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어느날,고촌>oil on canvas 92×73cm 2012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서울과 경기도가 만나는 도시 외각 지역인데 깊은 밤에는 지나다니는 차들도 거의 없이 적막하기만 합니다. 창밖 저 아래로 신호등 불빛만 깜빡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가슴이 뻐근해지는 느낌입니다.
지난여름에 작업실 창밖 풍경을 수채화로 한번 그린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하실 겁니다. 최근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여름철과는 또 다른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흑백의 대비가 강조된 도로변 주위 풍경과 그로인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겨울 능선이 흡사 단색조의 추상화를 연상시킵니다.
캔버스에 그린 <어느 겨울날, 고촌>은 작업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풍경입니다. 아직 완성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손을 델수록 그림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일단 중단했습니다. 누군가 이 그림을 제 눈앞에서 한 십 년쯤 치워주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일단 여기에 올려놓고 심사숙고할 생각입니다.(결국 그림을 다시 작업했습니다. 여기에 올린 사진은 3번째 스테이지 그림입니다. '스테이지'란 몇번째 작업이냐는 뜻인데 앞으로도 몇번 더 손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작업한 나머지 그림 3개도 올해를 마무리 하는 의미에서 한꺼번에 선보입니다.
어느새 2012년의 마지막 주말입니다. 이렇게 한해를 흘려보내는 게 섭섭해서 어제 밤에는 모처럼 밖에 나가 저녁도 먹고 영화도 한편 보았습니다. 줄곧 집에서 다운 받은 영화만 보다가 새로 개봉한 극장 영화를 보니 몰입도도 높고 감동도 더 진한 것 같았습니다.

<길, 리치몬드(3)> Watercolor on paper 34×23.5cm 2012
어제 본 영화는 레미제라블입니다. 빵 하나를 훔친 이유로 2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해야 했던 장발장 얘기는 누구나 다 알 것 입니다. 영화 속 플롯은 '사랑'과 '구원'이라는 두 개의 주제로 큰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방면된 후 또 다시 도둑질을 하다 붙잡힌 장발장은 신부의 은혜로 자신의 영혼이 정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고 평생 사랑으로 보답하며 살아갑니다. 감옥에서부터 장발장을 괴롭히고 출옥한 후에도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형사 자베르(?)는 장발장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지만 그런 치욕스러운 구원, 감당할 수 없는 사랑으로 자기 영혼이 죽였다면서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집, 리치몬드(5)> Watercolor on paper 34×23.5cm 2012
카메라 앵글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자유를 쟁취하고자 투쟁하는 젊은 청년들의 얼굴에도 포커스를 맞춥니다. 근대사의 격동 속에서 일반 서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가혹한 운명이야 말로 가장 큰 핵심, 영화를 지탱하는 모든 것인지 모릅니다.
민초들의 삶은 여전히 버겁고 가혹합니다. 우리가 피흘려 획득했다고 믿고 있는 자유는 때론 착시 현상을 일으키며 시야를 가리고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같이 각박한 시대에 장발장이 추구했던 사랑과 희생만이 능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보다 나은 게 뭐가 또 있나 싶기도 했습니다.

<램프가 있는 정물>oil on canvas 92×73cm 2012
밤이 깊었습니다. 창밖의 신호등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깜빡이고 있습니다. 모두 뜻 깊은 연말연시 맞이하시기를...내년에는 더 많이 사랑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