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선배가 남편의 퇴직을 전환점으로, 일찍부터 장만해 두었던 청양 시골집으로
몇 달 전부터 내려갔다. 멋진 전원주택도 아니고 원래 있던 시골집을 조금씩 고쳐가며 전부터
귀촌을 준비했는데 이번에 아주 내려간 것이다. 서울 아파트에는 직장 다니는 작은 따님과 고양이
뽀삐만 남겨두고 한달에 한 두번 씩 올라와, 예약된 진료도 받고 밑반찬도 해놓고 시골에서
필요한 장도 보아 내려가곤 했는데 선배를 엄마로 아는 고양이 뽀삐를 이번에 아주 데리고 내려
갔다. 겨울 같으면 난방때문에 괜찮은데 여름이라 이 무더위에 낮에 아무도 없는 아파트에 혼자
놓아 두기는 이번 여름이 너무나 덥기 때문에.
'뽀삐'는 세 살된 고등어태비 고양이다.
일년 전에, 아파트 경비실 근처에서 아주 삐쩍 마른 어린 고양이가 왔다갔다 하길래, 그 댁 큰
따님이 안고 들어와 방송으로 이 고양이를 잃어버린 집을 수소문했지만 며칠 동안 소식이 없어
선배집에서 얼떨결에 키우게 되었다.
뼈가 보이게 마르고 등가죽이 바짝 붙고 너무 작은 고양이라
처음엔 새끼인 줄 알았는데, 동물병원에 진찰차 가니 두살쯤 되었다고 한다. 아마 집을 나와 못
먹고 헤매고 다니느라 그렇게 마르고 왜소했던 모양이다. 그후 몇개월 후, 그 집에 가서 보니
아주 뚱뚱하고 커다랗고 예쁜 고양이가 떡하니 흔들의자에 누워 베란다의 꽃향기를 맡으며
우아하게 누워 있었다. 그간 못 먹었던 것의 한을 푸는 듯 무서운 식탐과 과식으로 드뎌 자신의
생리적 나이를 되찾은 것이다. 그런데 이 아가씨가 도도하기가 하늘을 찔러 언제 가봐도
"뽀삐야~뽀삐야~^^" 온갖 애교로 불러도 새침하게 한 번 쳐다볼 뿐, 조금의 접촉도 허하지
않는 도도고양이가 되어 버렸당.
이번에 데려가려 아저씨가 밥그릇이며 화장실이며 장난감들을 주섬주섬 싸는 걸 보더니 눈이
똥그래져 쳐다보고 있다가, 평소엔 절대 들어가려 하지 않았던 이동장에도 냉큼 들어가고,
청양으로 가는 차안에서도 얌전히 있고 운전석 위에다 발을 살짝 걸치고 차창밖도
내다보며 내심 즐기는 눈치였다 한다. 드디어 시골집에 도착.
그런데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디선가 나타난 옆집 할머니댁 고양이 나비가 선배의 다리에
부비부비를 하자 뽀삐가 하악질을 하며 심한 경계와 적대감으로 나비를 제압했고 놀란 나비는
자기집으로 후다닥 도망을 치고.
'나비'도 사연이 많은 귀촌고양이다.
할머니의 서울 아들집에서 키우다 보낸, 예쁜 페르시안 고양이 두 마리중의 한 마리인데
두 마리 고양이를 졸지에 맡아 키우게 된 할머니가 고양이수발에 힘이 부쳐 어느날 멀리 산옆
에 버리고 오셨다 한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나 장에 갈 일이 있어 정류장으로 가던 길에
불현듯 고양이들이 생각난 할머니가 문득, "야야~야야~"부르니 어디선가 한 마리가 풀썩,
나타나 반가워 하길래 할 수 없이 장보기를 포기하고 다시 데리고 와 키우는 고양인데 얘는 이제
하도 바깥에서 뛰놀고 헛간에서 잠자고 이제는 완전 처음의 우아함은 다 사라지고 애교쟁이 날쌘
시골고양이로 변했는데, 선배의 집에 자주 놀러 오고 그러면 또 집에 두고온 뽀삐생각에
고기도 주고, 간식도 주며 귀여워 해주니까 이젠 아예 선배집에 눌러 앉아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어쩌다 생각나면 자기집으로 놀러가는 그런 형편이 되었다 한다.
그런 나비를 보자, 뽀삐가 얼마나 분노의 하악질을 하는지
나비도 놀라서 급히 제집으로 줄행랑을 친 모양이다.
밤이 되어 잠을 자야 하는데, 뽀삐의 흙과 먼지 묻은 발과 뭉텅뭉텅 빠지는 털때문에 도저히
방에서 재울수가 없어서 뽀삐를 부엌방에다 넣고 잠을 자려하는데 이때부터 울고불고하는
뽀삐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할수없이 방에다 들이고 이번엔 부부가 모기장을 치고
안에서 자려하자 또 모기장 안에 들어오겠다고 '야옹! 야옹!!~' 울다 급기야는 무조건 막
모기장으로 돌진하는 통에, 할수 없이 선배가 일어나 뽀삐를 데리고 마루로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때부턴 울지 않고 얌전히 엄마옆에 누워있더라한다.
아, 뽀삐가 원한 건 방에 들어가 자는 게 아니라 엄마 옆에서 자는 것.
그렇게 새벽 3시에서 5시까지 있다가 뽀삐가 잠이 들어 선배도 다시 들어가 잠을 좀 자고
선배 남편도 잠을 설쳐 피곤해하고.
낮에 손님이 오셔서, 손님상을 차려주고 뽀삐랑 둘이 마루에 앉아 뽀삐털을 쓰다듬어 주면서
"뽀삐야~ 이젠 시골에서 사니까 아파트에서처럼 안에서 못살어. 부엌방이나 헛간에서 자야돼.
알았지? 뽀삐야." 타이르니 벌떡 일어나 마당으로 내려가더니 풀을 막 뽑아 씹어대다 휙,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한다.
손님이 가고 걱정이 된 두 부부가 여기저기' 뽀삐야~뽀삐야' 부르며 한참을 찾고 있으니 그때
쑥, 마당 뒤켠에서 뽀삐가 나오고, 마루를 보니 그틈에 나비가 나타나 뽀삐의 밥을 다 먹어치우고.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어제 처음으로 뽀삐가 밖에서 별일없이 잘 잤다고 한다.
나비만 보면 분노의 하악질로 접근금지였는데, 이젠 둘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한다. 다만, 나비가 숫컷이라 미모의 뽀삐에게 자꾸 들이대는 통에 또 새로운 귀찮은 걱정이
생겼다고. 이젠 옆에 있어도 가만있는데, 나비가 너무 얼굴에 바짝 다가오면 앞발로 빰따귀를
후려치곤 한다나. 그러면 또 저멀리 도망을 쳤다 다시 뽀삐 옆에 와서 밥도 같이 먹고 또 들이
대다 빰따귀를 얻어맞고..그러며 그럭저럭 뽀삐는 시골고양이로서의 새 삶에 만족하며 오늘도
풀도 뜯어먹고 문밖으로 외출도 하고 뒷산으로 마실도 다니며, 별 일 없이 잘 있다고 한다.
뽀삐야~! 너 참 유기묘에서 주인 잘 만나 이젠 자유롭고 싱그러운 시골고양이로 여생을
신나게 누리게 되었구나. 옆에 껌딱지같은, 멋진 남자친구도 두고~ㅎㅎ 부럽구먼,ㅋ
좀전에 통화를 하며 덥지 않냐고 물었더니, 시골은 나무가 많아서인지 그리 안 덥다 한다. 오히려
해가 지면 좀 추워 개조한 부엌외에 따로 일부러 남겨둔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때며 부부가
'모닥불 피워 놓고 둘이 앉아서~' 노래를 하는 시간이 제일 즐거운 시간이라 한다.
선배의 남편도 마루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아~정말 좋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하며
오늘도 두 사람은 행복한 귀촌의 또 하루를 살고 있다.
이번 휴가때는 이 댁으로 놀러가 그 행복을...우리도 야금야금 맛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