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여론매체부 기자입니다. 한겨레에 글을 써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2005년, 갑자기 날아온 한 통의 메일에 화들짝 놀랐다. 진보신문의 대명사인 한겨레신문에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쓰는 게 말이나 되는가. 더 말이 안되는 건 메일의 마지막 대목이었다. "최근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나왔으니 천우신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 이 사건이 내가 칼럼을 쓰는 것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단칼에 거절했다. 다시 메일이 왔다. 또 거절했다. 이 과정을 한 번 더 되풀이하자 그쪽에서 연락이 왔다. 한번 만나자고. 얼굴이 안보일 때라면 모르겠지만 마주보고 앉아 부탁을 하는데 어떻게 거절을 하겠는가?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그와 난 굳은 악수를 나눴다. 앞으로 잘해 보자고.

 

 

 그 기자가 날 주목했던 건 인터넷 서점 사이트인 알라딘에 내가 썼던 글들 때문이었다. 내가 알라딘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기자는 내 글에 기본적으로 유머가 깔려 있다면서 그런 점이 좋다고 했다. 게다가 난 글을 쓰는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소재 발굴에 대한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3주마다 한 편씩 칼럼을 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그 기자의 판단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마감을 넘기고 만 첫 번째 글부터 시작해서 글을 연재하는 1년 동안 난 시종 헤맸으며, 기자의 기대와 부응한 글을 쓴 건 두 번에 불과했다.

3주마다 있는 글 마감은 내게 지옥이었다.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가 지나치다보니 나머지 2주도 편히 지내질 못하기까지 했다. 알라딘에서 하루 3~4편씩 글을 쏟아내던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이유는 '너무 잘 쓰려고 발버둥을 쳐서'였다. 홈런을 치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타자가 삼진을 당할 확률이 높은 것처럼, 좋은 글을 쓰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재미있는 글이 나올 리는 없었다. 수만 명의 독자가 내 글을 본다는 생각에 난 잔뜩 주눅이 들어 버렸고, 20분이면 글 한 편을 뽑아내던 평소와 달리 컴퓨터 모니터 앞에 몇 시간을 앉아 있어봤자 몇 줄을 쓰기 힘들었다.

 첫 번째 칼럼을 쓰던 저녁, 참다못한 난 악마와 손을 잡는다. 이전에 동창 사이트에 써서 칭찬을 받은 글을 칼럼으로 우려먹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글의 요지는 이랬다.

 

 

TGI 프라이데이스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여러 종류의 음식을 시켜 서로 나눠 먹음으로써 상생의 정신을 기를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인 삼겹살은 불판에 젓가락질이 난무하는 경쟁적인 음식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싸움질로 일관하는 건 혹시 우리나라가 삼겹살을 좋아하기 때문 아니냐.

 

 

 이 글을 읽은 동창들은 재미있다고 넌 정말 천재라고 날 칭찬했지만 한겨레 독자들은 달랐다.

 " 대학교수가 서양 물을 조금 먹었다고 저 정도니.....쯧쯧. "

 "우리 식문화에 대한 제대로 이해조차 없는 사람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요?"

 오마이뉴스의 한 기자는 장문의 반박글을 쓰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의 식문화를 천대하는 그의 의식에 있다. 글을 쓴 교수님께 묻습니다. 당신들이 채 익지 않은 핏빛 벌건 쇠고기를 즐기실 때 돈 없는 서민은 겨우 삼겹살로 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글들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난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미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데다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갔다. 또한 내가 삼겹살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삼겹살을 가르치는 건 아니다. 내 전공은 엄연히 기생충학이며, 학생들에게 당연히 기생충을 가르친다. 게다가 난 친구들 사이에서 삼겹살 매니아로 통하며, 그간 먹은 돼지들이 저승에서 단체로 날 기다리고 있을까봐 걱정하는 중이다. 물론 다음 댓글에는 격하게 공감한다.

 "이따위 글이면 나도 신문 칼럼 쓸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내 칼럼의 수준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1년이 다 되어갈 무렵에 한겨레에 전화를 걸어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안 그래도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 그만 쓰시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한 답변이 서운하면서도 고마웠고 역시 내가 있을 곳은 알라딘밖에 없다고, 앞으로는 다시 이쪽으로 발을 딛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칼럼을 그만두고 나니까 세상은 다시금 잿빛에서 푸른빛으로 변해 있었다. 원래 그랬던 것 처럼 여기저기에 부담 없는 글들을 쓰면서 살았는데, 그러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신문에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칼럼을 썼다고 해 봤자 '그래서 어쩌라고?'란 반응이 돌아왔다. 직장 동료들이야 그렇다 쳐도 친한 친구들까지 내 칼럼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신문 아홉 부씩을 사서 친구들에게 돌리셨던 어머님밖에 없었다. 아무도 안 보는데 왜 나는 그렇게 신경을 썼을까 하는 아쉬움은 그로부터 3년 뒤 경향신문에서 제의가 들어왔을때 오래 생각하지 않고 수락하는 이유가 됐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기회라는 건 자주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한겨레에서 철저히 실패한 내게 경향에서 손을 내밀어 줬다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제의가 왔을 땐 나 역시 손이 좀 근질근질하던 터였는데, 바로 거절하면 없어 보일까봐 생각해 보겠다고 전화를 끊었다가 10분이 채 못 돼어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서민의 과학과 사회'라니, 테마도 근사했다. 이번엔 3주가 아니라 2주마다 칼럼을 보내야 했지만 난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화요일 점심이 마감이었는데, 난 대부분 그 전 주말에 글을 보내 줬으며, 심지어 두 편씩 보내서 "마음에 드는 글 실으세요."라고 부탁하는 여유를 부렸다. 만 3년간 글을 쓰면서 마감일에 쫓겼던 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글 한 편을 쓰는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게 다 아무도 안 본다는 걸 알았기에 가능한 거였다.

 여유가 생기자 '평소 실력'이 그대로 나왔다. 한겨레 칼럼 중엔 특별히 주목받은 게 없었지만, 경향에 쓴 글들 중엔 그래도 널리 회자된 쪽이 더 많아졌다. "어쩌면 비판을 이렇게 재미있고 웃기게 할 수 있는지, 벤치마킹 하고 싶은 분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로 유명한 우석훈 선생은 어느 글에선가 이렇게 얘기하셨다. "서민 교수, 존경한다." 그렇다고 해서 길을 가다가 알아보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글을 쓰는 걸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어 보면 글쓰기에는 특별한 왕도가 없고,

 

다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게 글을 잘 쓰는 유일한 방법이란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백일장에서 단 한 번도 상을 타지 못했던 내가 신문에 고정 칼럼까지 쓰게 된 건 순전히 알라딘 덕분인데, 거기서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읽게 됐고, 남들과 경쟁을 하며 하루 3~4편씩 글을 썼던 것도 아주 좋은 글쓰기 훈련이 되었다. 명색이 교수인데 연구도 별로 안하고 블러그질만 했다고 후회하던 그 시절이 사실은 오늘의 영광을 만든 셈. 그래서 젊은 학생들한테 말한다.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고, 블로그를 만들어 하루 한 편씩 글을 쓰라고. 블러그에 글을 쓰는 건 낭비가 아니라 먼 미래를 위한 저축이며. 10년쯤 그렇게 하면 나중에 큰 돈을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학생들 중에 내말을 새겨듣는 이는 드물었는데, 요즘엔 스마트폰이라는 엄청난 장난감까지 나왔으니 글과 가까워지기는 더 힘들어진 듯싶다. "아직도 그런 전화기를 쓰냐?"는 비아냥에도 내가 스마트폰을 안 사는 이유는 다 오래오래 칼럼니스트의 자리를 지키기 위함이다. 젊은이들이여, 칼럼니스트가 되어 보고 싶지 않은가? 내가 해 봐서 아는데, 굉장히 보람 있다.  (P.113~118 )  /  서민은 기생충학과 교수이자 칼럼니스트다.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에서

 

 

 

 

 

 

 

 

  어제 보내온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를 읽다가, 문득 마태우스님의 글을 만나

  더욱 반갑고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 이 책을 읽었다. 

  꼭 책을 낸다거나 칼럼니스트가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알라딘에서의 시간들이 내게도

  冊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또 다른 분들이 쓰신 훌륭하고  좋은 글들을 읽는 즐거움을

  매일매일 만날 수 있었으며... 또 공감할 수 있던 덕분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보다 더

  재밌고 즐겁고 충만한 가치의 지향과 유연함으로 확장시키기도 하며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

  는 기쁨과 함께, 어쩌면 스스로에게 보내는 '즐거운 편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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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24 21:44   좋아요 0 | URL
글을 쓸 적에는
살가운 벗과 이웃과 살붙이한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이 되지 싶어요

appletreeje 2013-07-25 10:02   좋아요 0 | URL
예~~그래서 그 글들을 읽을때는
더욱 정답고 참 좋습니다~

2013-07-24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5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4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25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3-07-25 00:1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나무늘보님 서재에서 마태님 글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요즘 넘 잘나가셔서 말걸기 망설여지기까지 하지요

appletreeje 2013-07-25 10:3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다가 깜짝!! 괜히.. 더 반갑고 좋았습니다~
아마 하늘바람님 글도 어느 책에선가 만나면,
다른 알라디너님들의 글들을 만나도 굉장히 기쁘고 반갑겠지요~?^^

하늘바람님! 오늘도 상쾌하고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