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그들의 정치 -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제이슨 스탠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솔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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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인격이 국가를 대표하는 여러 종류(민족, 종교, 문화)의 초국가주의를 가리키는 말로 '파시즘'이라는 명칭을 선택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나는 당신들의 목소리다〉라고 선언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이 책에서 내가 말하려는 주된 것은 파시스트 정치이다. 특히 구체적인 관심사는 권력을 얻기 위한 메커니즘으로서의 파시스트 전술이다. 그러한 전술을 쓰는 사람들이 일단 권력을 잡고 나면, 그들이 세운 정권의 형태는 상당 부분 각 나라의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파시스트 정치에는 신화적 과거, 프로파간다, 반지성주의, 비현실성, 위계, 피해자의식, 치안, 성적 불안, 전통에 대한 호소, 공공복지와 통합의 해체 등 서로 다른 많은 전략들이 있다. 특정 요소들의 옹호는 합법적이고 때로 정당화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것들이 하나의 정당이나 정치운동으로 합쳐지는 때가 존재한다. 바로 이때가 위험한 순간이다."(15-6)


1 신화적 과거


"파시스트 정치가 하나같이 자신의 기원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겠다. 그것은 바로 과거다. 파시스트 정치는 비극적으로 파괴된 순수한 신화적 과거를 들먹인다. 국가가 어떻게 정의되느냐에 따라, 그 신화적 과거는 종교적으로 순수할 수도 있고, 인종적으로 순수할 수도 있고, 문화적으로 순수할 수도 있으며, 그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파시스트적 신화화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다. 모든 파시스트의 신화적 과거에는, 불과 몇 세대 전까지도 극단적인 형태의 가부장적 가족이 군림하고 있었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화 속 과거는 애국적인 장군들이 이끄는 정복전쟁, 동포들로 가득한 군대, 집에서 다음 세대를 키우는 아내를 둔 강건하고 충성스러운 전사들로 이루어진 영광스러운 국가의 시간이었다. …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은, 세계주의나 평등 같은 '보편적 가치들'에 대한 존중 때문에 이러한 영광스러운 과거가 굴욕적으로 상실되었다고 한다."(25-6)


"대개 이러한 신화들은 실재하지 않은 과거의 순일성에 대한 환상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는 자유주의에 물든 도시적 퇴폐에 상대적으로 덜 오염된 작은 마을과 시골 지역의 전통 속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이러한 (언어적·종교적·지리적·민족적) 순일성은 일부 민족주의 운동에서는 아주 평범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파시스트 신화는 선택받은 민족의 구성원들이 다른 민족들을 정복하여 문명을 건설하고 지배한 영광스러운 민족사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다른 민족주의 운동과 구별된다." "파시스트 신화 속에서 과거는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이데올로기를 떠받치는 특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거 사회들이 파시스트 이데올로기가 묘사하는 것만큼 가부장적이거나 실제로 영광스러웠던 경우는 드물지만, 이러한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이 상상된 역사가 현재에 위계를 부여하는 일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공하고, 현재의 사회가 어떤 모습을 해야 하고 어떻게 운용되어야 하는지를 지시한다는 점이다."(26-7)


"파시스트 사회에서, 국가의 지도자는 전통적인 가부장제 가족의 아버지와 유사하다. 가부장제 가족에서 아버지의 힘과 권력이 자녀와 아내에 대한 궁극적인 도덕적 권위의 원천인 것처럼, 지도자는 국가의 아버지이며 그의 힘과 권력이 그의 법적 권위의 원천인 것이다." "국가의 과거를 가부장적 가족구조의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파시스트 정치는 중앙집중적으로 조직된 위계적 권위주의 구조에 향수를 부여하고 그것을 가장 순수한 형태의 표준으로 만든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영국의 나치즘 역사학자인 리하르트 그룬베르거는 〈여성 문제에 대한 나치사상의 핵심〉을 〈인종 간의 불평등이 불변하는 만큼이나 성별 불평등도 불변한다는 신조〉로 요약한다." "파시스트 정치에서, 자유주의적 이상의 침해로 위협받는 가부장적 과거의 신화는, 남성과 지배집단이 자신의 순수성과 지위를 외국의 침범으로부터 보호할 능력이 없으면 사회적 지위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기능을 한다."(29-30, 37)


2 프로파간다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정책을 대놓고 추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치 프로파간다의 역할은 명백히 문제가 있는 정치적 목표를,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상으로 가려서 숨기는 것이다. 권력을 위한 위험하고 불안정한 전쟁이 안정과 자유를 목표로 하는 전쟁으로 둔갑한다. 정치 프로파간다는 고결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여, 그렇지 않았더라면 반대할 만한 목적들을 지지하도록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은 문제가 있는 목표를 고결한 목표로 가린 좋은 예이다." "닉슨의 비서실장 홀더먼은 1969년 4월 수첩에 닉슨의 말을 인용해 적었다. 〈자넨 정말로 모든 문제의 원인은 흑인들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해. 관건은,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이 사실을 감안한 시스템을 고안하는 것이지.〉 닉슨은 범죄 억제라는 강령이 그의 행정부의 국내 정책 배후에 있는 인종차별적 의도를 효과적으로 숨길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55-6)


"파시스트 운동은 몇 세대에 걸쳐 '적폐청산'을 내걸어왔다. 그 자신이 부정행위에 관여하면서도 거짓 부패 혐의를 공표하는 것은 파시스트 정치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반부패 캠페인이 파시스트 정치운동의 핵심이 되는 경우도 많다." "파시스트 정치인에게 부패란 사실 법의 부패라기보다는 순결의 부패이다." "많은 백인 미국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틀림없이 부패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그가 백악관을 차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전통적 질서의 부패였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보통 남성들을 위해 마련된 정치권력의 자리에 오를 때(혹은 이슬람인, 흑인, 유대인, 동성애자 또는 '세계시민주의자'가 보건의료와 같은 민주주의 공공재의 혜택을 입거나 공유했을 때), 그것은 부패로 인식된다.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지지자들이 그들 자신의 진짜 부패에 대해서는 눈감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의 경우에는, 선택된 민족의 구성원들이 정당한 자신의 몫을 가져가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56-9)


"파시스트 정치가 반부패라는 명목으로 법치를 공격하듯이, 그것은 자유를 수호하고 개인의 자유권을 보호한다고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어떤 집단을 억압하는 조건으로 얻어진다." "노예제 관행을 옹호하기 위해 남부연합이 자유의 개념을 사용하고, 노예제를 옹호하기 위해 남부 주들이 '주의 권리'를 요구했을 때, 그리고 히틀러가 독재 통치를 민주주의로 표현했을 때, 자유민주주의적 이상들은 그 자체를 잠식하는 가면으로 사용되었다. 그 모든 경우에서 우리는, 반자유주의적 목표가 사실은 자유주의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허울 좋은 논증을 발견할 수 있다." "요제프 괴벨스 나치 선전부장관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농담은 항상 이런 것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는 자신을 파괴하는 수단을 그 불구대천의 원수들에게 주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파시스트들은 민주주의의 자유를 이용하여 그 자신과 대립하도록 만드는 이런 비법을 언제나 잘 알고 있었다."(61-6)


3 반지성


"파시스트 정치는 자율적인 반대 목소리를 지지하는 기관들의 신뢰를 훼손시키려고 한다. 그러한 목소리를 거부하는 언론과 대학으로 그 기관들을 대체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한 가지 전형적인 방법은 위선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바로 지금, 오늘날의 우익운동은 대학들이 표현의 자유에 대해 위선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대학들이 표현의 자유를 가장 존중한다고 주장하지만 우익의 목소리에 대한 항의 시위를 캠퍼스에서 허용함으로써, 좌편향되지 않은 목소리를 억압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 캠퍼스의 사회정의운동에 대한 비판자들은 자신들을 항의 시위의 피해자로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했다. 시위자들이 그들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학자들이 만들어내는 작업물에는 분야에 따라 정치적 함의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우익의 공격은 허용 가능한 연구의 선을 통제하려는 우익의 욕구를 분명히 드러낸다."(75-6, 80)


"파시즘이 위협을 가할 때에는 언제나, 그 대변자들과 조력자들은 대학과 학교를 '마르크스주의의 세뇌'의 원천이라고 비난하는데, 이는 파시스트 정치의 대표적인 겁주기 방식이다. 대개는 마르크스나 마르크주의와 상관없이 쓰이는 이 표현을, 파시스트 정치는 평등주의를 비방하는 방법으로 사용한다. 아무리 작아도 소외된 관점들에 어느 정도 지적 공간을 주고자 하는 대학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온상이라고 비난을 받고 있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파시즘은 지배적인 관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파시즘 시기 동안에는 지배적 관점과는 다른 관점을 가르치는 학문들을 비난하는 인물이 강력한 지지를 얻게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나 젠더 연구, 또는 중동 연구 같은 분야가 그런 비난을 받는다. 지배적인 관점은 종종 진실로, 즉 '진짜 역사'로 둔갑하고, 대안적 관점을 위한 공간을 허용하려는 시도들은 모두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는 조롱을 받는다."(81-2)


"파시스트 지도자들은 자문이나 토의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본다. 전문지식의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지적으로 세련된 논쟁을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든다. 현실은 우리가 그것을 나타내는 방식보다 항상 더 복잡하다. 과학 언어는 그것 없이는 보이지 않는 구별을 나타내기 위해 훨씬 더 복잡한 용어를 필요로 한다. 사회적 현실은 적어도 물리적 현실만큼 복잡하다. 건강한 자유민주주의에서, 구별을 나타내기 위한 풍부하고 다양한 어휘를 가진 공공언어는 필수적인 민주주의의 기구이다. 그것 없이는 건강한 공적 담론이 불가능하다. 파시스트 정치는 정치 언어의 질을 떨어뜨리고 저급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파시스트 정치는 현실을 가리고자 한다." "건강한 자유민주주의에서 언어는 정보의 도구이다. 파시스트 프로파간다의 목표는 단지 정책에 대한 활발하고 복잡한 공적 논쟁을 조롱하고 비웃는 것만이 아니다. 그런 가능성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94-5)


4 비현실


"파시스트 정치는 현실을 특정 개인이나 특정 정당의 발언으로 대체한다. 명백한 거짓말을 수시로 반복하는 일은 파시스트 정치가 정보 공간을 파괴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파시스트 지도자는 진실을 힘으로, 결국 무의미한 거짓말로 대체할 수 있다." "철학자 줄리아 나폴리타노는 음모론을 내집단의 이익을 위해 외집단을 '표적' 공격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음모론은 그 표적물을 문제 있는 행위와 (주로 상징적으로) 관련 지음으로써 폄하하고 퇴출시키는 기능을 한다. 음모론은 보통의 정보처럼 기능하지 않는다. 때로는 너무 억지스러워 아무도 문자 그대로 믿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오히려 음모론의 기능은 그 표적의 신뢰성과 도덕성에 대한 막연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음모론은 주류 언론의 신용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되는 중요한 장치이다.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거짓 음모들을 취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론을 편향적이라고 비난한다."(101-3)


"음모론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경험을 쉽게 무시하기 때문에, 음모론이 거짓이라는 것이 입증되어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2017년 6월 텍사스 주지사 그레그 애벗이 서명한 텍사스 하원 법안 45호 '미 법원을 위한 미국법'은 무슬림들이 이슬람 법을 텍사스주 안으로 들여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무슬림들이 텍사스를 몰래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꾸려 한다는 것은 정말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실제로는 무슬림인데 미국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기독교인 행세를 하고 있다는 가설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음모 이론들은 효과가 있는데, 보통은 원한이나 외국인 혐오와 같은 감정들이 비이성적이라고 여겨지지만, 지금은 위협이 감지된 상황이니 그럴 만하다는 단순한 설명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단 대중이 자신들의 비이성적인 공포와 원한에 대한 설명을 음모론의 위안에서 찾으면, 정치적 문제를 숙고할 때 이성의 인도를 따르지 않게 될 것이다."(111-2)


"밀의 『자유론』과도 연관되는, '아이디어의 시장' 개념은 간섭 없이 놔두면 거짓을 몰아내고 지식을 생산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유시장 개념과 같은 '아이디어의 시장'이라는 개념은 소비자에 대한 유토피아적 이해에 기반한 것이다. 아이디어 시장이라는 은유의 경우에는, 대화가 근거들의 교환에 의해 작동한다는, 즉 한쪽 당사자가 이유를 제시하면 상대방이 근거를 들어 반박하고 그렇게 결국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된다는 유토피아적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대화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만이 아니다. 대화는 관점을 가로막고, 두려움을 일으키고, 편견을 높이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아이디어의 시장'을 옹호하는 논증은 말이 〈기술적, 논리적 또는 의미론적〉으로만 사용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정치에서, 그리고 특히 파시스트 정치에서, 언어는 단순히 (또는 심지어 주로) 정보 전달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용된다."(113-5)


5 위계


"〈인간의 운명은 평등하지 않다. 인간은 건강과 부, 사회적 지위 또는 그 밖의 것들에서 서로 다르다. 단순한 관찰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은, 그런 모든 상황에서 더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지위를 '정당한' 것으로, 자신의 특권을 '자격 있는' 것으로, 그리고 다른 이들의 불이익을 그들의 '잘못'에 의해 초래된 것으로 볼 필요성을 끊임없이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 차이가 순전히 우발적인 원인 때문이라는 것이 아무리 명백하다고 해도, 여전히 그러하다〉(막스 베버, 『경제와 사회』)." "파시스트 이데올로기가 보기에, '자연'은 자유민주주의 이론이 전제하는 평등한 존중과 단적으로 모순되는 권력과 지배의 위계를 부과한다. 위계는 파시스트 정치가 손쉽게 악용하는 일종의 집단 망상이다." "그들이 위계를 정당화하는 원리는 자연 그 자체이다. 파시스트에게 평등 원칙은 자연법칙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연법칙은 남성을 여성보다, 파시스트의 선택된 민족의 구성원을 다른 집단들보다 우선시한다."(129-31)


"개빈 에반스는 2018년 3월 『가디언』의 기고문 「인종과학의 반갑지 않은 부활」에서 정치학자 찰스 머레이와 하버드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와 같은 인물을 통해 어떻게 〈인종과학이 주류 담론에 스며들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에반스에 따르면, 2005년 핑커는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선천적으로 특별히 똑똑하다〉라는 견해를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에반스는 이 견해를 〈인종과학의 웃는 얼굴〉이라고 말한다.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선천적으로 특별히 똑똑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자들이 다른 집단의 '선천적 지능'에 대한 결론들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한다. 2007년 온라인 출판물 『디 엣지The Edge』에 기고한 글에서 핑커는 '정치적 올바름'이 연구자들이 '위험한 생각'을 연구하지 못하게 했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종류의 글쓰기의 문제는, 불평등의 원천을 자연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평등에 대한 가슴의 호소를 이성에 따라 거절하는 용감한 진실 추구자처럼 묘사한다는 것이다."(134-5)


"파시스트에 따르면 평등은 자유주의의 트로이 목마다. 유대인, 동성애자, 무슬림, 비백인, 페미니스트 등 다양한 이들이 오디세우스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유주의적 평등의 신조를 퍼뜨리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 이념에 감염된' 호구이거나, 실제로는 비자유주의적인 기만적 목적으로만 자유주의의 이상을 퍼뜨리고 있는 국가의 적이다. 파시스트 프로젝트는 참된 '민족' 구성원들의 지위 상실에 대한 불안감을, 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집단의 평등이 인정된다는 두려움과 결합한다." "위계에서 혜택을 받고, 그러한 혜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우월한 존재라는 신화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며, 이 신화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들을 가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관용과 포용을 요청하는 자유주의자들의 탄원을 불신할 것인데, 그러한 탄원을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가면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파시스트 정치는 위계적 지위의 상실이 억울한 피해자를 낳는다는 피해자의식을 먹고 산다."(142-4)


6 피해자의식


"파시스트 정치에서는, 평등과 차별이라는 반대되는 개념이 서로 뒤섞인다. 1866년 민권법은 새로이 해방된 남부 흑인들을 미국 시민으로 만들고 그들의 시민권을 보호했다. 그 법은 1866년 3월 14일 상원과 하원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달 말,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이 법이 수립한 유색 인종 보호를 위한 안전조치는 정부가 백인 인종을 위해 제공한 그 어떤 조치보다도 훨씬 더 크다〉라는 이유로 민권법을 거부하였다. W. E. B. 듀보이스가 지적했듯이, 존슨은 미래의 흑인 평등을 향한 출발점이 되는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백인에 대한 차별'로 인식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소수자였던 집단의 구성원들이 더 큰 대표성을 얻게 되면 지배집단들은 이를 위협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수행되어왔다." "시민권과 권력을 소수집단과 공유하게 된다는 전망이 등장할 때, 지배집단이 갖게 되는 피해자의식을 이용하는 것은 오늘날 국제 파시스트 정치의 보편적인 요소이다."(149-52)


"파시스트 프로파간다는 지배적 지위의 상실에 동반되는 괴로움에 대해 애달픈 송가를 부르게 마련이다. 파시스트 정치는 그 느낌만은 진짜인 이 상실감을 조작해 억울한 피해자의식으로 바꾸어서, 과거의 억압이나 현재 계속되는 억압 또는 새로운 형태의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한다. 구조적인 경제적 원인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백인 노동자계급 남성이 '당신의 특권을 봐라Check your privilege'라는 말을 들으면, 도리어 백인 우월주의 운동에 관심이 쏠릴 수도 있다. 백인 우월주의 의제를 평평한 운동장에 대한 요구로 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파시스트 정치는 이러한 진지한 자유주의적 명령을 크게 조롱한다." "되레 이 문구는 공적 영역에서 자유주의적 엘리트들을 위선자라고 비난할 때 사용되는데, 백인 민족주의 프로파간다가 보기에는 2017년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백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많이 발견된다고 하기 때문이다."(156-7)


# Check your privilege : 2014년 미국 대학 사회에서 퍼져나간, 사회적 불평등과 특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는 캠페인


"민족주의는 파시즘의 핵심이다. 파시스트 지도자는 집단적 피해자의식을 이용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국제주의 정신이나 개인주의에 본질적으로 반대되는 집단 정체성의 감정을 조성한다." "헝가리 총리 오르반은 이른바 유럽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헝가리의 신화적 과거를 이용하여 이민자들에 대한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부채질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유주의 엘리트들('유럽의 지식인과 정치 지도자들')이 이민자들의 파도가 밀려오도록 내버려두는 바람에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종교'가 내부로부터 무너질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고는 위태로운 기독교 유럽을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한 전사 지도자로 자기 자신을 내세운다. 잔혹한 전쟁을 피해 탈출한 난민들은 오르반의 눈에는 기독교 유럽의 성벽 안에 '이적 집단'을 수립하려는 강력한 침략 세력으로 보일 뿐이다." "그는 야만적이고 무법한 무리들에 맞서 헝가리를 다시 영광스러운 과거로 되돌려놓을 때, 자신의 뒤에 서달라고 촉구한다."(166-8)


7 법질서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는, 모든 시민을 평등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법률에 의해 다스려지며, 치안유지의 임무를 맡은 이들을 포함하여 사람들 사이의 상호 존중의 유대감으로 뒷받침된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이 구사하는 소위 '법질서law and order' 수사법은 시민을 대놓고 두 계급으로 나누고자 한다. 천성적으로 합법적인 선택받은 민족과, 본래 무법하고 선택받지 못한 민족으로 나누는 것이다. 파시스트 정치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에 맞지 않는 여성, 비백인, 동성애자, 이민자, 지배적인 종교를 믿지 않는 '퇴폐적인 세계시민주의자들'은 그 존재 자체가 법질서 위반이다. 미국의 선동가들은 흑인들을 법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함으로써, 비백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백인 국가 정체성이라는 강력한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이민자들에 맞서 주민들을 통합하기 위하여, 공포에 기반해 친구와 적의 구별을 만들어내는 비슷한 전술이 사용되고 있다."(172-3)


"'범죄자'라는 단어에는 물론 문자 그대로의 의미도 있지만, 다른 울림을 주는 의미도 있다. 즉, 본질적으로 사회의 규범에 둔감하고, 사리사욕이나 악의로 법을 어기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저 범법을 저질렀다고 해서 범죄자인 것도 아니다. '범죄자'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게 특정 유형의 성격을 부여하는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집단 간 언어 편향'이라고 부르는 관행을 연구해왔다. 우리가 '우리'의 하나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와, 우리가 '그들'의 하나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에 상당히 다르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잘 차려입은 백인 미국인이 수갑을 차고서 경찰차 뒷좌석에 있는 모습을 백인 미국인이 본다면, 그는 아마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가 저렇게 체포되었는지를 궁금해할 것이다. 반면 수갑을 찬 흑인 미국인이 경찰차 뒷좌석에 있는 것을 백인 미국인이 본다면, 그는 경찰이 어떻게 '저 범죄자'를 잡았는지를 궁금해할 것이다."(176-8)


# 좋은 행동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우리'의 선행은 성격적 특성으로 묘사되고, '그들'의 선행은 구체적 행동으로 묘사된다.


"선동적인 언어는 단지 공적 담론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민들 전체의 판단과 인식에 뿌리 깊이 영향을 미친다. 범죄자는 성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그 본성상 사회가 어떻게 구제할 수 있는 가망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파시스트 프로파간다는 그들이 표적으로 삼은 집단의 구성원을 그저 범죄자로만 내세우지는 않는다. 이러한 집단들에 대한 공포를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구성원들은 파시스트 민족에 특정 종류의 위협이 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순수성에 위협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 파시스트 정치는 한 가지 종류의 범죄를 강조한다. 파시스트 프로파간다가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본적인 위협은, 표적 집단의 구성원들이 선택된 민족의 일원을 강간하여 그 '피'를 오염시킬 것이라는 위협이다. 집단 강간의 위협은 동시에 파시스트 민족의 가부장적 규범, 민족의 '남성성'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진다."(189-92)


8 성적 불안


"역사학자 키스 넬슨은 1970년 논문 「'라인강의 검은 공포':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외교의 한 요소로서의 인종」에서, 1919년 프랑스군 소속 아프리카 군인들이 라인란트를 점령했을 때 독일이 집단 히스테리에 사로잡혔던 일을 기록한다.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온 프랑스 군인들이 독일 여성들을 집단 강간했다는 가상의 사건에 대한 독일의 프로파간다는 들불처럼 퍼져나갔고, 기사는 에스페란토를 포함한 거의 모든 유럽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프로파간다는 '인종에 민감한' 미국에서 특히 성공적이었다." "히틀러에 따르면, 흑인 군인들을 이용하여 순수한 아리안 여성들을 강간함으로써 '백인종'을 파괴하려는 음모의 배후는 유대인들이었다. 1920년대에 미국의 KKK 역시 흑인 남성들이 백인 여성을 집단 강간하도록 유대인들이 의도적으로 일을 꾸몄다는 공상을 공공연히 주장했다." "미국에서 흑인 남성을 린치하는 관행은 백인 미국 여성의 순수성을 방어할 필요성을 주장함으로써 정당화되었다."(196-8)


"가부장적 남성성은 사회가 남성들에게 가족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부양자의 역할을 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극심한 경제적 불안의 시기에,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선동은 성평등의 증가 때문에 지위를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해 이미 불안해진 남성들을 쉽게 공황에 빠뜨릴 수 있다. 여기서 파시스트 정치는 불안의 근원을 의도적으로 왜곡한다.(즉, 경제적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도외시된다.) 파시스트 정치는 경제적 불안으로 고조된 남성의 불안을 뒤틀어서, 전통적 가족구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가족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는 두려움으로 바꾼다. 다시금 여기서도, 파시스트 정치는 성폭행의 잠재적 위협을 무기로 사용한다." "파시즘이 트랜스 여성을 공격하고, 이 두려운 타자를 민족의 남성성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하는 것은, 남자다움이라는 생각 자체를 정치적 관심의 중심에 놓고, 물리력을 통한 지배와 위계의 파시스트적 이상을 공공영역에 점차 도입하는 방법이다."(204-7)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를 행사하는 일이다. 여성이 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권리도 자유의 행사이다. 파시즘 정치는 임신중절을 어린이에 대한 (그리고 남성의 통제에 대한) 위협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유주의적 자유의 이상을 의문시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권리는 자유의 행사다. 이종혼의 가능성 때문에 특정 종교나 인종의 구성원을 위협적인 존재로 나타내는 것은 자유주의적 자유의 이상을 의문시하는 일이다."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하는 남자의 능력이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하면, 파시스트 정치인들에게 어려운 정치적 문제가 해결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와 평등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정치인은 대중들에게 지지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성적 불안을 조장하는 정치적 전술은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이 문제를 피해가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을 공격하고 훼손하면서도 대놓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208-10)


9 소돔과 고모라


"국제적 대도시와 그 문화적 생산물에 대한 히틀러의 비난은 파시스트 정치의 표준이다." "파시스트 정치에서, 가족 농장은 국가 가치의 초석이고 가족 농장 공동체는 군대의 근간이 된다. 국가 가치의 이 생명 중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도시로 유입되는 자원들을 농촌 지역으로 돌려야 한다. 농촌 사회는 민족의 순수한 피의 원천이기 때문에, 이민을 통해 외부의 피가 섞여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 "2017년 4월 21일 『가디언』에 실린 한 기고문은 국민전선과 그 대선 후보인 마린 르펜의 근거지를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소도시와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르펜의 '강경 안보와 반이민' 메시지는 당에 대한 농촌의 지지가 급증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그런 지역에서는 〈심지어 이민자가 거의 없는 곳인데도〉 반이민 정서가 깊이 만연해 있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의 거친 반이민 언사는 이민자가 거의 없는 농촌 지역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218-21)


"파시스트 정치는 대도시 바깥의 사람들을 겨냥하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 메시지는 1930년대 유럽에서 일어난 것처럼, 경제력이 신흥 세계경제의 중심지인 대도시 지역으로 이동하는 세계화 시대에 특히 반향을 일으킨다. 파시스트 정치는 세계화된 경제가 시골 지역에 끼치는 피해를 강조하며, 자유 도시들의 성공이 전통적인 시골의 자급자족 등의 가치를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위협에 처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이뿐만 아니라 파시스트 정치는 열심히 일하는 시골 주민들이 게으른 도시 거주자들의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돈을 내고 있다는 모욕적인 신화를 부채질한다. 그래서 그 성공 기반이 시골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파시스트 정치인들이 도시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주장의 정확성 여부는 그들의 성공에 딱히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러힌 메시지는 도시에 살고 있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반향을 일으키지만, 도시 거주자들에게 호소할 필요는 없다."(221-3)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에서, 도시는 민족의 구성원들이 자식도 없이 늙어 죽으러 가는 장소이며, 그들을 둘러싼 경멸스러운 타자들의 거대한 무리가 통제 불능으로 번식하여 그 자녀들이 국가에 영구적인 부담을 주는 곳이다. 파시스트 세계관에서 도시는 사람들이 생존과 안락을 위해 공공 기반시설인 '국가'에 의존하고 있는 집단 기업이다. 도시 거주민들은 파시스트 신화에서와 같이 사냥이나 식량 재배를 하지 않는다. 가게에서 구입할 뿐이다. 이는 농촌의 농업 자급자족이라는 파시스트적 이상과 배치된다.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에서 부양을 담당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민족이다. 공동체로 활동하는 자족적 개인들로 이루어진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순수한 작은 공동체들이 그것이다." "파시스트 정치에서, 도시에 사는 소수민족의 게으름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강제 중노동을 시키는 것밖에 없다. 나치 이데올로기에서 중노동은 태생적으로 게으른 인종을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230-2)


10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에서, 위기와 궁핍의 시기에 국가는 선택된 민족의 구성원들을 위한 지원을 마련해둔다. '그들'이 아닌 '우리'를 위한 지원이다.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한결같다. '그들'은 게으르고 직업윤리가 결여되어 있어 국가 자금을 믿고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범죄자이고 국가 부조금만 받아먹고 살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파시스트 정치에서, '그들'의 게으름과 도둑질은 강제 중노동으로 고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의 출입문에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는 구호가 쓰여 있었던 이유이다." "국가와는 대조적으로. 민족에는 '복지'와 같은 장치가 없다. 히틀러는 복지를 맹비난했는데, 개인이 경제적 독립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국가는 근면한 시민의 부를, 우성優性 민족이나 종교 공동체 밖에서 편승하고 있는 '자격 없는' 소수자들에게 재분배하는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다."(237-8)


"'근면' 대 '게으름'의 이분법은 '준법자' 대 '범죄자'의 이분법처럼 '우리'와 '그들' 사이의 파시스트적 분열의 핵심에 놓여 있다. 이러한 수사법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전형적으로 파시스트 운동은 사회정책을 통해 '그들'에 대한 신화를 현실로 바꾸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난민정책에서 이를 흔히 볼 수 있다." "멸시받는 소수집단의 구성원들을 잔혹하게 대하고 국경 너머 난민으로 쫓아 보내면서, 파시스트 운동은 소수집단의 구성원들이 게으르고 국가 원조나 사소한 범죄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외관상의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파시스트 정치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조건들도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것이다." "파시스트 정치와 파시스트 정책은 서로 쉽게 분리될 수 없다. 파시스트 정치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한때 허황했던 발언들을 점점 더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직권을 사용하려는 강한 유혹을 받게 된다."(240-2)


"우리/그들의 분열을 가로막는 하나의 장애물은 계급 내의 단결과 공감이다. 잘 단합된 노조의 백인 노동자계급 시민들은 흑인들을 혐오하기보다는 흑인 노동자계급 시민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런데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분열적인 정책에 저항하는 이러한 연대의 효과를 이해하고 있기에 노동조합을 해체시키려고 한다. '엘리트들'을 비난하면서도, 파시스트 정치는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노동조합은 다양한 차원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묶는 주요한 장치다. 노동조합은 협력과 공동체의식, 그리고 임금 평등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의 급변으로부터 보호를 제공하는 장치이다. 그러나 파시스트 정치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반드시 파괴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개별 노동자들이 세계 자본주의의 바다를 혼자 헤쳐나가도록 남겨져서, 결국 당이나 지도자에게 의존하게 될 준비가 갖춰져야 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에 대한 반감은 파시즘 정치의 주요 주제이다."(253-4)


"그러나 파시스트 이데올로기가 노동조합을 표적으로 삼는 데는 더 많은 이유가 있다. 파시스트 정치는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의 조건에서 가장 효과적이다." "파시즘은 공포와 원한을 동원해 시민들을 서로 대립시킬 수 있는 경제적 불확실성의 상황에서 번성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파시즘 정치가 발판을 얻는 것을 막는 장치가 된다." "오늘날, 미국 28개 주에서 통과된 소위 '노동권' 법안은 노동조합이 회비 납부를 원하지 않는 직원에게 회비를 청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회비를 납부하지 않기로 한 직원들의 권리도 조합이 동등하게 대표하고 변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 제정의 의도는 노동조합의 자금원을 막음으로써 노조를 파괴하는 것이다. '노동권'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교섭 능력을 공격하여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빼앗는 법률의 오웰식 명칭이다. 미국 노동자들의 중서부 보루인 위스콘신과 미시간에서 노동권 법이 통과된 후, 주의 정치는 급격히 우경화되었다."(255-8)


"우리는 파시즘이 획일적인 대중으로부터 힘을 끌어온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흔히 반개인주의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히틀러는 개인의 가치와 능력주의라는 이상을 거듭 찬양했다. 개인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다윈주의의 개념은 파시스트적 위계에 구조를 부여하고 게으름에 대한 비난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파시즘에서 집단은, 노동과 전쟁에서 성과를 내어 다른 집단보다 우위에 서는 능력에 의해 등급이 매겨진다. 히틀러가 자유민주주의를 매도하는 까닭도, 자유민주주의가 자연스러운 능력주의적 투쟁에서 거둔 승리와 무관하게 가치를 부여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개인성과 양립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민주주의를 맹비난한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경쟁적 투쟁을 통해 다른 개인들보다 우위에 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파시즘적 시각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자유지상주의적 개념과 유사하다. 경쟁할 권리는 있지만 꼭 성공한다거나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262-3)


"파시스트 정치의 끌어당기는 힘은 막강하다. 그것은 인간 존재를 단순화시키고, 우리에게 하나의 대상을, 하나의 '그들'을 주고서는, 그들을 게으른 자로 비난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탁월함과 규율을 돋보이게 한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자격 없는' 인간들에게 시원하게 일갈을 날리는 강력한 영도자와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부추긴다." "파시스트 정치는 인간의 약점을 먹이로 삼는다. 그 약점이란 내가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내가 겪는 고통도 견딜 만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의 상황에서 부유한 소수만이 자유주의적 교육의 혜택을 누리고 다양한 문화와 규범을 접할 수 있을 때, 자유주의적 관용은 엘리트의 특권으로 쉽게 그려진다. 너그러운 (그러나 값비싼) 자유주의적 비전들은 파시스트 선동가들의 손쉬운 표적이 된다. 그러한 조건들하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규범들이 번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일 따름이다."(269-71)


에필로그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파시즘이 빠르게 정상이 되는 생생한 사례들을 보고 있다. 정상화는 도덕적으로 이상한 것을 평범한 것으로 바꾸는 일을 한다. 그것은 마치 일이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우리가 이전에는 견딜 수 없었던 일을 참을 수 있게 만든다. 반대로, '파시스트'라는 단어는 과장된 잘못된 경고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정상'이라는 말뜻 그대로,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의 정상화는 '파시즘'에 대한 고발을 과잉반응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우려스러운 방향으로 규범이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서조차도 그럴 것이다. 정확히 말해 정상화란, 이데올로기적으로 극단적인 상황들이 잠식해 들어오는 것이 정상적인 일로 보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것이 파시즘이라고 고발하는 일은 언제나 극단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극단적인' 용어를 정당하게 사용하기 위한 골대가 정상화로 인해 계속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277-8)


"난민, 페미니즘, 노동조합과 인종적, 종교적, 성적 소수자 등 파시스트 정치의 직접적인 표적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를 분열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이 사용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파시스트 정치는 특정한 청중을 염두에 두고서 그들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시스트 정치는 이 청중을 환상으로 꽉 움켜잡아서 그들의 국가에 등록시키려고 한다. 그러면 그들은 이 국가에서 자신들만이 인간의 지위를 '누릴 가치가 있다'라고 여기며 점점 더 집단 망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 청중의 지위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세계 여기저기의 캠프에서 대기 중이다. 강간범, 살인범, 테러리스트의 역할이 맡겨질 보잘것없는 남녀들 말이다. 파시즘 신화에 현혹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자유롭게 포용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결함이 있고, 우리는 모두 생각과 경험과 이해가 부분적으로 치우쳐 있다. 그러나 우리 중 그 누구도 악마가 아니다."(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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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덮기 - 역사적 관점에서 본 이행기 정의
욘 엘스터 지음, 최용주 옮김 / 진인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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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부 이행기 정의의 세계


제1장 기원전 411년과 403년의 아테네


"완전한 형태의 아테네 민주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마도 시민들이 민회의 결정을 실행할 사람들─추첨이든 선출이든 모든 행정관─에게 행사하는 통제의 정도일 것이다." "BC 5세기 중엽에 이르면서 잇따른 개혁으로 통제되지 않은 대중권력이 남용될 개연성이 점점 커졌다. 마틴 오스트발트 저작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아테네인들은 인민으로서 주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직 법 지배의 골격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오스트발트가 기술한 바와 같이, 한동안 〈페리클레스의 지적, 심리적, 그리고 정치적 통찰력이 비이성적 정책이 집행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훌륭한 지도력이 창출하는 결과만으로 제도의 견고함을 판단할 수는 없다. 계몽된 정치가가 항상 주도권을 잡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약하고 신중하지 못한 다음 세대의 지도자들은 제도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체제 안에 몇몇 통제장치를 갖추고는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군사적 결정 영역에서는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18-9)


"411년의 정권교체는 정권 내부붕괴와 반란이 결합하여 이루어졌다. 403년에는 스파르타의 통제 아래 타협적 이행이 있었다." "411년 이행기 정의의 주된 목적은 응보적 조치에 있었다. 참주들의 처형과 관련해서 그들을 투옥해서 무해화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아테네에는 감옥이 없었다) 물리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 주된 동기였을 것이다. 403년에는 응보적 조치와 억제 효과도 작용했을 수 있으나, 주된 목표는 화해였다. 광범위하게 소추를 면제하고 사면이 곤란한 사람에게 망명선택권을 제공하는 등 화해조약을 통해 매우 온건한 형태의 이행기 정의를 구현했다. 아테네사람들은 이전 경험을 통해 가혹한 처벌이 원래 목적에 반해 억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를 키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온건한 조치는 ① 스파르타에 의해 주어졌거나, ② 권력을 포기한 대가로 참주들이 요구조건으로 내걸었거나 ③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37-8)


"411년 이후, 참주들은 반역죄로 기소되었고, 군인들은 400인체제 기간 동안 아테네에 남아있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403년 이후, 살인교사는 사면대상이었지만, 그 살인에 직접 가담한 경우는 제외되었다. 30인 폭군이 통치하는 동안, 기병이나 평의회 의원을 지낸 경력이 있으면 공직후보자가 될 수 없었다. 위법행위(그리고 위법행위로 얻은 이득)에 대한 제재는 처형, 벌금, 면직, 시민 및 정치적 권리의 상실 등이었다. 403년의 화해조약은 참주들에게 추방을 택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비록 자발적으로 선택했더라도 제재의 일종으로 받아들였다." "이행기 정의는 사적 개인의 실천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기소, 공직후보자에 대한 이의제기, 임기만료된 공직자에 대한 고발 등이 있다. 배심원들은 대체로 시민들 중에서 무작위로 선택했지만, 403년 이후 사후조사를 담당하는 배심원은 참주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편성되었다. 이것을 〈패자의 정의〉라 부를 수 있다."(38-9)


"403년 후 승리한 민주주의자들은 노예와 그들 편에서 싸운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을 폐지할 때 자제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도시의 권력균형이 패배한 참주들을 도외시하는 것을 방지했다. 참주들이 도시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사면조약 위반으로 연결되는 소송제기의 위험부담을 늘리는 절차를 도입하여 온건한 조치를 더 강화했다. 이때 소급입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행기 정의는 합법적 형태로 수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행기 정의는 사법개혁과 헌정질서 개혁으로 보완되었다. 411년 이후, 주요 목표는 쿠데타를 획책하려는 참주들에게 부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403년 이후, 목표는 과거에 전권을 행사한 민회에 제약을 가하여 의원들에게 주어진 긍정적인 인센티브를 제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403년 이후에는 추방됐던 민주주의자들이 몰수당한 재산을 반환받을 수 있는 조항을 마련했다. 다만 개인에게 팔린 유동자산(노예를 포함하여)은 돌려받을 수 없었다."(39-40)


제2장 프랑스의 1814, 1815년 왕정복고


"두 차례의 왕정복고는 타협적 이행이었고, 연합국 세력의 후원 아래 전개되었다. 연합국 세력은 또한 이행기 정의를 통제했는데, 한편으로(1814년) 복귀하는 부르봉 왕조를 자제시키고, 또 다른 한편으로(1815년) 나폴레옹 지지자들의 숙정을 요구했다. 1814년 이행을 수행해야 했던 나폴레옹 정권 하 상원의원들은 과거의 정치적 행위와 견해들에 대한 사면, 처벌의 형태로서 몰수 효력의 폐지, 혁명기간 동안에 몰수되어 개인에게 매각된 자산 인정 등을 요구하면서 자기이익 중심적 동기에 따라 행동했다. 이는 사회적 평화와 화해를 열망하던 루이 18세의 의도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국유재산의 전前소유자에 대한 배상을 제안하거나 지지투표한 사람들 일부는 이기심이 동기가 되기도 했다. 재산구매자는 배상이 소유권을 둘러싼 의혹과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자산가치가 높아지게 되므로 이해관계가 동일했다. 자유주의자만이 구입자들의 불안에 의존(그리고 자극)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상충했다."(69-70)


"배상계획은 여러 측면에서 도덕적으로 독단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① 재산이 매각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재산을 돌려받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금전적 보상만 받았다. ② 몰수된 교회재산은 매각되지 않았음에도 반환되지 않았다. ③ 보상은 몰수된 현물자산에만 한정되었고, 훼손된 자산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양한 배상계획을 여러 주장들이 옹호했다. ① 이주자에 대한 배상은 대부분 엄격하게 자격의 문제와 관련되었다. ② 그 중 일부, 재산의 원상회복 또는 구입자가 조성한 기금으로 배상 받는 행위는 구입자에 대한 징벌적 조치의 일환이었다. ③ 혁명에서 피해를 입은 여러 집단들에 대한 차등적 대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통을 가장 심하게 겪은 사람들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되었다. ④ 일부는 또한 자격이나 과거의 고통보다는 현재의 필요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⑤ 많은 사람들은 국가이익에 기여하는 복구가 우선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70-1)


"1815년 6월 28일 루이 18세는 징벌적 조치를 의회에 위임한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연합국 세력과 이주자의 압력으로 그는 7월 24일에 제한적이지만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거로 하원을 장악하게 된 급진왕당파는 루이 18세에게 모든 '국왕살해 재범자'들을 축출할 압박했고, 더 급진적인 조치를 도입하는 데 거의 성공했다. 백일천하 기간 중 나폴레옹에 합세한 사람들에 대한 이주자들의 1815년의 분노는 국왕살해(1793년) 가담자에 대한 이전(1814년)의 처벌요구보다 더 강했다. 정부는 공공행정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숙정을 단행했다. 현직에 남아 있던 추종자 때문에 나폴레옹의 복귀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정부는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1815년 여름의 〈백색테러〉에서 수백 명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학대 받았다. 루이 18세는 그의 조카가 남부에서 자신과 대립하는 독립행정부를 수립하면서 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잠시 잃었다."(71)


제3장 이행기 정의의 새로운 세계


"식민지 지배 하에 있던 나라들이 독립전쟁에 성공하면 대체로 식민지권력과 함께 했던 내부부역자들을 처벌대상으로 삼는다. 전쟁이 끝난 후 그 세력은 이전 동맹 상황을 완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한 예로 미국과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잠깐 살펴보자. 미국의 경우 내부협력자들은 영국정부 충성파(Loyalist) 또는 〈토리당〉이었고, 알제리에서는 〈하르키스〉(harkis)였다. 각각의 경우, 이 협력자들은 전 인구의 15% 정도에 달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점령국에서 적과 협력했던 사람들의 비율보다 훨씬 많았다. 충성파와 하르키스파는 각각의 평화조약에 따라 안전을 보장받았지만, 미국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알제리에서는 아예 무시되었다. 이런 장기화된 내전에서 중립을 지키는 건 어렵다. 알제리해방전선(FLN)은 의도적으로 온건파 알제리인들과 프랑스인들을 암살대상으로 지목했다. 미국에서도 역시 〈무관심과 중립은 지지받을 입장이 아니었다.〉"(81-2)


# 하르키스 :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 군대에 협력한 알제리 무슬림인들


"2차대전 이후 몇몇 국가에서는 〈국가모독〉이라는 새로운 범죄를 적용했다. 이 범죄는 〈국민박탈〉─즉 시민적, 정치적 권리의 상실─의 형벌을 받는 하급반역의 한 형태였다. 프랑스에서 이 자격박탈은 투표권, 피선거권, 공공부문 취업금지, 법조계와 교적을 비롯하여 준공기업, 은행, 신문, 라디오 등의 분야 진출금지 등을 포함했다." "벨기에에서는 자격박탈의 범위에 정치적 권리를 포함하여 의사, 변호사, 성직자, 언론인, 교사직은 물론이고, 조직 형태와 관계없이 그 조직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법원이 부역자의 투표권, 피선거권, 군복무, 공무원 진출 등의 권리를 박탈할 수 있었고 특정분야로의 진출도 금지할 수 있었다." "덴마크에서는 투표권, 피선거권, 병역의무가 박탈되고, 공공부문에 진출할 수 없고, 변호사와 의사 또는 기타 자격증이 필요한 직종과 교사, 성직자로 일할 수 없었으며, 영화, 극장, 신문사 등의 관리직과 경리직에도 진출할 수 없었다."(89-90)


"스페인은 민주주의 이행에서 이행기 정의를 실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유일한 사례다. 1976년 7월, 정부는 부분적 사면을 선언하여 약 400명의 정치범을 석방했다. 다음으로, 〈1977년 10월의 사면법은 새롭게 들어선 민주정부가 의회 지지로 승인한 최초의 정치적 조치로 다음 두 가지를 달성했다. 첫째, 대부분의 정치범이 석방되었는데, 여기에는 폭력 혐의로 기소된 사람도 포함되었다. 둘째, 물러나는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전면적 기소중지를 승인했다.〉 또한 실직 공직자들의 복직과 연금지급을 승인했는데, 실직기간 중 받지 못한 급여는 보상하지 않았다. 비밀경찰의 기록은 전부 봉인했다(왜 소각하지 않았을까?). 이 법은 공산당 합법화와 새 헌법에 대한 합의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과도기 협상의 일부였다. 스페인 사례는 헝가리나 폴란드 등에서 하나의 모델로 구상되기는 했으나, 과거를 문제삼지 않기로 한 이 타협적 결정을 실제로 직접적으로 모방한 사례는 없었다."(92-3)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 이행은 대부분 퇴장하는 군사정권 인사들이 자신들의 면책을 보장받기 위해 벌인 협상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르헨티나는 군 간부들을 기소하여 유죄판결을 한 두 국가 중 하나이지만, 수많은 기소에 반발한 군부의 무력시위 이후 도입된 '기소전면금지법'과 '명령준수법'으로 대다수가 기소면제된 반면, 소수 고위급 장교만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를 선고받았다." "볼리비아는 오랜 지연 끝에 몇몇 군 장교들을 재판에 회부하여 유죄를 선고한 또 다른 국가다. 유죄선고를 받은 48명 중 11명만 실제로 수감되었고, 나머지는 도피했다." "브라질에서는 군장성들이 1978년에 자기사면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은 브라질의 민주주의로의 긴 여정이 1990년 카르도소 대통령 선출로 이어질 때까지 유효했다." "칠레에서는 피노체트가 설계한 상원, 국가안전보장회의, 헌법재판소 그리고 대법원으로 구성된 중추적 세력집단들이 민주적 개혁과 이행기 정의의 실행을 방해했다."(93-6)


"2차대전 이후 서유럽의 이행기 정의와─그리고 그 가해행위의 규모와─비교해볼 때, 탈공산주의 이행에서는 재판이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몇몇 지도급 인사들이 기소되기는 했지만, 유죄판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탈공산주의 사회에서 공공부문 숙정은 여러 형태를 취했다. 구 동독에서는 부패관리 해고라는 전통적인 방식이 관찰되었다. … 체코슬로바키아를 시작으로 이 지역의 여러 국가들이 〈정화〉(lustration)라는 명목의 인적 청산 방식을 채택했다." "정화조치의 동기는─최소한 공식적인─보안분야에 몸담고 있던 고위급 공산당간부와 협력자들이 새로운 체제에서 중요직책을 맡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조치는 해고, 자격상실, 또는 단순한 경력공개 등을 포함했다." "폴란드에서는 고위 선출직 또는 임명직 후보자는 1945년부터 1990년 사이에 자신이 〈적극적인 협력자〉였는가 여부를 선서해야 했다. 이를 인정하면 기록 공개 말고는 다른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았다."(98-100)


"남아프리카는 민주주의로의 타협적 이행의 산물인 진실화해위원회라는 독특한 과거청산 방식을 제시하였다." "사면(형사 및 민사소송 면제)은 신청인의 행동이 ① 악의나 개인적인 이익 추구가 아닌 정치적 동기로 이루어졌고, ② 그 행동을 촉발한 경우와 비례적으로 관련이 있음이 증명될 때 가능하다. 또한 신청인은 자신이 관여한 행위와 관련된 명령계통의 증거를 비롯한 범죄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사면을 신청하지 않은 사람은 기소나 소송을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소명 메커니즘은 자신의 행위가 ①과 ②의 조건을 만족한다고 주장하거나 완전한 진실을 말할 의사가 있다고 나설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사면청문회에서는 불법행위를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가해자의 이름도 공개하였기 때문에 대중의 보복이 두려워서 신청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한 평가에 따르면 〈많은 수의 가해자들은 신청하지 않았다. 이것은 앞으로도 기소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그들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103-4)


"민주주의 이행에 선행하는 독재체제는 국가 그 자체에서 기원하거나 아니면 외세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행기 정의의 과정은 새로운 체제가 스스로 시작하거나 아니면 외부의 퉁제 아래 진행될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사회가 '스스로를 정리해야 하는' 이중으로 내생적인(내생적 독재 체제와 내생적 이행기 정의) 경우다. 이행 이후에도 구체제의 지도자와 행위자들은 여전히 사회조직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폭력수단이나 투표함을 이용하는 직접적인 방식이든 경제재건과 발전에 갖는 비중에서 기인하는 간접적인 방식이든 할 것 없이 그들은 자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사회는 아무리 결함이 있더라도 일단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열린 바다에서 스스로를 재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법관들이 민주주의 이전 체제와 깊이 관여됐더라도 그들을 활용하거나 아니면 그들 중에서 가장 덜 타협적인 인물과 타협하는 것 외에는 실질적인 대안이 없을 수 있다."(105-7)


제2부 전환기 정의의 분석학


제4장 이행기 정의의 구조


"나는 (정의의 개념과 집행에 영향을 미치는) 동기의 삼분법─이성, 이익 그리고 감정─을 18세기 프랑스 도덕주의자들, 특히 라브뤼예르에서 차용한다." "프랑스 왕정복고의 경우, 현물배상을 원한 원소유자들에게 추상화된 신성한 재산권 개념(이성), 구입자들을 향한 복수의 욕구(감정), 그리고 재산을 되찾고 싶어하는 욕구(이익) 동기가 동시에 작용했다. 물론 이성적 동기가 사실은 감정이나 이익추구 동기의 반영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1789년 이후 왕당파 출신으로서 귀족도 이주자도 아닌 베르가세 역시 똑같이 현물보상을 주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런 의구심이 다소 줄어든다. 1989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현물보상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사익을 기대하고 그런 주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사익을 바라는 사람들이 공평의 원칙을 주장한다 해서 그들을 위선적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정말 그런지를 확인하려면 그들의 행위를 다른 맥락에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122-3)


"정의실현의 욕구가 이행기 정의 행위자를 추동하는 여러 동기들 가운데 하나의 동기에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사회에는 1차 동기에 메타동기를 유발하는 '동기화의 규범적 위계'(normative hierarchy of motivation)가 있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폴리스의 선을 고취하는 열망이 가장 가치 있는 동기였으며, 두번째는 적에 대한 복수의 열망이고, 세번째는 사익추구, 그리고 질투의 동기가 최악으로 간주되었다. 동기의 위계를 전제할 때, 낮은 수준의 동기에서 행동하는 사람은 마치 높은 수준의 동기에서 행동하는 것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동시에, 가능한 한, 자신들의 참된 동기가 자신들에게 제시하는 그런 행위를 하고 싶어 한다. 사람은 개인적인 이익에 이끌려 행동하면서 동시에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자기의 행동이 그런 동기에 이끌리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욕구가 작동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1차동기화와 메타동기화를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 각각 고유한 전략적 배열을 사용한다."(123)


# 이행기 정의의 제도적 유형

1. 사법적 정의

2. 행정적 정의(사법적 정의와 정치적 정의 사이의 연결지점)

3. 정치적 정의


"내가 〈순수한 정치적 정의〉라 부르는 유형은 새로운 정부(또는 집권세력)의 집행기구가 일방적으로 그리고 상대방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않고 가해자를 지목하고 처리절차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1815년에 연합군세력이 나폴레옹을 세인트헬레나로 유배한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순수한 정치적 정의는 '극장재판'(show trials) 형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 경우 이미 재판의 결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합법성은 허구에 불과하다. 뉘른베르크 재판에 대한 연합국 간의 합의과정에서 소련은 재판정이 단지 주요전범의 형량만 결정하는 극장재판을 원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이 재판은 사법적 정의의 두가지 본질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즉 적법절차의 준수와 재판결과의 불확실성(23명의 피고 중 3명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처럼)이 그것이다." "반면, 도쿄재판은 순수한 정치적 정의에 가장 근접한 사례다.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라는 용어는 도쿄재판에서 가장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125-7)


# 순수한 사법적 정의의 특징

1. 법을 가능한 한 모호하지 않게 규정해야 한다. 

2. 사법부는 정부의 다른 기구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3. 판사와 배심원들은 법을 해석할 때 편견이 없어야 한다.

4. 적법절차─변호사 선임 권리, 항소권, 무죄추정의 원칙, 반대심문과 공개 청문 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 이행기 정의의 행위자들

1. 가해자(wrongdoers)

2. 피해자(victims)

3. 가해행위의 수혜자(beneficiaries)

4. 가해행위를 막고자 노력한 조력자(helpers)

5. 가해자들에게 대항하고 투쟁한 저항자(resisters)

6. 가해자, 피해자, 조력자, 저항자도 아닌 중립자(neutrals)

7. 이행 이후 이행기 정의의 옹호자와 조직가인 촉진자(promoters)

8. 이행기 정의의 집행을 반대, 방해하고 지연하는 파괴자(wreckers)

※ 하나의 행위자는 연속적, 동시적으로 하나 이상의 행위자 범주에 중첩되어 나타날 수 있다.


"진주만 공습, 북아프리카, 스탈린그라드, 시실리 침공 이후 독일 점령국가의 많은 지도자들과 부역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1944년 봄, 출판계의 거물인 장 프로보스트는 거액의 자금을 레지스탕스에게 제공하고 받은 영수증을 고등법원에 증거로 제출해서 자신의 행위를 '속죄'받으려고 했다. 1944년 1월, 어느 피고는 감동적인 사직 편지(라발Laval이 수취인이었다)를 보냈는데 〈아마도 언젠가는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할 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또 어떤 사람은 〈SS 대원들에게 동료들이 죽을 때 르노 공장의 옥상에 삼색기를 게양하는 데 성공했다는 이유로〉 영웅적인(의도는 불분명하지만) 행위를 인정받아 1944년 8월에 무죄방면되었다. 당시 고등법원에서 재판 받은 사람들 중에는 독일 패전이 가까워오자 재빨리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해 무죄를 받은 경우도 제법 있었다."(145-6)


"저항자들은 그들 행동이 전체주의 정권의 복수를 촉발하면 가해자로 비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종전이 다가오면서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에 대항하는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지만, 1944년에 독일로부터 야만적인 보복행위를 당했던 이탈리아 중북부의 세 마을의 경우는 달랐다. 50년이 지난 후에 이뤄진 인터뷰에 따르면, 〈빨치산을 향한 세 마을 일부 주민들의 적대감은 여전했다.〉 이 마을에서 빨치산은 학살에 간접적 또는 심지어 '실제로' 책임이 있다고 간주됐기 때문에 경멸의 대상이었다. 저항자들은 또한 자신이 속한 조직 또는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저항조직에게 가해자로 비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공산주의 계열의 레지스탕스 집단은 〈독일에 정보를 제공한 부역자로서 '명백히' 반역자이기 때문에 처벌해야 한다〉고 비난받았다. 각 집단은 자기들만의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집단의 블랙리스트가 다른 집단과 연계된 사람을 포함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151)


"피해자임을 강조하면서 가해행위를 은폐하는 경우도 있다. 1954년 독일헌법재판소가 1945년의 공직자 지위는 제3제국에 협조한 행위이므로 박탈해야 한다고 결정했을 때, 대법원은 해당 관리들이 〈사실상 피해자인 자신들에게 가한 부당한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 "나치 가해자들도 다른 의미에서─요컨대 히틀러체제가 아니라 전후 처리 과정에서─피해자임을 강조했다. 1950년, 일부 연방의회 의원들은 나중의 모호한 기준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엄격한 기준 때문에 이른 시기에 탈나치정책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시기에 〈나치에게 억압받은 사람에게 보상을 실시하기 위해서 주로 사용된 용어인 '회복'(Wiedergutmachung)이 탈나치화 과정에서 해고당한 관리들의 복직에도 적용〉되었다. 결국 이런 나치 가해자들은 스스로를 처음에는 히틀러, 나중에는 연합군에게 부당하게 피해받은 〈이중의 피해자〉로 간주했다."(151-2)


"새롭게 들어선 민주체제가 과거와 직면하게 되면 대답해야 할 수많은 질문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정의와 진실'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그 중 하나다.(다소 약하기는 하지만 정의보다 진실을 우선시하는 결정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낮은 기소율과 과거의 가해행위에 대한 정보제공 간에는 간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 1982년 이후 설립되어 활동한 20여 개가 넘는 진실위원회는 대부분 가해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처벌을 제안하지도 않았다. 남아프리카진실화해위원회는 대표적인 예외인데, 여기서도 정치적 동기로 자행된 가혹행위는 기소를 면제했다. 엘살바도르의 진실위원회는 가해자 실명을 공개했으나, 위원회의 보고서가 발간된 지 5일만에 의회는 전면적인 사면을 결정했다. 브라질에서 상파울로 교구가 실명을 공개한 444명의 고문행위자들은 이미 사면된 상태였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1990년대에 등장한 〈진실재판〉은 사면법 때문에 기소로 이어지지 못했다."(162-3)


제5장 가해자


# 가해자의 범주 분류

1. 기회주의자 :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

2. 패배자 : 자기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중요한 존재로 비치기를 바라는 심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

3. 악당들 : 적이나 경쟁자가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것에 만족하는 자

4. 순응주의자 : 물질적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동기로 작동하는 자

5. 광신자 :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

6. 원리주의자 : 광신자와 유사하지만 특정이념이나 가치가 없거나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경로를 변경하는 자

7. 무無사유자 : 무관심과 부주의가 행위의 동기를 형성하는 자


"대부분의 독재정권 하에서 하위직급 가해자는 순응자와 무사유자인 경우가 많은데, 주로 원리주의자들이 이들을 후원하고 결속한다. 엘리트 가해자들은 대부분 광신자들이다. 기회주의자와 악당은 가해자정권을 유지하는 동력이 아니라 거기 빌붙는 기생세력이다. 독일민주주의공화국 말기처럼 정권이 주로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운영되면 체제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순응주의자와 무사유자들은 분노(anger)와 격분(indignation)을 유발하고, 광신자와 악당은 증오를 촉발하며, 기회주의자와 패배자는 경멸을 자극한다. 순응주의자와 무사유자는 그들의 '행위'가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데 반해서, 그 외 다른 유형은 그들의 '존재' 때문에 감정을 유발한다. 후자 중에서 광신자와 악당은 그 자체가 악이기 때문에 증오를 유발하고, 기회주의자와 패배자는 허약하기 때문에 경멸의 대상이 된다. 가해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법률적 대응은 이러한 정서적 반응과 연계된 내재적 행위경향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204-5)


# 가해혐의의 반사실적(counterfactual) 정당화

1. 차악적 정당화 1 : 내가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했을 것이며,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2. 차악적 정당화 2 : 내가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일이 벌어졌을 것이며,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3. 도구적 정당화 : 내가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억압적인 체제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4. 대체적 변명 : 내가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그걸 했을 것이다.

5. 강압의 변명 : 내가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살해당하거나 심한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6. 무익의 변명 : 내가 그걸 거절했더라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차악적 정당화 주장은 자기보호를 위한 위장이 태반이지만, 많은 경우 진실을 포함하기도 한다." "독일점령하 프랑스에서 페탱에게 충성맹세를 거절한 판사는 괴팍한 딱 한 사람이었다. 대부분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잡혀온 레지스탕스들이 자신들보다 더 페탱에 충성하는 법관들에게 재판을 받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비시 정권에 충성한 광신자들에게 재판받아 사형을 선고받는 사태는 피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독일인들은 중형을 선고해서 인질로 잡으려고 했으며, 반면에 무죄판결을 받으면 격리나 추방 등이 뒤따를 수도 있기 때문에 판사들은 때때로 변호인의 요청에 따라 〈중간적 해결책〉을 모색했다. 사임한 법관들은 임무수행을 포기한 군인 또는 중환자의 고통을 외면한 의사에 비교되었다. 덴마크에서도 점령세력이 사법제도를 장악하여 결국은 자국민들에게 더 많은 해를 입힐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관들이 독일과 협력한 사례가 있었다."(206-7)


"1989년 이후 동유럽에서 반사실적 정당화의 변종이 등장했다. 즉 〈우리가 반대파를 호되게 억압하지 않았더라면 소련이 침공했을 것이고 그 결과는 훨씬 참혹했을 것이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1981년 계엄령 주모자의 기소 가능 여부를 조사한 폴란드의회 위원회가 이 조사를 철회했을 때, 이 주장이 주된 이유의 하나였다. 이 사건의 주동자인 야루젤스키는 계엄령이 차악의 선택이었으며, 그것은 소련의 침략뿐만 아니라 국가를 파멸시키는 경제적 무정부 상태에 비교해서도 차악의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관심을 끄는 추가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실 야루젤스키가 계엄령 발동에 실패했더라도 소련이 침공하지 않았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이행 이후 〈폴란드 법학자 대다수는 위험을 초래하는 잘못된 판단이 졸속과 부주의 때문이 아니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잘못된 신념도 행위 당시에 획득가능한 증거로 잘 설명된다면 용인할 수(정당화는 안되더라도) 있는 것이다."(209-10)


"'적'의 존재는 개별적으로 보면 가해로 비칠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축소하면서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만행을 볼셰비즘과의 전투 때문에 불가피하게 빚어진 것이라고 정당화했다. 어느 영국인은 〈(서)독일인들은 수세기 동안 아시아의 야만에서 유럽문명을 지키는 것을 자기가 부여받은 역사적 사명으로 간주했다〉고 썼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그들을 기소하기보다 연합국은 그들이 한 일에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독에서 과거의 나치즘은 〈신뢰할 수 없고 부정직한 사람들에 대한 전후 독재를 정당화하는데〉 활용되었다. 라틴아메리카 독재자들은 진부할 정도로, 때로는 진지하게, 공산주의와 테러리즘, 그리고 게릴라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억압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내부의 적〉을 만행의 정당화로 삼기 어려운 것은 그 적이 가해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이다. 남아프리카에서 아파르트헤이트 폭력은 그에 대한 무장저항에 선행했다."(213-4)


"나치와 공산정권 인사 중에서 광신자 또는 기회주의자는 더 엄하게 처벌되어야 하는가? 다른 말로 하면, 비인간적 이념에 대한 개인적 헌신은 가중처벌 사유인가 아니면 정상참작 사유인가?" "똑같이 나쁜 이상을 신봉하고 실행했더라도 경력이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그런 행위를 한 기회주의자가 더 나쁘다는 주장도 성립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1945년, 덴마크 검찰총장은 독일을 위해 급여를 받는 일에 종사한 행위는 군인으로 복무한 것보다 〈윤리적 관점에서 훨씬 나쁘다〉고 지적했다." "기회주의보다는 광신주의에 대한 선호(이렇게 불러도 된다면)는 악독한 반유태주의 프랑스 정치인 자비에르 발라에 대한 고등법원 재판에서도 잘 나타났다. 검사는 〈발라의 행위에 광신주의 요소가 있지만, 그것이 저급하고 이기적인 동기로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것이 검사가 발라는 '중형'을 받아야 하지만 '극단적인 제재'는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근거다. 곧 광신주의는 경감사유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224-5)


제6장 피해자


"고통의 원인이 되는 가해행위는 피해자(또는 제3자)에게 두 가지 반응을 일으킨다. 첫째는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가해자에게 부과하려는 욕구다. 이른바 눈에는 눈이다. 둘째로는 피해를 가능한 한 수준에서 원상회복하려는 욕구가 있다. 영국의 속죄금(Wergeld) 제도에서 알 수 있듯이 균형을 회복하려는 이 두 가지 방법은 서로 대체 가능하다." "범죄자가 속죄금을 지불할 수 없으면 처벌이 그 대체물이 된다. 그러나 현재 법제도에서 처벌은 피해자의 요구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가해행위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가해자 처벌과 분리되어 있다. 그럼에도 보상절차는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징벌적 목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왕정복고 과정에서 일부 이주자들은 자기 재산을 구입한 사람에게 처벌적 목적의 배상금을 부과하기 원했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현금보상이나 바우처 대신 현물배상에 치중했는데, 그 목적 중 하나는 재산이 과거 특권계급에 귀속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었다."(241-2)


# 피해자의 고통의 유형

1. 물질적 고통 : 개인재산의 손실

2. 신체적 고통 : 신체 또는 자유 등에 걸친 피해

3. 무형의 고통 : 기회 박탈이나 기회 상실


"파괴된 재산은 몰수된 재산보다 인색하게 보상되는 경향을 보였다. 1815년 이후 프랑스에서 국왕을 위해 싸우다가 재산이 파괴된 방데 반란 가담자들은 거의 보상을 받지 못한 반면, 왕에 대한 충성보다 자신들의 안정을 더 중요시하다가 재산을 몰수당한 이주자들은 나중에 보상을 받았다. 이 차이는 결국 국가가 재산 몰수와는 다르게 재산 파괴에서는 이익을 얻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일부를 대상으로(상대적으로) 완전한 보상을 실시하는 대신 모두를 대상으로 부분적인 보상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 결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1945년 이후, 많은 독일 점령국가에서 파괴된 재산을 개인별로 보상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 조치의 개념적 기초는 보상 권리가 아니라 필요와 연대였다. 노르웨이에서도 전쟁피해에 대한 '회복적 보상(regressive compensation) 원칙이 확립되었다. 즉 〈모든 국민이 고통을 겪었으며, 각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정서가 일반화되어 있었다.〉"(245)


"몰수의 경우에는 흔히 제기되는 이중소유라는 골치 아픈 쟁점이 있다. 국가가 몰수재산을 선의로 구매할 의사를 밝힌 사적 개인에게 팔았을 경우, 새 소유자는 취득한 재산이 법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여길 것이다. 이 재산을 원래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보상하기 위해서 불의를 행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원래의 잘못이 초래한 불의가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그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불의와 사회적 분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증가하게 되며 결국에는 최초의 불의를 지배하게 된다." "부당취득 후 한 세대가 지났을 때에만 새로운 소유자에게 재산을 보유할 자격이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프랑스 왕정복고와 1990년 이후 구동독에서 새로운 소유주가 〈정직한 방식〉으로 취득했을 때 몰수재산 반환에 예외가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을 둔 독일의 통일 조약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 반대로 영국의 왕정복고 때 재산은 대부분 원래 소유자에게 반환되었다."(247-8)


"과거의 고통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필요 중 무엇이 타당한 보상근거일까? 두 사람의 피해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한 사람은 과거에 심하게 고통을 겪었지만 현재는 회복되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정상적인 상태로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은 과거에 고통을 덜 받았지만, 회복되지 못하고 지금은 일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 목표가 과거의 후생손실을 보상하는 것이라면 첫 번째를 우선시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 후생에 관심이 있다면 두 번째 사례가 더 강력한 근거를 갖는다. 프랑스 왕정복고 과정에서 나온 이 질문은 나치만행을 둘러싼 보상논쟁에서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1953년에 독일 최초의 보상법이 제정됐을 때, 피해자배상권의 가장 유명한 옹호자인 오토 퀴스터는 필요를 보상의 유일한 근거로 삼는 정부관리와 정당 대표들을 비판했다. 퀴스터는 박해당한 사람은 자신들만의 특수한 상황에 기초한 특수한 권리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고통에 대한 정당한 보상권이다.〉"(253)


"무형의 고통은 기회의 결여 또는 상실로 구성된다. 직관적으로, 모든 기회의 박탈을 물질적이거나 신체적인 고통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특정 기회─예를 들면 법조인 경력 취득─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의 후생은 기회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변함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회의 박탈이 피해로 간주되는 이유 또한 다양하다. 만일 그 사람이 법률적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박탈당했다는 것을 안다면, 이 경력을 향한 욕망의 결여가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부재에 기인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고통스러운 불확실성도 피해로 간주된다. 특정 측면에서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 역시 피해의 유형에 속한다.(이 효과는 모든 사람이 박탈당한 상태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좀 더 급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후생 자체보다는 후생의 기회가 도덕적으로 더 중요한 쟁점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배상·보상 프로그램은 기회의 박탈에 대한 보상을 포함하지 않는다."(256-7)


제7장 제약요인


"사면 또는 관대한 처분이 포함된 타협을 통해 체제 이행이 시작되는 경우, 차기정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이행기 정의를 구현할 자유가 제약된다." "새로운 세력은 성공적인 이행과 이행기 정의라는, 상충하는 두 가지 열망을 갖는다.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물러나는 지도자들과 협상을 하면, 두 번째 목표를 희생해야 할 수도 있다. 만약 협상자가 자신들이 차기 첫 정부를 구성하고 일정기간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믿으면 사면과 불처벌 약속은 평판에 대한 의식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퇴장하는 엘리트가 이행 이후 협상자가 나중에 그 약속에 구속되지 않는 다른 사람들로 대체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 메커니즘은 성공하지 못한다. 또한 구엘리트가 미래의 법원과 입법부가 독립적인 지위를 잡게 될 것이라고 믿으면 최종협상 역시 성사되지 않을 수 있다. 모순적이지만, 법원이 부패해 있거나 과거체제와 얽혀 있을수록 면책 약속은 더 신뢰를 받는다."(272-5)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이행기 정의는 복합적인─서로 충돌하기도 하는─제약 요인에 사로잡혀 있었다. 몇몇 연합국은 독일인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특히 그 생산기반의 철저한 파괴─만이 독일군국주의의 부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봤다. 모겐소에 따르면 루스벨트는 독일이 1810년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독일에 대한 징벌적 조치가 목적을 달성하는 데 별로 효과적이지 않으며, 이런 〈카르타고적 평화〉는 비생산적이라고 보는 측도 있었다. 또 서유럽 전체가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태에 있는데, 그 산업적 기반을 파괴해 독일을 응징하는 행위는 유럽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는 주장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의 위협은 연합국으로 하여금 초기의 엄격한 대독일 조치를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 가장 분명한 것은 소비에트연방의 도발에 맞서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강력한 독일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전범기소와 보상조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282-3)


"1945년 이후 독일에서 이행기 정의의 핵심적 딜레마는 베르사이유조약에 대한 존 메이나드 케인즈의 평가에서 이미 잘 드러나 있다. 〈관대함과 공정 그리고 평등한 대우에 입각한 평화만이 독일재건 기간을 단축하고 독일이 또다시 수많은 우수한 자원과 기술을 프랑스에 내던지는 날을 늦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보증'이 필요한데, 각각의 보증은, 독일의 점점 커지는 분노와 거기서 이어질 일련의 보복 가능성 때문에 또 다른 추가적인 조항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 카르타고적 평화에 대한 요구는 필연적이다.〉 관대하게 다루면 독일은 새로운 침략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자원〉을 갖게 되고, 혹독하게 다루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동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1945년 8월 초에 클레이 장군은 독일인을 궁핍으로 몰아넣는 정책에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1,500 칼로리의 공산주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1,000 칼로리의 민주주의 신봉자가 될 것인가 사이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293)


"경제적 제약요인은 또한 정권 퇴진(1815년의 프랑스 또는 1945년 이후의 유럽처럼)이나 정권 붕괴(1989년 이후의 동유럽)에 따른 이행과정의 처벌과 보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일 새로운 체제가 광범위한 보상을 실시(1815년 이후)하거나, 경제재건을 추진(1945년 이후처럼)하거나, 또는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촉진한다면(1989년 이후처럼), 이행과정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과제들은 이행기 정의를 심대하게 제약할 것이다." "1945년 이후, 독일에 협력했거나 또는 점령됐던 국가에서 경제적 협력자에 대한 기소는 활발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에서 〈경제재건과 나치청산 사이의 선택〉은 전자를 선호하는 쪽으로 귀착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중앙(산업 부문)숙정위원회는 경제협력자가 경제재건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라고 판단되면 숙정대상에서 제외했다.〉 벨기에에서 적과 경제적으로 협력한 행위를 다소 관대하게 다룬 1945년 5월 25일의 특별법은 경제재건과 사회적 화합을 명분으로 정당화되었다."(294)


"이행기 정의의 저변에 깔려 있는 감정의 급박한 특성을 감안하면 신속한 재판에 대한 요구가 과도할 정도로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속함에 대한 열망은 철저함과 정의(절차적 공정의 의미에서)를 동시에 추구하는 열망과 자주 충돌한다." "법의 지배가 제약요인(또는 파괴되는)이 아닌 때에도 사법제도의 제한된 능력 때문에 신속함과 철저함에 대한 열망이 상호배타적 관계에 놓일 수 있다." "사법부는 재판을 받아야 할 정권의 일부이자 나아가 그 핵심 세력인 경우가 아주 많다. 1945년 이후의 독일사법부는 나치범죄자(특히 나치판사들)의 기소를 방해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나아가 유죄판결이 자신들의 유죄증거를 없애는 인센티브로 작용하는 문제가 있다. 가해자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으면 한결 수월하게 그 기회를 갖는다. 패전 이후 〈종전과 점령 간의 상당한 지연은 일본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와 기록을 조직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했다.〉"(299-300)


제8장 감정


"감정은 그 고유의 '행동 경향' 때문에 신중하게 고려된 행동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가장 중요한 방해기제가 감정의 두 가지 특성과 관련있다고 주장한다. 긴급성(urgency)과 조급성(impatience)이 그것이다. 나는 이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조급성은 후일 보상보다 조속한 보상에 대한 선호, 즉 시간 할인율을 1 이하로 낮추려는 경향이고, 긴급성은 나중 행동보다 조속한 행동에 대한 선호이다. 조급성은 신중함과 양립 불가능하며, 장기적인 이기심에 따른 행동으로 이해된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늘 비루하고, 잔인하고 허무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긴급성은 신중함과 양립할 수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신중함의 요청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심각한 위험에 직면했을 때,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진출하는 기회비용은 엄청나게 비쌀 수 있다. 자기방어를 위한 행위는 지체를 허용하지 않지만, 응보적 행위는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311-2)


"감정의 세 번째 특징은 감정의 짧은 반감기다. 예를 들어 폴 에크만은 그가 〈기본감정〉이라고 정의한 특징 중에서 〈급발진〉(sudden onset)과 〈짧은 지속〉(brief duration)을 제시한다. 많은 헌법의 핵심적 이념, 즉 양원제가 속도조절 및 냉각효과로 정당화된다는 논리는 이와 같은 감정기제에 의존하고 있다. 감정 소멸과 기억 소멸 간에는 복잡한 상호작용이 개입한다. 일반적인 기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멸한다. 감정이 기억에 의해서 촉발되는 한, 감정 소멸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감정이 개입된 사건의 기억은 좀 더 느리게 소멸한다. 〈감정은 망각을 늦추기는 하지만 제거하지는 않는다〉는 진술은 이 측면을 잘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기억이 관련된 감정의 행동 경향을 촉발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가 여부다. 모욕의 기억이 총천연색에서 흑백 상태로 희미해지면, 사건의 정확성은 유지할지 모르나, 그 생생함과 동기부여의 힘은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313)


"많은 이행에서 즉각적인 정의실현에 대한 긴급한 요구가 관찰된다. 객관적인 차원에서는 경제재건과 같은 다른 문제들이 우선 과제일 수 있다. 주관적인 차원에서는 이전체제의 독재자들과 협력자들의 처벌이 더 시급한 과제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 초법적 처벌은 한 가지 설명지표를 제공한다. 프랑스는 사람들이 자의적 기준으로 직접 정의를 집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약식 군사재판정을 설치했다. 모라스 롤랑은 〈정부는 철도 건설보다 정의를 먼저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속한 재판 요구가 감정으로 촉발된 긴급성과 연결되는 한, 즉각적인 재판결론에 대한 요구는 재판에 임하는 우리가 느끼는 조바심과 연결되기도 한다. 따라서 법적 절차를 단순화하는 작업은 단지 다뤄야할 사건이 많아서가 아니라 복수에 대한 열망을 즉각적으로 충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실제의 경우 긴급성과 조급성의 효과를 각각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315-6)


"감정이 그것을 촉발한 사건 이후에 시간경과에 따라 어떻게 소멸되는지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이탈리아, 덴마크, 프랑스에서는 1942~43년 이후 새롭고 더 억압적인 점령정권이 등장했다. 독일군은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퇴각하는 과정에서 초토화 전술을 펼쳤다. 이런 최근의 기억은 부역자 처벌요구를 더 강력하게 만들었다.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1945년 여름에 독일 강제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그간 다소 침잠해있던 처벌 요구가 최고조에 달했다. 반대로, 1989~1990년 동유럽의 공산당정권이 몰락할 당시, 이 체제는 이미 50년이나 이어졌고, 최악의 만행은 비교적 먼 과거에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최악이었던 스탈린시대는 1953년에 끝났다. 무력으로 진압된 항쟁(1953년의 동독, 1956년의 헝가리), 침공(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 계엄령(1981년의 폴란드)은 상대적으로 오래된 과거에 속했다. 따라서 1945년 이후와 같은 처벌에 대한 긴급한 요구는 없었다."(317-8)


# 기억과 감정의 소멸을 막는 기제들

1. 가해행위의 피해자 간 소통

2. 피해자에게 복수를 요구하는 사회의 명예 규범

3. 가해 행위를 상기시키는 물리적 흔적

4. 가해 행위가 초래한 사건의 영속성


"체코의 반정부활동가였던 작가 야힘 토폴은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1994년에 나는 수사과정에서 나를 고문했던 공산당비밀경찰(StB)의 주소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는 내 친구 중 하나를 죽이고 다른 하나를 감옥에서 강간했다. 나와 두 동료는 그를 처벌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그 전직 비밀경찰을 납치해 은밀한 장소로 옮겼다. 우리는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 잠시 그와 단둘이 있게 되었는데, 그가 너무나 두려워하고 낙담한 상태여서 그를 풀어주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내 친구들이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한 짓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친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세 개의 동기부여가 작동한다. 복수를 향한 열망, 실질적인 응보적 정의를 향한 열망, 그리고 실질적 정의의 실행에서 절차적으로 정확한 원칙을 따르려는 열망이 그것이다."(329-30)


"많은 경우 절차적 정의를 향한 열망과 실질적 정의를 향한 열망─자신을 이전체제와 구분하려는 열망과 그 체제를 엄중하게 처벌하려는 열망─간에는 갈등이 있다." "내 견해로는, 새롭게 들어선 민주주의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한다. 첫째, 소급입법의 금지나 공소시효 연장 등 기본적인 사법원칙의 존중을 강조할 수 있다. 1989년 이후 헝가리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접근방식이 그 예다." "둘째, 새로운 체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이 원칙을 파괴해야 할 필요를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1945년 이후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소급입법을 채택했다." "셋째, 가장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절차인데, 위장술을 사용해 위 두 방법을 모두 시도하는 것이다. 노르웨이 법무부는 특정범죄에 대해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은 그 가해자가 전쟁 전의 법체계에서도 똑같은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급입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331-2)


"이행 이후, 중립을 지켰던 사람들은 자신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표적이 될 수 있으며, 분노와 경멸적 행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설사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죄책감은 가해자들에 대한 이행 이후의 공격이 마치 이행 이전의 그들의 소극성을 마술적으로 무효화할 수 있는 것마냥 응징에 대한 요구를 강화한다. 협력과 저항 사이의 회색지대에 놓여있는 중립자들이 오히려 더 보복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1944년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부역자로 의심받던 판사들이 자신들의 애국심을 증명하기 위해 더 엄하게 재판에 임했다." "프랑스에서 해방 이후 초기의 법원선고가 엄중했던 이유를 〈많은 배심원들이 레지스탕스에 늦게 가담했으며 그들이 이전에 증명하지 못한 열의를 증명하고 싶어한 사실〉로 설명하기도 한다." "알제리 독립 과정에서 가장 늦게 민족해방정선에 참여한 사람들이 무슬림 알제리인(하르키스) 살해에 가장 열성적으로 가담했다."(336-8)


제9장 정치


"정당은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하여 표획득(vote seeking)에 전념한다. 또 자신들이 내세운 정책안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는 측의 선거권을 빼앗는 표저지 전략(vote denying)을 구사─전후 오스트리아에서 나치당원의 선거권 박탈─할 수도 있다." "프랑스 왕정복고 정치에서 소수의 자유주의 진영 의원들은 재산환수에 반대했고 국유재산 구입자의 권리를 옹호했다. 따라서 몰수된 재산을 둘러싼 의혹과 불확실성의 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의원들은 원래 소유주들에 대한 보상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고객은 자기 이익이 관철되었다고 생각하면 계속 고객으로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같은 논리로 선거에 임하는 의원들의 관심사는 지지자의 경제적 이익증진에 있지 않았다. 결국 자유주의자들은 재산환수 소문을 퍼뜨리는 등 사실을 왜곡한 선거전략을 동원하여 재산구입자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지지로 연결되기를 원했다. 보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착취행위였다."(351-3)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톨그리아티는 모스크바 망명 시절에는 숙정과 재판의 필요성에 대해 강경노선을 취했다. 1944년 봄, 귀국했을 때 그의 입장은 다소 완화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탈리아 공산당을 주력정당으로 키우고 〈탈파시즘 정책의 추진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게 자명한 중산층의 지지를 끌어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톨그리아티는 북부에서 일어난 이른바 〈야만의 숙정〉을 저지하려고 노력했다. 1946년,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그는 이탈리아의 이행기 정의를 거의 종식시킨 사면법을 제안했다. 이 법은 특히 법원에 재량권을 크게 위임하였다. 〈파시스트와의 거래에서 항상 단호했던 사회주의자들은 사면반대 투쟁에 앞장 섰다. 물론, 공산당과 양립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해야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공산당이 다음 해에 연립정부를 떠났을 때, 그들은 비타협적인 노선으로 돌아섰으며, 사면을 반동세력의 작태로 규정하고 강경한 어조로 반대했다."(354-5)


"〈퇴장하는〉 엘리트들은 의회정치에 참여하는 유권자의 힘을 빌려야 했다. 이 전략은 이전의 독재체제가 정치적 추종세력이나 협력자를 광범위하게 구축할 만큼 장기간 권력을 쥐고 있었거나, 새로운 체제가 자신들에게 정당 또는 압력단체를 조직하여 기존 정당에 영향력을 발휘할 정치적 기회를 제공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1989-90년 이후에도 구공산권 국가에서는 공산당을 계승한 정당들이 합법인 가운데 정화법(lustration law) 제정은 동유럽 이행기 정의 정치의 주요 골격을 이루었다." "헝가리에서는 이행 이후 첫 번째 정부가 1994년 3월에 1만 2천명이 심사대상이 되는 가혹한 정화법을 통과시켰지만, 같은 해 12월에 헌법재판소가 폐지했다. 1994년 5월의 선거 이후, 후기 공산주의자들이 집권에 성공했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정화법을 위헌 처리했기 때문에 새 정부도 그대로 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헝가리 정부는 1996년에 600명을 심사대상으로 하는 온건한 수준의 정화법을 새로 제정했다."(364-5)


"모니카 날레파는 이러한 자기징벌 조치는 사실상 차기정부가 더 강력한 숙정법을 제정하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선제적 조치'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숙정문제에 소극적으로 임하면 차기정부가 더 가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소 온건한 조치를 도입하면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 선제적 조치가 작동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아래로부터의 개정 전망이 없도록 정부가 독점적으로 법안을 도입해야 한다. 둘째, 후기공산주의자들은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잃겠지만, 강경파인 반공산주의 세력이 의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반공산주의 세력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강경파보다는 덜하지만 후기공산주의자에 비해서는 엄격한 이행기 정책을 선호하는 온건파 주류정당의 지지에 의존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후기공산주의자들은 집권기간 동안 온건한 법을 제정할 인센티브를 가진다."(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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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옹호함 -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버나드 크릭 지음, 이관후 옮김 / 후마니타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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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정치적 지배의 본질


"정치─〈순전히 실천적이거나 즉자적인〉 행위가 아닌─는 본질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곧 종속적이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정치가 그 자체로 생명력과 독자적 특성을 가진 어떤 것으로 칭송받는 경우는 드물다. 정치는 종교, 윤리학, 법, 과학, 역사나 경제가 아니다. 정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으며,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란,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와 같은 단일한 정치적 교리가 아니다. 비록 이런 교리들이 가진 요소들을 대부분 자기 것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하더라도, 정치란 결국 정치다. 정치란 그것보다 더 소중하거나 특별한 어떤 것과 〈같기〉 때문에 혹은 〈실제로〉 그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 그 무엇이다. 정치는 정치다. 정치 때문에 문제를 겪고 싶지 않아서 그것을 도외시하는 사람이야말로, 실은 모든 일을 선의善意로만 대하다가 정치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 상황에 처하기 마련이다."(20)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치란, 공통의 지배를 받는 하나의 영토 단위 내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전통을 가진 다양한 집단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집단들이 문화나 정복 혹은 지리적 조건 등 어떤 방식으로 통합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원시사회와는 달리 정치가 그 사회의 통치, 곧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타당한 대안이 될 수 있을 만큼 사회구조가 충분히 다원적이며 분화돼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질서가 수립되는 원리는 다른 질서들의 그것과는 상이하다. 그것은 자유의 탄생 또는 승인을 뜻한다. 정치란 서로 다른 진실들을 어느 정도 관용해야 한다는 것, 곧 통치란 서로 경쟁하는 이해관계들이 공개적인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가능하다는 것, 실로 그래야 통치가 가장 잘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치란 자유로운 인간의 공적 행위이며, 자유는 공적인 행위와 구별되는 사적인 일이다."(23-4)


"모든 통치가 정치를 수반한다고 말하는 것은 수사修辭이거나 혼란일 뿐이다. 물론 참주정이나 전체주의 체제에서도, 지배자가 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기 전까지는 정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본질적으로 취약한, 마지못해 하는 그런 상황이다. 설령 이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고 해도, 통치자는 이를 정상적 상황이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란 전혀 안전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장애물로 여겨질 뿐이다. 정치란 때로 자유가 없는 정체regime에서도 존재할 수 있지만, 그런 곳에서 정치는 달갑지 않은 무엇이다. 통치자들에게 이것은 통합성을 저해하는 부적절한 진보다. 통치자들은 피지배자들이 그저 분란을 알지 못하도록, 그리고 〈공중〉이 형성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따라서 궁정 정치는 사적인 정치라는 말은 용어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정치적 행위의 독특한 성격은 문자 그대로 그것의 공개성publicity에 있기 때문이다."(28)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 밖에서 살 수 있는 존재는 야수가 아니면 신뿐이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란 신성한 기원을 가진 무엇이 아니라 자연적인 어떤 것, 말 그대로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최고의 학문〉이었다. 정치가 최고의 학문인 이유는 그것이 다른 모든 〈학문〉(모든 기술, 사회적 활동, 집단의 이해 등)을 포괄하거나 설명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개별 공동체에서 희소한 자원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시적 경쟁들 사이에서 우선순위와 질서를 정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은, 생존이라는 공통의 목표 속에서 다양한 〈학문들〉이 자신들의 실제적 중요성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적절한 제도의 발전을 의미한다. 정치란 말하자면 모든 사회적 요구들이 거래되는 시장이자 가격 결정 메커니즘─물론 정당한 가격이 매겨진다는 보장은 없다─이다. 정치에서 자연발생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신중하고 지속적인 개인들의 행동에 의존한다."(33-4)


"정치란 대화의 과정이며, 그리스적인 의미에서 대화란 본래 변증법적 논증을 요구한다. 대화가 진실되고 유익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주장할 때 그것과 상반되는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나은 방법은 그와 반대되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로부터 직접 그것을 듣는 것이다. 자유로운 정부가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는 것으로, 오래됐지만 확실한 테스트가 있다. 그곳에서 가능한 효과적인 방식으로 공개적 비판이 허용되는지, 곧 반대가 허용되는지의 여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정치란 자유롭게 행위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치 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회는 분열돼 있고, 정치란 분열된 사회를 과도한 폭력 없이 통치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런 시도야말로 오히려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정치 따위〉를 존중하는 것보다 훨씬 나쁜 선택을 할 수도 있는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매우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49)


2 이데올로기로부터 정치를 옹호함


"전체주의적 지배는 정치적 지배에 대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과 가장 명확한 대조를 보여 주며, 이데올로기적 사고는 정치적 사고에 대한 명백하고도 직접적인 도전이다." "자유 정부를 그저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동의에 기초를 둔 정부로만 보는 관점은 전체주의 정권 앞에서 완전히 무색해진다.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썼듯이, 〈전체주의자들이 언제나 대중 운동에 의해 인도되고, 그들의 목적을 위해 '대중을 통솔하고 대중의 지지에 의존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소련과 공산화된 중국에 대한 대중의 광범한 지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한때 나치 독일을 부정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믿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선량한 자유주의자인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수가 통치에 대해 완전히 기만적인 이론, 곧 인민의 합의가 필연적으로 자유를 창출한다는 생각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잘못되고 위험한 징후다."(53-4)


"밀은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만 구성된 대표제 정부는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주장의 핵심은 자주 오해되곤 했다. 사람들은 〈자유 정치〉의 특징을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규정하려 했는데, 이들은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사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스스로 민주적임을 표방하는 것이 어찌하여 그토록 그럴듯해 보였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전체주의 정권들은 실로 민주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그 정권들은 대중의 지지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전체주의자들은 사회를 마치 단일한 하나의 대중이나 그것과 가까운 어떤 것처럼 다루는 방법을 알아냈다. 여기서는 물지 않고 짖기만 하는 반대자들조차 제거될 것인데, 그들이 독재 정권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자체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이론들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독재 정부에서는 잠자는 개조차 가만히 누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꼬리를 흔들며 반길 때까지 채찍질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54-5)


"나치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그저 예외적으로 효과적이며 거대한 몸체를 가진 [정치적] 신조의 집합체가 아니라, 기존에 존재했던 정치적 신조들과는 수준을 달리 한다. 이 이데올로기들은 각각 자신들이 사회의 모든 측면에 존재하는 총체적 관계의 필연적이고 배타적인 산물이라고─그래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모든 것을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명확히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전체로서의 사회가 그 자체로 자유로울 때에만, 아니면 사적 소유권이 지닌 분열적 요소로부터 또는 가능한 최대한의 일관성과 일반성, 통일성을 방해하는 인종적 이질성으로부터 자유로울 때에만, 이데올로기는 모든 내적 모순들로부터 안정적이고 최종적이며 자유로울 수 있다. 전체주의자들이 보기에, 정치 〈따위〉가 가진 제한적인 역할은 오류투성이의 기만적인 술책이자 〈사회〉의 지배를 방해하는 〈국가〉의 눈속임일 뿐이다. 『공산당선언』이야말로 〈공적 권력〉에서 〈그것의 정치적 성격〉을 제거하자고 주장한 책이었다."(62-3)


"우리 시대의 거대한 두 전체주의 정권이 모두 (열광적인 대중적 미신을 등에 업은) 한 개인을 국가의 지도자로 숭앙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단 국가가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단일한 형태로 압축하고자 하면, 그리고 사회가 일단 완전히 통합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이고자 한다면, 그것이 바그너의 〈종합예술〉이든, 아니면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나오는 〈인공의 동물〉이든 간에, 거기에는 어쨌든 예술가가 필요하다. 토마스 만의 파시즘에 관한 우화 『마리오와 마술사』가 잘 보여 주듯이, 국가를 운영하는 기술이 '신비로운 비밀'처럼 보이려면 가짜 마술사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는 모든 생각과 행위를 규율하는 전통적인 제약이나 한계를 넘어서는 길을 분명하게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하나 이상 필요하다. 그는 매우 무질서하게 분산돼 있는 사회적 힘을 하나로 묶어내는 데 필수적인 폭력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 관점을 사기와 간계 혹은 마술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70-1)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모든 시기가 곧 비상 상황이다. 자유로운 인간에게 이것은 실로 부조리한 일이다. 광신자는 대의명분에 입각한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그는 자신이 자유를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희생이 곧 자유라고 생각하게 된다." "니체는 그리스도교를 〈노예의 도덕〉이라고 보았는데, 같은 이유로 그리스도교는 대규모의 진정한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 희생은 노예의 본성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노예는 희생당할 뿐이다. 오직 자유인만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를 향유할 수 없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거나 위대하고 최종적인 대의명분을 위해─최후의 (그러나 실제로는 영원히 지속되는) 싸움에서─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려 한다. 대의명분을 위한 폭력은 그래서 자기해방적이다. 즉, 그것은 개인을 자아로부터 해방[분리]시켜, 개인을 거대한 집단성에 결합시킨다."(81-2)


"정치란 지저분하고, 따분하며, 결론이 없고, 엉망으로 뒤엉키는 일이다. 거기에는 확실성을 추구하는 열정이나 전체주의적 지식인들을 괴롭혔던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을 매력적인 질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최악의 정치적 상황에서도 한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고, 일단의 다양한 공동 경험과 그 자신의 영혼을 통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한 정치 공동체에서 〈근본 원칙들〉에 대한 합의는 결코 강압이나 기만을 통해 이루어질 수만은 없다. 정치적 정부에서 가장 기본적인 합의는 정치적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정치란 행위이며, 신뢰의 체계나 고정된 목표들의 조합으로 환원될 수 없다. 정치적 사고는 이데올로기적 사고와 배치된다. 정치가 우리에게 이데올로기를 제공할 순 없다. 이데올로기란 정치의 종말을 의미한다. 만약 이데올로기들이 약하고 체제가 충분히 강하다면, 정치 체제 안에서 이데올로기들이 서로 각축을 벌일 수는 있을 것이다."(88-9)


3 민주주의로부터 정치를 옹호함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라는 의미로 가장 흔하게 쓰이지만, 다른 모든 특별한 의미들이 바로 여기서 생겨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민주적) 다수로부터 (민주적)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토크빌처럼 평등의 동의어로 사용할 수도 있다. 허버트 스펜서에게 민주주의는 지위나 부의 격차가 크지만 동시에 계층 이동성이 매우 높은 (다원주의적) 자유기업 사회를 의미한다. 그것은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 뽑힌 (민주적) 정부에 대해 헌법적 제한이 가해지는 정치체제를 의미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인민의 의사〉 혹은 〈일반의지〉가 헌정적 제도라는 〈인위적〉 제한을 넘어서는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단지 〈1인 1표〉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진정한 선택권〉이라는 의미를 덧붙이려고도 한다. 포괄적으로 보면, 민주주의란 특정한 제도적 원리나 〈삶의 방식〉, 특정한 유형의 정치나 통치 방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94-5)


"민주주의가 식민지 아메리카처럼 이미 자유로운 체제가 수립된 곳에서 나타났을 때, 그것은 정치적 자유를 확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그것이 혁명기 프랑스나 러시아에서 나타났을 때, 그 결과는 전혀 달랐다. 민주주의는 실제로 중앙집권화와 전제정치를 강화할 수도 있다. 통치의 수단으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대중적 인기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유지하며, 기계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마침내 모든 반대파들을 괴멸시켜야 할 필요를 만들어 낸다. 인민은 국가와 당을 파괴하려는 지속적인 음모(잘해야 절반의 진실이거나 전적으로 거짓인)에 대한 소식 때문에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미래의(그리고 항상 미래형인) 막대한 이익이라는 거창한 약속과 희망에 고무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자유 정부를 안정화시킬 뿐 아니라, 비자유주의적인 정부를 강화하기도 하고, 실제로 전체주의를 실현시키기도 했다. 처음으로 사회의 모든 계층이 통치자에게 중요해졌지만, 동시에 그들 모두가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97)


"인민주권이라는 민주적 교리는, 모든 발전된 사회는 다원적이며 다차원적이라는, 정치의 씨앗이나 뿌리에 다름없는, 핵심 관념을 위협한다." "토크빌은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에서 (민주적 국가를 위협하는) 이 새로운 현상을 〈민주적 전제정〉이라 이름 붙이고, 그 특성을 이렇게 묘사했다. 〈사회에는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계급 간의 구별도, 고정된 신분도 없다. 개인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인민은 서로 대단히 닮아 있는데 사실 똑같다. 이런 혼란스러운 대중이 유일하게 정당한 주권자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대중은 그들의 정부를 직접 통제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감독할 수 있는 권한조차 박탈당한 상태다. 이 대중 위에는 그들과의 어떠한 협의도 없이 그들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단일한 행정의 지도자가 존재한다. 이 지도자를 통제할 수 있는 대중의 의견은 제거돼 있다. 그를 체포하려면 법이 아니라 혁명이 필요하다. 원칙적으로 그는 심부름꾼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주인이다.〉"(103-4)


"민주주의란, 지성사적으로는 인간이란 어떤 면에서 평등하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신념을, 헌정적 차원에서는 다수의 통치를, 사회학적으로는 가난한 자들의 통치를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를 정체나 혼합정에 필수적인 요소로 보았지만, 민주주의 자체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직접 통치라는 불가능한 위업을 달성하려는 시도이며, 다수의 직접 통치란 실은 다수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무제한적으로 휘두르는 자들의 통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통치는 정치에 선행하지만, 민주주의는 정치에 선행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는 둘 다 가능하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특히 〈선동가들의 오만〉에 의해 독재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반짝이고 아름답다〉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현대의 경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확한 묘사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104-5)


4 민족주의로부터 정치를 옹호함


"민족주의는 다음의 네 가지 중에서 하나 이상의 주장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첫째, 그것은 (소수자를 억압하는) '민주적 민족주의' 또는 〈인민주권〉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기능할 수 있다. 둘째, 그것은 제국주의 또는 '외부의 압제와 착취'에 대한 모든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데, 그로부터 민족[인민]을 해방시킨 사람들이 저지르는 과도함을 모두 용인해야 한다는 식의 마음을 심어 준다. 셋째, 그것은 끔찍하게도 '인종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던 '오래된 국가에서 등장한 민족주의'조차 위기의 시기에는 외국인 혐오를 낳을 수 있고 그것은 그 위기 자체보다 더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며, 최소한 한 국가가 외국인들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게 된다. 아마도 민족주의의 주장에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에 차가운 회의주의를 섞음으로써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라는 비등점으로부터 정치적 관용이라는 인간적 체온으로 그 온도가 내려오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124)


"민족주의는 정치적 정의正義와 그 어떤 특별한 관계도 없다. 마찬가지로 부정의와도 별 관계가 없다. 민족주의와 관련해서 가장 분명한 것은, 어쨌든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그것은 국가의 자격에 대한 그 어떤 객관적 기준도 제공하지 못하며, 무엇이 민족인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주관적 힘만은 대단히 강력하다. 르낭은 이렇게 말했다. 〈민족은 이미 치러진 희생과 여전히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희생의 욕구에 의해 구성된 거대한 결속이다.〉 민족성은 민족을 형성하겠다는 결정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폴란드인, 독일인, 헝가리인, 아일랜드인, 미국인, 페루인, 알제리인, 가나인, 말리인이라는 의식은 누군가가 설득한다고 사라질 그런 것이 아니다─아마도 누군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민족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을 통해 민족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너무 멀리 가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정도일 것이다."(127-8)


"근대 민족주의는 프랑스혁명의 산물이다. 그것은 봉건제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 버린 공적 질서에 대한 귀속감을 대체했다. 프랑스혁명은 그런 귀속감을 만들었지만, 또한 파괴도 했다. 군중들은 넘실대는 파도 위에 떠있는 것처럼 들떴고, 때로 이전보다 영광스럽게 대우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뿌리를 잃어버렸고 어디에 소속돼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민족주의가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래는 일정한 영역 내에서 하나의 가족이었다고 말했다. 민족을 무장시키는 일이 유럽 전체로 번졌다. [민족으로 구성된] 시민군은, 첫째, 패배할 때조차 믿을 만하다는 점이 증명되었고, 둘째, 용병들에게는 불가능한 분투와 희생을 그들에게는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민족주의는 프랑스혁명의 보편주의가 무너지는 가운데 나타났다. 민주주의가 그것의 힘과 신념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지만, 이와 동시에 통치 체제로서는 참혹하게 실패했을 때, 나폴레옹의 민족주의가 등장했다."(129-30)


"민족주의자들은 그들이 민족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줘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혁명적 정의의 시대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으며, 한때 민족주의가 개인의 자유가 넘쳐흐르기 위한 조건이자 [자유를 위한] 최선의 기반으로 주장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자주 상기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이 아직 사실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정치적 자유와 민족주의 사이의 균형은 전 세계적으로 흔들리고 있고, 이 균형이 실현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근거들도 충분하다." "아마도 가장 깊고 가장 폭력적인 억압을 당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인의 자유를 갈망하고 거기에 천착할 것이다. 반면 오직 모욕과 불의만 알고 있는 사람은 국가적 복수심이나 민족적 위신에 대한 열망 앞에서 자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될 것이다. 파드라크 피어라스[패트릭 헨리 피어스]의 자랑, 곧 식민지에서 자유인으로 살기보다는 자유로운 아일랜드에서 죄수가 되고자 한다는 말은 참으로 사실일 것이다."(150-1)


# 파드라크 피어라스 : 아일랜드의 교사, 변호사, 작가이자 민족주의 운동가로서, 1916년에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에 반대하는 '부활절봉기'를 이끌었다.


5 기술로부터 정치를 옹호함


"〈과학〉, 〈기술〉, 〈행정〉 등과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들이 필연적으로 정치 혐오를 조장한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들은, 타협의 과잉과 확실성의 결여에 시달리고 있는 정치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특정한 사고 양식을 구성하는 상징들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믿음은 종종 과학이나 기술 또는 행정과 같은 행위들에 연관돼 있는 것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무지 속에서 유지되는데, 그럼에도 그것은 상당한 영향력과 설득력을 발휘한다." "물론 기술은 과학적 원리를 도구나 상품에 단순히 적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사회적 교리를 왜곡하기도 한다. 인간 문명이 맞닥뜨린 모든 중요한 문제들은 곧 기술적인 것이며, 그래서 충분한 자원만 뒷받침된다면 현존하는 지식이나 조만간 얻을 수 있는 지식들에 기초해 그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기술〉은 갖게 한다."(155-6)


"그래서 〈기술주의자〉에게 모든 국가란 단지 사회를 위해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보인다. 국가를 권리의 보호자나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의 중재자가 아니라 행복이라는 소비재의 생산자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이 같은─주인인 사회를 위해 국가가 하인으로 종사하는 복지국가로서의─관념조차도 진정한 〈기술주의자〉에게는 지나치게 온화하고, 자유주의적이며, 정치적인 해석이다. 자기 완결적 개념으로서의 〈기술〉에서는 모든 사회가 그 자체로 하나의 공장이며 국가는 그것의 관리자다. 공장은 생산자의 필요와 행복을 위해 생산하며, 모든 사람은 곧 생산자로 상정된다. 물론 관리자의 지시나 기술, 허가 없이는 아무것도 생산될 수 없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위의 목적이 그 행위 자체에 있는) 행위들, 곧 예술, 사랑, 철학 그리고 휴식─생산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하에 관리자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면─은 그 자체로는 생산과는 관계없는 비효율적인 것들이다."(158)


"모든 산업 문명을 〈기술〉을 통한 공통된 발전 단계의 하나로 보는 사람에게 전형적인 시민상은 '엔지니어'다. 엔지니어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시민 영웅이다. 그가 다양한 사회적 조건에서 정치인, 사업가, 관료, 장군 또는 정당 지도자들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그는 정치와 굶주림의 고통(그리고 질투심?)이라는 딜레마로부터 우리를 구해 낼 것이다." "엔지니어들은 모든 종류의 교육을 기술과 훈련으로 집약할 것이고, 그것의 목적은 사회를 근본적인 수준에서 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엔지니어들을 배출하는 데 있다. 엔지니어들은 유지나 관리가 아니라 발명과 건설의 관점에서 사고하며, 일반적인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스럽게 〈정치 따위〉를 공격하는 교리에, 그리고 기존의 위대한 기술적 진보를 보여 주었고 이제는 스스로를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모든 분야에 개입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수용한 정부에 매료될 것이다."(159-60)


"진정한 과학적 활동에 대한 왜곡, 곧 과학을 그 자체의 고유 영역을 넘어서 적용하려는 모든 시도를 〈과학만능주의〉scientism라고 불러 보자. 과학만능주의가 주장하는 것의 규모는 [하나의 원리로 전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 이데올로기의 그것과 일치한다. 하나의 과학 법칙은 일반화라는 목표를 위해 그것이 다루는 모든 사례들에 적용돼야 한다. 단 하나의 반대 사례도 과학적 이론을 반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는 자신이 세계 질서의 기반임을, 곧 모든 것에 대한 포괄적 설명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 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거대한 주형틀을 주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전체주의의 신봉자들의 관점에서는 눈앞의 정치적 이슈들이란 단지 완전히 합리적인 세계 질서를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전략의 한 부분으로서의 전술, 곧 역사적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보편적 일반화의 범위[크기]와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있다."(166-7)


"과학만능주의와 별로 관계가 없는 기술적 사고도 있다. 그들은 행정이 항상 정치와 분명히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일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서 어떤 일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보다는, 공무원의 경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정부 형태에 대해서는 바보들끼리 경쟁하도록 두면 된다. 최상의 행정을 가진 국가가 최상의 국가다.〉 [그들이 보기에는] 경험 없이 하는 말이 곧 이론이며, 국가 사무를 실제로 돌보는 사람들이 정부를 더 잘 운영할 수 있다." "물론 그 공무원은 모든 문제를 다 기술적인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는 아마도 자신을 보다 나은 〈민주적 의사 결정 기구〉의 〈수단이자 방법〉 역할을 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정부의 '모든' 결정이 〈과학적으로〉 또는 명확하고 사전에 잘 준비된 기술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는 그런 기술을 통해 가능한 일들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177-8)


"그런 〈전문화〉에 대해 극심한 경멸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모하게 위장한 테크노크라트 유형도 존재한다. 심지어 그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맞서 다재다능하고 현명한 다방면의 아마추어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스스로를 전문가주의에 맞서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그는, 심지어 공무원을 위한 그 어떤 형태의 특별 교육에도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정말로 정치 이전pre-political의 발상이다. 그는 정부의 첫 번째 의무가 통치라는 진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개혁적인 정치인들이 대체로 이 같은 점을 충분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매우 정확하게 느낀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정치 이전의 통치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다." "어떤 정부에서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행정이 아니라 정부 그 자체다. 공무원들은 정치인들에게 그들이 잘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비난하지만, 정치야말로 질서 속에서 다양성과 변화를 가져온다."(178-9)


"〈기술주의〉는 자원의 [정치적] 배분이라는 문제와 자원이 [기술적] 적용이라는 문제를 혼동하고 있다. 여기서 적용은 기술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생산에 투입될 자원과 그 결과물의 배분에 대한 권위 있는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야 적용될 수 있다. 이런 결정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바로바로는 아니더라도 수개월 또는 소년이 지나도록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사실 이런 결정이 〈시장〉에서 내려지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경제란 과학이며,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학은 우리에게 자원의 배분에 대한 정치적 결정에 유용한 증거들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증거들도 보여 줄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이 그 자체로 어떤 결정을 미리 내릴 수는 없다. 모든 자원이 경제적인 것도 아니며, 모든 대체물들─가령, 자유 같은─이 다 값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180-1)


6 정치의 친구들로부터 정치를 옹호함


# 정치의 (거짓) 친구들

1. 비정치적 보수주의자

2. 정치에 무관심한 자유주의자

3. 반反정치적 사회주의자


"자신이 정치보다 상위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정치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돼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들 모두의 위에 있다고 본다. 그는 자신이 탐욕스럽게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국정 운영에 마음대로 개입하는 온갖 정치인들과 로비스트들, 그리고 출세주의자들로부터, 국가에 필수적인 질서를 수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개들에게 언제든 뼈다귀를 던져 줄 준비가 돼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정부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라면 통치의 한 수단으로 후견주의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 그가 존스 박사에게 말한 대로, 정치란 바로 〈이 세계에서 성공하는〉 한 가지 방법인 것이다. 비록 저 졸부들과 약탈자들을 제거할 수 없다고 절망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정치 위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으며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확신한다. 다시 말해, 이 용기가 지속되는 동안만큼 그는 이 〈작은 개〉들을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186)


"이런 보수주의자는─적어도 그가 속한 인민들에게는─압제자는 아니다. 그가 훈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저 자의적인 것 혹은 자의적이라는 평판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는 편협한 사람은 아니다. 대중을 그 이전보다 더 불안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떤 이념이라도 허용할 것이다. 검열은 사회를 통제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그것은 [스스로 자제할 줄 아는] 신사들이나 기본적으로 인기가 별로 없는 작품들에는 적용될 필요가 없다. 또한 그는 진리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어떤 일반적인 이념을 박해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모든 광신주의를 혐오하는 그의 태도는 정치의 기반이 될 수 있지만, 그는 정치인 역시 경멸한다." "재산이야말로 인간에게 여가를 가능하게 하는 지식과 자립의 조건을 제공하는 유일한 요소다. (토지 귀족의 후예와도 같은) 보수주의자들에게 재산권은 정치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이며, 결코 정치적 입법에 의해 침해될 수 없는 권리다. 그는 재산권이라는 비밀 뒤에 자신을 감춘다."(187-8)


"다음으로, 정부의 첫 번째 임무는 통치하는 데 있다는 케케묵은 사실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가 있다. 이런 관점이 잘못된 진실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필요한 진실이라는 점을 자유주의자들이 자주 상기해야 하는 만큼, 보수주의자들도 이것이 충분한 진실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모종의 질서가 존재하는 상태와 완전한 무정부 상태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통치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국가를 유지하는 문제에서, 우리는 그저 통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잘 통치할 것인가의 측면을 더 자주 생각해야 한다. 잘 통치한다는 것은 피통치자들의 이해관계를 잘 관리한다는 뜻이며, 그들의 이해관계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려면 정치적 주권 기관을 통해 그들이 대표되게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또한 그들의 이해관계가 모두 또는 단번에 충족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려면, 어떤 국가에서도 이해관계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그들 스스로 경험하고 눈으로 보게 하는 수밖에 없다."(189-90)


"모든 내용을 다 제거해버리고 [보수주의를] 단지 정치학 연구의 방법론이라고 말하면, 이 주장은 동어반복이 되고 만다. 즉, 모든 것이 전통이라면, 모든 것이─정말로─전통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 경우, 우리는 경험의 모든 흐름을 인식 가능하고 유용한 차원으로 통제하기 위해 다른 기준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학문적 보수주의는, 겉으로는 방법과 교육, 철학에 대해서만 말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내용과 본질을 몰래 들여온다. 〈전통〉이 각기 다른 전통들의 총합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된 전통이라는 식으로 이해될 경우, 그것은 이데올로기와 매우 흡사한 개념이 된다. 어떤 하나가 모든 것을 이해하는 방식이 되고, 다른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방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전통주의자와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들은,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바꾸지 않고는 어떤 중요한 것도 바뀔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그들은 똑같이 과장된 전제로부터 단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릴 뿐이다."(198-9)


"보수주의자가 기대가 너무 적은 사람이라면, 자유주의자는 기대가 너무 많은 사람이다. 자유주의자는 어떤 비용이나 고통 없이 정치의 모든 열매를 즐기고자 한다. 그는 나무가 아니라 그 과실에 찬사를 보내고 싶어 한다. 그는 열매─자유, 대표제 정부, 정직한 정부, 경제적 번영, 무상교육이나 보통 교육 등과 같은─를 수확하기를 바라지만, 수확한 후에는 그것들을 정치와의 접촉이라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 한다. 그는 어떤 가치들을─정치의 밖에서 정의함으로써─자연적 권리로 취급하거나 정치란 단순히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일이라는 식의─그래서 정치에 대해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매우 좁은─견해를 가질 수도 있다. 이런 자유주의자는 정치와 행정, 국가와 사회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존재한다고 믿는 테크노크라트에 가깝다." "그는 이성의 힘과 여론의 일관성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정치적 열정이 가진 힘과 자신들에게 분명히 좋은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괴팍함을 과소평가한다."(205)


"그는 실용성을 위해 원칙이 훼손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할 것이다. 그는 계몽된 여론이 [어떤 조정이나 타협도 없이] 있는 그대로 단순 명료하게 대표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 정치인들은 단지 그 여론의 힘 안에서 눌려 찌그러지는 존재다. 그들은 창조적 힘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중개인들에 불과하다. 사실 미국 영어에서 〈정치인〉politician이라는 단어에는 18세기적인 부당한 비난의 의미가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서의 정치인이란 부당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해결사〉이며, 사업가들조차 이들을 나쁜 사람 취급한다. 자유주의자는 이런 요소들을 정화해 버리기 위한 정치적 성전聖戰에는 참여하겠지만, 직업 정치인은 혐오한다." "그는 어떤 한 개인[특히 자신]을 대통령보다 더 옳은 사람이라고 찬양하면서도, 그것이 가져올 위험과 그것이 얼머나 무책임한 태도인지 알지 못한다. 달리 말하자면, 이것은 독선과 내숭이라는 악덕을 품은 정치의 유형이다."(206)


"자유주의자들은 정치를 한편에 제쳐 놓고 다른 대안들을 찾았다. 자유의 순결성에 대한 애착이 너무나 큰 나머지, 그들은 정치라고 하는 남자들의 세계로부터 그녀를 떼어 놓으려 애쓸 정도다. 자유에 대한 그의 사랑은, 정치와의 관계만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대단히 훌륭하고 분명하다. 하나의 신조로서 자유주의를 본다면 그것이 추구하는 개별적 목표들은 가치가 있겠지만, 동시에 그것은 정치에 대해 적절하지 않은 설명과 이해를 제공한다. 자유주의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개인에게 가해지는 모든 박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에 따르면] 그 견해들은─정치적 견해가 도덕적·종교적 견해와 같은 수준의 경험에 기초하는 것처럼─그것이 [단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협력적 수단들을 제거해 버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정치적이지 않은 자기 이익이란 없으며, 정치적이지 않은 공동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211-2)


"개인주의는 그 자체로는 정치적 신조가 될 수 없다. 그가 가진 자기 정체성은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정치는 이데올로그들이 하듯이 개별성을 해소해 버리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물론 어떤 유형의 정치도 자기 정체성이라는 위대하고 분명한 사실에서 곧바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 그 자체는 분명한 자기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모든 행위란 결국 개별 인간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정치를 만들어 내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은 전체로서 하나의 도덕적·사회적 통일체로 간주될 수 없는 영역 내에서의 집단적 이해들이다.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 집단의 이해는, 자신의 양심이라는 책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가진 온화하고 명확한 것이라기보다는 매우 거칠고 즉흥적인 것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옹이투성이의 비틀어진 나무를 돌볼 생각은 없이 그저 부드러운 열매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다."(212)


"정치 이론으로서의 사회주의는 보수주의의 편협성과 자유주의의 보편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당과 사상가들이 가진 특징적인 위험은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그것은 확실성을 추구하고 정치를 경멸하는 경향을 낳는다. 정치적 방식의 느린 속도를 견디지 못하게 되면, 그들은 정치가 평등의 진전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부르주아들이 이용하는 속임수나 음모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의 유혹에 다시 빠지게 된다." "사민주의적인 정책이 집행된 실제의 경험을 보면, 그것은 공상적 이상주의나 진보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유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과는 대단히 거리가 멀다." "사민주의 역시 기존의 정치적 맥락에서 출현한 것이다. 사민주의 그 자체는 기존의 정치적 관습과 가치를 확장시킨 것이지, 비정치적 정부를 지향한다는 쪽으로의 급작스런 방향 전환이나 [전에 없던] 도전이 아니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책임감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위대한 스승이다."(217-9)


"그들은 보수주의자처럼 현실에 안주하거나 자유주의자들처럼 고상한 척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그들은 어디로든지 가서 사회의 모든 층위를 들여다볼 것이고, 그들의 연민은 더욱 열정적이며 광범위해질 것이다. 물론 이런 그들의 태도는 [결국에는] 위선적인 것이 된다. 사람들이 사회주의자들이 세운 기준이나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당이 사회주의적 원리들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선거에서 지는 게 더 낫다〉라는 식의 말을 누구나 듣는다. 요지는 간단하다. 그런 태도는 결코 정치적이지 않다. 막스 베버의 구분에 따르면, 그들은 책임 윤리보다는 신념 윤리를 추구한다. 그들은 〈순전히 정치적인〉 고려 사항들, 곧 모든 정치 공동체에는 상호 조정돼야 하는 서로 다른 다양한 이해관계와 도덕적 목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멸한다. 이 같은 사실은 누구든지 정치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222-3)


"이런 부류의 정치적 반反정치가 가져오는 최종적인 부조리는 너무나 편협한 나머지 〈학생 정치〉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그런 행동 유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현실의 정치적 활동을 회피하고자 하는) 아마추어들이 (정치적 교리들과 대의명분들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원하기보다는, 하나의 교리와 하나의 〈대의명분〉을 원하는) 광신자들의 행동 양식에 빠질 때 나타나는 유형이다. 이것은 선거에서 승리해 유권자들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광범하고 제한적이지만 직접적인 이익보다는, 〈푸르고 상쾌한 대지 위에 세워지는 영국의 새로운 예루살렘〉을 꿈꾸는 사람들의 행동 유형이다. 〈학생 정치〉는 확신의 정치다. 집단들, 특히 학생 집단은 그들이 가진 대의명분이 무엇이든 간에 당대의 모든 개별 이슈들에 대해 특정 원칙이나 〈그들만의 기준〉을 확정적으로 적용하려는 전형적 집단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생각은 그런 정치가 실제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게 만든다."(224-5)


"모든 문제를 원리적 차원의 문제로 치환시키는 사람은 정치에 만족하지 못한다. 〈x나 y를 얻기 전까지〉 우리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든지, 〈우리는 a나 b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결코 정치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심지어 정치적 시스템 안에서도 그렇게 행동한다. 〈우리의 이상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절망 속에 내던지거나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상이란 이상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가까운 시일 내에 나타날 새로운 질서를 위한 계획이 아니다. 또한 이상은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를 위한 수단과 결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이상─〈진정한 평등〉이나 〈사회적 정의〉 같은─과는 타협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더 많은 국유화〉나 〈민주주의〉가 결코 포기되거나 수정될 수 없는 첫 번째 원칙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것들은 상대적 수단에 불과하며, 그것들이 적절한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른 것이다."(227-8)


7 정치를 찬미함


"정치는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정치는 자유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그것의 존재 여부가 곧 자유의 기준이다. 자유민의 칭찬만이 노예근성과 잘난 척하며 겸양을 떠는 위선, 양자 모두로부터 자유롭다." "정치란─기존 질서가 제공하는 최소한의 이익을 보존한다는 점에서─보수주의적이다. 정치란─특정한 자유들과 결합돼 있고 관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는─자유주의적이다. 정치란─여러 집단들이 공동체의 번영과 생존을 위한 공정한 기준을 확보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의식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조건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사회주의적이다. 이 가운데 무엇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는 시간, 장소, 조건은 물론 사람들의 정서 상태에 따라 다양하며, 어떤 경우에는 이 모든 요소들이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 그들 간의 대화를 통해 진보가 가능하다. 정치란 단지 요새를 지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성벽의 밖에서 다양한 언어를 가진 풍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235-6)


"정치적 권력이란 (문법적으로 보자면) 가정법의 권력이다. 정책이란 과학에서의 가설과 같을 수밖에 없다. 그 가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을 상정하고 수용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그것이 진실인지 확인할 수 있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정치 역시 창조적인 쪽과 회의적인 쪽 모두에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 찬사를 받아야 한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 정책을 바꿀 수 없도록 하는 어떤 장치들을 고안해 내려 한다면, 그는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은 헌법 제정자들이 정치에 무엇인가 영구적인 것을 담아내려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무용한 시도인 동시에 (어떤 제스처를 취하는 것도 정치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반대를 금지하거나 파괴해 버리려는 독재적 시도이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정치 역시 언제나 물러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기 때문에 찬사를 받을 만한 것이다."(243-4)


"확실히 잘 뿌리내린 법적 질서는 자유와 정치를 위해 언제나 필요하다. 법은 모든 복잡한 사회에 필요하며, 사람들은 비교적 정확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상당히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자유 사회의 필요악은 정치가 아니라 소송이다)." "정치란 분명히 절차라는 측면에서 찬사를 받아야 한다. 정치의 업무가 서로 다른 이해들을 조정하는 것인 한, 정의는 그저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구현되는 과정을 사람들이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법의 통치〉라는 문구가 담고 있는 의미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조정을 위한 체계는 절차적으로 복잡하고 양측 모두에게 불만족스러운 것이지만, 모든 중요한 반대의 목소리와 불만을 듣기 전까지는 결정이 내려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차가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하지만, 이는 반대의 목소리가 얼마나 타당한지를 평가한 후에야 가능한 것이다."(246-7)


"정치적 행위가 중요한 이유는, 절대적인 이념이나 그 자체로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보통 사람들의 판단 속에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도덕성은 이상적인 행위에 대한 그 어떤 믿음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정치적 도덕성은 사람들이 원할 때 그런 진리들을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할 뿐이며, 그들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정부의 강압적 수단으로 격하시키지도 않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고 어떤 이념의 활동이 〈완전한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면, 그런 진리나 이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강요된 복종이라는 가짜 자유에 끌어들이지 않는 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도록] 하자." "물론 자유freedom and liberty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며, 도덕성을 대체하는 수단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일부이며, 정치 역시 정치일 뿐이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실제로 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256-7)


"〈공화당은 노예제가 우리 안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제거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그리고 그것에 관한 모든 헌법적 의무들을 특별히 고려해 왔습니다. (···) 우리 중에서 노예제가 제가 말씀드린 어떤 측면에서도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장소를 잘못 택한 것이며 우리와 함께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중에 노예제가 너무나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나머지, 그것이 우리 사회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단숨에 제거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무시하는, 또한 그와 관련된 헌법적 의무들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와 같은 정당에 있다면, 그 역시 잘못된 곳에 서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 행동에서 그 사람에 대한 공감을 부인하는 바입니다〉(1858년 10월 15일 링컨의 연설에서). 이것이 진정한 정치적 도덕이며 진정한 정치적 위대함이다."(258)


"정치인들은 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위선자들, 그리고 개혁의 반대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대한 변명을 할 때 시간을 들먹인다." "1955년에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적 지원을 받는 미국의 모든 학교에서 인종에 근거한 차별은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책임 당국에 즉각적으로가 아니라─이것은 자유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의 사용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신중한 속도〉로 통합할 것을 명령했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아마 법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혜가 담긴 행위였다. 그 법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이 법원과 도덕주의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다. 물론 현재의 연방정부 기구들이 시간이 걸린다는 핑계를 대면서 기존의 입장[차별 관행]을 시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방치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비열한 행위가 될 것이다. 시간 그 자체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정치적 시도는 또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259-60)


"〈이 싸움에서 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연방을 구하는 것이지, 노예제를 유지하거나 폐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단 한 명의 노예도 해방하지 않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만약 모든 노예를 해방시켜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어떤 노예는 해방시키고 어떤 노예는 그대로 내버려 둠으로써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또한 그렇게 할 것입니다. (···) 나는 공적 의무에 대한 내 견해에 입각해서 내 목표를 말하고 있는 것이며, 제가 자주 언급했던, 모든 사람은 어디에서든 자유로워야 한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수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링컨은 연방의 수호라는 정치적 질서 그 자체를 다른 모든 것들보다 우선시했는데, 그것은 그가 흑인들의 고통과 배제에 무관심했기 때문이 아니다─그는 그것을 염려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연방이, 곧 북부와 남부 사이에 공동의 정치적 질서가 다시 복원되어야만, 이와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261-2)


"정치에는 존재하지만 경제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상대와의 창조적 대화다. 정치는 자유로운 문명이 의지하는 대담한 신중함, 다양한 통합성, 무장된 유화책, 자연적인 인공물, 창의적인 타협이자 진지한 게임이다. 정치인은 개혁하는 보수주의자이며, 희의하는 신자이고, 다원적인 도덕주의자다. 정치는 활기 넘치는 냉철함, 복잡한 단순성, 난잡한 고상함, 거친 정중함, 그리고 장구한 신속성을 지녔다. 그것은 대화로 귀결되는 갈등이며, 우리에게 인간적인 차원에서 인도적인 과제를 부여한다. 그것이 직면하게 될 위험에는 끝이 없는 반면, 자유에 대한 책임이나 그것의 불확실성을 회피하려고 내세울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들은 너무나 많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반복해서 상기해보자면, 〈폴리스가 점점 더 하나의 통일체가 되어 가면, 그것은 마침내 폴리스가 아니게 될 것이다. (···) 폴리스를 그런 통일체로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 결과는 폴리스의 파멸일 것이기 때문이다.〉"(2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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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성찰하다 - 중산층 붕괴, 포퓰리즘, 내셔널리즘…… 유럽중심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
다니엘 코엔 지음, 김진식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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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20세기가 낳은 세 번의 좌절

1.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경제성장이 실종되자 단조로운 노동과 빈곤한 소유를 떨쳐버리고 풍요로운 부를 만나리라는 기대가 무너졌다.

2. 레이건 당선은 도덕성에 기반한 절제된 자본주의를 수립하겠다는 '구호'의 승리였지만, 그 실상은 무절제한 부의 불평등과 '탐욕'의 승리였다.

3. 후기산업사회를 지나면서 경제적 풍요도, 도덕적 기반도 잃어버린 시민들은 모든 형태의 자유주의를 거부하고, 포퓰리즘의 손을 들어주었다.


제1부 떠나다, 돌아오다


"20세기 초에 나온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기업의 성서로 통했다. 그는 작업 시간 단축을 위한 엄밀한 시간 관리를 위해 '작업장 스톱워치' 도입을 권한다." "테일러는 자신의 시스템이 인간적 비극을 낳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 스스로 〈우리 동료 노동자들의 눈에 분노가 이글거리는 것이 보인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새로운 생산 방식 덕분에 더 부유해진 노동자들이 작업장 밖에서는 번영의 결실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동차의 헨리 포드는 재빨리 이를 깨우쳤다. 노동자들을 힘든 연속 작업에 붙들어두려면 가능한 한 많은 임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생하는 시간이 있지만 즐기는 시간도 따로 있다는 것이다. 소비하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 산업사회 밑바닥에 녹아들어 있는 이런 정신분열증은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환경에서 생겨나는 피로뿐 아니라 예상치 않았던 권태와 무기력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소비 때문이었다."(21-2)


"(소비사회가 소시민들에게 '계산과 질서'로 된 행복을 약속해준다고 말한) 롤랑 바르트에게서 영감을 얻은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에는 근본적으로 긴장이 관통하고 있다고 본다. 소비사회는 안락도 원하지만 동시에 비범함도 갖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소비사회는 〈그 자체의 수동성과 본질적으로 행동과 희생에 들어 있는 사회적인 도덕〉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미디어를 통해 삶을 각색, 극화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보여주는 평온함은 파렴치한 시장 거리를 간신히 빠져나온 대단한 위업처럼 보이게 된다. 그리고 폭력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폭력을 본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평온함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소비사회는 풍요롭지만 위태롭게 포위된 예루살렘 같은데, 이게 바로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다. 베트남전의 공포 앞에서도 긴장을 풀고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이데올로기 또한 바로 이것이다.〉"(23-4)


"보드리야르의 분석을 보완한 앨버트 허시먼은 소비사회 인간의 무기력은 바로 번영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를 만끽하고 있다고 여길 때는 좋은 경제 상황으로 풍요가 기대치를 뛰어넘을 때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는 더 큰 만족과 더 큰 비범함, 더 많은 관대함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번영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다. 이미 도달한 풍요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 만족이 끝나는 순간 소비 욕망은 재빨리 되살아난다. 저성장 시대에는 우선권의 본말이 전도된다. 위기를 접하면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변하면서 자신의 이해로 물러서게 된다. 그러면서 경제적 불황과 정신적 불황이라는 두 방향의 불황이 전개된다. 허시먼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경제 사이클에 역행한다. 인간 욕망은 호경기에는 진정성을 원하고 불경기에는 물질적인 부를 원한다. 이 이론을 통해서 허시먼은 1960년대를 해석하고 또 경제 위기로 인해 소시민적인 안락의 요구가 강해지는 1980년대의 보수주의 혁명을 예상할 수 있었다."(24)


"1973년 10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욤키푸르 전쟁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생산 감축을 결정하자 유가는 급등한다. 갑자기 선진국의 경제성장이 무너지면서 더 이상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다. 오일쇼크가 실은 더 깊은 파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시간이 얼마 지난 뒤였다. 전후의 눈부신 성장기는 오늘날의 중국처럼 유럽이 미국을 따라잡던 시기였다. 유럽인의 생활 수준이 미국인의 생활 수준에 가까워질수록 성장은 조만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이런 사실을 예측한 경제학자는 거의 없었다. 대량 생산을 기반으로 한 생산성 향상은 미국에서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갤브레이스의 『풍요로운 사회』에 나오는 표현을 빌려서 말하자면, 영광의 30년은 생산 증가가 분배를 대신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지배보다는 시스템 조절 기구에 가까웠다. 경제 위기와 함께 노동자의 보루나 막강한 노동조합 권력 같은 것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노동계급은 괴멸하고 있었다."(52)


"탈공업화는 여러 요소가 섞여 있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말하자면 공업은 자기 성공의 희생물이라 할 수 있다. 예전의 농업처럼 자신이 만들어낸 생산 이익은 마침내 그 자체를 무용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제조 비용을 절감한 기업은 처음에는 이익을 보았다. 자동차나 전자시계가 저렴해지자 누구나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세는 수요를 창출하고 생산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100퍼센트 가까이 자동차를 소유하면 높은 생산성으로 인해 재고용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산업이 쇠퇴하자 거기에 맞춰져 있던 사회도 쇠퇴하기 시작한다. 산업과 함께 기업 지도자와 엔지니어와 중견 간부를 거쳐서 현장의 노동자를 연결하던 견고하고도 연대감 있던 회사 조직도 사라진다. 전기와 내연기관이 제공해준 이점을 모두 소진한 자본주의는 이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엄청난 불확실성의 시대가 열리면서 임금 인상의 약속은 해고와 실업의 위협으로 바뀌고 회초리가 당근을 대체하게 된다."(53-4)


"68혁명으로부터 거의 정확히 10년이 지난 1978년 5월 9일, 68혁명이 꿈꾸던 해방의 유토피아는 폭력으로 기울어졌다. 그날 이탈리아 정치인 알도 모로의 시체가 자동차 트렁크에서 발견되었다.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극좌 조직인 붉은여단에 납치된 지 55일째 된 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 집권한 정당인 기독교민주당 대표였던 모로는 기독교민주당과 이탈리아 공산당 사이의 '역사적인 타협'의 주역이었다." "이러한 정치 폭력은 치명적인 이념 속에서 길을 잃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의 기존 규범을 대체한 비공식 문화의 유행과 약물 사용 확산 같은 훨씬 더 일반적인 현상과 연관된 것이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프랑스 혁명의 방향을 잘못 틀었던 것처럼 1970년대의 범죄와 폭력은 결과적으로 1960년대의 반문화를 망가뜨렸다. 외형적으로는 도덕적 질서의 복귀와 경제 위기의 해결책이라 천명하는 보수의 반혁명을 유발한 것이 바로 이런 범죄 폭력이었다."(66, 70-2)


"네오콘, 즉 새로운 우파는 〈시장을 정부 간섭으로부터 보호할 뿐 아니라 무관심과 쾌락주의와 도덕적 혼돈으로 빠지는 추세를 끝내야 한다〉는 주장으로 힘을 얻었다." "레이건의 강점은 하나의 정책으로 월가의 엘리트와 백인 서민층을 한데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이 구원이다'라는 간단한 생각을 중심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는데, 이런 생각은 '더 많이 벌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일해야 한다'던 20년 후의 니콜라 사르코지의 말로 이어진다. 많이 일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의 가난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복지국가에 반대하는 레이건은, 빈곤층이 빈곤한 원인은 빈곤층에 대한 원조 때문이라며 비난한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은 곧 '흑인'을 의미했다." "토머스 소웰과 월트 윌리엄스는 흑인들을 돕고 싶다면 흑인을 위한 긍정적인 차별 정책은 포기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그들에 따르면, 복지국가는 불행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불행을 사라지게 하지 않고 유지시킨다는 것이다."(76-8)


"2008년 금융 위기는 보수 혁명 초기부터 누적되어온 불균형의 결과였다. 콘드라티에프 주기가 맞닥뜨린 큰 장애물은 상부 부유층의 부가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레이건이 주장하던 트리클다운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는 탐욕이나 돈에 대한 열망이 특징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 탐욕은 중동 지방의 페니키아 상인이나 향신료 무역으로 부유해진 베네치아에서 발전된 것이리라. 그러나 탐욕은 영국 그리고 미국과 북유럽에서 활개쳤다. 탐욕이 인간 활동의 기본 동인 중 하나임을 인정하면서 베버는 자본주의가 신뢰와 계약 관계를 구축하고 규칙, 법 책임 '윤리' 전체를 재조정하면서 탐욕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주의 혁명이 약속한 회복은 자본주의의 근본 가치인 청교도적 가치의 회복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수주의 혁명은' 탐욕의 승리'라는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92-7)


제2부 타락한 시대


"레이건과 대처의 보수주의 혁명이 자본주의 승리의 축배를 들 때 서구에는 포퓰리즘이라는 새로운 유령이 배회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89년 붕괴된 공산주의의 자리를 이 유령이 점령했다. 산업계의 다른 종교였던 공산주의는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사라졌다." "좌파는 서민을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위기에서 서민을 보호하는 데는 실패했으며, 도덕 회복 정책으로 선출된 우파는 서민들을 탐욕의 제단에 갖다 바쳤다. 서민들은 산업사회 붕괴의 피해를 정면으로 받았다. 산업사회는 결점도 지녔지만 적어도 사회 통합 환경을 제공하는 이점은 있었기 때문이다. 원한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사회학자 막스 셸러에 따르면 원한의 완벽한 표현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셸러는, 그것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면 갑자기 참을 수 없게 되는 권력, 교육, 지위와 유산의 뚜렷한 차이와 함께 개인들은 똑같다는 형식적 평등성이 공존하는 오늘날 사회의 특별한 현상이 바로 원한이라고 분석한다."(103-4)


"〈뿌리깊게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모든 정책이 펼쳐지는데, 이상한 것은 그런 정책이 이런 불평등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르펜, 헝가리의 오르바, 이탈리아의 극우 정파 리그당과 오성운동의 연정과 같은 유럽 포퓰리즘의 특징으로 도미니크 레이니에는 '자산 포퓰리즘'을 지적한다. 이 포퓰리즘은 유권자들에게 '그들을 위한' 복지국가와 '그들의' 도시와 '그들의' 일자리를 약속한다. 유럽 포퓰리즘은 그들이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라 주장하는 두 계층, 즉 위로는 사회 엘리트와 아래로는 이민자 집단에 대한 증오를 응집시킨다. 이탈리아 포퓰리즘 운동에는 엘리트 혐오라는 위를 향한 증오, 즉 첫 번째 요구를 만족시키는 성향은 있었지만, 외국인 혐오라는 두 번째 아이템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선거에서 우파에 뒤졌다. 스웨덴의 '민주당', 덴마크의 '인민당', 핀란드의 '진짜 핀란드당', 오스트리아의 '자유당FPO', 그리스의 '금빛 새벽당', 이탈리아의 '북부 리그당'은 모두 외국인 혐오에 기반을 두고 있다."(106)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원자화된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들이 기존 질서를 증오하면서 응집된 감정적 반응이라 보고 있다. 경제 위기로 몰락한 중산층들, 즉 이전에는 그 안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회에서 그 자리를 상실하게 된 사람들이 원한의 무리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귀스타브 르봉은 『군중심리학』에서 군중의 감정적인 충동을 따를 때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아렌트는 르봉의 자료를 참조하여 자신의 세대를 〈계급사회가 군중사회로 변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세대라고 규정한다." "계급과 달리, 군중은 공동 이익을 의식하고 묶인 것이 아니다. 군중에게는 제한적이며 실현 가능한 정확한 목표 같은 특별한 논리가 없다. 〈군중은 정당이나 시의회나 직장 조직이나 노조 같은 공동 이익에 바탕을 둔 조직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 다른 정당들은 모두 포기했던 이런 군중 속에서 지지자를 모았다는 것이 나치의 부상 과정의 특징이다.〉"(120-1)


"사회학자 로베르 카스텔은 사회적으로 성공해 스스로 사회적 관습을 극복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의 '지나친 개인주의'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서민 계층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부족한 개인주의'를 구분한다. 카스텔의 이 구분은 오늘날 정치의 양극화를 잘 설명해준다." "이들을 가르는 기준은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준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더 이상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자와 어떤 빈자를 가르는 대각선이다." "르펜의 지지자들은 '고등 교육을 받지 않는 백인'이라는 트럼프의 지지자들과 닮은꼴이다. 사회의 능력주의를 신뢰하지 않는 이들의 의구심은 국가가 그들을 도와준다는 것마저 의심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 스스로가 그 수혜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정부의 소득 재분배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들은 '재분배 없는 보호 정책'을 주장하는 역설적인 요청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장벽'을 세울 것을 주장하는 이들의 요청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123-4)


"원주민들이 이민을 꺼리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경제위기와 함께 '무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이민족에 대한 지속적인 증오의 표현이라는 뜻이다. 심리학자 샬롬 슈바르츠는 수많은 나라를 연구하면서 이런 기질의 영향이 시공간에서 놀랍도록 충분히 분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하게 말하면, 언제 어디에나 이상주의자가 4분의 1 정도 있고, 파시스트 또한 4분의 1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추론에 따르면 인간의 열정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그 열정이 표현될 수 있는 환경이 변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이민 혐오에 대해 말하자면, 경제 위기 이전에는 없었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위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 위기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다른 세력과 동맹해 아무런 거리낌이나 부끄러움 없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을 뿐이다. 다른 세력과 동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생각은 아주 진부하고 평범한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140-1)


제3부 미래로 돌아가기


"산업사회와 이 사회를 지탱하던 하부 구조가 무너지면서 디지털 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디지털 사회의 거대 서사가 기대고 있는 신화는 1960년대의 이상에서 나온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는 스스로를 '1960년대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네오 펑크 해커의 후계자'로 소개하길 즐긴다. 정보혁명 개척자들에게 1970년대 문화는 자신들 이상의 지평에 실체를 부여하는 자유의 공간으로 비쳤다.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에 따르면, 미국 대학의 저항 문화 속에서 자란 대학생들이 부모 세대가 만든 세계의 표준화를 깨뜨릴 방법을 찾았던 것도 바로 1970년대가 열어준 그 지평 위에서였다. 〈대학은 확산과 사회 혁신의 핵심 요인이었다. 대학에서 청년들은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행동과 새로운 소통 방식을 발견하고 택한다.〉 역사학자 프랑수아 카롱은 〈1970~1980년대 사회의 기술화가 달성한 것은 바로 1960년대의 반체제 쾌락주의다〉라고 말한다."(157-8)


"오늘날의 현실은 컴퓨터 혁명이 꿈꾸었던 이상과 거리가 멀다. 이러한 실망은 새로울 것도 없다. 처음 전기가 발명되었을때, 그때까지 산업 생산의 혈액 역할을 하던 수많은 소규모 작업장이 전기로 큰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용 가능한 동력원을 갖고 있지 않던 소규모 작업장들은 증기엔진을 장착한 '대규모 회사'와 치열한 경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전기는 생산 공정을 좀더 편리하게 조절하고 세분화함으로써 라인 생산을 하는 '대규모 공장' 회사를 탄생시키면서 소규모 작업장의 결정적 쇠퇴를 가져왔다. 디지털 사회에 대한 실망도 같은 종류의 것이다. 규모의 경제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약속은 다시 한번 배신을 안겨주었다. 구글, 애플, 아마존은 과거의 일류 기업인 GM, 크라이슬러와 비교해보면, 주식 시가총액은 9배나 높지만, 직원 숫자는 3배 더 적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두려움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노동자 수의 감소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182)


"노동의 미래에 대한 논쟁은 종종 쳇바퀴를 돌 때가 많다. 비관론자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계를 파괴한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이나 리옹의 견직공처럼 항상 과거의 실수와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낙관론자들이 실수를 되풀이하게 하는 일도 아주 쉽다. 인간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제방은 모두 허물어졌다. 로봇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복잡한 움직임으로 간주되던 운전도 곧 자동화될 예정이다. 인간의 영역이라고 봤던 공감도,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 일본의 노인을 돌보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디지털화가 일자리에 궁극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19세기 전반이 노동계급에게 특별히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경제사가들은 산업화 과정에는 오랜 임금 정체기가 동반됐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런 현상을 조엘 모키르는 '생활 수준의 역설'이라는 말로 설명했는데, 이때는 마르크스가 공장 생활에 대해 종말론적인 글을 쓰던 시절이다."(184)


"경제학자들은 어떤 기술이 실제로 사용되기 전에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도치 않았던 결과를 특징짓기 위해서 '일반 목적의 기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증기기관이나 전기는 최초 발명가의 의도를 완전히 넘어서는 방식으로 세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증기기관은 탄광의 물을 펌프질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었지, 승객을 수천 킬로미터가 넘는 먼 거리를 이동시키는 데 사용될 예정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전기세탁기나 텔레비전이 발명되기 전에 전기가 나왔다. 원래 발명자가 자신의 발명이 어떻게 쓰일지 몰랐다고 해서 흠은 아닐 것이다. 예컨대 에디슨은 축음기가 죽어가는 사람의 유언을 기록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기술 혁신들은 모두 일련의 후속 발명을 통해 성장했다. 컨베이어 벨트 같은 라인 작업은 전기가 작업 구성을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방식이 되든 인간 노동의 미래는 사회가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새로운 보완성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186-7)


"아이폰 세대는, 한 프랑스 영화에서 집안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아 부모의 분노를 유발하는 주인공 이름에서 나온 탕기 효과의 희생자다." "'안전'은 이 세대의 강박관념을 말해주는 키워드다. '트라우마'는 자주 사용되는 또 다른 용어인데, 구글 도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트라우마라는 말은 1965년보다 2005년에 4배나 더 많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밀레니얼과 그다음 아이폰 세대의 차이가 생겨난다. 밀레니얼 세대는 낙관적이고 스스로와 사회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지만, 10년 후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은 아이폰 세대는 더 불안해져 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가령 교실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들은 자신의 연구에서 성공하기를 원한다. 밀레니얼 세대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자신의 '소유'와 '박탈' 사이의 커다란 단절에 대해 마음 깊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들은 또 예술이나 정치 참여와 같이 스스로의 활동에서 나오는 '본질적' 가치보다는 성공과 돈이라는 '비본질적' 가치에 더 관심이 많다."(196-7)


"아이폰 세대와 정치의 관계는 이상하다. 무관심과 극단적 참여라는 정치적 양극화를 오가는 것 같다. 소셜 네트워크는 어떤 사람의 사진을 수백만 번이나 돌아다니게 하고 또 날카로운 증오의 표현도 너무나 쉽게 전파시키고 있다."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54퍼센트)는 스스로를 민주당이나 공화당과 무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스스로를 '극좌'나 '극우'로 여기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역사적 시간과의 관계에도 변형이 일어난다. 프랑스의 젊은이들 가운데 13퍼센트만이 미래에 살고 싶다고 선언하고 있다. 엄청난 약속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기하급수적 발전은 미래에 대한 바람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역사적 감각'이 온전히 자리잡고 있던 1960년대의 전망에 대한 엄청난 반전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현재는 더 이상 과거와 미래 사이의 긴장의 순간이 아니고, 영원한 현재라는 일종의 늪지대와 같은 것이 되었다. 이전 세대의 역사주의를 오늘날의 '현재주의'가 대체한 것이다."(198-200)


"소셜 네트워크 세상에서 태어난 신세대의 역설은 인간이 이만큼 스스로를 많이 드러낸 적도 없지만 이만큼 가면을 사용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개인주의 전통의 상속자로 자처하는 디지털 문화는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의 혼합체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어떤 이벤트를 경험하기보다는 널리 알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우리는 유비쿼터스라는 말처럼 동시에 어디서나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똑같은 약속을 하는, 친구 찾기 서비스인 틴더나 다른 소프트웨어가 제시해주는 것처럼, 하나의 대화에서 다른 대화로,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스크롤해서 넘어가기만 한다. 그래서 에스캉드-고키네와 네벵은 〈소셜 네트워크는 즉발적인 것에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초자아와 자기 통제가 발현될 가능성은 차단하고 인간의 모든 충동이 분출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놓는다〉라고 결론짓는다. 호모 디지털리스, 즉 디지털 인간은 다양한 장치를 통해서 오로지 〈우리 자신의 자아를 상실하라〉고 위협하고 있다."(207-8)


결론: 딜런에서 딥 마인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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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유강은 옮김 / 부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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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은 〈역사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세기로 인도되었다. 내가 '필연의 정치학politics of inevitability'이라고 말하는 이 이야기는 미래는 단지 더 많은 현재이고 진보의 법칙이 밝혀졌으며, 다른 대안은 전혀 없으므로 실제로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이다. 이 이야기의 미국 자본주의식 판본에서는 자연이 시장을 낳고, 시장은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는 행복을 낳았다." "필연의 정치학의 붕괴는 '영원의 정치학politics of eternity'이라는 또 다른 시간 경험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필연성은 모든 사람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해 주는 반면 영원성은 한 민족을 피해자라는 되풀이되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앉혀 놓는다. 이제 시간은 미래로 이어지는 선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똑같은 위협을 끝없이 되돌리는 원이 된다." "영원의 정치인들은 정부는 사회 전체를 원조할 수 없고 다만 위협으로부터 막아 줄 수 있을 뿐이라는 신념을 퍼뜨린다. 진보는 파멸의 운명에 길을 내준다."(29-31)


"역사는 필연성과 영원성 사이의 틈을 벌림으로써 우리가 필연성에서 영원성으로 표류하는 것을 막아 주고, 우리가 변화를 야기하는 순간을 보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정치사상이며 정치사상이어야 한다. 우리가 필연성에서 벗어나 영원성과 다투는 가운데 해체의 역사는 수리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제도는 일정한 선善 개념을 육성하게 마련이며, 또한 그런 개념에 의존한다. 제도가 번성하려면 덕이 필요하고, 덕이 육성되려면 제도가 필요하다. 공적 생활에서 선악에 관한 도덕적 질문은 구조에 대한 역사적 연구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덕을 무의미하고 심지어 우스운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필연의 정치학과 영원의 정치학이다. 필연성이 선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예상대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약속한다면, 영원성은 악은 언제나 외부에 존재하고 우리는 영원히 악의 순결한 희생자라고 안심시켜 준다. 우리가 선과 악에 관한 더 나은 설명을 갖기를 바란다면, 역사를 소생시켜야 할 것이다."(37-8)


1장 개인주의인가 전체주의인가


"1883년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이반 일린은 러시아가 법으로 통치되는 국가가 되기를 바랐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경험한 뒤, 일린은 반혁명주의자이자 혁명에 대항하는 폭력적 방법의 주창자가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볼셰비즘을 극복하기 위한 기독교 파시즘의 창시자로 변신했다. 1922년 소련이 탄생되기 몇 달 전 그는 고국에서 추방되었다. 베를린에서 글을 쓰면서 그는 신생국 소련에 대항하는 일명 백군 세력에게 강령을 제공했다. 이 세력은 오랜 기간에 걸쳐 피를 부른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에 맞서 싸운 뒤 일린처럼 유럽으로 정치적 이주를 한 사람들이었다. 일린은 후에 소련이 해체된 뒤 집권하게 되는 러시아 지도자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저술을 정식화했다. 그리고 1954년에 세상을 떠났다." "2010년대에 푸틴은 일린의 권위에 의존해서 러시아가 유럽 연합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41-2)


"우리 시대의 필연의 정치학은 일린 시대의 필연의 정치학을 반영한다. 1980녀대 말부터 2010년대 초의 시기처럼, 1880년대 말부터 1910년대 초까지의 시기도 세계화의 시대였다. 두 시대의 전통적인 지혜는 수출 주도 성장이 계몽된 정치를 가져오고 광신주의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낙관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과 그 뒤를 이은 혁명과 반혁명의 와중에 깨졌다. 일린 자신이 이런 추세를 보여 주는 초기의 본보기였다. 그는 젊은 시절 법치의 지지자였지만 극좌파에서 구사하는 전술에 경탄하는 한편 극우파로 이동했다. 일린은 파시즘이야말로 다가올 세계의 정치라고 생각했다." "일린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쇠퇴기에 접어든 서구가 순결한 러시아에 가한 형벌이었다. 언젠가 러시아는 기독교 파시즘의 도움을 받아 자기 자신과 다른 나라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스위스의 한 평자는 그의 저작들을 〈서구 전체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민족적〉이라고 규정했다."(44-5)


"이 철학자가 자기 눈을 가렸을 때 본 것은 〈순수하고 객관적인〉 민족이었다. 순결함은 독특한 생물학적 형태를 띠었다. 일린이 본 것은 흠 하나 없이 순결한 러시아의 신체였다. 당대의 파시스트들을 비롯한 권위주의자들이 그러하듯, 일린은 러시아 민족은 하나의 피조물, 〈자연과 영혼의 유기체〉이자 원죄를 짓지 않은 채 에덴동산에 사는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누가 러시아라는 유기체에 속하는지 여부는 개인이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세포들이 어떤 신체에 속할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화는 러시아의 힘이 미치는 곳 어디에나 자동적으로 〈형제애적 결합〉을 가져다준다고 일린은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에 인용 부호를 붙였는데, 러시아라는 유기체를 넘어선 우크라이나인들의 독립된 존재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입에 올리는 것은 러시아를 해하려는 적이 되는 셈이었다. 일린은 소비에트 이후의 러시아에 우크라이나가 포함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49)


"일린은 '대속적'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spasitelnii'를 사용함으로써 정치에 심대한 종교적 의미를 풀어놓았다. 다른 파시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일린 역시 시독교의 희생과 대속 개념을 새로운 목적으로 돌렸다. 히틀러는 세상에서 유대인을 없애 버림으로써 멀리 있는 하느님을 위해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전능한 조물주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고 믿는다. ······ 유대인들을 억누르는 한 하는 주님의 과업을 행하는 것이다.〉 정교회 신자는 대개 그리스도가 갈보리에서 희생해서 신자들을 구원한 것을 러시아어 'spasitelnii'로 말한다. 일린이 말하고자 한 것은 러시아에는 권력을 잡기 위해 타인의 피를 흘리는 〈용감한 희생〉을 하는 대속자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파시스트 쿠데타는 〈구원 행위〉, 즉 세계에 전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세계가 갈라져 있는 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상의 신성한 질서를 해치는 적들에 맞서〉 끊임없이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51-2)


2장 계승인가 실패인가


"푸틴의 홍보 전문가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가 선구적으로 개척한 민주주의의 무대 연출은 수수께끼 같은 후보자가 조작된 위기 사태를 활용해서 실제 권력을 손에 넣는 방식이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푸틴이 처음 두 번의 대통령 임기를 치르는 동안 수르코프는 인기를 얻거나 제도를 바꾸기 위해 관리 가능한 갈등을 활용했다. 러시아 보안 부대가 테러리스트들이 장악한 극장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수십 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인 2002년, 텔레비전 방송은 국가의 전면 통제를 받게 되었다. 2004년에 지방의 한 학교가 테러리스트들에게 포위된 뒤, 선출직 주지사 직책이 폐지되었다. 수르코프는 일린의 말을 인용하며 러시아인들은 아직 투표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러시아는 〈현대 민주주의의 조건 아래서 살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수르코프는 러시아가 (국가를 형성할 능력이 없는) 다른 포스트소비에트 국가들에 비해 주권에서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78)


"민주주의는 통치자를 바꾸는 절차다. 공산주의 시절에는 〈인민 민주주의〉, 그 후에는 〈주권 민주주의〉처럼 민주주의에 형용사를 붙여 한정하는 것은 그런 절차를 없애려는 시도다. 처음에 수르코프는 과감하게 양다리를 걸치려고 하면서 올바른 사람을 권좌에 앉힘으로써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정치 문화에서는 인물이 제도라고 말하고 싶다.〉 일린도 똑같은 술수를 부린 적이 있다. 자신의 대속자는 인민을 대표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민주적 독재자〉라고 부른 것이다. 수르코프가 러시아 국가를 떠받히는 기둥이라고 말한 것은 〈중앙 집권, 인격화, 이상화〉였다. 국가는 통일되어야 하고, 국가의 권위는 한 개인에게 부여되어야 하며, 그 개인에게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 수르코프는 일린의 말을 인용하면서 러시아인은 자유를 누릴 준비가 되는 만큼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일린이 말하는 '자유'란 개인이 지도자에게 복종하는 집단에 자신을 내던질 자유였다."(79-80)


"2000년에 푸틴이 허구의 영역에서 나타난 신비로운 영웅으로 대통령직에 올랐다면, 2012년에는 법치를 짓밟는 복수의 파괴자로 돌아왔다. 자신이 주목을 받는 가운데 선거를 도둑질하기로 한 푸틴의 결정 덕분에 러시아 국가는 지옥의 변방으로 떨어졌다. 2012년에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따라서 승계 위기의 발단이었다. 집권자가 또한 미래를 없애 버린 사람이었기 때문에 현재는 영원해야 했다. 1999년과 2000년에 크렘린은 체첸인들을 없어서는 안 될 적으로 활용했다. 이제 체첸은 패배했고, 체첸의 군벌 카디로프는 푸틴 체제에서 중요한 성원이 되었다. 2011년과 2012년의 부정 선거 이후 국내에서 정치적 비상사태가 항구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외부의 적도 항구적으로 존재해야 했다." "영원의 정치학은 허구적이기 때문에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들을 필요로 하고 만들어 낸다. 2012년 러시아에서는 러시아를 파괴하려는 유럽 연합과 미국의 계획이 그런 허구적인 문제가 되었다."(84)


"푸틴의 막역한 친구인 블라디미르 야쿠닌이 2012년 11월에 장문의 논설로 발표한 견해에서 보면, 러시아는 영원히 적들의 음모에 맞서고 있었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 줄곧 역사의 경로를 좌지우지하는 음모였다. 전 지구적인 이 집단은 러시아의 출산율을 떨어뜨림으로써 서구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 동성애 선전을 유포했다. 동성애자 권리의 확산은 러시아인들을 자본주의의 글로벌 지배자들이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무리'로 뒤바꾸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정책이었다. 2013년 9월, 러시아의 한 외교관이 중국에서 열린 인권 회의에서 이런 주장을 되풀이했다. 동성애자 권리는 러시아나 중국 같이 고결한 전통 사회를 손쉽게 착취하기 위해 글로벌 신자유주의 음모 세력이 선택한 무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쯤이면 이미 러시아 의회에서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부정할 것을 주창하는 정보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통과된 상태였다."(85-6)


"크렘린이 처음 보인 충동적 반응이 민주적 반대파를 글로벌 남색과 결부시키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반응은 시위대가 외부 강대국, 그것도 여성을 외교 수장으로 내세운 미국을 위해 활동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항의 시위가 시작되고 3일 뒤인 2011년 12월 8일, 푸틴은 힐러리 클린턴 때문에 시위가 시작되었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클린턴이 신호를 보냈다.〉 12월 15일에는 시위대가 외부 세력에게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증거가 아니었다. 일린이 주장한 것처럼, 만약 투표가 외국의 영향력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푸틴이 할 일은 외국의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그것을 활용하여 국내 정치를 바꾸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요구에 안성맞춤으로 들어맞는 적, 국가를 실제로 위협하지 않는 적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현실의 적을 논하다 보면 실제적 약점이 드러나고 예비 독재자들의 불완전성이 발각될 것이기 때문이다."(88)


"2011년과 2012년 시위에 대해 푸틴이 세 번째로 보인 반응은 일린식의 영원의 정치학을 공공연하게 지지하고 전파하면서 외국의 침투라는 위협으로만 고통을 받는 순결한 유기체로 러시아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2005년 푸틴은 비밀 국가 경찰이 대공포 시기에 처형한 러시아인 수천 명의 사체를 화장한 수도원에 일린의 주검을 이장했다." "일린의 몸과 영혼은 자신을 쫓아낸 러시아로 돌아왔다. 분명 일린은 소비에트 채제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 체제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지금 그것은 역사였다. 그리고 일린에게 과거의 사실들은 순결의 신화를 축조하기 위한 원료에 불과했다. 일린의 견해를 조금만 수정하면 소련을 그가 목도한 대로 러시아에 가해진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순결한 러시아로 보는 게 가능했다. 그리하여 러시아인들은 소비에트 체제를 세계의 적대에 맞서는 순결한 러시아의 대응으로 상기할 수 있었다. 러시아 통치자들은 소련의 적을 이장하는 식으로 소비에트의 과거를 기렸다."(92-5)


3장 통합인가 제국인가


"제국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유럽 통합은 충분히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다른 정치적 모델들의 반향과 힘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으며 언제나 다른 대안들이 등장한다. 2013년 러시아 연방은 〈유라시아〉라는 이름 아래 통합의 대안을 제시했다. 러시아는 제국으로 만들고 다른 모든 나라는 민족 국가로 두자는 것이었다." "2013년, 더 커다란 유럽 체제가 부재한 가운데 유럽 각국 역시 점점 해체될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해체의 한 형태인 유럽 연합의 해체는 또 다른 해체, 즉 유럽 각국의 해체로 이어질 공산이 컸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이러한 점을 이해하는 듯 보였다. 유럽 지도자들과 달리 그들은 1930년대에 관해서 공공연하게 논의했다. 러시아의 유라시아 기획은 1930년대에 그 뿌리가 있었는데, 당시는 유럽의 민족 국가들이 바야흐로 전쟁으로 빠져들던 때였다."(103-4)


"후기의 일린은 법치를 거부하고 그 대신 파시즘의 자의성proizvol을 선호했다. 러시아가 법으로 다스려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그는 무법성proizvol을 애국적 덕목으로 제시했고, 푸틴도 같은 궤적을 따랐다. 2000년에 처음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그는 〈법의 독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과 독재라는 개념은 서로 모순되었고,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2012년에 대통령에 출마할 때는 유럽의 러시아라는 개념을 거부했는데, 법치를 선호하는 외부의 유인을 무시한다는 뜻이었다. 그 대신 'priozvol'이 대속적 애국주의redemptive patriotism로 제시될 것이었다. 오늘날 러시아어로 표현되는 작동 개념은 'bespredel', 즉 무경계성인데, 지도자가 어떤 행동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단어 자체가 범죄자들의 은어에서 나온 것이다. 이 논리에서 보면, 푸틴은 실패한 정치인이 아니라 민족의 대속자였다. 유럽 연합의 시각으로는 통치의 실패가 될 수 있는 현상이 러시아에서는 순결함으로 경험될 것이었다."(119-20)


"2011년과 2012년 대통령 후보로 나선 푸틴은 러시아를 일반적 기준에서 해방시키고 러시아의 특이성을 다른 나라들에까지 확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약 러시아를 다른 나라들이 잃어버린 문명적 가치의 원시적 원천으로 묘사할 수 있다면, 러시아 도둑 정치의 개혁이라는 문제는 무의미해질 것이었다. 러시아를 바꾸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을 인도하는 횃불로 찬미해야 한다. 푸틴은 러시아인들이 유럽 통합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싶었다. 이제 유라시아로의 전환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었다. 2011년과 2012년에 민주적 절차를 포기한 것은 유럽 연합 가입의 기본 기준을 조롱한 셈이었다." "그리하여 대외 정책이 국내 정책을 대신해야 했고, 외교는 안보보다는 문화를 중심에 두어야 했다. 사실상 이는 러시아의 질서를 운운하면서 러시아의 혼돈을 수출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해체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121-2)


"유라시아주의에 레프 구밀료프가 기여한 것은 그의 종족 기원 이론, 즉 민족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관한 설명이었다. 구밀료프는 인간의 사회성은 우주선cosmic ray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몇몇 인간 유기체는 남들보다 공간 에너지를 흡수해서 다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이런 특별한 지도자들은 푸틴이 2012년 연설에서 언급한 '열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종족 집단의 창건자가 되었다. 구밀료프에 따르면, 각 민족의 기원은 따라서 우주 에너지의 폭발로 추적할 수 있다. 이 폭발에서 1000년 이상 지속되는 순환이 시작되었다. 서구 민족들에 활기를 불어넣은 우주선은 먼 과거에 방출되었기 때문에 이제 서구는 목숨이 다했다. 러시아 민족은 1380년 9월 13일 우주선 방출에서 생겨났으며 따라서 젊고 활력이 넘쳤다. 구밀료프는 또한 유라시아 전통에 특별한 형태의 반유대주의를 추가했는데, 이 덕분에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유대인과 서구 양쪽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125-7)


"알렉산드르 두긴(1962년생)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소련의 반체제 젊은이로 기타를 치면서 수백만 명을 오븐에 넣어 구워 죽이자고 노래했다. 그의 필생의 사업은 러시아를 파시즘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두긴은 전형적인 훈계조 서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서구는 루시퍼가 떨어진 곳이다.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는 문어발의 중심부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문명의 한 요소로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유라시아에 관해 말하기 한참 전에 두긴은 독립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유라시아적 운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규정했다. 2005년 두긴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우크라이나 해체와 러시아화를 촉구하는 청년 운동을 창시했다. 두긴이 보기에, 우크라이나의 존재는 〈유라시아 전체에 거대한 위험〉을 나타냈다." "일린의 기독교 전체주의, 구밀료프의 유라시아주의, 두긴의 〈유라시아〉 나치즘에서 나온 개념들은 푸틴의 담론에서 그대로 나타난다."(128-31)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는 2013년 여름, 그러니까 러시아가 이성애의 수호자 역할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비난을 자초한 그 순간에 푸틴을 지지한 두 번째로 유명한 미국인이었다(첫 번째는 러시아가 〈세계에서 유일한 백인 권력〉이라고 말한 백인 우월주의자 리처드 스펜서다). 당시만 해도 트럼프는 미국에서는 정치인으로 간주되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인터넷 사업가로서 후에 수르코프와 가까워지는 인물인 콘스탄틴 리코프는 이미 트럼프를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당시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가 미국 태생이 아니라는 그릇된 주장을 펼치면서 자기 나라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장기 캠페인에 한창 몰두하고 있었다." "2013년 6월 18일, 트럼프는 푸틴이 〈새롭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될〉 것인지 궁금해 하는 트윗을 올렸다." "트럼프는 2016년 6월, 러시아측으로부터 자신들과 협력해서 클린턴 선거 운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렇게 대꾸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145-7)


# 러시아의 유럽연합 해체 공작

1. 인터넷 토론장이나 국제 텔레비전 네트워크 RT 조직을 생성하여 유럽 연합의 쇠퇴를 강조하는 여론 조성

2. 프랑스의 국민전선, 스코틀랜드의 분리주의, 영국의 브렉시트 운동,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등 극우파 지원

3. 인터넷 트롤troll들, 트위터 봇bot들을 활용하여 사이버 상의 정치적 논의들(특히 브렉시트)에서 분열 조장


4장 새로움인가 영원인가


"신생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신생 우크라이나에서도 1990년대는 소비에트 자산의 탈취와 영리한 차익 거래 계획을 특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신흥 올리가르히 계급이 내구성 좋은 파벌들로 뭉쳤는데, 그중 어느 파벌도 한 번에 2, 3년 넘게 국가를 지배하지 못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권력의 주인이 바뀌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전 상대적인 호시절에 경제 개혁을 할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유럽 연합이 사회 진보와 공평한 부의 분배를 가로막는 부패의 치료책으로 여겨졌다.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적어도 말로는 유럽 연합 가입을 일관되게 장려했다. 2010년부터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맡은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유럽적 미래의 가능성을 갉아먹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그런 미래 개념을 장려했다."(168)


"우크라이나 정치 체제의 결함이 무엇이든 간에 1991년 이후 우크라이나인들은 폭력 사태 없이 정치 논쟁을 해결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2000년 인기 있는 탐사 보도 기자 게오르기 곤가제가 살해된 것처럼 예외적 사건이 생기면 그때마다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20세기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폭력을 목도한 나라에서 21세기의 시민적 평화는 자랑스러운 성취였다. 정기적으로 선거가 치러지고 전쟁이 사라진 것과 나란히 평화 집회의 권리는 우크라이나인들 스스로 러시아와 자기 나라를 구별하는 하나의 잣대였다. 따라서 2013년 11월 30일 전투 경찰이 마이단 광장 시위대를 공격한 것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아이들〉이 구타를 당했다는 뉴스가 키예프 전역에 퍼졌다. 〈첫 번째 핏방울〉이 흐르자 이에 자극 받은 시민들이 행동에 나섰다." "2013년 12월의 항의 시위에서 주목한 것은 유럽 문제보다는 우크라이나의 적절한 정치 형태, 〈품위〉나 〈위엄〉의 문제였다."(171)


"2013년 1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마이단 광장의 역사는 차가운 돌바닥에 몸을 던진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든 작품인데, 시위를 진압하려 한 실패한 시도의 역사와는 다르다. 전에 우크라이나 내의 시위대에게 유혈 사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은 유혈 사태가 벌어진 뒤에야 이 나라에 주목했으며, 또 모스크바는 이 사태를 논거로 삼아 러시아군을 보내 훨씬 많은 유혈 사태를 일으켰다." "마이단 광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보기에 자신들이 벌인 시위는 여전히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 즉 우크라이나의 번듯한 미래를 지키는 문제였다. 그들에게 폭력은 참을 수 없는 한도의 표지로서 중요한 것이었다. 폭력은 몇 초 혹은 몇 시간의 분출로 일어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몇 초나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 몇 주, 몇 달 동안 마이단을 찾았고, 그들이 보여준 불굴의 용기는 스스로를 조직하는 새로운 시간 감각, 새로운 형태의 정치로 드러났다."(174-5)


# 마이단 광장에서 피어난 새로운 형태의 정치

1. 자기 조직화와 연대감으로 무장한 시민 사회의 출현

2. 대가를 바라지 않고 광장에서 이루어진 증여의 경제

3. 이례적인 증여의 환대를 넘어선 자생적인 복지 국가

4. 공통의 시련을 겪으면서 형성된 마이단 광장의 우정


"2014년 2월 초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에서 회람된 한 비망록은 〈야누코비치 정권은 완전히 파산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러시아 국가가 외교, 재정, 선전 차원에서 이 정권을 지원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군산 복합체와 나라 전체에 있는 〈가스 수송 시스템에 대한 지배권〉으로 정의되었다. 러시아의 주된 목표는 〈우크라이나 국가의 해체〉가 되어야 했다. 제안된 전술은 폭력 사태를 통해 야누코비치와 반정부 집단 양쪽 모두를 불신하게 만드는 한편, 우크라이나 남부를 침공해서 국가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망록에는 러시아의 이런 개입에 대해 구실을 제공하기 위한 선전 전략 세 가지도 들어 있었다. (1) 우크라이나가 이른바 억압받는 소수 러시아계를 위해 연방 국가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2)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하는 이들을 파시스트로 규정한다. (3) 침공을 서구가 부추긴 내전으로 규정한다."(185-6)


"2014년 2월 24일을 시작으로 1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 특수 부대원들이 표식 없는 군복 차림으로 크림반도를 관통해 북쪽으로 이동했다. 기지를 나서는 순간 그들은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을 벌이는 셈이었다. 키예프는 지휘 계통이 불분명하고 추가적인 폭력 사태를 피하는 데 집중하던 바로 그 순간 기습을 당했다. 우크라이나 임시 정부는 크림반도에 있는 군에 저항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2월 26일 밤에 이르러 러시아 병사들이 심페로폴에 있는 주의회 건물을 장악하고 러시아 국기를 내걸었다. 기르킨에 따르면, 동시에 벌어진 심페로폴 공항 접수 작전은 그가 지휘했다. 2월 27일, 푸틴의 유라시아 고문인 세르게이 글라지예프가 크림에 전화를 걸어서 신정부 수립을 조율했다. 조직범죄와 관련된 세르게이 악시오노프라는 이름의 사업가가 크림의 총리로 선포되었다. 2월 28일, 러시아 의회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러시아 연방에 통합하는 것을 승인했다."(189-90)


"크림반도의 함락에 용기를 얻은 러시아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에서도 똑같은 시나리오를 되풀이했다. 3월 1일, 글라지예프는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남부의 각 주도에 있는 동맹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쿠데타 계획을 도와주었다. 푸틴의 유라시아 고문은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에서도 크림반도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도네츠크주에서는 5월 1일에 파벨 구바레프라는 러시아 네오나치가 〈우크라이나는 존재한 적이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자신을 '인민 주지사'로 선포했다. 크림반도에 파견된 말로페예프 부하 이인조인 이고르 기르킨과 알렉산드르 보로다이는 4월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보로다이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자신이 상상한 새로운 인민 공화국의 총리를 자임하게 된다. 그가 내세운 논거도 비슷했다. 〈이제 우크라이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기르킨은 전쟁장관을 자임하면서 러시아에 돈바스를 침공해서 군사 기지를 세워 달라고 요청했다."(195-6)


5장 진실인가 거짓인가


"크렘린이 우크라이나에 보낸 첫 번째 인력으로 러시아 침공의 선봉에 선 이들은 정치 기술자들이었다. 수르코프가 지휘하는 전쟁은 실제가 아닌 영역에서 진행된다. 그는 2014년 2월에 크림반도와 키예프에 있었고, 그 후에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문제 고문으로 일했다. 러시아의 정치 기술자 알렉산드르 보로다이는 크림반도를 병합할 때 홍보 책임자였다. 2014년 여름,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 새롭게 창안된 두 '인민 공화국'의 '총리'는 러시아 언론 관리자들이었다. 우크라이나 남부에 이어 동남부를 침공한 러시아의 행동은 전쟁 역사에서 가장 정교한 선전 캠페인을 수반했다. 선전은 두 수준에서 작동했다. 첫 번째는 사실성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서 명백한 사실, 심지어 전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무조건적인 순결 선포로서 러시아가 어떤 악행에 대해서든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전쟁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고, 이런 주장은 철저하게 정당화되었다."(217)


"푸틴은 이 포스트소비에트 세계의 사람들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게 아니라고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당연히 자신의 거짓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크라이나 임시 정부는 자국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고 있음을 알았고, 따라서 군사력으로 대항하는 대신 국제적 대응을 촉구했다. 푸틴이 추구하는 목표는 우크라이나인들을 기만하는 게 아니라 러시아인들과 함께 자발적인 무지의 유대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인들도 푸틴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꿰뚫어 보는 게 아니라 어쨌든 그를 믿어야 했다. 기자 찰스 클로버가 레프 구밀료프에 관한 연구에서 지적한 것처럼, 〈푸틴은 거짓말이 러시아의 정치 계급을 분할하기는커녕 오히려 통일시킨다고 제대로 가정했다. 더 크고 명백한 거짓을 말할수록 국민들은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성을 보여 주고, 크렘린 권력의 거대하고 신성한 수수께끼에 더욱 열성적으로 참여한다.〉"(218)


"사실성을 겨냥한 푸틴의 직접적 공격은 '그럴듯하지 않은 부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서구 언론사 간부들은 2014년 2월 말과 3월 초 며칠 동안 러시아의 침공에 관한 보고를 입수했지만 푸틴의 열렬한 부인을 대서특필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하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서사는 미묘하지만 심대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보다는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관해 무슨 말을 하기로 선택했는지의 문제가 되었다. 실제 전쟁은 리얼리티 방송이 되었고, 푸틴이 주인공 노릇을 했다. 대다수 언론은 이 드라마에서 조연 역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구 언론사 간부들이 비판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그들의 비판은 크렘린의 주장을 자신들이 의심한다는 큰 틀 안에서 존재했다. 후에 푸틴이 러시아가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사실을 인정했을 때, 그의 발언은 서구 언론이 자신이 벌인 쇼에 배우로 참여했음을 입증해 주었을 뿐이다."(219-20)


"러시아 텔레비전은 그럴듯하지 않은 부인의 도구였다. 방송은 러시아 특수 부대, 첩보 기관, 사령관, 지원병, 무기 등의 존재를 부인했다. 기르킨이난 보로다이, 안튜페예프 같은 저명한 러시아인들이 방송 화면에 나와 〈노보로시야〉 활동가나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행정가라고 소개되었다. 러시아 군인들은 사실 우크라이나 지원병들이라고 주장한 바로 그 방송 채널들은 이 남자들이 러시아의 것이 확실한 첨단 무기 시스템을 가지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영상을 내보냈다. 해외에 판매되지 않아서 러시아 바깥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최신식 러시아 탱크들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나타났다. 러시아인들은 자국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도, 그런 사실적 질문의 답을 찾아서는 안 되었다. 만약 해설자의 목소리가 러시아인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그 지역의 것이라고 설명하면, 이제 그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야 했다."(238)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유럽, 미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의 밑바탕에 깔린 논리는 '전략적 상대주의'였다. 러시아 특유의 도둑 정치와 상품 수출 의존을 감안할 때, 이 나라의 국력은 커질 수 없었고, 기술 역시 유럽이나 미국과의 격차를 메우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을 약화시키면 상대적인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유럽과 떼어 놓기 위해 침공하는 식이었다. 동시에 일으킨 정보전은 유럽 연합과 미국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가진 것 중 러시아인들에게 없는 것은 통합된 무역 지대와 승계 원리가 존중받는 예측 가능한 정치였다. 이 두 가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 러시아가 손실을 입어도 괜찮을 것이었다. 적의 손실이 훨씬 더 클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략적 상대주의에서 관건은 국제 정치를 (이득보다 비용이 커서 전체적으로 손실이 누적되는) 네거티브섬 게임negative-sum game으로 변형시켜 능숙한 선수가 다른 모든 이들보다 손해를 덜 보게 만드는 것이다."(260)


"한편, 시리아 전쟁 난민과 더불어 아프리카에서 탈출한 이민자들이 점점 많아지자 메르켈은 예상치 못한 입장을 취했다. 독일은 많은 수의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웃 나라들보다도 많고, 독일 유권자들이 기대했던 것보다도 많은 수였다." "2015년 9월 28일 유엔에서 한 발언에서 푸틴은 유라시아를 유럽 연합과 '조화'시키겠다고 제안했다. 러시아는 난민을 발생시키기 위해 시리아에 폭격을 가한 뒤 유럽인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갈 것이었다."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메르켈의 결정에는 나치 독일이 자국의 유대인 시민들을 난민으로 내몬 1930년대의 역사가 동기로 작용했다. 러시아의 대응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 메르켈이 난민을 원한다면, 우리가 제공해 줄 것이며 이 문제를 활용해서 메르켈의 정부와 독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할 작정이다. 러시아는 난민 자체만이 아니라 테러리스트와 강간범이라는 이미지까지 난민들에게 덧씌웠다."(263-4)


"2014년과 2015년 영국과 미국,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존재하는지 여부,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인지 여부에 관한 토론에 엄청난 시간을 허비했다. 그와 같은 정보전의 승리는 러시아 지도자들에게 교훈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의 주된 승리는 전장이 아니라 유럽인과 미국인들의 마음속에서 거둔 것이었다. 극우 정치인들은 러시아의 메시지를 퍼뜨렸고, 좌파 언론인들은 극우 정치인들을 중앙으로 끌어내는 데 일조했다." "유럽 연합과 미국을 겨냥한 러시아의 공격에서 드러나는 파시즘과 허위는 트럼프의 선거 운동도 아우르는 것이었는데, 좌파로서는 익히 간파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2016년에 좌파에서 트럼프와 그의 정치적 허구를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패배하고 트럼프가 당선되었으며, 공화당은 눈이 멀고 민주당은 충격에 빠졌다. 정치적 허구를 제공한 건 러시아인들이었지만 그것을 요청한 것은 미국인들이었다."(283-4)


6장 평등인가 과두제인가


"영원의 정치학은 허구적 인물을 권력으로 이끄는 봇과 트롤, 유령과 좀비, 사자를 비롯한 비현실적 존재들의 환등상phantasmagoria으로 가득하다. 〈성공한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의 영원의 정치학에서 불어 내리는 바람인 구속받지 않는 자본주의가 러시아의 영원의 정치학에서 피어오르는 탄화수소 연기인 도둑 정치적 권위주의kleptocratic authoritarianism와 만나는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환상이었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창조한 생명체〉를 미국 대통령 자리까지 끌어올렸다. 트럼프는 혼돈과 약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된 사이버 무기의 탄두였고 실제로도 그런 역할을 했다." "러시아인들은 트럼프의 정체를 잘 알았다. 미국인들은 다른 꿈을 꾸었겠지만, 모스크바의 주요 인물 가운데 트럼프가 유력한 거물이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트럼프는 러시아에서 돈을 대 준 덕분에 원래 그만큼 실패한 기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예상되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287-8)


"첩보는 보고 이해하는 일이다. 반면 방첩은 상대방이 보고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성공한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라는 가공의 인물을 위한 작전 같은 '적극적 조치'는 상대로 하여금 그 힘을 자기 약점에 가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이 2016년 사이버전에서 러시아에 유린당한 것은 러시아의 '적극적 조치' 실행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술과 생활의 관계가 완전히 바뀐 탓이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주인공은 이런 말을 듣는다. 〈당신은 텅 비게 될 거야. 우리가 당신의 내면을 모두 쥐어짜 공허한 존재로 만든 다음에 우리 자신으로 당신의 속을 채울 테니까.〉 2010년대에는 냉전 시기처럼 소비할 수 있는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마음속에 조성할 수 있는 심리적 상태를 둘러싸고 경쟁이 벌어졌다. 러시아 경제는 물질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생산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단 눈에 보이지 않은 인격의 조작을 둘러싸고 경쟁이 벌어지자 러시아가 승리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293-4)


"십중팔구 대다수 미국인 유권자가 러시아의 선전에 노출되었다. 2016년 11월 선거 직전에 페이스북이 가짜 계정 '580만' 개를 폐쇄한 사실은 인상적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페이스북의 계정 100만 개 정도가 수천만 개의 '좋아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도구를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대개 허구인 특정한 기사를 아무것도 모르는 미국인들의 뉴스피드News Feed에 밀어넣을 수 있었다. 러시아가 가장 분명하게 개입한 한 사례는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가 페이스북 페이지 470개를 개설하고서도 미국 정치 단체나 운동 집단이 만든 것처럼 위장한 것이었다. 이중 여섯 개가 페이스북에 올린 각 콘텐츠에 대해 3억 4000만 개의 '공유'를 받았는데, 전부 합치면 수십억 번이 공유된 것이었다. 미국인 1억 3700만 명이 투표를 했는데, 1억 2600만 명이 페이스북에서 러시아 콘텐츠를 보았다. 나중에 페이스북은 투자자들에게 무려 '6000만' 개의 계정이 가계정이라고 털어놓았다."(299-300)


"러시아는 이미 미국 민주당 하원선거위원회를 해킹했기 때문에 투표율 모델을 입수할 수 있었고, 이를 한 러시아 활동가에게 전달했다. 대체로 미국인들은 러시아의 선전에 무작위로 노출된 게 아니라 인터넷 사용 습관으로 드러난 정보 수용성에 따라 노출되었다. 사람들은 맞는 것처럼 들리는 내용을 신뢰하는데, 일단 이렇게 신뢰하면 조작이 가능해진다. 어떤 경우에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에 대해 한층 더 강렬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러시아가 이미 프랑스와 독일에서 써먹은 이슬람 테러리즘이라는 주제는 미국에서도 전개되었다. 미시간과 위스콘신같이 결정적인 주에서 러시아는 반무슬림 메시지에 화들짝 놀라서 투표장으로 가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겨냥한 광고를 내보냈다.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에 표를 던질 만한 유권자들은 미국 무슬림 사이트를 표방하는 곳에서 친클린턴 내용의 메시지에 노출되었다. 러시아의 친트럼프 선전 또한 난민이나 강간범과 연결되었다."(300)


"브렉시트 국민 투표에서 트위터 봇을 활용해서 탈퇴 투표를 부추긴 바 있는 러시아는 이제 미국에 봇들을 풀어 놓았다. 최소한 수백 건의 사례에서 유럽 연합을 겨냥해 활동해 효과를 거뒀던 바로 그 봇들이 이번에는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했다. 해외 봇 트래픽의 대부분이 클린턴에 관한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선전이었다. 2016년 9월 11일 클린턴이 병에 걸리자 러시아 봇들은 사건의 규모를 대대적으로 증폭시키면서 트위터 상에서 #힐러리와병#HillaryDown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하나의 추세를 형성했다. 이 트롤과 봇들은 또한 여러 결정적인 시점에 트럼프를 직접 지원하기 위해 움직였다. 러시아 트롤과 봇들은 트위터에서 도널트 트럼프와 공화당 전당 대회를 칭찬했다." "트럼프가 승리한 몇몇 중요한 경합 주를 보면, 선거를 며칠 앞두고 봇 활동이 강화되었다. 선거 당일에는 봇들이 #민주당과의 전쟁#WarAgainstDemocrats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불을 뿜었다."(302)


"(이메일 해킹 등을 통해) 사적인 통신 내용을 '선별해서' 공적으로 공개하는 행위는 전체주의적 함의를 갖는다. 전체주의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경계선을 지워 버린다." "확실히 숨겨진 것일수록 궁금해지며, 폭로의 짜릿함은 해방감을 준다. 일단 모든 게 당연시되면, 토론은 공적인 것과 알려진 일에서 비밀스러운 것과 알려지지 않은 일로 탈바꿈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우리는 다음에 폭로될 것을 호시탐탐 노린다. 분명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는 공직자들은 우리가 그들에 관해 속속들이 알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인물이 된다. 그렇지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차이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지탱 불가능한 압력 아래 놓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직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 까발려 봐야 효과가 없는 정치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성공한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 같은 가공물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현실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306)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직접 우정훈장Order of Friendship을 받은 사람이 미국 국무장관이 된 것은 전례가 없었다. 렉스 틸러슨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공직을 그만두기 전에 틸러슨은 대대적인 미국 외교관 축출을 감독했다. 대상이 된 집단은 푸틴이 적으로 간주하는 이들이었다. 틸러슨은 국무부를 혼돈에 몰아넣음으로써 대외적으로 힘이나 가치를 투사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을 상당히 축소시켰다." "트럼프 본인은 자신의 선거 운동과 러시아 사이의 연계에 대한 모든 설명을 거듭해서 〈날조〉로 규정했다." "대통령으로서 그는 현실로부터 날조 자체를 보호해야 했다. 그리하여 트럼프는 2013년에 트럼프타워 불시 단속을 지시한 연방 검사 프릿 바라라를 해임했다. 마이클 플린을 발탁하지 말라고 경고한 법무장관 권한 대행 샐리 예이츠도 해임했다. 그리고 미국의 주권을 겨냥한 러시아의 공격을 조사한다는 이유로 연방수사국장 제임스 코미도 해임했다."(318-9)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대방보다 수백만 표를 많이 얻은 후보가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선거인단 제도 때문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모스크바의 시각에서 보면 이 체계는 활용할 수 있는 취약 지점으로 나타난다. 소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과 소수당이 정부의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면, 다수를 만족시키는 정책을 펴는 게 아니라 참정권을 한층 더 제한해야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정치의 유혹을 받게 마련이다. 체제의 대표성을 약하게 만들 수 있는 외국 정부는 바로 그런 유혹을 강화하면서 체제를 권위주의로 끌고 간다. 러시아가 2016년 미국 선거에 개입한 것은 단순히 어떤 사람을 당선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구조에 압력을 가하는 행동이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러시아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승리했다는 사실보다 체제 전반이 민주주의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것이다."(330-2)


"공화당원들이 러시아가 미국을 공격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당파성의 격정은 필사적인 부정과 무대응의 공모로 바뀌었다. 그해 9월 맥코넬은 러시아가 벌이는 사이버전에 관한 미국의 정보기관 수장들이 보고를 들었지만 과연 사실인지 의문을 표명했다. 정보기관 수장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중에 공개적으로 발표한 성명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미국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동을 지시했다고 판단합니다. 러시아가 추구하는 목표는 미국의 민주적 과정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손상시키고, 클린턴 국무장관의 명예를 훼손하고,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맥코넬은 공화당으로서는 러시아의 사이버전에 맞서 미국을 방어하는 것을 힐러리 클린턴을 도우려는 시도로 여기리라는 점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그 순간 러시아는 1년 넘게 미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335-6)


"허구의 영역에서 등장한 지도자는 양심의 가책이나 사과가 없이 거짓을 말한다. 그에게는 비非진실이 생활 양식이기 때문이다. 허구의 창조물인 〈성공한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는 비진실로 공적 공간을 채우고 거짓말에 대해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를 하면 진실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취임하고 처음 99일 중 91일 동안 트럼프는 적어도 한 번씩 거짓임이 뻔한 주장을 했다. 처음 298일 동안 그는 1628차례 그릇되거나 오해를 야기하는 주장을 했다. 한번은 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24차례 그릇되거나 오해를 야기하는 주장을 했다. 인터뷰어가 발언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1분당 한 번씩 한 셈이다. 모든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차이가 있다면 트럼프는 진실을 말하는 게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트럼프는 공직에 출마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통치했다. 정책 입안자보다는 분노 유발자로서 통치한 것이다."(349-50)


에필로그


"덕은 그것을 바람직하고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들로부터 생겨난다. 제도들이 파괴될 때 덕은 스스로 드러난다. 상실의 역사는 따라서 복원의 제안이 된다. 평등, 개인성, 승계, 통합, 새로움, 진실 등의 덕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이 모든 덕은 인간의 결정과 행동에 의지한다. 하나를 공격하면 모든 것이 공격받는다. 하나를 강화한다는 것은 나머지를 확인함을 의미한다." "오직 집단적인 공공 정책만이 개인을 확신하는 시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각자 개인인 우리는 함께, 그리고 따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투표한 적이 있고, 투표를 할, 다른 사람들과 민주주의 안에서 손을 맞잡으며, 이 과정에서 승계의 원리와 시간 감각을 창조한다. 이러한 것이 보장되면, 우리는 우리 나라를 여러 나라 중 하나로 보고, 통합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그 조건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조화든 새것으로 엣것을 끊임없이 조정하는 인간의 세밀한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움이 없으면 덕은 소멸한다."(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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