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떠나던 날,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다.-26쪽뒷표지에 인용된 이 한 줄을 보았을 때 왜 동네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을지 궁금해졌었다. 이는 첫 장 마지막에 묘사된 세세한 풍경을 그려보아도 이상하다.엄마와 열한 살의 어린 소녀 둘이서 힘겹게 이사 준비를 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그 시절 작은 동네라면 모두들 이웃 사촌일텐데 도와주기는 커녕 얼굴조차 비치지 않는다.모녀는 마을에서 어떤 존재였던 걸까?-----이 소설의 첫문장을 살펴보자.˝내 남편은 서른일곱 살이지만, 신문이나 잡지를 찢어서 정리를 해둔다.˝-7쪽시간강사이자 번역가인 주인공은 유능한 남편과 함께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야기는 남편의 스크랩북으로부터 시작된다.˝남편의 스크랩은 중구난방이고 어떤 원칙이나 규칙을 찾기는 힘들다. 그저 자신의 흥미를 끌거나, 혹은 반대로 전혀 흥미를 끌지 않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오려서 붙여놓은 것이리라.˝-9쪽남편의 스크랩북이 정말 중구난방이었을까? 스크랩은 개인적인 행위이다. 그것이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본인의 눈에만 보인다. 이 책의 구성 또한 스크랩북과 비슷하다. 소설 속의 ‘나‘도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기억을, 흘러간 이야기 조각들을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모은다. 이리 저리 뒤섞인 ‘나‘의 스크랩은 제삼자가 보았을 때 불가해한 것이다.마지막 스크랩 조각을 모은 다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인공인 ‘나‘가 해야 할 일은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를 읽은 독자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다시 소설의 맨 앞장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시는 유리창과도 같습니다. 닫힌 문으로는 볼 수 없던 바깥의 풍경들을 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리창은 소통의 통로이자 단절의 벽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피터 스완슨, 노진선 옮김, 푸른숲, 2020)<죽여 마땅한 사람들>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피터 스완슨의 소설. 주인공의 성격과 서술 방식에서 두 작품의 유사성이 곳곳에 눈에 띈다.첫 번째로 유사한 점은 살인범의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논리이다. 피터 스완슨의 소설 속의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우리가 한번 쯤 생각해보았을 법한 일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들어줄 사람은 없지만 자신의 살인과 과거를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싶어 한다.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을 웅변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죄책감도 없다. 이러한 설정은 우리가 그들에게 매력과 동시에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별점 하나를 얹어주고 싶다.다만 캐릭터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이 작품의 제목을 전작의 작품 제목과 똑같이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붙여도 위화감을 못 느낄 것 같다.... 만약 앞으로도 계속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면 식상해질 가능성이 높다.두 번째로 유사한 점은 마치 영화와 같은 스토리라인이다. 특히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그대로 영상화해도 손색없을 듯 하다. 이 작품 역시 주인공들이 미남미녀라는 점도 한몫한다.마지막으로 이 작품만의 특징을 찾아보자면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자신의 속내를 주변 사람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고 싶어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입장)때문에 그러지 못한다. 대신 독자들에게는 마음껏 털어놓는데, 대사 뒤에 말하지 못한 속마음들이 줄줄이 서술되는 방식이다.(대사보다 속마음이 더 긴 듯한 느낌적 느낌) 왠지 아침드라마에서 주인공 배우의 혼잣말 나레이션이 떠올라서 좀 웃겼다.스릴러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결말! 결말은 전작에 비해 다소 아쉽다. 이야기의 반전에는 깜짝 놀랐으나, 이야기 중반부의 지루함을 덜어줄 세세함은 다소 부족하다. 한줄요약: 큰 기대 없이 본다면 무난한 킬링타임용 스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