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정 엄마> 유화, 40호, 2012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장편소설 '랭보의 바람구두를 신다' 연재를 끝내고 그동안 화실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적적하기도 해서 여기에 인터넷 가상 갤러리를 오픈했습니다. 첫 작품으로 가장 최신작을 올립니다.
충청도 산골 딸부자 집 셋째 딸로 태어나 시집 와서도 내리 딸만 다섯을 낳으신 울 엄마. 집에서 테레비나 보지 뭐하러 엄한(?) 데 돈을 쓰느냐며 손사래를 치던 노모를 겨우 설득해 지난 6월 뮤지컬 '친정엄마'를 보았습니다. 당신과 제일 비슷하게 생긴 나문희 씨 주연의 공연을 선택하신 분은 그래도 엄마 입니다. 공연 내내 무덤덤한 표정을 고수하던 엄마가 나중에 밖으로 나오면서 한마디 툭 내뱉으셨어요. "다 내 얘기네 뭐!" 옆에 있던 딸들은 그냥 비시식 웃었지만 코끝이 찡했답니다. 이 땅의 엄마들 마음이 거의 비슷비슷하겠지요. ‘엄마도 나 같은 여자였다는 것,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인데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정말 미안’하다던 배우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다들 바쁘다 보니 식구들이 모이면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었지 영화관 같은 데 한번 우르르 몰려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날 일요일 오후에는 특별히 짬을 내어 사위들과 조카들은 모두 집에다 떼 놓고 우리끼리만 시내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 그림은 그때 휴대폰으로 찍은 기념사진을 토대로 한 작품입니다.
초상화를 그릴 때는 인물의 개성, 특히 얼마나 닮았느냐가 관건인데 아직껏 아무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아 다행입니다. 휴우! 사실 가까운 이의 초상화를 그려본 게 저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것도 6명이나 한꺼번에, 모두 조금씩 웃고 있는 얼굴을. 사람 손만 해도 9개나 되고 말입니다. 예전에는 화가들이 초상화 의뢰를 받으면 손을 그릴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따로 계약 조건을 달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이번에 여실히 체험했습니다. 조금 엄살이긴 하지만, 사실 저는 대충대충 그렸습니다. 올 여름 날씨, 얼마나 징글징글하게 덥던지.. 항복..
딸들 걱정에 평생 어깨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노심초사 애면글면 하신 엄마, 어머니, 울 엄마... 당신에 대한 고마움, 애틋함, 안타까움, 그런 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은 둘째딸의 마음을 이 한 장의 그림에 담았습니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화면 왼쪽 하단에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도 배경처럼 살짝 집어넣었습니다. 엄마는 지금껏 별 말씀 없지만 잘했다 싶습니다.
그림을 처음 공개하던 날은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미국에 있는 친척이 와서 온 식구가 친정집에 모이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참에 슬쩍 그림 공개나 하자 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아쉬운 데가 많습니다. 마침 날씨가 안 좋아 저는 따로 작품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이 사진은 그날 첫째 언니가 스마트 폰을 꺼내들고 그림의 일부를 촬영한 것으로 아버지 모습과 건물 상단부분이 잘려나갔습니다. 아무래도 인물을 크게 찍기 위해 과감히 잘라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슬라이드 필름으로 작품 사진 찍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정말로 편해졌습니다. 그림이 좀 차갑게 보이고 색감을 다 잡아내진 못했어도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인터넷 가상 갤러리도 개설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림에 관심 있으신 분은 종종 들려주세요. 가끔씩 작업하던 것도 싣고, 부연 설명이나 스치는 단상들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