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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ㅣ 문제적 인간 10
로버트 서비스 지음, 양현수 옮김 / 교양인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서로를 증오해 마지않았던 히틀러와 스탈린, 스탈린과 트로츠키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오류성'이다. 자신의 결단이 역사의 분수령을 만드는 장면을 목격하고, 열광하는 대중의 환호를 타고 하늘에 오르고 난 후, 이들은 자신이 언제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한낱 인간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성공가도를 질주하는 확신은 사소한 실패가 쌓일수록 오히려 단단해졌다. 그것은 주변인들의 무능과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음모 세력의 존재를 알리는 증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속의 교황에게 반성이란 완전한 패배, 곧 죽음과 동의어였다.
이들은 끊임없이 정상을 갈구했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정상일 때조차 내리막길을 의심했다. 이들에게 정상은 '도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도달해야 하는' 자리, 언제나 지금보다 높은 자리였다. 캄캄한 터널을 달리는 자동차는 출구에서 깜빡거리는 한줄기 빛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어둠은 '대안이 사라진 세계'의 다른 이름이기에, 그 빛이 신기루일지라도 그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터널이 깊어질수록 더 이상 빛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의 연료는 그 무엇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투쟁심이다. 이들은 모두 '영구 혁명론'의 산증인이다.
(1905년 2월 혁명 직전) 그는 비할 데 없이 대담하고 확신에 찬 사람이었으며, 혁명을 위한 연설가가 될 것을 계획해 왔다. 하지만 그는 동료로서는 피곤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의 규율을 무시하고 파괴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지적 탁월함을 칭찬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독립성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가 언제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트로츠키는 이미 진정한 트로츠키가 되어 있었다. 167)
30세가 된 트로츠키는 여러 사람을 모아 하나의 팀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질이 없었다. 탁월한 이 당 통합론자는 자신의 지지자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을 다 쫓아버리는 재주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런 상황이 문제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루나차르스키는 이런 문제가 트로츠키의 `거대한 오만` 때문이라고 했다. 224)
트로츠키는 대중 선동 전술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트로츠키와 극좌 진영에 있는 그의 동지들은, 혁명이란 목표를 눈앞에 둔 현 시점에서는 혁명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트로츠키가 보기에 임시정부는 그들이 모시는 자본가 주인들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기만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트로츠키 자신이 쓰는 속임수는 그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었다. 311-2)
군대 내 규율을 확고하게 다잡기 위해 폭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데에는 스탈린 역시 트로츠키 못지않게 무자비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정치위원들을 위협하는 행동은 삼가 왔다. 정치위원 대다수는 볼셰비키당의 투사들이었다. ... 스탈린이 나서서 트로츠키에 대한 반대 여론을 부추기고 조정할 필요도 없었다. 399)
소비에트 국가는 관료들의 정치적 충성이나 직업적 양심에 기댈 수 없었다. 소비에트 국가에는 또한 당내 경쟁 구조, 자율적 사법기관, 비판적 언론, 나쁜 자들을 골라 공직에서 내쫓을 수 있는 유권자 집단 같은 통제 메커니즘도 없었다. 소련이라는 국가는 감독 기관 없이는 작동할 수 없었다. 즉 관료주의는 이 국가의 유전자 속에 이미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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