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패자의 기억
미셸 라공 지음, 이재형 옮김 / 책세상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모든 것을 국가에 일임하고 있네. 국가가 승리자이고 개선장군이고 구세주인 셈이지. 국가가 아버지고 어머니인 셈이라고. 743)
권력은 개체를 눈멀게 한다. 국가는 그에게 장미꽃의 향기를 풍기면서 가시덤불을 안겨준다. 그와 그의 후계자를 잇는 개체의 사다리가 승천과 몰락의 롤러코스터 위에서 춤출 때, 국가는 아직 오지 않은 단 한번의 죽음을 제외한 모든 파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유영한다. 국가는 국가 자체를 위해서 존재한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이라고 치부했지만, 자본이라는 물적 토대 위에 군림하는 국가는 이데올로기에 물든 이기적 유전자요, 리바이어던이다.
모든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며, 모든 개체는 권력의 자장(磁場) 안에서 자아를 상실한다는 말이 진리로 통용된다. 그러나 사회에 자연 과학의 법칙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에 실패로 막을 내렸다. 자연 과학의 법칙 역시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닌데 하물며 죽음을 제외한 어떤 것이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법칙일 수 있겠는가. 예외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면서도 뒷걸음질에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예외를 사랑한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규율에서 벗어난 개체이길 원했다. 그들은 자본의 평온한 소파에도, 이데올로기의 냉혹한 그물에도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 줄기차게 싸웠다. 그들은 패배를 예감한 것이 아니라 직감하면서도, 이미 실현된 패배를 안고 곧 다가올 패배로 걸어들어갔다. 그들의 운명은 인정하고 싶지 않고, 부정할 수 밖에 없는 부조리에 대한 항거 그 자체였다. 국가가 국가 자체를 위해 존재하듯이 아나키스트들은 반反국가 자체를 위해 소멸해갔다.
아나키스트들의 운명 앞에서 많은 상념과 회한은 하나로 무너져 내린다.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고 말라붙은 호수의 밑바닥에 남은 건 그저 슬픔, 슬픔, 슬픔 뿐이다. 그들은 승리에도 정착하지 않았고, 패배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아나키스트들은 한낮에도 어둠에 잠겨 있는 수인(囚人)이었으며, 그들이 카탈루냐에서 부르는 찬가는 숱한 장례식의 조곡으로 울러퍼졌다. 리바이어던이 포획한 세상은 그들을 혁명의 전사로 내몰았지만 그들의 심장은 사랑 앞에서만 뛰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도, 플라톤의 태양 같은 철인 통치도 개체성을 완전히 내던지고 공동체로 뛰어드는 결단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극단에 머무르는 자는 선분의 나머지를 모두 착취하지만, 극단에서 모든 걸 불태운 희생의 잿더미는 비로소 적도(適度)를 맞춘다. 적도(適度)-동양식으로 말하면 중용(中庸)인-란 중앙에 서는 것이 아니다. 적도란 운동의 '한 가운데'를 끊임없이 재설정하는 노력이다. 패자는 물러나서는 안 되는 경계선을 살아남은 자들 앞에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