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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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운명은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 차 있고,
행운과 불행은 돌고 돈다는 점을 생각하시고.
고통의 바깥에 있는 자는 위험을 보아야 하며,
잘나가는 자일수록 인생을 세심하게 살펴야 하오.
방심하는 사이에 느닷없이 파멸이 닥치지 않도록.
(필록테테스 502행)

흔히 동양의 사유는 음양의 조화, 화복(禍福)이 순환하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격언으로 대표된다. 반면 서양의 사유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엄격함, 절대자 앞에 선 단독자라는 관념이 굳게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타자를 재단할 때 수시로 이분법의 잣대를 활용하지만, 현실은 경계가 불분명하거나 양자가 융합된 상황이 대부분이다.

아후라 마즈다와 아흐리만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싸우지만 생명체의 마음에 담긴 본성의 일부이며 사이코패스의 뇌만 떼어내 진공관에서 배양하는 매트릭스의 세계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우리가 서양의 사유라고 콕 집어 말하는 직선적 세계관은 그리스도교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헬레니즘적 세계관은 이와 사뭇 달랐던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운명의 무게를 체감하고 행복과 불행이 동전의 앞뒷면과 같음을 놓치지 않았다. 이들이 중국적 사유와 다른 점은 인간을 닮은 신의 섭리를 긍정했으며, 그 뜻에 부합하여 살 것을 주장한 대목이다. 동양 사유의 ‘천(天)’에도 인격적 신의 개념이 일부 들어있지만, 세상의 질서나 운행 원리라는 형이상학적 속성이 더 짙게 배어 있다.

그리스 비극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풀기 위해 신의 개입-데우스 엑스 마키나-이라는 다소 허술한 요소를 도입한 것도 바로 꼬일대로 꼬인 운명의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는 수단을 이러한 신적인 힘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가 깔려 있었기에 자신과 닮지 않은 그리스도교와의 기나긴 동거를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어온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오늘, 저 사람에게는 내일
즐거움이 쓰라림으로, 그러다가 다시 사랑으로
변하니까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608행)

처음과 마지막을 예비해주는 신의 음성과, 삶의 희로애락을 주관해주는 신의 손길을 느낄 수 있던 시대는 행복했었다. 과학이 진리의 동의어가 될수록 가속화되는 자아의 분열은 신을 갈구하면서 역설적으로 신의 음성이 지워진 시대를 조립해냈다. 완전한 긍정의 끝에서 내달린 길은 완전한 부정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머무를 자리는 기나긴 사잇길의 어딘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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