순히 삶이나 자연이 제공하는 바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자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진리가 아니라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거대한 창조적 충동을 충실히 실현하는 데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거대한 민족주의, 또는 계급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집단적 충동이라는 개념, 곧 인간은 박제되지 않기 위해, 죽은 것과 다름없이 되지 않기 위해, 정적인 자연이든, 제도이든, 도덕적 원리나 정치적 원리, 또는 예술적 원리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원리든 간에, 그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고, 끊임없이 흐르며 변화하는 과정에 있지 않은 정지된 그 무엇에 의해서도 억압받지 않기 위해 창조적으로 매진한다는 신비주의적 개념의 기원에 다다른다."(146-9)
5 해방된 낭만주의
# 낭만주의를 융성하게 만든 세 가지 요인(빌헬름 슐레겔)
1. 피히테의 지식학
2. 프랑스 혁명
3.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
"인간 의지의 살아 있는 원리를 자연─칸트에게 있어서 어느 정도는 죽은 물질이자, 형상을 부여받아야 할 것이었던─과 대비시킨 피히테와는 달리, 셸링은 신비주의적인 생기론을 지지했다. 그에게 자연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것이었으며, 이른바 정신적인 자기 전개였다. 그는 세상이 이성 없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출발해 점차 자기 의식에 다다르게 된다고 보았다. 그가 말하듯이, 세계는 가장 신비에 싸인 근원에서 출발하여 암흑으로부터 무의식적인 의지를 전개하며, 서서히 자기 의식을 발전시킨다. 자연은 무의식적인 의지이며, 인간은 자기 의식에 이른 의지다. 자연은 의지의 다양한 단계를 보여 주는데, 자연은 매 단계마다 특정한 전개의 도상에 있는 의지이다." "셸링에게 신은 이른바 의식이 자기를 전개하는 원리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 신이야말로 알파와 오메가, 곧 시작과 끝이라고 그는 말한다. 알파는 무의식의 상태이고, 오메가는 자신의 대한 충만한 의식에 이른 상태이다."(159-60)
"피히테의 의지에 대한 사상과 셸링의 무의식에 대한 사상이 결합하여 생겨난 최초의 위대한 사상이 상징주의다." "낭만주의 사상에 따르면, 우리를 둘러싼 실재와 우주는 끝없이 전진하며, 거기에는 어떤 무한하고 고갈되지 않는 것, 유한한 것들이 그것의 상징이 되고자 하나 당연히 실패하고 마는 무엇이 있다. 우리는 오직 자신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수단을 통해 전달 가능한 무언가를 전달하려 애쓰나, 이것으로 자신이 전달하고 하는 것을 모두 전달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니, 이 전체는 말 그대로 무한한 까닭이다. 이것이 알레고리와 상징이 사용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점근적인 접근 방법으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는 것뿐인데, 최선을 다한다 해도 그것은 고통스러운 투쟁이며, 만일 우리가 예술가라면, 또는 독일 낭만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어떤 자의식을 가지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우리는 이 투쟁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바친다."(162-6)
# 19~20세기의 사상과 감정이 당면하게 되는 두 가지 현상
1. 과거에 대한 동경 : 낭만주의가 찾아 헤매는 고향[원리, 본성]은 원칙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으나 붙잡을 수는 없는 무엇으로, 이를 향한 노력은 행동이며, 행동은 운동이고, 운동은 완결되는 법이 없으므로, 운동은 영구하다.
2. 근거 없는 불안 : 개인들이 아무리 자신을 해방시키려 발버둥쳐도 우주는 그렇게 쉽게 통제되지 않으며, 우리가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가 항상 배후에, 무의식이나 역사의 배후에 숨어 있어서, 우리의 가장 간절한 바람을 좌절시킨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살아 있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고, 행동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본성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자신이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를 표현함을 뜻한다. 자신이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으나,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표현해야만 한다. 여기서 고통이 생겨나고,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이것은 무한한 동경이자 열망이고, 우리가 먼 타국으로 떠나야 하는 이유이며, 이국적인 원형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이유, 또 동방을 여행하고, 지나간 과거에 대해 소설을 쓰며, 온갖 형식의 몽상에 탐닉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낭만주의의 전형적인 과거에 대한 동경이다. 만에 하나 그들이 찾아 헤매는 고향, 그들이 말하는 조화와 완전함이 허락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거부할 것이다. 정의상, 그것은 원칙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으나 붙잡을 수 없는 무엇으로, 그 이유는 그것이 실재의 본성인 까닭이다."(172)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들에 대해서 느끼는 불안 역시 낭만주의적인 관념으로, 우리의 바깥에 거대하고 파악하기 힘들며 손에 넣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한번 가지게 되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피히테가 바란 열망이나 두려움 중 하나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혹시라도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그 두려움은 막연한 불안이 된다. 이러한 불안은 19세기 동안 계속해서 축적되어 쇼펜하우어에까지 이르고, 바그너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20세기 모든 분야의 예술에서 거대한 정점에 이르러, 우리가 무엇을 하든 거기엔 어떤 암 세포와 같은 것이 있고, 꽃봉오리 속에는 어딘가 벌레가 숨어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간들이든, 저항하려는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인격을 가지지 않은 힘들이든, 우리를 영원히 좌절하게 운명짓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175)
"프랑스 혁명은 인간의 불행에 대해 평화로운 보편주의─끊임없는 진보에 대한 사상으로 그 목적은 고전주의적인 완성이며, 일단 그 목적을 달성하기만 하면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 놓은 어떤 확고부동한 기초 위에 영원히 지속된다─에 입각한 완벽한 해결책을 약속했음에도, 처음 의도했던 길을 가지 못했고(이것은 누구나 인정한 사실이다), 따라서 혁명이 주목하게 한 것은 결코 이성이나 평화, 조화, 보편적 자유, 평등, 해방, 우애─혁명이 차례로 실현하리라 예정되었던 것들─따위가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폭력과 공포, 인간사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 폭도들의 무분별함, 특정한 소수의 영웅과 유명인사들, 곧 선악을 떠나 이들 폭도를 지배하고 역사의 추이를 마음먹은 대로 바꿀 수 있는 이들이 가진 엄청난 힘이었다." "이것은 독일뿐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따라서 프랑스 혁명은 처음 의도했던 바와 정확히 반대되는 영향을 미쳤다."(177)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개념,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숨겨진 실재가 드러나며, 인간이 아무리 바꾸어 놓아도 그것은 갑자기 몸을 곧추세워 인간의 얼굴을 후려치고, 만일 이러한 것들, 자연이나 인간, 또 다른 그 무엇을 변화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이 도를 넘으면, 〈인간의 본성〉, 또는 〈사회의 본성〉, 또는 〈무의식의 어두운 힘〉, 〈생산하는 힘〉, 〈이데아〉─이 거대한 실체에 어떤 이름을 붙이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라 불리는 무언가가 공격을 시작하며, 우리를 때려눕힌다는 이러한 개념은 틀림없이 자신을 낭만주의자로 생각하지 않았을 수많은 유럽인들의 상상력에 스며들었으며, 갖가지의 섭리론이 성행하게 했으니,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섭리론과 헤겔주의자들이 섭리론을 비롯해, 슈펭글러의 섭리론, 토인비의 섭리론, 그리고 우리 시대의 무수한 다른 신학적 저작들이 그것이다." "이것은 실로 전체 우주를 18세기에 그랬던 것보다 훨씬 두려운 세계로 만들었다."(179)
"낭만주의자들은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를 두 가지 이유로 극찬했는데, 먼저 이 소설이 가진 이야기로서의 힘을 극찬하기보다는 두 가지의 다른 이유로 이것을 극찬했는데, 무엇보다 먼저 이 소설은 한 천재적인 인간이 자신을 형성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어떻게 한 남자가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힘을 얻으며, 자신의 고결하고 구속받지 않는 의지의 자유로운 실천을 통해 성공에 이르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이상으로 낭만주의자들은 또한 이 소설에 매우 갑작스런 전환들이 있다는 사실을 좋아했다." "시에서 산문으로의, 황홀경에서 과학적인 설명으로의 갑작스러운 전환은 낭만주의자들에게 현실을 전복시키는 마술적인 장치로 보인다. 이것은 예술 작품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보이는 모범이다." "괴테는 이들 낭만주의자들을 어떤 불안감을 안고 바라보았으니, 말년에 그는 〈낭만주의는 질병이고, 고전주의는 건강한 상태〉라고 말했으며, 이는 그의 기본적인 어조였다."(179-81)
"아이러니는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창안한 개념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정직한 시민들 앞에서, 잘 쓰인 시─규칙에 따라 쓰인 시─앞에서, 또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평화로운 제도 앞에서, 그것을 비웃고, 조롱하고 풍자하고, 비판하며, 정반대의 것들도 똑같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죽음에 대항하고, 고정화와 생명의 흐름을 멈추게 하고 얼어붙게 하는 모든 형태에 대항하는 유일한 무기를 아이러니Ironie라 부른다." "인간은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단순히 이 규칙들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니, 거부는 또 다른 정설, 원래의 규칙과 상반되는 또 다른 일련의 규칙들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 따라서 규칙은 파괴되어야만 했다. 이 두 가지 요소─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의지와 사물의 본성이 있다는 진리의 거부, 만물에 불변의 구조가 있다는 개념을 파괴하고 전복하려는 시도─는 이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운동의 가장 심오하고, 어느 정도는 가장 비상식적인 요소들이다."(189-90)
6 지속되는 영향력
"과학은 순종이며, 사물의 본질에 인도를 받는 것이고, 대상에 대한 면밀한 주의이자, 사실로부터 일탈하지 않는 것이고, 이해와 지식과 적응이다. 낭만주의 운동은 이와는 정반대를 선언했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지금쯤은 익숙할 불굴의 의지에 대한 개념으로, 인간이 성취하는 것은 가치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가치의 창조라는 것이다. 인간은 가치를 창조하고, 목표를 창조하며, 목적을 창조하는데, 궁극적으로는 마치 예술가가 작품을 창조하듯이─예술가가 어떤 작품을 창조하기 전까지 그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자기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창조한다. 모방과 순응은 없으며, 규칙의 습득이나 외부의 구속도 없고,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이해하고 익혀야 할 구조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과정의 핵심은 발명과 창조이며, 말 그대로 무에서, 또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주어진 질료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194-5)
"두 번째 명제─첫 번째와 연결되는─는 사물의 구조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자기 전진의 과정이자 끊임없는 자기 창조로, 이것은 쇼펜하우어나 심지어 어느 정도는 니체에서처럼, 인간에게 적대적이어서, 그것을 방해하고, 조직하고, 그 안에서 아늑함을 느끼며, 그 안에 머무를 수 있는 어떤 익숙한 양식을 만들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전복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니, 우리 자신을 세계와 동일시하며, 그것과 더불어 창조하고, 이 거대한 과정에 몸을 던짐으로써, 진실로 외부 세계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이 창조적인 힘들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며, 한편으로는 정신과, 다른 한편으로는 질료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전체를 거대한 자기 조직화와 자기 창조의 과정으로 바라봄으로써 마침내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된다."(195-6)
"러브조이가 몹시 쓸쓸하게 불평한 것에서부터 출발해 보자면, 어떻게 〈낭만주의〉라는 단어가 동시에 두 가지 모순되는 것들, 즉 한편으로는 고귀한 야만인, 원시주의, 단순한 삶, 장밋빛 뺨의 농부들, 도시의 끔찍한 복잡함을 피해 신대륙의 청명한 대초원이나, 실제 또는 상상 속의 지구 반대편에서의 다른 형태의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푸른 가발, 초록색 머리, 압생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파리 시내에 바닷가재를 끌고 다니다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제라르 드 네르발을 대표할 수 있는가? 만일 이 둘에 공통된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러브조이는 양쪽 모두에 똑같은 용어가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된다는 데 아주 당연한 놀라움을 표시하지만─ 대답은 양쪽 모두 주어진 것의 본성과 결별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양쪽 다 주어진 것을 파괴하고 산산조각 내는 수단임에는 같다." "우리가 어떤 길을 향하든, 극단적인 세련됨을 추구하든, 어떤 전례 없는 단순함을 추구하든 결과는 같다."(216-8)
"우리는 반드시 질서를 깨야 하고, 또 자신의 내면이나 외부 세계의 바깥을 향하는 것으로 이것을 깨야만 한다. 인간은 결코 그것과 완전히 일체될 수 없는 어떤 위대한 정신적 충동과 하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거나, 절대 실현되지 않을 어떤 신화들을 이상화해야 하는데, 북유럽의 신화든 남유럽의 신화든 켈트의 신화든, 그것은 문제되지 않으며─또는 계급의 신화나 민족의 신화, 아니면 교회나 다른 그 무엇의 신화라도 상관없다─그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전진하게 하고, 결코 성취되지 않으며, 그것의 정수와 가치는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으므로, 만에 하나 성취된다면 그것은 쓸모없어지게 된다. 이것이 내가 알 수 있는 한에서의 낭만주의의 본질로, 곧 의지와 행동으로서의 인간, 끊임없이 창조하고 있기에 묘사할 수 없는 무엇, 그것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되는, 주체도 없고 오직 운동만 존재할 뿐인 그 무엇이다. 이것이 낭만주의의 핵심이다."(222)
"한편으로 우리는 낭만주의의 후예들로, 낭만주의는 인류가 여태까지 거기에 맞춰 걸어온 거대하고도 유일한 틀, 〈영원의 철학〉을 깨뜨렸다. 우리는 어떤 의혹─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들─의 산물이다. 우리는 결과도 강조하고, 동기도 강조하며, 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이것이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치달아 히틀러 같은 인물이 생겨났을 때, 1930년대에는 그의 편을 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나, 우리는 그의 신실함이 반드시 그의 과오를 상쇄해 주는 미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어떤 통합된 전통의 일원들이지만, 이제 우리는 그 영역 안을 자유롭게 오가며, 우리가 허용하는 범위도 예전에 비하며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다. 이것은 상당 부분 낭만주의 운동의 덕분이니, 그것이 이상들의 양립 불가능성, 동기와 품성의 중요성, 또는 어쨌든 결과와 효율성, 효과, 성공과 행복과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보다 우선하는 의도의 중요성을 설파했기 때문이다."(226-7)
"실존주의의 중심이 되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서 이 세계의 그 무엇도 우리를 강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도 자신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듯 가장하며, 결정을 내린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의 결과를 직시하려 하지 않는다." "실존주의자들은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간다. 그들은 세계에 형이상학적인 구조가 있다는 개념 자체와, 신학이나 형이상학이라는 개념 자체, 어떤 사물들은 본질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변하지 않는 어떤 구조를 가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우리는 자신이 만든 것에 책임이 있으며, 어떤 정상참작도 요구할 수 없다. 모든 변명은 거짓이고, 모든 설명은 발뺌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용감하고 충분히 비극적인 인간이라면, 이것을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실존주의가 주장하는 이러한 금욕주의적 교훈은 낭만주의로부터 직접 끌어낸 것이다."(227-30)
"파시즘 역시 낭만주의의 후예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비합리적이거나 선택된 소수에 대한 신념 때문이 아니다. 파시즘이 낭만주의에 무언가 빚을 졌다면 그 이유는, 또다시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예측할 수 없는 의지, 조직하고 예측하고 합리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는 의지라는 개념 때문이다. 이것이 파시즘의 전체 핵심으로, 지도자가 내일 무슨 말을 할지, 정신이 우리를 어떻게 움직일지, 우리가 어디를 향하며 무엇을 하게 될지, 이 모두는 미리 예견할 수 없다. 파시즘에 있어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병적인 흥분 상태에 빠진 자기 주장과 무한한 의지를 제한하는 기성 제도의 허무주의적 파괴뿐이고, 우월한 인간은 그의 의지가 더 강한 까닭에 그보다 열등한 인간을 밟고 일어서니, 이것은 (극단적으로 왜곡되고 혼동되긴 했지만) 낭만주의 운동의 직접적인 유산이며, 이 유산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