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가 웃는다
내가 잘 쓰는 말이
착하다는 말이란다
군대 제대할 때 써주는 추억록에
분대장님 사회 나가선 그렇게 살면 안 돼요
말한 이는 착한 눈을 가진 소 같은 일꾼이었다
착한 사람이 더 많다
우직하게 일만 하면서
그다지 빛나지 않는 곳에서들 사는데
그런 이들의 눈빛이 있어
세상이 환하다
잘나고 똑똑한 이들과 달리
평생 고생하면서
받을 대접 제대로 못 받으면서도
끗꿋이 견디는 힘이
무엇인가 묻는 것은 부질없다
왜 소라고 슬프지 않겠는가
오랜 슬픔을 되새김질 하다 보니
억센 땅을 뒤집어엎어
부드러운 흙으로 살려내는 기쁨을 안 것이리라
요즘엔 기계가 소의 일을 대신하여
소들이 더 착해졌다
살과 뼈로 드리는 일밖에 없어
착한 소가 먼저 죽는다
오늘도 착한 소들이
열심히 먼저 죽어
점점 세상이 환해지고 있다
생명을 드려
가장 우직하게 일하는 소들
세상의 착한 소들이 웃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P.138 )
어린 새들에게
비포장의 산길을 덜컹거리며 차를 몰아가다
길 건너는 꿩 가족을 만났었다
어미 꿩이 앞장서고
네 형제의 새끼 꿩들은 줄 지어 뒤를 따르는데
어미는 차가 멈춰서도
아이들을 지켜보느라 달아나지 못하고
새끼들은 전혀 서두르지 않고
종종종 저희들의 걸음을 걷는 것이었다
황토길을 걷는 그들의 나들이를 기다리며
아이들을 떠올렸다
속도와 기계와 자본이 생명을 넘보는 세상을
어린 새들아 침착하게 건너야 한다
함께 떠나지만 혼자 맞이해야 할 위험은 사냥꾼 같다
어미는 생명을 주고 앞서 길을 나설 뿐
걷던 다리에 힘이 실리면
새들아 스스로 푸르러 날갯짓하리라
사랑의 먹이밖에 없구나
범부의 가난을 끼니로
오랜 굴종의 생활에 묶여
지혜롭지도
자유롭지도 못하였으나
아비의 겨울은
그리운 봄 한 송이는 항시 곁에 두어
초라한 시 몇 편으로 남았구나
더딘 걸음과
콩콩거리는 어린 가슴을 믿는다
어진 마음과 씩씩한 정신의 새들아
이상의 하늘은 높고
예지의 우물은 깊구나
어둠이 짙어도
바람의 무게와 들풀의 키와 슬픔의 날개로
끝내 사랑이어라 (P. 188 )
가을 산 출근 길
길위의 길에서
북한산을 맞으며 아침을 시작합니다
출근길에 산을 만날 수 있으니
축복입니다
숲들이 자색으로 깊어가는데
아침 산의 바람은
시리도록 푸르러 아플 지경입니다
부드러운 산 어깨 아래로
노랑 빨강의 단풍 옷 아래
산의 가슴이 봉긋하여
큰 일입니다
가끔은 하얀 새들이
무리 지어 산을 날아
하도 어여쁜 세상
달아나고도 싶습니다
사람마저 곱게 익는다면
참 좋겠습니다 ( P.37 )
사랑이야
사는 일이 고단하다고
술 취해 들어온 새벽
6학년인 둘째가 5시 40분인데
스스로 일어나 태권도 가는 것이 기특하여
안아주었는데
자고 있던 중3이 자기도 안아달란다
그래서 사람은 사나보다
사랑아 네가 있어서
사나 보다 ( P.230 )
-이관희 詩集, <착한 소가 웃는다>에서-
충암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일했던 故 이관희 유고시집.
시인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詩作)을 했고, 교사가 되고 나서도 블로그를 개설해 ‘맑은날’이라는 필명으로 꾸준히 시를 썼다. 그의 첫 시집 <착한 소가 웃는다>은 고인의 친구와 동료들이 모여 1974년 쓴 ‘신록’에서부터 2012년 4월 마지막 시 ‘어느 봄날’까지 시인이 쓴 시 147편을 골라 엮었다. 어렵지 않은 생활 언어로 쓰인 그의 시에는 봄꽃에서부터 산고양이까지 작은 것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시선과 자연, 가족과 학생, 친구 등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소개 : |
1958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이후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교지에 글을 투고하고 백일장에 입상하는 등 문학적 재질을 엿보였고 고교 시절 획일적이고 비민주적 교육 풍토에 반발하여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의 길을 걸었다. 80년대 초 전방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늦은 나이로 1985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공부하였으며 1990년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충암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열정적이고 자상한 교육 방식과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로서 신망을 쌓았으며 교원노조 활동을 통해 참교육을 실천하는 데 적극적...
1958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이후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교지에 글을 투고하고 백일장에 입상하는 등 문학적 재질을 엿보였고 고교 시절 획일적이고 비민주적 교육 풍토에 반발하여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의 길을 걸었다. 80년대 초 전방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늦은 나이로 1985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공부하였으며 1990년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충암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열정적이고 자상한 교육 방식과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로서 신망을 쌓았으며 교원노조 활동을 통해 참교육을 실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2008년에는 블로그(http://blog.naver.com/withandalone)를 개설하여 생활의 잔잔한 아픔과 교육 현장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 담긴 글을 열심히 올려 이에 공감하는 수많은 이웃을 만들었다. 2012년 5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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