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봄의 전령1-1> oil on canvas, 25F, 2013

 

휴일이다.

우리는 찜질방에 갔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그 사우나는 쾌적한 환경에 피트니스 룸까지 있어 우리 부부가 휴일마다 즐겨 찾는 곳이다. 찌뿌듯한 겨울 날씨는 사람들을 찜질방으로 불러들인다. 지하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사이드 주차를 하려다가 운 좋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30분 후에 홀에서아니, 피트니스 룸에서 만나자.”

카운터 앞에서 표를 끊은 뒤 남편이 말했다. 번번이 늦게 나타나는 나를 기다리느니 먼저 가서 운동을 시작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번에는 안 늦을 테니 걱정 마. 조금 있다 봐.”

나는 남편에게서 가방을 받아 들고 손까지 흔들었다. 남자들은 사우나에 갈 때 거의 빈손이다. 내 남편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말하면 그가 들고 온 커다란 가방 안에는 오로지 나를 위한 것들만 들어 있다. 샴푸, 때 타월, 트리트먼트, 목욕 소금, 화장품, 그리고 이런저런 잡동사니들.

목욕탕 안에는 시간을 잡아먹는 하마가 한 마리 살고 있다. 그 하마에게 꼬리를 밟히지 않으려면 시간 분배가 중요하다. 먼저 실내복과 수건을 챙긴다. 옷장으로 가서 재빨리 옷을 벗어 구겨지지 않게 접어 넣고, 앞으로 사용할 순서대로 물건을 정리한다.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를 재고, 간단히 샤워를 한 뒤 허브 탕에 몸을 담근다. 머리를 감고, 때비누로 몸을 문지르고, 다시 헹군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문 앞에서 발을 한 번 더 씻는다. 탈의실로 나와 실내복을 입고 머리를 한 번 더 털어 말린 뒤 얼굴에 로션을 바른다.

이 모든 과정을 나름의 초스피드로 해치웠지만, 그 사이 시간은 이미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찜질복을 입고 피트니스 룸으로 향했다. 남편은 벌써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빼고 있었다. 당연하다. 물속에서 대충 첨벙거리다만 나왔을 테니까.

왔어? 내가 매점에서 식혜 사왔지.”

남편이 거울 속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창턱 위에 식혜 한 통이 놓여 있었다. 동그란 플라스틱 통을 집어든 내 표정이 단박에 흐려졌다.

뭐야? 얼음이 별로 없잖아. 주는 대로 그냥 받아왔지?”

아냐. 얼음 좀 많이 달라고 했어.”

이건 냉장고에 있던 거잖아. 통에서 떠달라고 하지.”

부탁했지. 그런데 똑같다면서 그냥 주잖아.”

그래도 그냥 받아오면 어떡해? 나 식혜 얼음 좋아하는 거 알잖아.”

남편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단 음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찜질방에서 먹는 식혜만큼은 양보하기 어렵다. 덥고 갈증 날 때 살짝 언 식혜를 조금씩 떠서 아삭아삭 씹어 먹는 그 맛. 나에게 얼음이 다 녹아버린 식혜는 그저 밍밍한 설탕물에 지나지 않는다. 찜질방 식혜에 대해 내가 까다롭게 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매점에서 일하는 아줌마다. 그녀는 늘 자기 방식대로 식혜를 한꺼번에 퍼서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손님이 주문하면 차례로 꺼내 준다. 그리고 늘 같은 말을 한다.

똑같은 거예요. 통에서 막 푼 거나 냉장고에 있던 거나.”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식혜 통에서 막 퍼준 것은 국물 전체가 슬러시처럼 살짝 언 상태라 한참을 떠먹어도 그 느낌이 유지된다. 반면 냉장고에 있던 식혜는 윗부분에만 얼음이 떠 있을 뿐 금세 녹아버린다.

손님이 주문한 대로 주면 어디 덧나나. 잠깐 기다려봐. 내가 가서 더 받아 올게.”

나는 식혜 통을 들고 매점으로 갔다. 남편이 두어 모금 마신 뒤였지만 아직까지 소비자 권익을 주장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 생각하면서.

 

그림 <봄의 전령1-2>oil on canvas 73×60cm 2019

 

남녀 공용 홀과 피트니스 룸 사이에 있는 매점에는 두 명의 여자가 일하고 있다. 한쪽은 매점의 터줏대감 같은 나이 든 여자, 다른 한쪽은 주말에만 가끔 나오는 젊은 아가씨다. 마침 손님도 없이 한가했다.

문제의 인물은 당연히 나이 든 점원이다. 괜히 맞붙어 좋을 일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아가씨 점원 쪽으로 다가갔다.

미안하지만 식혜 얼음 좀 더 주실 수 있나요?”

나는 미소까지 띠며 공손하게 말했다.

리필은 안 되는데요.”

리필이 아니라식혜 얼음이 벌써 다 녹았잖아요. 통에서 조금만 더 떠 주세요.”

그건 안 되는데

아가씨 점원이 스낵 진열대 앞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외통수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이건 냉장고에 있던 거잖아요.”

그래도 더 드릴 수가 없어요.”

내 말을 들은 외통수가 이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귀신처럼 눈치가 빠른 여자다.

왜 그러세요? 뭐가 필요해요?”

그녀가 다가오며 물었다. 표정에는 어딘가 초등학교 교감선생 같은 분위기가 있다. 깔끔한 화장에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이 없다. 그에 비해 나는 후줄근한 실내복 차림에 욕탕에서 벌겋게 익어버린 얼굴이다. 괜히 기가 죽는다.

아니그게 아니라 식혜 얼음 좀냉장고에 있던 걸 주셨잖아요. 통에서 떠 주시면

말이 어쩐지 매끄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뜻은 통했다.

똑같은 거예요. 주말에는 손님들이 밀려서 미리 떠 놓는 거예요.”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냉장고 안에는 식혜 통이 스무 개쯤 들어 있었다.

주문할 때 손님이 통에서 떠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서 주면 안 되나요? 저는 얼음 많은 걸 좋아해서요.”

글쎄, 새로 푸는 거나 냉장고에 있는 거나 똑같다니까요.”

외통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늘 듣던 대답이다. 맥이 빠진다.

벌써 다 녹았거든요. 저는 얼음 때문에 식혜를 먹는 건데요.”

내 목소리가 점점 더 궁색하게 들린다.

그럼 그냥 얼음만 좀 드려요?”

외통수가 얼음 나오는 기계를 가리키며 빈정대듯 물었다.

제가 말하는 얼음은 그게 아니잖아요.”

리필은 안 돼요. 다시 시키세요.”

다시 시키라고요?”

, 다시 시키세요.”

머릿속에서 뭔가가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가상의 스팀 분사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금 내가 생떼를 쓰는 걸까. 무식한 여편네처럼 어거지를 부리는 걸까. 생각해 보면 이것은 겨우 식혜 한 통을 둘러싼 쪼잔한 아줌마의 사소한 분노 심리학 같은 것이었다.

겨우 식혜 한 통 아닌가. 이런 일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냥 돌아서려고 했다. 앞으로 살아가며 겪게 될 일들에 비하면 식혜 한 통쯤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다른 손님들이 내 뒤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순간 외통수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이 참, 알았어요. 진작 말씀하시지. 다 똑같은 건데그럼 식혜 얼음만 조금 더 드리면 되는 거죠?”

초등학생을 달래는 듯한 말투였다. , 나는 사는 게 가끔 너무 힘들다!

다시 피트니스 룸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여전히 러닝머신 위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얼음 더 줬어?”

여기.”

나는 식혜 통을 창턱에 툭 내려놓았다. 남편은 아무 잘못도 없다. 그저 나를 위해 식혜를 사왔을 뿐이다. 그래도 괜히 못마땅한 눈초리로 그의 뒤통수를 흘겨보게 된다.

남편이 거울 속에서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러닝머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스팀 분사기의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찜질방 주인을 불러 항의를 해야 하나. 그렇다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하는 거지.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뜻 모를 소음들에 둘러싸인 채 나는 러닝머신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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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잠자리 소녀>oil on canvas,10F, 2013

 

온종일 작업을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흘러갑니다. <잠자리 소녀>에 등장하는 잠자리는 벌써 오래전 설악산에 갔을 때 그린 드로잉의 일부입니다. 파일 한쪽에 끼어 있다가 거의 20년 만에 유화 작품의 일부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잠자리 소녀>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꽁트 비슷한 이야기가 뭐 없을까 한참 궁리하다가 글이 풀어지지 않아 그냥 그림만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림 <스카치 한 잔> 보드 종이 위에 유채, 2013

 

낮에 잠시 우체국에 다녀왔는데 구름 낀 하늘이 우중충하니 마음까지 우울했습니다. <스카치 한 잔>은 하드 보드지에 유화로 그린 소품입니다. 유화는 수채화보다 무거운 매체인데다 오일을 써야 하기 때문에 종이에 그리기에는 약간 무리가 따릅니다. 물론 젯소 같은 걸 입힌 후  그 위에 그려도 되지만 여러모로 조심할 부분이 많습니다. 문방구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하드보드지는 같은 종이 재질이면서도 나름 유용한 재료입니다. 컵 받침에 작은 유리잔 하나를 그린 단순한 정물화지만 여기에는 저의 많은 생각들 고민들이 녹아 있습니다. 그림은 해도 해도 정말 어려운 느낌입니다.   

   

그림 <지난 여름-1> oil on canvas,15호, 2013

 

작년에 다녀온 덕포리 마을 풍경입니다. 수채화로 한 번 그린 적이 있는데 유화로 다시 작업했습니다. 붓의 움직임을 최대한 살렸고, 마지막으로 뭔가 부족한 것 같아 노란색 물감을 짠 후 손가락으로 찍어 문지르듯이 노란 꽃 한 송이를 앞쪽에 그려넣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꽃 한 송이를 가슴에 품고 살아 갑니다. 색깔이나 사이즈가 중요한 건 아니겠지요. 거기 그 자리에 어울리는가 하는 문제일 겁니다. 어느새 1월 말이라니..오늘 하루도 희망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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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 <거울의 저편-2>oil on canvas 53×46cm 2013




즘에는 셀카로 자기 얼굴을 찍는 것이 대유행입니다. 팔을 뻗은 거리 안에서 사진발을 잘 받는 얼짱 각도를 유념해 두는 건 물론이고, 자연스러운 포즈나 표정을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인터넷 상에서 어떤 분이 명화에 나오는 자화상과 흡사한 모습으로 자기 얼굴 사진을 찍어 올린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화가가 손으로 직접 그린 원화와는 또 다른 위트와 참신성이 느껴지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비밀과 미스터리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건 아무래도 자신, '나'일 것입니다. 나에 대한 신비, 그 비밀스러움, 알 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나 자신만의 독특한 아우라...그래서 사람들은 수시로 그 뭔가를 통해 거기에 비친 자기 모습을 점검합니다. 화장실 안에 있는 거울 일 수도 있고, 음식점 식탁에서 밥을 먹기 위해 집어든 숟가락 뒷면일 수도 있고,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의 반짝거리게 닦아 놓은 벽면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타인의 동공에 비친 내 모습이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저 사람 눈에는 내가 과연 어떻게 보이는 걸까. 무엇 때문에 내 얼굴을 그토록 유심히 바라본 것일까. 은근슬쩍 어딘가에 반사된 자기 모습을 훔쳐보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어쨌거나 매일 보는 얼굴입니다. 이목구비는 제대로 붙어 있는지 매번 확인할 필요는 없겠죠. 화장은 들뜨지는 않았는지, 머리카락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그런 것도 궁금하겠지만 사실은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실, 본질과 뿌리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자극합니다. 냇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그 자리에서 물 속만 들여다 보다가 수선화가 된 남자도 있다지요. 화가들 중에도 자기 얼굴에 집착했던 몇몇 작가들이 있는데 렘브란트와 고흐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 자화상> 1640년 작품

 

바로크 시대 빛의 화가였던 렘브란트는 사람의 내면, 그 내적인 정서 표현에 남다른 재능을 펼쳐보였습니다. 비슷한 영화를 봐도 뭔가 진하게 감겨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감독이나 배우만의 펼쳐 보일 수 있는 독특한 느낌 같은 게 생생이 살아서 관객의 마음까지 전달되는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바로 그런 화가였습니다. 같은 얼굴을 그려도 그의 작품은 뭔가 달랐습니다.

 

그는 수시로 자신의 얼굴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오랜 생애 동안 제작한 60여점의 자화상은 자신에 대한 관찰을 통해 화가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성숙해 가는 모든 내적 단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자화상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실험적인 단계’ ‘극적으로 분장한 단계’ 그리고 ‘솔직하고 자기 분석적인 소박한 단계’입니다.

 

위의 그림은 두 번째 단계인 성공한 상인처럼 치장한 렘브란트의 모습입니다. 렘브란트라 성공한 화가로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제작한 작품이죠. 두둑하니 살이 오른 자만심에 찬 모습이 꽤나 매력적입니다. 부드러운 벨벳 같은 두꺼운 천으로 된 옷에는 족제비 털 같은 게 달려 있고 모자도 값비싼 털이 부슬부슬 하니 꽤나 세련되면서도 귀품 있어 보입니다.

 

<렘브란트 자화상>1661년 작품

 

그로부터 21년 후에 그린 그의 자화상은 뭐랄까..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소박한 성자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머리에도 화려한 모자 대신 흰색 천으로 대충 감은 듯한 터번을 두르고 있고 손에는 낡고 오래된 책을 들고 있습니다. 젊어서 나름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던 렘브란트는 나이 들어 재정적 압박을 심하게 받는 아주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그림을 그린 족족 빚쟁이들이 와서 들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 주변 환경 탓인지 그림 속 모습은 아주 순수하면서도 겸허한 인상을 풍깁니다. 소박한 옷차림, 순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두 눈에는 인생을 달관한 듯한 표정조차 느껴집니다. 여담이지만 두 그림 모두 입을 꼭 다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정확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네덜란드에 처음으로 설탕이 유입되었다고 하는데 단 것을 너무 즐긴 탓에 치아 상태가 아주 안 좋았던 모양입니다.

 

<고흐의 자화상> 1886년 작품 (작은 사진을 찍은 거라 포커스가 부실한 상태임.) 

 

얼굴은 여러 가지 회화기법을 실험하기에 아주 유용한 대상입니다. 고흐 역시 거울을 들여다보며 줄기차게 자기 얼굴을 그려댔습니다. 열악한 경제 여건 탓에 따로 모델을 구할 수 없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덕분에 우리는 그의 자화상들을 통해서 작품 성향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어떤 방식으로 무르익어 갔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1886년 파리에 도착한 고흐는 4년 동안 40점에 가까운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네덜란드 거장들의 방식으로 그린 첫 번째 자화상은 당시의 관습과 유행을 따르고 있습니다. 머리에 모자를 쓴 그의 모습은 사색에 잠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돋아 오르는 인물 모습이 렘브란트 화풍과 비슷해 보이지만 훨씬 표현적인 색채와 붓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흐의 자화상> 1886년 작품

 

같은 해에 그린 자화상이지만 이미 인상파 화가들의 화풍, 짧은 붓질과 순수 색채에 대한 열정 빛에 대한 예민한 감각들이 엿보입니다. 그저 밀레를 좋아했던 소박한 화가였던 그가 초기의 신고전주의 화풍에서 인상파를 넘어 어느새 자신만의 표현주의 세계로 한 발 들어선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년

 

고흐의 자화상은 내면의 인생 드라마를 극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위의 작품은 그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스스로 귓불을 자른 사건 이후 병원에서 퇴원한 뒤 처음 그린 자화상입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림에 몰두하는 것 말고는 다른 출구가 전혀 없었던 한 남자의 모습이 한 장 그림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충치 먹은 치아를 숨겼지만 그는 정면으로 자신의 상처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35세인 그의 모습이 꺼칠하니 60대 노인네 같은 몰골입니다. 35세의 얼굴이 이러했다면 과연 어려서는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19세의 빈센트 반 고흐> 사진

 

모순된 감정에 괴로워하고 불안에 잠겨 있던 10대 시절, 무뚝뚝하고 성미 고약했던 한 청년이 보입니다. 그래도 제법 둥글넓적하니 투실한 볼 살과 건강미 넘치는 모습입니다. 고흐는 결국 전도사의 길에서 빠져나와 자신만이 바라던 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예술은 그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갉아먹었습니다.

 

1889년 아를의 겨울은 차고 매서웠습니다. 한기만이 감도는 1월 어느 날, 노란집으로 돌아온 고흐는 이젤 앞에 앉아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거울 속 세계는 일견 이쪽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또 다른 리얼리티에 의해 구축되어 있습니다. 얇은 판유리 안의 또 다른 세상, 그 안에 있는 한 남자가 고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현실의 꿈과 희망, 그안에 내제된 갈망과 절망의 접점은 무엇일까요.


<강가에서, 양평>oil on canvas 61×50cm 2013

 

화가의 자화상은 자아 탐구에 대한 절대적인 욕구, 이 우주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내면의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숨겨진 비밀을 반사하는 만화경 중에 호수나 강가에 비친 수면도 이 세상을 반사하는 또 다른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거기에 떠오른 존재의 떨림을 향해 이렇게 묻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 거야? 그럭저럭 괜찮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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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겨울 어느날,고촌>oil on canvas, 92×73cm, 2012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서울과 경기도가 만나는 도시 외각 지역인데 깊은 밤에는 지나다니는 차들도 거의 없이 적막하기만 합니다. 창밖 저 아래로 신호등 불빛만 깜빡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가슴이 뻐근해지는 느낌입니다.

 

지난여름에 작업실 창밖 풍경을 수채화로 한번 그린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하실 겁니다. 최근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여름철과는 또 다른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흑백의 대비가 강조된 도로변 주위 풍경과 그로인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겨울 능선이 흡사 단색조의 추상화를 연상시킵니다.

 

 캔버스에 그린 <어느 겨울날, 고촌>은 작업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풍경입니다. 아직 완성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손을 델수록 그림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일단 중단했습니다. 누군가 이 그림을 제 눈앞에서 한 십 년쯤 치워주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일단 여기에 올려놓고 심사숙고할 생각입니다.(결국 그림을 다시 작업했습니다. 여기에 올린 사진은 3번째 스테이지 그림입니다. '스테이지'란 몇번째 작업이냐는 뜻인데 앞으로도 몇번 더 손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작업한 나머지 그림 3개도 올해를 마무리 하는 의미에서 한꺼번에 선보입니다.

 

어느새 2012년의 마지막 주말입니다. 이렇게 한해를 흘려보내는 게 섭섭해서 어제 밤에는 모처럼 밖에 나가 저녁도 먹고 영화도 한편 보았습니다. 줄곧 집에서 다운 받은 영화만 보다가 새로 개봉한 극장 영화를 보니 몰입도도 높고 감동도 더 진한 것 같았습니다.

 

그림 <길, 리치몬드(3)> Watercolor on paper 34×23.5cm 2012

 

어제 본 영화는 레미제라블입니다. 빵 하나를 훔친 이유로 2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해야 했던 장발장 얘기는 누구나 다 알 것 입니다. 영화 속 플롯은 '사랑'과 '구원'이라는 두 개의 주제로 큰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방면된 후 또 다시 도둑질을 하다 붙잡힌 장발장은 신부의 은혜로 자신의 영혼이 정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고 평생 사랑으로 보답하며 살아갑니다. 감옥에서부터 장발장을 괴롭히고 출옥한 후에도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형사 자베르(?)는 장발장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지만 그런 치욕스러운 구원, 감당할 수 없는 사랑으로 자기 영혼이 죽였다면서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집, 리치몬드(5)> Watercolor on paper 34×23.5cm 2012

 

카메라 앵글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자유를 쟁취하고자 투쟁하는 젊은 청년들의 얼굴에도 포커스를 맞춥니다. 근대사의 격동 속에서 일반 서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가혹한 운명이야 말로 가장 큰 핵심, 영화를 지탱하는 모든 것인지 모릅니다.

 

민초들의 삶은 여전히 버겁고 가혹합니다.  우리가 피흘려 획득했다고 믿고 있는 자유는 때론 착시 현상을 일으키며 시야를 가리고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같이 각박한 시대에 장발장이 추구했던 사랑과 희생만이 능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보다 나은 게 뭐가 또 있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림 <램프가 있는 정물>oil on canvas 92×73cm 2012

 

밤이 깊었습니다. 창밖의 신호등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깜빡이고 있습니다. 모두 뜻 깊은 연말연시 맞이하시기를...내년에는 더 많이 사랑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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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파란지붕-리치몬드 타운(2)> Watercolor on paper, 50.5×37cm, 2012

 

요즘에는 계속 오일 페인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화는 중간 중간 물감을 말려가면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여러 작품을 돌려가면서 작업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지금 다루고 있는 캔버스가 한 예닐곱 쯤 됩니다. 오늘 올리는 그림은 유화 작업을 하는 틈틈이 작업한 것입니다. 캔버스들마다 물감으로 젖어있을 때는 이렇게 수채화 팔레트를 다시 펼칠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도 어느새 다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기를..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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