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포, 마을풍경2> Watercolor on paper 49.5X22.5cm 2012

 

지난주 토요일에는 야외 스케치를 하시는 분들과 덕진포에 다녀왔습니다. 오래된 가옥과 푸른 들녘이 한데 어우러진 동네 분위기는 더 없이 소박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그림 그릴 만한 장소를 탐색하며 돌아다니다는 동안 마을 곳곳에 그려 놓은 벽화들이 눈에 띄더군요. 김포 지역 화가들이 시의 요청을 받아 그린 거라 하는데 파랗게 이끼 낀 울퉁불퉁한 담벼락과 다 스러져 가는 대문 위에 그려놓은 물고기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초현실주의 설치 작품 같았습니다.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드로잉에 앞서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하는 지점에 뭔가 한 가지쯤 흥미로운 장면이나 특징이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전날 밤에는 비가 몹시 내려 걱정했는데 차츰 낮게 가라앉아 있던 구름이 개면서 가을날 특유의 청명한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야외 스케치를 나갈 때는 여러가지 안 좋은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괜히 말을 거는 사람, 자기 아이에게 그림 설명을 좀 해주면 고맙겠다고 와서 부탁하는 부모, 그냥 안 가고 곁에서 계속 지켜보시는 분, 이런 분들 때문에 자꾸만 호흡이 끊어지고 마음도 위축됩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동행들 덕분에 편안히 앉아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화구를 펼친 뒤 간단히 스케치를 끝내고 노인정에 가서 물통에 물을 떠온 후로는 시간이 널뛰기라도 한 듯 눈 깜짝 할 사이에 흘러가버렸습니다. 오후에는 햇살이 점점 뜨거워져 한 자리에 계속 앉아 있기 곤욕스러웠지만  비가 올 때를 대비해 챙겨왔던 우산을 한 손에 받쳐들고 끝까지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온종일 작업을 하다보면 마치 그림 속에라도 들어와 있는 양 현실 감각이 멀어지곤 합니다.  화가들에게 화폭은 하나의 텅 빈 담벼락과 같습니다. 어떻게든 뛰어 넘어야 할 담벼락 일 수도 있고, 열심히 헤엄쳐 다녀야 할 담벼락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담벼락을 찾아 오늘도 작업실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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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창가에서> Watercolor on paper 39X 30cm 2012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모습이 피부로 코 끝으로 마음으로 전해옵니다. 양평에 가서 모처럼 수채화 팔레트를 펼친 뒤로 계속 수채화 매력에 빠져 있습니다.

 

수채화는 투명함과 맑음이 최대 장점인 장르입니다. 유화 물감은 오렌지색을 칠했다가 그 위에 파란색을 칠하면 오렌지색 물감이 그대로 사라져 버립니다. 오일을 많이 섞거나 물감을 얇게 펴바르면  밑에 색감 을 어느 정도 살릴 수 있지만 대개 맨 위에 있는 물감이나 그 톤에 파묻혀 버립니다.  그런데 수채화 물감은 오랜지 색깔 위에 파란색을 덧칠하면 초록색이 나타납니다. 물론 물감을 진하게 바르면 없어지겠지만 그 밑에 있는 색을 고스란히 살려두는 묘미가 바로 수채화 그림에 있습니다.

 

하루 중에 작업실 창밖으로 두개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낮 동안 햇살이 부서지는 투명하고도 파릇파릇한 전경과 교회 십자가 하나로 점령되는 밤 풍경입니다. 주위의 어둠을 삼켜버릴 듯 돋아오른 십자가 불빛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가슴 한쪽이 싸해지면서 외로운 느낌입니다. 그 외로움이 때론 사람을 한숨짓게도 하고 안도하게도 만듭니다.  누구에게든 자신만의 믿음과 신념이 존재합니다.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고 나면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에만 불이 켜지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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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작은집, 양평에서> Watercolor& 갈색 잉크 on paper 2012 

 

호숫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아침 저녁 안개 낀 풍경도 볼 수 있고, 수면 위를 낮게 날아가는 하얀 새도 구경할 수 있고, 맨발로 산책도 할 수 있는... 그림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이 주위에 잔뜩 널려 있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집...' 

 

이 그림은 지난 번 양평에서 작업했던 것을 집에 돌아와 완성한 겁니다. 줄곧 유화 작업만 하다가 모처럼 수채화 팔레트를 펼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사용하던 거니 이제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오래된 팔레트 위에 가을 햇살이 조용조용 내려와 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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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을 건너는 조각배, 양평> Watercolor on paper 32X 21.6cm 2012

 

머리도 식힐 겸 야외 스케치를 다녀왔습니다. 그림 작업을 할 때는 항상 라디오를 켜놓는데 가끔씩 “양평은 자족 도시 입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양평을 알리는 선전이 나오곤 하더군요. 차를 몰고 88도로를 달리다보니 바로 그 양평이었습니다. 들녘에는 눈부신 햇살이 부서지고 지천으로 널린 푸른 초목들이 꿈 속 풍경인 양 정겨웠습니다.

 

모처럼 외출하고 돌아온 바로 다음 날부터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연거푸 태풍이 몰아닥쳤습니다. 이러다 거실 창문이라도 무너져 내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언제 그랬냐 싶게 하늘은 다시 파란 빛으로 투명해지고 아침저녁 감겨오는 서늘한 기운이 가을 냄새를 풍깁니다. 온종일 실내 온도를 화덕처럼 달궈 놓았던 여름이 뚜벅뚜벅 저만큼 걸어가며 손을 흔듭니다.

 

겨울이 오면 나를 그리워하게 될 거야. 내년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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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를 쓰는 여자1> 유화, 65X54cm, 2012-14

 

중학생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던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 동생과는 2년씩이나 한 교실에서 공부를 했는데 두 자매의 얼굴이며 체격 조건이 너무 흡사해서 친구인 우리들도 헷갈릴 정도였다. 겉모습이 닮았다고 속까지 닮는 것은 아닌지 아쉽게도 언니 쪽이 학과 성적도 훨씬 월등하고 운동도 잘해서 종종 비교 대상이 되었습니다. 반 아이들이 가끔씩 지나가는 말처럼 두 사람에 관해 한두 마디씩 툭툭 던질 때마다 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한 부모 밑에서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나긴 했지만 한쪽이 더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 났으니 다른 한쪽은 좀 억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명 더 있다는 게 과연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쌍둥이 유전자는 생명에 대한 경의와 신비를 느끼게 한다. 이 지구상에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 가상의 생명을 지닌 그림에도 그런 쌍둥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곳에서 존재감을 들어내고 있는 이들 쌍둥이 작품들은 작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그림을 다시 복제시킨 예라 할 수 있는데, 지난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피카소를 밀어내고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뭉크의 ‘절규’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뭉크의 그림이 경매되었다는 뉴스로 한동안 신문이나 인터넷이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 미술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사람들조차 기사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된 걸 보면 뉴스의 파급력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하루하루 팍팍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서민들에게 그림 한 장 가격이 1370억이나 된다는 말은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 로또에 거듭 당첨되었다는 말 만큼이나 놀랍고 생경했을 것이다. 평소 뭉크 그림을 좋아하던 나 역시도 기사를 읽다말고 휴우, 한숨을 크게 내쉬며 손가락을 꼽아 보았다.

 

뭉크의 성공 요인 중의 하나는 필요한 순간마다 필요한 장소, 적재적소에 있었다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파리로 가서 인상파나 야수파 화가들에게 다양한 자양분을 습득한 건 큰 행운이었다. 몇 년 후 다시 고향인 노르웨이 오슬로로 돌아온 그는 전시회를 열게 되었는데, 과거의 전통적인 그림만 보아왔던 사람들에게 그의 거칠고 야수적인 작품은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원색적인 비난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밑그림 같은 습작일 뿐이다, 스케치 풍의 어설픔만으로 관객을 모독하고 있다는 비평도 있었고, 그림 주제에 대한 불만, 너무 노골적이고 멜로드라마 같다는 조롱도 들어야 했다.

 

뭉크를 둘러싼 오슬로 미술계의 소식을 접한 베를린 미술협회가 그를 초청해서 전시회를 연 것은 아마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시장을 둘러보러 왔던 협회장이 이건 그림도 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퇴장하는 바람에 더 큰 소동이 벌어졌다. 서둘러 사건을 진화하기 위해서 미술협회는 전시를 계속 진행 할 것인지에 관한 안건을 투표에 붙였는데 결과는 전시회 중단 쪽으로 결말이 났다. 전시를 하다말고 작품을 벽에서 떼어 내야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큰 수모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은 뭉크의 이름을 먼 외국에까지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투표 결과에 불만을 품은 미술가들이 협회를 탈퇴하고는 베를린 분리파를 형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소문을 등에 업고 유명세를 타게 된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기 마련입니다. 정치가나 방송인들, 엔터테이닝 저술가나 언론인 대학교수 역술가들, 이들에게 스캔들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일지 모른다. 전략적으로 추문에 휩싸이거나 예민한 쟁점들을 몰고 다니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화가들 중에 마네나 쿠르베, 고갱, 엔디 워홀, 달리...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카라바지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벤스, 램브란트 등등...활동할 당시에 대단한 이슈 들을 몰고 다녔던 작가들입니다.

 

뭉크 역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그런 스캔들의 큰 수혜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이력만으로 그의 작품이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그는 변방의 화가였습니다. 나이 들어 더욱 완숙한 작품으로 주목을 끈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위대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위대한 것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그 많은 쟁쟁한 화가들을 물리치고 뭉크가 21세기 미술품 최고 경매 가를 갱신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이 지구상에서 자신만의 전시실을 따로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그것도 다른 데가 아닌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말이다. 그 그림 앞에 둘러서 있던 사람들의 장막이 떠오른다. 어떻게든 인증 샷 한번 찍어 보겠다고...모나리자의 그윽한 미소라니! 어찌나 두꺼운 방탄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지 원화의 실체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미술관에서는 함부로 사진을 찍지 못한다. 그림이 자꾸 빛에 노출되면 물감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방에서는 관람객의 윤리를 강조하는 감시자가 아무도 없다. 카메라를 집어넣으라고 했다가는 폭동이 날지도 모른다. 이 작품 하나 보려고 멀리 루브르까지 날아왔는데..

 

루브르 지하 현관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이 하루 종일 제일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 무려 92%나 "모나리자 어디 있어요?"라고 한다. 6%는 "밀로의 비너스 어디 있어요?" 나머지 2%는 "나 지금 어디 있어요?"하는 존재론적 질문이란다.(오래전 책에서 읽은 건 데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거의 비슷할 것이다.) 아무튼 루브르에 왔으니 잽싸게 2층으로 올라가서, 으쌰, 으쌰, 겨우 장막을 뚫고 들어간 다음.. 언능, 찍어! 김치!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모나리자' 얘기를 꺼내느냐고요? 뭉크의 '절규'가 이제 그 '모나리자' 만큼이나 유명해졌다는 소리를 하기 위해서다.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 더! '모나리자'는 이 세상에 단 1장 밖에 없지만, ‘절규’는 적어도 5장 이상의 버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절규'가 나타날지,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절규'는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것도 있고, 종이에 파스텔 등 혼합재료로 그린 것까지 4가지가 있고, 석판화로 제작된 것까지 합하면 총 5가지나 된다. 이번에 경매에 나온 작품은 그동안 개인이 70년 가까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색채가 특히 강조된 그림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유화와 파스텔을 혼합해서 그린 작품이 아닌가 싶다.

 

아래 그림은 오슬로 미술관에 있는 작품이다. 뭉크의 작품은 독특하다. 그것이 그가 유명해진 두 번째 이유인데, 당시 파리 화풍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지만 끝까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절규'에서도 인상파나 야수파 화가들의 환하고 맑은 색채에 비해 어둡고 축축한 북구 스칸디나비아 반도인 특유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뭉크 <절규>1893년, 캔버스, 유채, 91X73cm

 

 뭉크 <절규>1896년, 석판화, 35X25.2cm

 

뭉크의 '절규'가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것도 북구 유럽 특유의 노스텔지아 감도는 우수와 고독과 좌절의 기미,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생활에서 오는 긴장감과 스트레스 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뭉크의 ‘절규’는 사람의 귀를 찌르는 비명에 가깝다. 이런 극한의 상황,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순간이다.

 

'절규'를 볼 때마다 1990년에 개봉된 영화 ‘나 홀로 집에1’이 떠오른다. 아직 어린 꼬마였던 배우 맥컬리 컬킨의 고 귀여웠던 모습.(나도 그때는 밤새 그림을 그리고도 번지점프로 달나라에 다녀올 만큼 쌩쌩한 청춘이었다. 에고, 에고 허리야!) 영화에서 맥컬리가 자기 집을 털러 온 2인조 도둑을 처치하기 위해서 꾀를 부리다가 손을 두 뺨에 붙이고 ‘까아악~’비명을 지르던 장면은 이제 거의 고전이 되었다. 영화 속 바로 그 장면이 뭉크의 '절규'와 어딘가 닮아 보이지 않은가.

 

너무 놀라면 사람의 감각이 얼어붙는다. 눈앞도 흐려지고 판단능력도 폐쇄적으로 변한다. 이 그림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뭉크는 공포의 극단을 표현하기 위해 객관적인 사실성을 버리고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목구비는 계란처럼 단순해졌고, 신체 윤곽선도 흐물거리는 배경 속에 녹아들 듯 하다. 화면을 질주하듯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다리의 모습이 불길하다. 같은 공간 안에 두개의 상황이 감지된다. 저 뒤에 따라오는 두 친구들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하다. 앞서 가던 이 남자만이 끔찍스러운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왜. 무엇 때문에.

 

‘나 홀로 집에1’이 처음 개봉되었을 때 나는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다기에 모처럼 쇼핑몰 안에 있는 극장에 갔는데 매표소 앞에 어린 꼬마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더군요. 그토록 많은 아이들을 극장 앞에서 본 게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부모와 동행한 아이들은 아주 신이 난 표정들이었다. 영화관에 입장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동안 양쪽 손바닥을 두 뺨에 붙인 채 ‘까아악! 까아악!’ 어찌나 비명을 질러대던지. 그땐 영화 속 그 장면이 일대 유행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든 한두 번쯤 따라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 코미디 같은 장면과 다르게 뭉크의 ‘절규’에 등장하는 인물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빠져 있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온 공포라기보다 내면의 고통, 본인만 느낄 수 있는 정신 착란과도 같은 심리적 공포다. 뭉크의 일기를 보면 친구들과 함께 나선 산책길에 다리 아래 저 멀리 보이는 피오르드 만이 피처럼 붉게 변한 구름으로 요동치고 핏빛 자연을 뚫고 들려오는 절규를 들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작가의 실제 경험이 화폭 안에서 생생히 꿈틀거린다.

 

‘절규’라는 같은 제목을 가진 작품이 이 세상에 적어도 5종 이상 존재하는 이유는 뭉크의 독특한 작업 성향 때문이다. 자기 그림에 대한 미련 때문일 수도 있고, 아쉬움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와서 작품을 가져가려고 하면 그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밤새 그와 비슷한 그림을 또 제작하고는 했다. 그것도 여러 번씩. 그런 이유로 ‘절규’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 버전이 많이 남아 있다.

 

정신분석을 좋아하는 혹자는 뭉크의 '절규'를 예로 들며 공항장애, 광장 공포증 같은 단어를 들먹인다. 사실 뭉크는 성격도 예민한 데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알코올 의존이 심했다. 자신의 귀에만 들려오는 비명 소리. 그 처절한 이명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그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 주제를 반복적으로 떠올렸을까요.

 

“태어난 직후부터 죽음은 나의 요람을 둘러싸고 있던 천사였다.”라던 뭉크의 말이 어떤 암시를 준다. 어려서 일찍 엄마를 여의고, 자신을 따스하게 돌봐주던 누나마저 14세 나이로 사망한 후, 뭉크는 강압적이고 완고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심약한 성격이었던 그에게 ‘강한 남자’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훈육은 혹독한 시련과도 같았다.

 

뭉크가 계속해서 죽음이라는 주제에 매달렸던 것은 어린 시절의 마음 아픈 경험들 때문이라고 하는데, 자신을 둘러쌓던 죽음의 실체를 즉시하게 위해서 그랬노라고 스스로 토로한 바 있다. 마음속 두려움을 애써 피하기보다 뚫어지게 응시했던 것입니다. 그가 느낀 내면의 고통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불안 자각증세, 이유 없이 가슴을 찍어 누르는 압박감, 감당할 수 없는 초조함 등과 맞닿아 있다. 한때 ‘이건 그림도 아니다!’는 굴욕적인 소리를 들었던 그의 작품이 이제와 우리와 큰 공감대를 이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빈센트의 침실, 아를> 1888, 유채, 72X90cm,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국립미술관

 

<빈센트의 침실, 아를> 1889, 유채, 57.5X74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후기 인상파 화가이자 뭉크처럼 표현주의 계열의 작가이기도 한 빈센트 반 고흐 역시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그렸는데, ‘빈센트의 침실’ 또한 그런 작품들 중 하나다. 고흐는 아를에서 고갱의 방문을 기다리는 동안 노란집의 2층 침실을 정성들여 꾸몄다. 그가 방안 모습을 담은 그림이 2점 전해져 오는데, 1888년 제작한 작품은 암스테르담 고흐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고, 고갱이 도착한 후 스스로 귓불을 자른 다음 1889년에 그린 두 번째 작품은 현재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다.

 

고흐가 파리에 있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영혼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런 침실을 그릴 생각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그가 바라던 영혼의 안식은 오지 않았다. 그 노란집에서 고흐는 첫 번째 간질 발작을 일으켰고, 그 집을 나와서는 정신병원으로 직행했다.

 

그림 속 방안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깔끔하다. 종교에 귀의한 수도자의 침실 같다고나 할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한동안 선교사 일을 했던 고흐의 일면이 느껴지는 광경이다. 어려운 형편에 근근이 사 모은 가재도구며 살림살이들이 보인다. 고갱이 브르타뉴에서 여러 화가들과 함께 작업했던 것처럼 이 노란집으로 파리의 화가들을 초대해서 남프랑스의 화가 동맹을 만들고자 꿈꾸었던 고흐에게는 이 모든 것이 희망의 빛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발작을 일으키기 전에 이 집을 찾아온 사람은 고갱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것도 파리 화랑에서 일하던 테오가 고갱에게 전시회를 열어주겠다고 약속한 뒤의 일이다.

 

고갱이 아를에 도착한 후, 고흐의 노란집은 격랑에 휩싸였다. 주관적이고 독설가이며 자기애가 강한 고갱과 성격 예민하고 자폐 성향이 강한 고흐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세계였다. 집안에는 늘 침묵과 고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고갱이 파리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고흐는 상실감과 분노에 사로잡혔고, 그 자괴감을 자신의 신체에 가하는 비극적인 사태를 벌인다.

고흐의 전기를 다룬 영화에 보면 주인공인 커크 더글라스(?)가 자신을 아를에서 몰아내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에게 방안에 있던 가재도구들을 내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생활비를 쪼개가며 어렵게 사들인 물건들이 창밖으로 하나씩 둘씩 날아간다. 꿈과 희망의 빛으로 가득 찼던 남프랑스 화가동맹의 아지트는 그렇게 와해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야의 소동을 뒤로 한 채 고갱이 떠나고, 급히 전보를 받고 달려왔던 테오 마저 파리로 돌아간 뒤였다. 아를 병원에서 퇴원해 노란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고흐는 귀에 붕대를 감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옮긴다. 아직 겨울 한기가 남아 있는 방안에서 외투에 털모자까지 쓰고 자화상을 그리는 동안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 삶이었을까요, 죽음이었을까요.

 

'빈센트의 침실' 두 작품은 거의 비슷하면서도 뭔가 조금씩 다르다. 1889년에 제작된 밑에 그림은 훨씬 투명하고 맑은 햇살에 감싸여 있다. 낮 11시경이거나 점심 무렵의 방안 풍경 같다. 그보다 1년 앞서 제작된 첫 번째 작품은 약간 어둑한 톤이 늦은 오후 무렵의 전경이 아닐까 싶다. 일부러 의식한 건지, 그리다 보니 절로 그리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화면 구도나 가구들의 배치는 거의 닮은꼴이지만 벽에 걸려 있는 사진과 그림들, 문짝과 벽면의 푸른 빛깔,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 마룻바닥의 붉은 기가 도는 색조 같은 것들 또한 조금씩 달라 보인다.

 

고흐는 왜 아를 방안 모습을 두 번씩이나 그림에 담았을까. 비록 심리적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은 뒤였지만 폭풍우처럼 스쳐간 또 한 차례의 인생 드라마가 그에게 더욱 큰 예술적 통찰력을 부여한 듯하다. 위의 두 작품을 통해서도 1년 사이에 그림에 대한 확신이 더욱 두터워진 고흐의 모습이 감지된다. 나중에 그린 1889년 작품이 화면 구도나 붓의 움직임, 색채 조화에서 훨씬 자신감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물론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내겐 어쩐지 그렇게 느껴진다.

 

뭉크나 고흐처럼 다른 화가들도 동일한 주제를 같은 설정 하에 반복해서 그리곤 한다. 때론 뭔가 부족하거나 못마땅해서, 첫 번째보다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문득 떠올라서, 그런 등등의 이유 때문에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흰 캔버스의 미지의 공간을 향해 무조건 달려들 때도 있고, 시간차를 두고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할 때도 있다.

 

이렇게 길~게.. 한번 말을 꺼내면 정말 끝이 없다. 조그만 화면으로 읽고 계신 분에게는 정말 죄송한데, 다른 화가들 얘기만 하다 보니 뭔가 섭섭한 마음이 든다. 저번에 이어 오늘 소개하는 나의 작품은 ‘일기를 쓰는 여자1‘이다. 이미 연재된 3회에 '일기를 쓰는 여자2'를 먼저 올렸는데, 이 두 작품 또한 유전자가 닮은 쌍둥이 그림이다. '일기를 쓰는 여자1' 작품 제작에 한동안 열을 올리다, 나로서도 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새로운 캔버스를 가져다 놓고 '일기를 쓰는 여자2'를 뚝딱 해치우고는, 마음에 남은 껄끄러운 미련 때문에 다시 1번 그림으로 돌아가서 재작업을 하게 되었다.

  

왜 첫 번째 그림을 그리다가 두 번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일까. 무슨 생각으로... 그림 두 장을 나란히 붙여놓고 바라보려니 캔버스 속의 사정과 인생살이의 속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는 일이 버거워 때론 이대로 모든 걸 놔버리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참에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주인공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소설이나 영화가 많은 걸 보면 그런 상황을 꿈꾸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모양이다.

 

계획만 꼼꼼히 잘 세운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소설 '빅 픽처'의 주인공처럼 변호사 일을 포기한 채 전혀 다른 곳에 가서 예전부터 꿈꾸던 사진 작가의 삶을 새로 시작하고, 모두가 한번 뿐이라 믿고 있는 인생을 이등분 해 버리는 것이다. 전혀 다른 경력과 이름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지난 일 따위 몽땅 부정해버리면 된다. 나는 내가 아니예요! 여기 있는 나와 이 순간만이  바로 나예요! 너무 멋지다. 거기다 새로운 애인까지 생긴다면 꿈만 같은 상황이 아닐 수 있다.

 

이런 의문도 든다. 다시 시작하면 정말로 뭔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지금의 나도 좋지만 내가 부정해야 하는 과거 속의 나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기억을 지니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떤 존재 증명을 갖게 되는 것일까. 현실의 삶을 일단락 짓고 다시 시작한 삶이 결국 과거와 다를 바 없다면, 쌍둥이 그림처럼 비등비등하니, ‘고생은 두 배! 고민도 두 배! 결국 이런 형국으로 돌아간다면 어디 가서 하소연한단 말인가.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예술도 그렇고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내 그림자는 결국 나를 쫓아오는 법이니 어쩌겠는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이 들 때는 외면하지 말고 그냥 무작정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뭉크처럼. 내면의 두려움을 피하기보다 즉시 하는 것,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두 눈 부릅뜨고 뚷어지게 바라보는 것, 죽음을 관통하는 응시, 그런 힘, 쇠심줄 같은 독한 인내심, 스스로 자기 생에 부여한 거부할 수 없는 오기 같은 것, 그런 것들이 때론 커다란 위안이자 방패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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