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한국사 - 역사읽기, 이제는 지도다!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1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지음 / 사계절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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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지면(紙面) 위가 아니라 지면(地面) 위에서 펼쳐진다는 자명한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기초 과정 텍스트 한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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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포스트, 1663 - 보급판 세트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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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은 하나씩 맞춰지는 네 화자의 진술을 라쇼몽의 기법으로 직조한 짜임새 있는 추리소설이다. 작가는 여기에 더해 다수의 실존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사유를 발화하게 함으로써, 중세와 근대가 교차하는 17세기 잉글랜드 사회의 과도기적 혼돈 상태를 의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은 의무적으로 부과되는 검증의 난점을 피하면서도, 자신이 그리고 싶은 인물이나 사회상, 시대적 맥락의 진면목을 전지적 시점에서 충실히 복원할 수 있는 무대이다.

작가는 사적史的 엄밀성의 부담을 덜어낸 자리에 추론과 상상을 더하여 여백을 채우고 있다. 분량의 과다를 감내해야 하는 관문이 남아 있지만 충분히 즐거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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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끝 그리폰 북스 18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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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는 미래를 망각한 채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명확하게 그려보는 선명한 태양의 시절이다. 그래서 대개 위태롭고 자주 어긋나며 가끔 주저앉는다.

태양의 아이는 꿈 속에서 곧잘 실현되는 명쾌한 해법이 현실로 공간이동되는 순간, 시시하게 재생되곤 한다는 사실을 점차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꿈이 시원찮아서가 아니라 애초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점차 알아차린다. 꿈과 현실이 교차할 때마다, 보여주려 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느덧 초생달에 매달려 있다.

<유년기의 끝>에서 나온 <라마와의 랑데뷰>는 압도적이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냉철하다. 우리는 유년기를 지나서 간다. 어린 아이만이 어른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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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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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이 없는 곳이죠. 빛이 아직 도착하지 않는 곳이요. 어둠이 더 빠를 수도 있어요. 항상 먼저 있으니까요."

빛은 특정한 시간을 거쳐 특정한 장소에 도달한다. 어둠은 빛이 도착하는 자리에 이미 머물러 있다. 우리가 빛과 어둠의 속도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은 빛과 어둠이 모두 '있는 것'이고 '운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둠 역시 특정한 시간을 거쳐 특정한 장소에 도달할 것이다. 빛과 어둠이 본래부터 모든 시공간을 나누어 점유하면서 '존재'했다면, 양자의 속도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빛의 속도만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빛은 '운동하는 존재'이고 어둠은 '운동하지 않는 존재'로 규정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위의 언명대로 어둠은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 빛보다 빨리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서술은 어둠이 빛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설득시키지 못한다. 어둠이 빛보다 먼저 특정한 장소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작용하는 변수는 속도만이 아니다. 토끼와 거북이는 동일선상에서 출발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뜀박질하는 경기장이 바다인지, 육지인지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가 있다. 또한 애초에 출발시점이 완전히 달랐을 수도 있으며, 거북이는 단 한번만 운동하는 존재이고 토끼는 영원히 운동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 이처럼 빛과 어둠의 다른 존재 양상들, 곧 언제, 어디서, 어떻게와 같은 질문이 배제된 채 '인상적으로' 규정되는 위의 서술은 그러므로 감각적인만큼 불완전하다.

문학은 살아왔거나, 살고있거나, 살아가려는 삶의 여러가지 양상들의 반영이다. 아무리 삶의 양상에 충실한 작가라고 해도 언어와 문자 사이에 걸쳐 있는 심연을 온전히 넘어갈 수는 없다. 그가 아무리 삶을 서술하고 서술해도 삶은 지면(紙面) 위에서 온전히 살아나지 않는다. 그것은 종이 밖으로 뛰어 나와 또 다른 삶에 참여할 때 비로소 재생된다. 타인의 사색으로 구성된 문자들 안에서 건져올리는 삶은 빛과 어둠이 뒤섞인 흐릿함을 피할 수 없다. 명료함을 세우지 않는 자는 흐릿함의 감상에 젖는다. 빛보다 빠른 어둠에 잠겨있는 사람은 자신이 그것들의 나머지 양상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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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벤 버냉키 지음, 김홍범.나원준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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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쿠의 질문을 이어받아 결론을 선취해보자면 버냉키는 재정 정책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변형된 통화 정책만을 구사하여 대공황 이후의 최대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임박한 위기 앞에서 그가 사용한 방법은 전통적인 금리 조절 정책과 더불어 연방준비위원회가 자금시장의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공식적으로 전달하여 심리적 공황 상태를 안정시킨 후에, 추가로 '양적 완화' 정책을 도입하여 본격적인 경기 부양 단계로 실물 경제를 이양시키는 것이었다.

리처드 쿠가 '구성의 오류'를 말했듯이 버냉키 역시 파국이란 '자기실현적 예언'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모두가 하나의 생각에 집착하는 순간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연방준비제도의 역사적 연원이 패닉의 순간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양질의 담보를 확보하고 있는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거품을 유발한 영업 활동에 대해서는 범칙 금리를 부과하되 아낌없이 대부를 제공하여 시장 기능을 정상화시키는 '배저트의 원칙'임을 강조한다. 2008년에 그가 취한 주요한 행동은 바로 연방준비제도의 전통적 역할인 셈이다.

시장 심리는 안정됐지만 금리가 이미 제로 수준에 도달한 상황에서 경기를 진작시킬 만한 전통적인 통화 정책 수단이 바닥나자 버냉키는 후속 조치로 '양적 완화(quantiative easing)'정책을 도입한다. '양적 완화'는 달러를 찍어낸다는 일반의 오해와 달리 각 은행들이 연준에 개설한 지급준비금 계좌를 통해 자신들이 보유한 재무부 증권과 패니 및 프레디의 주택담보대출 관련 증권을 연준에 매각하고 유동성을 공급받는 방식이다. 이 지급준비금은 연준의 대차대조표 상에만 존재하고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 비현금성 통화의 형태이다.

이제 시장은 연준의 대량 매입으로 물량은 감소하고 가격은 상승한 국채 대신에 민간의 회사채와 여타 증권으로 관심을 전환하게 되며, 그러한 상품들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수익률의 인하-특히 장기금리의 안정화-와 민간 경기의 활력을 기대하게 된다. 일련의 금융 정책과 더불어 버냉키가 중시한 것은 시장 참여자 및 일반 시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는 연준의 목표와 정책 계획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전달하여, 시장이 여기에 보조를 맞춰 나간다면 '자기실현적 예언'이 긍정적인 버전으로 실현되리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쿠의 재정 정책 처방은 잘못된 조언이었을까. 일본의 거품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는 사태의 주요 주체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일본의 경우는 자산 가치의 급락이 대차대조표에 심대한 타격을 안긴 기업 전체의 위기였다면, 2008년에는 무리하게 주택 대출을 받은 가계와 이를 유동화 자산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대량으로 보유한 '금융기관'의 실패였다. 양자가 엄격히 분리되지는 않지만 제조업은 재정을 투입하여 실물 경제를 조정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금융 기관은 경색된 자금 흐름을 뚫고 신뢰를 재구축하는 게 급선무이다.

버냉키는 물러났지만 저금리 기조의 유지라는 연준의 자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연준은 실업률의 회복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정책 방향을 수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실물 경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주식시장만큼의 활기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오랜 기간의 장기 금리 관리를 통해 경제 주체들의 위험추구성향을 고취하면서도 실물 경제의 부양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한 통화 정책을 '유일한 대응 수단the only game in town'으로 인식하는 연준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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