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강정 부스러기
잠든 할아버지의 머리맡에 쌀강정 접시가 비워진 채로
있다
조용한 잠이 뒤척일 때마다 쌀강정 부스러기들이 이리로
저리로 뒤척인다
할아버지는 꿈속에서 빈 접시를 들고 이 마을로 저 마을
로 느린 걸음을 데리고 다니신다
쿨쿨, 주무시는 동안에 당신의 흰 수염이 수긋하게 자
란다
심심한 쌀강정 부스러기들이 잠드신 할아버지 옷에 송사
리떼처럼 붙어 있다
할아버지! (P. 80 )
-이기인 詩集, <어깨위로 떨어지는 편지>-에서
아침에 일찍, 귀한 책선물을 받았다. 먼 남녁의 봄기운을
담뿍 담은 여러 권이다. 책들을 하나 하나 펼쳐보며 이 책들을
지으신 분의 아름다운 삶을 헤아리며 또박 또박 즐거이 읽어
가리라.
그리고 또 좀 전에 택배가 왔다. 열어 보니 아이구머니, 반듯이
꽁꽁 뭉쳐 검은 콩과 땅콩 아몬드 해바라기씨앗, 그리고 대추
까지 썰어 넣은 네모나고 반듯한 쌀강정이 지인의 고운 마음과
함께 차곡차곡 담겨 있다. 할아버지는 이 쌀강정은 아마 단단
해서 드시기 좀 힘드실 것 같구나. 그래도 할아버지의 쌀강정
이나 나의 쌀강정이나 다 참 좋구나.
오늘은 어제 빌려온 '백남준 굿으로 보는 비디오아트 읽기'와
오늘 받은 책들을,
쌀강정을 먹으며 즐겁게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