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전쟁과 일본
박맹수 외 지음, 한혜인 옮김 / 모시는사람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 동학사상의 특징

1. 시천주侍天主 : 누구나 자신 안에 ‘천주’(만물의 생명의 근원)를 모실 수 있다는 만민평등 사상

2. 보국안민輔國安民 : “국가의 악정을 고쳐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민본주의적 사상

3. 후천개벽後天開闢 : 현세가 종말을 맞이하고 가까운 미래에 이상적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

4. 유무상자有無相資 :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도와준다는 공동체 정신


# 동학조직의 구성

1. 대도소大都所 : 2대 교주 최시형이 1893년 충청도 보은에 설치한 총본부

2. 포包(대접주) : 몇 개의 접을 묶어 만들어진 중간 조직

3. 접接(접주) : 35-70호 정도의 규모로 지역에 만들어진 기초 조직


# 동학농민전쟁의 전개

1. 최초의 무장봉기 : 1894년 2월 15일 전봉준 등이 중심이 되어 고부의 악덕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항의하면서 일어난 봉기

2. 혁명을 목표로 한 봉기: 전봉준과 손화중·김개남 등의 대접주들이 뜻을 모아 전면 봉기하여 황토재에서 전라 감영군을 격파(5월 10일)하고 전주마저 점령(5월 31일). 동학농민군 진압을 구실로 청나라와 일본군이 조선 출병.

3. 전주화약(全州和約) : 전라감사 김학진과 전봉준은 농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도소(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 개혁을 진행하기로 합의

4. 항일투쟁 : 일본군의 경복궁점령 소식이 전해지면서 10월 이후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2차 봉기. 두 차례의 우금티 전투(11월 10-12일, 12월 4-7일)에서 일본군에게 대패

5. 우금티전투 이후 : 일본군의 포위섬멸작전


후비 제19대대 3개 중대 중 일본군 서로 부대인 제2중대는 남·북접 합동 농민군의 북상을 논산평야 북부에 있는 금강 강변의 요지인 공주성에 들어가서 기다렸습니다. 11월 20일에 농민군이 북상해서 동학농민전쟁 최대의 격전이었던 공주전투가 두 차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군 후비 부대는 스나이더 소총이라는 라이플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라이플총은 탄구를 회전시키도록 총 내부에 나선형 홈이 새겨진 총으로, 당시의 소총과는 격이 다른 사정거리와 명중률, 살상력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 보병전에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 최대의 격전이 되었던 이 공주전투가 전장의 최후로 서술되어 있는 우금티전투입니다. (···) 수만 명의 동학농민군은 100명 단위로 병력이 훨씬 적은 일본군에게 개개 전투에서는 압도적으로 격파당하였습니다. 죽창과 화승총을 가진 농민군과 라이플총을 가진 훈련된 근대 보병대와의 싸움은 농민군 200명을 일본군 1명이 대적할 정도로 엄청난 전력 차가 있었던 것입니다.(94-6)


# 후비병 : 현역과 예비역 다음으로 병역에 임한 27-32세 가량의 최고령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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