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전에 참가하기 위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1월 말에 있을 전시회에 풍경화 두 점을 걸어야 하는데 아무리 작업해도 뭔가 늘 부족합니다. 오늘 올리는 작품은 정물화입니다. 벚꽃과 다기 세트가 있는 유화 작품인데 유리 병에 꽂은 엷은 핑크색 꽃을 중심으로 오렌지색과 초록색의 대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물감을 얇게 펴 바르며 겹겹이 쌓아 올린 다음 레드 계열의 진한 바이올렛 색채로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잠깐 외출했는데 그새 주위가 온통 가을 풍경에 물든 모습입니다. 가을이 막 그냥 지나가는 게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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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시 장암동의 가을 풍경> Watercolor on paper 34X 25cm 2012

    

지난 주말에는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야외스케치를 다녀왔다. 숲 언저리에 터를 내린 오래된 마을이었는데 함께 간 분들이 일 년 사이에 확 바꿔버린 마을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저 완성하려고 가져왔는데, 내가 그리던 집이랑 돌담이랑 다 없어져 버렸네.”

 

일행 중 한 분이 휑한 집터 앞에서 작년에 그리다 만 그림을 꺼내 보이며 몹시 허탈한 표정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누군가 이 마을 땅을 몽땅 사 버리는 바람에 여기 사는 주민들에게 법원으로부터 철거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었지만 성냥갑처럼 부서진 가옥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현실 감각이 둔한 나는 이것도 그냥 하나의 풍경이겠거니 했는데, 전셋돈도 못 받고 강제로 이삿짐이 실려나간 마을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이웃 주민에게 전해 들었다. 언제 집달리가 들이닥칠지 몰라 노심초사 하는 분들의 심정도 모른 채 나는 그저 한가롭게 앉아 화구통을 펼치고 마을 모습이나 그리고 있었으니...이거야 원, 가을 햇살이 참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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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행마을 방앗간> 유채 2012-14

 

가끔 이런 꿈을 꾼다. 수영장인지 연못인지 모를 물속에 한 타래의 머리카락이 떠 있고 그것은 검은 그림자처럼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나는 겨우 도망쳐 나와 풀밭을 지난 다음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수많은 징검다리가 놓여 있고 나는 기를 쓰며 그것을 건너간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몇 번 넘기기는 하지만 결코 물에 빠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는 버스 정거장에서 달팽이 도사님을 만났다. 몸집은 작고 왜소했지만 수염만큼은 무척 풍성한 도사님이었다. 우연히 서로의 말문을 트게 되었는데..정말이지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던 날이었다. 이 근처에 괜찮은 찜질방이 있느냐면서 도사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여기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찜질방 한 군데를 소개해 주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곳이라 깨끗할 거예요."

 

“고맙구려. 이 나이가 되면 뜨끈뜨끈한 데 가서 한참 지지고 싶거든. 그런데 시설도 어지간하겠지?"

 

“그럭저럭요. 숯방, 황토방 가마솥방 게르마늄방 그런 것들도 있고 참, 목욕하는 데는 초록색 물로 된 허브탕도 있어요. 어른이 들어가면 애들이 좀 싫어하긴 하지만.”

 

“허브탕이라! 초록색? 이거 이거, 오늘이라도 당장 한번 가봐야겠는 걸.”

 

나는 벌써부터 달팽이 도사님에게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말투나 눈빛, 은연중에 떠오른 표정 같은 것은 것들이 결코 범상치 않았다. 그것은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 약간 4차원적이면서도 현실과 비현실을 관통하는 그 무엇이었다. 무슨 말 끝에 달팽이 도사님이 꿈 해몽에 일가견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바짝 호기심이 당겼다. 나는 그 즉시 요즘에도 종종 꾸는 그 물귀신 같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신중한 표정으로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한 달팽이 도사님이 갑자기 푸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세요? 안 좋은 꿈인가요?"

 

“이거 참, 물과 머리카락과 징검다리라니! 당장 이사를 가는 게 좋겠어.”

 

난데없이 이사를 가라는 소리에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내가 괜한 소리를 꺼냈나 싶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거의 10년 가까이나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꿈은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이다. 꿈이 상징하는 암시나 숨겨진 의미를 풀기 전까지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이사라뇨? 그건 좀 곤란한데...당장 집을 옮길 수 있는 그런 처지가 아니라서.”

 

“이사는 안 된다! 그럼, 하는 수 없지!”

 

“하는 수 없다니, 뭐, 뭐가요?”

 

“땅을 파는 수밖에 없어.”

 

“땅이요? 무슨 땅?”

 

“아무 땅이나 괜찮아. 이왕이면 아주 깊이 파는 게 좋을 거야. 그쪽 키 정도면 충분하겠어.”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 갑자기 땅을 파라니...”

 

“10년이나  똑같은 꿈을 꾸었다면서? 그냥 내 말만 믿고 삽 들고 가서 무조건 아무 땅이나 파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 쓸데없는 것들을 몽땅 쓸어 넣고는 다시 흙으로 덮으란 말이요.”

 

도사님은 열심히 땅 파는 시늉을 하더니 그 위에 흙을 덮고는 발로 꾹꾹 다지기까지 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뭔가 의미심장한 충고 같은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거라니! 집에 있는 안 쓰는 물건들? 안 입는 옷? 혹시, 안 읽고 싸놓기만 한 책들은 아닐까? 솔직히 나한테는 안 읽은 책들이 많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껴안고 있자니 자리만 차지하는 그런 책들. 어떻게 아신 거지? 아무래도 진짜 도사 같은 걸! 

 

그때 달팽이 도사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기 내 버스 온다! 먼저 가야겠는 걸. 그럼, 여기서 이만.”

 

달팽이 도사님은 손까지 살짝 들어보이고는 버스를 향해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나도 다급하게 따라 일어서며 목청을 높여 물었다.

 

“잠깐만요! 쓸데없는 것들이라니 그게 뭔데요?”

 

달팽이 도사님은 한 발은 앞으로 다른 한 발은 뒤로 한 자세 그대로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하필이면 그 순간 머플러를 뗀 오토바이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리 앞을 지나갔다.  은색 철제 가방을 실은 총알 탄 오토바이라고나 할까. 정말이지 한 대 딱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요란하고도 극성스러운 오토바이였다. 달팽이 도사님이 뭔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진 건 바로 그때였다.

내 인생의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그런 한마디였는지 아니면 그냥 장난기어린 황당무계한 발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귀청을 울리는 오토바이 소음 때문에 '길쭉한'이라는 단어 외에 전혀 아무런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달팽이 도사님 바로 앞에 멈춰선 버스는 공항을 지나 시내 쪽으로 나가는 직행버스였다. 요즘 버스 기사님들은 정말로 칼 같은 운전 솜씨를 발휘하는 것 같다. 1mm의 오차도 없었다. 달팽이 도사님은 다시 한 번 손을 살짝 들어 보이더니 진짜 달팽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는 아주 천천히 버스에 올라탔다. 거대한 버스 안으로 작은 달팽이 하나가 조심스럽게 빨려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곧이어 버스는 문을 닫고 출발했다.

 

그날 밤, 나는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낮에 그런 일을 겪고 어찌 맘 편히 잘 수 있겠는가. '길쭉한' 다음에 과연 어떤 말이 와서 달라붙었던 것일까. 단어 맞추기 퍼즐게임이라도 하듯 온갖 단어에 '길쭉한'이라는 형용사를 대응해 보았다. 길쭉한 소파, 길쭉한 스피커. 길쭉한 빵. 길쭉한 버터, 길쭉한 젓가락, 길쭉한 다리, 길쭉한 가래떡. 길쭉한 촛대... 이 세상에는 의외로 길쭉한 것들이 아주 많았다. 나는 결국 멀미를 느낄 지경이 되어 두 손을 번쩍 항복하고야 말았다.

 

“이런 호랑말코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도대체 땅에 뭘 파묻으라는 거야! 길쭉한 거 뭐? 뭐?”

 

허공 대고 삿대질을 하다 말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벽을 향해 돌아누운 여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여자를 알고 있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나, 나를 파묻으라고?  새겨들을 말이 따로 있지. 하면서도 왠지 가슴이 서늘했다. 

 

나로 말하면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대한민국 여성 평균 사이즈의 아담한 체구다. '길쭉한'이라는 용어를 갖다 붙일 만한 구석이 전혀 없는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로도 파악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길쭉한...길쭉한 그 무엇...속이 미식미식하니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내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길쭉한 뭔가가 암흑 속에서 까만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세찬 파도가 한 번, 두 번, 세 번 연거푸 밀려오더니 거짓말처럼  빠져나갔다. 뙤약볕이 시리게 반짝였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태양의 연병장 같은 백사장 주위로 삐죽빼죽한 바위 덩어리들만이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더 이상 잠은 이상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불면증이 그해 가을 내내 나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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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포리 다리 앞>유채 2012-14

 

그림 하나만 덜렁 올려놓으면 재미없을 것도 같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야 나무 하나만 가지고도 백 가지 모양새와 기법을 실험해 볼 수 있겠지만, 그림과 상관 없는 이에게는 백 가지 나무가 다 하나의 나무, 똑같은 초록 빛깔로 보일 테니 말이다.

 

음, 오늘은 어떤 얘기를 할까... 생각하다 보니 불현듯 그 옛날 아현동 우리 집 문간방에 살던 말괄량이 아가씨가 떠오른다. 그 아가씨는 키도 크고 늘씬하면서 성격도 아주 명랑했다. 약간 튀어나온 커다란 입을 활짝 벌리고 웃던 그 시원스러운 미소가 아직도 생각난다. 오죽했으면 울 엄마가 그 언니에게 말괄량이 아가씨라는 별명을 붙였겠는가.

 

나는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느 일요일이었다. 말괄량이 아가씨가 안채로 건너오더니 잠깐 텔레비전 좀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그 전에도 가끔씩 우리 집 선풍기에 머리카락을 말리러 안채로 건너오기도 했었다.) 언니와 나는 흑백텔레비전으로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코미디 재방송 프로그램을 시청 중이었다. 그런데 말괄량이 아가씨가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은 따로 있었다. 갈기가 달린 번쩍거리는 허연 옷을 입은 백인 남자가 노래하는 방송이었는데 꽤나 요란뻑적지근해 보였다. 남자의 공연에 흠뻑 취한 말괄량이 아가씨는 소리를 빽빽 지르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마침 부모님은 출타 중이었다. 이런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언니와 나는(평소 엄마가 텔레비전 시청을 엄격하게 관리했던 터라 우리에게는 모처럼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어서 빨리 말괄량이 아가씨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말괄량이 아가씨는 죽어도 그 백인 남자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봐야했던지 좀체 자리에서 일어설 줄을 몰랐다. 우리도 물러서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우리 집 것이니 우리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주장할 도리밖에.. 결국 말괄량이 아가씨가 한 가지 타협안을 제시했다. 서로 5분씩 프로그램을 번갈아 시청하자는 것이다.

 

너풀거리는 빤짝이 옷에 시커먼 구레나룻를 기르고 다리까지 떨어대는 그 백인 남자가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더욱 재미있는 건 그 가수의 일거수일투족에 매료되어 괴성까지 지르며 난리법석을 피워대는 말괄량이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그때 우리가 사이좋게 5분씩 번갈이 가며 시청했던 그 백인 가수가 엘비스 프레슬리였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

 

우리 세대는 어쩐지 엘비스보다는 비틀즈 쪽에 더 열광하는 문화 풍조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요즘 들어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에 가끔씩 필이 꽂히고는 한다. 뭐랄까. 약간 느끼하면서도 반항기 어린 그 목소리가 내게는 더 청춘의 향수를 떠올리는 것이다. 청춘이란 과연 어떤 빛깔일까. 저마다의 청춘은 다들 제 나름의 모양새와 색채를 띄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목소리에는 샙 그린과 프렌치 울트라마린을 섞어 놓은 청춘의 빛깔과 페인스 그레이와 약간의 번트시에나를 결합해 놓은 듯한 그늘이 공존한다. 그 시절 우리집 문간방에서 일 년 정도 살다 간 말괄량이 아가씨에게 새삼 고마울 따름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어떻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 ‘역사적인’ 하와이 공연을 볼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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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포리 과수원> pen and Watercolor on paper 25.1X 18.3cm 2012

 

줄곧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게 농촌은 가깝고도 먼 이국의 영토다. 어쩌다 차를 타고 지나는 길에 풍광이 좋아서 잠시 쉬어가는 곳 정도였다고 한다면 어쩐지 좀 무례한 발언이 될 것도 같다. 지난 주말에는 김포에 있는 덕포리에 야외 스케치를 다녀왔는데, 그림을 그리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국의 농촌 모습이 정말로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덕포리 과수원>이다. 지난주에 찍어온 사진들을 살펴보다 이것도 구도가 될까 싶어 펜을 들고 그려나가기 시작했는데 어딘가 이국적으로 보이는 덕포리 마을의 전경이 새롭게 다가오면서, 어려서 내가 경험했던 시골 동네의 일상, 외갓집이 있던 충청남도 심방리의 풍경들이 옛 기억 속에 아른거렸다.

 

우리 외갓집은 천안에서도 한참 들어간 시골 촌구석이었다. 외양간에 소와 돼지들이 여럿 있었는데, 가끔씩 집채만 한 돼지가 울타리를 뚫고 뛰어 나와 집안 마당을 뺑뺑 돌아 다니는 바람에 조용하던 집안이 일대 격랑에 휩싸이곤 했다. 끼니때가 되면 할머니가 텃밭으로 나가 찬거리를 뜯어오고 새아주머니는 장작불을 지펴 무쇠로 된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 동네에서 앙숙 진 사람들끼리 싸움이라도 붙을라치면 난데없이 똥지게며 똥바가지들이 날아다니는 형국이 펼쳐졌다.

 

도시 생활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검은 색조를 구경할 수 있었던 곳도 거기 시골 마을에서다. 외갓집 곳곳에 놓여 있던 거무추레한 고가구들, 동네 사람들이 즐겨 신던 검은색 고무신, 할머니가 모처럼 내려온 손녀딸을 위해서 군것질거리로 만든 조청, 잿물을 받아 집에서 직접 만든 까만색 빨래비누. 그 모두가 내게는 생소하기만 한 까만색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던 검은색은 깊은 밤 들판에서 마주쳤던 거대한 어둠의 장벽이었다. 당시 외갓집에는 천안에 있는 고등학교로 기차 통학을 다니던 막내 이모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외조부를 따라 이모를 마중하러 나갔는데 정말이지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내 손가락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이러다 텅 빈 들녘에 홀로 남겨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불안한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연거푸 불러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딨어? 어딨어, 할아버지!”

 

“왜 그러니? 가만히 좀 있거라. 이제 곧 네 이모가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곧이어 할아버지가 이모의 이름을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근엄하기만 했던 외조부가 내게 보여 주었던 아버지로서의 또 다른 면모였다. 어둠만이 가득한 들판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이 떠올랐다가 메아리처럼 번져갔고, 저기 어딘가에서 화답하듯 할아버지를 부르는 이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외갓집에 대한 나의 추억들은 주로 겨울철과 한 여름철로 한정되어 있다. 그것도 저학년까지의 일인데 그때 그 농촌의 모습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도 자연과 흙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반쪽짜리 콘크리트 인생만 살았을지 모른다. 글이든 그림이든 평생 자신의 삶을 소재로 작업을 해야 할 사람에게는 결코 이로운 상황이 아니다.

 

어느 해 여름에는 외갓집에 도착하자마자 동네 아이들 틈에 끼어 수박서리를 한 적도 있다. 원두막에는 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가 혼자 밤을 새우며 도둑을 지켰는데, 어떻게든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축축한 흙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엉금엄금 기어야만 했다.

 

거기에 같이 있던 아이들 중에서 누군가 낄낄 웃으며 이제 콩서리를 하러 가자고 한 걸 보면 그날 밤 범행이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완전범죄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 누구야!”벼락같이 내지르는 목소리와 함께 어딘가에서 친척아저씨가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꼼짝 못하고 뒷덜미를 잡히고야 말았다. 그날 밤에 있었던 최대의 재앙은 우리들이 하필이면 죄다 설익은 수박들만 건드렸다는 사실이다. 어떤 게 잘 익었는지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쿡쿡 찔러본 것이 화근이었다.

 

친척 아저씨는 우리가 따 놓은 수박이며 여기저기 쑤석거린 것들까지 한데 모아놓고는 다시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니들이 다 먹어! 아깝게 버릴 수는 없잖아! 여기, 내가 보는 앞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먹어 치우란 말이야!”

 

친척 아저씨는 가뜩이나 큰 눈을 부라리며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약간 꾸불거리면서도 굼뜬 목소리로 우리들을 위협했다. 아이들은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하나씩 수박을 집어 들었다. 칼로 자른 것도 아닌 그냥 돌에 대고 툭툭 깨뜨린 수박덩이들이었다. 수박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물배는 점점 불러오고... 아직도 우리 옆에는 씨앗까지 허연 수박들이 잔뜩 남아 있었다. 뱃속에서는 압력 밥솥이 딸랑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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