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장암동 마을의 산책길

Oil on canvas, 65.2×53.0cm, 20132014

 

옛사람들은 생각의 물꼬가 트이는 순간이 따로 있다고 했다. 말을 타고 달릴 때, 뒷간에서 일을 볼 때, 베개를 베고 막 잠자리에 들었을 때, 혹은 한적한 마음으로 산책길을 걷고 있을 때처럼 말이다. 그럴 때면 뒤엉켜 있던 생각들이 어느 순간 스르르 풀리며 새로운 길을 내준다고 한다.


내 경우는 조금 다르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운전대를 잡는다. 파편처럼 흩어진 아이디어들, 앞뒤가 막혀버린 생각의 매듭을 풀기 위해 몇 시간이고 도로 위를 달린다. ‘2시간째 같은 차선 주행 중이라는 초보 운전자의 경고판이 이때만큼은 나에게도 해당된다.


생각의 실마리가 좀처럼 잡히지 않을 때면 잠시 세상으로부터 물러나고 싶어진다. 그럴 때 음악이 필요하다. 차창 밖 풍경과 나 사이에 얇은 막 하나를 세워 두기 위해서다. 도로 위를 떠다니는 소음과 내 생각 사이에 음악이라는 가벼운 장막을 드리우는 셈이다.


생각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높이지 않는 편이 좋다. 차선도 거의 바꾸지 않는다. 3차선이나 4차선에서 유난히 느리게 주행하는 차를 묵묵히 뒤따라간다. 사고를 피하면서도 생각의 호흡을 끊지 않기 위한 나만의 운전 방식이다.


정신을 모으는 데는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이 잘 맞는다. 라디오는 지지직거리는 전파 잡음과 CM, 그리고 디제이들의 목소리 때문에 생각이 자꾸 끊긴다. 가사가 있는 가요나 팝송, 재즈나 오페라 역시 마찬가지다. 차 안에는 이럴 때를 대비해 몇 장의 CD가 준비되어 있다. 피아노나 첼로, 플루트, 오케스트라 연주곡도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가장 잘 맞는 것은 템포가 빠른 바이올린 곡들이었다.


평소에는 다소 자극적으로 느껴지던 바이올린 소품들이 이런 순간에는 유난히 달콤하게 들린다. 예민하게 떨리는 하이톤의 선율 속에는 사람의 뇌파를 건드리는 어떤 힘이 숨어 있는 듯하다. 음파의 보이지 않는 영역이 무의식 깊숙이 파고들어 생각해, 생각해. 더 깊이 생각해.’ 하며 내 등을 떠미는 느낌이다.


음악 또한 하나의 카오스다. 그것을 받아들여 단단히 잠가 두었던 의식의 문을 풀어헤치려면 바이올린의 템포가 심박수를 자극할 만큼 강렬할수록 좋다. 그래서 선택한 음악이 바네사 메이 풍의 격렬한 바이올린 연주곡들이다. 그런 음악을 들으며 몇 시간쯤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대개는 무엇인가가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들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자잘한 사념의 꼬리들이 이리저리 얽히다 어느 순간 하나의 형상을 이루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길가에 차를 세운다. 콧잔등을 몇 번 긁적거린 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지 위에 급히 받아 적는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향한다.


물론 몇 시간의 드라이브가 인생을 구제해 준 적은 없다. 아니, 단 한 번도. 머릿속이 조금 정리되었다고 해서 삶이 가벼워지거나 작업이 갑자기 수월해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생각은 생각으로 남고, 삶은 여전히 삶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혼자 끌고 가야 하는 수레 같은 것 아닌가. 그 위에는 수없이 많은 실타래와, 나조차 처음 보는 무거운 상자들,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골칫거리들이 잔뜩 실려 있다.

남태평양 타히티 섬까지 건너가 생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Paul Gauguin은 마지막 작품에서 이렇게 물었다.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운전대를 잡고 도로 위를 달린다. 언젠가 풀어야 할 질문들을 마음속에 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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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ffeeman 2013-06-24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저도 드라이브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라 님의 글에 무척 공감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