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오늘의 이스라엘 - 7가지 키워드로 읽는
최용환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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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익숙하지만 낯선 나라, 이스라엘


1장 시오니즘과 분쟁


1917년 영국군이 오스만제국의 군대를 격파한 이후부터 30여 년 동안 국제연맹의 결의에 따라 영국이 이 지역을 위임통치하였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국제연맹을 이은 유엔은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과 아랍인이 각각 그들의 개별국가를 건설토록 하는 이른바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안1947 Partition Plan’을 채택했다. 이 분할안에서 주목할 것은 ‘예루살렘’에 대해 내린 결정이었다.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안은 예루살렘을 직접 관할할 수 있는 ‘코르푸스 세파라툼Corpus Separatum’이라는 지위를 유엔에 부여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앞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될 유대 국가나 아랍 국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별도로 분리된 지역이라는 뜻이다. 1947년 유엔 ‘영토 분할안’에서 예루살렘은 UN이 직접 관할하는 특별지역으로 규정되었지만, 1949년 휴전협정에서는 예루살렘의 동쪽 부분은 요르단이, 서쪽 부분은 이스라엘이 각각 나누어 관할하는 것으로 양측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19)


# 코르푸스 세파라툼Corpus Separatum. ‘따로 분리된 독립체(separated body)’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이다.


예루살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구시가지(올드시티) 구역은 당시 이스라엘이 장악하지 못한 채 요르단의 관할구역으로 남았다. 그 이후 거의 20년 동안은 그린라인(제1차 중동전쟁 때 그어진 1949 휴전선1949 Armistice Line)이 양측 간에 실질적인 국경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일명 ‘6일 전쟁’)에서 마침내 요르단이 장악하고 있던 올드시티 등 동예루살렘 지역마저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이로써 예루살렘 전역에 대한 실질적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 같은 상태는 오늘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을 나누고 있던 그린라인은 1949년에 그어졌지만, 국제정치적 관점에서는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중요하다. 현재 이스라엘은 그린라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루살렘은 동과 서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도시이며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는 주장이다. 이미 예루살렘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만큼 동예루살렘을 포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0)


 ‘욤 하지카론Yom HaZikaron’이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의 현충일은 독립기념일 바로 하루 전날이다. 유대력으로 ‘이야르Iyar’달 4일이다. ‘욤 하츠마우트Yom Haatzmaut’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의 건국기념일(독립선언일)은 양력 기준으로 1948년 5월 14일이다. 유대력으로는 ‘이야르달’ 5일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력에 따라 각종 기념일을 경축하기 때문에 독립기념일 역시 양력으로는 매년 날짜가 달라진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 다음 날인 5월 15일을 ‘알 나크바Al Nakba’, 즉 ‘나크바(재앙)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의 건국 선언 다음 날인 5월 15일 제1차 중동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자신들의 고향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에레츠 이스라엘로 돌아와 나라를 세운 것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사명이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건국이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대재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43-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상시적이고 현재 진행형이다. 언제 어디서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공항이나 항만이 없다. 두 개로 나누어진 영토 역시 이스라엘 군에 의해 철저히 봉쇄되어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지역 출입 문제에서부터 국제기구가 관장하는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서의 각종 인도적 지원사업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과 외부세계를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데 있어 이스라엘 당국의 협조를 얻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면서 또한 필수적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각종 비군사적・행정적 업무를 조정・통제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 ‘코가트COGAT’라는 조직이다. 국방부 산하 조직으로 ‘Coordinator of Government Activities in the Territories’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점령지 민정조정관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코가트의 책임자는 현역 육군 소장이 맡고 있다.  45-6)


2장 디아스포라와 이민


# 유대교 공동체 구분

1. 하레디 : 유대율법에 가장 충실한 초정통파 그룹

2. 다티 : 근대화된 성향의 종교적 시오니스트 그룹

3. 마소르티 : 전통적 가치를 따르면서도 현대적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그룹

4. 힐로니 : 종교적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 세속적 성향의 그룹


# 출신 지역별 구분

1. 아시케나지 : 독일 지역

2. 세파르디 : 스페인 지역

3. 미즈라히 : 북아프리카, 중동 지역


오늘날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인 출신 지역 그룹은 ‘아시케나지Ashkenazi’ 그룹이다. 아시케나지는 과거 독일 지역을 가리키는데 9~10세기경 라인강 유역의 유럽에 거주하고 있었던 유대인 그룹을 지칭한다. 현재 지도에서 보자면 주로 독일 서부와 프랑스 북부 일부 지역이 그들의 주요 거주지였다. 이들은 수세기에 걸쳐 동부 유럽 지역인 오늘의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로 이주했다. 이들은 동유럽과 러시아 등에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가해지던 시기에는 서유럽과 미국 등지로 다시 옮겨가기도 했다. 이들은 독일어를 바탕으로 히브리어 문자가 결합된 ‘이디시Yiddish’라는 언어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아시케나지 그룹이다. 하레디 종교정당인 UTJ를 구성하는 ‘아구닷 이스라엘Agudath Israel’과 ‘데겔 하토라Degel HaTorah’도 모두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64)


또 하나의 대표적 그룹은 ‘세파르디Sephardi’ 그룹이다. 세파르디는 히브리어로 스페인을 뜻하는 ‘세파라드’에서 나온 말이다. 이들은 로마 시대부터 오늘날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반도 지역에 주로 거주해 오던 유대인 집단이다. 이들은 중세를 거쳐 15세기까지 무슬림이 지배하던 시기에 자신들이 거주하던 곳에서 상당한 지위와 영향력을 누리면서 활동했다. 그러나 15세기 말 기독교를 믿는 정치세력이 맹위를 떨치면서 위기를 맞는다. 이베리아반도가 기독교인들의 치하에 들어가자 무슬림은 세력을 잃고 유대인들도 기독교로의 개종을 강요당하며 시련을 겪었다. 세파르디 그룹 유대인들이 주로 이주한 북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는 이미 상당수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미즈라히Mizrahi’ 그룹이라고 부른다. 유럽 중심의 아시케나지와 구분하는 차원에서 지중해 주변 지역 중심의 유대인들을 통칭하여 모두 세파르디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레디 종교 정당 중 '샤스'당은 이들 세파르디가 중심이다. 65)


종교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최고랍비공의회는 아시케나지와 세파르디 두 그룹을 각각 대표하는 최고 랍비가 모인 2인 협의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건국 이후에 이스라엘 현지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유대인인 ‘사브라’들은 자신들의 부모 세대에 비해 조상의 출신 지역이나 인종적 배경에 따른 구분 의식이 별로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사브라들이 해외에서 태어나 이스라엘로 이주해 온 올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들 사브라들이 이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는 주도세력으로 성장한 만큼 그동안 존재해 왔던 아시케나지와 세파르디 집단 간의 갈등은 이미 상당히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자유분방한 세속적 힐로니 그룹 내에서는 실제로 아시케나지 출신과 세파르디 출신 간의 결혼도 흔한 편이다. 하지만 초정통파 그룹 내에서는 아시케나지 출신과 세파르디 출신 간 결혼은 여전히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66)


이스라엘 유대인들 가운데서 가장 외모가 두드러져 보이는 이들은 피부색이 어두운 유대인들이다. 이들을 ‘이스라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타 이스라엘’ 또는 그들의 출신 지역을 따서 ‘에티오피아 유대인’이라고도 한다. 이들 에티오피아 유대인은 오랜 기간 유럽 중심의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거의 잊힌 존재로 남아 있었다. 대다수는 교육이나 소득 수준이 높지 않고, 그만큼 사회적으로도 낮은 계층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의 슈퍼마켓에 가면 계산대에서 일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유대인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의 소득 수준은 이스라엘 전체 직장인의 월평균 소득보다 20~40% 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보다 여성의 급여가 더 낮다. 이들도 똑같은 유대인이지만 아랍계 국민과 비슷한 소득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 등을 중심으로 피부 색깔에 따른 차별적 대우 때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66-7)


아이러니하게도 아랍 국가들과의 끊임없는 분쟁을 치른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아랍인이 많이 있다. 이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미 이스라엘의 영토로 선언된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해 온 아랍인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치러진 독립전쟁 중에도 살던 지역을 떠나지 않고 계속 버텨왔던 아랍인들이다. 이들을 ‘48 아랍인’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의 건국 연도인 1948년 당시에 이미 그곳에 살던 아랍인들이라는 뜻이다. 이들 48 아랍인들에게는 1952년 제정된 국적법에 따라 모두 이스라엘 국적이 주어졌다. 이들과 그 자녀들은 오늘날 이스라엘 인구의 약 20%에 해당하는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종교적으로 보면 이들 대부분은 무슬림이다. 물론 일부 크리스천도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자신들의 조국(이스라엘)과 민족(팔레스타인)의 갈등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이들의 정체성은 이중적이다. 69)


드루즈Druze는 아랍어를 말할 수 있고, 그들의 종교가 이슬람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이슬람의 한 분파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계 아랍인과는 다른 특유의 종교와 생활방식으로 인해 그들은 통상적으로 별도 민족으로 분류된다. 이스라엘의 드루즈는 약 15만 명 정도로 전체 이스라엘 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미미한 수준이다. 이들은 비록 아랍어를 구사하고 이슬람에서 파생된 신앙을 갖고 있으나 이슬람과는 다른 독자적 신앙체계를 갖고 있다. 드루즈가 유대인 중심의 이스라엘 사회에서 관심을 끄는 이유는 유대인이 아닌 드루즈 남성에게 이스라엘 군대에 복무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동안 아랍세력으로부터 박해를 경험해 온 드루즈는 이스라엘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적지 않은 남성들이 이스라엘의 편에 서서 아랍권을 상대로 싸웠다. 드루즈의 미래를 위해서는 아랍 민족주의보다는 유대 시오니즘에 동조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74)


드루즈가 주로 팔레스타인 북부에 거주해 온 반면 베두인Bedouin은 수천 년 전부터 남쪽 시나이 반도와 네게브 사막 지역을 중심으로 유목 생활을 해 오던 아랍 민족이다. 언어도 주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종교도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 내 베두인의 인구는 약 25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약 3%에 육박한다.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 정부는 네게브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베두인들을 지정된 마을들로 이주해 살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강제 이주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베두인의 상당수는 정부가 지정한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 베두인의 일부는 아직도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적 행정체계에 포함되지 않는 무허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일반인들은 캠핑조차 하기 어려운 네게브 광야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들만의 마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전체 국민을 사회계층으로 나눌 때 네게브 지역 무허가 주택에 거주하는 베두인이 최하층민이라고 할 수 있다. 75-6)


3장 유대 국가와 유대 정체성


귀환법이나 시민권법에서는 법률적인 의미에서 누가 유대인인가에 대해 정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대인이라고 하면 전통적으로 유대 종교법 ‘할라카’에 따라 어머니 쪽 혈통을 따른다. 즉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을 유대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20년 만인 1970년에 귀환법을 개정하면서 이스라엘로 이주할 수 있는 유대인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개정된 법에서는 유대인의 손자녀(친가든 외가든 조부모중 한 사람만이라도 유대인인 경우), 유대인의 배우자, 유대인의 자녀의 배우자까지 범위를 확대해 이들에게도 이스라엘 이주와 자동적인 국적취득을 허용한 것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어머니가 유대인이지만 신앙으로서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유대교를 믿지 않더라도 다른 종교로 개종만 하지 않았다면 귀환법의 적용대상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와는 반대의 경우였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다른 종교로 개종했다면 이주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87-8)


유대인이 아닌 사람에 대해 유대교로 개종을 허가하는 것은 전적으로 랍비가 재판관을 맡는 종교법원의 배타적 권한에 속한다. 이 종교법원은 초정통파 ‘하레디’ 그룹의 랍비들이 장악하고 있다. 2021년 3월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방인의 유대교 개종과 관련하여 역사적인 판결을 했다. 초정통파 소속이 아닌 개혁파 랍비의 주관으로 개종한 이방인도 귀환법의 적용대상이 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한 것이다.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초정통파 측에서는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그들은 기존 방식대로 초정통파가 규정하는 절차를 거친 개종자에게만 귀환법을 적용하도록 대못을 박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대법원의 획기적 판결에 따라 이들의 이스라엘 이주와 국적취득은 허용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유대 종교법상의 유대인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귀환법에 따라 귀환 이주해 국민의 자격을 얻는 것과 종교법상의 유대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90)


유대인 중에서 유대교의 일반적인 교리와는 다르게 예수(히브리어로 ‘예수아’)가 곧 메시아(구세주)이며 그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메시아닉 유대인Messianic Jews’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라 역시 유대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 스스로의 생각과는 달리 초정통파 유대인 그룹은 이들을 유대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유대교에서 이탈한 이교도인 크리스천일 뿐이라는 것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모계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알리야의 권리를 주지 않는다. “유대인이었다가 자발적으로 다른 종교로 개종한 사람은 예외로 한다”는 귀환법의 예외 규정에 따르면,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타종교로 개종한 사람(크리스천)일 뿐이다. 이스라엘 대법원도 1989년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90-1)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에서 하레딤이 장악한 의석은 2022년말 현재 18석에 이른다. 하레딤을 배경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종교정당들은 크게 11석을 가진 ‘샤스SHAS당’과 7석을 갖고 있는 UTJ 즉, ‘토라 유대교 연합’United Torah Judaism이라는 정당으로 크게 대별된다. 이들 초정통파 종교인들로 구성된 종교정당들은 의회총선에서 매번 15석 안팎의 의석을 확보한다. 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정당 간 연합이 불가피한 이스라엘 정치체제의 특성상 이들 종교정당들은 지난 수십 년간 우파 연립내각에 빈번하게 참여해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각료직을 배분받아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율법을 실천하고 유대인으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정부의 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여타 집단들과의 갈등과 충돌은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93)


종교로서의 유대교와 현실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시오니즘을 결합한 것이 종교적 시오니즘이다. 종교적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들이 에레츠 이스라엘로 돌아와 유대인의 나라를 건국하려는 시오니즘을 적극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유대교의 정체성을 지키며 토라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토라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세속적 시오니즘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또한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유대교의 근본주의적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강경하다.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지聖地는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정치적으로 극우의 입장에 서 있다. 극우성향을 가진 종교적 시오니스트 그룹은 2022년 가을 총선에서 14석이나 차지할 정도로 약진했다. 하레디 종교정당과 종교적 시오니스트 그룹의 의원들을 합치면 32석이나 된다. 2022년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연합 정부는 역사상 가장 강경한 우파 정권으로 간주되고 있다. 93-4)


초정통파 하레디 그룹은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약 12~13%에 달한다. 그런데 이들 하레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하레디 공동체를 떠나 독자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공동체를 떠난 이들을 ‘요침’이라 부른다. 히브리어로 ‘떠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이들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요침의 상당수는 자신이 살던 집이나 공동체와 거리를 두고,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배척을 당하면서 관계의 상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배신자나 배교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미혼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비난이 덜하겠지만 결혼한 남성이 공동체를 벗어나면 그야말로 가족을 저버린 ‘나쁜 가장’으로 최악의 비난을 받게 된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하레디 공동체에서 생활할 때보다 궁핍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같이 하레디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모험에 가까울 정도로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요침의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99-100)


4장 작은 나라 강한 군대의 비밀


건국 직후부터 최근까지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국가' 이스라엘에서 국방력을 담당하는 군을 히브리어로 ‘짜할Zahal’이라고 부른다. 영문 약칭으로는 IDF 즉 ‘이스라엘 방위군Israel Defense Force’이다. ‘짜할’은 이스라엘이 독립선언을 한 직후 정식으로 창설되었지만 그 뿌리는 건국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짜할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통치하던 시절 아랍인으로부터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했던 최대 규모의 유대인 무장조직 ‘하가나’를 모체로 하고, 다른 유대인 시오니스트 무장단체인 ‘이르군’ 등을 흡수하여 만들어졌다. 이스라엘 군의 병력 규모는 17~18만 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현역 병력 못지않게 중요한 병력이 약 46~47만 명 정도에 달하는 예비군이다. 예비군은 40세(장교는 45세)가 될 때까지 연간 약 한 달 정도 훈련에 소집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부대별로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진다. 그간 이스라엘이 치렀던 수차례의 전쟁에서 예비군은 상당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4)


이스라엘의 강력한 국방역량 배경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것이 독특한 군 간부양성 프로그램이다. 그중에서도 ‘탈피오트Talpiot 프로그램’은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엘리트 양성 방식이다. 탈피오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표현으로 ‘난공불락의 망대(파수대)’라는 뜻이다. 이들 탈피온은 중위로 임관해 주로 첨단장비 연구개발 부대, 컴퓨터 통신부대, 사이버 부대, 정보기관 등에 배속되어 6년간 복무하면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이스라엘이 자랑할 만한 최고 수준의 첨단무기를 새롭게 개발하거나 작전에 배치되어 활용 중인 기존 무기의 성능을 개선하는 작업도 이들의 몫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게 되면 이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최고 엘리트로 대접받는다. 이들이 군 복무 기간 중 습득한 지식이나 경험 그리고 선후배 간에 맺은 인연은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취업으로 연결된다. 탈피오트 프로그램은 군과 학교 및 기업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115-6)


다양한 형태의 전문 특수부대들도 이스라엘의 국방안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먼저 탈피오트 프로그램보다 훨씬 앞서 통신 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활용해 온 특수부대 ‘쉬모네 마타임’이 있다. ‘쉬모네’는 히브리어로 숫자 ‘8’을 뜻하고 ‘마타임’은 숫자 ‘200’을 뜻한다. 그래서 ‘8200(8-200)’ 부대로도 알려져 있다. 8200부대는 독립전쟁이 끝난 직후에 통신정보수집과 비밀암호 해독 등을 위해 공식 창설된 특수부대이다. 인터넷이나 사이버 분야의 정보수집과 그에 대한 대응 활동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나 영국의 정보통신본부GCHQ등과 비슷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8200부대 출신들은 전역 이후에도 그들만의 모임을 만들어 창업이나 취업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8200부대는 IT 분야의 엘리트 양성조직이면서 전역 이후에도 사회적인 인정과 적절한 보상이 거의 보장되기 때문에 군 복무를 앞둔 고교생들 간에 엄청난 선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116-7)


8200부대와 더불어 유명한 군 정보부대 중의 하나로 9900부대가 있다. 9900부대는 위성이나 드론 등을 이용하여 수집한 영상을 판독・분석하여 지리정보를 제작해 정책결정권자나 지상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에 배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특수부대이다. 미국 국가지형정보국NGA의 기능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2013년부터는 이 부대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청년들을 특별 채용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적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 부대는 특정 사물을 집중적으로 탐색하거나 시각적인 관찰을 반복적으로 즐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독특한 능력을 영상정보 분석이라는 업무에 활용한다. 그 외에도 팔레스타인 주민과 유대인 정착촌이 공존하는 동부의 서안지역, 무장정파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남부의 가자지역, 구릉과 산악이 많은 북부의 레바논 인접 지역 등에는 각 지역별로 특화된 부대들이 있다. 또한 지리적 특성에 따라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특수전 부대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117)


이스라엘에는 국가 차원에서 크게 세 종류의 정보・보안기관이 있다. 해외에서의 정보수집과 비밀공작을 담당하는 ‘모사드Mossad’, 국내에서의 보안방첩 업무를 담당하는 ‘신베트Shinbeit(일명 샤박)’, 국방부 산하에서 군사정보를 취급하는 ‘아만Arman’이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정보기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모사드는 ‘기관’, ‘연구소’, ‘협회’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어 공식 명칭은 ‘이스라엘 비밀정보부Israel Secret Intelligence Service’이며, 약칭으로 ‘ISIS’라고 부른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이 건국하기 전부터 있었던 ‘하가나Haganah’ 산하의 비밀조직들을 그 모태로 한다. 모사드의 모토는 《성경》 구절로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리라Where no wise direction is, the people fall, but in the multitude of counselors there is safety, 잠언 11:14”가 그것이다. 모토에서 보듯이 모사드는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는 정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28)


5장 창업 정신과 후츠파


이스라엘 국민의 특성을 보여주는 표현 중에 ‘후츠파Chutzpah’라는 단어가 있다. 히브리어 ‘후츠파’는 ‘무례함’, ‘당돌함’, ‘건방짐’, ‘뻔뻔함’, ‘독선적임’, ‘남을 배려할 줄 모름’, ‘후안무치함’ 등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같이 부정적 의미로 가득 차 있던 후츠파가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의 성공 비결이자 발전의 원동력으로 변모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소멸되지 않고 주변의 안보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아 계속 성장 발전하는 것은 후츠파 덕분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강한 유대인의 특성이 원래 부정적이던 단어의 의미조차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그대로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만나는 유대인에게 후츠파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후츠파 정신이라는 찬사에 멋쩍어하거나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칭찬의 뜻으로 사용한 말 한마디가 오히려 심기를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현지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141-3)


이스라엘은 물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사막 지역이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척박하다. 아직 인구 규모가 1천만 명이 안 되고 다른 환경도 상당히 열악한 편이다. 당연히 경제발전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농업이나 제조업보다 부가가치가 큰 다이아몬드 가공이나 기술집약적 또는 지식기반형 산업의 비중이 훨씬 높은 편이다. 많은 국가에서 T&T를 배우기 위해 이스라엘로 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자주 사용하던 표현인데 ‘Terror(테러) 대응 경험’과 ‘Technology(기술)’가 바로 그것이다. 그만큼 기술은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국가경제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사실 이스라엘 영토에는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다. 당연히 필요한 석유의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하던 나라였다. 하지만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리바이어던’, ‘타마르’ 등 대규모 가스전이 개발되고 2013년부터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이제는 요르단과 이집트로 가스를 수출하는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143-4)


유대인이 이스라엘 땅을 떠나는 것을 ‘예리다yerida’라고 하며, 이를 감행한 유대인들을 ‘요르딤yoredim’이라고 부른다. 이 ‘요르딤’ 중에는 특히 의사, 과학자, 이공계 교수, 하이테크 분야 엔지니어 등이 상당히 많은 분포를 차지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고학력 요르딤은 이스라엘에서의 삶의 질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불만이다. 요르딤들은 특히 자신들이 감당해야 하는 세금이 계속 증가하는 것에도 불만이 크다.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초정통파 하레딤이나 빈곤층 아랍계 등 국가 경제에 별로 기여를 못하는 집단을 위해 너무 많은 세금을 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 중 다수는 종교적으로 세속적 그룹인 세큘라들이 많다. 이에 더해 끝이 보이지 않는 하마스와의 무력 분쟁 등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안보 상황 역시 이스라엘에서의 행복을 해치는 큰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148-50)


6장 조약 없는 영혼의 동맹 미국


이스라엘 임시정부는 1948년 5월 14일을 자정을 기해 독립을 선언하고 건국을 선포했다. 이 독립국가 건설의 선언에 가장 먼저 반응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다. 선언이 있던 날 자정이 지나고 겨우 11분 만에 미국은 이를 전격 승인했다. 물론 당시 미국의 승인은 ‘사실상의 승인De facto recognition’이었다. 이처럼 미국과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양국은 서로를 ‘동맹allianc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양국 간에는 그 흔한 ‘동맹조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와 미국 간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 간에도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은 그 같은 조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 이처럼 양국 간에 공식적인 동맹조약이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양국의 관계를 일반적인 동맹관계와는 다른 ‘특별한 동맹special alliance’, ‘문서 없는 동맹unwritten alliance’ 또는 ‘인지적 동맹cognitive alliance’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54, 156)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유대인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하나는 신앙적 관점에서 현대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나라가 아닌 시오니즘에 입각한 세속국가로 비판하는 일부 초정통파 그룹이며, 다른 하나는 국제사회로부터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인권 탄압 문제를 지탄받는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그룹이다. 하레디 그룹 중에는 시오니즘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은 불경스러운 선택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죄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시오니스트들은 2천 년간 지속된 디아스포라의 고통에서 벗어나 유대인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이와 달리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초정통파 하레딤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반드시 하느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시오니즘이 민족적인 차원에서 유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세속적인 정치운동인 데 반해 이들은 종교적 차원에서 하느님이 다스리는 진정한 유대 국가 건설을 염원하는 것이다. 158-9)


미국 내 유대인 중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군사적 점령과 반인권적 분리 정책을 펴는 이스라엘 정부에 비판적인 그룹이 존재한다. 이들은 주로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대의 유대인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미국에서 배운 대로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소수자 보호 등 사회적 정의를 지향하는 진보적 색채가 강한 편이다. 이들은 그간 정신적 조국으로 지지해 온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군사적 강경 조치로 일관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일종의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이들 미국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아직도 남녀가 함께 기도하지 못하도록 한다든가 전 세계 유대공동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랍계 국민을 배려하지 않는 ‘유대민족국가기본법’ 제정을 강행한다든가 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정치적, 종교적 차별조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부 강경한 진보성향의 유대인은 시나고그(유대교 회당)에서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해 모금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159-60)


이 부분에서 오랜 기간 미국에 살면서 누구보다 미국을 잘 알았던 이스라엘 고위 외교관의 주장은 대단히 흥미롭게 들린다. 그는 미국 전체 인구 중에서 유대계 미국인은 겨우 2%에 불과한데, 그들 중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인정한다. 그는 따라서 이스라엘로서는 이들 미국 유대인보다 오히려 훨씬 숫자가 많은 미국 내 복음주의 기독교인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전체 미국인의 25%를 웃돌 정도로 숫자가 많지만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은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를 넘어서는 이스라엘의 현실 인식은 아랍권과의 관계 변화 속에서 미묘한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이슬람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계속 확대해 나간다면 이슬람에 적대적인 미국 내 일부 강성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각에 과연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162-3)


아랍권 국가들 가운데 이스라엘과 수교한 나라는 현재 모두 6개국이다. 이스라엘은 제4차 중동전쟁이 끝난 후 1979년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지난 30여 년간의 적대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아랍 국가 중에서는 최초로 이집트와 수교한 것이었다. 이어 1994년에는 요르단과 두 번째로 수교했다. 두 나라 모두 이스라엘과 남쪽 및 동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이며, 상호 대사관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2020년에 와서는 걸프만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진전이 보이면서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 및 바레인과 수교한 데 이어 수단 및 모로코 등과도 연이어 국교를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이들 나라 중에서 가장 먼저 아랍 에미리트UAE가 2021년 7월 마침내 이스라엘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UAE 대사관이 개설된 지역은 대다수 국가의 대사관이 있는 텔아비브 지역이다. 이는 아랍권 국가로서는 세 번째로 이스라엘 영토 안에 대사관을 개설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171)


7장 젊은 나라 속의 오랜 율법


이스라엘에는 결혼과 관련한 법률적인 문제를 다루는 두 개의 법원이 있다. 하나는 랍비청이 주관하는 종교법원이고 다른 하나는 세속법원(가정법원)이다. 히브리어로 ‘베이트 딘Beit din’이라고 부르는 유대교 종교법원은 유대 종교법에 정통한 초정통파 랍비가 재판관을 맡는다. 그런데 유대인의 결혼이나 이혼의 허가 여부는 전적으로 종교법원의 독점적 권한에 속한다. 가정법원은 유대인의 결혼이나 이혼에 대한 법률적 판단 권한을 갖지 못한다. 결혼문제와 관해서 이스라엘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일종의 정교일치 국가라고 할 수도 있다. 결혼에 앞서 유대인은 랍비청에 자신이 유대인임을 입증하는 서류, 예컨대 유대인인 모친에게서 출생한 증명서나 종교법원으로부터 발급받은 유대교 개종 증명서 등을 제출하고 결혼허가 신청을 한다. 그런 다음 제출서류에 문제가 없으면 종교법상 권한을 갖춘 랍비의 주관하에 결혼 절차를 밟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친 경우에만 합법적 결혼으로 인정을 받는다. 180-1)


하레디 가정의 초정통파 여성들은 결혼식 전날 밤 몸을 정결하기 위해 ‘미크베’에 들어간다. 미크베는 일종의 욕탕이다. 그러나 씻고 휴식을 취하려는 실용적인 목적보다 몸을 정결한 상태로 되돌린다는 의식적인 목적이 강하다. 육체적인 정결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정결함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미크베는 시나고그(유대교 회당)처럼 유대공동체에 반드시 있어야 할 시설의 하나로 간주된다. 결혼에 있어서 또 하나의 이슈는 랍비와 관련된 문제이다. 결혼문제에 대한 최종 권한은 랍비청이 가진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초정통파 랍비가 아닌 개혁파 랍비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종교적 신념이 개혁적이라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모계 유대인 신분을 입증하지 못해 초정통파 랍비청으로부터 결혼을 거부당할 때 비정통파 랍비들에게 주례를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81)


히브리어 ‘아구나Agunah’는 결혼한 여성이 여러 가지 이유로 혼인관계를 끝내고 싶어 하지만 혼인이라는 굴레에 속박당한 채 살아가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유대 종교법상 결혼한 여성은 남편이 이혼에 동의하거나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 한해서 혼인관계가 종료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재혼도 할 수 있다. 남편이 이혼에 동의한다면 “이제 다른 남자가 당신을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게트’(일종의 이혼선언서)를 작성해 아내에게 전달하게 되는데 부인이 이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이혼이 성립하고 혼인관계도 끝나는 것이다. 성경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증서(게트)를 주고 집에서 내보내면 그 여자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다. 두 번째 남편도 그 여자에게 이혼증서를 주거나 또는 사망한다면, 그 여자를 내보냈던 첫 번째 남편은 그 여자를 다시 맞이해서는 안 된다”(구약 신명기 24장)는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을 두고 유대 종교법에서는 이혼증서를 줄 수 있는 권한은 오직 남편에게만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183-4)


‘샤밧Shabbat’은 유대인의 안식일이다. 샤밧은 양력 토요일로, 금요일 저녁 해가 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가 질 때까지이다. 대부분의 관공서와 직장은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간 휴무한다. 일요일은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되는 날로 평일이며 일하는 날이다. 물론 오늘날 세속적 성향의 세큘라 유대인은 샤밧을 잘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초정통파 하레딤은 여전히 이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들은 샤밧에 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TV 시청이나 자동차 운전 등도 금기시한다. 이들은 꼭 필요한 경우 이방인에게 샤밧 동안 율법상 금지된 행동을 대신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샤밧 기간 동안 유대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이러한 비유대인을 ‘샤밧 고이’라고 부른다. ‘고이’는 ‘이방인’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에서 체류했던 한 유학생은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 주인인 초정통파 유대인으로부터 샤밧에 집 안의 전등 스위치를 대신 눌러 달라든지 냉장고를 대신 열어 달라는 등의 부탁을 받았다는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190)


유대인들이 기리는 명절에는 봄철의 유월절逾越節, 초여름철의 칠칠절七七節, 가을철의 초막절草幕節 등이 있다. 히브리어로 ‘페사흐’라고 부르는 유월절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유대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안전하게 탈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다. 칠칠절은 히브리어로 ‘샤부오트’라고 부르는데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첫 수확의 기쁨을 감사하는 날이다. ‘수코트’라고 부르는 초막절은 유대민족이 40년간 광야에서 초막을 지어놓고 생활할 때 하느님께서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는 축제의 날이다. 일주일간 진행되는 유월절 기간에는 누룩이 들어있는 발효식품인 ‘하메츠’를 갖고 있거나 먹어서는 안 된다. 유대인은 대신에 누룩이 들어 있지 않아 맛이 없고 딱딱한 ‘마짜’를 먹게 된다. 《성경》에 ‘무교병無酵餠’이라고 나오는 것으로,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이나 과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유월절을 ‘무교절’이라고도 부른다. 198)


에필로그 닮은꼴의 나라, 이스라엘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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