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 사람들은 기계를 가지고 땅과 숲을 찢고 공기에서 나쁜 냄새가 나게 해요. 숲은 우리가 살고 음식을 얻는 곳이에요. 나쁜 사람들이 오면 우리는 숲에 남지 않아요. 나쁜 사람들은 우리를 보지 못해요.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가까이 가는 동물들을 어떻게 죽이는지 봐요. 우리는 가서 숨어요."(P.358 )

 

 술탄이 아빠를 보고 물었다.

 "왜 잭 할로웨이와 같이 살고 싶었나요?"

 "인간도 자기들이 사는 땅과 숲을 뜯어내지는 않을 테니까요." (P.359 )

 

 

  "지금 당장 떠나라는 건가?"

 오브리가 말했다.

 "네, 지금 떠납니다."

 작고 높은 목소리가 말했다. 아빠 보송이였다.

 세 사람은 아빠 보송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그 쪽을 보았다.

 "당신들이 떠나겠다고 했으니, 떠나요. 내 자식을 죽인 사람들이 내 자식이 움직였던 공기 속에서 움직이는 것도, 내 자식이 보았던 태양을 보는 것도 싫어요. 당신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이런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없어요." (P.390~ 391 )

 

 

 

 

SF 작가 존 스칼지의 2011년 작. H. 빔 파이퍼가 쓴 1962년 휴고상 후보작 <작은 보송이Little Fuzzy>의 줄거리와 사건들을 존 스칼지가 다시 상상해 쓴 소설로, 최근 J. J. 에이브럼스의 영화 [스타트렉] 리부트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처럼 <작은 보송이>의 리부트판이라고 할 수 있다.

 

 

 

 

 

 며칠동안 시간  짬짬이,  존 스칼지의 <작은 친구들의 행성>을 아주  즐겁게 읽었다.

 우주개척시대, 대기업이 행성의 자연자원을 탐욕스럽게 채집하여 생태계가 파괴되고 생명체가 멸종되는 일이 생기자 개척행성의 자연자원과 생명체를 보호하는 법이 발족되었다. 자라투스트라 기업이 독점적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자라23 행성에서 계약직 측량업자로 일하는 잭 할로웨이는 실수로 절벽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계약을 파기당할 처지가 되지만, 무너진 절벽에서 태양석을 발견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어느날, 잭이 사는 집에 고양이처럼 생겼지만 두 발로 걷는 새로운 생물이 나타나고 잭과 친해진다. 그러나 전 여자친구인 외계생물학자인 이자벨이 그들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잭은 고민에 빠진다.

 '사람'이 사는 행성에서는 기업이 개발 및 채굴을 할 수 없고 모든 인력이 철수해야 하므로 잭은 큰 갈등에 빠지게 된다.

 억만장자의 꿈이냐, 원주민의 삶이냐를 둘러싼 자라23 행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기업의 방해와 살해행위, 지성체냐 아니냐를 둘러싼 법정싸움이라는 굵직한 사건과 , 각자의 자리에서 원하고 꿈꾸는 여러 사람들과 독점기업이라는 여러 각도에서의 팽팽하고 긴박한 스토리들이 짜릿한 즐거움과 더불어 우주에서의 제각기의 존재가 함께 공존해야 하는 문제나 인간의 '공감하는 자'로서의 메세지가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킨, 아주 재미있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어떤 집단개체 안에서도 모든 것을 혼자 독점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그와는 다르게 함께 존중하며 살아가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제는 우주 최초로 개의 이름을 따서 지은 '칼스버그'라는 수도를 가진 어느 작은 친구들의 행성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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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4-16 18:18   좋아요 0 | URL
지구별 잘 아끼며 사랑하면
굳이 다른 별나라로 가지 않아도
모두 아름답게 살겠지요..

appletreeje 2013-04-17 08:55   좋아요 0 | URL
모두 모두 잘 아끼며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겠지요. ^^

2013-04-16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7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04-17 09:32   좋아요 0 | URL
결국은 자연으로부터 회귀(다른 생물체들과 상생하는 법)만이
현 인류의 대안이라는 것이겠지요 ㅋㅋㅋ^^
존 스칼지의 <작은 친구들의 행성> 재미있어 보입니다 ㅋ

appletreeje 2013-04-17 09:49   좋아요 0 | URL
결국은, 나 아닌 다른 대상에로의 마음과
그 마음이 불러 일으키는 사랑,인 것 같아요. ^^

보슬비 2013-04-17 23:34   좋아요 0 | URL
영화 아바타가 생각나네요 사실 읽고 싶어서 영어책 먼저 구입했었는데^^ 읽지 않으니 번역되어 나와서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하고...

나무늘보님이 먼저 읽어주셨네요.^^

appletreeje 2013-04-18 09:16   좋아요 0 | URL
보슬비님 덕분에 즐거운 독서 하게 되어
정말 감사드려요~^^
 

 

 

 

 새벽꿈에, 예쁘고 말쑥한 검정 양복을 입은 H가 나타나 늘 의욕이 충천하고 그 의욕만큼 자신의 일과 뜻을 성공시키곤 하는 J와 함께 있는 내게 노랑 주름종이로 감싸고 찰랑거리는 반짝이는 방울들로 묶은 음료수병에다 꽂은 진달래를 한 가지 주었다. "미리 축하해!" 하며. 

무엇을 미리 축하한다는지도 모르겠고 아이들 공작놀이,같은 병에 꽂은 진달래 선물로 그렇고 황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H의 모습이 말쑥하고 기쁜 모습으로 나타나 그것만으로 좋다.

 주말에 갑자기 1박2일로 짧은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가는 곳마다 북적이는 상춘객들 물결사이로 왠지..자꾸, 윤대녕의 아득한 봄밤의'상춘곡'이 생각났던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도 얼결에 가지고 간 존 스칼지의 <작은 친구들의 행성>을 틈틈히 15장까지 재미있게 읽었는데, 과연 귀여운 보송이들의 결말은 어찌될지 궁금하다만 잠시 책갈피를 끼워두고 외출준비를 하는 시간, 여전히 바람은 차갑지만 고요해서 충만한 어느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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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5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5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4-15 15:14   좋아요 0 | URL
모두들 봄맞이 누리느라 바쁜 사월이로군요~

appletreeje 2013-04-15 19:56   좋아요 0 | URL
예~그런 듯 싶은 봄날입니다.^^

수이 2013-04-15 15:29   좋아요 0 | URL
확실히 놀러가면 과식, 과음하게 되는 거 같아요;;;;; 살 엄청 쪄갖고 왔어요 후훗.
나무늘보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셨네요. ^^

appletreeje 2013-04-15 19:57   좋아요 0 | URL
에이~앤님, 날씬하실텐데 그런 엄살을~~ㅎㅎ

드림모노로그 2013-04-15 16:47   좋아요 0 | URL
나무늘보님께 축복의 시간이 함께 하시기를 ~
오늘 날씨는 이상할 정도로 우중충한데 마음은 가벼운 봄날 같습니다..

appletreeje 2013-04-15 20:01   좋아요 0 | URL
드림님~감사합니다.^^
드림님 마음은 언제나 봄날 아니신가요~? 만물을 소생시키시는~^^
드림님! 좋은 밤 되세요. *^^*

보슬비 2013-04-15 18:24   좋아요 0 | URL
아.. 존 스칼지 '뽀송이'... 읽으려했는데, 이번에 못 읽고 반납했어요. ㅠ.ㅠ
예전 노인3부작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읽고 싶었는데 자꾸 미루어지네요.

주말에 날씨 참 좋았는데... 전 집에 뒹구르를... ㅠ.ㅠ

appletreeje 2013-04-15 20:06   좋아요 0 | URL
전 존 스칼지 책을 처음 읽었는데, 재미있어요~
이 책도 보슬비님 서재에서 보슬비님 페이퍼 덕분에 읽게 되었어요.^^
언제나 좋은 책들 소개해주셔서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
보슬비님! 감사드리며 좋은 밤 되세요. *^^*

후애(厚愛) 2013-04-15 18:41   좋아요 0 | URL
전 언니랑 동화사에 가려고 했었는데 대구 날씨가 안 좋아서 아직도 못 갔어요.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가려고 하는데 시간이 날지 모르겠네요...
요즘 독한 감기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는데 정말 감기조심하세요!*^^*

appletreeje 2013-04-15 20:10   좋아요 0 | URL
에궁, 요즘 감기 독하다던데...힘드시겠어요.
어서 하루빨리 나으셔서 동화사도 다녀오시고, 멋진 페이퍼도 기다립니다.^^
후애님! 맛난 것도 드시고 약 드시고 띠뜻하고 편안한 밤 되세요.*^^*
 

 

 

 

                     풋국

 

 

 

 

                           호박 속보다 환한 호박꽃이다. 어젯밤 호박꽃 초롱

                        만들러 왔던 반딧불이가 다슬기 눈물 한 바람을 흘리

                        고 간 것인데 가마꾼 호박벌이 그걸 꽃가루에 비벼대

                        가마띠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자고 나면 한 뼘 두 뼘씩 뻗는 호박 넝쿨 애호박이

                        열린다 호박벌 닮았다 넝쿨손은 담벼락 한 귀 또 그

                        러쥔다

 

                           호박벌 가마띠 만지듯 조신조신 넝쿨손을 꼬고 애

                        호박은 호박벌 쏘이지 않게 숨겨다가 풋국 한 솥 끓

                        인다  (P.11 )

 

 

 

 

                       꽃밥

 

 

 

 

                              밥사발이다. 흰 이밥 고봉으로 잘 다독인 밥사발,

                           풀 쥐어뜯으며 배앓이하던 언덕

                           꽃 이파리 땅에서 뽑아 올린 빛깔이더냐, 밥 냄새

                           어디 하늘에서 내린다더냐 허공중에 차려내는 이밥

 

                              도화지에 그대로 퍼다 붙여두고 싶은 꽃밥

 

                              한 논배미 비워내면 밥이 나오는 근본은 안다 짚신

                            짝 툭툭툭 털어낸 흙이 산이 되었다는 신털미산, 꼴

                            보기 싫어도 꼭 한 번은 먹고 싶은 고봉밥 그 허기진

                            흙밥 숟가락 다둑이던, 두 번 세 번 다둑여 뜨는 삽질

                            숟가락

 

                               제 밥그릇은 안다. 제 밥그릇 꼭 있는 줄은 아는 농

                            투성이, 을미적을미적 제 밥그릇 속으로 모여들던 갑

                            오년 구시내, 구시발, 구시포*가 이 땅의 큰 밥그릇

                            아니던가

                            수북수북 이어지던 이팝꽃, 쇠죽 끓는 가마솥  (P.20 )

 

                             *구시:구유의 방언(마소나 돼지 들에게 먹이를 담아주던 그릇). 

 

 

 

 

                        서울 아까시꽃

 

 

 

 

                               아까시꽃이 말이 많아졌다  서울 온 지 얼마나 되었

                            다고, 억억억 무엇이 불편하긴 불편한가 보다 견마잡

                            이로 함께 온 이팝꽃 악악악 딱히 무논의 개구리가

                            그리운 것은 아닌 성싶은데

                               어제는 늙은 소나무 하나 거푸집에 이리저리로 묶

                            여 오는데 뉘집 선산에서 오는 건지 대꾸도 안 했다 엄

                            지손가락 혈자리 따고 침 잘 놓기로 소문난 그 소나

                            무! 맞다 허리 굽은 것이나 황새 둥지 튼 그 자리까지

                               그 소나무 맞는데 그냥 지나쳐 버렸다 아파트 딱지

                            붙이러 가는가 본데 그 생각을 못 했다 속 좀 울렁대

                            도 이쯤 나앉는 것이 바람길은 좋은데 안심찮다 안심

                            찮다  (P.22 )

 

 

 

 

                          주름비단

 

 

 

 

                                 딴짓하고 오는 비가 모과나무 등걸에 무단히 투정

                              이다

 

                                 '툭 하고 떨어지는 한 소리가 있지'

 

                                  돌아가신 작촌 시인께서 창가에 심어보라며 모갯덩

                               어리* 어렵게 싹을 내어주신 나무다. 끈적한 투정쯤

                               받아낼 만큼 자랐다 모갯덩어리 향이 깊다 젖은 모과

                               나무 등걸이 비단 주름보다 곱다

 

                                   봄비 휘감고 모개나무 오늘은 낭자한 낭자한 길 나

                                서고 싶은가 보다  (P.57 )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토종 모과.

 

 

 

                                                          -진동규 詩集, <곰아 곰아>-에서

 

 

 

 

 

                                                               시인의 말

 

                                                          오목눈이의 눈짓

 

            멧돼지가 고개를 넘고 있다. 고라니는 먼저 와 있었다.

           건너 산마루에 점점이 보이는 작은 새 둘은 원앙이지 싶

           다. 그놈들은 항상 붙어 다닌다. 지휘를 맡은 것은 덤불

           속의 흰머리 오목눈이다. 앞개울의 물고기떼들은 이미 은

           하의 물굽이를 넘나들고 있지 않는가. 백제금동대향로에

           부조로 조성해놓은 미륵 법왕의 초례청 풍경이다.

              이 옹골찬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한국문인협회

           가 나섰다. 오목눈이가 퍽이나 좋은 일이라고 눈짓을 보

           내왔다.     

                                                                    2013년 봄

                                                                        진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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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3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5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4-13 18:07   좋아요 0 | URL
숲에서 이야기 길어낸 시일까요.
예쁘장한 말과 넋이 춤을 추네요.

appletreeje 2013-04-15 10:36   좋아요 0 | URL
예~요즘 함께살기님덕분에 자연과 꽃, 나무들을 노래한 시들이
자꾸 좋습니다.~^^

후애(厚愛) 2013-04-15 18:39   좋아요 0 | URL
'꽃밥' 시가 너무 좋습니다!
근데, 왜 슬픈지 모르겠어요.^^;;
좋은 오후 되세요.*^^*

appletreeje 2013-04-17 11:55   좋아요 0 | URL
그렇치요~? 이상하게 '밥'이란 말이 들어가면 왠지 마음이 뭉클해지고
뭔가, 사는일에 대한 단상들이 자꾸 떠올라요.
후애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
 
무국적 요리
루시드 폴 (Lucid Fall) 지음 / 나무나무 / 201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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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폴의 소설을 읽었다. ˝너무 따지지마. 이거 소설이야 소설.(...) 그것도 음악하는 애가 쓰는 소설이라고.˝ 우화나 그의 음악같은 소설을 읽다가, 쿵하기도 하고 철렁하기도 하고 아득한 혼곤함이기도 했다. `행성`이다. 바람은 소리 없이 차갑지만, 어느 멋진 봄날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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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1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1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04-11 17:58   좋아요 0 | URL
루시드 폴의 감미로운 음악처럼 책도 무척 감미로운 속삭임 처럼 들릴 것 같아요 ㅋ
어느 멋진 봄날, 루시드와 행복한 데이트를 하셨네요 ^^ㅎㅎㅎ

appletreeje 2013-04-12 09:29   좋아요 0 | URL
예~감미로운 속삭임은 아니었지만, 좋은 시간이었지요.^^
드림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수이 2013-04-11 22:54   좋아요 0 | URL
역시 예상대로인가봐요. 음 나무늘보님의 평점 보니 읽어볼까 드디어- 싶은 마음이 들어요. :)

appletreeje 2013-04-12 09:36   좋아요 0 | URL
음, 저한테는 <아주 사적인, 긴 만남>과 더불어 역시 좋았어요.^^
그야말로 무국적 요리같은 그런 소설?

수이 2013-04-12 13:00   좋아요 0 | URL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은 그야말로 후덜덜- 다시 읽어보고싶어지네요. ^^

후애(厚愛) 2013-04-12 21:07   좋아요 0 | URL
100자평 읽고 이 책 많이 땡기는데요.^^
담아두어야겠어요.

appletreeje 2013-04-13 13:22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은 소설이었어요~^^
후애님! 편안하고 좋은 주말 되세요. ^^

보슬비 2013-04-12 23:09   좋아요 0 | URL
루시드 폴이 책을 냈군요. 나무늘보님 평과 평점이 좋으니 기회가 되면 읽어볼까봐요.^^

appletreeje 2013-04-13 13:22   좋아요 0 | URL
루시드 폴,같은 책이었어요. 음유시인과 화학자가 만난..소설. ^^
보슬비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

realghetto 2013-07-04 08:3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책 읽는 내내 루시드폴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어요.
 

 

 

 

 

가끔 작업실에서 5분정도 떨어진 해장국집을 찾아가곤 하는데, 며칠 전엔 그곳에서 색이 바랜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청년을 만났었다. 청년은 양손에 파인애플과 칼을 든 채, 이 자리 저 자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단 한번 드셔보시구요, 그때 결정하세요."

 청년은 해장국집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던 네 명의 취객들에게 파인애플 조각을 썰어주며 말했다. 파인애플 두 개에 만 원. 취객들은 청년과 비싸네 싸네, 잔류농약이 많네 적네, 캘리포니아 산이네 중국산이네, 실랑이를 하다가 파인애플을 구입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청년이 내쪽으로 다가올까 봐, 고개를 푹 숙인 채 열심히 콩나물 해장국을 퍼먹었다. 나는 운동복 바람이었고, 달랑 만원짜리 한 장만 들고 나온 상태였다. 다행히 총각은 발길을 돌려 나갔다.

 이런, 또 다른 파인애플 장사꾼 한 명이 해장국집으로 들어섰다. 이번엔 40대 중반의, 머리가 반쯤 벗겨진 까무잡잡한 남자였다. 남자는 두툼한 패딩 점퍼와 귀마개까지 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그는 더 왜소해 보였다.

 한 발 늦은 남자는 취객들의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

 "아, 진짜 술맛 떨어지게."

 남자는 영문도 모른 채 괜스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해장국집 사장은 그를 말리지 않고 가만히 카운터 위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남자는 해장국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번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파인애플 한 조각을 내밀었다. 깍두기 모양으로, 작게 썬 파인애플 조각이었다.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남자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자리를 떴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남자의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허리가 구부장하게 앞으로 휜, 작고 여린 등이었다. 해장국 사장은 괜스레 여러 번 헛기침을 해댔다. 내 상위엔 남자가 놓고 간 노란 파인애플 한 조각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입안으로 넣어보았다. 달콤했지만, 짜르르한 통증이 명치께 남았다.

 그날 밤, 나는 해장국집에서 나와 작업실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들어왔다. 소리죽여 안방 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아내가 칭얼대는 막내의 등을 무의식중에 토닥거리는 것이 보였다. 잠든 아내는 피곤해 보였고, 아이들은 그런 아내의 곁을 계속 파고들려 애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나는 잠깐 울컥하고 말았는데, 좀전 해장국집에서 만난 40대 중반의 남자가 왜, 취객들의 짜증을 받으면서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는지, 그걸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것이고, 또 누군가의 남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잠든 아이와, 또 잠든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

 모두 힘든 시절을 보내느라 애쓰고들 있다. 살아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이런 말이 작은 위로라도 되길 바라본다. '우린 모두 보이지 않는 작은 끈으로 이어진 존재들이지요. 그걸 믿습니다.' 모두 힘들 내시길.  (P.127~131)     소설가, 이기호.

 

 

                            

                                 -그림이 있는 에세이,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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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4-10 13:24   좋아요 0 | URL
돈도 돌고 돌고
사랑도 돌고 돌아
삶이 이루어지는구나 싶어요.

appletreeje 2013-04-10 14:14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말씀 들으니
문득, 전인권님의 '돌고 돌고 돌고'가 떠오르네요.
이왕이면 '춤을 추며' '노래하며'
돌고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수이 2013-04-10 14:50   좋아요 0 | URL
요즘은 그 사람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서 연락 오고
이 친구는 잘 지내나 궁금해하면 또 이 친구에게서 연락 오고
함께 길을 걷다가 속으로 바람도 차니 칼국수라도 먹자고 할까? 생각하면
친구가 "우리 칼국수 먹을까?" 라고 말합니다. 하하.
정말 다 연결되어있는 거 같아요 나무늘보님~

appletreeje 2013-04-10 19:35   좋아요 0 | URL
아, 명동교자에 가서 뜨끈한 칼국수에
마늘김치를 척, 얹어서 먹고 싶네요. 만두도요. ^^

2013-04-10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0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4-10 22:56   좋아요 0 | URL
마음이 짠해요. 예전엔 좀 매몰차게 행동했었는데, 요즘 정말 그렇게라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 보며 함께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더라고요. 정말 우리 아버지 같고, 우리 남편 같고, 우리 아들 같고... 세상사는게 힘들어서 좀 울적하긴 합니다.

appletreeje 2013-04-11 10:0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보슬비님. ^^
보슬비님의 따스하고 예쁘신 마음 덕분에 오늘도 힘찬 하루 시작합니다.
보슬비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