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밥 위에 문화를 얹은 일본음식 이야기
박상현 지음 / 따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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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이런 단순한 과정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고도의 숙련이야말로 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사물의 본질을 헤아리거나 철학적인 물음의 답을 찾는 대신, 당장 눈에 보이는 본능의 세계에 충실했다. 이러다 보니 도덕적이고 윤리적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했다.
대신 그들은 '고도의 숙련'을 도덕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다. 숙련이 곧 도덕이다 보니 장인이 대접받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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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 탁월함과 도덕적 탁월함은 다른 영역에 속한다. 기능적 탁월함은 외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장인의 손길은 뛰어난 작품을 빚어낼 때 인정받는다. 그가 만들어낸 요리는 그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군자의 도덕은 ‘신독’(愼獨)으로 규정할 수 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도 군자는 자아의 도덕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외적인 표현은 부수적인 요소이며, 자아의 성취는 만인의 손가락질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내면의 평정을 기반으로 한다. 
 
숙련된 기능은 도덕성의 제약을 받지 않는 대신 타인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뒤따른다. 기능의 숙련도는 물질적 가치로 환산되어 평가되며 이것은 다시 장인의 권위를 굳게 다진다. 권위는 구성원들의 삶을 책임진다는 전제 하에 존경과 충성을 이끌어내고 조직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가 지닌 가치는 구성원들의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다. 기술 발전이 사회의 중요한 척도로 자리매김하는 근대로 접어들수록 기능은 도덕의 자리를 대체한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흡수한 유일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사실에는 이러한 정서가 깔려 있다. 자본주의야말로 기능적 탁월함을 무기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체제이다. 누구나 볼 수 있고, 평가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구체화된 물질이 평가의 제1기준이다. 육중한 마천루들이 도덕이 폐기되어 묻힌 자리에 올라선다. 기능과 도덕이 다른 영역에서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내면적 가치들도 기능의 하위 영역으로 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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