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 - 주술제의적 정통성 비판
후지타 쇼조 지음, 윤인로 옮김 / 삼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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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포괄적인 '철학'상의 논쟁이, 가장 현세적이고 매우 '특수주의'적인 정치적 항쟁과 상호 이행하여 서로의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다는, 이 패러독시컬한 동적인 상태는, 생각해보면 반드시 부조리한 현상인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일정한 관련이 존재하고 있다. 첫째, '사상'은 스스로를 올바른 사상이라고 믿으면 믿을수록 그것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하려는 '사도使徙'를 낳는다. 그 '사도'의 '전도'는 당연히 기존에 있어왔던 관습이나 다른 종류의 '사회의 신념체계' 사이에 얼마간의 모순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하여 '사상'은 사회적 레벨의 존재가 되고 동시에 사회적 다툼의 원인이 된다." "둘째, 정치적 통합자는 물리적인 지배만으로는 오래도록 정치적 통합을 재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일정한 사회적 신념체계에 의거하고 그것에 의해 '정당한 정치지배'로 '승인'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베버가 말하는 '지배의 정당성 근거'가 모든 정치적 지배·지도·통합에서 필요해지는 것이다."(29)


제1장 이단의 유형들


# 이단이 출현하는 사회의 문화적 유형

1. 주술로부터의 해방(Entzauberung) : 초월적 종교에서 주술적 요소를 걷어내고 합리적인 제도를 형성하려는 사회(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논쟁)

2. 주술 (그 자체의) 합리화 : 합리화된 주술 제의로서 사회 통합을 수행하려는 자연적 사회(일본의 천황제)

3. (신이 아닌 이 세상) 질서의 합리주의 : 정치사회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는 사회(중국의 유교)


"아리우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하여, '아들'은 아들인 이상 '태어난 것'이고 '태어난 것'인 한에서 그 존재에는 '시작점'이 있고, 그 존재에 '시작'이 있는 것은 논리적 필연으로 '비非존재'였던 때가 있었음을 뜻하며 따라서 그것은 '영원'한 신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논리가 한번 신도들의 '심리적' 레벨에서 작용하기 시작할 때면 '신의 아들' 예수를 다만 역사적 존재로 함몰시켜버리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 경우에 예수는 고작 거대한 정신사적 변혁을 이룩하는 역사적 지도자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만다. '대大정치가'이고 교회 전체의 통일성에 마음을 쓰고 있던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의 그런 논리에 반대해 '아버지와 아들'의 일체성을 확보하려고 분투했다. 그 결과 겨우 한 글자 차이로 '삼위일체'의 교의가 확립되었다고 말해진다. 'homoousios(동일성)'와 'homoiousios(유사성)의 차이가 그 문제의 한 글자를 확보하려고 분투했다."(38-9)


"왜 그러한 '고안'으로 이 정도의 아슬아슬한 칼부림을 하기까지 '삼위일체설'은 보호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혹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통일성이 그 3자 사이의 어딘가에서 한치라도 깨지게 된다면, (1) 교회는 아버지인 신과의 연속성을 잃고 이 세상 속 인간 예수를 교조로 하는 오직 세속적인 집단이 되어버리거나, (2) 신도 중 누군가가 함부로 '신' 혹은 '신과 예수'에 자기를 동일화하는 것을 허가하게 되거나, (3) 교회에 깃든 '영靈'이 '성령'이라는 보증을 잃게 됨으로써 각 지역을 배회하는 숱한 주술적 정령들과의 구별 원리를 구할 수 없게 되어 결국 토착적이고 특수적인 각종의 주술제의적 신앙이 교회로 흘러들어가 '악령'이 거꾸로 교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한 세 가지 예의 귀결은 교회의 해체와 다를 바 없다. 또한 교회가 혹여 해체되지는 않더라도 현세로부터의 초월이라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그리스도교회 자체로부터 사라지게 될 것이다."(41-3)


"'수육성受肉性'을 상실한 교회가 '이 세상'의 권력정치적 상황에서 자기를 유지하려면 그 스스로도 또한 군사력에 기대는 정치집단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일본 고대의 진호국가불교鎭護國家佛敎에서 '절'은 그렇게 해서 '승병'을 가졌고 일대 권력집단이 되어버렸다." "그보다 '삼위일체'의 해체가 훨씬 성가신 것은 교회의 내부 제도 그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육受肉'에 의해서만 현세에 존재하는 것인 까닭에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육肉' 그 자체로 될 위험을 내부에 지니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칫 '수육' 속의 '육성肉性'을 거부하려는 순수 '정신주의'를 낳음으로써 현세를 조직화하는 제도임을 그만두려는 경향을 갖는 것이다. 말하자면 '육화'의 위험[신성을 완전히 잃을 위험]과 '육에 있어 육에 작용하는 것을 그만둘' 위험[세속성을 완전히 거부할 위험]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사회 속의 정통·이단 문제란 '수육성'이 가진 내적 갈등의 전개와 다름없다."(43-4)


# 수육성受肉性 :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신, 인간의 몸을 받아 입은 신, 성육신의 신이 세속으로 내려옴을 뜻한다.


"그리하여 종교적 공의회의 개최는 말하자면 '필연'이었다. 아타나시우스·아리우스 논쟁은 정신적 체계의 내적위기를 극복하여 그 정신체계를 동시에 적극적(실정적實定的)인 '이 세상' 제도로 확립하기 위해 요구된 논쟁이었다. '승리'를 얻은 사상체계가 '승리자'의 거스를 수 없는 인간적 타락으로부터 본래의 자기 면모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자기에게 부과한 규율의 체계를 찾아내려 했던 논쟁이 4세기의 교의 논쟁이었던 것이다. '도그마'란 본래 그러한 목적을 위해 형성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삼위일체'란 단지 광신적인 망상가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비합리적' 교설이 아니라 '주술제의로부터의 해방'을 감행하고 '물신숭배'를 타파했던 초월적 보편종교가 자기를 포지티브한[실정적인] 형태로 사회적으로 정착시키고('수육受肉') 복고적 반동과 인간의 자연적 타락으로부터 자신의 정신적 존재를 지켜나가기 위해 불가결했던 교의였다. '삼위일체'가 교회 제도에서 사활의 문제였던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48-9)


제2장 일본 사회에서의 이단의 '원형'


"일본 사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사회'와 같이 제1형에 속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신'을 향한 신앙을 '올바로' 지키기 위한 교의적 규범에 입각하여 사회가 구성된 것이 아닌 것이다. 또한 '질서의 합리주의 체제'와 같이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해 교의적인 규범을 필요로 했던 것은 일본사회 전체의 규모에서는 도쿠가와 시대뿐이었다. 오히려 혈통 '원리'(?)를 체현하고 있는 천황제의 면면한 존속에서 상징되고 있는 것처럼 일본 사회 전체를 덮어씌우고 있는 의식 형태로는 압도적으로 제2형태의 자연적 사회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확실히 이 사회에도 '신'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고 지금도 '신사神社'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신에 만인·만물이 귀의하는 것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인上代人은 그 신앙하는 신들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신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천황의 신성성神聖性을 드러내기 위해서만 그 근원으로서의 신들을, 따라서 '신대사神代史'를 이야기했던 것이다.〉"(71-2)


"천황의 '신성성'은 개인적 실재로서의 절대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혈통적 '배후에' 신들이 있음으로부터 도출되고 있는 것에지나지 않는다. 곧 천황은 신들의 '후예'인 것에 의해서만 '신성화'되지만 정작 그 신들은 천황의 '신성화'를 위한 배경=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적 '신들'의 상대성과 그 수단성이라는 특징은, 파고들어 추적해보면 결국 신들의 '부정성不定性[한정되지 않음]'과 나아가 '아득한 저쪽으로의 신의 증발[disappear]'이라는 특질에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그 '신'의 존재의 증발 과정이 명확해지면서 거꾸로 주술적 제의의 구체적인 존재성이 점점 더 현실화해가는 것이다. 제祭의 대상은 사라져 없어지고 제를 지내는 일과 그 일을 행하는 구체적 인격만이 분명한 윤곽으로 드러난다. '영靈'이 한정 없는 것이 되어감으로써 영매 행위와 영매자만이 강한 존재성을 띠어간다. 신들과 '신대사'가 천황과 천황 제의의 단순한 배경적 수단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72-3)


"이와 같이 천황제의 주술적 제의 아래서는 상대가 부정不定으로 막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 상대에 대한 관계의 방식을 원리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제의의 존재방식의 '옳고 그름'이 체계적으로 문제시 되는 일이 없다. 이 경우에 '취해야 할 태도'로서 일반성을 가지고 언명할 수 있는 가르침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삿된 마음이 아니라 곧은 마음을 가지고 제의·점술에 접하라'는 주관적 심정의 태도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것이라면 상대가 무엇이든 막론하고 타당한 가르침이다. 심정의 곧음만을 가르치는 교설은 객관적인 양식의 옳고 그름에 대한 사색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전자는 태도의 자연스러움만을 요구하고 후자는 무엇보다도 '진리에' 합치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문제 삼는다. 이리하여 천황제의 의식구조에서는 신 곁에 보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예배하는 자의 자연적 심정 곁에 보편적 상태가 요구된다. 전통적 '청명심淸明心'의 교설은 그에 따른 결과이다."(80-1)


"따라서 매우 역설적이지만 정치사회의 통합에서 제의 이상의 규칙 체계가 필요해지자마자, 그것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세계적 사상의 여러 체계가 아주 간단히 수용된다. '치국평천하'의 가르침인 유교는 물론 불교와 같은 현세 부정적인 세계종교조차 그런 관점에서는 수용이 허락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국체國體[고쿠다이]의 무한포옹성'과 세계적 사상체계들의 '잡거성雜居性'(마루야마 마사오, 『일본의 사상』)이 여기 일본 사회의 특징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수용된 사상체계가 한번 제사공동체로서의 국민적 통일을 때려 부술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자마자 그것은 즉각 '가이쿄外敎[외래적 종교·가르침]', '아다시카미他神[다른 신]'으로 이단시된다." "이리하여 고전적인 천황제의 의식형태 아래서 일어날 수 있는 이단이란 주술제의적 통합체계의 중심을 점하고 있는 '공적 주술제의'의 권위성을 위협하는 것, 곧 구체적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공적 주술제의'의 권위를 폄하하는 것이었음이 분명해진다."(82-4)


# 불교, 소라이학(유학), 기리시탄(가톨릭),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모두 위의 조건하에서 이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


제3장 근대 일본에서의 이단의 여러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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