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여자들]과 [사랑의 은어]를 연달아 읽었다. 정확히는 [사랑의 은어]를 읽다가 예전에 사두었던 [피리 부는 여자들]을 책장 속에서 찾아 꺼냈다. 두 책 사이의 공통점 때문이었다.
두 책 모두 서한나 작가의 글이 실려있고 여성의 목소리가 실려있는 책이다. 두 책을 모두 읽고 나니 [피리 부는 여자들]을 읽고 난 후 [사랑의 은어]를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은어]는 서한나 작가의 솔직함이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왔던 에세이였다. 여성 동성애자의 에세이는 처음 접해봐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의 다소 엉뚱한 면과 금방 사랑에 빠지는 순수함을 그대로 담아낸 활자들은 깊은 밤 전화로 사랑을 고백하는 비밀스러운 속삭임 그 자체이다. 내가 가장 하기 어려운 것, 바로 솔직하게 쓰는 것을 서한나 작가는 이루었다는 점에서 질투를 느끼기도 한 읽기였다. 책 제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 지는 모르겠지만 책의 성격을 200퍼센트 드러내고 있는 좋은 제목이다.
[피리 부는 여자들]은 대전을 거점으로 한 여성커뮤니티 BOSHU 팀 세 명이 함께 쓴 책이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썼었던, [임신중지]를 번역했었던 이민경 작가님도 그 중 한 명이다. 실려있는 세 편의 글들 모두 좋았지만 처음 접했던 권사랑 작가님의 글이 가장 좋았다는 것은 조금 의외였다.
"여성 간의 생활, 섹슈얼리티, 친밀성"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권사랑 작가가 '생활', 서한나 작가가 '섹슈얼리티', 이민경 작가가 '친밀성'을 담당하고 있다. 권사랑 작가의 글을 읽으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 위즈덤하우스, 2019)가 떠올랐다.
(이 책은 권사랑 작가의 글 속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권사랑 작가의 글을 읽으며 예전에 몇 번 방문했던 대전의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다. 교통 좋고 조용하고 관광보다는 살기 좋은 도시. 이 곳에서 여자들이 모여 사는 풍경에 관한 꿈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 친구들과 헤어지지 말고 옆집에서 살자고 철없는 약속을 하던 기억을 되살리는 글이었다. 여자들의 공동체는 내겐 고등학생 시절 꿈으로 남고 말았지만, 권사랑 작가님은 그 꿈을 실현하셨다는 것에 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더 커다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민경 작가님의 글을 마무리로 읽으며 행동하는 사람의 대단함을 느꼈다. 부디 BOSHU 팀의 바람대로 그들만의 안락함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로 지속 확장해 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