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진포, 마을풍경2> Watercolor on paper 49.5X22.5cm 2012
지난주 토요일에는 야외 스케치를 하시는 분들과 덕진포에 다녀왔습니다. 오래된 가옥과 푸른 들녘이 한데 어우러진 동네 분위기는 더 없이 소박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그림 그릴 만한 장소를 탐색하며 돌아다니다는 동안 마을 곳곳에 그려 놓은 벽화들이 눈에 띄더군요. 김포 지역 화가들이 시의 요청을 받아 그린 거라 하는데 파랗게 이끼 낀 울퉁불퉁한 담벼락과 다 스러져 가는 대문 위에 그려놓은 물고기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초현실주의 설치 작품 같았습니다.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드로잉에 앞서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하는 지점에 뭔가 한 가지쯤 흥미로운 장면이나 특징이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전날 밤에는 비가 몹시 내려 걱정했는데 차츰 낮게 가라앉아 있던 구름이 개면서 가을날 특유의 청명한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야외 스케치를 나갈 때는 여러가지 안 좋은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괜히 말을 거는 사람, 자기 아이에게 그림 설명을 좀 해주면 고맙겠다고 와서 부탁하는 부모, 그냥 안 가고 곁에서 계속 지켜보시는 분, 이런 분들 때문에 자꾸만 호흡이 끊어지고 마음도 위축됩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동행들 덕분에 편안히 앉아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화구를 펼친 뒤 간단히 스케치를 끝내고 노인정에 가서 물통에 물을 떠온 후로는 시간이 널뛰기라도 한 듯 눈 깜짝 할 사이에 흘러가버렸습니다. 오후에는 햇살이 점점 뜨거워져 한 자리에 계속 앉아 있기 곤욕스러웠지만 비가 올 때를 대비해 챙겨왔던 우산을 한 손에 받쳐들고 끝까지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온종일 작업을 하다보면 마치 그림 속에라도 들어와 있는 양 현실 감각이 멀어지곤 합니다. 화가들에게 화폭은 하나의 텅 빈 담벼락과 같습니다. 어떻게든 뛰어 넘어야 할 담벼락 일 수도 있고, 열심히 헤엄쳐 다녀야 할 담벼락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담벼락을 찾아 오늘도 작업실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