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일기를 쓰는 여자1-1>

Oil on canvas, 65×54cm, 20122014

 

중학생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던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 동생과는 2년씩이나 한 교실에서 공부를 했는데 두 자매의 얼굴이며 체격 조건이 너무 흡사해서 친구인 우리들도 헷갈릴 정도였다. 겉모습이 닮았다고 속까지 닮는 것은 아닌지 아쉽게도 언니 쪽이 학과 성적도 훨씬 월등하고 운동도 잘해서 종종 비교 대상이 되곤 했다.


반 아이들이 가끔씩 지나가는 말처럼 두 사람에 관해 한두 마디씩 툭툭 던질 때마다 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한 부모 밑에서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나긴 했지만 한쪽이 더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났으니 다른 한쪽은 좀 억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명 더 있다는 게 과연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쌍둥이 유전자는 생명에 대한 경의와 신비를 느끼게 한다. 이 지구상에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 가상의 생명을 지닌 그림에도 그런 쌍둥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들 쌍둥이 작품은 작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그림을 다시 복제한 예라 할 수 있다. 지난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피카소를 밀어내고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뭉크의 절규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림 <일기를 쓰는 여자1-2>

Oil on canvas, 65×54cm, 2019

 

뭉크의 작품이 경매되었다는 뉴스로 한동안 신문과 인터넷이 떠들썩했던 기억이 있다. 미술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사람들조차 기사 내용에 관심을 보인 것을 보면 뉴스의 파급력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하루하루 팍팍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서민들에게 그림 한 장 가격이 1,370억 원이나 된다는 말은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 로또에 거듭 당첨되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놀랍고 생경한 일이었다. 평소 뭉크 그림을 좋아하던 나 역시 기사를 읽다 말고 휴우 한숨을 크게 내쉬며 손가락을 꼽아 숫자를 세어 보았다.


뭉크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필요한 순간마다 필요한 장소, 적재적소에 있었다는 점이다. 젊은 나이에 파리로 가서 인상파나 야수파 화가들에게 다양한 자양분을 습득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몇 년 후 다시 고향인 노르웨이 오슬로로 돌아온 그는 전시회를 열었는데, 과거의 전통적인 그림만 보아 왔던 사람들에게 그의 거칠고 야수적인 작품은 큰 충격이었다. 원색적인 비난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밑그림 같은 습작일 뿐이다, 스케치풍의 어설픔만으로 관람객을 모독하고 있다는 비평도 있었고, 그림 주제에 대한 불만, 너무 노골적이고 멜로드라마 같다는 조롱도 있었다.


뭉크를 둘러싼 오슬로 미술계의 소식을 접한 베를린 미술협회가 그를 초청해 전시회를 연 것은 아마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시장을 둘러보러 왔던 협회장이 이건 그림도 아니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퇴장하는 바람에 더 큰 소동이 벌어졌다.


사건을 진화하기 위해 미술협회는 전시를 계속 진행할 것인지에 관한 안건을 투표에 부쳤는데 결과는 전시 중단이었다. 전시를 하다 말고 작품을 벽에서 떼어 내야 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큰 수모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뭉크의 이름을 먼 외국에까지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투표 결과에 불만을 품은 미술가들이 협회를 탈퇴하고 베를린 분리파를 형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소문을 등에 업고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정치가나 방송인들,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 저술가와 언론인, 대학교수, 역술가들. 이들에게 스캔들은 어쩌면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전략적으로 추문에 휩싸이거나 예민한 쟁점을 몰고 다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화가들 중에서도 마네, 쿠르베, 고갱, 피카소, 앤디 워홀, 달리 등이 활동 당시 큰 이슈를 몰고 다녔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카라바지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벤스, 렘브란트 등도 마찬가지다.


뭉크 역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그런 스캔들의 수혜자였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이력만으로 그의 작품이 세상에 빛을 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그는 변방의 화가였다. 나이 들어 더욱 완숙한 작품으로 주목을 끈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위대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위대한 것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그 많은 쟁쟁한 화가들을 제치고 뭉크가 21세기 미술품 최고 경매가를 갱신했다는 소식에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이 지구상에서 자신만의 전시실을 따로 가진 유일한 작품이다. 그것도 다른 데가 아닌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다. 그 그림 앞에 둘러서 있던 사람들의 장막이 떠오른다. 어떻게든 인증 사진 한 장 찍어 보겠다고 몰려들던 사람들 말이다.


모나리자의 그윽한 미소라니

두꺼운 방탄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원화의 실체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미술관에서는 함부로 사진을 찍지 못한다. 그림이 빛에 계속 노출되면 물감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방에서는 관람객의 윤리를 강조하는 감시자가 아무도 없다. 카메라를 집어넣으라고 했다가는 큰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 작품 하나 보려고 멀리 루브르까지 날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루브르 지하 현관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이 하루 종일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무려 92%모나리자 어디 있어요?”라고 한다. 6%밀로의 비너스 어디 있어요?”이고, 나머지 2%나 지금 어디 있어요?”라는 존재론적 질문이라고 한다. 오래전 책에서 읽은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아무튼 루브르에 왔으니 잽싸게 2층으로 올라가서 으쌰, 으쌰 겨우 사람들 장막을 뚫고 들어간 다음 언능 찍어! 김치!” 하고 사진을 남기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모나리자 이야기를 꺼내느냐고요. '절규'가 이제 그 모나리자만큼이나 유명해졌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모나리자는 이 세상에 단 한 장뿐이지만 절규는 적어도 다섯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작품 절규가 모습을 드러낼지, 그것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뭉크 <절규>1893년, 캔버스, 유채, 91X73cm


절규는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것도 있고 종이에 파스텔 등 혼합 재료로 그린 것까지 네 점이 있으며석판화로 제작된 것까지 합하면 모두 다섯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이번에 경매에 나온 작품은 개인이 70년 가까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다른 작품들에 비해 색채가 특히 강조된 그림이라고 한다아마 파스텔화 위에 유화를 덧칠해 그린 작품이 아닌가 싶다.


위 그림은 오슬로 미술관에 있는 작품이다뭉크의 작품은 독특하다그것이 그가 유명해진 또 하나의 이유이다그는 당시 파리 화풍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끝까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절규에서도 인상파나 야수파 화가들의 환하고 맑은 색채와 달리어둡고 축축한 북구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절규가 큰 인기를 얻게 된 것도 북유럽 특유의 노스탤지어 어린 우수와 고독좌절의 기미그리고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 속 긴장과 스트레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 그림은 마치 사람의 귀를 찌르는 비명과도 같다이런 극단적인 순간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상황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감각이 얼어붙는 공포의 순간이 떠오른다눈앞이 흐려지고 판단 능력도 마비되는 상태이다뭉크는 공포의 극단을 표현하기 위해 객관적인 사실성을 버리고 자신만의 표현법을 선택했다얼굴의 이목구비는 계란처럼 단순해졌고 신체의 윤곽도 흐물거리는 배경 속에 녹아든다화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다리는 불길하게 보인다같은 공간 안에서도 서로 다른 두 상황이 감지된다뒤따라오는 두 인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오고 있지만앞서 가던 이 남자만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무엇 때문일까.

  

뭉크 <절규>1896년, 석판화, 35X25.2cm

 

뭉크의 일기를 보면 친구들과 산책을 하다가 다리 아래 멀리 보이는 피오르드 만 위로 붉은 구름이 피처럼 요동치고, 그 자연을 뚫고 들려오는 거대한 절규를 느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의 실제 경험이 화폭 속에서 생생하게 꿈틀거리는 셈이다.


같은 제목의 절규가 여러 점 존재하는 이유는 뭉크의 독특한 작업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쉽게 놓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작품을 가져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밤새 비슷한 그림을 또 그리곤 했다. 이런 이유로 절규뿐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에도 여러 버전이 남아 있다.

 

정신분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그림을 예로 들며 공황장애나 광장 공포증 같은 심리 현상을 떠올리기도 한다. 실제로 뭉크는 예민한 성격이었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알코올 의존도 심했다. 자신의 귀에만 들려오는 비명 같은 감각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태어난 직후부터 죽음은 나의 요람을 둘러싸고 있던 천사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자신을 돌봐주던 누나마저 열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는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이런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뭉크가 죽음이라는 주제를 반복해 다루었던 것도 이런 개인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마음속 두려움을 피하기보다 정면으로 응시하려 했다. 그가 느꼈던 내면의 불안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정과도 닿아 있다. 이유 없이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초조함 말이다. 한때 이건 그림도 아니다라는 비난을 받았던 그의 작품이 지금 우리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후기 인상파 화가이자 뭉크처럼 표현주의 계열의 작가이기도 한 빈센트 반 고흐 역시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그렸다. 그의 작품 빈센트의 침실도 그런 작품들 중의 하나다.

 

<빈센트의 침실, 아를> 1888, 유채, 72X90cm,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국립미술관

 

고흐는 아를의 노란집에서 고갱의 방문을 기다리며 침실을 정성스럽게 꾸몄다그 방을 그린 그림이 두 점 전해진다고갱이 도착하기 전 1888년에 제작된 작품은 암스테르담에 있고스스로 귓불을 자른 사건 직후 고갱이 떠난 다음 1889년에 그린 두 번째 작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고흐가 파리에 있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영혼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런 침실을 그릴 생각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그러나 그가 바라던 영혼의 안식은 오지 않았다그 노란집에서 고흐는 첫 번째 간질 발작을 일으켰고그 집을 나와서는 정신병원으로 직행했다.


<빈센트의 침실, 아를> 1889, 유채, 57.5X74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두 그림은 거의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뒤에 그린 작품은 훨씬 밝고 투명한 햇살 속에 놓여 있다. 화면 구도는 비슷하지만 벽의 색, 창으로 들어오는 빛, 바닥의 색조 등이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왜 그는 같은 방을 두 번 그렸을까. 혹독한 시간을 지나면서도 그림에 대한 확신이 더 깊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같은 공간이지만 예술적 감수성과 대상에 대한 시선이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많은 화가들이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그린다. 무엇인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서일 수도 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올라 다시 시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끝이 없다. 작은 화면으로 읽고 있을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다른 화가 이야기만 하다 보니 정작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 작품을 소개한다.


오늘 소개하는 나의 작품은 일기를 쓰는 여자 1’이다. 이미 앞선 글 ‘3. 뮌헨, 일기를 쓰는 여자에서 일기를 쓰는 여자 2’를 먼저 소개한 적이 있다. 두 그림은 서로 닮은 쌍둥이 같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일기를 쓰는 여자 1’을 그리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새로운 캔버스를 꺼내 일기를 쓰는 여자 2’를 먼저 완성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첫 번째 그림을 손보게 되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나 자신도 잘 설명하기 어렵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캔버스 속 사정과 삶의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예술도 그렇고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결국 자신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는 없다. 숨이 막힐 만큼 힘든 순간이 오면 피하지 말고 그 감정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뭉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두려움을 외면하기보다 끝까지 응시하는 것, 그것이 때로는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참고. 김미진의 오후 3‘22. November in 뉴욕(1)’에 가면 같은 해 11월 뉴욕 Museum of Modern Art에서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 그곳에 전시된 뭉크의 절규와 그 앞에 선 관람객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가 그 그림 앞에 서서 자기만의 침묵을 들여다보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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