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의 야만인들
브라이언 버로.존 헬리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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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당대의 기업 인수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RJR 나비스코의 LBO(차입 매수) 거래 과정을 파헤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누군가는 


1. 개척자 정신(the spirit of pioneer) : '야성적 충동'들이 약동하는 개척자들의 무협 활극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짜릿한 흥분을 즐길 수도 있을테고

2. 선진 금융 기법(advanced financial skill) : 시장이 윤허(!)하는 최대 레버리지가 투여된 LBO(차입 매수) 기법의 메커니즘에 매료될 수도 있을테고

3. 자본과 탐욕(capital and greed) : 제것이 아닌 자본과 제것이지만 통제불가능한 탐욕으로 어우러진 금융시장에 경고장을 날릴 수도 있을 것이다.


긍정/부정적 견해 어느 쪽도 성립 가능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지점은 바로 


4. 사회의 부재(absence of commonwealth) : 그들의 열정, 그들의 행위, 그들의 포식에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공동체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황금을 뒤쫓는 개척자들이 남기고 간 황폐화된 마을처럼, 극도로 복잡한 금융 기법의 허리케인이 강타한 실물 경제는 앞만 보고 달리는 그들의 질주가 피어올린 먼지구름에 잠겨 질식한다.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열정과 고뇌, 회한과 한숨, 절망과 눈물은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가는 그들의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는 인간을 양육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길러진 인간은 자주 자신의 몸에 새겨진 공동체의 맥박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홀로 선 '문 앞의 야만인들(Barbarians at the gate)'은 오늘도 변함없이 자신들의 신세계를 향해 문을 박차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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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쟁 - 군사적 폭력의 탈국가화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 공진성 옮김 / 책세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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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문


# 새로운 전쟁의 세 가지 전개 양상

1. 군사력의 탈국가화 혹은 민영화 : 전쟁의 직접적인 수행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면서 나타난 현상

2. 군사력의 비대칭화 : 폭력 사용의 특정 형태들(파르티잔, 테러리즘)이 하나의 독립적 전략으로 부상

3. 폭력 형태들의 점진적인 자립화 혹은 자율화 : 정규군이 전쟁 발발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상황


1 새로운 전쟁, 무엇이 새로운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국가건설전쟁'과 제3세계 또는 제1세계와 제2세계의 주변부에서 일어난 '국가붕괴전쟁'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가 '외부의' 커다란 영향 없이 진행된 반면에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새로 태어나서 여전히 불안정한 국가들을 붕괴시키는 우리 시대의 전쟁들은 오히려 외부의 지속적인 정치적 개입에 종속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그 전쟁들은 국가경제의 발전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세계경제적 교환체계 속에 포섭되어 있다. 그래서 지하자원, 석유나 광석 같은 국가 재산은 오히려 그 획득과 분배를 둘러싼 충돌들을 강화시켜왔다. 그러므로 오늘날 다수의 실패한 국가들이 좌절한 것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충분히 통합되지 못한 사회들의 부족중심주의 탓만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또한 강한 국가성이 부재한 곳에 파괴적 영향을 끼쳐온 경제적 지구화의 물결 탓이기도 하다."(25-6)


"사태의 전개를 더 극적으로 만든 것은 전통적 부족중심주의와 지구화의 새로운 형태라는 두 요소가, 그것이 국가 건설을 가로막고 그 싹을 파괴한 것과 동일한 정도로, 내전의 발발을 용이하게 했으며 더 나아가서 내전의 지속에도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전쟁들은 그림자 지구화의 통로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경제와 연결되며, 전쟁의 지속적인 수행을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끌어들인다." "전쟁 중에 늘어나는 자원의 소비를 전쟁의 조기 종식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서방 국가들과 UN의 일시적인 통상금지 정책은 거의 모든 경우에 실패했다. 전쟁을 계속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의 확보에 전쟁 당사자들이 거의 언제나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 공통점이나 전략적 이해관계를 지닌 정권의 지원을 받는 전통적 방식으로, 또는 그림자 지구화의 새로운 형태들을 이용하여 그들은 자원 확보에 성공했던 것이다."(28-9)


"시공간적으로 군사력을 집중하는 원칙이 아니라, 분산하는 원칙이 새로운 전쟁들의 진행 양상을 결정한다. 대개 새로운 전쟁들은 파르티잔전쟁의 기본 원칙을 따라 수행된다. 전방과 후방, 본토의 구분이 사라져서 전투 행위가 작은 땅덩어리에 국한되지 않고 도처에서 벌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전쟁에서는 적과 단 한 차례 승패를 가르는 대규모 전투를 치르는 것이 기피된다. 자신들이 그런 전투에 걸맞는 전투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거나, 자신들의 부대가 원래 그런 형태가 전쟁 수행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새로운 전쟁들에서는, 18~20세기의 유럽 역사를 결정했던 전쟁들에서라면 찾아볼 수 없을, 어떤 유형의 무장전투원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 이 자리에서, 이 순간에 적을 이기는 것이 목적이며, 이 목적 안에서 모든 전쟁계획이 실처럼 엮이고 미래에 관한 먼 희망과 막연한 생각들이 만난다."(32-3)


"전쟁의 탈국가화의 주역이자 주요 수혜자는 군벌들과 지역의 장군들, 그리고 지역의 경계를 넘어 활동하는 전쟁사업가들이다. 이들 중에서 붕괴된 국가의 넓은 영토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약탈할 수 있는 일부는 국가의 중요한 속성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 건설이라는 고된 일을 직접 추진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무력을 이용해 챙길 수 있는 전리품 외에, 국가로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에서 생기는 이익을 노린다. 국가로서 인정받게 되면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고, 국제시장에 제약 없이 진출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모은 재산을 외국으로 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벌들이 주장하는 국가의 속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국가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정치적 자기구속과 자기책임의 형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약탈의 지속일 뿐이다."(43-4)


"20세기 중반 이후의 전쟁의 역사는 비대칭적 분쟁이 점점 더 발전하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경제, 기술, 군사, 문화산업 분야에서 미국이 보유한 따라잡을 수 없는 우월성은 세계정치적 비대칭성들을 낳았고, 이는 전투 장소의 이동, 전쟁 수단의 재정의, 새로운 자원들의 동원을 통한 전쟁의 비대칭화로 이어졌다. 이 방향으로의 첫 번째 큰 걸음은 탈식민지화 시대의 게리야[작은 전쟁] 전략의 체계적인 재수용이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파르티잔전쟁의 전략과 테러 전술의 연결이었다. 그것은 1950년대 후반 이후로, 특히 알제리 전쟁에서 관찰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러리즘이라는 정치적·군사적 전략이 형성되었다. 이제 테러 공격은 파르티잔 방식으로 싸우는 해방 운동을 단순히 지원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직접적으로 적의 정치적 의지를 파괴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2001년 9·11 테러로 이 비대칭화는 잠정적인 정점에 도달했다."(65-6)


2 전쟁 수행, 국가 건설, 삼십년전쟁


"독일의 사회학자 트루츠 폰 트로타는 아프리카에서의 국가 붕괴와 그것과 연결된 전쟁이 OECD 국가들의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여준다는 명제를 대변한다. 이스라엘의 전쟁사학자 마르틴 판 크레펠트도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저작 속에서 전쟁의 전형으로 파악되고 분석된 국가 간 전쟁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고, 전쟁들이 작은 불꽃으로 오랫동안 흔들거리며 타오르는 '저강도전쟁'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변화들을 묘사할 때의 언어적 표현이 이미 근본적인 차이를 암시한다. 전쟁이 문장의 주어가 된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에 묶어두기를 원했다. 그러나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라는 목적어의 자리에서 벗어나 자기를 정치의 자리에 놓았다. 이제 전쟁들은, 판 크레펠트의 진단처럼, 더는 누군가에 의해 수행되지 않고, 저절로 흔들거리며 타오른다.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에서 정치에 부여되었던 주어의 자리를 판 크레펠트의 이론에서는 전쟁 자신이 차지했다."(72)


"신속한 군사적 결판을 목표로 삼지 않는 전쟁에서는 거의 언제나 기강 상실이 나타난다. 무장한 병사들은 점차 전쟁을 개인적인 치부의 기회로 삼고, 무기를 자신의 권력환상과 가학욕구의 실현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 점이 삼십년전쟁에 관한 보고들에서 발견되는, 최근의 전쟁 경향과 눈에 띄게 유사한 점들이다. 더 나아가서 전쟁 비용 문제를 점령지역에서 해결한다." "새로운 전쟁은 조세수입으로 채워지는 국고가 없는 대신에 스스로 경제적 활동의 일부가 되었다." "가치를 일방적으로 획득하기만 하는 전쟁은 스스로 어떤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므로 언젠가 그 전쟁경제의 구조 속으로 깊이 빨려들어가 전면적 붕괴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전쟁은 일반적으로 힘의 광범위하고도 신속한 동원의 원칙을 따르지 않고 힘의 느리지만 연속적인 사용의 원칙을 따르므로, 대부분 매우 오래 지속되고 일시적으로 꺼졌다가도 언제나 다시 타오른다."(96-7)


"삼십년전쟁은 개별 전쟁들과 충돌들의 중첩된 연속이지만, 그것들이 서로 얽혀 있어서 마치 하나의 전쟁인 것처럼 취급된다. 이 점에서 삼십년전쟁은 오늘날 벌어지는 일련의 전쟁들과 또한 유사하다. 여기에는 상이한 상대들과 벌인 여러 전쟁들이 중첩된 아프가니스탄 전쟁, 3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앙골라 전쟁, 다양한 혁명 운동들과 외부 세력이 개입한 콩고 전쟁 등이 있다." "이 모든 전쟁들의 공통점은 내전으로 시작해 초국적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그럼으로써 말 그대로 경계를 모르는 전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에서 시작된 전쟁들을 그 지역의 경계 안에 묶어둔 것은 UN, NATO, EU가 거둔 혁혁한 공으로 기록해야 할 것이다. 일국 수준의 내전을 조기에 종료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그것이 국경을 넘어 초국가화하는 것이라도 막는 것이 앞으로는 국제적 평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101-3)


"삼십년전쟁은 사회-정치적 질서의 국가화가 아직 완료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이 전쟁에는 국가 행위자와 반半국가 행위자, 사적인 행위자들이 대립과 협력이 뒤섞여 나타났는데, 이런 현상은 새로운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전형적이다. 지배권의 원래 보유자인 황제와 제국의 신분집단들도 삼십년전쟁의 매우 중요한 행위자들이었지만, 그 외에 전쟁의 발발과 함께 높은 자리에 올라서게 된 전쟁기업가들도 이 전쟁의 매우 중요한 행위자들이었다. 이들은 용병 조직을 구성했고, 고객들의 지시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외부 세력들이 이 전쟁에 개입했다." "이처럼 삼십년전쟁은 헌정적 갈등과 종교적·이데올로기적 대립의 혼합물이고, 사적인 치부욕과 개인적 권력욕의 혼합물이며, 국가이성적 고려와 종교적 가치에 대한 헌신의 혼합물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전쟁들은 매우 드문 경우에만 군사적으로 승패가 결정될 수 있다."(107-8)


3 전쟁의 국유화와 그 결과


"점차 군대의 규모가 커지고 상이한 병과가 결합─보병대뿐만 아니라 기병대와 포병대를 보유한─하면서 전쟁은 점점 더 비싸졌다." "이제 전투의 결과는 투입된 부대의 수적 크기와 세 가지 병과들을 조합해 투입하는 능력이 결정하게 되었다. 이로써 대규모 결투와 전투들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성을 얻었다." "'전쟁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고, 또 돈이 필요하다'는 말은 더 적실성을 얻게 되었다. 이런 비싼 전쟁은 결국 국가만이 수행할 수 있었다. 국가는 15세기 이후로 지속해서 증가한 세금 수입에 의존하여 전쟁에 필요한 재정적 수단을 장기적으로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국가는 용병들의 통제하에서 경제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던 전쟁을 점차 다시 국가의 정치적 지휘권 아래 둘 수 있었다. 이때부터 통치 권역의 크기, 통치의 집중화 정도, 세금 수입의 양이 유럽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116-7)


"군조직이 국유화한 것과 국가가 전쟁의 독점자, 즉 전쟁을 선언하고 수행할 권리를 지닌 유일한 권력으로 등장한 것은 국가들 간의 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경쟁의 메커니즘과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노력을 통해 유럽에서는 하나의 세력 균형 체제가 발전했다. 이 체제를 본질적으로 결정한 것은 대칭성이라는 관념이었다. 유럽에서 근대에 일어난 국가 간의 전쟁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칭적인 형태로 수행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전쟁을 다른 곳에서 나타나지 않은 특별한 형태의 법으로 규정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전쟁이 근대 초기에 대칭적으로 변하면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정당한 전쟁'이라는 오래된 생각이었다." "한 쪽이 범법자로 간주되고 다른 한 쪽이 그 법을 회복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 때에만 정당한 전쟁은 성립한다. 정당한 전쟁에서 전쟁에 대한 권리ius ad bellum는 처음부터 비대칭적으로 분배되어 있다."(132-3)


"전체적으로 볼 때, 정당한 전쟁에 관한 이론에서 더 중요한 것은 폭력의 광범위한 제한보다 오히려 이 이론이 고안될 당시의 특유의 정치적 상황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이론으로 원칙적 평화주의를 맹세하는 기독교 공동체들을 향해 사방에서 몰려드는 야만적인 이민족들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로써 유지되어야 할 현상Status quo이 전적으로 정의롭지는 않지만,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대안들보다는 어쨌든 더 정의롭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생각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한 전쟁은 원칙적으로 비대칭적인 것이었다. 한 편에는 기독교적 평화체제의 정치적 보증인인 로마 제국이 있었고, 다른 한 편에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야만적 정복자들이 있었다. 정당한 전쟁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상은 문명에 적대적인 정복자에 맞서 문명이 자신을 무력으로 방어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134)


"삼십년전쟁 이후 국가 간의 비대칭성을 억제한 세 차원이란 군사적 전략의 차원, 정치적 합리성의 차원, 국제법적 정당성의 차원이었다. 국제법적 정당성의 차원에서 규정되는 대칭적 관계는 (영토의 크기와 인구 규모 면에서 큰 차이가 있더라도) 주권에 대한 상호 인정과, 그 인정 속에 포함되어 있는 동등성의 인정이었다." "가장 중요한 차원인 정치적 합리성의 차원에서는 구조적 대칭성이 이 체계를 안정화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여기서 대칭성의 원리는 개별 국가들의 군사력을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군사력을 자국의 군사력과 비교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미리 동맹을 체결하여 가상의 적국이 군사적으로 우위를 점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울러 각국은 가상의 적이 아니라 실제의 적에 맞서 무장했다. 그 이점은 군사력의 우열을 쉽게 확인하여 보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145-6)


"모든 산업자원들을 투입한 상황에서 치러진 제1차 세계대전은 상당수의 민간인들을 무기 생산에 끌어들였다. 그런데 그렇게 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은 이 노동자들을 준전투원의 지위로 격상시켰고, 이와 함께 한때 분명했던 전쟁에 참가한 자와 참가하지 않은 자 간의 구별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은 오래 지속된 데에다가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서도 군사적 결론에 이르지 못함으로써 과거의 대칭적인 정치적 관계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 전쟁은 국제법의 발전에서 하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제 전쟁의 정당성은 방어전쟁의 경우에 국한되었고, 이와 함께 전쟁의 양 당사자가 원칙적으로 전쟁에 대해 동등하게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는 가정은 사라졌다. 왜냐하면 방어를 위한 정당한 전쟁이란 오로지 상대방이 부당한 침략전쟁을 금지하는 법을 어겼을 때에만 성립하기 때문이다."(147-9)


"(임마누엘 칸트가 자신의 저서 《영구평화론》에서 펼친 논지대로) 국가 간 전쟁은, 특히 고도로 발달한 산업국가들이 벌인다면 더욱, 유익하지 않다.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이익도 확실히 계산할 수 있는 손해보다는 적다. 그러나 이 판단은 오로지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손익을 계산했을 때에만 타당하다. 새로운 전쟁들에서처럼 군벌들과 내전 당사자들, 지역적 민병대들이 각자 나름의 계산서를 작성하는 곳에서 이 판단은 적용되지 않는다. 전쟁의 손익 계산이, 대칭적으로 전쟁을 수행한다는 가정하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비대칭적 전략들을 사용하여 비용을 전가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이루어질 때 계산의 결과는 달라진다. 대칭적 전쟁은 전쟁 참가국들에게 또한 비용을 대칭적으로 분배하려는 효과를 가진다. 그래서 전쟁을 회피함으로써 비용을 줄이려는 동기가 양측에 공히 크게 있다. 그러나 비대칭적 전쟁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154-5)


4 새로운 전쟁 속의 폭력의 경제


# 군사력의 사유화를 이끈 세 가지 요인

1.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경량무기의 중요성 증가

2. 미숙련 전사(특히 청소년과 어린이)의 전투 투입

3. 강탈이나 불법상품 거래를 통한 전쟁 자금 조달


"새로운 전쟁을 수행하는 민병대와 군벌집단들은, OECD 회원 국가들의 군대가 갈수록 비싸지는 것과 달리, 과거 그 지역의 정규 부대보다도 분명히 더 저렴하다. 어쩌면 바로 이 사실이 새로운 전쟁을 그토록 위협적인 것으로 만들며, 또한 이로써 새로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집단의 범위가 넓어지는지도 모른다.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분명히 새로운 전쟁이 정규 국가 간 전쟁보다 사회에 더 많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새로운 전쟁은 시간적으로 지속되고 공간적으로 확장됨으로써 사회를 더 황폐하게 만들며, 사회 질서의 근간을 훼손함으로써 고전적 전쟁보다 사회에 더 나쁜 영향을 오랫동안 끼친다. 거의 모든 전쟁이 확실히 미래의 비용으로 수행되기는 하지만, 국가 간 전쟁에서 이 비용이 다음 세대에게 부과되는 채무인 것과 달리, 새로운 전쟁에서 이 비용은 지속적으로 파괴될 평화로운 삶의 기회 그 자체이다."(160)


"종족 간의 대립이 폭력을 강화하기는 하지만, 폭력을 유발하는 원인은 아니다. 원인은 오히려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이 무기를 이용해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사회 구조에 있다. 이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은 지난 시절 자신들이 당한 굴욕을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때로는 약간의 부를 이룬 사람들에게 되갚는다. 그들 자신이 노동하는 삶을 경험해보지 않았고, 그래서 또한 노고勞苦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 탓에 그들은 시민사회의 구조들을 마음대로 약탈하고 파괴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집단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쉽게 모집할 수 있는 전사들이다. 그들은 생각으로나 행동으로나 죽음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저항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으며, 더 거칠어지고 잔혹해지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새로운 전쟁의 가장 무서운 참여자로 만든다."(167-9)


"원론적으로는 군벌 지배가 국가 지배의 초기 형태로 변하고, 그것에서 다시 일정 시간 후에 어느 정도 안정적인 국가성이 생겨날 수도 있지만, 대개 이런 변화는 좌절된다. 군벌 지도자의 추종자들 가운데 너무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대장이 걸어온 길을 이제 직접 모방하여 뒤따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종식되면 군벌 지도자나 게리야 지도자의 카리스마적인 통솔력은 사라지고, 평화 정착 과정에서 생겨나는 실망들은 전쟁을 계속하려는 자들에게 지지와 추종자들 만들어준다. 명성과 사회적 인정을 좇아 한때 군벌 지도자에게 몰려갔었고, 이제 평화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모두 전쟁을 계속하려는 자들과 결합한다. 이 사람들이 평화를 믿지 못하는 것은 전쟁이 그들에게 약속했던 것들을 평화가 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비용이 이처럼 높은 것은 바로 전쟁이 너무도 값싸기 때문이다."(170-1)


"야만적인 집단 강간에서 여성을 감금하여 체계적으로 강간한 후에 추방하거나 임신시킨 채로 대중에게 노출시키는 것에 이르는 성폭력 전략은 보스니아와 동티모르 등지에서 목격되었는데, 이는 대량학살 없이 대규모로 '인종 청소' 정책을 추진하려는 시도로 파악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두려움과 공포, 폭력과 패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가 형성된다. 이 체계는 인구의 대부분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집과 여타의 모든 소유물을 포기하고 자질구레한 소지품 몇 가지만 가지고서 정든 고향을 떠나도록 강요한다. 공포를 생산하는 이런 전략의 중요한 세 단계는 다음과 같다. 정치적·문화적으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들이나 잠재적으로 무장 저항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을 처형한다. 신성한 건축물과 문화적 기념물을 불태우고 폭파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방해야 할 집단의 여성들을 체계적으로 강간하고 임신시킨다."(175-7)


"페미니스트들은 성폭력을 남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한 형태로 볼 것을 제안해왔다. 브라운밀러는 이렇게 말한다. 〈강간은 패배한 쪽의 남성들이 붙들고 있는 권력과 소유에 대한 남아 있는 모든 환상을 부순다. 능욕당한 여성의 신체는 의례적 전쟁터가 되고, 승자의 전승 축하 행렬을 위한 공간이 된다.〉 이 말은 왜 새로운 전쟁들에서, 삼십년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성폭력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또는 적어도 희생자의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다른 친척들이 있는 자리에서 발생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이런 폭력 행위들이 가지는 유사군사적 의미는 적에게 노골적인 굴욕을 안겨주고 그를 거세하는 데에 있다. 그가 '자신의' 여자들을 더는 보호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이제 여자들과 함께 분쟁지역을 영원히 떠나야 한다는 것이 그에게 문자 그대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여기에서도 공격은 적의 의지를 향하지만,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을 경유한다."(179)


"인도적 지원은 부유한 국가들에서 대부분 좋은 의도로 이루어지고 또 자선 행위로 여겨지지만, 전쟁 지역과 위험 지역에서 종종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전쟁 당사자들이 오히려 그 지원에 의해 후원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전쟁들의 전략가들이 국제원조를 아예 처음부터 그들의 작전 계획 속에서 병참의 한 요소로서 포함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전쟁을 저렴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전쟁 당사자들이 물자 조달 걱정을 덜 할 수 있을수록, 전쟁은 더 쉽게 수행된다. 무장세력들은 구호품 수송 차량을 교량, 산길 또는 도로 차단 시설이 설치될 수 있는 곳 어디에서나 정차시키고 수색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빼고, 필요 없는 물건들만 통과시킨다. 사라예보를 포위하고 있던 세르비아 연방군은 자신들이 구호품의 상당 부분을 얻기 전까지 UN의 수송 차량을 그 도시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185-6)


"난민들의 행렬과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세운 수용소는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덩굴식물의 조직과 같아서 이 덩굴을 따라 처음에 한 지역에 국한되었던 전쟁이 주변 지역으로 확장되고 전쟁의 조직이 새 환경 속에서 뿌리를 내린다. 이런 난민 행렬의 모습으로 한 사회 안에서 일어난 전쟁은 짧은 시간 안에 국경을 넘어 초국가적 전쟁으로 확장된다. 전쟁이 확산을 막으려는 이웃 국가들이나 국제기구들의 노력은 바로 이 난민 행렬에 막혀 번번이 좌절한다. 한편으로, 이웃 국가들이 대체로 연약한 국가 구조와 경제 구조가 난민수용소가 들어서면서 심하게 훼손되고, 다른 한편으로, 그곳에 매우 신속하게 전쟁 당사자를 돕고 지원하는 네트워크가 들어선다. 이 네트워크로부터 전쟁 당사자들은 정치적·군사적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을 상당 부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이 수용소를 상대편의 공격 목표가 되게 한다." "수용소에 대한 공격은 전쟁의 확산을 막거나 아예 종식시키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188-9)


"미디어는 의도치 않게 전쟁 가담자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군인과 군인의 대결이 아니라, 군인과 민간인의 대결로 표현되는 새로운 전쟁의 비대칭적 구조가 낳은 직접적 결과이다. 미디어를 통해 형성되는 전 세계의 여론 또한 전쟁의 한 가지 자원이 되었다. 약한 편의 전투원들은 이 여론을 방패막이로 삼는다. 군사적 충돌의 비대칭성이 증가할수록 또한 그 충돌을 관찰하는 카메라의 중요성도 증가한다. 전쟁 보도의 전통적인 중립성은 확실히 전쟁의 대칭성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점차 증가하는 전쟁의 비대칭성, 즉 다윗과 골리앗 간의 대결로 변해가는 상황은 전쟁의 보도를 어느 한 쪽 편을 들고 지원하는 일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계획할 때에 중요한 것은 자신들을 다윗으로 연출하는 것이다. 난민들과 우는 여인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망에 빠져 저항하는 아이들을 보여주는 것은 이 일을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190)


5 국제 테러리즘


"어떤 폭력 행위를 '테러'라고 기술함으로써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행위가 지닌 일체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정하려고 한다. 이처럼 '테러리즘'은 국제정치에서 배제 개념으로서 기능한다. 어떤 행위를 테러라고 부르는 것은 그 행위와 관련한 사람들의 요구가, 최소한 특정 형태의 폭력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한,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테러리스트 전략이 노리는 것은 폭력 사용이 가져오는 직접적인 물리적 결과가 아니라 심리적 결과이다. 테러리스트 전략은 파괴의 규모나 사상자의 수, 물자공급체계의 붕괴와 같은 공격이 야기하는 물질적 피해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그것을 통해 확산되는 두려움과, 막강해 보이는 적도 다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공격들로 인해 가지게 되는 기대와 희망에 더 큰 관심을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테러리즘은 유달리 떠들썩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파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고 일컬어졌다."(207-9)


# 테러 활동에서 폭력 수단의 자기제한이 무너진 이유

1. 테러리즘의 국제화 :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벌이는 항공기 납치사건은 우연적으로 구성된 피해자 집단에게 의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

2. 종교적·원리주의적 동기의 강화 : 천년왕국적·묵시론적 관념들을 이용하여 세속적 목표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무고한 희생자를 정당화하는 방식


"오늘날 미디어는 새로운 테러전쟁의 급진적인 비대칭 전략이 효과를 누리는 것을 보장해준다." "미디어를 통해 연출되는 상징적 대결은 그 자체가 이미 늘 싸움의 일부이다. 이 싸움의 한 편에는 죽음을 각오한 확신에 찬 용사들의 작은 집단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지배적이지만 탈영웅적인 심성을 지닌 국가들과 사회들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테러리즘은 무기를 이용한 싸움이 이미지를 이용한 진짜 싸움을 위한 구동륜의 역할을 하는 전쟁 수행의 한 가지 형태를 보여준다. 전쟁의 보도가 전쟁 수행의 수단으로 변한 것이 전쟁의 비대칭화 과정에서 아마도 가장 큰 진전이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의 군사적 비대칭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물론 그것은 대칭성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새로운 태러전쟁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듯이, 새로운 비대칭성을 목적의식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231-3)


"테러의 '메시지'가 아무런 설명과 요구 없이 공격하는 이미지만을 통해 퍼져나갈 때 그 메시지의 내용은 불분명해진다. 메시지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그 메시지가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테러집단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게 남게 된다. 이 모호함이 오늘날의 국제적 테러집단에게는 결코 전술적 결함이 아니다. 메시지의 모호함이 과거의 사회혁명적 또는 종족적·민족적 테러집단에게는 결함이었겠지만, 오늘날의 국제적 테러집단에게는 전략의 핵심 요소이다. 공격받는 자에게 수수께끼가 주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공격하는 자가 정치적으로 만족하게 될지, 공격받는 자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책임성명도 발표하지 않고 오로지 이미지만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테러 공격은 대립되는 이익들과 목표들 간의 어떤 타협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것을 요구하는 커뮤니케이션과 분명히 다른 것이다."(236-7)


"국제 테러리즘은 더 이상 폭력을 일정한 메시지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세계의 공중에게 접근할 유일한 수단이나 선호하는 수단으로서 이용하지 않는다. 요란하게 비행기를 납치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와 요구사항들을 공중에게 알리기를 원했던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의 다양한 팔레스타인 집단들과 달리, 새로운 형태의 테러 폭력은 직접적으로 서구 세계와 그 세계에 결합해 있는 국가들의 경제적 순환구조를 겨냥한다. 이때 이 폭력은 폭력의 물리적 효과보다 심리적 효과를 노린다. 그래서 이 폭력이 테러 폭력인 것이다. 이 폭력이 파괴적인 이유는 그것이 한 나라의 기반시설과 공장, 쇼핑센터, 통제 시스템과 운송 시스템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 아니라, 이 폭력이 공포를 퍼뜨리고 그럼으로써 현대 사회의 경제가 지닌 매우 민감한 심리 조직을 부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사회들의 가장 큰 약점이 있다. 그리고 이 약점은 비교적 공격하기가 쉽다."(240-1)


6 군사적 개입과 서구의 딜레마


"20세기에 제기된 민주평화론, 즉 좁은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는 관찰의 일반화는 중요하지도 유익하지도 않다." "민주주의 사회들의 평화지향성을 다소 과잉결정한 세 가지 경향 중 첫 번째는 산업화하면서 처음에는 조금씩, 그러나 점차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전쟁 비용이고, 두 번째는 앞의 경향과 병행해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명성과 명예 중심에서 목적합리성 중심으로 사회적 지향이 바뀐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경향은 이런 목적합리성이 경제적인 결정뿐만 아니라 정치적 결정도 좌우할 수 있게끔 해주는 제도적 조건의 발전이다. 민주평화론은 이 중 세번째 경향에 집중하여 한 사회가 전쟁을 준비할지 평화를 사랑할지를 '전적으로 결정하는' 요소로서 민주적 질서의 기능적 메커니즘을 조사한다." "그러나 전쟁이 비싸지는 것은 다른 두 요소들이 작용하고 전쟁을 수행할 의지와 능력이 감소하게 되는 데에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243-4)


"민주적 평화의 법칙을 오히려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칭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목표지향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고 선거를 통해 정치적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명약관화해진 대칭적 전쟁의 엄청난 손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대칭적 전쟁에는 민주주의 국가들도, 자국의 손실과 경제적 부담이 과중하지 않다는 전제하에, 여전히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프랑스, 영국, 미국은 1945년 이후에도 저항운동이나 독재 정부를 상대로 한 일련의 비대칭 전쟁들을 수행해왔다. 이때 전쟁 상대가 민주주의 국가인지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분쟁 상황이 비대칭적인지 여부였을 것이다. 그럴 때에 사람들은 전쟁이 자국의 큰 손실 없이 신속하게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예상하기 때문이다."(257-8)


"내전의 동학을 눈앞에 떠올리면, 특히 내전의 세 가지 중요한 특징, 곧 미래의 가치를 박탈하는 것을 포함하는 시간의 손실, 평화적인 능력의 주변화와 동시에 일어나는 폭력적 능력의 특권화, 그리고 내전과 연계된 이해관계의 형성을 눈앞에 떠올리면, 왜 내전이 오로지 매우 드물게만 분쟁 당사자들이 직접 협상해 실행에 옮기는 정치적 타협을 통해 종결되는지가 분명해진다." "세계경제와 결합하고, 이 세계경제로부터 전쟁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함으로써 내전은 장기적으로 이웃 나라의 평화경제는 물론, 심지어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이 평화경제도 위협한다. 인권에 대한 고려보다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다른 국가들, 동맹체계, 또는 국제연합은 무력 개입의 힘을 빌려 전쟁을 끝낼 결심을 하게 된다. 이런 개입들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인권정책이나 세계시민권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정치경제적 계산의 명령을 따른다."(264-5)


"새로운 전쟁이 위협적으로 발전해가는 것, 즉 내전과 내전경제가 다른 나라들의 평화경제에 위협을 가하는 것을 초반에 차단하기 위해 위험지역과 전쟁지역에 조기에 과감하게 개입해야 하는, 세 가지 근거들의 이면에는 군사적 비용과 리스크를 떠맡는 것에 유난히 예민한 서구 사회들의 정서가 있다. 이 서구 사회들은 이제 막 발발한 내전으로 인해 (난민 행렬이 몰려오고 비공식경제와 범죄경제가 증가하며, '인종 청소'와 같은 특정 전략을 다른 국가들이 모방하는 등의 형태로) 자신들에게 돌아올 정치적·경제적 부담이 군사적 개입을 할 때에 발생할 비용과 리스크보다 적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서 일단 기다리고 관망하는 정책을 취한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국민 대다수가 지니고 있는 이 탈영웅적 심성이 인도적 군사 개입의 정책이 18세기와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반의 역사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것과 같은 제국적 팽창으로 바뀌지 않게 보장해준다."(271)


# 세 가지 근거

1. 내전은 점점 국경을 가로질러 확대되고 더 많은 나라들을 분쟁 속으로 끌어들여, 평화를 위한 정치 협상을 어렵게 만든다.

2. 내전이 국제 범죄조직과 연결되면서, 한 나라의 내전경제가 이웃 나라들의 평화경제에 침투하고, 국가조직을 붕괴시킨다.

3. 권력지향적 정치인들이 다수의 인구집단을 부추겨 발생하는 '인종 청소' 같은 정책은 지역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OECD 국가들의 관점에서는 어쩌면 이런 군사적 개입들이 정치적 안정의 조건을 수출하는 것으로, 또 국가성의 기본조건을 갖추게 하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정치적 안정은 분명히 공동선이다. 그것은 내전에 의해 위협받거나 이미 파괴된 사회들에 직접적으로 유익하며, 또한 중장기적으로 다른 모든 국가들에도 유익하다. 그러나 중대한 인권 침해가 외부의 개입을 통해 처벌되는 지구적 인권정치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하버마스와 벡의 생각은 그런 정치에 필요한 비용의 분담에 관한 아무런 합의가 없기 때문에도 이미 비현실적이다."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결정적으로 너무 저렴하다. 특히 그 일이 국제 테러리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면 더욱 그렇다. 그 반면에 개입은 정치적 안정과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도 수출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비용이 많이 들고, 그 개입이 성공적이기 위해 오래 지속되어야 할수록 비용이 더욱 많이 든다."(273-4)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군사적 개입과 결합된 재정적 부담보다 군사적 개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리스크이다. 이런 군사적 개입 작전에 참여하는 각국의 정부는 커다란 손실이 발생하게 될 것과, 사망자와 부상자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면 국민들이 일시적으로 보였던 지지가 사라질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군사적 개입은, 그에 대한 커다란 저항이 예상될 때에, 먼저 전투기의 투입과 해상에서 발사하는 순항미사일의 사용에 국한된다." "오랫동안 전투가 대량학살로 변하는 것을 고전적 군인정신이 가장 확실하게 막아왔다면, 이제 그것은 기술적 정확성과 사법적 통제의 조합으로 대체되었다. 대중매체들을 통해 가시화하는 이 불평등은 개입을 종종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만들고, 그 결과로서 국민들이 정치적 지지를 철회하고 다른 편을 들게 된다."(276-7)


"첨단무기에 기반을 둔 개입 전략에 대한 대안은 용병의 투입을 늘림으로써 군사적 피해가 정치적으로 덜 중요해지게 하는 것이다. 용병은 개입국의 정치적 문제들을 적어도 단기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다." "용병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또한 전쟁은 지속적으로 비싸지는 경로를 벗어나게 된다. 정치적 리스크뿐만 아니라 부대의 훈련과 투입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도 줄어든다. 그 밖에도 용병의 모집은 탈영웅적 사회의 자유시장 정신에 가장 잘 맞는다. 이런 발전이 확산되면 당연히 정치적으로 심각한 결과가 생겨날 수 있다. 무장 세력이 오로지 사업관계에만 묶여서 국가의 정치적 통제를 거의 받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민영화는 전쟁 지역과 재난 지역에서만 아니라, 부와 권력의 중심부에서도 촉진되는 셈이다. 이렇게 민영화한 전쟁은 매우 빠르게 자립하여 시장법칙을 따라 파국에 이르는 고유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2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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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취약성 - 왜 백인은 인종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그토록 어려워하는가
로빈 디앤젤로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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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는 여기서 저기로 갈 수 없다


"(인종 스트레스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우리[백인 집단]는 인종주의 체제와 우리를 연관짓는 모든 시도를 마음을 어지럽히는 부당한 도덕적 모욕으로 여긴다. 아무리 적은 인종 스트레스라도 우리는 견디지 못한다. 이 사회에서 백인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암시하기만 해도 대개 일군의 방어적 반응을 보인다. 그런 반응에는 분노, 두려움, 죄책감 같은 감정과 논쟁하기, 침묵하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같은 행동이 포함된다. 우리 백인은 이런 반응으로 도전을 물리쳐 균형을 회복하고, 인종적 편안함을 되찾고, 인종 위계에서의 우위를 유지한다. 나는 이 과정을 '백인의 취약성'으로 개념화한다. 백인의 취약성을 촉발하는 것은 불편함과 불안이지만, 이것을 낳는 것은 백인이 우월하고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의식이다. 백인의 취약성은 그 자체로는 약점이 아니다. 실은 인종을 통제하고 백인의 이점을 보호하는 강력한 수단이다."(24-5)


제1장 백인에게 인종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부딪히는 난제들


"백인을 상대로 인종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혹시 우리 모두가 같은 대본의 대사를 외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뻔한 반응을 접하곤 한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같은 대본을 들고 있는 셈인데, 우리가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백인 대본의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객관적이고도 독특한 존재로 본다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보편적이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은 특수한 문화적 렌즈를 통해 지각과 경험을 이해한다." "우리는 서구 문화를 규정하는 두 가지 핵심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에 (특정한) 문화적 준거틀을 탐구하기가 유독 어려울 수 있다. 바로 개인주의와 객관성이다. 간단히 말해 개인주의는 우리가 심지어 우리의 사회 집단 내에서조차 저마다 독특하고 서로 다르다고 본다. 객관성은 우리가 모든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 때문에 백인은 자신들의 집단적 경험을 탐구하는 데 유독 어려움을 겪는다."(35)


제2장 인종주의와 백인 우월주의


"인종은 인종 간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백인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화하고 있는 사회적 관념이다. '백인'이라는 용어는 1600년대 말에 식민지법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미국은 1790년경 인구조사에서 사람들에게 각자의 인종을 말할 것을 요구했고, 1825년경 이른바 혈통의 등급에 따라 누구를 인디언으로 분류할지 결정했다. 1800년대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민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옴에 따라 미국에서 백인 인종 개념은 더욱 공고해졌다. 1865년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백인성은 대단히 중요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합법화된 인종주의적 배제와 폭력이 새로운 형태로 게속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시민권─그리고 시민권에서 비롯되는 다른 권리들─을 가지려는 사람은 법적으로 백인으로 분류되어야 했다. 비백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법원에 자신을 다시 분류해달라고 청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법원은 어떤 사람이 백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었다."(48-9)


"(누구나 편견을 갖고 있고 누구나 차별을 하지만) 어느 인종의 집단적 편견이 법적 권한과 제도적 통제력의 지원을 받을 때, 그것은 인종주의로, 개인 행위자들의 의도나 자아상과 무관하게 기능하는 광범한 체제로 변화한다." "미국 여성의 참정권 투쟁은 제도적 권력이 어떻게 편견과 차별을 억압 구조로 바꾸는지를 잘 보여준다. 누구나 편견을 품고 차별을 하지만, 억압 구조는 개개인을 훌쩍 넘어선다. 미국 여성은 개인적 관계에서는 남성을 상대로 편견을 갖고 차별을 할 수 있었지만, 여성 집단으로서 남성의 시민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미국 남성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여성의 시민권을 부인할 수 있었고 실제로 부인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모든 제도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이 투표권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남성이 그 권리를 여성에게 부여하는 길뿐이었다. 여성이 스스로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수는 없었다."(54)


"백인 개개인은 인종주의에 '반대'할지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이 백인 집단에게 특권을 주는 체제로부터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웰먼은 인종주의를 〈인종에 근거하는 이점의 체제〉라고 간명하게 요약한다. 이런 이점은 '백인 특권'이라 불리는데, 이 사회학 개념은 같은 환경(정부, 공동체, 직장, 학교 등)에서 백인은 당연시하지만 유색인은 백인과 비슷하게 누릴 수 없는 이점을 가리킨다. 오해를 피하고자 말하자면, 인종주의가 백인에게 특혜를 준다는 말은 백인 개개인이 장벽과 싸우지 않거나 장벽에 부딪히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인종주의의 특정한 장벽에 부딪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종주의는 그 정의상 역사적으로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제도적 권력의 체제다. 인종주의는 유동적이지 않으며, 소수의 유색인 개인들이 가까스로 두각을 나타낸다고 해서 방향을 바꾸지도 않는다."(59-60)


제3장 시민권 운동 이후의 인종주의


"이른바 색맹 인종주의는 문화적 변화에 적응하는 인종주의의 능력을 보여주는 예다. 이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우리가 인종을 보지 않는 척한다면 인종주의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생각의 근거는 1965년 마틴 루서 킹 박사가 일자리와 자유를 위해 워싱턴으로 행진하던 중에 행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에 포함된 한 문장이다." "마틴 루서 킹 연설의 한 문장─언젠가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문장─ 이 특히 백인 대중의 이목을 끌었는데, 킹의 표현이 인종 갈등 문제에 간단하고도 즉각적인 해법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인종을 보지 않는 척하는 방법으로 인종주의를 끝내는 해법이었다. 그리하여 '색맹'이 인종주의의 해결책으로 홍보되었고, 백인은 자신이 인종을 보지 않는다고, 설령 보더라도 자신에게 인종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우기기에 이르렀다." "달리 말하면, 인종을 인정하는 사람이 곧 인종주의자라는 것이다."(85-7)


"회피적 인종주의aversive racism는 스스로를 교양 있는 진보주의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드러낼 가능성이 더 높은 인종주의의 한 형태다. 이것은 의식의 표면 아래에 존재하는데, 인종 간 평등과 정의라는 의식 수준의 신념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할 만한 방식으로(〈나는 유색인 친구가 많다〉, 〈나는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인종주의를 자행한다는 점에서, 회피적 인종주의는 미묘하지만 교활한 형태의 인종주의다." "가령, 한 친구는 자기가 아는 (백인) 부부가 얼마 전에 뉴올리언스로 이사했는데 겨우 2만 5천 달러에 집을 샀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물론 그들은 총도 사야 했고, 조앤은 집 밖에 나가는 걸 두려워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부부가 흑인 동네에서 집을 샀다는 뜻임을 대번에 알아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경멸감을 대놓고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무서운 흑인 공간이라는 익숙한 이미지를 강화하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경계선을 그었다."(90-1)


"어린이와 인종에 관한 많은 연구는 백인 어린이가 일찍이 취학 전부터 백인 우월의식을 키운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회가 백인이 유색인보다 낫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기 때문이다. 다수의 백인 청소년이 인종주의는 과거의 일이며 자신들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여기도록 배웠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연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밀레니얼 세대는 인종 색맹이라는 이상에 더 헌신하면서 인종 문제를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문제로 남겨두고, 인종 간 불평등을 줄이는 조치에 반대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백인 밀레니얼 세대의 41퍼센트가 정부가 소수집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고 생각하고, 48퍼센트가 백인에 대한 차별이 유색인에 대한 차별만큼이나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세대의 다수는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우리가 탈인종 시대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96-7)


제4장 인종은 백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사회에서 정상적이거나 중립적이거나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사실상 모든 상황 또는 맥락에서 나는 인종적 소속감을 느낀다. 이 소속감은 나와 늘 함깨해온 뿌리 깊은 느낌이다. 소속감은 나의 의식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나의 일상적인 생각과 관심사, 삶의 지향과 기대지평에 영향을 준다. 내게 소속 경험은 구태여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이상, 인종주의는 나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책임을 면할 자유 덕택에 유색인은 하루 종일 누리지 못하는 인종적 안도감과 정서적·지적 여유를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다. 유색인에게 이런 혜택이 없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소수이고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오히려 백인이 수적으로 소수다). 유색인이 백인 우월주의 문화─유색인이 설령 보이더라도 열등한 존재로 보이는 문화─안에서 인종화되기 때문이다."(106-9)


"백인 연대란 백인의 이점을 보호하는 한편 다른 백인이 문제 있는 인종적 언행을 할 때 그것을 추궁해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 말자는 무언의 합의를 말한다. 교육 연구자 크리스턴 슬리터는 이 연대를 백인의 〈인종적 유대〉로 묘사한다. 크리스턴에 따르면 백인은 자기들끼리 교류하면서 〈유색인 집단들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정당화하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모종의 경계선을 긋는, 인종 관련 쟁점들에 대한 공동 입장〉을 확인한다. 백인 연대는 백인 위치의 이점을 드러내는 모든 것에 대한 침묵과 백인 우월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인종적 단결을 유지하겠다는 암묵적 합의를 둘 다 필요로 한다. 백인 연대를 깨는 것은 곧 대열을 깨는 것이다." "(인종주의적 농담에 대한) 나의 침묵은 인종 위계와 그 속에서의 나의 위치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제지받지 않는 모든 인종주의적 농담은 우리 문화 안에서 인종주의를 더욱 퍼뜨린다."(113-5)


"백인의 인종 의식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우리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유리하다는 것을 백인 스스로 인정하도록 이끄는 것마저 힘겨운 과제다." "예컨대 나는 백인이 〈나는 그저 피부색 때문에 특권을 가지고 있다〉라고 오만하게 말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런 발언은 특권을 마치 요행인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관여하거나 공모하지 않았음에도 그저 우연찮게 얻은 무언가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제우스 레오나르도는 백인의 특권을 무지의 산물로 보는 이 견해에 도전하면서 〈백인의 인종 헤게모니로 일상생활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지배의 과정으로, 또는 백인 주체가 유색인에게 강제하는 법과 결정, 정책으로 그 헤게모니를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특권을 백인이 그저 건네받은 무언가로 보는 것은 능동적·수동적으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유지해야만 하는 인종주의의 체제적 차원을 가리는 것이다."(123-4)


제5장 좋은/나쁜 이분법


"시민권 운동 이후로는 선량하고 도덕적인 사람인 것과 인종주의에 가담하는 것이 양립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좋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인종주의에 가담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인종주의자라면 나쁜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인종주의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이 변화가 실제로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 패러다임 안에서는 나에게 인종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이 곧 심한 도덕적 타격─일종의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 타격을 받을 경우 나는 나의 인격을 변호해야 하고, 나의 행위를 반성하는 일보다 인종주의자 혐의를 벗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써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좋은/나쁜 이분법은 백인이 인종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역학을 논의하지 못하거나 우리 안에서 발견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인종주의에 계속 가담할 수밖에 없다."(133-5)


"인종주의와 관련해 사실상 모든 백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방어적 태도의 근간에는 이처럼 인종주의를 불친절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의도적인 개별 행위로 한정하는, 지나치게 단순한 견해가 있다." "좋은/나쁜 이분법은 분명 인종주의의 구조적 성격을 가리고 그것을 직시하거나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이분법적 세계관이 우리의 행위에 끼치는 영향도 문제다. 백인으로서 내가 인종주의를 이분법으로 개념화한 다음 나 자신을 '비인종주의자' 편에 놓는다면, 어떤 행위를 추가로 요구받겠는가?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행위도 요구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종주의를 나의 문제로 여기지 않을 것이고, 인종주의를 우려하지 않을 것이며, 더 해야 할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세계관에 서 있을 경우 나는 인종주의에 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역량을 키우거나 나의 위치를 활용해 인종 불평등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136-7)


"백인에게 인종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는 같은 주장들─좋은/나쁜 이분법에 뿌리박은─을 듣고 또 듣곤 한다. 나는 이 주장들을 크게 두 범주로 나누는데, 둘 다 백인을 좋은 사람, 따라서 인종주의자가 아닌 사람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범주는 색맹을 주장한다. 〈나는 피부색을 보지 않는다[그리고/또는 인종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따라서 내게는 인종주의가 없다.〉 두 번째 범주는 다양성을 중시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유색인을 알고 있다[그리고/또는 유색인과 가깝게 지내왔다. 그리고/또는 유색인에게 대체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게는 인종주의가 없다.〉 두 범주 모두 근본적으로 좋은/나쁜 이분법에 의존한다. 내가 이런 주장들을 두 범주로 나누긴 하지만, 이것들은 맞바꿔서 사용될 수 있고 흔히 그렇게 사용된다. 꼭 타당한 주장일 필요는 없다. 그저 발화자를 좋은 사람─인종주의가 없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논의를 끝내기만 하면 된다."(142)


제6장 반反흑인성


"우리는 백인이 우월하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유포하는 문화 안에서 살고 있다. 이와 동시에 흑인이 열등하다는 메시지도 끊임없이 유포된다. 그러나 반흑인성은 우리 모두가 흡수하는 부정적인 고정관념 그 이상이다. 반흑인성은 우리의 백인 정체성의 근간을 이룬다. 백인성은 언제나 흑인성에 기반해왔다. 아프리카인 노예화를 정당화할 필요성이 생기기 전까지는 인종이나 백인종 개념이 없었다. 열등한 흑인종을 따로 만들어내는 것은 동시에 '우월한' 백인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백인종 개념은 흑인종 개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백인은 흑인을 필요로 한다. 흑인성은 백인 정체서을 만들어내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지금 백인의 집단의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백인 개개인은 이런 감정을 뚜렷하게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조금만 도전을 받아도 이런 감정이 얼마나 빠르게 올라오는지를 느끼면서 자주 놀라곤 한다."(164-5)


"우리는 특히 '건방진' 흑인, 감히 자기 위치에서 벗어나 우리를 동등한 존재로 보는 흑인을 증오한다. 대대로 전해지는 메시지는 흑인은 태생적으로 동등하게 대우받을 자격이 없다는 백인의 믿음을 강화한다." "캐럴 앤더슨은 저서 《백인의 분노 White Rage》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백인의 분노를 촉발하는 방아쇠는 다름 아닌 흑인의 전진이다. 문제는 단순히 흑인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야망, 추진력, 목표, 열망, 그리고 완전하고 평등한 시민권을 요구하는 흑인성이다. 복종을 받아들이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흑인성이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진실은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흑인 남성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인 전진이었고, 따라서 궁극적인 모욕이었다. 놀랄 것 없는 결과일 테지만, 뒤이어 투표권이 심각하게 축소되었고, 연방정부가 일시 정지되었으며, 다른 선출직 관료들이 놀랍게도 공공연하게, 공식적으로 한 차례 이상 대통령직에 무례를 범했다.〉"(171-2)


제7장 백인의 인종적 방아쇠


"대부분의 백인은 인종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모른다. 그들에게는 대학에서 단 한 차례 강연을 듣거나 직장에서 요구하는 '문화적 역량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의 인종 현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도전을 마주하는 유일한 경험일 것이다." "혹시라도 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인종주의와 백인의 특권을 직접 거론할 경우에는 대개 분노, 퇴장, 무감정, 죄책감, 논박, 인지부조화 같은 반응(이 모든 반응은 진행자가 인종주의를 직접 거론하지 못하도록 막는 압력을 강화한다)에 직면하게 된다. 이른바 진보적인 백인은 분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이에 대한 수업을 이미 들었다〉거나 〈이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빠져나갈 것이다. 이 모든 반응은 백인의 취약성─인종적 격리가 지속되어 사회심리적 체력이 약해진 결과─을 구성한다."(179-80)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사회화의 결과로서 행위자들의 반복적인 실천, 즉 그들이 서로 간에, 그리고 나머지 사회환경과 주고받는 반복적인 상호작용이라고 말한다. 아비투스는 자신의 지위에 대한 내면화된 의식뿐 아니라 그 지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까지 포함한다." "백인의 취약성이란 아비투스에 최소한의 인종 스트레스만 받아도 참지 못하고 여러 방어적 움직임을 보이는 상태다. 이런 움직임으로는 분노와 두려움, 죄책감 같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기, 논박하기, 침묵하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등이 있다." "백인이 익숙하거나 당연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중단될 때 백인의 취약성은 균형을 회복하고 도전으로 인해 '상실한' 자본을 되찾아온다. 이 자본은 자아상과 통제력, 백인 연대를 포함한다. 백인이 불균형에 반응하는 방식으로는 균형을 깨뜨린 원인에 분노하기, 죄책감이나 '상한 감정' 같은 감정적 무력화를 차단하기 그리고/또는 드러내고 탐닉하기, 이 반응들 조합하기 등이 있다."(181-7)


제8장 그 결과: 백인의 취약성


"백인이 인종과 관련해 도전받을 때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은 자기방어 담론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 담론을 통해 백인은 스스로를 부당한 대우와 혹평, 비난, 공격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이는 발화자를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으로 설정하는 동시에 발화자의 사회적 위치가 갖는 진짜 권력을 가리는 기능을 한다. 또한 사회적 권력을 덜 가진 사람들의 불편함을 비난하고 그런 불편함을 위험한 것으로 그릇되게 묘사한다." "백인은 스스로를 반인종주의적 노력의 희생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자신은 백인성의 수혜자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백인은 자신이야말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주장함으로써─백인의 위치가 도전받는다는 이유로, 또는 유색인의 시각과 경험에 귀 기울일 것을 백인에게 기대한다는 이유로─이런 대우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자원(시간과 관심 같은)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193)


"분명히 말해두겠다. 인종 위치에 대한 도전을 견디는 백인의 역량이 부족하긴 하지만─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취약하긴 하지만─우리의 반응의 영향은 전혀 취약하지 않다. 오히려 역사적·제도적 권력과 통제력을 활용하는 까닭에 매우 강력한다. 우리는 도전받는 순간에 우리 위치를 보호하기에 가장 유용한 방식으로 이 권력과 통제력을 행사한다." "또 분명히 말해두건대 '백인의 취약성'은 아주 구체적인 백인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고안한 용어다. 백인의 취약성은 단순히 방어적 태도를 보이거나 우는소리를 하는 정도를 훌쩍 넘어선다. 이것은 '지배의 사회학'으로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백인의 취약성은 백인의 우월의식과 이 우월의식을 보호하고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법을 내면화하는 사회화 과정의 결과다. 이 용어는 불만을 토로하는 집단이나 그 밖에 다른 까다로운 집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예컨대 '학생의 취약성'은 성립하지 않는다)."(197-8)


제9장 행동으로 나타나는 백인의 취약성


# 백인의 취약성의 기능

1. 백인 연대를 유지한다.

2. 자기반성을 차단한다.

3. 인종주의의 현실을 대수롭지 않아 보이게 한다.

4. 토론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다.

5. 백인을 피해자로 설정한다.

6. 대화를 장악한다.

7. 편협한 세계관을 보호한다.

8. 인종을 논외로 한다.

9. 백인 특권을 보호한다.

10.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에 초점을 맞춘다.

11. 백인을 위해 더 많은 자원을 모은다.


제10장 백인의 취약성과 관여의 규칙


"서구 사회에서 자라는 백인은 백인 우월주의적 세계관에 길들여진다. 그 세계관이 우리 사회와 제도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부모가 당신에게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말했든 말든, 당신이 다닌 교외 백인 학교의 복도에 다양성의 가치를 칭송하는 포스터가 걸려 있었든 말든, 당신이 외국 여행을 했든 말든, 당신의 직장이나 가정에 유색인이 있든 없든, 어디서나 우리를 사회화하는 백인 우월주의의 힘을 피할 수는 없다. 의도나 의식, 동의와 거의 또는 전혀 무관한 메시지들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유포된다. 이 점을 이해하고서 대화를 시작하면 백인 우월주의에서 벗어나 우리의 인종주의가 드러나는지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우리에게 인종주의적 패턴이 없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 애쓰는 일보다 우리의 인종주의적 패턴을 멈추는 일을 훨씬 더 중시해야 한다. 우리는 인종주의적 패턴을 가지고 있고, 유색인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224-5)


제11장 백인 여성의 눈물


"인종 간 교류에서 백인 여성의 눈물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몇 가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백인 여성의 고통 때문에 흑인 남성이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오랜 역사적 배경이 있으며, 우리 백인 여성은 이 역사를 동반한다. 우리의 눈물은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이 역사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백인이 이 역사에 무지하거나 둔감하다는 사실은 백인의 중심성과 개인주의, 인종적 겸손의 부족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다. 인종 간 교류에서 선의를 가진 백인 여성의 눈물은 겉보기에 무해하기 때문에 백인의 취약성의 더 유해한 형태들 중 하나다. 이런 교류에서 우리가 우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리의 인종주의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는 이유로 울 수도 있다. 무의식적인 백인 인종주의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피드백을 도덕적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기분 나빠한다."(229-30)


"백인이 죄책감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일종의 방종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백인 여성이 인종주의의 어떤 측면 때문에 울음을 터뜨리고 나면 모두의 관심이 즉시 그녀에게로 쏠린다. 인종주의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워크숍 참석자들 전원의 시간과 에너지, 관심이 그녀에게로 향한다. 그녀가 관심을 받는 동안 유색인들은 또다시 관심에서 밀려나고 그리고/또는 비난을 받는다." "반인종주의 전략가 겸 워크숍 진행자인 레이건 프라이스는 비판적 인종 학자 킴벌리 크렌쇼의 저술에 쓰인 비유를 이렇게 바꾸어 말한다. 〈응급처치 요원들이 교통사고 현장에서 보행자를 친 운전자를 위로하러 달려가고 그동안 보행자는 피를 흘리며 거리에 누워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이렇듯 백인은 흔하지만 매우 전복적인 방식으로 인종주의의 관건을 백인의 고뇌, 백인의 고통, 백인의 피해자화化 문제로 바꾸어 버린다."(232-4)


제12장 우리는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백인이 내게 인종주의와 백인의 취약성과 관련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을 때, 나는 먼저 이렇게 되묻는다. 〈어떻게 당신은 교양 있는 전문직 성인이면서도 인종주의와 관련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를 수 있죠?〉 이것은 솔직한 질문이다. 주변 어디에나 정보가 있는 마당에 우리는 대체 어떻게 모르는 걸까? 유색인이 그렇게 오랜 세월 우리에게 말했는데도 말이다." "나의 마지막 조언은 이렇다. 〈당신 스스로 주도해서 찾으세요.〉 백인성의 길들임─인종주의에 무관심하게 만들고 인종주의를 저지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게 하는 길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인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는 훌륭한 조언이 너무나 많다. 유색인이 쓴 조언서도 있고 백인이 쓴 조언서도 있다. 그런 조언을 찾아라. 백인성의 무관심과 결별하고 당신이 노력을 기울일 정도로 신경을 쓴다는 것을 입증하라."(246-7)


"차라리 나는 '덜 하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덜 하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인종적으로 덜 억압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덜 하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유색인의 인종 현실에 열려 있고 관심을 보이고 공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다른 인종과 진실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다양하게 맺을 수 있고, 내게 인종주의적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인종주의적 패턴에 방어적 태도를 보이기보다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더 분명하게 확인하는 데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덜 하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백인의 침묵과 연대를 깨고, 인종주의로 인한 유색인의 고통보다 백인의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행태를 멈추고, 죄책감을 넘어 행동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덜 억압적인 패턴은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유색인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해방과 정의감을 위해 백인 정체성을 덜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256-7)


"어느 유색인으로부터 내가 생각하기에 부당한 피드백을 받을 때, 나는 다른 유색인에게 가서 내가 좋은 사람임을 확인받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 행동은 내가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는 데 동의하도록 그 유색인을 압박하여 다른 유색인이 아닌 나의 편에 서게 하는 것이다." "형평성 상담가 데번 알렉산더는 유색인을 압박하는 가장 유해한 형태라고 할 만한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바로 인종주의를 부인하고 방어하는 백인의 태도에 순응하고 백인의 취약성과 결탁할 수 있도록 유색인에게 자신의 인종 경험을 축소하라고 압박하는 형태다. 달리 말하면, 우리 백인이 유색인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그 고통을 우리와 공유하지 말라고 압박하는 형태다. 이 순응 요구에 따라야 하는 유색인은 매우 부당한 비진실성과 침묵을 견뎌야 한다." "결국 백인의 인종주의에 도전하지 않는 것은 곧 인종 질서와 그 질서 내에서 백인이 차지하는 위치를 지탱하는 것이다."(261-2)


※ '인종'을 '젠더'로 변환해서 현재 한국사회를 고찰하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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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젠더와 사회이동 - 한국사회 계층화의 성별 차이는 줄어들었는가? 한국학 총서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 4
신광영.김창환 지음 / 박영스토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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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 젠더와 사회이동: 문제제기


"학벌이 높은 청년들이 고소득 직업을 갖는 현실에서 능력(실력)이 있는 학생들이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능력주의(meritocracy) 이념이 팽배해 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 수준이 달라지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왔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리차드 아네손은 개인이 책임질 수 없는 요인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이익이나 불이익을 결과의 불평등에서 제거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보고, 이를 〈운 상쇄 평등주의(luck egalitarianism)〉라고 불렀다. 개인들이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의 결과에 따른 불평등이 아니라 자신들과 아무런 관게가 없는 요소에 의해서 만들어진 불평등은 부당한 불평등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학생들 사이의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부모의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유아기나 아동기 교육기회의 불평등에 따른 교육 격차는 아동이 책임질 수 없는 불평등이다."(11-2)


"사회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가장 약화된 곳은 교육의 영역이었다. 교육이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인 영역으로 인식되고, 자녀수가 줄어들면서, 교육투자와 교육영역에서 남녀 차별은 크게 약화되었다. 교육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서 성과가 결정되는 영역이다. 그 결과,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들의 교육 기회가 빠르게 확대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젊은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남성들의 교욱 수준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젠더 역전 현상'을 넘어서 '소년 위기(boy crisis)'라는 담론이 등장하였다. 전통적으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취학률과 학업성취에서 평균적으로 높았지만, 점차 이러한 상황이 역전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 하에서 소년들이 정신적으로 사회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병리적인 상황이 나타났다. 그 결과 미국에서 남학생들의 자살이 여학생들보다 무려 6배 정도 더 많고, 비행과 범죄를 저지르는 남학생들이 증가하였다."(19-20)


"그렇다면,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와 여성의 대학 진학률 증가 속에서 교육을 매개로 한 사회이동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 동일하게 나타는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족의 소득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인 남성들에게 교육은 직업 활동과 직접 연계된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남편이 경제력을 책임지고, 여성은 육아와 가사를 책임지는 남성가장가구 모형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90년대 이전까지 교육은 여성들에게 직업 활동보다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거나 높을 수 있는 배우자와 결혼을 하는 데 유리한 조건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비슷한 교육수준의 남녀가 결혼을 하는 동질혼(homogamy)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교육은 결혼을 매개로 한 사회이동의 한 요소로 작용해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고등교육은 배우자의 최고 교육수준에 영향을 미치지만, 역으로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정도는 매우 적었다."(29-33)


"대학교육 확대로 인하여, 대학 졸업자의 프리미엄은 크게 약화되었지만, 젠더에 따라서 그 효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아버지의 학력은 대졸 남성의 관리직과 전문직 진출에 별다른 차이를 만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가족배경이 아직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졸 여성들 가운데 아버지 학력이 높을수록, 관리직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에게 교육은 결혼과 관련하여 또 다른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제한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의 고등교육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졸 여성이 관리직이나 사무직에 종사하는 배우자를 맞을 가능성은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대졸자수와 대졸자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대졸자 프리미엄이 약화된 결과 나타나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34-5)


2 젠더 교육격차: 조용한 혁명의 실체


"(1980년대 들어서 여성들의 고등교육 진출이 급격히 늘어났지만) 사회적으로 고졸자들에게 제한적으로 허용된 대학 진학의 기회는 계급뿐만 아니라 젠더에 따라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당연히 기대되는 것처럼, 최근에 와서 큰 변화를 보였지만, 2008년까지도 남자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여고 졸업생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반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낮았던 1970년 남자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도 10.5%에 불과하였다. 그에 비해서,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더 낮아서 3.6%에 불과하였다. 1980년에 이르러서도 그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확대되어 남자 고등학생 대학 진학률은 16.8%이었던 반면, 여학생 대학 진학률은 여전이 5.6%로 낮은 수준이었다. 전반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시절에도,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남학생보다 훨씬 낮았다."(43-4)


"2000년대에 들어서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서는 젠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의 교육 영역에서 이루어진 젠더 격차의 해소는 소리 없이 이루어진 '조용한 혁명'이었다. 사회 전 영역 중에서 젠더 격차가 가장 빨리 사라진 영역이 바로 교육 영역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서구에서 여성의 고등학교 진학률이 남성을 능가하기 시작하였다. 교육 기회가 확장되면서, 여성들이 새롭게 확장되는 교육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던 것이다. 1970년대 서구의 교육 평등은 페미니즘의 대두라는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한국에서는 교육기회의 평등을 내세운 여성들의 투쟁의 결과라기보다 저출산으로 인한 자녀수 감소에 따른 인구학적인 변화의 산물이다. 평균적으로 자녀수가 줄어들면서, 딸만 있는 가정이 크게 늘었다. 그러므로 교육에 있어서도 딸과 아들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저출산에 따른 변화가 나타났다."(47-8)


"그러나 지난 25년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연령대인 35-44세의 남성과 여성의 학력별 경제활동 참가율 추이를 살펴보면, 학력을 불문하고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여성의 경우보다 훨씬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대졸 남성들이 가장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여준 반면, 대조적으로 대졸 여성들은 가장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여주었다. 대졸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 25년 간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반면, 고졸 여성의 경우는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경제활동 참가율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졸 여성의 경우, 여성 가운데 가장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여주었다. 대체로 소득이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구소득에 기여하기 위한 경제활동 참여로 중졸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게 나타났다." "여기에는 여성에게 학력이 취업 이외에 다른 선택지인 결혼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48-9)


"가부장제 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배제를 내포한 비공식적인 사회적 기제를 통해서 또한 공식적으로 제도화된 규칙을 통해서 남성과 여성에게 각기 다른 방식의 태도와 행동을 요구한다. 대학 진학에서 나타나는 전공 선택의 성별 차이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을 마친 이후에 이루어지는 취업이나 진학 등의 선택에서도 지속적으로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취업을 한 경우, 조직 내에서의 경력과 관련해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결과, 젠더, 교육과 사회이동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 속에서 상호 결합되어 하나의 독특한 '젠더 레짐'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젠더 레짐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법, 제도, 문화와 이데올로기로 구성된 사회 체계로 정의될 수 있다. 젠더 레짐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성에 따른 역할과 행위규범을 포함한다."(63)


"젠더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개인과 가족의 생애 과정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교육에서 일자리로 이동하는 이 과정도 젠더에 의해서 크게 달라진다." "고용 격차는 물론이고, 1년 이상 직장 유지비율을 보더라도 남성과 여성은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의 경우 직장 유지비율은 82.2%로 여성의 경우 75.4%보다 6.8% 포인트 더 높았다. 이러한 사실은 취업을 한 이후 대졸자 여성들의 경우가 대졸자 남성들에 비해서 높은 고용불안정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여성의 결혼과 출산에 따른 경력의 변화는 신입사원 선발 과정에서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뿐만 아니라 취업 이후에서도 이러한 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업무배치와 승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임금이 낮은 직종이나 직장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크고, 취직 이후에도 경력이 고려되지 않은 일자리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64-8)


"그렇다면, 한국에서 고학력 여성들의 임금은 고학력 남성과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나?"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GOMS) 자료를 분석한 결과, 먼저 전체 월평균 임금과 비교해서 전공에 관계없이 모든 대졸 여성들의 평균 임금이 대졸자 평균 임금보다 낮게 나타났다. 2006년 남성 대졸자의 초임은 196.88만원이었고, 여성의 월평균 초임은 남성의 73.7%에 해당하는 144.90만원에 불과하였다. 의·약학 계열인 경우에도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전체 대졸자 월평균 임금보다 낮았다." "교육계열 졸업자들의 경우, 여성들의 취업률이 남성들보다 더 높았지만, 월평균 임금은 남성에 비해서 훨씬 낮았다. 교육계열 남성 졸업자의 평균 임금이 194만 4천원이었지만, 여성 졸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153만 5천 7백원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대졸 여성들이지만, 월급은 상대적으로 낮아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68-70)


3 성별전공분리와 20대 대졸자 성별소득격차


"노동경력 초기에 연령을 통제하지 않은 성별 효과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20대 때는 1~2년의 작은 연령 격차에도 성실성, 심리적 안정성 등 인간적 성숙도에 큰 차이가 있고, 이러한 차이가 노동시장에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설사 노동시장에 들어온 대학 졸업자 개인의 성격이 고용주에게 직접 관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인사담당자들이 경험적으로 이러한 경향을 알고 있다면 채용 시 연령에 기반한 통계적 차별(statistical discrimination)을 할 수 있다. 고용주가 차별의 의도가 없지만, 누가 더 오랫동안 열심히 일할지, 누가 더 성숙한지 지원자 개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이 어린 여성보다 2~3살이 많은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을 말한다. 복학생 출신의 남성을 선호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연령과 군복무가 인간적 성숙도의 대리변수로 작동하는 것이다."(79-80)


"다른 가능성은 연장자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의 연령차별주의(ageism)가 성차별 기제의 하나로 작동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직접적 차별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지만, 연령차별주의는 한국사회에서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대졸자의 연령에 성별로 체계적인 격차가 있기 때문에 연령을 이용하여 노동시장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연령과 군복무가 성숙도의 대리변수가 아니라 여성을 배제하기 위한 정당화 기제로 이용된다. 이 두 가지 가능성을 엄밀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연령 효과가 인간적 성숙도의 대리변수로서 작동한다면, 연령이 같은 경우 성별 격차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반해 연령효과가 성차별기제의 하나로 작동한다면 고연령에서 성별소득격차가 상대적으로 더 높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여성의 고연령은 인간적 성숙도의 척도가 되지 않고 남성의 상대적 고연령만 성숙의 척도로 작용하는 것이다."(80)


"각 연령별로 (학교, 전공, 자격증 등의) 모든 인적자본 변수를 통제한 후 여성의 불이익 정도를 측정해보면, 여성의 불이익은 21, 22세를 제외하고 통계적으로 유의하며, 불이익 정도가 연령에 따라 높아진다. 인적자본을 통제한 후 23세에 여성의 소득불이익은 동일 연령 남성에 비해 평균 14.6%지만, 29세가 되면 불이익은 21.8%로 커진다. 즉, 같은 학교 같은 과를 졸업했더라도 남녀가 연령이 같으면 20대 중반보다는 20대 후반에서 성별소득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대학유형에 따라 나눠보면 4년제는 29세 때 동일 연령, 동일 인적자본 남성 대비 여성의 소득 불이익이 22.1%이고, 2년제는 26.7%에 이른다. 이러한 결과는 연령 효과가 성별과 관계없이 중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차별의 한 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즉, 경력 단절 이전 20대 청년층에서도 여성이 남성 대비 노동시장에서 크게 불리한 위치에 있고 그 원인이 여성차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88-9)


"성별전공분리보다는 같은 전공 내 성별 격차가 전체 성별소득격차를 낳는 주원인이다. 대부분의 성별소득격차는 성차별기제로 작동하는 연령차별주의에 근거한 남성 지원자 선호와 그에 따른 민간부문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할당의 여성차별로 설명된다. 법적 통제가 강한 정부와 교육 부문으로 노동시장을 한정하면 성별소득격차는 2.6%로 크게 축소되고, 성별소득격차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같은 조건의 남성 대비 여성불이익은 엘리트 대학 출신 여성이 비엘리트 대학 출신 여성보다 더 크게 겪는다. 2년제 대학 출신 여성의 소득불이익은 16.9%지만 상위 10위권 출신 여성의 불이익은 21.7%에 이른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차별이 만연한 상태에서 여성의 경력단절 완화에 중점을 둔 정책은 한계가 있다." "성별소득격차의 축소를 위해서는 여성의 경력단절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진입 초기의 여성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는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100)


4 교육, 결혼과 사회이동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가족체제에서 교육은 남성의 경제활동과 직접 관련을 맺는다. 남성이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과 사회 이동과의 관계에서 여성의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서구 사회와 다르게 기능한다. 한국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가구모형인 남성 가장 가구 모형(male breadwinner model)이 강하게 남아 있다. 남성이 가장으로서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며, 가족 내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남성에게 교육은 직업을 얻고, 결혼하여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는 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여성들의 경제적 책임이 강조되지 않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교육은 주로 자녀 양육이나 사회적 자본이라는 또다른 지위재(positional goods)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여성에게 강조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는 직업과 관련된 인적 자본이 아니라 현명한 어머니의 자질로서 학력을 강조하였다."(115-7)


"성별 교육수준에 따른 직업분포(1998년)에서 알 수 있는 점은 직업의 분포가 학력에 따라 크게 달라질 뿐만 아니라, 성별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대 졸(2~3년제 전문대졸) 이상의 고학력 남성의 경우, 48.99%가 관리직/전문직으로 진출하였고, 24.14%가 사무직으로 진출하였다. 반면 고학력 여성의 경우 60.89%가 관리직/전문직으로 진출하여, 관리직/전문직으로 진출하는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았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여성들이 관리직보다는 전문직으로 진출하여, 조직 내에서 권위를 갖는 직업보다는 전문성에 기초한 직업으로 진출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8년 대졸 여성의 관리직 비율은 1.36%로 남성 4.37%에 비해서 낮았으나, 전문직 비율은 34.42%로 남성 31.56%에 비해서 더 높았다. 이것은 여성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배제가 강한 조직문화 대신에 자신의 전문성에 의해서 평가를 받는 직업을 선호함을 의미한다."(122-4)


"교육이 여성들의 결혼 조건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여 동질혼의 비중이 높은 한국사회의 특징은 여성들에게도 가부장제 결혼관이 강하게 내면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가부장제 가족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고학력 여성들이 저학력 남성들과 결혼하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가부장제적 의식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강하게 내면화되어 있어서, 많은 여성들은 당연히 남성의 학력이 여성들과 같거나 혹은 더 높아야 한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수준이 낮은 배우자와 결혼이 이루어지는 강혼(降婚)은 한국 여성들에게서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점은 OECD 회원국들의 교육 수준별 부부 분포와 비교하면 더욱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부부 모두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비율은 2008년 주요 OECD 회원국에서 13.2%에 불과하였고, 본인의 학력이 배우자의 학력보다 높은 경우(강혼)는 남성의 경우 19.2%(한국 28.15%, 2010년 기준), 여성의 경우 15.4%(한국 8.33%)이었다."(133)


5 한국에서 교육은 성별에 따라서 어떻게 다르게 작동했는가?


"적어도 가족과 학교 수준에서 젠더와 관련하여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지만, 교육과 노동시장에서의 젠더는 여전히 전통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대학 전공 선택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은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여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이나 예술에 집중되어 있고, 수학, 과학과 공학을 선택하는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등교육에서 오랜 기간 동안에 형성된 젠더화된 전공 이미지가 아직까지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학 졸업 후 노동시장으로의 진출과 관련해서도 큰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 않다. 여학생들의 경우, 경제활동참가율이 아직도 낮은 수준이고, 경제활동에 참가한 이후,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경우에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출산 이후에 직장을 계속해서 다닐 수 있는 여건이 제도적으로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출산 후 직장을 유지하는 비율은 대단히 낮다."(145-6)


"대학교육의 확대로, 대학 졸업자의 프리미엄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대학의 프리미엄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나타났다. 대졸자가 독점했던, 관리직과 전문직에서 대졸 남성의 비율은 크게 줄어들었다. 대학교육이 확대되면서 가족 배경의 효과도 약화되었다. 남성의 경우, 아버지의 학력은 대졸 남성의 관리직과 전문직 진출에 별다른 차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가족 배경이 아직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 여성들 가운데 아버지 학력이 높을수록, 관리직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의 고등교육은 (배우자의 학력이 더 높은) 승혼(昇婚)을 통한 상승이동 수단으로 기능한다. 교육은 여성들에게 결혼을 통해서도 사회이동을 경험하게 한다. 다만 대졸자의 지속적인 양적 증가로 대졸 여성이 관리직과 사무직 배우자를 맞을 가능성은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47-8)


"그 대신에 대학졸업자가 아니라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가 하는 〈대학의 수준〉이 더 중요해지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학입시 경쟁이 아니라 특정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학생들의 경쟁이 가속화되는 이유이다. 여학생들의 경우에도,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노동시장 진출뿐만 아니라 결혼에서도 학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은 여성들에게는 더 중요해졌다. 이런 점에서 21세기 한국에서 가시화된 교육 부문의 '젠더 역전 현상'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과 여성 배제적 노동시장 사이의 간극은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한국의 가부장제에 더 강한 불만과 저항을 낳게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가부장제 사회에서 동질혼을 통한 대졸자 여성이 누리는 결혼에서의 프리미엄이 유지되는 한, 고학력 여성들의 불만과 저항은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주된 이유는 고학력 여성들에게는 결혼이라는 탈출구가 있기 때문이다."(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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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프리미엄 - 한국에서 대학교육의 노동시장 가치는 하락했는가? 한국학 총서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 3
김창환.변수용 지음 / 박영스토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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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교육과 노동시장의 관계는 왜 중요한가?


"잘 알려져 있듯 지난 반 세기 동안 한국 교육은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의 교육 수준은 급속히 증가하였다." "1960년에는 25~64세의 핵심노동인구 중 1.2%만이 4년제 대학 학위를 소지했지만, 2015년에는 그 비율이 31.2%로 무려 25배 증가하였다. 남성은 2.3%에서 35.1%로 15배 증가하였고, 여성은 0.3%에서 27.4%로 90배가 넘게 증가하였다. 2년제 대학까지 포함하면 2015년 기준 대학 학위를 소지한 노동인구의 비율이 거의 절반(47.2%)에 달한다. 2020년에 실시된 인구총조사에서는 대학 학위 소지자의 비율이 전체 노동인구의 과반수를 넘어갈 것이 확실하다. 25~34세의 청년층으로 한정해도 한국의 교육팽창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대학 학위자의 비율이 1960년의 2.4%에서 2015년에는 48%로 20배 이상 증가하였다. 2년제 대학까지 포함하면 대학 학위를 취득한 청년층의 비중은 2015년 기준 77%에 이른다."(9-10)


"이러한 급속한 교육팽창은 교육, 더 구체적으로는 대학 학위의 상대적 가치를 떨어뜨렸는가?" "교육은 그 자체로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지위재(positional goods)이기도 하다. 지위재로서의 대학 교육의 가치는 낮아졌다. 학력 수준 측면에서 1960년에는 대학 교육을 받으면 상위 2.3%의 엘리트에 속했고, 1985년까지 상위 12.5%의 상층에 속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대학 교육이 엘리트 교육의 상징이 아니다. 94%의 핵심노동인구가 고졸 미만인 1960년대에는 고등학교는 그야말로 고등(High) 교육을 의미했다. 하지만 전체 노동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1980년대 이후 고등학교는 더 이상 고등교육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고등(High) 교육을 넘어 더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최고등 교육(higher education)〉이라고 칭해진 대학 교육은 21세기 들어 더는 엘리트 교육이 아니게 되었다. 대학 교육은 대중 교육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였다."(10-1)


"하지만 지위재로서의 대학 학위의 가치 하락이 교육이 노동시장 성취에 끼치는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교육의 팽창은 경제 성장과 직업 구조의 고도화를 수반한다. 직업 구도의 고도화는 대졸자가 선호하는 직업의 확장이다. 직업 구조의 고도화가 대졸자의 증가와 같은 속도로 이루어진다면 직업 지위의 획득에서 대학 학위의 가치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만약 직업 구조 고도화의 상대적 속도가 대졸자의 공급 확대보다 빠르다면, 지위재로서의 대학 학위의 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직업 획득에서 대학 학위의 상대적 가치는 오히려 증가한다. 반대로 직업 구조 고도화의 상대적 속도가 대졸자의 공급 확대보다 느리다면, 대학 학위의 상대적 가치는 하락하고, 대졸자가 괜찮은 직업을 가질 확률은 하락하게 된다. 대학 학위의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대학 졸업자 공급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11-3)


2 교육과 노동시장 관련 이론


# 교육과 노동시장 성과 간의 상관 관계

1. 인적자본론(human capital theory) : 더 많은 교육을 받은 노동자가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이유는 교육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 때문이며, 직장에서 훈련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빨리 습득할 수 있는 학습능력 자체가 교육을 통해 취득된다.

2. 선별 이론(screening theory) : 교육은 능력 있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개인을 선별하여 승인한다. 즉, 교육은그 자체로 개인의 능력을 제고시키지 않지만,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기능한다.

3. 학벌주의(credentialism) : 학벌주의는 학벌의 재생산이 (생산성과 연관된) '능력'보다는 계층적으로 우위에 선 집단의 문화자본을 재생산하는 기제이고, 이 학벌을 자본주의의 계습 재생산과 불평등 정당화를 위해서 활용한다고 가정한다.


# 소득불평등 증가의 요인

1. 숙련편향 기술변화론 : 정보·통신 등의 기술발전이 숙련편향적(이때의 숙련은 학력과 인지능력, 경험의 노하우 등을 포괄함)으로 이루어져서 숙련노동자의 생산성은 급격히 상승한 데 반해, 비숙련노동자의 생산성은 정체되어 불평등이 증가했다.

2. 수요공급론 : 기술변화가 항상 숙련노동자의 수요를 늘리는 것은 아니다(러다이트 운동). 다만 20세기 전반의 기술발전은 숙련편향적이어서 숙련노동자의 상대적 수요를 증가시켰고, 상대적 공급의 증가가 느렸기 때문에 소득불평등이 증가했다.

3. 지위재로서의 교육 : 교육은 교육받은 사람의 절대적 가치를 높이는 것(=인적자본론)에 그치지 않고, 교육받은 사람의 상대적 가치(=지위)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교육팽창과 더불어 지위재로서의 교육의 가치는 하락한다(선별이론과 밀접한 관련성).

4. 사회적 관계론 : 학력별 노동자의 생산성 변화가 아니라 노동자와 고용주, 노동자 내부에서의 사회적 역학의 변화(노조 협상력 약화, 내부 노동시장 실종 vs 개별 노동자의 소득 결정 관여 정도 확대)로 협상력이 높은 노동자의 소득이 올라간다.


3 교육과 직업: 대학 졸업장의 직업 가치는 줄었는가?


"직업 지위 취득의 대학 교육 가치 변화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의 통시적 변화이다. 통시적 변화를 보여주는 계수값이 양의 값이면,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이 증가한다는 의미이고, 음의 값이면 감소한다는 의미다. 분석 결과 준거집단(=고졸이하)의 값은 -0.0012이다. 이는 고졸, 남성의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이 매년 0.12%씩 감소했다는 뜻이다. 이에 반해 4년제 대학 졸업자의 통시적 변화는 0.002로 양의 수이며 통계적으로 유의하다. 고졸 남성에 비해서 4년제 대졸 남성의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이 매년 0.2%씩 더 커졌다. 고졸자 대비 상대적 변화가 아닌 대졸자의 절대적 변화를 계산하면 연간 0.08%(=-0.0012+0.0020)로 대졸 남성의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이 증가하였다. 매우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이 효과는 장기적으로 누적된다. 이처럼 남성의 경우 직업 취득 면에서 4년제 대학 교육의 상대적 가치가 상승하였다."(61-2)


"여성의 경우는 남성과 다르다. 성, 학력별로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의 10년치 변화를 계산하면, 여성은 4년제 대졸 학위 소유자의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이 10년 평균 2.8%포인트씩 감소하였다. 고졸 여성의 10년 평균 취득 확률 감소폭이 0.1%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여 상당히 큰 폭의 감소이다. 이렇게 감소 폭이 큰 이유는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고학력 여성의 선택편향 효과가 변화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직업 위계가 높은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만이 노동시장에 참여했다면, 지금은 더 많은 고학력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시장 선택편향이 완화되었다. 달리 말해, 대학의 프리미엄이 낮아진 듯 보이는 이유는, 소수 엘리트만 노동 시장에 참여하다가 다수 대졸자가 노동시장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과거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대졸 여성의 고졸 대비 상대적 우위가 지나치게 압도적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었다."(62)


"위의 분석은 학력별 관리/전문/사무직 취득 확률의 변화가 선형적이라는 가정하에 장기적 평균적 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하지만 고등교육 팽창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학력별 관리/전문/사무직 취득 확률 변화가 선형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집중된 비선형적 변화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4년제 대학 졸업 남성을 제외한 모든 그룹에서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이 낮아졌다. 1960~1975년과 비교해서 2005~2015년에 2년제 대학 졸업자의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이 남성은 30.8%에서 18.2%로 낮아졌고, 여성은 61.2%에서 33.5%로 급감하였다. 남녀 모두 40% 이상 폭락하였다. 고졸자의 경우는 남성은 11.5%에서 5.2%로 절반 넘게 떨어졌고, 여성은 22.6%에서 7.0%로 70% 폭락하였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남성만이 예외적으로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이 미약하나마 높아졌다."(64)


"성별로 학력별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의 변화가 다르지만, 대학 학위의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 가치를 따져보면 변화의 방향과 정도에서 성별 격차가 없다. 1960~1975년에 4년제 대학 졸업 남성은 고졸자보다 3.4배 더 관리/전문직에 종사했는데, 2005~2015년에는 그 비율이 7.8배로 늘었다. 여성은 1960~1975년에 4년제 대졸자가 고졸자보다 3.0배 더 관리/전문직에 종사했는데, 2005~2015년에는 그 비율이 7.5배로 늘었다. 비록 여성 대졸자의 관리/전문직 절대적 취득 확률은 낮아졌지만, 4년제 대학 졸업의 고졸 대비 상대적 가치는 남성과 비슷하게 상승하였다. 정리하자면, 4년제 대학 교육의 상대적 가치는 남녀 모두 높아졌고, 절대적 가치는 남성만 높아졌다. 여성의 절대적 가치는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남성보다 관리/전문직 취득 확률이 높다(2005~2015년 기준 남성 40.8%, 여성 52.8%). 이에 반해 2년제 대학의 절대적 가치는 남녀 모두 크게 낮아졌다."(64-5)


4 한국 사회에서 교육의 소득 프리미엄은 줄었는가?


"한국은 정보기술 산업이 급속히 발전하였고, 기술발전을 위한 투자(즉 R&D 투자)도 국민총생산 대비 그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여기에 숙련편향 기술변화의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국가이면서, 기술변화와 동시에 교육 팽창이 가장 크게 일어난 국가이기도 하다." "출생연도별로 학사 이상 학위 취득 비율을 계산한 박현준의 분석에 따르면 1950년도 출생자 중 남성은 14%, 여성은 5%만이 대학 졸업장을 취득하였는데, 1980년도 출생자는 남성은 42%, 여성은 40%가 대학 졸업장을 취득하였다. 불과 한 세대만에 남성은 대학 졸업자 비율이 3배, 여성은 8배 증가하였다." "따라서 한국은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교육 프리미엄 상승 요인(=급속한 숙련편향 기술 변화)과 하락 요인(=교육 팽창)이 모두 강하게 나타난다. 한국에서 교육 프리미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필연적인 논리적 귀결이 아니라 데이터를 분석해 확인해야 할 경험적 질문이다."(82-4)


"임금구조조사, 가계동향조사, 노동패널 세 가지 자료의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한국에서 교육 프리미엄은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확실히 하락하다가 그 이후에는 전반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 숙련편항 기술변화 가설에서 예측하듯 교육의 소득 프리미엄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교육팽창 가설에서 예측하든 교육의 소득 프리미엄이 확실히 줄어든 것도 아니다. 한국의 전반적 불평등 변화는 교육 프리미엄의 변동이 아니라 같은 학력 내 내부 불평등의 변화에 의해서 추동되었다. 전체 불평등 중 교육이 설명하는 비중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유는 교육 수준 간 소득 격차 확대 때문이 아니다. 1990년 이후 대학 교육을 받은 코호트가 대거 핵심노동인구로 진입하여 노동자의 교육 구성이 바뀌어서 교육의 설명력이 늘어난 듯 보일 뿐이다. 각 출생 코호트 내부의 불평등을 보면 교육 프리미엄이 불평등을 설명하는 정도는 줄어들었다."(114-5)


"숙련편향 기술변화 가설의 예측과 달리 한국의 교육 프리미엄이 1980년대 이후 크게 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이후 교육 수준별 소득 격차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급격한 불평등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학력 간 불평등이 그만큼 증가하지도 않았다. 가계동향조사를 이용한 분석에서는 학력 간 격차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교육 프리미엄의 증가가 불평등 증가의 한 요인이 되었던 미국 등과 달리 한국의 불평등 증가를 교육 수준 간 격차의 확대로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의 사례는 기술변화가 필연적으로 불평등 상승을 초래한다는 기술결정론에 대한 반례가 될 수 있다. 기술변화는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경험한다. 반도체, 휴대폰, 전자기술 개발과 공급에서 한국은 전 세계의 선도 국가이다. 전자기술혁명의 최첨단에 서 있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숙련편향 기술발전의 가장 중요한 지표인 교육 프리미엄의 증가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115)


"여기에 더해, 교육 프리미엄 변화가 남녀별로 차이를 보이는 현상도 주목할 점이다. 남성 노동자는 동일 학력 내의 불평등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증가하였지만 여성 노동자는 그러한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 숙련편향 기술발전 가설이 맞다면 성별로 교육 간 소득 불평등의 방향이 같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남성 노동자는 교육 간 소득 불평등이 줄어들고 교육 내 소득 불평등이 증가한 데 반해, 여성 노동자는 교육 간 소득 불평등은 줄어들고, 교육 내 소득 불평등은 큰 변화가 없었다. 남성 노동자의 경우 교육이 전반적 소득을 결정하는 정도가 시간이 가면서 줄어들었다. 교육 프리미엄은 줄지 않았지만 교육의 소득 결정력은 줄어들었다는 것은, 정규직, 비정규직 여부 등 고용형태나 기업규모, 노동시간, 임금협상 등 노동시장 내부 요인의 결정력이 교육 프리미엄보다 상대적으로 커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115-6)


5 세대 불평등과 교육 프리미엄: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청년층의 노동시장 성과는 왜 다른 세대보다 낮은가?


"청년층 고용 악화는 청년층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은 다른 어느 사회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사회 복지의 필요성은 커진다. 한국 사회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복지 체제의 확립이 늦어졌다. 복지의 필요성은 커지는데, 세대 간 불평등의 확대는 젊은 세대의 복지 체제에 대한 저항감을 키운다. 일부에서는 복지 혜택을 젊을 때 적립한 금액에 운영수익을 더해서 나이들어 돌려받는 "적립식"을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복지는 당시 노동 세대가 낸 보험료로 당시 노인 세대가 지급받는 "부과식"으로 운영된다. 노동하는 세대가 현재 고연령층의 복지 비용을 대면, 나이들어 다음 세대로부터 복지 혜택을 받는다. 따라서 사회복지는 세대 간 타협의 산물이다. 세대 간 불평등의 심화는 한국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복지 체제로의 전환을 막고, 고령화의 부정적 효과를 상쇄시키기 위한 정책적 선택을 제한한다."(121-2)


# 세대 간 불평등을 설명하는 이론

1. 세대 갈등론(착취론) : 기성 세대가 기득권을 형성하여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에 장벽을 설치하고 노동시장의 경쟁을 낮춘다는 논리. 사회적 봉쇄가 야기하는 경력 초기의 불이익이 이후에도 더 큰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마태효과가 작용하여 누적적 불이익을 경험하게 된다.

2. 지체 진입론 : 청년층이 생애사적으로 첫 일자리와 평생소득의 상관관계를 감안하여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 전까지 노동시장 진입을 미룬다는 논리. 경쟁을 통한 일자리 선별이 완성되는 30대 이후에는 노동시장 진입이 완료되어 소득수준과 소득증가율이 과거와 다름없게 된다.


"20대와 30대 초반의 고용률과 소득의 변화를 코호트별─1971-75년생, 1976-80년생, 1981-85년생의 25-29세와 30-34세 구간─로 추적한 결과 한국의 20대 청년층 고용악화는 교육의 효용극대화를 위한 노동시장 진입을 미루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소득의 측면에서 신규 세대의 교육 효과가 이전 세대보다 낮아지지 않았다. 대신 교육팽창으로 인한 경쟁 격화로 20대 청년층의 고용률이 낮아지고, 노동시장 성취가 약화되었다. 더 이상 노동시장 진입을 미룰 수 없는 30대가 되면, 고용률이 추세적으로 상승한다. 이전 세대와 달리 최근 코호트가 노동시장 진입을 미룰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20대 청년층이 속한 가구의 소득 상승이다. 한국은 혼인 전까지 성인도 독립 가구를 형성하지 않는 비율이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보다 높다. 이러한 문화가 20대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지체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148-9)


"일부에서는 80년대생까지는 교육의 효과가 줄어들지 않았지만 90년대생은 다를 수 있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90년대생에서 교육의 효과가 실제로 줄어들었는지, 90년대생의 계층지위 획득 기제가 이전 세대와 다른지는 90년대 중반생이 30대가 되어야 알 수 있다." "청년층의 일자리 문제는 최근 세대에서 교육의 효과가 이전 세대보다 낮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교육의 개인적 효과(=긍정적 교육 프리미엄)와 집단적 효과(=경쟁 격화) 간의 충돌 때문에 발생한다. 한국에서 청년층 노동시장 문제 해결은 노동시장 고도화를 통한 관리/전문/사무직 일자리의 구조적 확대를 통해서 가능하며, 그 외에 단기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청년몰 등 청년층의 창업을 통한 일자리 해결 방식은 지방자치체의 홍보를 위한 이벤트성 행사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산업 구조 고도화를 통한 관리/전문직의 수요 창출이 가장 확실한 청년 대책이다."(149-50)


6 교육 프리미엄의 국가 간 비교


"6장에서는 PIAAC 자료를 사용하여 한국, 미국, 일본 성인의 소득과 직업에서의 교육 프리미엄에 있어서 세대 내 차이를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한국 남성의 소득에서의 교육 프리미엄은 55-65세 연령대를 제외하고 미국보다 낮았지만 일본보다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에서의 교육 프리미엄의 경우 25-34세 남성을 제외하고 성별과 연령과는 상관없이 한국이 가장 높았다. 다시 말해, 한국은 25-34세 남성을 제외하고 고졸 학력 대비 4년제 대졸 이상 학력의 관리직/전문직 비율이 미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사회에서 직업에서의 교육 프리미엄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높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직업에서의 교육 프리미엄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증거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 직업 위세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168-70)


# PIAAC : OECD 회원국 16-65세의 성인을 표본으로 삼아, 언어능력, 수리력뿐 아니라 경제활동, 임금, 교육훈련 경험 등 다양한 영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대규모 조사


7 결론: 여전한 교육 프리미엄 - 교육 개혁으로 노동시장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가?


"본문의 결과를 종합하면 한국 노동시장에서 교육, 특히 대학 교육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 급속한 교육팽창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육의 가치는 21세기에도 유지되었다. 오히려 미약하나마 증가하였다." "여기서 찾을 수 있는 핵심적인 결론 중 하나는 〈가족배경-교육-사회경제적 지위 성취〉 경로 모형에서 가족배경(Origin)이 사회경제적 지위(Destination)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O→D 세습이 강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간접적으로 교육을 통해 계급을 재생산하는 O→E→D의 경로에서 첫 번째 단계인 O→E의 연결 강도가 강화되었다는 증거도 없다. 이에 반해 교육을 받은 후의 노동시장 성취인 E→D의 경로는 과거와 다름없이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고, 계급사다리가 무너져, 금수저─흙수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현실과 다른 인식이 널리 퍼졌을까?"(182-3)


"1960년대 10대였다가 학사 학위를 취득한 거의 모든 대졸자가 부모보다 학력이 상대적으로 상승하였다. 아마도 자신을 개천용으로 여길 것이다. 부모의 학력과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신의 학업 성취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2015년에 40대는 절반 정도가 대학 교육을 받았다. 그 자녀들이 대학 교육을 받아도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의 학업 성취에 끼치는 영향이 커졌기 때문이 아니다. 눈부신 고도성장과 빠른 교육팽창을 경험한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계층 구조의 급속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사회의 구조적 변화로 현 시점에서의 사회구조는 과거와 크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회이동에 대한 집단의 기억은 과거의 사회구조를 분모로 하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바뀐 것은 개천에서 용이 나올 확률이 아니라 개천의 양이다. 이제는 개천이 커다랗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으로 변하였다."(184)


"노동시장에 끼치는 교육 효과가 줄어들었다는 인식도 대졸자의 증가로 비교집단이 변화한 결과이다. 1960년대 25-34세 청년층은 4%만이 대학 교육을 받았기에 96%의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또래집단과 자신을 비교한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좁고 고립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대졸자가 고졸이나 그 미만 노동자와 자신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친구와 친척 중에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또래집단이 많았다. 하지만 2015년 기준으로 25-34세 청년층은 77%가 대학 교육을 받았다. 4년제 대졸자만 48%에 이른다. 비교집단이 대학 교육을 받는 또래 집단이 되고, 경험적으로 모든 격차가 대졸자 내부의 격차로 해석되기 쉽다. 절대 다수가 대학 교육을 받았기에 대졸자와 대졸 미만 노동자 간의 상호작용은 크게 줄었을 것이다. 대학 교육의 절대적 보상이 줄어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육의 상대적 보상은 심리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느끼게 된다."(184-5)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교육은 더 많은 개인적 혜택과 사회적 이점이 있다. 미래의 노동시장에서 교육의 중요성이 축소될 가능성은 낮다. 더 많은 교육이 계층 격차를 반드시 줄이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교육을 제공할 때 소득 하위계층도 교육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적어도 더 많은 교육이 노동시장에서의 계층 격차를 키우지는 않는다. 교육은 가족배경이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O→D(Origin→Destination) 연계를 축소시키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사회경제적 지위가 결정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대학의 팽창과 함께 위대한 평등의 촉진자(The Great Equalizer)로서의 대학의 기능이 과거보다 약화되었는가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이지만,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계층에서 보다는 대학 교육을 받은 계층에서 가족 배경의 영향이 작은 것은 확실하다. 교육은 다다익선이다."(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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