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덕포리 다리 앞> oil on canvas, 2012-2014.07.04



그림 <덕포리 다리 앞> 

oil on canvas, 15F, 2012-2014

 

그림 하나만 덜렁 올려놓으면 재미없을 것도 같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야 나무 하나만 가지고도 백 가지 모양새와 기법을 실험해 볼 수 있겠지만, 그림과 상관 없는 이에게는 백 가지 나무가 다 하나의 나무, 똑같은 초록 빛깔로 보일 테니 말이다.

 

음, 오늘은 어떤 얘기를 할까... 생각하다 보니 불현듯 그 옛날 아현동 우리 집 문간방에 살던 말괄량이 아가씨가 떠오른다. 그 아가씨는 키도 크고 늘씬하면서 성격도 아주 명랑했다. 약간 튀어나온 커다란 입을 활짝 벌리고 웃던 그 시원스러운 미소가 아직도 생각난다. 오죽했으면 울 엄마가 그 언니에게 말괄량이 아가씨라는 별명을 붙였겠는가.

 

나는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느 일요일이었다. 말괄량이 아가씨가 안채로 건너오더니 잠깐 텔레비전 좀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그 전에도 가끔씩 우리 집 선풍기에 머리카락을 말리러 안채로 건너오기도 했었다.) 언니와 나는 흑백텔레비전으로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코미디 재방송 프로그램을 시청 중이었다. 그런데 말괄량이 아가씨가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은 따로 있었다. 갈기가 달린 번쩍거리는 허연 옷을 입은 백인 남자가 노래하는 방송이었는데 꽤나 요란뻑적지근해 보였다. 남자의 공연에 흠뻑 취한 말괄량이 아가씨는 소리를 빽빽 지르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마침 부모님은 출타 중이었다. 이런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언니와 나는(평소 엄마가 텔레비전 시청을 엄격하게 관리했던 터라 우리에게는 모처럼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어서 빨리 말괄량이 아가씨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말괄량이 아가씨는 죽어도 그 백인 남자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봐야했던지 좀체 자리에서 일어설 줄을 몰랐다. 우리도 물러서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우리 집 것이니 우리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주장할 도리밖에.. 결국 말괄량이 아가씨가 한 가지 타협안을 제시했다. 서로 5분씩 프로그램을 번갈아 시청하자는 것이다.

 

너풀거리는 빤짝이 옷에 시커먼 구레나룻를 기르고 다리까지 떨어대는 그 백인 남자가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더욱 재미있는 건 그 가수의 일거수일투족에 매료되어 괴성까지 지르며 난리법석을 피워대는 말괄량이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그때 우리가 사이좋게 5분씩 번갈이 가며 시청했던 그 백인 가수가 엘비스 프레슬리였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

 

우리 세대는 어쩐지 엘비스보다는 비틀즈 쪽에 더 열광하는 문화 풍조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요즘 들어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에 가끔씩 필이 꽂히고는 한다. 뭐랄까. 약간 느끼하면서도 반항기 어린 그 목소리가 내게는 더 청춘의 향수를 떠올리는 것이다. 청춘이란 과연 어떤 빛깔일까. 저마다의 청춘은 다들 제 나름의 모양새와 색채를 띄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목소리에는 샙 그린과 프렌치 울트라마린을 섞어 놓은 청춘의 빛깔과 페인스 그레이와 약간의 번트시에나를 결합해 놓은 듯한 그늘이 공존한다. 그 시절 우리집 문간방에서 일 년 정도 살다 간 말괄량이 아가씨에게 새삼 고마울 따름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어떻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 ‘역사적인’ 하와이 공연을 볼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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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덕포리 과수원> pen and Watercolor on paper 25.1X 18.3cm 2012

 

줄곧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게 농촌은 가깝고도 먼 이국의 영토다. 어쩌다 차를 타고 지나는 길에 풍광이 좋아서 잠시 쉬어가는 곳 정도였다고 한다면 어쩐지 좀 무례한 발언이 될 것도 같다. 지난 주말에는 김포에 있는 덕포리에 야외 스케치를 다녀왔는데, 그림을 그리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국의 농촌 모습이 정말로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덕포리 과수원>이다. 지난주에 찍어온 사진들을 살펴보다 이것도 구도가 될까 싶어 펜을 들고 그려나가기 시작했는데 어딘가 이국적으로 보이는 덕포리 마을의 전경이 새롭게 다가오면서, 어려서 내가 경험했던 시골 동네의 일상, 외갓집이 있던 충청남도 심방리의 풍경들이 옛 기억 속에 아른거렸다.

 

우리 외갓집은 천안에서도 한참 들어간 시골 촌구석이었다. 외양간에 소와 돼지들이 여럿 있었는데, 가끔씩 집채만 한 돼지가 울타리를 뚫고 뛰어 나와 집안 마당을 뺑뺑 돌아 다니는 바람에 조용하던 집안이 일대 격랑에 휩싸이곤 했다. 끼니때가 되면 할머니가 텃밭으로 나가 찬거리를 뜯어오고 새아주머니는 장작불을 지펴 무쇠로 된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 동네에서 앙숙 진 사람들끼리 싸움이라도 붙을라치면 난데없이 똥지게며 똥바가지들이 날아다니는 형국이 펼쳐졌다.

 

도시 생활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검은 색조를 구경할 수 있었던 곳도 거기 시골 마을에서다. 외갓집 곳곳에 놓여 있던 거무추레한 고가구들, 동네 사람들이 즐겨 신던 검은색 고무신, 할머니가 모처럼 내려온 손녀딸을 위해서 군것질거리로 만든 조청, 잿물을 받아 집에서 직접 만든 까만색 빨래비누. 그 모두가 내게는 생소하기만 한 까만색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던 검은색은 깊은 밤 들판에서 마주쳤던 거대한 어둠의 장벽이었다. 당시 외갓집에는 천안에 있는 고등학교로 기차 통학을 다니던 막내 이모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외조부를 따라 이모를 마중하러 나갔는데 정말이지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내 손가락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이러다 텅 빈 들녘에 홀로 남겨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불안한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연거푸 불러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딨어? 어딨어, 할아버지!”

 

“왜 그러니? 가만히 좀 있거라. 이제 곧 네 이모가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곧이어 할아버지가 이모의 이름을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근엄하기만 했던 외조부가 내게 보여 주었던 아버지로서의 또 다른 면모였다. 어둠만이 가득한 들판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이 떠올랐다가 메아리처럼 번져갔고, 저기 어딘가에서 화답하듯 할아버지를 부르는 이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외갓집에 대한 나의 추억들은 주로 겨울철과 한 여름철로 한정되어 있다. 그것도 저학년까지의 일인데 그때 그 농촌의 모습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도 자연과 흙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반쪽짜리 콘크리트 인생만 살았을지 모른다. 글이든 그림이든 평생 자신의 삶을 소재로 작업을 해야 할 사람에게는 결코 이로운 상황이 아니다.

 

어느 해 여름에는 외갓집에 도착하자마자 동네 아이들 틈에 끼어 수박서리를 한 적도 있다. 원두막에는 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가 혼자 밤을 새우며 도둑을 지켰는데, 어떻게든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축축한 흙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엉금엄금 기어야만 했다.

 

거기에 같이 있던 아이들 중에서 누군가 낄낄 웃으며 이제 콩서리를 하러 가자고 한 걸 보면 그날 밤 범행이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완전범죄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 누구야!”벼락같이 내지르는 목소리와 함께 어딘가에서 친척아저씨가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꼼짝 못하고 뒷덜미를 잡히고야 말았다. 그날 밤에 있었던 최대의 재앙은 우리들이 하필이면 죄다 설익은 수박들만 건드렸다는 사실이다. 어떤 게 잘 익었는지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쿡쿡 찔러본 것이 화근이었다.

 

친척 아저씨는 우리가 따 놓은 수박이며 여기저기 쑤석거린 것들까지 한데 모아놓고는 다시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니들이 다 먹어! 아깝게 버릴 수는 없잖아! 여기, 내가 보는 앞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먹어 치우란 말이야!”

 

친척 아저씨는 가뜩이나 큰 눈을 부라리며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약간 꾸불거리면서도 굼뜬 목소리로 우리들을 위협했다. 아이들은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하나씩 수박을 집어 들었다. 칼로 자른 것도 아닌 그냥 돌에 대고 툭툭 깨뜨린 수박덩이들이었다. 수박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물배는 점점 불러오고... 아직도 우리 옆에는 씨앗까지 허연 수박들이 잔뜩 남아 있었다. 뱃속에서는 압력 밥솥이 딸랑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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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덕포리 다리> watercolor on paper, 34X 23.7cm, 2012

 

가을이 오면 호숫가 물결 잔잔한 그대의 슬픈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지나온 날에 그리운 그대의 맑은 사랑이 향기로워요

노래 부르면 떠나온 날에 그 추억이 아직도 나를 슬프게 하네

잊을 수 없는 님의 부드러운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이것은 이문세 씨가 우수에 젖은 목소리로 부르는 ‘가을이 오면’ 가사다.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가슴 한쪽에 있던 주축돌 하나가 쑤욱 빠져나가면서 그 빈자리에 아슴아슴 뭔가 피어오르는 느낌이 든다. 연초록의 뽀얀 물빛이 하염없이 번져가는 그런 순간이기도 하다.

 

모두들 자신만의 가을 이야기와 추억의 장면이 있을 것이다. 내게 가을은 클래식 음악과도 같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선율이 배경 음악처럼 깔리고 가을 언저리의 눈부신 풍경들이 마음에 사무치면 나도 모르게 아득하만 했던 옛 시절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오래전 어느 가을 날, 나는 차를 몰고 볼티모어 로열라 칼리지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주위 풍광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후였지만 내 마음은 청춘의 열병으로 뿌옇게 흐린 상태였다. 그때 자동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과 한적한 도로 위를 굴러다니던 은행잎들이 압도적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살다보면 인생의 퍼즐 조각들이 일시에 맞춰질 때가 있다. 내게는 그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모든 가을날들이 거기 그 자리에서 하나로 압축된 것만 같았다.

 

너무 짧아서 늘 아쉬운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이렇게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날 오후에는 슬며시 집을 빠져나와 근처 도서관 같은 곳에 가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으며 한다.  무슨 책을 읽을 지는 그 순간의 예감과 자율적인 선택에 맡긴다. 책들은 항상 운명처럼 그 자리에 꽂혀 있다가 손끝에 딸려 나온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낡은 시집이나 낭만파 시대의 고전 문학도 좋고, 자연식 영양이나 고생대 생물학에 관한 최신판 신간 서적이라도 좋다. 정신을 느글거리게 만드는 만화책만 아니라면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모두 감당할 자신이 있다. 그러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던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가을 숲길의 낙엽 냄새와 사각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떠올리며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미소를 지어보는 것이다. 

 

가을 허공에는 외로움의 향기가 감돈다. 말간 햇살이 어른거리는 도서실 창가에 다시금 침묵이 흐른다. 발음과 형태 분석이 모호한 시곗바늘은 세월의 눈금을 새기고 있다. 한 권의 책은  빈 도화지처럼 하나의 우주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의식하고자 하는 세계의 의식과 의식할 수 없는 세계의 무의식 속으로 더욱 깊숙이 잠입해 들어간다. 텅 빈 오후를 가르며 천천히 책장이 넘어가는 차락차락 소리..도서관 한쪽 끝에서 들려오는 지나간 청춘의 나지막한 기침소리..그러나 가장 완벽한 가을날 풍경 어디에도 그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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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안행마을>watercolor on paper 33.8X 23.3cm 2012

 

밤이 깊었습니다. 너무 졸려서 자꾸 하품이 납니다. 오늘 오후에는 어제부터 계속 그리던 작품 하나를 망치고야 말았습니다. 더 이상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태라 결국 입술을 깨물며 꽉꽉 구겨서 휴지통에 쑤셔 넣었습니다. 분명코 이 세상에는 망친 작품들만의 무덤이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 믿습니다. 그동안 제가 망쳐버린 작품들이 한꺼번에 응어리진 표정으로 저의 뒤통수를 쏘아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왠지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뭐든 쉬운 일은 없습니다. 수채화도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는 좀 풀리는 듯하다가 다음 날에는 완전히 감을 잃어버린 채 헤매는 꼴입니다. 무엇보다도 빠르고 단호한 붓질이 중요한데 붓을 함부로 휘둘렀다가는 그림에 ‘뽕기’가 들어가기 십상입니다. 그런 식으로 습관이 붙었다가는 더더욱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뽕기’라는 단어가 다소 거친 표현이긴 하지만 달리 떠오르는 단어가 없어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사용합니다.

 

늘 소개하는 작품은 오미희 씨 방송이 시작된 얼마 후부터 다시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간에 잠깐 쉬기는 했습니다. 남편이 출장 중이라 모처럼 싱글 시절의 자유를 만끽하며 혼자 저녁도 먹고(달랑, 김밥 한 줄), '착한 남자' 시청도 하고(요즘 제가 꽂힌 드라마입니다. 송준기, 화이팅!)...그러다가 내일을 위해 잘 준비를 하다말고 다시 화실로 들어가서 심기일전 붓을 집어 들고는 결국 새벽까지 일했습니다. 그 다음에 사진 찍고, 알씨로 용량 줄여서 사이트에 입력하고...휴우! 정말 긴 하루였습니다. 게다가 별로 할 말도 없으면서 이렇게 쓸데없이 주절거리기까지 하고...

 

이번에 사용한 수채화 용지는 100% 코튼으로 된 황목 파브리아노 제품 입니다. 그동안은 주제나 기법에만 신경을 썼지 재료에 대한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여겼는데 진작부터 이 용지를 사용하지 않은 게 후회막급입니다. 요리사가 좋은 요리를 할 때는 우선 재료부터 잘 선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로 유화 작업만 하다 보니 수채화 쪽 재료에는 뭐든 대충 대충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이후 본격적으로 수채화 작업에 매달렸던 적이 없었거든요. 뭐랄까, 일종의 보조 수단 정도로만 여겼지요.

 

그런데 종이 하나의 위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붓 터치가 그대로 살아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번져가는 느낌이 놀랍습니다. 질감이 거칠면서도 단단한 것이 수채화 물감을 아주 잘 받혀준다고 할까요. 물이 묻어도 종이가 잘 우그러지지 않습니다. 약간 안쪽으로 우묵하게 들어갔다가 금세 빳빳하게 마르면서 원상복구 됩니다. 그동안 너무 엉성한 요리사 노릇만 한 것 같습니다. 재료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 신중함, 작품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부터 챙겨야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을 되뇔 따름입니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는 일에도 기초적인 매뉴얼로 인해 어그러지는 일이 태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뭔가 이상하게 안 풀린다 싶으면 인생 매뉴얼 1조 1항부터 새로이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구나 싶습니다.

 

요즘에는 계속 사진을 곁에 두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직접 밖에 나가 그리면 좋겠지만 여건 상 사진으로 찍을 당시의 기억들을 되새기며 색채와 분위기를 조율합니다. 다행히 이번 주 주말에 다시 야외 스케치 하시는 분들과 함께 덕포리 안행마을에 가기로 했습니다. 덕포진과 덕포리를 자꾸 혼동하게 되는데...저번에 다녀온 곳은 덕포진이었고 이번에 가는 곳이 덕포리 입니다. 죄송..암튼, 벌써부터 잔뜩 기대가 됩니다. 날씨도 좋을 거라 하니 멋진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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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양평 호숫가-2>pen and brown ink with brown wash on paper, 29.7X 17.9cm, 2012

 


그림 <양평 호숫가-1>pen and brown ink with watercolor on paper, 29.7X 17.9cm, 2012

 

 하루가 또 지나갑니다. 어느 틈엔가 태풍도 슬그머니 잦아들었습니다. 긴팔을 꺼내 입고 이불도 좀 더 두꺼운 거로 바꿨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공기의 밀도가 점점 무거워 지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모처럼 외출했다가 비 내리는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그림 전시회 구경도 했습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게 오랜만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 우두커니 서 있으려니 불현듯 예전에 인사동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들 생각이 났습니다. 종로에서 안국동으로 이어지던 그 좁은 골목길에는 우리들의 많은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지속하며 작업을 병행해 나가는 일은 꽤나 버거운 일입니다. 어디서 잘들 지내고 있는지,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는지... 기회가 되면 언젠가 또 만나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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