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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평점 :
서로 얽히게 하는 것들
"'제1의 자연'은 (인간을 포함한) 생태적 관계를 의미하고 '제2의 자연'은 자본주의적으로 변형된 환경을 뜻한다고 상상해보라. 대중적으로는 생소한, 자연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윌리엄 크로넌의 책 『자연의 메트로폴리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 책은 '제3의 자연'을 제안하는데, 그것은 곧 자본주의 속에서도 삶을 살아내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제3의 자연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미래가 단일한 방향으로 뻗어나간다는 가정을 버려야 한다. 양자장의 가상 입자들처럼 복수複數의 미래가 수많은 가능성과 함께 출몰한다. 제3의 자연은 이런 시간적 다성음악 안에서 창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에 관한 이야기들이 우리 눈을 멀게 했다. 이 책은 진보의 이야기 없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삶이 얽혀 있는 방식의 '열린 배치open-ended assemblages'를 그려낼 것이다. 이들 열린 배치가 많은 종류의 시간적 리듬과 조화를 이루면서 합쳐지기 때문이다. 나의 형식 실험과 내가 펼치는 주장은 서로를 뒷받침한다."(9-10)
프롤로그: 가을 향기
"이 책은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의 상황, 즉 안정성에 대한 약속이 부재하는 삶을 탐구하기 위해 버섯과 함께 떠난 나의 여행 이야기이다. 1991년에 소련이 무너지자 갑자기 정부 지원을 못 받게 된 수천 명의 시베리아인이 버섯을 따러 숲으로 달려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쫓는 것이 이러한 버섯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 바로 우리 것인 줄만 알았던 통제된 세계가 실패했을 때, 통제받지 않는 버섯의 삶이 선물이자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한때 우리는 근대화와 진보의 꿈에 기대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 같이 알고 있다고 여겼다. 이제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꿈에 대한 비판 대신, 그런 발판 없이 사는 삶에 상상력을 동원해 도전해보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송이버섯 진균이 갖는 매력에 마음을 연다면, 송이버섯은 우리를 호기심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한 호기심이야말로 불안정한 시대에 협력해 생존하기 위한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22-4)
1부 남은 것은 무엇인가?
1. 알아차림의 기술
"1910년대 오리건주 케스케이드산맥 동부의 우뚝 솟은 폰데로사소나무와 포틀랜드에 밀집해 있는 목재 저장소 간에 산업적 연결망[철도]이 연결되었다. 벌목된 소나무가 멀리 떨어진 시장으로 마구 실려 나갔다. 제재소는 새로운 정착민을 맞이했으며, 제재소 노동자가 늘어감에 따라 마을도 성장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이야기다. 개척자와 진보 이야기, 그리고 '텅 빈' 공간이 산업 자원을 지닌 장소로 탈바꿈한 이야기다.〉" "그러나 벌목꾼의 일자리는 목재 회사가 기계화되고 최상의 목재가 고갈되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1989년에 이르러서는 이미 많은 제재소가 문을 닫았고, 벌목 회사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다. 산업적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생계 터전을 잃고 풍경을 훼손하게 될 물거품 같은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런 기록에 미처 담기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쇠락의 결말로 마친다면 모든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46-7)
"산업화의 약속이라는 유혹과 그에 따른 붕괴를 넘어, 훼손된 풍경에서 창발하는 것은 무엇인가? 1989년 무렵 오리건주의 벌목된 숲에서는 또 다른 일이 시작됐다. 바로 야생 버섯 무역이다. 처음부터 이것은 전 세계의 붕괴와 연관된 일이었다. 1986년 체르노빌 참사로 유럽의 버섯이 오염되자 무역업자들은 버섯을 구하러 태평양 연안 북서부로 오게 됐다. 일본이 높은 가격에 버섯을 수입하기 시작했을 당시는 실직 상태의 인도차이나 난민들이 캘리포니아주에 자리를 잡던 시기와도 맞아떨어지는데, 이때 버섯 무역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수천 명이 이 새로운 '백금'을 얻기 위해 태평양 연안 북서부로 몰려들었다. 숲을 두고 '일자리냐 환경이냐' 하는 논쟁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지만, 어느 쪽도 버섯 채집인을 신경쓰지 않았다. 일자리 옹호론자들은 건강한 백인 남성의 임금 계약만을 상상했다. 환경보전론자들은 인간이 숲을 교란하지 못하게 하려고 투쟁했다. 그러나 수천 명의 버섯 사냥꾼은 대체로 눈에 띄지 않았다."(47-8)
"대체로 우리는 불안정성을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예외적 상황이라 여긴다. 불안정성은 체계에서 '예외'라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불안정성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조건이라면 어떨까? 아니, 달리 말해서 우리 시대가 불안정성을 인지할 단계에 이른 것이라면 어떨까?" "불안정성은 타자들에게 취약한 상태를 말한다. 예측 불가능한 마주침은 우리를 변모시킨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다. 공동체의 안정적인 구조에 의존할 수 없는 우리는 가변적인 배치로 내던져지고, 이로써 우리와 관계된 타자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재형성된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의존할 수 없다. 우리의 생존 능력을 포함한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불안정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다른 방식의 사회 분석이 가능하다. 불안정한 세계는 목적론이 없는 세계다. 시간 본연의 무계획성을 뜻하는 불확정성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불안정성을 놓고 생각해보면 불확정성도 삶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51-2)
"배치assemblage는 유용한 개념이다. 생태학자는 때로 고정되고 제한된 함의를 갖는 생태적 '공동체'를 벗어나 배치로 관심을 돌렸다. 하나의 배치 안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종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는지는 결코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것은 서로를 방해하고 (혹은 먹고) 어떤 것은 생존을 위해 협력한다. 또 어떤 것은 자신들이 같은 장소에 있음을 이제 막 우연히 알게 됐다. 이처럼 배치는 열린 모임gathering이다." "배치에서는 의도치 않은 조율coordination 패턴이 발달한다. 그런 패턴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모여 빚어내는 시간적 리듬 및 규모scale의 상호작용을 지켜본다는 뜻이다." "배치는 자본과 국가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므로, 정치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관찰하기에 좋은 장소가 된다. 자본주의에는 목적성이 없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것이 이미 구조적으로 마련된 방식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병치되는 과정을 통해서 한데 모이는지 또한 볼 필요가 있다."(56-8)
2. 협력으로서의 오염
"어떻게 모임은 그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이 되는가? 한 가지 답은 오염이다. 우리는 마주침을 통해 오염된다. 우리가 다른 존재들에게 길을 열어줌에 따라 마주침이 우리 존재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오염을 통해 세계-만들기 프로젝트가 변화하면 상호적인 세계와 새로운 방향이 창발할 수도 있다. 모든 존재는 오염의 역사를 수반한다. 순수성은 선택지에 없다. 불안정성을 유념하는 태도가 갖는 한 가지 장점은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 생존의 방식임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는 점이다. 여기서 생존이란 무엇인가? 미국에서 유행하는 판타지를 살펴보면, 생존이란 항상 다른 존재와 싸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외계 행성 이야기에 등장하는 '생존'은 정복과 팽창의 동의어다." "그러나 어떤 생물종이든 살아 있기 위해서는 살기에 적합한 협력이 필요하다. 협력이란 차이를 수용하며 일한다는 의미로, 이것은 곧 오염으로 이어진다. 협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63-4)
3. 규모에 따른 문제
인터루드: 냄새 맡기
"우에다 고지는 교토의 전통 시장에서 아름답게 꾸민 채소 가게를 경영한다. 그가 말하길, 송이버섯 시즌 동안 상점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버섯을 구매하기보다는(그가 파는 송이버섯은 비싸다) 냄새를 맡으러 온다고 한다. 가게에 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일본의 송이버섯 애호가들은 송이버섯 냄새가 요즘 젊은이들이 절대 알지 못하는 과거를 회상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송이버섯에서는 조부모님을 찾아뵙고 잠자리를 쫓던 어린 시절 및 시골 생활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지금은 산에서 밀려나 사라지고 있는 툭 트인 소나무 숲을 생각나게 한다. 그 냄새와 함께 많은 소소한 기억들이 돌아온다. 한 여성은 그 냄새가 시골 마을에서 실내문으로 사용한 장지문을 생각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할머니가 새해마다 문종이를 갈았고, 새해의 버섯을 싸는 데 그 종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송이버섯은 잃어버린 시간temps perdu의 냄새가 난다."(99-101)
"일부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교란한 숲에서 노스텔지어 냄새를 맡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러한 야생의 공간에서 항상 노스텔지어의 감정만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유럽 출신 사람들은 그 냄새를 견디지 못한다." "이러한 불확정성에는 아주 흥미로운 자연-문화의 매듭이 있다. 서로 다른 방식의 냄새 맡기와 서로 다른 속성의 냄새가 함께 쌓여 있다. 버섯 안에 함께 응축되어 있는 모든 문화사와 자연사를 이야기하지 않고 송이버섯 냄새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뒤얽힌 것을 완벽히 해체하려고 하면─예를 들면, 인공적인 송이버섯향이 그러한데─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송이버섯 냄새는 기억과 역사를 둘러싸고 뒤엉키며, 비단 인간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냄새는 그 자체로 강력한 박진력을 가진 정동affect으로 가득한 매듭 속에 여러 존재 방식을 집합시킨다. 송이버섯 냄새는 마주침을 통해 발생했기에 우리에게 역사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104-7)
2부 진보 이후에: 구제 축적
4. 가장자리를 작업하기
# 구제salvage. 자본주의적 통제를 받지 않고 생산된 가치를 써먹는 것. 석탄, 석유 같은 자연 원료나 공동체에서 길러진 숙련 기술 등이 있다.
"오리건주의 숲에서 일하는 송이버섯 채집인과 일본에서 그 버섯을 먹는 사람을 연결하는 공급사슬은 놀라운 일과 문화적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다. 거기에는 우리가 공장 노동을 통해 알고 있는 자본주의가 거의 없다. 그러나 공급사슬은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대목 중 하나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노동이나 원료를 합리화하지 않고도 부의 축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합리화하는 대신에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공간을 가로질러서 번역하는 작업이 필수적인데, 나는 그러한 공간을 생태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빌려 '패치'라고 부르겠다. 사쓰카 시호에 따르면, 번역은 하나의 세계-만들기 프로젝트를 또 다른 세계-만들기 프로젝트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번역이라는 말 때문에 언어에 주목하게 되지만, 이는 부분적인 조율이 일어나는 다양한 형식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차이가 존재하는 장소를 교차하며 행해지는 번역이 '바로' 자본주의다. 그러한 번역이 행해져야만 투자자는 부를 축적할 수 있다."(118-9)
5. 오리건주의 오픈티켓
"21세기의 첫 십 년 동안 오리건주 송이버섯 상업의 중심지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곳, '인적이 끊긴 어딘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버섯 거래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곳이 어디인지 알았지만, 그곳은 마을이나 휴양지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구매인은 고속도로를 따라 한 무리의 텐트를 세웠고 매일 밤마다 채집인, 구매인, 현장 중개인이 그곳에 모여 생생한 서스펜스와 액션의 무대를 연출했다. 내가 합성해서 만든 그 현장의 이름은 '오리건주의 오픈티켓'이다." "오픈티켓은 자유를 수행하는 장소이다. 매일 밤 교환되는 것은 버섯과 돈만이 아니다. 채집인과 구매인, 현장 중개인은 그들 각자가 이해하는 의미대로 극적인 자유를 공연하는 것에 관여하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자신들의 트로피(돈과 버섯)와 함께 자유의 공연을 교환한다. 때때로 정말 중요하게 교환되는 것은 자유이며, 버섯과 돈이라는 트로피는 자유 수행의 연장선에 존재하는 증거처럼 보였다."(142-3)
"여기서 채집인들이 이야기하는 자유란 용어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의 규칙성을 논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이 사용하고 상상하는 그것이 아니다. 정치적 자유주의도 아니다. 버섯 관계자들의 자유는 불규칙적이며, 합리화의 외부에 존재한다. 공연 성격을 띠고, 공동체에 따라 다양하며, 기운이 넘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장소의 소란스러운 코즈모폴리터니즘과 관련이 있다." "오픈티켓은 권력의 집결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이 공간은 도시와는 정반대다. 사회질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픈티켓은 도시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이 뒤죽박죽 섞인 곳이다. 백인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은 전쟁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해 제어할 수 없는 공황 발작을 야기하는 군중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몽인과 미엔인은 자유를 약속해놓고 조그만 도시 아파트에 자신들을 몰아넣은 미국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 산속의 삶이 주는 자유를 누렸다. 돈은 자유보다 덜 중요했다."(143-5)
"송이버섯 채집은 '노동'이 아니지만 노동이라는 유령에 사로잡혀 있다. 재산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송이버섯 채집인은 마치 숲이 대규모 공유지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 땅은 공식적으로 공유지commons가 아니다. 주로 국유림이며, 근처에 주 정부로부터 완전히 보호받는 사유지가 있다. 그러나 채집인들은 최선을 다해 재산에 대한 질문을 무시한다. 백인 채집인은 연방 자산에 대해 특히 짜증을 내며 사용 제한을 무산시키려고 최선을 다한다. 동남아시아계 채집인은 일반적으로 정부에 대해서 더 관대한데, 정부가 좀 더 많은 일을 하기 바란다." "그러나 국유림 내에는 더는 사용되지 않고 버려진 벌목 목재 운반용 도로가 복잡하게 교차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채집인은 광활한 산림지를 돌아다닐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또한 금지 구역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가장 고립된 버섯 자생 지역을 찾아서 수 마일을 등산할 의향이 있다. 버섯을 구매인에게 선보일 때 아무도 그에 대해 따져 묻지 않는다."(148-50)
"채집인은 자신들이 배제될 가능성이 유령처럼 떠도는 공유지에 계속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자산을 법적으로 소유자 미정인 상태로 묶어두려고 최선을 다한다. 자유와 유령에 사로잡힘은 동일한 경험의 양면이다. 그것은 다음 일로 넘어가는 방법인 동시에 이전 일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채집은 자유를 향한 열병을 앓으며 행해지기에, 그것은 산업 생산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즉 사람과 사물이 분리되는 일에서 벗어나게 된다. 버섯은 아직 소외된 상품이 아니다. 버섯은 채집인이 실천하는 자유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 유일한 이유는 그 양면적 경험이 이상한 종류의 상업에서 인정되기 때문이다. 구매인은 '자유 시장 경쟁'이라는 극적인 공연에서 연기하며 자유의 트로피를 무역으로 번역한다. 그리하여 집중된 권력, 노동, 자산, 소외를 유보시키는 것이 강력하고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서, 시장의 자유는 뒤죽박죽 섞인 자유의 무더기 속으로 들어간다."(151-2)
6. 전쟁 이야기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산과 숲에는 변방 낭만주의frontier romanticism가 강하게 나타난다. 백인한테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미화하면서 '또한' 그들을 말살시키려 했던 정착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성향이 흔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자급자족, 극렬 개인주의, 백인 남성성의 심미적 힘을 자랑스러워한다. 많은 백인 버섯 채집인은 미국의 해외 점령, 제한된 정부limited government,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한다. 그러나 이 북서부의 시골 지역은 히피와 인습타파주의자들iconoclasts도 모이는 곳이다. 미국-인도차이나전쟁에 참전한 백인 참전용사들은 이 거칠고 독립적인 혼합물에 자신들의 전쟁 경험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분노와 애국심, 트라우마와 위협의 독특한 혼합물을 첨가한다. 전쟁에 대한 기억은 이같이 적합한 곳을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되는 동시에 생산적인 것이다. 전쟁은 피해를 주지만 동시에 사나이를 만든다고 그들은 말한다. 자유는 반전反戰뿐 아니라 전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163-4)
"캄보디아인 난민은 이미 구축되어 있는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유산에 쉽게 동참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에서 자유와 관련된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야만 했다. 이러한 역사는 미국의 폭격과 그 뒤를 이은 크메르루즈 정권과 내전의 공포뿐만 아니라, 그들이 미국으로 입국한 시기에도 영향을 받는다. 즉 1980년대가 되자 미국의 복지 제도는 끝이 났던 것이다. 어느 누구도 캄보디아인에게 복지 수당이 포함된 안정적인 직업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인가? 백인 참전용사가 자유는 인종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풍경 속에 있다고 상상했다면, 캄보디아인은 전쟁이 어떤 사람을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편에서 저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번째로, 백인 참전용사가 전쟁으로부터 얻은,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자유를 실행하기 위해 가끔 산으로 들어왔다면, 캄보디아인은 미국식 자유의 숲에 회복이라는 좀 더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있었다."(166-7)
"미국-인도차이나전쟁 기간 동안 몽 사회는 라오스를 정복하고자 하는 미국의 최전방이 되었다. 방 파오 장군이 동원한 마을들 전체가 농업을 포기하고 CIA가 공중에서 투하한 식량 배급으로 연명했다. 그들이 미국의 폭격기를 유도하고 최전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싸운 덕분에 미국인들은 공중에서 그 나라를 파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략으로 인해 몽인과 폭격의 목표물이 된 라오인 사이의 갈등 관계가 악화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몽계 난민들은 미국에서 비교적 잘 지내고 있지만, 전쟁 기간에 보고 겪은 라오스의 풍경이 몽계 난민들의 마음 속에 생생히 살아서 자유에 대한 정치적 견해와 매일 실행하는 자유의 행위, 둘 모두의 형상을 빚는다." "버섯 채집을 통해 라오스와 오리건주, 전쟁과 사냥이 함께 겹겹이 층을 이루며 쌓인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라오스의 풍경이 현재의 경험에 스며든다. 내가 버섯에 대해 질문하면 몽계 채집인들은 라오스를, 사냥을, 전쟁을 말하면서 그 질문에 답했다."(169-72)
"미국이 라오스에 가한 폭격으로 시골 인구의 25퍼센트가 도시로, 그리고 외국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 라오인은 불교 신자로서 사냥에 반대하는 편이다. 대신에 그들은 버섯 캠프의 경영인이다." "백인 채집인처럼 내가 아는 라오인들도 출입이 금지된 곳에 숨겨진 송이버섯 패치를 찾아다녔다. (반면에 캄보디아계, 몽계, 미엔계 채집인은 잘 알려진 공유지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방식을 더 자주 사용했다.) 라오계 채집인이 백인과 공유하는 또 한 가지 특성은 법망을 벗어나 행하는 약탈과 그에 따른 위험에서 벗어나는 능력을 즐겨 자랑한다는 점이다. (다른 채집인들은 좀 더 조용하게 법을 어겼다.) 라오인은 기업가로서, 중재에 뒤따르는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즐거움을 누리는 중재자였다." "대부분의 라오계 채집인은 난민 신분이었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자였으며, 자유의 개념을 포용함으로써 자신들이 미국 사회에서 더욱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매진했다."(173-5, 178)
7. 국가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두 종류의 아시아계 미국인
"개신교의 부흥운동은 미국독립혁명 이래로 미국 정치 조직에서 '우리'를 구성하는 데 열쇠가 되어왔다. 더욱이 개신교 교회는 무표적unmarked 자유주의 형식을 장려하면서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기독교 교리를 거부하도록 디자인된 20세기 미국의 세속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수전 하딩은 20세기 중반에 미국의 공교육이 어떻게 세속화 프로젝트에 의해 형성되었는지를 연구했는데, 특정한 형태의 기독교가 '관용'의 예로서 장려되는 반면, 다른 형태의 기독교는 그 이전 시대의 이국적인 잔존물로서 지방화되었다는parochialized 점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그 특정한 세속적 형식에서는 우주론적 정치학cosmological politics이 기독교를 초월한다. 즉 미국인이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로 개종되어야 한다. 이민자는 백인 미국인의 행동과 담화 습관을 온전하게 따름으로써 '개종'될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담화는 특히 중요했다. 그것은 '우리'를 말하는 것이었다."(192-3)
"일부 백인 채집인과 구매인은 인종 통합에 반대하고, 다른 집단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자신들만의 가치를 즐기고 싶어 한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그것은 다문화 방침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인종 통합에 반대하는 정서가 미국 역사상 가장 코즈모폴리턴적인 문화 형성에 일조했다. 그들이 동화를 해체하자 새로운 형성체가 창발한다. 중앙에서 세운 방침이 없기 때문에 이민자와 난민은 자신들이 가진 것 중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가능성을 움켜쥔다. 그들의 전쟁 경험, 언어, 문화가 그러한 가능성이다. 그들은 '자유'라는 단어 하나로 미국식 민주주의에 합류한다. 그들에게는 초국적 정치와 무역의 자유가 있다. 그들은 이전 시대의 이민자와는 대조적으로 뼛속까지 미국인이 되려고 공부할 필요가 없다. 복지국가의 뒤를 이어 동시에 발생한 자유에 관한 이슈가 제멋대로 다양하게 존재함에도 현시대의 중심을 차지했다."(198-9)
8. 달러화와 엔화 사이에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모든 국가가 자국의 제품을 수출하고 싶어 하는 최고의 목적지였다. 그러한 미국은 일본산 수입 상품에 엄격한 할당량 제도를 적용했다. 역사학자 로버트 캐스틀리는 일본이 미국의 수입 할당량 제한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 한국의 경제 건설을 도왔는지 설명한다. 일본의 무역업자들은 경공업을 한국으로 이전함으로써 미국에 좀 더 많은 상품을 자유로베 수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은 일본의 직접 투자에 반감을 드러냈다. 그래서 일본은 캐스틀리가 '내놓기putting-out' 방식이라고 부른 것을 도입했다. 〈그 방식은 상인(또는 기업)이 하청업체가 상품을 생산하거나 마무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대출, 신용, 기계류 또는 장비를 조달하고, 그렇게 생산된 상품을 상인(또는 기업)이 멀리 떨어진 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을 지칭한다.〉" "내놓기 시스템은 수익성이 더 적은 제조업과 낡은 산업 기술을 한국으로 이전하면서 일본의 비즈니스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213-4)
"일본의 위협은 미국에 혁명을 촉발시켰다. 역흑선은 미국적 체계를 전복시켰으나 그것은 미국의 자체적인 노력에 따른 결과였다. 대중은 미국이 쇠락할 가능성에 공포심을 느꼈고,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결코 발언 기회를 얻지 못했을 소수의 주주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shareholders와 경영대 교수들이 미국인 기업들을 해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힘을 회복하기 위해 기업을 전문 경영인의 손에 맡기지 않고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이 되찾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들은 기업을 사서 자산을 뺀 후 되팔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이르자 '기업 담보 차입 매수'의 급진적인 성향이 '기업 인수 합병'의 주요 투자 전략이 되었다. 이 전략은 투자자에게 매우 유리했기 때문에, 20세기가 끝날 무렵 미국의 비즈니스 리더들은 이 전략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비즈니스 세계에서 우위를 점유하기 위한 몸부림의 일부였다는 것을 잊어버렸고, 진화 과정을 통해 도달한 첨단 기술인 것처럼 이야기를 재구성했다."(216-7)
"1985년이 되자 미국의 비즈니스 리더들은 이 상황으로 인해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플라자합의Plaza Accord'라는 국제 협약을 고안해냈다. 달러화의 가치는 낮춰졌고 엔화의 가치는 올라갔다. 1988년이 되자 엔화의 가치는 달러화보다 거의 두 배 가깝게 높아졌다. 일본 소비자는 송이버섯을 포함해 거의 모든 외국 제품을 살 수 있었다. 민족적 자부심이 높아졌다. 이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 제품의 가격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일본 회사가 상품을 수출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일본 회사들은 더 많은 생산 공정을 해외로 옮겨가면서 그러한 상황에 대응했다. 한국, 대만, 동남아시아에 있는 그들의 공급자들 또한 통화 가치의 변화에 타격을 받았고 똑같이 반응했다." "공급사슬 자본주의는 세계 곳곳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쇼크 상태에 빠진 일본은 더는 공급사슬을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되었다."(219-20)
9. 선물에서 상품으로, 그리고 그 반대로
"나는 사회적 교환의 유형으로서 선물의 특별한 속성에 주목한 인류학적 유산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는 쿨라환kula ring, 즉 뉴기니의 멜라네시아 동부 지역에서 만들어진 목걸이와 조개 팔찌의 교환을 연구하면서 선물의 특별한 속성에 주목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장신구들이 일반적인 교환의 매개체도 아니고 자체적으로 흥미로운 특성을 지닌 것도 아니기에 특별히 유용한 물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장신구들은 '오로지' 쿨라에서 가지는 역할 때문에 가치가 있다. 그것들은 선물로서 관계와 명성을 만든다. 이것이 그것들이 가치다. 그러한 종류의 가치는 경제적 상식을 뒤엎는다." "쿨라에서 사물과 사람은 함께 형성되는데, 선물을 통해 사물은 사람의 연장extension이 되고 사람은 사물의 연장이 되기 때문이다. 쿨라환의 귀중품들은 그것들이 형성하는 개인 간의 관계를 통해 알려진다. 그리하여 사물은 사용되거나 상품으로 교환될 때만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226-7)
"많은 분석가는 가치를 생산하는 양상에서 쿨라와 자본주의 사이의 차이가 너무 커 보였기에, 가치를 만드는 서로 다른 논리의 '선물 경제'와 '상품 경제'로 세계를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이분법이 그렇듯이, 선물과 상품의 대조는 현실 세게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선물과 상품의 이상적인 유형은 병치되어 있거나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거나 그 성격과 정의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송이버섯의 최종 목적지를 살펴볼 때도 유용하다. 일본에서 송이버섯은 거의 항상 선물용으로 쓰인다. 가장 낮은 등급의 송이버섯은 슈퍼마켓에서 팔리고 식품 제조업에서 재료로 사용된다. 그러나 더 높은 등급의 송이버섯은 알려진 대로 전형적인 선물이다. 송이버섯을 그냥 먹으려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송이버섯은 관계를 형성하며, 이 버섯은 선물로서 그러한 관계와 분리될 수 없다. 송이버섯은 선물 경제에서 가치를 정의 내리는 특성, 즉 사람이 연장된 것이다."(227-9)
"특산물 식료품점과 비싼 음식점은 자신의 고객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최고의 송이버섯은 이런 곳에서 팔린다. 어떤 식료품점 주인은 자신이 거래하는 최고의 고객들을 잘 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결혼식과 같이 송이버섯을 사용할 수 있는 의례가 언제 열릴지 알고 있다. 그 식료품점 주인에게 버섯을 판매하는 중간 도매업자 또한 이미 특정 고객을 생각하고 있다. 그가 그 고객들에게 연락하는 것은 단지 상품을 판매하려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송이버섯의 가치는 상업적인 교환에서만 기인하지 않고 주는 행위에서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많은 분야와 문화에서 중재인은 자본주의적 상품을 다른 가치 형태로 전환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과 사물이 생산되는 비자본주의적 방식과 공존하는데, 이렇게 공존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가치 번역의 행위에 이러한 중재인이 관여한다."(232-4)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 그들을 둘러싼 버섯과 돈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 된다. 버섯이 일본으로 수송되기 위해 주기장駐機場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되면, 그 버섯에서 그것을 트로피로 만들었던 독특한 자유의 경제와 관련된 흔적을 찾기는 힘들어진다." "송이버섯은 그것이 삶의 선물로서 시작되고 선물로 끝나는 자본주의 상품이다. 그것이 온전히 소외된 상품으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몇 시간일 뿐이다. 주기장에서 수송 상자에 담겨 재고품의 일부로 기다리는 시간과 비행기에 실려 이동하는 시간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중요하다. 공급사슬을 지배하고 구조화하는 수출업자와 수입업자 간의 관계는 그 시간의 가능성 안에서 접합되어 있다. 재고품으로서의 송이버섯은 수출업자와 수입업자에게 이윤을 낳게 하는 산출算出이 가능하도록 하기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송이버섯의 상품사슬을 조직하는 작업이 가치 있는 일이다. 이것은 비자본주의적 가치 체제로부터 자본주의적 가치를 창출하는 구제 축적이다."(236-9)
10. 구제 리듬: 교란되고 있는 비즈니스
"자본주의 그 자체는 상품과 사람을 전 세계적으로 모집하면서 배치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또한' 부분들의 합으로 제한하는 기묘한 장치인 기계의 특성이 있는 것 같다. 이 기게는 우리가 그 내부에서 삶을 살아가는 총체적 기관total institution이 아니다. 대신에 이 기계는 세계를 자산으로 바꾸기 위해 생활환경을 번역한다. 그러나 모든 번역이 자본주의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후원하는 모임은 개방형이 아니다. 한 무리의 기술자와 경영인이 불쾌한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법정과 총부리에서 나오는 힘이 있다. 이는 기계가 고정된 형태로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일본-미국 무역 관계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내가 주장했듯이, 자본주의적 번역의 새로운 유형은 항상 생겨난다.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마주침은 자본주의의 형태를 빚는 과정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야생의 풍성함은 아니다. 모종의 헌신이 힘force을 통해 지속된다."(244-5)
# 총체적 기관total institution.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말한 개념으로, 요양원, 특정 병상, 수도원, 감옥, 원양어선 등과 같이 구성원들이 사회에서 격리되어 살아가야 하는 닫힌 체제의 사회적 기관을 지칭한다.
"나의 생각 중 두 가지가 특히 중요하다. 첫째, 소외는 자본주의적 자산이 형성될 수 있는, 얽힘이 풀린disentanglement 형태다. 자본주의 상품은 다음 단계의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발판으로 사용되기 위해 생활-세계에서 제거된다. 그 결과 중 하나는 무한한 필요다. 다시 말해서 투자자가 원하는 자산의 크기에는 한계가 없다. 따라서 소외는 축적, 즉 투자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관심사다. 축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소유를 권력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자본이 있는 사람들은 공동체와 생태계를 전복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는 통약성commensuration이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가치 형태들은 차이의 거대한 순환 회로를 가로지르면서도 번창한다. 돈은 투자 자본이 되고, 이는 더 많은 돈을 낳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 및 비인간의 방식을 모두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생계 방식으로부터 자본을 생산하기 위해 작동하는 번역 기계[비자본주의적 가치 → 자본주의적 자산]다."(245)
인터루드: 추적하기
"'균근mycorrhiza'이라는 용어는 '곰팡이'와 '뿌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들의 합성어다. 곰팡이와 식물 뿌리는 균근 관계를 맺으며 친밀하게 얽힌다. 곰팡이도 식물도 상대방의 활동 없이는 번창할 수 없다. 곰팡이 입장에서는 좋은 양분을 얻는 것이 목표다. 곰팡이는 식물의 탄수화물 중 일부를 빨아들이기 위해 특화된 인터페이스 구조를 통해 숙주의 뿌링 몸체를 연장한다. 곰팡이는 이 양분에 의존하지만 완전히 이기적이지만은 않다. 첫째, 곰팡이는 식물에 더 많은 물을 제공하면서, 둘째, 세포의 소화를 하기 때문에 식물이 섭취할 수 있는 영양분을 만들면서 식물 성장을 촉진한다. 식물은 균근을 통해 칼슘, 질소, 칼륨, 인, 기타 무기질을 얻는다." "숲에서 곰팡이는 같은 생물종의 나무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종종 많은 생물종을 연결한다. 어떤 해설가들은 균근 네트워크를 '우드와이드 웹woodwide wep'이라고 부른다. 균근은 숲을 가로질러 정보를 나르면서 생물종 간 상호 연결의 인프라를 형성한다."(253-5)
"생물학자 스콧 길버트와 그의 동료들은 다음과 같이 적는다. 〈거의 모든 발달은 공동 발달이다. 우리가 말하는 공동 발달이란 한 생물종의 세포가 다른 생물종 신체의 정상적인 구성을 지원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통찰이 진화의 구성단위를 바꾼다. 일부 생물학자는 '진화의 홀로게놈hologenome 이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복합 유기체와 그들의 공생자symbionts를 하나의 진화 단위, 즉 '홀로비온트holobiont'로 명시하는 것을 말한다." "길버트와 그의 동료들은 발달의 중요성에 더해 '심바이오포이에시스symbiopoiesis'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홀로비온트의 공동 발달을 말한다. 이 용어는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를 통해 스스로 형성되며, 내부적으로 스스로 조직하는 시스템으로서의 생명에 초점을 둔 이전의 관점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그들은 〈연구할수록 공생symbiosis은 예외가 아니라 '규칙'인 것 같다. ··· 자연은 개체나 게놈보다는 '관계'를 선택하는 것 같다〉라고 썼다."(260-1)
3부 교란에서 시작되다: 의도치 않은 디자인
11. 숲의 삶
"교란은 생태계에 명백한 변화를 야기하는 환경 조건의 변화다. 홍수와 산불은 교란의 형태다. 인간 및 다른 생물 또한 교란을 야기할 수 있다. 교란은 생태를 파괴할 수도, 재생시킬 수도 있다. 교란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는 규모와 같은 여러 요소에 달려 있다. 어떤 교란은 사소하다. 숲의 나무가 쓰러지면 작은 공백이 만들어진다. 어떤 교란은 거대하다. 이를테면 쓰나미는 핵발전소를 무너뜨린다. 시간의 규모 또한 중요하다. 단기간의 손상이 무성한 재성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교란은 새로운 풍경의 배치를 가능케 하면서 변형을 가능케 하는 마주침이 발생하도록 그 풍경을 개방시킨다." "교란이라는 용어에는 교란 이전에는 조화로운 상태였다는 전제가 없다. 국면은 무생물(예를 들어 홍수와 산불)의 교란 또는 생물체의 교란으로 시작될 수 있다. 유기체는 세대 간의 생활공간을 만들면서 환경을 다시 디자인한다. 생태학자들은 유기체가 그들의 환경에 일으킨 효과를 '생태계 공학기술'이라고 부른다."(284-7)
12. 역사
"'역사'는 인간의 스토리텔링 실천이자 우리가 과거로부터 남겨진 일련의 것을 이야기로 전환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관례적으로 인간이 남긴 것만 살펴보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풍경에 공헌해온 비인간의 자취와 흔적으로 관심을 넓히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자취와 흔적은 '역사적' 시간을 구성하는 요소인, 일련의 중요한 사건이 탄생시킨 국면conjuncture과 우발적인 사건에 의한 우연성의 시기에 생물종의 경계를 넘어서 이루어지는 얽힘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얽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식으로만 역사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다른 유기체가 '이야기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들은 우리가 역사로 인식하는, 서로 겹치는 자취와 흔적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근대 산림관리는 소나무 역사의 한순간을 포착할 수 있지만 (버섯과의) 마주침에 기반한 시간의 불확정성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역사는 인간과 비인간에 의한 세계 만들기의 수많은 궤적의 기록이다."(294-7)
13. 부활
"소농민이 그루터기에서 싹이 다시 자랄 것을 기대하면서 나무를 베어 넘어뜨리는 행위를 '코피싱coppicing'이라 부르는데, 코피싱된 참나무 산림지대는 소농민 숲의 전형적인 예다. (벌채된 참나무는 소나무와 달리 잘 죽지 않는다.) 코피싱된 나무는 항상 젊고 빨리 자란다. 그 나무들은 새로운 싹보다 더 잘 자라서 숲의 구성을 안정시킨다. 코피싱된 숲은 개방적이고 밝기 때문에 간혹 소나무가 자랄 공간이 생긴다. 소나무는 (그들의 곰팡이와 함께) 벌거숭이가 된 공간을 차지한다. 소나무는 이렇게 소농민이 연속해서 교란시키는 과정에서 다른 곳을 채우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교란이 없으면 소나무는 참나무 및 다른 활엽수와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소농민 숲이 온전한 상태를 이루도록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소나무-참나무-인간의 상호작용이다. 인간이 계속해서 황폐화시킨 언덕에서 빠른 속도로 자라던 소나무가 수명이 긴 코피싱된 참나무 임분으로 대체되면서 숲의 생태계는 재생되고 지속된다."(318)
"일본의 소나무는 소농민 교란이 만든 생물이다. 이 나무는 그늘을 드리우고 자신들에게만 이로운 풍부하고 깊은 부엽토층을 만드는 활엽수와 경쟁할 수 없다. 화석식물학자paleobitanist들은 수천 년 전 인간이 일본의 풍경에서 처음으로 산림을 없애기 시작했을 때, 그 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던 소나무 꽃가루의 양이 극적으로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 소나무는 벌초와 코피싱 덕분에 밝은 햇빛을 받고, 농민이 갈아엎은 나지裸地의 무기질 토양에서 영양을 얻으면서, 농민이 벌이는 교란과 함께 번성한다. 참나무는 농민이 개간한 산비탈에서 소나무를 몰아낼 수 있다. 그러나 코피싱 및 식물성 비료를 모으는 작업을 통해 코나라 참나무와 소나무 모두에게 이로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송이버섯은 소나무가 산등성이와 침식된 비탈에 발을 딛고 설 수 있도록 도우면서 소나무와 함께 자랐다. 특히 송이버섯은 벌거벗은 지역에서 소나무와 함께 번창하면서 숲에서 가장 흔한 버섯이 되었다."(327-8)
14. 뜻밖의 기쁨
15. 폐허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오리건주에서 전후의 벌목 호황이 한창일 때 지역 목재를 수출할 가장 중요한 시장은 일본이었다. 그러나 새롭게 등장한 동남아시아산 목재 값이 너무 싸서 결국 오리건주는 경쟁에 낄 수 없었다. 이 문제는 우리가 좀 더 잘 알고 있는, 환경 관련 소송 증가가 끼친 영향만큼이나 오리건주 목재 회사의 도산에 크게 기여했다." "목재 회사들이 떠나자 산림청은 목표와 자원을 모두 잃었다. 목재를 얻기 위한 집중 관리가 더는 필수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았다. 우세종 이식하기, 체계적으로 솎아내고 선별하기, 벌레와 잡초를 죽이기 위해 독약 살포하기 등 그 어떤 것도 논의할 가치가 없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실행되었다면 송이버섯은 고통받았을 것이다. 집중 관리되는 플랜테이션 농장은 송이버섯에게 맞지 않는다. 이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채집인들은 값비싼 목재 사이에서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리건주의 송이버섯 숲은 또한 글로벌 목재의 낮은 가격 덕분에 번성하게 되었다."(378-9)
16. 번역으로서의 과학
# '번역'은 브뤼노 라투르와 존 로의 행위자-연결망 이론에서 핵심 개념이다. 행위자-연결망 이론에서 '번역'은 인간과, 인간과 함께 작동하는 비인간(예를 들면 기술이 있다) 간의 절합(articulation)을 지칭한다. 이러한 용례에서 인간과 비인간을 평등하게 포함하는 행위의 연결망은 번역을 통해 창발한다. 383)
"일본의 과학자들은 인간의 교란이 거의 없을 때 송이버섯 숲은 위험에 처한다고 주장한다. 버려진 마을 숲은 소나무에 그늘을 드리우고, 송이버섯을 잃게 된다. 반면에 미국의 과학자들은 송이버섯 숲은 인간의 교란이 너무 많이 일어날 때 위험에 처한다고 주장한다. 무모하게 수확하므로 송이버섯 종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반된 주장에 대한 토론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두 과학자 집단은 모두 국제적으로 활동함에도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서로와 소통한 적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중국에서 송이버섯 과학과 산림관리는 일본과 미국의 궤도 사이에 갇혀 있다. 중국인 학자들은 자신들의 일이란 '국제적인' 것, 즉 영어권 과학을 따라잡는 것이라고 여긴다. 한 젊은 과학자가 설명했듯이, 젊고 야망 있는 사람들은 절대 일본어 자료를 읽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영어를 못하는 나이 든 구식 학자들이나 일본어 자료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윈난성의 숲은 미국의 송이버섯 숲과 완전히 다르다."(387-8)
17. 날아다니는 포자
"숲에서도, 과학에서도 포자는 우리의 상상력이 또 다른 범세계적인 위상 구조topology에 이르게 한다. 포자는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고, 유형을 교차해 교배하며, 최소한 가끔씩 새로운 유기체를 낳는다. 새로운 종류의 시작이다. 포자는 분명하게 정의하기 힘들다. 그것이 포자의 품격이다. 풍경을 생각할 때 포자는 우리를 개체군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성으로 안내한다. 우리가 과학에 대해 생각해볼 때, 포자는 열린 의사소통과 과잉의 모델이 되어 사변思辨의 즐거움을 준다." "응용 산림관리의 불연속적인 패치들과는 달리, 송이버섯의 종 형성을 연구하는 과학은 패치와 같은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방법론에서 국제적인 합의를 이루려고 노력한다. 그 덕분에 연구 재료들, 즉 버섯 샘플과 DNA 염기서열은 국경을 넘어 유포된다. 여기에는 학계도 없고 패치도 없다. 이 모든 작업은 근무 외 시간에 이루어진다. 어느 누구도 누대의 시간을 넘는 버섯의 여행을 공부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403-5)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의 산림 병리학자 이그나시오 차펠라는 '생물종'이라는 아이디어가 종류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한한다는 점을 더욱 단호하게 주장했다. 〈생물에 이름을 붙이는 이명명법二命名法은 완전히 가공된 것입니다〉라고 그는 내게 말했다." "〈곰팡이나 박테리아로 가면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완전히 이상합니다. 수명이 긴 복제 생물은 갑자기 성적sexual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큰 덩어리의 염색체 전체에 도입되는 이종 교배가 가능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다배체화多倍體化 또는 염색체 복제도 이루어집니다. 다른 박테리아를 수용하는 것을 뜻하는 공생화symbiotization를 하기도 하는데, 다른 박테리아 전체를 자신의 일부로 만들 수 있거나 다른 박테리아의 DNA 중 일부분을 자신의 게놈으로 변환할 수 있을 때 발생합니다. 하나의 개체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 됩니다. 어느 지점에서 생물종을 나눌 것입니까?〉"(413-4)
"포자는 송이버섯 개체군에 새로운 유전적 물질을 더한다. 버섯은 많고 많은 포자를 생산하고 오직 몇 개 만이 발아해 짝짓기 한다. 그러나 그 수는 버섯 개체군을 세계적으로 퍼뜨리고 다양하게 유지하기에 충분하다. 그 다양성 중 일부는 포자를 생산했던 모체 내부에 있다. 그 어떤 '하나'의 곰팡이 몸체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마주침에서 제외된 채 자급자족해 살지 않는다. 곰팡이 몸체는 나무, 다른 생물과 무생물, 그리고 다른 형태로 바뀐 곰팡이와 역사적으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과학자들은 진화와 송이버섯의 전파를 포함하는 열린 질문들에 대해 포자와 같은 방식으로 탐구한다. 그러한 생각들 중 대부분은 전혀 차이를 만들지 않지만, 차이를 만드는 몇 안 되는 생각이 그 분야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범세계적인 지식은 생물과 무생물 연구 대상, 그리고 다른 형태로 바뀐 그 지식이 역사적으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발전한다. 패치들은 생산적이지만 포자도 존재한다."(426-7)
인터루드: 춤추기
"채집인들에게는 송이버섯 숲을 알아차리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 그들은 버섯의 생명선을 찾는다. 이런 방식으로 숲에 존재하는 것은 춤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들은 감각, 움직임, 방향 설정orientations을 통해 생명선을 추구한다. 이 춤은 숲 지식의 한 형태다. 그러나 보고서에는 문서화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채집인이 춤을 추지만 모든 춤이 비슷한 모습은 아니다. 각각의 춤은 이질적인 미학과 지향점을 담고 있는 공동의 역사들에 따라 각기 모양을 갖춘다." "내가 서술한 버섯 채집인들은 그들 자신만의 숲의 춤을 추는 공연자일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의 공연을 보는 관찰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숲의 모든 생물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다. 사실 그들은 꽤 선택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은 다른 이들의 삶의 공연을 그들 자신의 공연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교차하는 생명선은 숲에 관한 지식의 한 가지 방식을 창조하면서 그 공연을 안내한다."(429, 443)
4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18. 송이버섯 운동가: 곰팡이의 활동을 기다리며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일본은 급격히 도시화되었다. 농민들은 시골을 떠났고, 한때 소농민의 생계를 이어준 시골 지역은 방치와 유기의 공간이 되었다. 시골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사토야마 숲을 유지할 이유가 점점 줄어들었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연료 혁명'으로 외딴 시골의 농민들도 1950년대 말부터는 난방, 요리, 트랙터 운전에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되었다. 장작과 숯은 버려졌다. 이리하여 소농민 숲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던 방식은 사라졌다. 코피싱은 장작과 숯 사용이 급격히 감소됨에 따라 중단됐다. 풋거름을 모으기 위해 하던 갈퀴질은 화석연료 성분의 비료가 도입되면서 사라졌다. 초지草地 유지와 지붕을 이는 재료인 짚을 얻기 위한 벌초 또한 초가지붕이 없어지면서 사라졌다. 방치된 숲들은 바뀌어서 관목과 새롭게 형성된 상록수 활엽수로 빽빽해졌다. 죽순대와 같은 교란종이 밀려들었다. 빛을 좋아하는 약초들의 하층 식생이 사라졌다. 소나무는 그늘에 가려 숨막혀 죽었다."(460-1)
"사토야마 회생 운동은 다른 존재들과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아노미 문제를 다룬다. 인간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많은 참여자들 중 하나일 뿐이 된다. 참여자들은 나무와 곰팡이가 인간과 사귀기를 기다린다. 그들은 인간의 행동을 필요로 하지만, 그 필요를 초월하는 풍경을 작동시킨다. 21세기 초에 이르자 수천 개의 사토야마 회생 집단이 일본 전역에서 생겨났다. 어떤 집단은 물 관리나 자연 교육 또는 특정 꽃이나 송이버섯 서식지에 집중한다. 모든 집단이 풍경뿐 아니라 사람들의 재생에도 관여한다." "상호 배움도 중요한 목표다. 그들의 목적 중 하나가 참여를 통한 배움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실수를 하고 그것을 관찰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그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송이버섯 숲 회생은 구원보다는 오히려 소외의 무더기를 살핀다. 봉사자들은 과정 중에 있는 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종의 다른 존재들과 섞일 때 필요한 인내력을 얻는다."(465-7)
19. 일상적인 자산
"마이클 해서웨이와 내가 윈난성 시골에서 행한 연구의 중심이 된 작은 마을에서는 세 명의 남자가 핵심 역할을 하는 송이버섯 '라오반老板', 즉 사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들은 그 지역에서 나는 송이버섯의 대부분을 구매해 더 큰 마을에 판매하는 상인들이었다." "사장들과 그들의 대리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들이 가격과 등급을 높여서 협상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특히 흥미를 느꼈다." "채집인들이 구매인들의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시장체제의 경쟁적인 협상이 중심을 차지하던 오리건주에서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모든 행위가 완전히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이는 윈난성 상품사슬의 하류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도 꽤 달랐다. 버섯 특선 시장에서는 가격 및 등급 협상이 지속적이고 치열하게 일어났다. 수많은 도매상이 서로 경쟁했고, 최상의 가격과 가장 적합한 등급 선정을 결정하는 쟁탈전에 모든 사람의 관심이 쏠렸다. 상류에서는 그와 대조적으로 구매가 조용히 이루어졌다."(479-80)
"시골의 가장자리에서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모든 사람들은 관련인들 사이에 형성된 오래된 관계와 신뢰 때문에 가격 흥정이 없는 구매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사장들은 채집인들에게 최고의 가격을 지불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여기서 '신뢰'란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이점을 취하게 하는 자질이 아니다. 나는 '신뢰'를 동의나 평등과 혼동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사장들이 송이버섯으로 부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누구나 개인 재산을 모으는 데 그들이 이룬 성공을 모방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들의 관계는 호혜적인 의무로 연결된 얽힘의 한 형태다. 그래서 송이버섯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한, 송이버섯은 완전히 소외된 상품이 아니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송이버섯 교환 행위에서는 적절한 사회적 역할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버섯이 교환을 위한, 완전하게 소외된 생물이 되면서 자유로워지는 곳은 더 큰 마을의 버섯 시장뿐이다."(480-1)
"사유재산에 대한 욕망은 드문 경우에만 숲에 이롭다. 이 욕망은 종종 기대하지 않았던 파괴의 후원자가 된다. 어떤 경매 우승자는 수확권을 딴 송이버섯 숲에서 더 많은 부를 짜내기 위한 방법을 어떻게 배웠는지 내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그는 송이버섯 계약에 속한 마을 숲에서 희귀종 꽃나무를 파냈다. 희귀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종이었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는 나무들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윈난성의 성도省都인 쿤밍시의 행정 담당관들이 갑자기 가로수가 없는 길을 성장한 나무로 꾸미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그와 다른 기업가들은 다 자라는 나무들을 도시에 이식했다. 이식한 나무들 중 대부분은 뿌리채 뽑혀 이동하면서 받은 충격 때문에 죽어버렸다. 그러나 돈을 지불받을 때까지 살아남은 나무들은 작은 이윤을 가져다주었다. 숲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다양성을 잃었고, 꽃나무의 아름다움도 함께 잃었다. 이와 같은 기업가적 곡예가 오늘날 중국에서 부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의 일부를 이룬다."(482-3)
20. 끝맺음에 반대하며: 그 과정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포자가 만든 자취. 더 멀리 나아가는 버섯의 도전
"21세기 초반의 사유화와 상품화 프로젝트에서 가장 이상한 것 중 하나는 학문을 상품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유럽에서는 행정가들이 학자의 업적을 숫자로, 학술적 교환이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총계로 축소하는 평가 활동을 요구한다. 미국에서는 학자가 연구를 시작하는 첫날부터 스타가 되는 길을 찾고 자신들을 브랜드화하면서 기업인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협업이 필수적인 작업을 사유화함에 따라 학문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그렇다면 끝맺기를 거부하는 이 책은 어떠한 종류의 책인가? 송이버섯 숲처럼, 각각의 우연한 모임은 예상하지 못한 풍부함으로 다른 모임들을 지원한다. 학문의 상업화를 반대하며 한계를 넘어서지 않았다면 이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숲 또한 플랜테이션 대농장과 노천 채굴 광업을 공격한다. 그러나 숲을 완전하게 사라지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학술적인 숲도 마찬가지다. 공동의 놀이에서 탄생한 아이디어는 여전히 유혹의 손짓을 한다."(499, 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