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다시 쓰기 - 다중인격과 기억의 과학들
이언 해킹 지음, 최보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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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다중인격은 여러 방식으로 지식의 대상이 되었다. 사진은 다중성의 초기(1870~1880년대) 수사법 중 하나였다. 이 책의 종장으로 가면서 내가 초점을 맞춘 주제는, 기억에 관한 지식으로 알려진 새로운 과학이 영혼을 세속화하기 위해 어떻게 철저히 의도적으로 창조되었는지가 될 것이다. 그전까지 과학은 영혼의 연구에서 배제되어왔다. 기억에 관한 새로운 과학들은 서구의 사상 및 실천에서 그 질긴 정수精髓를 정복하기 위해 출현했다. 그것이 내가 언급한 서로 다른 모든 지식과 수사를 '기억'이라는 주제 아래에 연결시키는 결속체이다. 가족이 붕괴할 때, 부모가 아이를 학대할 때, 근친강간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파멸시키려 할 때, 우리는 영혼의 결함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영혼을 지식으로, 과학으로 대체할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적인 전쟁은 영혼이라는 명시적 영역 안에서가 아니라,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전제된, 기억의 영역에서 벌어진다."(23-4)


#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영혼은 불멸하는, 본질적인 단 하나의 것이 아니라 한 개인에게 존재하는 여러 측면(품성, 이해, 사랑, 열정, 시기, 후회 등)의 이상한 혼합물을 말한다.


1장 다중인격은 실재하는가? 


"다중인격은 실재하는가, 아닌가?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독자들 누구도 이 질문은 하고 싶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어떻게 개념들의 이러한 설정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 관습, 과학을 만들고 주형하기에 이르렀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두 가지는 여전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억과 정신적 고통이다. 이 질환이 하나 이상의 인격들과 관련되건 아니면 하나보다 적은 인격의 파편들이건 간에, 또 해리든 와해든 간에, 이 장애는 어린 날의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으로 추정된다. 그때의 잔혹함의 기억은 숨어 있지만, 인격의 진정한 통합과 완치를 위해서는 기억해내야만 한다. 다중인격과 그 치료법은, 기억의 본질에 관한 축적된 지식을 통해서 그 괴로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가설에 기반한 것이다. 나는 다중인격에 대한 신념을 의문시하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옹호자와 반대자 모두가 기억이 영혼의 열쇠라는 가정을 왜 당연시하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40-1, 46)


2장 다중인격이란 어떠한 걸까? 


"많은 다른 인격들은 본 인격 안에 또 다른 인격들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특히 치료를 시작할 때 자신이 다중인격임을 부인하는 본 인격이 더욱 그러하다. 반면 어떤 다른 인격은 다른 인격들의 존재를 알고, 서로 잘 알기도 하고, 말도 나누고, 합동해서 활동하기도 한다. 이는 공共의식 혹은 공재共在의식이라고 불린다. 다른 인격들은 서로 말싸움하고 으르렁거리거나 서로 위로하기도 한다. 한 다른 인격이 등장하면 또 다른 인격은 왼쪽 귀에서 저 인간은 얼마나 얼간이 같은지 모르겠다고 투덜댄다. 많은 치료사들은 여러 다른 인격들이 서로를 다 아는 완전한 공존은 통합에 필요한 단계이므로 다른 인격들을 서로 소개시키려 노력한다. 진단을 받자마자 다른 인격들이 튀어나온다는 말은 아니다. 한 임상가가 말하기를, 다중인격을 치료하는 일은 담요 아래에 숨어 있는 고양이들이 싸움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많은 소리와 움직임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고양이 하나하나를 알아보기는 어렵다고."(57)


3장 다중인격운동 


"다중인격운동의 본질적 요소는 아동학대에 관한 미국의 강박과 그에 대한 감응, 혐오, 분노, 공포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다중인격운동의 일대기를 연 것은 바로 1973년에 출간된 《시빌》이다. 《시빌》은 코넬리아 윌버가 시빌을 치료한 사례보고이다." "윌버의 작업은 아동기의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찾으려 했다는 것에서 다중인격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었다. 그녀는 시빌의 다중성을 어머니의 심술궂고 징벌적인 그리고 흔히 성적인 폭력에서부터 추적해 들어갔다. 아동학대와 가정 내의 변태적 성생활 사이의 연관성에 관해 대중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시빌의 어머니의 행동은 학대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물론 집안에서 발견된 고문 도구라는 것이, 당시에는 가정집에 흔히 비치되는 잡화라서 그 물건의 존재만으로 가학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이 출간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화된 후에는 그 실재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76, 79-82)


"돌이켜보면, 랠프 앨리슨은 최초로 다중인격장애 치료계획안을 고안한 명예로운 선구자로서, 이는 과학적으로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다중인격운동을 점화시킨 것은 바로 그가 행한 홍보활동이었다. 1970년대 후반, 미국정신의학협회 연례총회에서 다중성 워크숍을 기획하고, 본 프로그램에서 발표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였다. 그는 다중인격 정신치료를 위한 두 가지 소책자를 유포했다. 그가 제안한 내재적 자아 조력자Inner Self Helper(ISH)라는 개념은 적어도 초기에는 일부 주류 정신과의사들에게 신중하게 받아들여졌다. 그가 말한 개념에서, 조력자는 현대 다중인격이론이 그려낸 다른 인격들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어린 날 트라우마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조력자는 증오할 줄을 모른다. 조력자는 오직 사랑만 느끼고 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다." "앨리슨은 ISH란 〈실제로는 양심〉이라고 했다. 그는 환자에 관해 더 잘 알기 위해 조력자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87-8)


# 차후에 앨리슨은 잔혹한 강간-살해 범죄를 저지른 마크를 연구한 후 '선한 내재적 조력자 가설'을 폐기한다. 


4장 아동학대 


"아동학대는 다중성을 이해가 될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최근의 이론에 따르면, 대부분의 다중인격은 어린아이일 때 해리dissociation가 시작된다. 이 원인론이 임상경험으로 충분히 확인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의 신념이 되었는지를 알아보려면, 아동학개 개념의 궤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생각하는 즉시 이해되는 명료한 개념도 아니고, 사례에 주목해도, 자신의 기억을 들여다봐도 그렇듯 명료하게 떠오르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피해자 쪽에서는, 학대 경험이 자명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사건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운 일이었을지와 상관없이, 사회적 의식이 고취된 뒤에야 비로소 '아동학대'로서 경험되고 기억되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과거의 행위를 새롭게 해석할 새로운 서술의 발명과, 커다란 사회적 동요다. 주디스 허먼의 저서 《트라우마와 회복》에 적혀 있듯이, 〈트라우마는 정치적 운동과 동맹을 맺어왔다.〉"(100-1)


"의료화는 성, 계급, 사악함보다는 덜 흥미를 끌었지만, 그래도 어떤 관점에서는 아동학대 개념의 증명서다. 특정 유형의 사람들─예컨대 아동학대 가해자, 피학대아동 같은─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런 이들에 관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 지식이 온전하다면, 온갖 종류의 학대행위, 가해자, 피해자는 다양한 유형의 의학적, 정신의학적, 통계적 법칙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들 법칙은 아동학대를 어떻게 개입하고 예방하며 개선할지를 알려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중인격은 아동학대를 발판으로 해서 '지식의 대상'으로 발돋움했다." "원인 규명은 지식의 대상이다. 만일에 아동학대가 소위 자연종이라 불리는, 오직 자연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한 종류이자 자연법칙의 지배하에 있는 다른 사건과도 엮여 있는 그러한 것이라면, 아동학대는 어떤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아동학대에 관한 의학지식은 사건의 종류와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는 법칙에 관한 지식이다. 일련의 새로운 지식체계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106-7)


"전통적인 근친강간의 금기는 성교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근친강간과 아동학대가 동일선상에 놓이자 근친강간의 개념이 급격히 확장되었다." "이 사건들은 엄청난 해방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많은 여자들 그리고 점차로 많은 남자들이 혈연관계 안에서, 혹은 결혼관계나 편의적 관계 안에서 대개는 남자들에게 당했던 처참한 경험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아버지, 삼촌, 할아버지, 사촌, 계부, 남자친구, 동료, 애인, 사제가 그 남자들이었다. 어머니와 이모나 숙모와 강요된 성관계를 가진 기억도 있었다. 그 일을 입 밖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카타르시스였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 순간의 폭력이나 다시 다가올 폭력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라, 계속 붕괴되어가는 인격과, 어떤 인간과도 애정과 신뢰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어간다는 데에 있다. 성적 반응이 왜곡될 뿐만 아니라, 애정에 대한 반응 또한 일그러져간다. 구타당한 아기들이 아니라 구타당한 삶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다중인격 임상가들이 밝히려 했던 것이었다."(112)


5장 다중인격의 젠더 


"남자보다 훨씬 더 많은 여자들이 다중인격으로 진단되는 것은 왜인가? 네 가지의 설명이 제시되는데, 모두가 다중인격의 배경 이론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첫째로, 범죄 가설이 있다. 잠재성 남성 다중인격은 폭력적이어서 의사보다는 경찰의 손에 잡힌다. 둘째로, 다중인격은 은연중에 자신이 속한 문화적 환경에 어울리는 선택을 한다는 견해가 있다. 해리 행동은 여자들이 선호하는 스트레스의 언어다. 심지어 도피 수단일 수도 있다." "남자들이 선택하는 스트레스 표현방식은 알코올이나 폭력 등이다. 셋째는 인과적 설명이다. 다중성은 어린 날의 반복적인 아동학대, 특히 성학대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것이다. 소녀들이 소년보다 훨씬 더 자주 학대의 대상이 된다고 간주된다." "넷째는 암시의 요소를 강조하는 설명이다. 북미에서 치료과정에 있는 여자들은, 심지어 전형적인 권력구조를 피하려 적극 애를 쓰는 여자일지라도, 같은 상황에 있는 남자들보다는 더 쉽사리 치료적 기대치에 협조한다."(127-8)


"학대를 강조하는 일은 흔히 힘을 부여하는 동기가 된다고 말해왔으나,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는 루스 레이스의 분석인데, 그녀는 드물게 다중인격을 정면으로 다룬 페미니스트 학자다." "레이스의 글에 따르면, 로즈는 〈캐서린 매키넌, 제프리 마송 등이 무의식적 갈등의 개념을 배척하고, 대신 내부/외부라는 경직된 이분법을 수용해서, 폭력이란 전적으로 그 개인의 외부에서 가해지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여성은 완전히 수동적인 피해자라는 퇴행적인 정치적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밖에 없게 된다〉라고 비판한 것이다." "결론 중 하나로서 이런 종류의 분석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학대, 트라우마, 해리에 관한 현재의 이론들은 또 다른 여성 억압의 순환고리 중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전보다 더 위험한 이유는, 전적으로 '피해자'의 편이라고 자칭하는 이론가와 임상가들이 그것을 이유로 환자를 자율적인 한 개인이 아니라 무력한 자로 구성해내기 때문이다."(131-2)


6장 원인 


"인과적 일반화는 양 극단 사이에 위치한다. 한 극단에는 엄격한 보편성이 있다. K 종류의 하나의 사건 또는 조건마다 J 종류의 하나의 사건 또는 조건이 결과로 나타난다. 옛날 물리학은 그런 법칙을 선호했다. 다른 한 극단에는 상당한 필요조건fairly necessary conditions이라는 실로 조심스러운 설명이 있다. K 종류의 사건 또는 조건이 없이는 J 종류의 사건 또는 조건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 그 사이에 개연성과 경향이 있다. 〈정신의학 역사상 주요 질환의 특수 병인에 관해 이렇게 잘 알게 된 적이 없었다〉라고 로웬스타인은 말했다. 이를 주장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이 주요 질환에 관한 어떤 일반적인 인과적 설명이 그 배경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장은 엄격한 보편성처럼 엄중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상당한 필요조건이면 충분하다. 로웬스타인이 의미했던 상당한 필요조건이란, 〈어린 시절의 극심하고 반복적인, 전형적으로 성적인 트라우마가 없이는 다중인격이 나타날 가능성은 적다〉일 것이다."(141-2)


"'상당한 필요조건'은 다중인격의 특성화와 함께 진화했다. 코넬리아 윌버와 리처드 클러프트가 했던 이 신중한 말을 생각해보라. 〈다중인격장애를 가장 편협하게 이해하자면, 아동기에 발병하는 외상후해리장애이다.〉 여기에서 아동기의 발병시기와 트라우마의 존재 여부는 경험주의적 귀납이나 통계적으로 확인 가능한 '상당한 필요조건'의 일부가 아니다. 그건 그 말을 한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이고, 그들이 'MPD(Multi Personality Disorder)'라고 칭할 때 의미하는 것이다. 방법론적으로든 과학적으로든 틀린 것은 없다. 내가 경계하는 것은 양쪽 방식을 합쳐서 하는 말뿐이다. 이는 (a)'다중인격장애'(혹은 해리성정체감장애) 개념을 초기 아동기의 트라우마로 정의하려는 경향과 (b)이를 발견된 것처럼 단언하는 것, 즉 다중인격이 어린 날의 트라우마로 발생한다고 단언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그 장애가 무엇인지 먼저 정의한 다음에 그 원인을 발견했다고 우리 스스로를 기만해서는 안 된다."(142)


"반복적 아동학대가 다중인격의 원인이라고 정신의학이 발견한 건 아니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그 행동과 그 기억 모두가 치료사에 의해 조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건 내가 주장하는 논지가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훨씬 더 뿌리 깊은 것으로서, 말하자면, 바로 그 인과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의 주조 방식이다. 일단 그 개념을 얻게 되면, 우리는 인간을 만드는making up people, 또는 우리 자신을 만드는 실로 강력한 도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현재의 자신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모델에 따라 우리가 끊임없이 구성하고 있는 영혼을 우리는 구성한다." "다중성의 인과론에는 두 부분이 있다. 아동학대라는 기회원인occasioning cause이 한 부분이다. 다른 부분은, 어떤 아이들은 더 큰 해리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로 인해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게 되고, 이 해리능력은 측정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이다."(161-2)


7장 해리의 양적 측정 


"설문지는 다중인격이 객관성과 정당성을 갖추게 만드는 방법이며, 치료사들로 하여금 자신은 과학적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한 인류학자는 설문지의 일차적 목적이 정신과 입원이나 클리닉에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해리장애에 관한 지식의 객관성을 구축하기 위함이라는 의견을 냈다. 해리 경험 설문지는 자격을 갖춘 전문가의 진단과 채점된 점수를 비교해서 확인되고 기준치가 조정된다. 그 과정에 부차적이기는 하나 필요한 확인 절차가 있다. 처음에 정상으로 채점된 사람이 몇 개월 후 다시 두 번째로 설문지에 답할 때에도 대략 같은 식으로 반응하는가? 계속 설문지가 개발되어가면서 새로운 설문지의 기준치 조정에 사용되는 것은 이전의 설문지 결과 및 이후의 임상적 판단이다. 그리하여 상호 일치하고 자기확증적인 검사도구의 네트워크가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뷰 설문지 결과를 자기기입식 설문지 결과와 비교하고, 이 둘은 전문가의 임상적 판단과 비교한다는 식이다."(169)


"해리 설문지의 기준치 조정에는 표면적이지만 실은 매우 중대한 문제가 있다. 기준치 조정은 어떤 동의된 판단에 비추어야 하는가? 해리장애 분야에는 어떤 합의된 판단도 없다. 많은 선도적 정신과의사들은 그런 분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 관찰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과 그 병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판단에 비추어서 기준치 조정이 된 해리척도가 아니다. 그 해리척도는, 그보다는, 정신의학 내에 있는 다중인격운동의 판단에 비춰서 조정된 것이다. 그들의 판단이 과학 수치처럼 객관적이라고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 기준치 조정 과정은 여타 분야에서 사용되는 방식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 설문지들이 독립적 기준에 비춰 조정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일단 내적 일관성이 충분한 통상적 통계비교검사법 일습을 다 적용했다면, 충분한 수의 도표와 도식을 다 만들어냈다면,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다면, 마침내 전체 구조는 객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169-71)


8장 기억 속의 진실 


"1982년 의식적이고 악마숭배적인 아동학대가 대중의 인화점을 건드렸을 때, 괴이한 고발이 잇따라 제기되었다. 악마는 미국 TV 토크쇼의 스타가 되었다." "이런 소란은 다중인격운동을 곤혹스럽게 했다. 다중인격은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의식 고취의 분위기에서 성장하여 그 원인론으로 정당성을 획득했다. 악독하게 학대받았다는 주장이 점차 신용을 얻어가던 운동 초기에는 입증이 되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환자들이 근친강간을 기억해내자 그 말을 믿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용기를 북돋아주기까지 했다. 다양한 요소가 혼합된 치료법이 개발되고, 그 치료법은 기억을 끌어올리고 아동학대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인격들을 유도해냈다. 트라우마는 가공된 상상의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실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이어서 아동학대운동이 이교의례 학대로 영역을 넓히자, 환자들은 점차로 이교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이야기는 점차 현실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것으로 변모해갔다."(189-91)


"이 일에 관해 체계적인 공식 조사가 이루어진 곳은 오직 영국뿐이다. 해당 위원회는 3년이 넘게 정보를 수집했고 그 결과가 1994년 6월 출판되었다. 고문, 강제 낙태, 인간 제물, 식인, 수간이 포함된 악마숭배의례를 〈규정하는 특징〉은 〈성적·신체적 아동학대가 주술적 혹은 종교적 목적을 지향하는 의례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위원회는 악마숭배의례 학대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사례 84명을 조사했으나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위원회는 많은 사례에서 어린이들이 더 일상적인 방식으로 학대받고 있다는 것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악마 음모론이라는 우화에 대해서는 엄밀히 말해서 믿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서, 유용한 근거를 갖춘 것으로 신뢰할 수 없다." "음모론과 마녀사냥은 그 설명에 관한 한 서로의 거울 이미지다. 사악한 이교의례가 항상 주변에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비슷한 사건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대중적 촌극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196-7)


9장 정신분열증 


"오이겐 블로일러(1857~1939)는 20세기 초에 진단범주로서의 정신분열증을 창시한 인물로 유명하다. 정신증의 주요 분류는 에밀 크레펠린(1856~1926)에 의해 확립되었다. 한쪽에는 조울증manic-depressive illnesses이 있고, 다른 쪽에는 청소년기에 발병해서 치매에 빠진다고 하여 조기치매라 불리는 게 있었다. 1908년, 블로일러는 몇 년간 자신의 조교들을 교육하던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다. 그는 크레펠린이 발병시기에 초점을 맞춘 것은 틀렸다고 했다. 그 어떤 기존 명칭도 이 수수께끼 질병에는 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블로일러는 '분열된 뇌의 질병'의 의미로 그리스어에서 따온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이라는 명칭을 정했다. 그가 말한 것은, 이중의식의 원형처럼 인격들이 분열하여 한 개인을 번갈아 지배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정신적 기능의 '분열'〉을 지적한 것이었다. 아주 단순화하면, 주변을 인식하는 기능과 그걸 느끼는 기능이 분열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이성과 감성 사이의 분열을 의미한다."(214-5)


10장 기억의 과학이 출현하기 전 


"프랑스 역사가 알랭 부로는, '슬리퍼sleepers'가 중세 절정기인 12세기 말과 13세기에 의미심장한 현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후일 몽유증이라고 불리게 될 일종의 몽환 상태에 빠진 개인들로 보인다. 슬리퍼가 중요한 이유는, 그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지적, 형이상학적 그리고 실질적으로 신학적 문제를 불러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깨어 있을 때와는 다른 특성과 스타일로, 때로는 폭력적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금지된 행위를 했다. 그 상태가 끝나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혼란스러워했다." "토마스주의자들은 하나의 육체에는 오직 하나의 영혼만 있다고 주장했다. 스콜라 신학 심리학에서 영혼은 인간의 〈실체적 형상〉이다. 소수의 반토마스주의자들이, 슬리퍼와 같은 인간에게는, 각 상태에 하나씩 두 개의 실체적 형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알랭 부로는 말했다. 이는 책임과 관련해서 중요한 문제였다. 소수파는 패했다. 따라서 슬리퍼들은 주변화되고 뒤이어 병리화되었다."(240-1)


"다중인격의 전신前身에는 두 개의 증상언어가 있었다. 하나는 주로 유럽대륙에서 쓰이던 자연적 몽유증이라는 언어로서, 인위적 몽유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다른 증상언어는 주로 영국과 미국의 것으로, 이중의식의 언어였다." "1816년 메리 레이놀즈는 〈여자에게 나타난, 매우 특별한 이중의식 사례〉라고 기술되었다. 여기서 '이중'은 두 개를 의미하므로, 두 개 이상의 인격이 교차하는 상태는 아닐 터이고, 오늘날과 같이 17개 혹은 100개의 인격 파편은 더더욱 아닐 터이다. 그러나 '의식'이라는 단어는 더욱 강렬한 느낌을 주는데, 그건 수동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작용이나 상호작용의 의미도 없고, 완숙한 인격을 암시하는 것도 없다." "그녀에 관한 최초의 짤막한 기술은 그 제목이 〈이중의식 혹은 동일한 개인에게 들어 있는 인간의 이중성duality〉이었지만, 〈인간의 이중성〉은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중의식은 인기를 얻었고, 19세기 거의 내내 잉글랜드에서 의학적 진단범주에 들어갔다."(245-6)


11장 인격의 이중화 


"이폴리트 텐은 절충주의 유심론자들이 말하는 자율적이고,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자아self 또는 영혼soul이라는 개념, 〈유일하고, 지속적이며, 항상 동일한 나I or me, [그리고] 다양하고 일시적인 나의 감각, 기억, 심상, 생각, 지각, 이해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배척했다. 그는 자유의지 문제에 관한 칸트식 해법, 즉 '나'는 현상계의 인과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본체적 자아라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자아란 역사를 지닌 헤겔적 존재자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자아는 로크식의 개인으로, 의식, 감각, 기억으로 이루어진 복합체다. 따라서 1876년 이중화된 인격이 신문 1면에 등장했을 때 그는 무척 기뻐했다. ('이중화된 인격'에서 주목할 점은, 나눠진 것이 수동적인 성질의 의식이 아니라 인생, 인격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몸 안에서 교차하는 두 개의 자아는 각각의 인식과 일련의 기억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텐은 생각했다. 거기에는 초월적 영혼도, 본체적 자아도 없다."(267)


12장 최초의 다중인격 


# 파리의 남성 정신병원 비세트로의 수석의사인 쥘 부아쟁이 자신의 담당 환자 루이 비베─인격 분열을 동반하는 대大히스테리아 사례로 제시된─에 대해 설명한 날인 1885년 7월 27일부터 '다중인격'이 존재하게 되었다. 


13장 트라우마 


"샤르코는 히스테리아가 신체적 트라우마로 생길 수 있다고 가르쳤다. 기억상실 등의 증상을 일으킨 정신적 트라우마도 있었다. 더 큰 관심을 받은 연구는 직접적 두부외상이 야기하는 기억상실이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두부외상은 항상 존재했고, 의심의 여지 없이 기억상실을 일으켰지만, 이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는 1870년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심리적 트라우마, 회복된 기억, 정화abreaction에 관한 학설은 진실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 학설을 개척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인 프로이트와 자네는 정반대 방식으로 위기를 마주했다. 자네는 거짓말과 만들어진 거짓기억으로 환자들이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을 말하는 데에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을 가지지 않았다. 그에게 진리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었다. 프로이트에게는 진리가 절대적이었다. 프로이트는 진정한 이론Theory을, 다른 모든 것이 종속되어야 할 거대이론을 목표로 했고, 자신의 환자도 그들 자신의 진실을 직면해야 한다고 믿었다."(306-7, 318)


"잃어버린 기억과 회복된 기억에 관한 한, 우리는 프로이트와 자네의 후계자들이다. 한 사람은 진리를 위해 살았고, 상당히 오랫동안 자신을 기만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심지어는 자기 기만을 스스로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다른 한 사람은 훨씬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으며, 환자에게 거짓을 말함으로써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그러면서 자신이 다른 숭고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았다." "트라우마의 심리화는 오랫동안 존재론에 공헌해왔던 영혼의 영적 고통이 이제는 숨겨진 심리적 고통이 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고통은 우리 안에 내재된 유혹에 의해 생긴 죄악의 결과가 아니라, 밖에서 우리를 유혹한, 죄지은 자가 일으킨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 혁명은 트라우마를 축으로 그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트라우마는 자네가 심리적 트라우마에 관한 최초의 통찰을 《철학비평》에 발표한 1887년 이후부터 심리화가 되었다. 바로 그해에 유럽의 다른 한쪽에서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를 탈고했다."(319-20)


14장 기억의 과학들 


"1861년이 되어서야 해부학자들은 두개골을 열어볼 수 있었고 정신기능의 손실에 해당하는 뇌의 손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폴 브로카(1824~1880)가 그러했다. 〈이 사례에서, 전두엽의 병변이 언어기능 상실의 원인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뇌의 운동성 언어중추인 브로카 영역으로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1879년 헤르만 에빙하우스(1850~1909)는 심리학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했다. 에빙하우스는 다른 종류의 지식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기억을 연구하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무의미한 음절을 기억해내는 실험을 했다." "에빙하우스의 업적이 중요한 점은 연구자료의 통계처리법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기억은 일련의 무의미한 음절을 기억해내는 능력의 맥락에서 조사되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에는 이 기억해내는 능력의 통계분석을 고안해야 한다고 했다. 에빙하우스는 전형적 인간인 자신을 대상으로 연구에 착수했지만, 그 행동은 오직 통계적 정밀 검토를 통해서만 이해되어야 한다고 했다."(329-31)


"리보는 자신의 책에 스코틀랜드 학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적을 정도로 영국의 연합주의 심리학─관념 간의 연합association에 의해 인간의 의식이 형성된다는─의 충실한 신봉자였다. 유익하게도, 그는 기억이 마치 하나의 능력인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며, '기억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기술, 지식 등 습득된 여러 다른 종류의 능력이 뇌의 다른 부위에 저장된다는 데에서 연역해낸 추론에 불과하다. 리보는, 마음과 뇌의 관계는 당대 대부분의 실증주의자나 과학주의자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으로 연관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기억이란 본질적으로 생물학적 사실이고, 우발적으로만 심리적 사실이 된다〉고 적었다." "그는 그저 순수하게 추론적인 신경생리학의 한 부분으로 그렇게 적었을 뿐이다. 의식은 신경계통에서 일정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특정 사건(당시 용어로는 '방출')을 의미한다. 같은 종류의 사건이지만 훨씬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것은 무의식이다."(334-5)


"리보와 그의 동료 연구자들의 중요성은 그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을 제공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기억에 관한 진정한 지식, 과학적 법칙으로, 지금도 〈리보의 법칙〉이라 불린다. 그가 그 법칙에 붙인 이름은 퇴행regression 또는 복귀reversion의 법칙이다. 어떤 병리에 의해서든 간에 〈기억의 점진적 파괴는 논리적 순서, 즉 법칙을 따라 진행된다. 불안정한 기억에서부터 안정된 기억으로 점차적으로 진행되어간다.〉" "우리의 관심은 이 법칙이 어떤 종류의 법칙이고자 하는지에 있다. 그것은 객관적 진리이다. 그것은 사실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 사실이라는 것은 병리학적 정신의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기억의 상실, 망각에 관한 법칙이다. 그 법칙은 신체적 손상에 의한 망각과 정신적 쇼크로 인한 망각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그것은 옛 의미의 트라우마와 앞으로 나오게 될(리보의 시점은 1881년이다) 트라우마의 의미를 모두 설명한다."(337-8)


15장 기억-정치 


"잠시 인류학적 관점으로 생각해서, 집단기억을 유지하는 것이 집단정체성과 차별성을 견고히 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보면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홀로코스트 기억의 정치는 인간사회의 오래된 관행 중 하나다. 개인적 기억의 정치는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물론 집단적 기억과 개인적 기억 사이에 상호연관이 있음을 나는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둘 사이의 확실한 연결고리 하나는 트라우마다. 트라우마성 스트레스의 과학으로부터 알게 된 것에는, 강제수용소 생존자 자신 및 그 자손들은 아동학대 피해자만큼 심리적으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이 있다. 그러나 이는 한 방향으로만 투영해서 본 것 같다. 이 말은, 홀로코스트 기억은, 트라우마학學이 존재한 적이 없다 할지라도, 또 기억의 과학들이 19세기 말에 출현하지 않았더라도, 집단기억의 한 부분이 되었을 것이고 그와 연관된 정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개인적 기억의 정치는 이들 과학이 없었더라면 결코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342)


"개인적 기억의 정치는 특정한 유형의 정치이고, 지식을 둘러싼, 혹은 지식에 관한 권리를 둘러싼 세력다툼이다. 그 정치는 특정 종류의 지식이 존재할 가능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개인에 관한 사실의 주장과 반박이 끝없이 이어지고, 이 환자에 대한, 저 치료사에 대한 주장이 악덕과 미덕에 관한 사회적 관점과 결합된다. 표층지식을 두고 경쟁하는 주장들의 저변에는 심층지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 심층지식은 참-또는-거짓을 확인해줄, 기억에 관한 사실들의 존재에 관한 지식이다. 과학으로 알려주는 기억의 지식에 관한 가정이 없다면, 이런 종류의 정치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적대하는 진영들은 각 표층지식의 기반 위에서 세력다툼을 하지만, 심층지식이 있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인정한다. 각 진영은 서로에게 반대하고, 자기들이 더 나은, 더 정확한, 최고의 근거와 방법론에서 끌어낸 표층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트라우마의 기억을 기억해낸 자와 그것에 의문을 품은 자 사이의 대결이다."(343)


16장 마음과 몸 


"서구 역사에서 다중인격의 진행과정이 알려주는 것은, 보통 사람이나 전문가가 무엇을 말할 태세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불안한 마음의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 소통하려 들지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는 마음을 연구하는 모든 철학자가 주목해야 할, 마음의 다른 상태가 있을 가능성을 자연의 실례로부터 찾지 못한다." "다중인격은 마음에 관해서 '직접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말은, 마음(혹은 자아 등등)에 관한 실질적 철학의 주제를 다룰 아무런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 현상은 분명 그 현상과는 완전히 독립적인 이유를 가진 마음에 관한 어떤 주장을 예시해줄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 현상은 철학적 주장을 입증하는 근거가 아닐까? 아니다. 다중현상은 단지 색채를 더해줄 뿐이다. 다중인격에 현실적 삶의 모습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때로 근거처럼 보이지만, 예시되는 학설은 다중인격과 상관없는 원칙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다중인격의 존재로써 입증되지도 않는다."(359-60)


17장 과거 속의 불확정성 


"나는 인간 유형의 고리 효과에 대해 종종 말해왔다. 고리 효과란, 한쪽에는 사람들이, 다른 한쪽에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을 분류하는 방식이 있어서 그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말한다. 특정 유형의 사람이라고, 또는 특정 행위를 한다고 간주되는 것이 그 개인에게 다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새 분류방식이 그렇게 분류된 사람에게 조직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혹은 그렇게 분류된 사람들이 지식을 가진 자, 분류하는 자, 분류의 과학에 대항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분류된 자들을 변화시키고, 그리하여 그들에 관한 지식을 다시 변화시킨다(되먹임 효과). 여기에 변수를 더해보자. 사람과 행동을 분류할 새로운 분류법이 발명되고 새로 주조되면, 좋든 나쁘든 간에 한 사람의 개인이 되는 새로운 방식이 창조되고, 새로운 선택의 길이 열린다. 새로운 서술이 나타나고, 따라서 새로운 서술하의 행위가 출현한다. 실질적으로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관점에서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385-6)


"이는 옛 행위를 재서술하는 것, 특히 새롭게 만든 서술형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서술하에 놓인 옛 행위는 기억 속에서 재경험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 서술이 정말로 새로운 서술이고, 기억된 사건이 일어났던 시간에 그 서술이 가능하지 않았거나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제 기억 속에서 경험되는 무언가는 어떤 의미로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행위는 있었지만, 새로운 서술하의 그 행위는 아니었다. 더욱이, 그 사건이 이렇듯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될 것이라고는 확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건들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미래에 새로운 서술이 출현할지 확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다음의 말은 확실하게 되풀이해야겠다. 억제된 기억이든 억압된 기억이든 간에, 완전히 확정되어 있는, 끔찍한 사건에 대한 똑바른 기억 또한 이 세상에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탐색하는 기억은 그러한 것의 주변에 있는 것이고, 더 직접적인 회상과는 다른 정신적 기전으로 인해 야기되는 기억이다."(400-1)


"기억을 서사로 간주해야 한다는 신조는 기억-정치의 한 측면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만들어냄making-up으로써, 즉 우리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냄으로써,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구성해낸다. 우리가 자신에 관해 말하는 이야기, 또 자신에게 말해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무엇을 했고 어떻게 느꼈는지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그 이야기는 세상과 맞물려야 하고, 적어도 외견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조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짜 역할은 하나의 삶, 어떤 개성, 하나의 자아를 창조하는 일이다. 기억을 서사로 보는 시각은 흔히 인도적이고, 인본주의적이며, 반反과학적이라고 제시된다. 이는 기억을 신경학적 프로그램으로 이해하는 시각과 분명 상충된다." "그럼에도 기억-정치는 바로 실증주의 심리학의 과학적 배경에서 생겨났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동기는 영혼을 우리가 그것에 대해 지식을 가지고 있는 무언가로 대체하려는 세속적 욕구였다."(403-4)


18장 거짓의식


"내가 거짓의식으로 의미하려는 것은 아주 평범한 것이다. 즉 자신의 특성과 과거에 관해서 종요롭게 거짓믿음을 형성해온 사람들의 상태이다. 거짓의식은 그 상태에 빠진 당사자에게 책임이 없을지라도 당사자에게 유해한 상태라고 나는 논증하겠다. 거짓기억은 거짓의식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보통 '거짓기억증후군'은 그 개인에게 결코 일어난 적이 없던 사건들의 기억으로 이루어진 기억 패턴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사건을 (대개가 그렇듯이) 부정확하게 기억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건들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사실, 소위 거짓기억증후군은 반대-기억증후군contrary-memory syndrome으로도 불리는데, 진짜 기억처럼 보이는 그 기억은 거짓일 뿐만 아니라 현실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원형적인 예를 들자면, 〈자기가 했던 말을 취하한〉 어떤 사람은, 삼촌이 자신을 자주 강간했다고 기억한 것 같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을 이제 깨달았다고 말한다."(416)


"금방 예로 든 반대-기억과 대체로 비슷한, 단지 사실이 아닌 기억인 단순-거짓-기억merely-false-memory에서는 삼촌이 진짜 가해자인 아버지의 가림막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기억은 현실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거는 근본적으로 다시 주조된 것이다." "기억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에는 잘못된-망각wrong-forgetting이 있다. 자신의 성격이나 성질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과거의 핵심 사항을 억제suppression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억압repression이 아니다. 억압은 사건이 의식적 기억에서 사라져버리고, 욕동drive과 성향도 의식적 욕구desire에서 사라지는 가설적 기전이다. 그 가설에서는, 억압 자체는 도덕적 주체의 자리에서 행하는 고의적이거나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어떤 기억이 의도적으로 억제되어 있다면, 거짓의식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이들 세 가지와 그 외의 가능성 있는 것들을 한데 묶어 기만적-기억deceptive-memory의 표제로 분류하려 한다."(416-7)


"자신만만하고 노골적인 회의론자는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고 가볍게 털어내지만, 덜 오만하고 더 성찰적인 의혹을 품은 사람들은 환자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었음을 인정한다." "그들은 다중인격 치료가 거짓의식으로 이끌지 모른다고 경계한다. 아동학대의 기억처럼 보이는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이라거나 왜곡되었다는 노골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다. 그 기억은 충분히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최종 결과는, 온전한 개인이 되려는 목적을 실현하는 인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주조된 인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경계를 하는 것이다. 그건 자기 인식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자기 이해를 흉내내는 소란스러운 재잘거림으로 더 악화된 개인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도 이와 같은 도덕적 판단을 공유한다. 너무 잦은 다중인격 치료는, 깨지기 쉬운 그릇이라는 자기 이야기를 소급해서 창조해내고, 여성은 스스로는 인생을 버텨나갈 수 없는 수동적 존재라는 옛 남성 모델을 암묵적으로 확인시켜준다고, 그들은 덧붙인다."(4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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