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그들의 정치 -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제이슨 스탠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솔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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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인격이 국가를 대표하는 여러 종류(민족, 종교, 문화)의 초국가주의를 가리키는 말로 '파시즘'이라는 명칭을 선택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나는 당신들의 목소리다〉라고 선언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이 책에서 내가 말하려는 주된 것은 파시스트 정치이다. 특히 구체적인 관심사는 권력을 얻기 위한 메커니즘으로서의 파시스트 전술이다. 그러한 전술을 쓰는 사람들이 일단 권력을 잡고 나면, 그들이 세운 정권의 형태는 상당 부분 각 나라의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파시스트 정치에는 신화적 과거, 프로파간다, 반지성주의, 비현실성, 위계, 피해자의식, 치안, 성적 불안, 전통에 대한 호소, 공공복지와 통합의 해체 등 서로 다른 많은 전략들이 있다. 특정 요소들의 옹호는 합법적이고 때로 정당화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것들이 하나의 정당이나 정치운동으로 합쳐지는 때가 존재한다. 바로 이때가 위험한 순간이다."(15-6)


1 신화적 과거


"파시스트 정치가 하나같이 자신의 기원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겠다. 그것은 바로 과거다. 파시스트 정치는 비극적으로 파괴된 순수한 신화적 과거를 들먹인다. 국가가 어떻게 정의되느냐에 따라, 그 신화적 과거는 종교적으로 순수할 수도 있고, 인종적으로 순수할 수도 있고, 문화적으로 순수할 수도 있으며, 그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파시스트적 신화화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다. 모든 파시스트의 신화적 과거에는, 불과 몇 세대 전까지도 극단적인 형태의 가부장적 가족이 군림하고 있었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화 속 과거는 애국적인 장군들이 이끄는 정복전쟁, 동포들로 가득한 군대, 집에서 다음 세대를 키우는 아내를 둔 강건하고 충성스러운 전사들로 이루어진 영광스러운 국가의 시간이었다. …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은, 세계주의나 평등 같은 '보편적 가치들'에 대한 존중 때문에 이러한 영광스러운 과거가 굴욕적으로 상실되었다고 한다."(25-6)


"대개 이러한 신화들은 실재하지 않은 과거의 순일성에 대한 환상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는 자유주의에 물든 도시적 퇴폐에 상대적으로 덜 오염된 작은 마을과 시골 지역의 전통 속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이러한 (언어적·종교적·지리적·민족적) 순일성은 일부 민족주의 운동에서는 아주 평범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파시스트 신화는 선택받은 민족의 구성원들이 다른 민족들을 정복하여 문명을 건설하고 지배한 영광스러운 민족사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다른 민족주의 운동과 구별된다." "파시스트 신화 속에서 과거는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이데올로기를 떠받치는 특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거 사회들이 파시스트 이데올로기가 묘사하는 것만큼 가부장적이거나 실제로 영광스러웠던 경우는 드물지만, 이러한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이 상상된 역사가 현재에 위계를 부여하는 일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공하고, 현재의 사회가 어떤 모습을 해야 하고 어떻게 운용되어야 하는지를 지시한다는 점이다."(26-7)


"파시스트 사회에서, 국가의 지도자는 전통적인 가부장제 가족의 아버지와 유사하다. 가부장제 가족에서 아버지의 힘과 권력이 자녀와 아내에 대한 궁극적인 도덕적 권위의 원천인 것처럼, 지도자는 국가의 아버지이며 그의 힘과 권력이 그의 법적 권위의 원천인 것이다." "국가의 과거를 가부장적 가족구조의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파시스트 정치는 중앙집중적으로 조직된 위계적 권위주의 구조에 향수를 부여하고 그것을 가장 순수한 형태의 표준으로 만든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영국의 나치즘 역사학자인 리하르트 그룬베르거는 〈여성 문제에 대한 나치사상의 핵심〉을 〈인종 간의 불평등이 불변하는 만큼이나 성별 불평등도 불변한다는 신조〉로 요약한다." "파시스트 정치에서, 자유주의적 이상의 침해로 위협받는 가부장적 과거의 신화는, 남성과 지배집단이 자신의 순수성과 지위를 외국의 침범으로부터 보호할 능력이 없으면 사회적 지위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기능을 한다."(29-30, 37)


2 프로파간다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정책을 대놓고 추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치 프로파간다의 역할은 명백히 문제가 있는 정치적 목표를,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상으로 가려서 숨기는 것이다. 권력을 위한 위험하고 불안정한 전쟁이 안정과 자유를 목표로 하는 전쟁으로 둔갑한다. 정치 프로파간다는 고결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여, 그렇지 않았더라면 반대할 만한 목적들을 지지하도록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은 문제가 있는 목표를 고결한 목표로 가린 좋은 예이다." "닉슨의 비서실장 홀더먼은 1969년 4월 수첩에 닉슨의 말을 인용해 적었다. 〈자넨 정말로 모든 문제의 원인은 흑인들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해. 관건은,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이 사실을 감안한 시스템을 고안하는 것이지.〉 닉슨은 범죄 억제라는 강령이 그의 행정부의 국내 정책 배후에 있는 인종차별적 의도를 효과적으로 숨길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55-6)


"파시스트 운동은 몇 세대에 걸쳐 '적폐청산'을 내걸어왔다. 그 자신이 부정행위에 관여하면서도 거짓 부패 혐의를 공표하는 것은 파시스트 정치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반부패 캠페인이 파시스트 정치운동의 핵심이 되는 경우도 많다." "파시스트 정치인에게 부패란 사실 법의 부패라기보다는 순결의 부패이다." "많은 백인 미국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틀림없이 부패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그가 백악관을 차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전통적 질서의 부패였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보통 남성들을 위해 마련된 정치권력의 자리에 오를 때(혹은 이슬람인, 흑인, 유대인, 동성애자 또는 '세계시민주의자'가 보건의료와 같은 민주주의 공공재의 혜택을 입거나 공유했을 때), 그것은 부패로 인식된다.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지지자들이 그들 자신의 진짜 부패에 대해서는 눈감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의 경우에는, 선택된 민족의 구성원들이 정당한 자신의 몫을 가져가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56-9)


"파시스트 정치가 반부패라는 명목으로 법치를 공격하듯이, 그것은 자유를 수호하고 개인의 자유권을 보호한다고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어떤 집단을 억압하는 조건으로 얻어진다." "노예제 관행을 옹호하기 위해 남부연합이 자유의 개념을 사용하고, 노예제를 옹호하기 위해 남부 주들이 '주의 권리'를 요구했을 때, 그리고 히틀러가 독재 통치를 민주주의로 표현했을 때, 자유민주주의적 이상들은 그 자체를 잠식하는 가면으로 사용되었다. 그 모든 경우에서 우리는, 반자유주의적 목표가 사실은 자유주의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허울 좋은 논증을 발견할 수 있다." "요제프 괴벨스 나치 선전부장관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농담은 항상 이런 것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는 자신을 파괴하는 수단을 그 불구대천의 원수들에게 주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파시스트들은 민주주의의 자유를 이용하여 그 자신과 대립하도록 만드는 이런 비법을 언제나 잘 알고 있었다."(61-6)


3 반지성


"파시스트 정치는 자율적인 반대 목소리를 지지하는 기관들의 신뢰를 훼손시키려고 한다. 그러한 목소리를 거부하는 언론과 대학으로 그 기관들을 대체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한 가지 전형적인 방법은 위선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바로 지금, 오늘날의 우익운동은 대학들이 표현의 자유에 대해 위선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대학들이 표현의 자유를 가장 존중한다고 주장하지만 우익의 목소리에 대한 항의 시위를 캠퍼스에서 허용함으로써, 좌편향되지 않은 목소리를 억압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 캠퍼스의 사회정의운동에 대한 비판자들은 자신들을 항의 시위의 피해자로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했다. 시위자들이 그들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학자들이 만들어내는 작업물에는 분야에 따라 정치적 함의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우익의 공격은 허용 가능한 연구의 선을 통제하려는 우익의 욕구를 분명히 드러낸다."(75-6, 80)


"파시즘이 위협을 가할 때에는 언제나, 그 대변자들과 조력자들은 대학과 학교를 '마르크스주의의 세뇌'의 원천이라고 비난하는데, 이는 파시스트 정치의 대표적인 겁주기 방식이다. 대개는 마르크스나 마르크주의와 상관없이 쓰이는 이 표현을, 파시스트 정치는 평등주의를 비방하는 방법으로 사용한다. 아무리 작아도 소외된 관점들에 어느 정도 지적 공간을 주고자 하는 대학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온상이라고 비난을 받고 있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파시즘은 지배적인 관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파시즘 시기 동안에는 지배적 관점과는 다른 관점을 가르치는 학문들을 비난하는 인물이 강력한 지지를 얻게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나 젠더 연구, 또는 중동 연구 같은 분야가 그런 비난을 받는다. 지배적인 관점은 종종 진실로, 즉 '진짜 역사'로 둔갑하고, 대안적 관점을 위한 공간을 허용하려는 시도들은 모두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는 조롱을 받는다."(81-2)


"파시스트 지도자들은 자문이나 토의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본다. 전문지식의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지적으로 세련된 논쟁을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든다. 현실은 우리가 그것을 나타내는 방식보다 항상 더 복잡하다. 과학 언어는 그것 없이는 보이지 않는 구별을 나타내기 위해 훨씬 더 복잡한 용어를 필요로 한다. 사회적 현실은 적어도 물리적 현실만큼 복잡하다. 건강한 자유민주주의에서, 구별을 나타내기 위한 풍부하고 다양한 어휘를 가진 공공언어는 필수적인 민주주의의 기구이다. 그것 없이는 건강한 공적 담론이 불가능하다. 파시스트 정치는 정치 언어의 질을 떨어뜨리고 저급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파시스트 정치는 현실을 가리고자 한다." "건강한 자유민주주의에서 언어는 정보의 도구이다. 파시스트 프로파간다의 목표는 단지 정책에 대한 활발하고 복잡한 공적 논쟁을 조롱하고 비웃는 것만이 아니다. 그런 가능성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94-5)


4 비현실


"파시스트 정치는 현실을 특정 개인이나 특정 정당의 발언으로 대체한다. 명백한 거짓말을 수시로 반복하는 일은 파시스트 정치가 정보 공간을 파괴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파시스트 지도자는 진실을 힘으로, 결국 무의미한 거짓말로 대체할 수 있다." "철학자 줄리아 나폴리타노는 음모론을 내집단의 이익을 위해 외집단을 '표적' 공격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음모론은 그 표적물을 문제 있는 행위와 (주로 상징적으로) 관련 지음으로써 폄하하고 퇴출시키는 기능을 한다. 음모론은 보통의 정보처럼 기능하지 않는다. 때로는 너무 억지스러워 아무도 문자 그대로 믿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오히려 음모론의 기능은 그 표적의 신뢰성과 도덕성에 대한 막연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음모론은 주류 언론의 신용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되는 중요한 장치이다.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거짓 음모들을 취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론을 편향적이라고 비난한다."(101-3)


"음모론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경험을 쉽게 무시하기 때문에, 음모론이 거짓이라는 것이 입증되어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2017년 6월 텍사스 주지사 그레그 애벗이 서명한 텍사스 하원 법안 45호 '미 법원을 위한 미국법'은 무슬림들이 이슬람 법을 텍사스주 안으로 들여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무슬림들이 텍사스를 몰래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꾸려 한다는 것은 정말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실제로는 무슬림인데 미국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기독교인 행세를 하고 있다는 가설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음모 이론들은 효과가 있는데, 보통은 원한이나 외국인 혐오와 같은 감정들이 비이성적이라고 여겨지지만, 지금은 위협이 감지된 상황이니 그럴 만하다는 단순한 설명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단 대중이 자신들의 비이성적인 공포와 원한에 대한 설명을 음모론의 위안에서 찾으면, 정치적 문제를 숙고할 때 이성의 인도를 따르지 않게 될 것이다."(111-2)


"밀의 『자유론』과도 연관되는, '아이디어의 시장' 개념은 간섭 없이 놔두면 거짓을 몰아내고 지식을 생산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유시장 개념과 같은 '아이디어의 시장'이라는 개념은 소비자에 대한 유토피아적 이해에 기반한 것이다. 아이디어 시장이라는 은유의 경우에는, 대화가 근거들의 교환에 의해 작동한다는, 즉 한쪽 당사자가 이유를 제시하면 상대방이 근거를 들어 반박하고 그렇게 결국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된다는 유토피아적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대화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만이 아니다. 대화는 관점을 가로막고, 두려움을 일으키고, 편견을 높이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아이디어의 시장'을 옹호하는 논증은 말이 〈기술적, 논리적 또는 의미론적〉으로만 사용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정치에서, 그리고 특히 파시스트 정치에서, 언어는 단순히 (또는 심지어 주로) 정보 전달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용된다."(113-5)


5 위계


"〈인간의 운명은 평등하지 않다. 인간은 건강과 부, 사회적 지위 또는 그 밖의 것들에서 서로 다르다. 단순한 관찰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은, 그런 모든 상황에서 더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지위를 '정당한' 것으로, 자신의 특권을 '자격 있는' 것으로, 그리고 다른 이들의 불이익을 그들의 '잘못'에 의해 초래된 것으로 볼 필요성을 끊임없이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 차이가 순전히 우발적인 원인 때문이라는 것이 아무리 명백하다고 해도, 여전히 그러하다〉(막스 베버, 『경제와 사회』)." "파시스트 이데올로기가 보기에, '자연'은 자유민주주의 이론이 전제하는 평등한 존중과 단적으로 모순되는 권력과 지배의 위계를 부과한다. 위계는 파시스트 정치가 손쉽게 악용하는 일종의 집단 망상이다." "그들이 위계를 정당화하는 원리는 자연 그 자체이다. 파시스트에게 평등 원칙은 자연법칙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연법칙은 남성을 여성보다, 파시스트의 선택된 민족의 구성원을 다른 집단들보다 우선시한다."(129-31)


"개빈 에반스는 2018년 3월 『가디언』의 기고문 「인종과학의 반갑지 않은 부활」에서 정치학자 찰스 머레이와 하버드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와 같은 인물을 통해 어떻게 〈인종과학이 주류 담론에 스며들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에반스에 따르면, 2005년 핑커는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선천적으로 특별히 똑똑하다〉라는 견해를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에반스는 이 견해를 〈인종과학의 웃는 얼굴〉이라고 말한다.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선천적으로 특별히 똑똑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자들이 다른 집단의 '선천적 지능'에 대한 결론들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한다. 2007년 온라인 출판물 『디 엣지The Edge』에 기고한 글에서 핑커는 '정치적 올바름'이 연구자들이 '위험한 생각'을 연구하지 못하게 했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종류의 글쓰기의 문제는, 불평등의 원천을 자연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평등에 대한 가슴의 호소를 이성에 따라 거절하는 용감한 진실 추구자처럼 묘사한다는 것이다."(134-5)


"파시스트에 따르면 평등은 자유주의의 트로이 목마다. 유대인, 동성애자, 무슬림, 비백인, 페미니스트 등 다양한 이들이 오디세우스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유주의적 평등의 신조를 퍼뜨리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 이념에 감염된' 호구이거나, 실제로는 비자유주의적인 기만적 목적으로만 자유주의의 이상을 퍼뜨리고 있는 국가의 적이다. 파시스트 프로젝트는 참된 '민족' 구성원들의 지위 상실에 대한 불안감을, 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집단의 평등이 인정된다는 두려움과 결합한다." "위계에서 혜택을 받고, 그러한 혜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우월한 존재라는 신화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며, 이 신화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들을 가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관용과 포용을 요청하는 자유주의자들의 탄원을 불신할 것인데, 그러한 탄원을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가면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파시스트 정치는 위계적 지위의 상실이 억울한 피해자를 낳는다는 피해자의식을 먹고 산다."(142-4)


6 피해자의식


"파시스트 정치에서는, 평등과 차별이라는 반대되는 개념이 서로 뒤섞인다. 1866년 민권법은 새로이 해방된 남부 흑인들을 미국 시민으로 만들고 그들의 시민권을 보호했다. 그 법은 1866년 3월 14일 상원과 하원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달 말,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이 법이 수립한 유색 인종 보호를 위한 안전조치는 정부가 백인 인종을 위해 제공한 그 어떤 조치보다도 훨씬 더 크다〉라는 이유로 민권법을 거부하였다. W. E. B. 듀보이스가 지적했듯이, 존슨은 미래의 흑인 평등을 향한 출발점이 되는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백인에 대한 차별'로 인식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소수자였던 집단의 구성원들이 더 큰 대표성을 얻게 되면 지배집단들은 이를 위협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수행되어왔다." "시민권과 권력을 소수집단과 공유하게 된다는 전망이 등장할 때, 지배집단이 갖게 되는 피해자의식을 이용하는 것은 오늘날 국제 파시스트 정치의 보편적인 요소이다."(149-52)


"파시스트 프로파간다는 지배적 지위의 상실에 동반되는 괴로움에 대해 애달픈 송가를 부르게 마련이다. 파시스트 정치는 그 느낌만은 진짜인 이 상실감을 조작해 억울한 피해자의식으로 바꾸어서, 과거의 억압이나 현재 계속되는 억압 또는 새로운 형태의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한다. 구조적인 경제적 원인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백인 노동자계급 남성이 '당신의 특권을 봐라Check your privilege'라는 말을 들으면, 도리어 백인 우월주의 운동에 관심이 쏠릴 수도 있다. 백인 우월주의 의제를 평평한 운동장에 대한 요구로 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파시스트 정치는 이러한 진지한 자유주의적 명령을 크게 조롱한다." "되레 이 문구는 공적 영역에서 자유주의적 엘리트들을 위선자라고 비난할 때 사용되는데, 백인 민족주의 프로파간다가 보기에는 2017년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백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많이 발견된다고 하기 때문이다."(156-7)


# Check your privilege : 2014년 미국 대학 사회에서 퍼져나간, 사회적 불평등과 특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는 캠페인


"민족주의는 파시즘의 핵심이다. 파시스트 지도자는 집단적 피해자의식을 이용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국제주의 정신이나 개인주의에 본질적으로 반대되는 집단 정체성의 감정을 조성한다." "헝가리 총리 오르반은 이른바 유럽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헝가리의 신화적 과거를 이용하여 이민자들에 대한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부채질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유주의 엘리트들('유럽의 지식인과 정치 지도자들')이 이민자들의 파도가 밀려오도록 내버려두는 바람에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종교'가 내부로부터 무너질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고는 위태로운 기독교 유럽을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한 전사 지도자로 자기 자신을 내세운다. 잔혹한 전쟁을 피해 탈출한 난민들은 오르반의 눈에는 기독교 유럽의 성벽 안에 '이적 집단'을 수립하려는 강력한 침략 세력으로 보일 뿐이다." "그는 야만적이고 무법한 무리들에 맞서 헝가리를 다시 영광스러운 과거로 되돌려놓을 때, 자신의 뒤에 서달라고 촉구한다."(166-8)


7 법질서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는, 모든 시민을 평등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법률에 의해 다스려지며, 치안유지의 임무를 맡은 이들을 포함하여 사람들 사이의 상호 존중의 유대감으로 뒷받침된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이 구사하는 소위 '법질서law and order' 수사법은 시민을 대놓고 두 계급으로 나누고자 한다. 천성적으로 합법적인 선택받은 민족과, 본래 무법하고 선택받지 못한 민족으로 나누는 것이다. 파시스트 정치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에 맞지 않는 여성, 비백인, 동성애자, 이민자, 지배적인 종교를 믿지 않는 '퇴폐적인 세계시민주의자들'은 그 존재 자체가 법질서 위반이다. 미국의 선동가들은 흑인들을 법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함으로써, 비백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백인 국가 정체성이라는 강력한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이민자들에 맞서 주민들을 통합하기 위하여, 공포에 기반해 친구와 적의 구별을 만들어내는 비슷한 전술이 사용되고 있다."(172-3)


"'범죄자'라는 단어에는 물론 문자 그대로의 의미도 있지만, 다른 울림을 주는 의미도 있다. 즉, 본질적으로 사회의 규범에 둔감하고, 사리사욕이나 악의로 법을 어기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저 범법을 저질렀다고 해서 범죄자인 것도 아니다. '범죄자'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게 특정 유형의 성격을 부여하는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집단 간 언어 편향'이라고 부르는 관행을 연구해왔다. 우리가 '우리'의 하나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와, 우리가 '그들'의 하나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에 상당히 다르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잘 차려입은 백인 미국인이 수갑을 차고서 경찰차 뒷좌석에 있는 모습을 백인 미국인이 본다면, 그는 아마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가 저렇게 체포되었는지를 궁금해할 것이다. 반면 수갑을 찬 흑인 미국인이 경찰차 뒷좌석에 있는 것을 백인 미국인이 본다면, 그는 경찰이 어떻게 '저 범죄자'를 잡았는지를 궁금해할 것이다."(176-8)


# 좋은 행동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우리'의 선행은 성격적 특성으로 묘사되고, '그들'의 선행은 구체적 행동으로 묘사된다.


"선동적인 언어는 단지 공적 담론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민들 전체의 판단과 인식에 뿌리 깊이 영향을 미친다. 범죄자는 성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그 본성상 사회가 어떻게 구제할 수 있는 가망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파시스트 프로파간다는 그들이 표적으로 삼은 집단의 구성원을 그저 범죄자로만 내세우지는 않는다. 이러한 집단들에 대한 공포를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구성원들은 파시스트 민족에 특정 종류의 위협이 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순수성에 위협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 파시스트 정치는 한 가지 종류의 범죄를 강조한다. 파시스트 프로파간다가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본적인 위협은, 표적 집단의 구성원들이 선택된 민족의 일원을 강간하여 그 '피'를 오염시킬 것이라는 위협이다. 집단 강간의 위협은 동시에 파시스트 민족의 가부장적 규범, 민족의 '남성성'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진다."(189-92)


8 성적 불안


"역사학자 키스 넬슨은 1970년 논문 「'라인강의 검은 공포':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외교의 한 요소로서의 인종」에서, 1919년 프랑스군 소속 아프리카 군인들이 라인란트를 점령했을 때 독일이 집단 히스테리에 사로잡혔던 일을 기록한다.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온 프랑스 군인들이 독일 여성들을 집단 강간했다는 가상의 사건에 대한 독일의 프로파간다는 들불처럼 퍼져나갔고, 기사는 에스페란토를 포함한 거의 모든 유럽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프로파간다는 '인종에 민감한' 미국에서 특히 성공적이었다." "히틀러에 따르면, 흑인 군인들을 이용하여 순수한 아리안 여성들을 강간함으로써 '백인종'을 파괴하려는 음모의 배후는 유대인들이었다. 1920년대에 미국의 KKK 역시 흑인 남성들이 백인 여성을 집단 강간하도록 유대인들이 의도적으로 일을 꾸몄다는 공상을 공공연히 주장했다." "미국에서 흑인 남성을 린치하는 관행은 백인 미국 여성의 순수성을 방어할 필요성을 주장함으로써 정당화되었다."(196-8)


"가부장적 남성성은 사회가 남성들에게 가족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부양자의 역할을 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극심한 경제적 불안의 시기에,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선동은 성평등의 증가 때문에 지위를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해 이미 불안해진 남성들을 쉽게 공황에 빠뜨릴 수 있다. 여기서 파시스트 정치는 불안의 근원을 의도적으로 왜곡한다.(즉, 경제적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도외시된다.) 파시스트 정치는 경제적 불안으로 고조된 남성의 불안을 뒤틀어서, 전통적 가족구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가족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는 두려움으로 바꾼다. 다시금 여기서도, 파시스트 정치는 성폭행의 잠재적 위협을 무기로 사용한다." "파시즘이 트랜스 여성을 공격하고, 이 두려운 타자를 민족의 남성성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하는 것은, 남자다움이라는 생각 자체를 정치적 관심의 중심에 놓고, 물리력을 통한 지배와 위계의 파시스트적 이상을 공공영역에 점차 도입하는 방법이다."(204-7)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를 행사하는 일이다. 여성이 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권리도 자유의 행사이다. 파시즘 정치는 임신중절을 어린이에 대한 (그리고 남성의 통제에 대한) 위협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유주의적 자유의 이상을 의문시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권리는 자유의 행사다. 이종혼의 가능성 때문에 특정 종교나 인종의 구성원을 위협적인 존재로 나타내는 것은 자유주의적 자유의 이상을 의문시하는 일이다."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하는 남자의 능력이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하면, 파시스트 정치인들에게 어려운 정치적 문제가 해결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와 평등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정치인은 대중들에게 지지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성적 불안을 조장하는 정치적 전술은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이 문제를 피해가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을 공격하고 훼손하면서도 대놓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208-10)


9 소돔과 고모라


"국제적 대도시와 그 문화적 생산물에 대한 히틀러의 비난은 파시스트 정치의 표준이다." "파시스트 정치에서, 가족 농장은 국가 가치의 초석이고 가족 농장 공동체는 군대의 근간이 된다. 국가 가치의 이 생명 중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도시로 유입되는 자원들을 농촌 지역으로 돌려야 한다. 농촌 사회는 민족의 순수한 피의 원천이기 때문에, 이민을 통해 외부의 피가 섞여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 "2017년 4월 21일 『가디언』에 실린 한 기고문은 국민전선과 그 대선 후보인 마린 르펜의 근거지를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소도시와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르펜의 '강경 안보와 반이민' 메시지는 당에 대한 농촌의 지지가 급증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그런 지역에서는 〈심지어 이민자가 거의 없는 곳인데도〉 반이민 정서가 깊이 만연해 있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의 거친 반이민 언사는 이민자가 거의 없는 농촌 지역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218-21)


"파시스트 정치는 대도시 바깥의 사람들을 겨냥하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 메시지는 1930년대 유럽에서 일어난 것처럼, 경제력이 신흥 세계경제의 중심지인 대도시 지역으로 이동하는 세계화 시대에 특히 반향을 일으킨다. 파시스트 정치는 세계화된 경제가 시골 지역에 끼치는 피해를 강조하며, 자유 도시들의 성공이 전통적인 시골의 자급자족 등의 가치를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위협에 처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이뿐만 아니라 파시스트 정치는 열심히 일하는 시골 주민들이 게으른 도시 거주자들의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돈을 내고 있다는 모욕적인 신화를 부채질한다. 그래서 그 성공 기반이 시골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파시스트 정치인들이 도시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주장의 정확성 여부는 그들의 성공에 딱히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러힌 메시지는 도시에 살고 있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반향을 일으키지만, 도시 거주자들에게 호소할 필요는 없다."(221-3)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에서, 도시는 민족의 구성원들이 자식도 없이 늙어 죽으러 가는 장소이며, 그들을 둘러싼 경멸스러운 타자들의 거대한 무리가 통제 불능으로 번식하여 그 자녀들이 국가에 영구적인 부담을 주는 곳이다. 파시스트 세계관에서 도시는 사람들이 생존과 안락을 위해 공공 기반시설인 '국가'에 의존하고 있는 집단 기업이다. 도시 거주민들은 파시스트 신화에서와 같이 사냥이나 식량 재배를 하지 않는다. 가게에서 구입할 뿐이다. 이는 농촌의 농업 자급자족이라는 파시스트적 이상과 배치된다.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에서 부양을 담당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민족이다. 공동체로 활동하는 자족적 개인들로 이루어진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순수한 작은 공동체들이 그것이다." "파시스트 정치에서, 도시에 사는 소수민족의 게으름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강제 중노동을 시키는 것밖에 없다. 나치 이데올로기에서 중노동은 태생적으로 게으른 인종을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230-2)


10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에서, 위기와 궁핍의 시기에 국가는 선택된 민족의 구성원들을 위한 지원을 마련해둔다. '그들'이 아닌 '우리'를 위한 지원이다.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한결같다. '그들'은 게으르고 직업윤리가 결여되어 있어 국가 자금을 믿고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범죄자이고 국가 부조금만 받아먹고 살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파시스트 정치에서, '그들'의 게으름과 도둑질은 강제 중노동으로 고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의 출입문에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는 구호가 쓰여 있었던 이유이다." "국가와는 대조적으로. 민족에는 '복지'와 같은 장치가 없다. 히틀러는 복지를 맹비난했는데, 개인이 경제적 독립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국가는 근면한 시민의 부를, 우성優性 민족이나 종교 공동체 밖에서 편승하고 있는 '자격 없는' 소수자들에게 재분배하는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다."(237-8)


"'근면' 대 '게으름'의 이분법은 '준법자' 대 '범죄자'의 이분법처럼 '우리'와 '그들' 사이의 파시스트적 분열의 핵심에 놓여 있다. 이러한 수사법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전형적으로 파시스트 운동은 사회정책을 통해 '그들'에 대한 신화를 현실로 바꾸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난민정책에서 이를 흔히 볼 수 있다." "멸시받는 소수집단의 구성원들을 잔혹하게 대하고 국경 너머 난민으로 쫓아 보내면서, 파시스트 운동은 소수집단의 구성원들이 게으르고 국가 원조나 사소한 범죄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외관상의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파시스트 정치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조건들도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것이다." "파시스트 정치와 파시스트 정책은 서로 쉽게 분리될 수 없다. 파시스트 정치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한때 허황했던 발언들을 점점 더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직권을 사용하려는 강한 유혹을 받게 된다."(240-2)


"우리/그들의 분열을 가로막는 하나의 장애물은 계급 내의 단결과 공감이다. 잘 단합된 노조의 백인 노동자계급 시민들은 흑인들을 혐오하기보다는 흑인 노동자계급 시민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런데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분열적인 정책에 저항하는 이러한 연대의 효과를 이해하고 있기에 노동조합을 해체시키려고 한다. '엘리트들'을 비난하면서도, 파시스트 정치는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노동조합은 다양한 차원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묶는 주요한 장치다. 노동조합은 협력과 공동체의식, 그리고 임금 평등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의 급변으로부터 보호를 제공하는 장치이다. 그러나 파시스트 정치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반드시 파괴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개별 노동자들이 세계 자본주의의 바다를 혼자 헤쳐나가도록 남겨져서, 결국 당이나 지도자에게 의존하게 될 준비가 갖춰져야 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에 대한 반감은 파시즘 정치의 주요 주제이다."(253-4)


"그러나 파시스트 이데올로기가 노동조합을 표적으로 삼는 데는 더 많은 이유가 있다. 파시스트 정치는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의 조건에서 가장 효과적이다." "파시즘은 공포와 원한을 동원해 시민들을 서로 대립시킬 수 있는 경제적 불확실성의 상황에서 번성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파시즘 정치가 발판을 얻는 것을 막는 장치가 된다." "오늘날, 미국 28개 주에서 통과된 소위 '노동권' 법안은 노동조합이 회비 납부를 원하지 않는 직원에게 회비를 청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회비를 납부하지 않기로 한 직원들의 권리도 조합이 동등하게 대표하고 변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 제정의 의도는 노동조합의 자금원을 막음으로써 노조를 파괴하는 것이다. '노동권'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교섭 능력을 공격하여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빼앗는 법률의 오웰식 명칭이다. 미국 노동자들의 중서부 보루인 위스콘신과 미시간에서 노동권 법이 통과된 후, 주의 정치는 급격히 우경화되었다."(255-8)


"우리는 파시즘이 획일적인 대중으로부터 힘을 끌어온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흔히 반개인주의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히틀러는 개인의 가치와 능력주의라는 이상을 거듭 찬양했다. 개인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다윈주의의 개념은 파시스트적 위계에 구조를 부여하고 게으름에 대한 비난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파시즘에서 집단은, 노동과 전쟁에서 성과를 내어 다른 집단보다 우위에 서는 능력에 의해 등급이 매겨진다. 히틀러가 자유민주주의를 매도하는 까닭도, 자유민주주의가 자연스러운 능력주의적 투쟁에서 거둔 승리와 무관하게 가치를 부여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개인성과 양립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민주주의를 맹비난한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경쟁적 투쟁을 통해 다른 개인들보다 우위에 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파시즘적 시각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자유지상주의적 개념과 유사하다. 경쟁할 권리는 있지만 꼭 성공한다거나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262-3)


"파시스트 정치의 끌어당기는 힘은 막강하다. 그것은 인간 존재를 단순화시키고, 우리에게 하나의 대상을, 하나의 '그들'을 주고서는, 그들을 게으른 자로 비난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탁월함과 규율을 돋보이게 한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자격 없는' 인간들에게 시원하게 일갈을 날리는 강력한 영도자와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부추긴다." "파시스트 정치는 인간의 약점을 먹이로 삼는다. 그 약점이란 내가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내가 겪는 고통도 견딜 만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의 상황에서 부유한 소수만이 자유주의적 교육의 혜택을 누리고 다양한 문화와 규범을 접할 수 있을 때, 자유주의적 관용은 엘리트의 특권으로 쉽게 그려진다. 너그러운 (그러나 값비싼) 자유주의적 비전들은 파시스트 선동가들의 손쉬운 표적이 된다. 그러한 조건들하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규범들이 번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일 따름이다."(269-71)


에필로그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파시즘이 빠르게 정상이 되는 생생한 사례들을 보고 있다. 정상화는 도덕적으로 이상한 것을 평범한 것으로 바꾸는 일을 한다. 그것은 마치 일이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우리가 이전에는 견딜 수 없었던 일을 참을 수 있게 만든다. 반대로, '파시스트'라는 단어는 과장된 잘못된 경고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정상'이라는 말뜻 그대로,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의 정상화는 '파시즘'에 대한 고발을 과잉반응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우려스러운 방향으로 규범이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서조차도 그럴 것이다. 정확히 말해 정상화란, 이데올로기적으로 극단적인 상황들이 잠식해 들어오는 것이 정상적인 일로 보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것이 파시즘이라고 고발하는 일은 언제나 극단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극단적인' 용어를 정당하게 사용하기 위한 골대가 정상화로 인해 계속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277-8)


"난민, 페미니즘, 노동조합과 인종적, 종교적, 성적 소수자 등 파시스트 정치의 직접적인 표적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를 분열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이 사용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파시스트 정치는 특정한 청중을 염두에 두고서 그들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시스트 정치는 이 청중을 환상으로 꽉 움켜잡아서 그들의 국가에 등록시키려고 한다. 그러면 그들은 이 국가에서 자신들만이 인간의 지위를 '누릴 가치가 있다'라고 여기며 점점 더 집단 망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 청중의 지위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세계 여기저기의 캠프에서 대기 중이다. 강간범, 살인범, 테러리스트의 역할이 맡겨질 보잘것없는 남녀들 말이다. 파시즘 신화에 현혹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자유롭게 포용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결함이 있고, 우리는 모두 생각과 경험과 이해가 부분적으로 치우쳐 있다. 그러나 우리 중 그 누구도 악마가 아니다."(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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