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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평점 :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주제넘은 소리다. 다만 우리는 사람이 자랄 수 있는 터를 만드는 일에 도전하려 한다. p227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자본주의가 최초로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화한 결과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황폐화되는 역사의 흐름을 자세히 보여준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달리 자연과 인간은 무한정의 발전(?)과 확장을 지향하는 존재가 아니라 순환의 과정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이다. 봄과 겨울이 순환하고, 파종과 수확이 순환하고, 일과 휴식이 순환하는 순리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방부처리되어 세계 곳곳으로 팔려 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시골빵집에서 저자가 구운 자본론의 묘미는 거창한 혁명의 구호가 아니라 바로 이 순환 구조의 회복에 있다. 음이 절정에 이르러 양으로 전환되듯이 효모의 발효를 거쳐야 비로소 그윽한 맛을 담은 빵이 만들어진다. 효모는 그 과정에서 기후와 수질, 인간이라는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전한다. 인위적으로 양분이 넘쳐나는 배양액이나 숙성을 위한 플라스틱 통, 단백질이 넘쳐나는 유기농산물을 접하면 효모는 발효가 아니라 부패를 진행시킨다.
자본은 불로장생을 원했던 진시황과 같다. 부패를 연기하고, 전가하고, 거부하면서 눈 앞에 보이는 상품가치의 상승만을 추구한다. 밀가루에 자본이라는 효모가 들어가면 빵이 구워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구워져 나온다. 사람을 위한 이윤 추구가 아니라 자본 자신의 몸집을 불리는 이윤 추구의 메커니즘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육중한 톱니바퀴는 '거대한 전환'을 일으켜, 다른 세상이 있었음을,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속에서 지워버렸다.
시골빵집 주인은 이윤을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 상품과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최대한 높게 유지하여 직원 모두가 '생산수단'을 소유한 소상공인이 되도록 노력한다. 1년에 한 달씩 주어지는 장기 휴가는 발효과정의 정점이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그의 노력이 책 한 권에 요약된만큼의 짧은 시간과 조급함이 아니라 긴 인내와 결단 끝에 제련되어 나온 결과라는 사실이다. 그의 이상만을 보며 품평하는 사람은 그의 노력이 여전히 진행혐임을 간과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