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시에 집을 나와, 강남역 모처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하다

  돌아오는 저녁, 환승 정류장 앞의 서점에 들어가 책들을 넘겨보다가, 또  몇 권을 샀다.

  결국 오늘도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하루를 마치는구나.

  아, 역시 나는  조직생활은 예전처럼 다시 못하겠다...하는 그러그러한 생각과

  역시, 나는 지금 이 프리,로서의 일이 좋아,하는 안도감과 함께 왠지 눈꼽만큼 묘한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비타민,처럼 산 오늘의 나의 책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본업인 시와 건축 외에도 만화 비평, 영화 비평, 공연 기획, 전시 기획

등등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함성호 작가가, 틈틈이 쓰고 그린 

카툰 에세이.

 

함민복 시인의 말을 빌자면, '동년배들 가운데 가장 박학다식한 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읽고나니 이야깃거리, 생각할 거리가

 꿈틀꿈틀 싹튼다. 그의 들쑤심,이 고맙다.' 했는데

 과연 어떨런지는 읽어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제목은 참 오늘의 내 심정이다.

함성호님의 책은, <당신을 위해 지은 집>과 <철학으로 읽는 옛집>만 읽었는데 이 책은 또 어떠한 기쁨을 줄런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 한 제목,이다 생각해보니

작년에 정희재님의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도  즐겁게 읽었구나,

 

 

 

 

  <수신확인>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 대중매체에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사례나 사건이 아니라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들이 느꼈던 설렘과 먹먹함으로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했다. 이렇게 재현된 각각의 이야기마다 반차별운동을 함께 모색하고 실천해온 활동가들의 글을 한 편씩 덧붙였다. 장애, 퀴어, 이주, 성별정체성, 반성매매, 노동 등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이들의 글은 차별이 한국사회의 어떠한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며, 한 개인이 가진 여러 정체성 중에서 하나의 정체성에 갇힌 차별이 아니라 중첩되고 교차하는 정체성 가운데 차별이 놓인 자리를 짚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마지막에 실린 남은 이야기 ‘일터에서, 우리는 어떻게 만날까’와 ‘반차별운동은 정체성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는 한국사회 반차별운동이 어떤 고민을 중심으로 차별 문제를 대해 왔는가와 함께 앞으로 반차별운동이 풀어가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다시금 불거진 차별금지법. 반차별운동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차별에 대한 법적인 구제 장치를 만드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진정으로 한국사회에서 차별이 없어지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색 중이다. 그 첫 출발인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를 수신하고 전송하는 것이다.

 

-<알라딘 책 소개>에서.

 

 

 

 

그리고, 책표지의 그림도 귀엽고

'천재 변호사 모모세, 고양이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다'  책표지 문구에,

오호~ 그 참 재미있겠군, 하고 살짝 집어든 책.

여튼 이 책은 소소하고 소박한 내 기대를 채워 줄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드는 오야마 준코의 소설.

 

 <고양이 변호사>

 

 

 

TBS 화제의 드라마 [고양이 변호사, 시체의 몸값] 원작 소설. 10년간 전업 주부를 하다 마흔 셋의 나이에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 오야마 준코는 어릴 적부터 영웅을 동경했고 어떤 사람이 진정 멋있는 영웅일까를 고심하다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도쿄대 법대 출신의 초초엘리트 변호사로 예리한 관찰력과 판단력으로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지만, 개인적인 면에서는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대반전의 인물. 하지만 결코 상처를 피하지 않으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모세를 중심으로 엉뚱하지만 가슴 따뜻한 인물들이 엮어나가는 감동 스토리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두 권의 詩集, 임선기 시인의 <꽃과 꽃이 흔들린다>

 故 윤성근 시집, <나 한 사람의 전쟁>,

 

 

 

 

  

 

 

서점을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아주 작고 귀여운 강아지 시츄가 눈에 띄였다. 그 옆에 같이 서 있는, 노란 옷을 입은 꼬마숙녀 아가씨.

그런데 다시 보니 꼬마가 아니라 '작은 어른'이셨네. 사람들이 지나가며 자꾸 쳐다보네,  뭘 그리 신기하다고.

강아지와 주인은 노란 옷을 예쁘게 입고 예쁘게 버스를 타고 갔네.  안녕,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같은 커다란 호박을 지붕에 얹고 연달아 붕붕, 지나가는 작은 꼬마 자동차들.. 뭐지?  했더니,  '호박 나이트'.

 참 상호 한 번, 기막히다. 신데렐라처럼 하던 일 마치고 모두 무도회장으로 오라는거야~?

 

바쁘던 하루를 새 책들과 만두와 씨원한 맥주로 달래고 나니 이제서야 살 것 같다.

그래,  뭐니뭐니 해도 책과 맥주가... 만병통치약이다. 굿 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6-02 07:31   좋아요 0 | URL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기보다
스스로 삶을 가장 아름답게 밝히는
즐겁고 재미난 일을 하는 셈이리라
생각해요.

그러니, 즐겁게 책을 장만해서
읽을 수 있겠지요.

appletreeje 2013-06-02 09:38   좋아요 0 | URL
예, 저도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샀어요. ^^
언제나 좋은 말씀,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

2013-06-02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3 0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한 소가 웃는다

 

 

 

 

                         내가 잘 쓰는 말이

                         착하다는 말이란다

                         군대 제대할 때 써주는 추억록에

                         분대장님 사회 나가선 그렇게 살면 안 돼요

                         말한 이는 착한 눈을 가진 소 같은 일꾼이었다

 

                         착한 사람이 더 많다

                         우직하게 일만 하면서

                         그다지 빛나지 않는 곳에서들 사는데

                         그런 이들의 눈빛이 있어

                         세상이 환하다

  

                         잘나고 똑똑한 이들과 달리

                         평생 고생하면서

                         받을 대접 제대로 못 받으면서도

                         끗꿋이 견디는 힘이

                         무엇인가 묻는 것은 부질없다

 

                         왜 소라고 슬프지 않겠는가

                         오랜 슬픔을 되새김질 하다 보니

                         억센 땅을 뒤집어엎어

                         부드러운 흙으로 살려내는 기쁨을 안 것이리라

 

                         요즘엔 기계가 소의 일을 대신하여

                         소들이 더 착해졌다

                         살과 뼈로 드리는 일밖에 없어

                         착한 소가 먼저 죽는다

 

                         오늘도 착한 소들이

                         열심히 먼저 죽어

                         점점 세상이 환해지고 있다

 

                         생명을 드려

                         가장 우직하게 일하는 소들

                         세상의 착한 소들이 웃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P.138 )

 

 

 

 

 

 

                        어린 새들에게

 

 

 

 

                           비포장의 산길을 덜컹거리며 차를 몰아가다

                           길 건너는 꿩 가족을 만났었다

                           어미 꿩이 앞장서고

                           네 형제의 새끼 꿩들은 줄 지어 뒤를 따르는데

                           어미는 차가 멈춰서도

                           아이들을 지켜보느라 달아나지 못하고

                           새끼들은 전혀 서두르지 않고

                           종종종 저희들의 걸음을 걷는 것이었다

 

                           황토길을 걷는 그들의 나들이를 기다리며

                           아이들을 떠올렸다

                           속도와 기계와 자본이 생명을 넘보는 세상을

                           어린 새들아 침착하게 건너야 한다

                           함께 떠나지만 혼자 맞이해야 할 위험은 사냥꾼 같다

                           어미는 생명을 주고 앞서 길을 나설 뿐

                           걷던 다리에 힘이 실리면

                           새들아 스스로 푸르러 날갯짓하리라

 

                           사랑의 먹이밖에 없구나

                           범부의 가난을 끼니로

                           오랜 굴종의 생활에 묶여

                           지혜롭지도

                           자유롭지도 못하였으나

                           아비의 겨울은

                           그리운 봄 한 송이는 항시 곁에 두어

                           초라한 시 몇 편으로 남았구나

 

                           더딘 걸음과

                           콩콩거리는 어린 가슴을 믿는다

                           어진 마음과 씩씩한 정신의 새들아

                           이상의 하늘은 높고

                           예지의 우물은 깊구나

                           어둠이 짙어도

                           바람의 무게와 들풀의 키와 슬픔의 날개로

                           끝내 사랑이어라  (P. 188 )

 

 

 

 

                          가을 산 출근 길

 

 

 

 

                           길위의 길에서

                           북한산을 맞으며 아침을 시작합니다

                           출근길에 산을 만날 수 있으니

                           축복입니다

 

                           숲들이 자색으로 깊어가는데

                           아침 산의 바람은

                           시리도록 푸르러 아플 지경입니다

                           부드러운 산 어깨 아래로

                           노랑 빨강의 단풍 옷 아래

                           산의 가슴이 봉긋하여

                           큰 일입니다

 

                           가끔은 하얀 새들이

                           무리 지어 산을 날아

                           하도 어여쁜 세상

                           달아나고도 싶습니다

 

                           사람마저 곱게 익는다면

                           참 좋겠습니다  ( P.37 )

 

 

 

 

            

                       사랑이야

 

 

 

 

                           사는 일이 고단하다고

                           술 취해 들어온 새벽

 

                           6학년인 둘째가 5시 40분인데

                           스스로 일어나 태권도 가는 것이 기특하여

                           안아주었는데

                           자고 있던 중3이 자기도 안아달란다

 

                           그래서 사람은 사나보다

                           사랑아 네가 있어서

                           사나 보다    ( P.230 )

 

 

 

 

 

                                                      -이관희 詩集, <착한 소가 웃는다>에서-

 

 

 

 

 

 

 

 

 

 

충암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일했던 故 이관희 유고시집.
시인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詩作)을 했고, 교사가 되고 나서도 블로그를 개설해 ‘맑은날’이라는 필명으로 꾸준히 시를 썼다. 그의 첫 시집 <착한 소가 웃는다>은 고인의 친구와 동료들이 모여 1974년 쓴 ‘신록’에서부터 2012년 4월 마지막 시 ‘어느 봄날’까지 시인이 쓴 시 147편을 골라 엮었다. 어렵지 않은 생활 언어로 쓰인 그의 시에는 봄꽃에서부터 산고양이까지 작은 것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시선과 자연, 가족과 학생, 친구 등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소개 :
1958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이후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교지에 글을 투고하고 백일장에 입상하는 등 문학적 재질을 엿보였고 고교 시절 획일적이고 비민주적 교육 풍토에 반발하여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의 길을 걸었다. 80년대 초 전방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늦은 나이로 1985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공부하였으며 1990년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충암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열정적이고 자상한 교육 방식과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로서 신망을 쌓았으며 교원노조 활동을 통해 참교육을 실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2008년에는 블로그(http://blog.naver.com/withandalone)를 개설하여 생활의 잔잔한 아픔과 교육 현장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 담긴 글을 열심히 올려 이에 공감하는 수많은 이웃을 만들었다. 2012년 5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슬비 2013-05-30 23:20   좋아요 0 | URL
첫시집이 유고시집이네요. 생전에 냈으면 좋았겠지만, 한편으로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으신 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appletreeje 2013-05-31 01:02   좋아요 0 | URL
예..유고시집이라,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보슬비님 말씀대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였고, 또한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으셨기에 그 또한 행복하셨으리란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숲노래 2013-05-30 23:30   좋아요 0 | URL
착하게 살아가자고 마음을 기울인 하루하루가
차근차근 시가 되어
아름답게 영글었겠지요.
다른 누리에서도 즐겁게 시집을
꼬옥 끌어안으리라 느껴요..

appletreeje 2013-05-31 01:07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러신 듯 합니다.
시들을 읽으며 우리보다 조금 먼저 가셨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과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셨는지를
깨달으며..새삼..저도 지금의 이 시간들을 정성스런 마음으로 잘 살다 가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2013-05-31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31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좀 부실하지만 그런 데로 헤아려주세요. 나는 부모님과 함께 영혼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이런 행사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건 지난 사십여 년 내 몸을 자주 찔러대던 기억, 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시지요? 이제 저도 천천히 마음이 편해지리라 믿습니다. 돌아가시고 난 후, 뼈와 뼈의 만남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무리 함께 있다 해도 뼛가루의 말과 오래 참아온 눈물이, 사무친 그리움이 어떻게 서로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굽어보시는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을 종신토록 사랑한다는 내 떨리는 목소리만은 꼭 한번 귀기울여 들어주세요.  (P.34 )  / - 어떤 날의 이사-,

 

 

 

 

 

 

하느님

나를 이유 없이 울게 하소서.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게 하시고

눈물 속에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죽어서는

그들의 눈물로 지내게 하소서.

 

 

-마종기, <기도>-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억울한 사고로 하루아침에 죽었다. 청천벽력이었다. 동생이 불쌍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 나는 많이 울었다.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동생의 장례식을 치르고, 산소를 만들었고, 다시 십 년이라는 세월이 하염없이 흘렀다.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그의 산소에 찾아가 죽은 자와 산 자의 기막힌 만남을 가졌다. 때로는 산소 주위에 피어난 꽃을 동생으로 착각하고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어느 때는 하늘 위의 뭉게구름, 저쪽 나무에 앉아 나를 보며 울어대는 새, 가끔은 내 주위를 자꾸 맴도는 잠자리와도 간절한 만남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십여 년 전 나는 오랜 타국의 의사생활에서 그가 묻혀 있는 도시에서 멀리 떠났다. 그래서 이제는 산소에 자주 가보지 못하고 꿈속에서만 가끔 만나고 있다. 어느 때는 책방에서 만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공항 로비에서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꿈속에서의 만남은 잠이 깨고 나면 너무 허무하다. 너무 허전해서 가슴이 아프기까지 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새삼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읽으며 마음을 달랜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는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 나는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 같이 웃고 즐길 날이 올 것이라는 철석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만남은 헤어짐을 필연으로 할 수밖에 없듯이, 헤어짐은 만남을 전제하리라고 믿는다. 동생을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그에게 무슨 말을 처음으로 꺼내야 좋을 지 가끔 생각해본다. 그런 생각을 할때는 나는 기쁘고 신이 나서 아무데서고 혼자 피식피식 웃기도 한다.  (P. 28~29 )/ -만남과 헤어짐의 사이에서-.

 

 

 

 

                                                                 -마종기 산문집, <우리 얼마나 함께>에서-

 

 

 

 

 

 

                                                과수원에서

 

 

 

                                  시끄럽고 뜨거운 한철을 보내고

                                  뒤돌아본 결실의 과수원에서

                                  사과나무 한 그루가 내게 말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가도 그 목소리는

                                  내 귀에 깊이 남아 자주 생각난다.

 

                                  -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땅은 내게 많은 것을 그냥 주었다.

                                    봄에는 젊고 싱싱하게 힘을 주었고

                                    여름에는 엄청난 꽃과 향기의 춤,

                                    밤낮없는 환상의 축제를 즐겼다.

                                    이제 가지에 달린 열매를 너에게 준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

                                    땅에서, 하늘에서, 주위의 모두에게서

                                    나는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 내 몸의 열매를 다 너에게 주어

                                    내가 다시 가난하고 가벼워지면

                                    미미하고 귀한 사연도 밝게 보이겠지.

                                    그 감격이 내 몸을 맑게 씻어 주겠지.

                                    열매는 즐거움 되고 남은 씨 땅에 지면

                                    수많은 내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구나.

                                    주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이 되는구나.

 

                                  오랜 세월이 지나가도 그 목소리는

                                  내 귀에 깊이 남아 자주 생각나기를.  (P.64 )

 

 

 

                                                             - 마종기 詩集, <이슬의 눈>-에서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5-28 19:12   좋아요 0 | URL
아무리 멀리 떨어진 데에 있어도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듯,
하늘에 있고 땅에 있어도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겠지요.

appletreeje 2013-05-28 22:43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정말 그렇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과 먼저 하늘로 이사를 간 사랑하는 사람들과도요.
오늘 장지에서 돌아오셨을 후애님과 아름다운 나라로 가신 아버님께서도
하늘에 있고 땅에 있어도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여전히 사랑 나누시리라
믿고 기도합니다.

2013-05-28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8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종종 2013-05-28 21:4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종종 지나다 들러 좋은 시 읽고 갑니다.
좋은 시,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appletreeje 2013-05-28 22:47   좋아요 0 | URL
종종님, 종종...이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좋은 시 읽고 가신다는 말씀에
제가 더 감사합니다.
종종님!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

2013-05-28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9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05-29 12:09   좋아요 0 | URL
가슴을 울리는 시들을 주로 쓰시는 군요 .
마종기님의 시집도 담아놓아야 겠습니다 ㅎㅎㅎ
요즘 좀처럼 들리지 못했는데 ㅎㅎ 여전히 좋은 시 한 가득입니다 ^^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는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 집에 불이 나 돌아가셨다는 사건이 보도되더군요.
바로 저희 동네 였답니다..
새삼스럽게 인생무상을 느끼네요 ...
마종기 님의 기도에 위로받고 갑니다 ^^
나무늘보님 좋은 하루 !!! ^^


appletreeje 2013-05-29 14:28   좋아요 0 | URL
예~드림님! 마종기님의 시들을 저도 참 좋아합니다.
1939년생이시니 연륜도 깊으시고 삶의 순간 순간들을
아름답고 사유 깊은 시들로, 잔잔하고 맑은 감동을 주시는 것 같아요.
아이구, 바로 드림님 동네의 할머님이 그렇게 돌아가셨다니
이래저래 드림님 마음이 더 안좋으셨겠어요...
기도,의 눈물은 슬픔도 내포되지만 기쁨이나 감동, 감사의 의미도 있지요.
드림님과 함께 눈물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
드림님! 평안하고 좋은 날 되세요.~!!! *^^*

후애(厚愛) 2013-06-02 11:32   좋아요 0 | URL
읽고싶은 책들이 더 불어났습니다.^^
모두 담아두고 나중에 기회가 오면 봐야겠어요.
 

 

 

 

 

                      피카소의 연인들

 

 

 

 

                         당신의 눈동자가 지워지고 있다 내 오른 손이 당신을 향

                       할 때 눈동자에서 피어나는 꽃잎

 

                         당신의 발이 놓였던 길목마다 그늘이 놓였다가 사라지

                       고 꽃잎이 부유하는 순간

 

                         고개 숙인 발밑에 작은 우물이 생긴다 우물 위로 쏟아

                       지는 당신의 눈빛 그리고 잠시 머리위에 머무는 구름

 

                         당신과 나의 관자놀이를 겨눈 방아쇠, 수천의 꽃잎이 제

                       목을 꺾으며 낙하한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 몸을 숨긴 피카

                       소가 어린 애인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P. 27 )

 

 

 

 

                        물고기의 노래

 

 

 

 

                         지금 내 몸을 흔드는 것이

                         네가 지나간 여정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곳에서 길을 잃을 텐데

                         수초처럼 긴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후렴구처럼 오래오래

                         네 귀를 쓰다듬어 줄 텐데

 

                         물살을 끌어안으며

                         투명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물고기의 노래를 듣는다  (P. 30 )

 

 

 

 

                        덤보로부터 덤보에게

 

 

 

 

                            난 또 다른 무게에 대해 생각 중이야 엄마, 오래전 엄마

                          의 겨드랑이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든 적이 있어 겨드랑이는

                          어둡고 좁았지만 내겐 늪처럼 아늑했어

 

                            매일 밤 눈을 감으면 코끼리가 하늘을 날아다녔지 커다

                          란 귀가 펄럭일 때마다 아이들은 발을 구르며 함성을 질렀

                          어 최고의 비행사 우리의 덤보. 하지만 엄마, 하늘을 나는

                          덤보의 몸은 왠지 쓸쓸해 보였어 덤보는 바람에 쓸려 다니

                          는 푸대 자루 같았거든 그런데 오래전 내가 놓친 풍선들은

                          지금 어디쯤에서 비행 중일까

 

                            지금 나는 발목이 드러나는 살구색 담요를 덮고 큼큼

                          엄마 냄새를 떠올리는 중이야 그리고 커다란 귀를 펄럭이

                          는 덤보를 상상해 너무나도 가벼운 자세로 하늘을 날아다

                          니는 거대한 푸대 자루와 그 가벼움이 주는 어색한 웃음

                          에 대해, 엄마 어쩌면 난 매일 같은 꿈을 꾸기 위해 잠이

                          든 건지도 모르겠어 내가 덤보가 되는 꿈 그런데 엄마, 누

                          가 우리의 귀를 모두 잘라간 것일까   (P. 59 )

 

 

 

 

                         로빈슨 크루소에게

 

 

 

 

                           비오는 거리예요

                           저만큼 내려앉은 하늘을 봐요

                           명징한 것은 모두 구름 위에 있어요

                           이곳의 풍경은 너무 낯익어서

                           사람들은 자주 길을 잃어버려요

                           단장을 쥔 노인의 등은 조금씩 기울어지고

                           엄마 손을 놓친 아이의 눈동자는

                           친구 몰래 주머니에 감췄던 유리구슬을 닮았어요

                           구름 속을 누군가 지나가고 있어요

                           여기예요,

                           여기까지가 나랍니다

                           창밖의 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어쩌면 이곳은 지나치게 관대한 곳인지도 모르겠어요

                           고여 있는 빗물이

                           발자국을 지우고 있거든요

                           여전히 비오는 거리예요

                           섬이예요

                           발자국의 시작이자 끝인,   (P. 74 )

 

 

 

                                                                    -한세정 詩集, <입술의 문자>-에서

 

 

 

 

 

 

   비가 온종일 잠결처럼 내리는 날,

   민들머리 형형한 눈빛의 피카소와 그의 총천연색,들 같은

   연인들을 생각한다. 총천연색으로 제각각의 사랑을 쏟아 붓던,

   민들머리 피카소의 연인들..울고 웃고 성내다 다시 미소짓는..,

   물고기들에게 물 속은 공기 속, 일 것이다.

   자유롭게 헤엄을 치며 놀며 먹으며 배설을 하며 살아가는.

   그런데 우리 집 물고기들은 날랜 몸짓으로 춤을 추며,

   고막속의 나팔꽃,처럼 노래를 부르지만

   나의 귀는 그 노래를 듣지 못해 다만..뻐끔뻐끔 웃고 있다.

   빗소리는 수영장에서 유영을 하듯 잘 듣고 있으면서 말이지,

   < 아기 코끼리 덤보>는 나에게도 아들들에게도 서커스단

    속에서  엄마코끼리가 덤보를 바라보는 것처럼 여전히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신나게 하늘을 날아 다니는데, 왜..디즈니가 동화

    를 환각처럼 만들었을까? 비가 오는 날 만들었을까?

 덤보하니까, 또 '꼬마 깜둥이 삼보'까지 떠오르네. 깜둥이가 뭐야, 에잇.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한없이 돌다 버터가 되어 버린 호랑이 버터,로 만든 핫케익을 삼보가 169개나 먹고도 여전히 배고파

 했을 때, 철모르던 꼬마 나는 그저 맛있게만 보여 그림책을 읽으며 침을 꼴깍, 삼켰어. 요네하라 마리가

 '미식 견문록'에서 <꼬마 깜둥이 삼보>를 얘기하기 전에, 이미 나도 그 기막힌 속얘기를 알아차린

 슬픈 어른이 되었지만 말이야..  그래서 자주 술을 푸는 거야..슬퍼서 말이지..

 나는 이렇게 비 오는 날, 한세정 詩人의 <입술의 문자>를 읽으며 놀고 있지만 정말

 로빈슨 크루소,는 비 오는 날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앗, 비 온다고 그곳 혜화동에서 회포좀 풀자고 연통이 오는구나..할 수 없지.. 비 오는 날이니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5-27 16:19   좋아요 0 | URL
봄이 저물며 여름을 부르는 빗물이 시를 부르고,
시는 사람을 부르고,
사람은 아름다움을 부릅니다.

appletreeje 2013-05-27 17:21   좋아요 0 | URL
예..비가 퍼붓는 잠처럼 와서
시집을 읽으며 혼자, 놀고 있습니다.. ^^
벼리와 보라는 비 오는 날, 무슨 즐거운 놀이를 하며 지낼까요~?

2013-05-27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7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7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7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이렇게 고요한 여름밤, 각자 자기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모두 눈을 감고 저마다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였다. 내 오른쪽에 앉은 시영이가 눈을 감고 제가 살아온 날을 조금 생각하다가 바로 호주머니 속 과자를 떠올리고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시영이는 호주머니 속으로 자꾸 손을 넣어 과자를 조금씩 꺼내 선생님 몰래 입 속에 살짝살짝 집어넣었다. 내 왼쪽에 앉은 영환이에게서 나는 방귀 냄새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시영이의 몰래 과자 씹어 먹는 소리, 영환이의 방귀 냄새 때문에 내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 자꾸 방해되긴 했지만 나는 최대한 허리를 곧추세우고 내 십오 년 인생을 생각하였다. 선생님이 잔잔한 음악을 틀었다. 음악은 약간 슬펐다. 생각하기에는 역시 신나는 음악보다 좀 슬픈 음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도 최대한 감정을 잡아 보려 애를 썼다. 감정이 잡히는 순간, 선생님이 갑자기 혼잣말로, 에이, 음악은 무슨 음악이냐, 자연에 오면 자연의 소리를 들어야지, 하면서 기껏 틀었던 음악을 탁 꺼버렸다. 선생님의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감정 잡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려 다시 한 번 허리를 곧추세웠다.

 -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생각해 봅시다.

 우리 동네서 와서 우리 동네로 가는데요, 영환이가 대꾸했다.

 - 생각해 보라고 했지 대답하라고는 안 했다. 자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집에서 와 집으로 가는 건가,라고 영환이가 혼자 중얼거렸다.

 엄마 배 속에서 나와 무덤으로 가요,라고 승빈이가 말했다.

 아, 자식들, 말 되게 많네, 거. 말하지 말고 생각해 보라고, 생각.

 드디어 선생님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모두 조용해졌다. 풀벌레 소리만 가득하고 사위가 조용한 속에 별들이 저희끼리 소곤거리는 것 같았다. 몇몇은 졸기도 했다. 한참 만에 선생님이 손바닥을 탁탁 치면서, 일어나라, 일어나, 조는 아이들을 깨웠다.

 - 자아, 각자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했는가?

 처음부터 졸기만 한 경수가 제일 크게 대답했다.

 그러면 경수부터 말해 봐라. 말할 때는 되도록 솔직 담백하게.

 경수의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우리 엄마와 나는 스무 살 차이가 난다. 내 생일은 3월이다.  (P. 10~11 )

 

 

 

 

 -여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제가 말해 보지요. 보리밭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한여름에 낮잠 자다 깨어났는데 문득 보이는 대청마루 가의 푸른 하늘, 그 푸른 하늘가의 감나무, 감나무 속에서 우는 매미, 매미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울자울 졸고 있는 닭 볏 같은 맨드라미.... . 맨드라미 꽃잎과 이파리로 묻들인 떡은 정말 아름다워서 함부로 먹을 수가 없었어요.

 

 - 오매, 감나무, 강릉에도 감나무가 있고만요. 우리 고향에는 감나무가 너무 많아서 산에 올라가서 보면 집은 안 보이고 감나무만 보였단게요. 감이 노랗게 물들면 다서 소금물에 재워 우린 감도 만들어 먹고 태풍 불어 떨어진 감식초도 만들고 겨울에는 홍시를 갈무리해 뒀다가 하나씩 꺼내 먹고.... .  (P. 28~29 )

 

 

 

 

 

 나는 화장실로 안 가고 숲으로 갔다. 이야기 시간이 끝나고 노래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켜는 기타 소리에 맞춰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무리와 떨어져서 듣는 음악 소리는 아름다웠다. 무리와 떨어져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도 아름다웠다. 열 다섯 살이면 외로움이 뭔지도 아는 나이지만, 아름다움이 뭔지도 알 나이라는 걸 나는 그 숲에서 알았다. 숲에서 나가면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노래 불렀다.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였다. 가슴 한 편이 싸해지면서 눈물이 나왔다. 나는 지금 강릉의 숲에 와 있다. 밤이 깊을수록 별들은 더욱 영롱하게 반짝였다.  (P. 30~31)

 

 

 

                                                                           -공선옥, <아무도 모르게>-에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5-26 10:24   좋아요 0 | URL
밤에 숲에 깃들었으면
아무 얘기 안 하면 더 좋을 텐데요.
그러면 아이들은 지난날도 생각할 테고
우주도 생각할 테고
꿈도 생각할 테고
사랑도...
또 주머니에 있는 과자도 배가 아파 방귀 나오는 것도
골고루 다 알아서 생각할 테지요...

appletreeje 2013-05-26 11:41   좋아요 0 | URL
참으로 맞는 말씀이세요...

2013-05-26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6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