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중국 장가계의 천문동, ‘여백’〉 © 김미진, 2026


하늘로 열려 있는 빈 자리.

산 한가운데가 비어, 그 안으로 하늘이 드러난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기가 흐르고,
그 고요는 어떤 움직임을 기다리는 듯하다.


그 사이를 아바타의 존재들이 날아다닌다.

몸을 맡기듯, 저항 없이, 그 거대한 공백을 가르며.


사진 중국 장가계, '시간 여행자들'© 김미진, 2026


그 장면 안에 문득 다른 이미지가 겹쳐진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역시, 어딘가 비어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균열과 긴장으로 가득한 시대,
무언가는 멈춰 있고, 무언가는 방향을 잃은 채 떠 있다.


그런 공간 속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것,
가볍게, 그러나 또렷하게 자신의 궤적을 남기며 지나가는 존재.


사진 중국 장가계, '회상'© 김미진, 2026


BTS를 떠올린다.

그들의 특별함이,
지금 이 시대의 공기를 가장 민감하게 통과하고 있는 존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은 때로 공허가 아니라
새로운 움직임을 위한 여백이 된다.

아티스트란, 어쩌면
그 여백을 두려워하지 않고 건너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진 중국 장가계, '빔'© 김미진,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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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국 장가계, '얼굴'© 김미진, 2026


오래된 시간은 때로 풍경의 얼굴로 남는다.


중국 장가계의 산들은 원시 자연이 빚어낸 모습 그대로

여전히 태초의 기운을 간직한 채 서 있다


아득한 옛날, 격렬한 지각 변동으로 솟아오른 지층이 

수십만 년의 햇빛과 바람, 비를 견디며 

조금씩 깎여 나가 지금의 장대한 형상을 이루었다.


사진 중국 장가계, '시간'© 김미진, 2026


시간이 바위가 되는 곳.


이곳은 아바타의 배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손가락처럼 솟구친 봉우리들과 붓자루를 세워놓은 듯한 

기암괴석들이 안개 사이로 떠오를 때면

영화 속에서 공중을 가르며 날아다니던 장면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사진 중국 장가계, '협곡을 지나가며'© 김미진, 2026


장가계 대협곡으로 들어서면

깊게 패인 협곡 사이로 길이 이어지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유리 다리가 

아득한 높이에서 사람의 발걸음을 시험한다


발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아슬아슬하면서도 묘하게 평온하다


멀리서는 물이 흐르고

바람은 절벽 사이를 지나며 낮게 울린다.


사진 중국 장가계, '황룡동굴에서'© 김미진, 2026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느껴지는 황룡동굴은

땅속 깊은 곳에서 또 하나의 시간을 품고 있다


거대한 동굴 안에는 종유석과 석순들이 

오랜 세월을 켜켜이 쌓아 올리고


잔잔한 지하 호수 위로는 작은 배가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그 어둠 속에서, 시간은 더 느리게, 거의 멈춘 듯 흐른다.


사진 중국, 장가계의 길 위에서© 김미진, 2026


우리가 사는 세계는 지금,
쉼 없이 요동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힘들이 서로를 밀어내고,
무언가는 빠르게 솟아오르고,
또 무언가는 아무 말 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들은 그 모든 바깥에 서 있다.

 

사진 중국 장가계, '틈'© 김미진, 2026


수많은 문명과 패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 자리 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만 바람과 햇빛의 속도로만 시간을 쌓아 올리며.


어쩌면 우리가 불안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거대한 시간 앞에서
아주 잠깐의 흔들림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모두 떠나가리라,
저 먼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사진 중국 장가계, '떠나는 길 위에서'© 김미진, 2026


🎨 Writing & Painting | Mij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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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29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가계는 언제봐도 신비해 보이는 곳이네요.저도 언젠가는 여행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네요.

김미진 2026-03-3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꼭 가보시길 바랍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깊고 신비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림<도넛과 파이>

oil on canvas 61×50cm 2014

 

살아간다는 것은 먹어야 할 것먹지 말아야 할 것을 전제로 한다. 끼니마다 챙겨 먹는 주식이 삶을 지탱하는 음식이라면, 간식은 그 사이에 놓인 작은 쉼표 같은 것이다. 온종일 무언가에 몰두하다 보면, 혹은 아무것에도 마음이 가지 않는 날이면 괜히 달달한 것이 당긴다속이 허하고 마음이 뒤숭숭하다는, 그런 신호일지도.


이런 오후에는 향기 좋은 원두커피 한잔과 베이커리의 온기가 남아 있는 도넛이 떠오른다.


도넛은 소비자가 좋아하는 맛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부드럽고 촉촉하면서도 쫄깃한 허니딮이다.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노란 표면 위에 하얀 설탕가루가 살짝 얹힌 모습. 한입 베어 물면 적막하던 오후가 햇살처럼 반짝인다.


도넛 가운데 구멍이 있는 이유는 반죽을 튀길 때 기름 온도를 고르게 퍼뜨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동그라미는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하다. 존재를 긍정하는 형상이면서 동시에 부재를 암시하기도 한다. 두 개의 동그라미로 이루어진 도넛, 그리고 그 전체가 이루는 또 하나의 동그라미.

커피와 함께 그 동그란 세상을 조금씩 음미하다 보면, 오래된 기억 한 조각이 혀끝에 맴돈다.


추억 하나의 도넛과 추억 하나의 동그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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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 2014-04-07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도넛에 대한 글을 읽으며, 고 김지원 작가를 생각했습니다. 인상적이어서 메모를 해두었는데..
"나는 가끔 동그라미라는 생각을 한다. 이리 봐도 절대 안전한 동그라미 이고, 저리 봐도 절대 안전한 동그라미 인데, 살아가며 여러 경험을 하는 동안에 이해의 영역이 넓혀지면 그 동그라미는 커진다, 아니 안 커지고는 배겨낼 수가 없다." 김지원씨가 이상문학상을 받은 뒤 수상소감에 쓴 말이라고 합니다.
저는 도넛 중에 가장 기본인 팥빵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동그라미의 의미는 생각지도 않은채 먹는 행위에 집착해 허겁지겁 쑤셔넣은 기억밖에 없습니다.
승화된 현실을 지향하면서도 먹는 행위에 있어서 저는 너무 본능적 입니다.언제 저라는 사람은, 빵을 먹으면서 동그라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투영해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림이 주는 달달한 도넛의 풍요롭고 충만한 느낌은 저의 오후시간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4-08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림 <태리의 봄 편지>oil on canvas 61×50cm 2014

 

나는 아직 겨울이다.

봄바람이 불면 묵은 옷가지들을 깨끗이 빨아
마른 햇살 속에 널어 두고 싶다.

따스한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창가에 앉아
아직 오지 않은 그대를 기다리리라.

춥고 소란했던 계절이 아쉬운 듯 멀어져 간다.

오후 한기 드리운 창틀에 수국 한 다발 올려놓고
낮은 음악 소리에 귀 기울이며
저기 멀리서 오는 그대, 성큼성큼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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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금요일의 정물 ‘멕시코 밀짚모자와 과일들’>
oil on canvas, 61×50cm, 2014


오래전 멕시코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고대 아즈텍 문화가 융성하게 꽃을 피웠던 치첸이차에는 젊은 여자들을 제물로 삼았던 깊고 어두운 우물이 있다. 소설가 히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는 초원의 끝이나 주택가 뒤편에 존재하는 잊혀진 우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우물의 실체와 마주한 듯, 잠시 신비한 환영에 사로잡혔다.


아즈텍 피라미드는 이집트 가자 지역의 피라미드들보다는 고대 동방의 지구라트 쪽에 가깝다. 


Giza의 피라미드들이 한 사람을 위한 무덤이었다면 지구라트는 수메르인들의 중심축 역할을 하던 신탑이라 할 수 있다. 아즈텍의 피라미드 역시 신을 모시던 거대한 석재 건축물이다. 지구상에 더 이상 아즈텍 문명은 존재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 묵묵히 견뎌 온 그 존재만으로도 경이롭다.


깎아지른 듯한 피라미드를 오르는 일은 꽤나 버겁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거의 정상까지 올라가 오후 햇살을 맞으며 한동안 앉아 있었다. 그때 아득하게 멀어지던 지표면의 흔적들, 신전의 계곡들 사이를 맴돌던 서늘한 바람결, 어딘선가 다가와 잠시 메아리치던 소리의 울림, 신탑을 배경으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던 하늘. 그런 기억의 감각들이 아직도 고운 빛깔로 남아 있다.


마지막에 올린 정물화에는 당시 치첸이차 근처에서 구입한 멕시코 모자를 담았다. 모자를 부서지지 않게 서울까지 가져오느라 그때는 고생도 좀 했지만 이제는 멕시코의 광휘를 한껏 머금은 추억의 기념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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