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양평의 들판>유채, P15,2013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볼 때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오른다. 그는 생의 절망 속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것은 우주 과학자들이 허블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학술적으로 고찰해 낸 행성이나 항성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 별빛은 한 화가의 그림 속에서 삶의 구원이자 희망이었으며, 작은 위로와도 같은 속삭임이었다.

 

반 고흐가 생애 마지막 영감을 불태웠던 오베르를 찾은 건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그때 그 시골 읍네 같은 인상의 작고 소박한 마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 영상처럼 떠오른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적하고 아예 문을 닫은 가게들도 많았다. 파리에서부터 줄곧 기차를 함께 타고 온 탁은 영국에서 일어를 가르치는 일본인이다. 텅 빈 객차 안에서 어색하게 말문을 튼 낯선 여행자들은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왔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금세 친구가 되었다.

 

오베르 기차역은 어느 시골의 작은 간이역 같았다. 그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 할 수 있는 박물관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은 우리는 어쩐지 모두가 떠나버리고 듯 느껴지는 고즈넉한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고흐가 그림으로 남겼던 장소들을 차례로 순례하기 시작했다.

 

평생 가난과 고독 속에서 고통 받았고, 단 한 점의 그림밖에는 팔지 못했던 불운의 화가 반 고흐. 그는 생애 마지막 기간이란 할 수 있는 10주 동안 오베르의 허름한 여인숙에 체류하면서 수많은 작품들을 제작했다. 70여점의 유화와 드로잉과 판화 수십 점. 이 정도라면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미친 듯이 작업에만 몰두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파리에 가서 동생 테오를 만나고 돌아온 직후, 그림을 그리러 나간 들판에서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이틀 후, 사랑하는 테오의 가슴에 안겨 “슬픔은 끝이 없는 거란다”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반 고흐가 마지막 숨을 거둔 라부 여인숙 3층의 작고 초라한 방에는 이제 덩그마니 의자 하나만 놓여 있다. 천장은 비스듬히 기우러져 있고, 햇볕도 잘 들지 않은 이 방. 어깨를 오그라들게 만드는 냉기만이 시린 외로움처럼 떠도는 방안을 둘러보다 왠지 먹먹해진 가슴에 두 눈만 끔뻑이고 서 있는 나. 한 예술가의 상처받은 영혼과 그 불꽃같은 흔적들. 이제 그 쓰라린 고통조차 최고의 상품으로 둔갑해서 소더비즈 경매시장을 뜨겁게 달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한편의 개그 프로그램을 닮은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어느 학자는 고흐에 대한 열광 속에는 현대인의 집단적인 죄의식이 깔려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집단적인 죄의식! 위대한 예술가의 비극적인 운명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전율케 하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래서 ‘반 고흐 증후군’은 중독성이 강하다.

 

마을 공동묘지에는 ‘빈센트 반 고흐’라고 새겨진 사각형의 길쭉한 묘석이 누워 있다. 그 위를 수북이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열광을 불러 모으고, 죽어서도 영원한 존재로 살아 있는 한 예술가의 무덤치고 이건 너무 소박하고 왜소하지 않은가. 그러나 한편으론 이렇게 수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고흐답다는 생각도 든다. 평생 가난을 업보처럼 걸머져야 했던 고흐가 아닌가. 살아생전 거의 한 작품도 팔지 못했고,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던 그의 무덤을 사후의 명성을 빌미로 새롭게 단장하고 위풍당당하고 꾸며 놓았다면 이 또한 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비록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남루한 차림의 빨간 머리 미치광이였으나, 붓과 색채와 활활 타오르는 예술혼으로 그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빛을 발하는 존재,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토해내는 인물......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가 꿈꾸었던 그 별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반 고흐라는 것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나의 기억은 다시 오베르 마을 쪽을 향해 걸어가다 돌로 만든 몽당연필처럼 생긴 작고 다부진 인상의 교회 앞에 다다른다. 반 고흐가 꿈틀거리는 윤곽선을 강조해서 그린 그림 속의 교회보다 훨씬 단단하고 오래된 모습이다. 교회 앞 안내판에는 반 고흐의 그림 ‘오베르의 교회’가 새겨져 있다. 한때 목사가 되기를 그토록 열망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죽은 후 고흐는 거의 교회를 주제로 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순간 깨닫는다. 그가 오베르의 이 자그마한 성당을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의 마지막 순간에 기적처럼 다시금 신의 존재가 떠오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가 죽음을 생각하기 전에 죽음이 앞서 다가왔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다시 마음이 아파진다. 오베르의 교회는 그 투박하고도 순정한 모습이 어딘가 고흐의 마음 빛깔을 담고 있다. 그것은 신의 집이면서 또한 그의 마음이다. 약간 납작 찌그러진 듯한 순결한 그 모습! 한 동네 아낙이 서둘러 교회 앞마당을 지나가고 있다.

 

고흐의 그림들은 출렁이는 물감의 파도와 사선으로 질주하는 구도와 짙푸른 하늘과 형형색색의 색 점들로 어지러울 지경이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 속에서 정신분열증 증세에 시달리는 한 인간의 몸부림을 찾고자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스스로 귀를 자르고, 들판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다 말고 자신의 옆구리에 대고 총알을 발사한 반 고흐.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호기심에 귀를 쫑긋거린다.

 

“그는 정말 미친 사람이었던 거야?”

 

왜 천재는 다 어딘가 이상하고 미친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정말로 정상인이 아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건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지어낸 이미지가 아닐까. 천재라는 것, 그래서 그 머릿속이 궁금하고, 어딘가 나와는 달라야 할 것 같은 강박증. 그로인해 반 고흐라는 인물은 더욱 미친 사람처럼, 더욱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인식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감히 단언하건데, 그의 그림은 그 무엇보다도 명징하고 또렷한 의식과 집중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적어도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어떤 생명의 신비가, 창조력으로 충만한 자유로운 몰입이 그와 그의 그림 사이를 관통하고 있었다. 이제 그토록 맹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다 그로인해 파멸되는 인간은 이 지구상에 없다. 그래서 그 존재가 더 그립고 애절하고 안타까운 모양이다.

 

텅 빈 고독처럼 쓸쓸한 오베르의 교회당. 비둘기 대여섯 마리가 하늘에서 날아 온 성령처럼 날개를 저으며 부유하고 있다.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회랑의 맨 앞에는 성가대원들을 위한 나무 의자들이 정다운 친구들처럼 쪼르르 놓여 있다. 내내 여행길을 동행한 탁과 나는 거기에 나란히 앉아 천장의 둥근 지붕 안에서 푸드득거리는 새들을 바라본다.

 

“그쪽 친구 중에 고흐같이 예민하고 과격하고 고집 센 사람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

 

내가 탁에게 묻는다.

 

“몰라요. 당신은요?”

 

“나도 모르겠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새가 날아오른다. 이번엔 탁이 먼저 질문을 던진다.

 

“종교 있어요?”

 

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아뇨, 그쪽은요?”

 

탁도 고개를 흔든다. 우리 둘 다에게 신이 없다는 것, 신앙심이 없다는 것. 이런 것도 서로의 공통점이 될 수 있을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순결무구한 천상의 빛살에 스며든다. 그로인해 순해지고 맑게 정화된 느낌 속에서 우리는 입을 다문 채 오래오래 앉아 있다. 반 고흐는 이 교회에서 단 한번이라도 예배를 드린 적이 있을까. 여기 이 자리에 앉아 저기 교회당 출입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아득한 신화의 뒤안길에서 환영의 그림처럼 새들이 날아오른다. 8월이었다. 오베르 성당문 밖에는 한 여름 태양이 뜨겁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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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js8049 2013-02-1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흐는 일상의 모든 것을 기록했던 아주 성실한 삶을 살았던 화가이다.
누가 그를 미쳤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을 깨야 할 것이다.
왜냐면 후대들의 그려러니 짐작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오산이기 때문에..
매 순간 치열했고, 다가오지 않은 모두한 것에 열정을 품었던 그 시대나 현재나
보이지 않는 곳의 고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고흐의 기록을 따라 갈 자 누구이던가!
바쁜 와중에도 좋은 그림, 좋은 글로 인도 해 준 작가님,화가님
그녀를 우연히 알게 되어서 너무 행복해요.
축복의 삶이 예술과 함께 곷 피고, 스며드는 나날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김미진 2013-02-20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