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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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단락 글쓰기>

 

오뒷세우스의 귀향은 표면적으로 육체적 시련의 과정이지만 그가 짠 바닷물을 삼키면서 단련한 것은 타인의 마음을 읽는 자세이다. 그는 선악과 호오가 뒤얽힌 인간 군상의 속내를 무던히도 많이 관찰한 끝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에 걸맞는 같은 마음을 더욱 갈구한다. 페넬로페의 같은 마음이 여전히 고향을 품고 있음을 확인한 그는 흔쾌히 미소 지으며 긴 여정에 함께 오른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기 전이나 전쟁의 와중에는 그저 꾀가 많고 영리한 사람이었던 오뒷세우스는 귀향 길의 간난신고 속에서 정말 많이도 떠돌아다닌 자로 거듭난다. 이 거듭남은 각종 시련영웅적으로 이겨낸 흥미만점 여행기의 주인공이 발산하는 호방함이 아니라 이전에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 자가 느끼는 ‘발견의 환희에 바탕을 둔다. 이제 오뒷세우스는 고향의 평온함에 묻혀 살던 자신을 끌어내어 폭풍우 속으로 내친 신들의 주사위 놀음을 저주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같은 마음이라는 정신적 귀향에 대한 열망을 안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 궁극적인 목적지로서의 고향은 근심 없던 과거의 이상향으로의 귀환이 아니다. ‘같은 마음을 알게 된 후에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한 인간의 소망(素望)이 집약, 질적으로 고양된 장소이다.

 

지난한 고민이나 관찰을 동반하지 않고도 같은 마음을 본능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바로 전장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갯길에서 10년 간이나 몸을 부대낀 전우들 사이에서는 굳이 같은 마음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전투가 끝나고 전리품을 배분하는 자리에서 탐욕을 드러내고, 귀향선에 올랐지만 자신의 충고를 무시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동료들의 태도에서 오뒷세우스는 같은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되었다. 칼륍소의 유혹과 키르케의 환대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놀라운 기회이었지만, ‘같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반자의 포옹이 아니라 일방적인 초대에 불과했다. ‘다른 마음을 가진 타인의 존재같은 마음에 대한 향수를 더욱 진하게 불러온다. ‘같은 마음은 신체적 친밀함이 아니라 영혼의 교감을 요청하는 행위가 된다.

 

같은 마음은 타인의 존재를 전제한다. 내면을 성찰하기 위해서는 거울에 비친 자신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치는 타인이 필요하다. 타인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그 모양을 읽는 기술을 갖춰야만 세계 일반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세계 이해의 관문을 거치고 돌아온 사람의 내면은 자신만을 바라보고 파악했던 예전의 내면과 겉모양만 같을 뿐 본질이 다르다. 순환하는 여정을 겪은 사람만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고, 자신 psyche를 돌보게 되는 것이다. 영혼의 조화를 깨달은 사람은 육체의 부대낌을 넘어서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 절차는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통합되고 다시 모순이 싹트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페넬로페의 같은 마음을 확인한 오뒷세우스는 이제 그 여정을 흔쾌히 미소 지으며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오뒷세우스가 칼륍소의 호의를 뿌리치고 신이 되기를 거부한 것은 같은 마음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루노 스넬의 말처럼 신은 지상에 현현(Epiphanie)하기 전에도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공동체 안에서 껍질을 깨고 ‘발견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부여 받는다. 신의 언어에 없는 같은 마음을 향한 줄기찬 탐구는 인간의 고유성을 고양하여 역사의 씨앗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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