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배신 - 착한 유전자는 어째서 살인 기계로 변했는가
리 골드먼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부 인류를 생존시킨 네 가지 형질의 비밀


1장 우리 몸은 어떻게 지금처럼 프로그래밍되었을까


"DNA의 양은 각 염색체에 따라 다르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각각 32억 쌍씩 받아 모두 합치면 64억 쌍의 뉴클레오티드(DNA를 구성하는 단위 분자)가 포개어 합쳐져 이중 나선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64억 쌍은 보통 '염기쌍'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누군지를 규정하는 단어(유전자, 즉 유전 형질을 발현시키는 인자)를 이루는 글자들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우리의 염색체 DNA에는 거기에 호응하는 RNA를 위한 암호를 가진 약 2만 1000개의 유전자가 들어있다. 또 RNA에는 우리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데 꼭 필요한 특정 단백질을 만드는 암호가 들어 있다. 놀랍게도 이 2만 1000개의 유전자는 우리가 가진 염색체 DNA의 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또 다른 75퍼센트 DNA에 들어있는 1만 8000개의 유전자는)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를 활성화 또는 억제하거나 단백질 기능 자체를 제어하는 신호를 보내는 기능을 한다. 나머지 20퍼센트 정도의 DNA는 아직 그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정크DNA이다."(31-2)


"우리는 뇌를 사용해 환경에 대단한 변화를, 그것도 이전에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속도와 방향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세대가 흘러도 이전 세대의 DNA를 '복사기로 복사하듯' 완벽하게 반복하도록 만들어진 우리 신체는 계속해서 느린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의 유전자가 현대의 변화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계산은 간단하다. 1000명 중 1명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10세대(약 200년), 즉 산업 혁명이 시작된 뒤부터 지금까지 기간 만에 인구 전체에 퍼지려면 생존에 엄청나게 유익한 돌연변이여야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그 유전자를 지니지 않은 사람보다 지닌 사람이 자손을 가질 확률이 30배 이상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우리 모두가 전례 없는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뿐이다. 예를 들어 인류 전체가 HIV에 감염되었는데 치료할 방법이 전혀 없는 그런 시나리오 같은 것 말이다."(65)


2장 굶주림, 음식 그리고 비만과 당뇨라는 현대병


"지구상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인간은 몸에 필요한 열량을 제공하는 음식을 간절히 원했다. 우리는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할 능력이 있어서, 음식이 풍부할 때 과식을 해서라도 남은 열량을 지방으로 축적해 다음에 찾아올 기근을 이겨낼 수 있다. 또 다양한 음식을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로 바꿀 능력도 갖추고 있다. 굶주림은 개인뿐 아니라 생물 종 전체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기에 우리의 본능과 인체 내 조절 장치는 전부 과식을 해서라도 당장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흡수하는 쪽으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기울어 있다. 인체는 손에 넣을 수 있는 음식이 늘 넘쳐나는 상황을 예상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지 않다. 특히 사냥이나 채집을 하면서 엄청난 열량을 소비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음식은 아예 계산에 들어 있지도 않다. 그 결과 꾸준한 식량 공급이 확산되면서 비만과 당뇨병 같은 문제도 함께 확산되기 시작했다."(72)


"배가 고프다는 것은 시상하부가 알려 주고, 배가 부르다는 것은 장에서 보내는 피드백이 알려 준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음식을 먹도록 만드는 것은 시상하부도 장도 아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은 바로 미각(입맛)이다. 미각은 혀에 있는 세포 기관인 미뢰(맛봉오리)에서 시작된다. 우리 혀 표면에는 수천 개의 미뢰가 자리 잡고 있다. 혀 뒤쪽 골진 곳, 혀 양쪽 가장자리, 그리고 입천장까지 모두 이 미뢰가 깔려 있다. 미뢰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맛을 감지하기 때문에, 혀끝으로만 뭔가를 핥는 것은 제대로 된 맛을 다 느끼기에 적당한 방법이 아니다. 포도주 감정가들이 포도주 한 모금을 입 전체에 굴려 혀와 입천장에 모두 닿도록 하는 것은 그저 잘난 척하려는 게 아니라 근거 있는 행동이다." "놀랍게도 어떤 유형의 맛에 특화된 미각 센서들 각각은 그것들이 어느 곳에 위치해 있든 상관없이 모두 뇌의 정해진 부분─단맛 센터, 감칠만 센터, 짠맛 센터, 쓴맛 센터, 신맛 센터─으로 정확히 메시지를 보낸다."(92)


"건강한 사람이 살찌기보다 살빼기가 실제로 더 어려운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살이 빠지면서 필요한 열량도 줄어든다. 인체는 체중의 1퍼센트가 감소할 때마다 20칼로리를 덜 소모하게 된다. 둘째, 거기에 더해 체중이 감소할 때, 얼마나 살이 쪘는지에 상관없이 입맛을 돋우는 적어도 일곱 가지의 서로 다른 호르몬과 분자의 분비가 상승한다. 이런 물질의 분비는 한번 높아지면 그 수준에서 몇 년 동안 지속된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생존하는 데는 아주 유용한 형질이었지만 살을 빼려는 현대인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이전보다 열량이 덜 필요한데 더 배가 고파지면 원래 체중이 얼마냐에 상관없이 살빼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셋째, 체중을 유지하려는 이러한 신체 내부의 요인을 생각하면, 애초에 살이 찌지 않도록 하는 쪽이 한번 쪘다 빼는 쪽보다 훨씬 쉽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133)


"항상 불확실한 식량 공급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몸은 반복되는 아사의 위협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우리의 미뢰는 열량 밀도가 높은 지방, 당, 단백질을 원하도록 만들어졌다. 소장과 대장은 섭취한 음식, 특히 원래 형태에서 분해되어야 하는 음식에서 영양소를 최대한 흡수한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가능할 때마다 과식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서 장래에 있을지 모르는 식량 부족에 대비해 지방을 저장한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너무 뚱뚱해지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무거운 사람은 가볍고 건강한 사람보다 같은 일을 하는 데 열량을 더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만이 되기 쉬운 유전적 성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유행병처럼 퍼진 비만이 전 세계 인류의 게놈에 갑자기 변화가 와서 생긴 현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간단히 말해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 대신 운동은 덜 한다는 것이다."(154-5)


# 구석기 식사 목록에 없는 것들 : 동물 유제품, 곡물, 정제 설탕, 정제 식물성 기름, 알코올 


3장 물, 소금 그리고 고혈압이라는 현대병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으면 탈수 증상이 나타나고 혈압이 떨어진다." "탈수가 되면 90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진 액체 성분인 혈장이 줄어들어 전체 혈액량이 감소한다. 처음에는 혈액량이 줄고 혈류 속도가 감소하는 것을 상쇄하기 위해 동맥이 좁아진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덜 나오면 수압을 유지하기 위해 호스 끝에 달린 노즐의 구멍을 좁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르면 그렇게 유지하는 압력마저 떨어진다. 혈압이 떨어지면 우리는 현기증이 나거나 기절하며, 낮은 혈압으로 인해 뇌와 다른 중요 기관들로 충분한 양의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그런데 우리는 순수한 물만으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소변과 땀으로 소금도 잃기 때문에 염분을 섭취해야 한다. 신장은 몸안이 너무 싱겁거나 짜지 않도록 불필요한 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동시에 적절한 양의 소금을 배출한다. 한편 소금은 필요한 물, 또는 소량의 여유분 물을 몸속에 비축하도록 돕는다."(166-7)


"견줄 데 없이 월등한 땀 흘리는 능력은 인간이 끈기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격렬한 육체 활동 중에 더 정상적인 또는 정상에 가까운 체온을 유지하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 몸이 땀을 분비하면 피부 표면에 맺힌 물을 증발시키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는 몸에서 열의 형태로 배출이 되므로 체온이 식는다." "땀을 흘리는 것이 인간에게 이토록 중요하므로 우리는 다른 포유류보다 더 많은 양의 물을 마셔야 한다. 탈수증과 저혈압은 무척 위험할 수 있어 우리 조상들은 이 문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만 했다. 그리고 앞으로 흘릴 땀을 대비한 커다란 물탱크가 몸 자체에 없으므로 인체는 뇌, 폐, 간, 부신 등에서 나오는 각종 호르몬의 도움으로 약간의 잉여 수분(그리고 거기에 항상 따르는 소금)을 몸 전체에 고루 분산해 보유한다." "또 신장을 제어해 소금과 물이 부족할 때는 보존하고 너무 많으면 배출하도록 한다."(173-5)


"몸에 물이 부족해지면 신장으로 들어가는 혈액의 양이 줄어들고, 그러면 신장은 체내 염도를 정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적정 비율의 나트륨과 물을 몸속에 보존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데, 그 결과 신장에서 만들어지는 소변의 양이 줄어든다. 경미한 탈수 현상이 생겼을 경우 우리는 소변을 통한 수분 배출을 하루에 1쿼트(약 0.95리터) 이하로 줄여 몸속에 지니고 있으며 독이 될 폐기 물질을 배출할 수 있을 정도로만 소변을 만든다. 몸 안에 물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면 동맥과 정맥의 근육들이 수축하는 방법으로 적절한 혈압을 유지해 혈액량이 줄어도 심장으로 돌아가는 피의 양을 증가시킨다. 한편 심장은 더 힘차고 빨리 박동해 줄어든 혈액이 더 빨리 몸을 순환하도록 한다." "나트륨과 물의 경우 과잉 보호가 주는 유리함은 간단하다. (몸에 나트륨과 물이 부족해서) 혈압이 너무 낮아지면 우리는 기절하거나 죽는다."(180-1)


"동맥이 점점 경화되는 현상은 두 가지 원인 때문에 벌어진다. 첫번째는 혈액이 흐르는 혈관 안쪽의 얇은 층에 주로 콜레스테롤로 이루어진 지방 플라크plaque가 엉겨 붙으면서 표면이 딱딱해지는 경우다." "모든 동맥에는 작은 근육들이 한 겹 들어 있어서 수축과 이완 작용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동맥 경화의 두 번째 원인이다. 이 근육들이 수축하면 동맥은 혈액의 흐름에 더 크게 저항하고 이 때문에 혈압이 높아진다. 이러한 수축 작용은 탈수증이 생겼을 때 혈압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이다. 그런데 혈압이 약간이라도 높아지면 이 근육층은 또 다른 이유로 수축한다. 늘어난 압력으로 인해 너무 많은 혈액이 중요 장기에 쏟아져 들어가 손상을 초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처럼 현대인의 고혈압 중 약 95퍼센트는 '본태성本態性 고혈압'으로 분류된다. 이 용어는 나트륨 조절 장치(나트륨을 보존하거나 동맥을 수축하는 일을 맡은 호르몬)가 잘못 맞춰져서 생긴 고혈압을 가리킨다."(203-4)


4장 위험, 기억, 두려움 그리고 불안과 우울증이라는 현대병


"스트레스는 뇌하수체를 자극해 신장 가까이 위치한 부신에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을 분비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아드레날린이 대량 분비되면 맥박 수와 혈압이 증가하고 정신이 더 바짝 나서 싸우거나 도망할 준비를 재빨리 갖출 수 있다. 생리 작용에 따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자연적으로 분비되면, 우리는 정신이 더 기민해지고, 몸속에 소금을 보존하고, 감염에 맞서 싸울 능력이 더 강해진다." "스트레스는 우리 세포 내의 칼슘 조절 장치를 손상시킬 수 있다. 심장, 근육, 뇌 등을 이루는 세포의 칼슘 조절 장치가 손상되면 망가진 자동차 엔진에서 기름이 새듯 세포에서 칼슘이 새어 나온다. 칼슘 조절 장치는 뇌가 기본적인 투쟁/도피 반응을 일으키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스트레스로 손상이 가면 학습과 기억에 문제가 생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우리는 생각을 명료하게 하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아진다─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더욱 쌓여서 악순환에 들어간다."(245-6)


"잠재적 위험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을 과대 평가함으로써 부적응 과민 반응과 부작용을 경험하듯, 우리는 실제로 직면하는 위험에 대해서도 과민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해결 불가능한 상황이나 이길 수 없는 도전에 부닥쳤을 경우 순종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생존에 가장 유리한 전략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결과로 나타나는 부작용인 낮은 자존감은 사회적 과잉 위축과 지나친 슬픔을 초래할 수 있다. 구석기 시대에는 슬픈 감정이 더 강한 적으로부터 살해당하는 것을 방지하는 순종적인 태도의 일부를 이루는 유용한 방어 기제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슬픔은 육체적 대립 상황과는 관련이 없는 다양한 상실로 인해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슬픔은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일시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슬픈 감정이 2주일 이상 계속되면 '우울증'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울증은 인류가 타고난 심리적 생존 본능이 낳은 가장 심각한 부작용이다."(250-1)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되 미치게 하지만 않는다면 기억에 기초한 두려운 감정은 적절하고 유용하다. 그러나 과도한 스트레스가 쥐의 뇌에 과민 반응을 촉발하듯,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일상 활동만으로도 과도한 공포의 원인이 된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트라우마를 준 사건을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끊임없는 두려움에 대한 반응 탓에 보통 자신을 위협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두려움 반응을 주로 관장하는 물질인 가스트린 방출 펩티드의 수치도 낮은 경향이 있다. 또 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기억을 검색해 다시 꺼내는 대뇌 측두엽의 해마를 비롯한 뇌의 특정 부분들의 크기가 작아져 있다. 이러한 뇌 구조 변화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아직 모르지만, 이 사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뇌의 생리학적·해부학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255-6)


"현대인이 타인에게 살해당하기보다 자기 손에 죽을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구석기 시대 조상들을 보호했던 두려움과 불안, 순종적 태도가 안전한 세상에서 사는 우리에게 너무 과도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현대 문명 사회의 규범에 따른 경쟁에서는 상대방은 죽이고 자신이 죽는 것은 피하는 일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 돈, 자원, 위상을 얻기 위해 경쟁하지만 현대 사회의 이런 경쟁이 생사를 가르는 투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20만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은 서로를 죽일 더 나은 방법을 개발하고 죽음을 면하는 더 나은 방어 전략을 세우는 진정한 의미의 '군비 경쟁'을 해 왔다. 좋은 소식은 방어 쪽이 이기고 있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경쟁이 방어 쪽으로 너무 유리하게 기울어 살해당하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가 불안과 우울증을 유발해 원래 피하려 했던 폭력 자체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288-9)


5장 출혈, 응고 그리고 심장 질환과 뇌졸증이라는 현대병


"혈액 응고 신속 대응 체계에는 서로 독립적이지만 깊이 연관된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혈소판에 기초한 체계다. 혈소판은 평소에는 혈액 속을 떠돌다가 혈관 안쪽 세포 방어벽에 손상이 가면 노출되는 특정 수용체에 자석처럼 재빨리 가서 붙는다. 각 혈소판은 노출된 수용체와 결합되면서 유인 물질을 분비해 다른 혈소판들에게 동맥이나 정맥에 난 구멍을 막는 전투에 신속하게 참가하도록 독려한다." "철분 부족형 빈혈이 생기면 흔히 혈소판 수치가 정상 수준 이상으로 증가한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져 더 이상 많은 피를 잃으면 안 될 때 혈소판이 자연스럽게 증가해 출혈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두 번재 혈액 응고 경로는 열 가지가 넘는 혈액 응고 단백질이 도미노처럼 연쇄 반응을 일으켜 일종의 섬유 그물망을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이 그물망은 혈관 벽에 난 더 큰 상처를 때우는 동시에 혈소판들이 와서 쌓일 수 있는 기본 구조물 역할을 한다."(306-7)


"우리가 섭취한 지방은 소장에서 흡수된다. 지질이라고 부르는 이 지방은 수용성이 아니기 때문에 혈장에서 바로 녹지 않고 지질 단백질이라고 부르는 수용성 물질에 실려 이동한다." "(동맥 벽에) 침착된 콜레스테롤의 양은 우리가 먹는 포화 지방의 양에 달려 있다. 포화 지방을 운반하기 위해 간에서 지질 단백질을 만들 때 쓰이는 재료가 바로 LDL 콜레스테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콜레스테롤 수치는 혈액 내 지방량을 감지하는 기능을 하는 간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 "지질 단백질을 과잉 생산하는 경향은 아마 구석기 시대에는 중요한 기능이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어쩌다가 한번씩 한꺼번에 많은 양의 식사를 해서 흡수한 지방을 저장해 핏속에서 돌리다가 먹을 것이 충분치 않을 때 바로 쓸 수 있는 원료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질 단백질 운반 용기를 많이 만들어 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 몸은 필요한 양보다 너무 많은 지질 단백질과 나쁜 콜레스테롤을 만들어 내고 있다."(322-4)


"콜레스테롤과 기타 지질이 동맥 안쪽 벽, 특히 관상 동맥(심장 동맥) 안쪽 벽에 축적되면 혈관이 좁아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완전히 막히는 일은 드물다. 대신 이 지방질 침전물은 표면 플라크를 형성한다. 이 플라크는 쉽게 균열되거나 파열되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 세포 한 겹으로 이루어진 동맥 안쪽 보호막을 손상시켜 그 아래 동맥 조직을 노출시킨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동맥은 원래 계획에 따라 행동을 개시한다─혈소판과 응고 단백질을 불러들여 상처를 복구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에 따라 생긴 혈전은 손상이 간 곳을 메울 뿐 아니라 피가 동맥 하류 쪽으로 흐르는 것을 부분적으로, 때로는 전적으로 막아 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세포 한 겹짜리 동맥 보호막에 난 흠집 때문에 피를 많이 흘려 죽지는 않겠지만, 혈전 때문에 피의 흐름이 막혀 혈액 공급을 받지 못한 기관의 세포들이 죽을 수도 있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326)


"인체의 혈액 응고를 관장하는 조절 장치가 미세 조정 끝에 고정되었던 구석기 시대에는 수천 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장거리 자동차, 비행기 여행으로 인해 생긴 다리 정맥의 혈전이 폐로 옮아가 목숨을 앗아갈 가능성은 너무나 먼 일이었다. 아울러 식생활과 신체 활동의 변화, 혈압 등으로 동맥이 좁아지고 혈전이 생길 확률이 높아져 심장 마비와 뇌졸중을 야기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예측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피의 응고 기능이 필요하다. 심각한 부상뿐 아니라 분만과 일상 생활에서 생기는 자잘한 상처로 목숨을 잃지 않으려면 없어서는 안 될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혈과 응고 사이를 미세 조정해 자연이 결정한 균형은 현대인 입장에서는 응고 쪽으로 너무 치우친 셈이 되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출혈로 인한 모든 사망보다 과도한 응고로 인한 사망이 네 배 이상 많고 심장 마비와 뇌졸중이 4대 사망 원인에 포함된 것은 이 때문이다."(35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