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을 느끼는 때

 

 

 

 

                  내가 행복을 느끼는 때는

                  오후에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왔을 때다

                  햇빛은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위에 찾아와

                  아이들이 적어놓은 글자 한 자 한 자를

                  환히 비쳐 보인다.

                  그러면 그 글자들은 모두 살아나

                  귀여운 병아리가 되고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아기 염소가 되고,

                  여울을 헤엄치는 피라미가 되고

                  별 같이 반짝이는 눈망울이 된다

                  오후에 해님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내가 보는 책장이 더욱 환하게 되면

                  아, 나는 이 세상에서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난다   (P.96 )

 

 

                   1991. 3. 21 밤2시

 

 

 

 

 

 

 

                   말과 글이 있기에

 

 

 

 

 

                    이른 봄 담 밑에 돋아나는 냉이, 민들레

                    잔디밭을 물들이는 할미꽃, 제비꽃

                    온 산이 붉게 타는 진달래꽃

 

                    그 모든 풀꽃이름 아름다워라

                    말과 글이 있기에 우리가 있지요

 

                    여름날 시냇물에 헤엄치는 고기들.

                    피라미, 버들붕어, 모래무지, 미꾸라지

                    산과 들엔 꾀꼴꾀꼴 뻐꾹뻐꾹, 뜸북뜸북

 

                    그래 그 새들 이름도 소리도 아름다워라

                    말과 글이 있기에 우리가 있지요.

 

                    파란 하늘에 달려있는 감, 대추

                    가을날

                    머루, 다래, 으름, 알밤.

 

                    그 빛깔 그 이름 아름다워라

                    말과 글이 있기에 우리가 있지요.

 

                    겨울날 산과 들에 피는 눈꽃

                    찬바람 속에 띄워 올리는 연

                    밤늦도록 듣는 할머니 옛이야기

 

                    그 그림 노래 그 이야기 아름다워라

                    말과 글이 있기에 우리가 있어요  (P.122 )

 

                    (1990년대)

 

 

 

 

 

                       -이오덕 선생님 10주기 추모 시집,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에서

 

 

 

 

 

 

 

 

 

 

 

 

마음 속에 꽉 찬 것을 토해 놓은 시

도서출판 고인돌은 우리 겨레와 인류의 희망인 아이들 삶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평생을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참교육 실현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 내 놓은 교사들이 우리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실천 한 삶을 올곧게 담아낸 시를 골라서 <우리시대 교사시선>으로 펴냅니다. <우리시대 교사시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교육 현장에서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아이들한테 조금이라도 더 올바른 교육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애 쓴 교사들 마음을 풀어놓는 멍석마당입니다.
< 우리시대 교사시선> 두 번째 시집으로 참교육자 이오덕 선생님의 10주기를 맞이하여 추모시집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을 펴냅니다. 이 시집의 원고는《이오덕 유고시집 (이 지구에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 지구가 될까?)》(고인돌, 2011)에서 뽑았습니다. 《이오덕 유고시집》은 이오덕 선생님이 1950년대부터 2003년 돌아가실 때까지 쓴 발표하지 않은 시 341편을 모아 983쪽 양장본에 담아냈습니다. 이 추모시집은 이오덕 연구가 이주영 어린이문학협의회 회장이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즐겨 낭송하는 35편을 골라 엮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10주기를 맞이하면서 선생님이 토해낸 시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작은 시집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1부 <내가 죽으면 누가 우리 애기를 봐줄까요>에는 학교에서 직접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쓴 시에서 골라 넣었습니다. 2부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에는 ‘어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나 ‘어린이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표현한 시를 추려 실었습니다. 3부 <우리들의 이름을 말해다오, 바람이여!>는 자연을 비롯한 여러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를 모아놓았습니다.
평생을 우리 겨레와 겨레의 어린이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쏟았던 한 사람이 ‘마음 속에 꽉 찬 것을 토해 놓은 시’를 만나게 하고 싶습니다. 이 만남으로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열쇠를 얻을 수 있고, 첫걸음을 올바르게 내딛을 수 있는 물꼬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모든 것을 ‘다시 처음부터’ 살펴보고, 생각하고, 시작해야 하는 슬픈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겨레와 우리 겨레의 희망인 어린이들을 살리고 교육을 살리기 위해 이 시집이 작은 밑돌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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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0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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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1 05: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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