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2 - 몰락 1936~1945
이언 커쇼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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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세계를 향해서 끝까지 나아갔고, 자신을 향해서도 끝까지 들어갔다. 승리와 더불어 망상을 현실화했고, 패배를 부인하며 현실화된 망상에 사로잡혔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도 타인의 생명을 거두어가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의 성공과 파멸은 한 인간의 '위력'이 아니라 근대 국민 국가 안에서 한 인간이 차지할 수 있는 기구(apparatus)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날이 갈수록 커지던 히틀러의 메시아주의는 대중의 아첨과 주변인의 아부라는 마약을 먹고 자랐다. 하지만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자꾸만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조바심에 쫓겼다. 그렇지만 이런 히틀러의 성격 말고도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천년왕국이 오고야 말리라는 히틀러의 굳은 믿음이었다. 34)

팽창주의라는 약동하는 에너지는 나치 정권을 지탱하는 생명의 피였으므로 이것이 없으면 "씨가 마르고" 그렇게 되면 "사회적 갈등"이 불거진다. 따라서 조만간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내부 위기가 찾아오고 "정권은 허약해진다." 히틀러가 늘 과감한 전진을 외친 것은 결국 그러지 않으면 나치즘이 굴러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65-6)

독일이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은 것은 과거에 내려진 정치적 결정의 귀결이었다. 하나는 히틀러가 총리직에 오르자마자 군부의 성원을 등에 업고 재무장에 총력을 쏟아붓기로 한 결정이고, 또 하나 더 중요한 결정은 전쟁 준비에만 초점을 맞춘 군사 주도형 경제에서 국제 시장에 다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균형 경제로 돌아가자는 건의를 묵살한 것이었다.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팽창을 요구하는 군사적•전략적 압력도 높아졌다. 그러나 애당초 군사적•전략적 압력을 불러일으킨 것은 경제난이 아니었다. 히틀러에게 경제난은 독일의 지위는 영토 정복 없이는 결코 강력해질 수 없다는 평소의 지론을 확인해주었을 뿐이다. 222)

히틀러의 비난 대상은 나중에는 독일 국민으로 바뀌었다. 독일 국민은 위대한 투쟁에 자기와 함께 나서기에는 너무 나약하다고 히틀러는 보았다. 패퇴를 거듭할수록 사방으로 포위당한 지도자는 무자비한 보복과 앙갚음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복수의 대상은 한편으로는 외부의 적이었고 그 배후에는 언제나 유대인이라는 악마가 버티고 있었다. 692)

히틀러의 무자비하도록 잔인한 논리에 따르면 병사들의 운명은 그들의 나약함 탓이었다. 병사 개인의 죽음은 민족의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독일 민족이 영웅적 노력을 했는데도 역부족으로 적의 압도적 무력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독일 민족은 패망해도 마땅하다는 사실을 히틀러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독일인은 결국 약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자신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히틀러의 생각이었다. 한 장군에게 말한 대로 독일 국민은 자기 같은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없었다.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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