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의 쓰레기들, 어제 모습]
아침에 뉴욕 거리를 걷다보면 절로 고개를 젓게 됩니다. 이건 많아도 너무~많아! 뭐냐고요? 바로 쓰레기들 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쏟아낸 흔적들...어제도 이만큼씩 버렸는데 오늘은 더 커다란 쓰레기 봉지들이 거리 곳곳에 높다랗게 쌓여 있습니다. 많이 벌고 많이 쓰자! 뭐, 이런 모토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
미국인들이 마냥 소비하고 버린 쓰레기들로 아메리카 대륙이 가라앉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소비자 물가지수가 내려가면 경제가 위축되고 적신호가 켜진다고 하던데 그러자니 거대한 자본주의가 미국을 통째로 깔고 앉아서 숨통을 조이는 듯합니다.

[뉴욕의 쓰레기들, 오늘 모습]
아침마다 거리의 그늘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쓰레기 더미들은 뉴욕 도시의 작은 단면에 불과합니다. 쓰레기의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하는 것 또한 낯선 여행자 입장에서는 섣부른 판단일 수 있습니다. 쓰레기는 한 사회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그런 얼굴들, 삶의 증거물들이 모여 결국에는 그 시기의 화석대를 이루고 역사의 타임캡슐로 굳어진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History comes to life' 역사가 일상이 되는 현상들을 이 도시에서는 수시로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어제는 소호에 갔다가 한 갤러리에서 샤갈 그림을 실제로 판매하는 것을 보고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40호에서 50호 중간 사이즈의 유화 작품이었는데 실제로 화랑 한쪽에 그림을 걸어 놓고 콜렉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도나 주제도 작년 겨울 서울 시립미술관 샤갈 전에서 본 그 작품과 많이 흡사했습니다. 회색 빛깔 주조로 된 거리의 마을 풍경, 마을 사람들, 세로로 된 화면 구성...아마도 그때 그 그림의 주인공은 십자가를 멘 예수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사이즈는 좀 작지만 그림의 스타일이나 질적인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은 작품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저거 진짜로 샤갈이죠?"
밖으로 걸어 나오며 카운터에 있는 예쁘고 화려하게 생긴 백인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었지만 부끄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규모도 작은 화랑에 샤갈의 판화나 드로잉도 아닌 커다란 유화 그림이 걸려 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으니까요.
"네, 그럼요. 샤갈 맞아요." 여자가 웃으며 상냥하게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진짜로 파는 거예요? 샤갈 그림을?"
"맞아요. 정말로 파는 거예요."
여자의 대답에 제 눈은 더욱 동그래졌습니다. 이런 질문을 해도 되나 싶으면서도 겸연쩍어 하며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어요.
"혹시 가격은 얼마나 돼요?"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파이브 포인트 밀리언이에요."
밀리언이란 단어에 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라 실제로 거래되고 있는 시세,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오가는 액수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어제는 마침 비도 오고 약간 추웠습니다. 밖으로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가려는데 문득 그런 의문이 들더군요.
'그런데 포인트는 뭐지?'
'파이브 포인트 밀리언' 중간에 들어 있는 '포인트'라는 단어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길 가던 여자에게 조심스레 물어 보았더니 고개를 꺄웃거리며 '파이브 포인트 파이브'를 줄여서 '파이브 포인트'라고 말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그 샤갈 그림이 이곳에서 5.5밀리언 달러에 거래되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분명히 한국 돈으로 5억은 넘을 것 같고 그렇다면 50억? 아니면 500억? 제 머리로는 도무지 계산이 되지 않았습니다.
소호에 있는 어느 화랑에 들어갔더니 남자 큐레이터가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전시 작품에 관해서 이리 저리 설명해 주더군요. 필요하면 작품 가격이 있는 리스트도 보여주겠다면서요. 아마도 저를 미술품 콜렉터로 본 모양입니다. 젊어서는 이런 데 오면 화랑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그만큼 제가 나이 들어 보인다는 얘기겠지요. 어쩌면 동양인, 특히 동양의 중년 여자들을 바라보는 이들 시각이 그새 많이 바뀐 탓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가끔씩 이런 화랑에서 직접 작품을 구매해 가는 한국이나 일본인 사모님들이 많이 늘어났다, 뭐 그런 해석이겠죠.
오늘은 휘트니 미술관에 한번 가볼까 했습니다. 그런데 메디슨 에비뉴 76번가에서 쇼윈도에 근사한 미로 그림을 걸어 놓은 갤러리를 발견하고는 무조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참고로 말씀 드리는 건데, 뉴욕에서는 길거리 화랑에 들어가고 싶으면 대부분 밖에 달려 있는 초인종을 눌러야 합니다. 그러면 안에서 누군가 스위치를 누르는 찌잉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딸깍 열립니다. 이내 문고리가 잠겨 버리는 시스템이니 타이밍을 잘 맞추어 손잡이를 잡아당기거나 문을 안으로 미는 것이 좋습니다.
화랑 안에 들어가면 저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며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고 합니다. 괜히 쭈뼛거릴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예의 차원에서 옷은 조금 깨끗하게 입을 필요가 있을 것도 같군요. 그렇지만 여행 중에 옷 같은 데다 너무 큰 신경을 쓸 여유는 사실 없습니다. 저는 그냥 청바지 차림에 패딩 점퍼, 운동화, 어깨에 둘러멘 가방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런 차림새인 저한테까지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요즘 뉴욕의 화랑들이 불경기 인가 봅니다. 어쨌거나 어제 소호에서 몇 번 그런 대접을 받고 난 터라 이제는 익숙하니 제 표정 또한 느긋했습니다.
메디슨 에비뉴 76번가에 있는 그 고급 화랑에서는 피카소 그림을 다섯 점이나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로스코, 레제, 마그리트, 후안 미로, 웨인 띠버드 등등, 누구나 들어 알 만한 작가들 작품들이 벽에 주르륵 걸려 있더군요. 이층에도 작품이 있다고 해서 올라갔더니 2층 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자 분이 아예 전시 작품들의 가격 정보까지 몽땅 들어있는 카탈로그를 건네줍니다.
저는 한쪽 소파에 앉아 그걸 들여다보며 필요한 것들을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술책에 나오는 유명 작가들의 리얼한 진면목(?)을 그대로 지나칠 수야 없지요. 그런데 그 분량이 상당 했어요. 이걸 무슨 수로 한 번에 옮겨 적나 난감하던 차에 마침 데스크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는 게 보였습니다. 타이밍이 기가 막혔습니다. 아마도 저는 전생에 스파이거나 공작원이었을지 모릅니다. 보통 때는 버걱거리던 머리가 그 순간 쾌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지체 없이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조금 손이 떨리더군요. 약간의 흥분,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저를 밀어붙였습니다. 그다지 두꺼운 카탈로그는 아니었지만 그 안에 든 작품 정보를 한꺼번에 카피하는 방법은 그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탈로그는 활짝 펼칠 수 없게 제본된 것이었습니다. 그걸 바닥에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는 이쪽 페이지를 누르고 오른쪽 발끝으로는 다른 쪽 페이지를 누른 다음 한 장씩 넘겨가며 디카로 펑펑 찍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 긴 시간이 흐른 건 아니었습니다. 재빨리 셔터를 누르는 동안 1층에서 직원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렸습니다. 찻잔 부딪치는 소리, 복사기 돌아가는 기계음 같은 것도 들린 듯 했습니다. 여직원의 목소리가 차츰 커지면서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금세 위로 올라올 것만 같았습니다. 어쩌면 이미 층계참 까지 올라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더욱 급해졌습니다. 아직 수집해야 할 정보들이 더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만 둘까 하는 생각도 한 순간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중요한 것들은 가장 평범한 얼굴로 어딘가에 숨어 있습니다. 단 하나의 키워드 같은 것, 생의 어떤 암시 같은 것, 이대로 지나치면 끝내 섭섭해 질 것이 분명한 바로 그것.
그것이 무엇인지 저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직감하고 맹목적으로 따를 뿐입니다. 나는 한 사람의 목격자이고 수행자이며 또한 사악한 염탐꾼이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내린 임무에 불과했지만 가능한 수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일에 속도를 올리며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카메라까지 빼앗기지 않겠지, 오로지 믿는 구석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으면서도 찰칵, 한 장 넘기고 찰칵, 또 한 장 넘기고, 또 넘기고, 또 넘기고... 마침내 임무 완성!

[로스코와 수틴의 작품 목록이 들어 있는 페이지]

[피카소 작품 목록이 들어 있는 또 다른 페이지]: 피카소는 확실히 '0'이 더 붙어 있더라고요. 휴, 이게 몇 개야? 하나 둘 셋 네엣....
뭐야, 이거! 겨우 이거 찍으려고 그랬단 말이야? 하실 분도 간혹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니었다면 누가 그런 으리으리한 화랑에 가서 감히 이런 사진을 찍어 오겠습니까. 사실은... 재미있게 읽으시라고 조금 과장해서 당시 상황을 들려드렸습니다. 히히.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앞에서 뉴욕 거리에 아침마다 쌓이는 쓰레기 더미들에 관한 얘기를 잠시 거론했지요? 그렇다면 이제는 오늘 낮에 휘트니 미술관에서 관람한 웨이드 가이튼(Wade Guyton의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거대한 쓰레기들 뭉치들과 가이튼의 작품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마저 있는 듯합니다.
휘트니 미술관은 현대 미술의 현주소 같은 곳입니다. 현대 미술이 난해하다보니 정해진 시간에 해설사인지 큐레이터인지 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나와서 관람객들을 이끌고 다니며 작품 설명을 해줍니다. 나이 들어도 저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그들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아주 열정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 주거든요.
아티스트는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 발언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부정하고 거부하고 지우는 역할을 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어떨까요. 현재 휘트니 미술관에서 특별 전시를 하고 있는 젊은 작가 웨이드 가이튼이 바로 그런 아티스트입니다.
웨이드 가이튼(Wade Guyton)은 미국 인디에나 출생으로 테네시에서 성장했고, 뉴욕 헌터 대학 로버트 모리스 교수 밑에서 수학한 이제 40세 밖에 되지 않은 청년 작가입니다. 마흔 살이 청년이라니, 하며 의아해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물론 고흐는 33 세에 죽었고 라파엘로도 37세인가에 요절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피카소는 83세까지 살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여든 넘어까지 장수했습니다. 또한 바위 위층에서 전시 중인 노병의 작가 리차드 아트스웨거가 88세의 나이에 아직까지 왕성하게 작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가이튼은 아직도 반세기 가까이 작업실에서 더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청년 작'가라는 말이 결코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가이튼이 이번 전시회에서 선을 보인 작품들은 대개 "X'라는 커다란 부호에 의해 작동하고 있습니다. 예전의 화가들은 직접 손으로 그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능한 실물과 똑같이 그릴수 있을까. 그것에 의해 밥줄이 좌우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그러다가 카메라라는 적군이 등장한 겁니다. 초상화가들은 점점 카메라한테 손님을 빼앗기게 되었고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그러나 벼랑 끝에 서면 뭔가 항상 그 어둠 속에서 회오리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건 인생이나 예술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일군의 화가와 조각가들이 카메라의 놀라운 능력에 강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기계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인간의 잠재적인 능력을 뛰어 넘을 수야 없지. 이제부터 사진기가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그린 걸 그리면 되는 거야.'
사진기가 카피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 20세기 현대 미술은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다시 출발했습니다.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 색채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화가들은 화폭 안에서 색채나 공간을 분할하고(입체파, 점묘파, 피카소, 쇠라), 더욱 주관적인 감성을 부여하고(표현주의, 고흐), 직접 사진 이미지를 이용하든지(드가), 아예 기계가 따라 올 수 없는 상상력과 공상의 힘(고갱, 루소, 초현실주의자들, 다다이스트, 추상화가들...)을 끌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어쩌면 웨이드 가이튼도 그런 맥락에 서 살펴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진 매체를 통해 축출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작업을 펼쳐나갔으니까요. 사진을 작품으로 이용하다, 바로 그렇습니다.

[웨이드 가이튼 'Untitled']
이 시대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젊은 작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웨이드 가이튼의 'X' 작품들은 제목 모두가 'Untitled'입니다. 제목을 붙이지 않은 탓도 있고 제목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제목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초기의 그의 작품들은 잡지책이나 신문에서 무작위로 산출한 이미지를 가져다 그 위에 다른 사람을 시켜 기계로 X를 프린트 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사회가 방출해내고 있는 과잉된 이미지들 위에 기계적인 이미지 X를 결합 시킨 거지요. 작품 재료에 엡슨의 프린트 잉크젯이라는 설명이 빠지지 않은 것이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현대인들은 대개 자신만의 카메라와 컴퓨터와 프린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구글이나 유튜브 같은 곳에 파일을 올리거나 거기에서 다운로드 받은 것들을 합성해서 프린트 할 수 있습니다. 공적인 거든 사적인 거든 그런 이미지들은 어느 곳에나 너무 많습니다. 한 개인이나 단체에게는 아주 소중한 것들이지만 너무 많다보니 일종의 쓰레기 취급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쓰레기는 길거리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인터넷이나 잡지 신문 TV에서 과잉 생산된 이미지들이 우리를 빼곡히 둘러싸고 있습니다. 쓰레기 정보에 24시간 노출된 우리의 머릿속도 마냥 어지럽게 쉼 없이 돌아갑니다.
가이튼은 어디는 흘러 다니는 이미지들을 무작위로 축출하여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하고 있는데(잡지 책 한 페이지를 그냥 주욱 찢어서 사용하던가), 그것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업과 일견 흡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관점의 접근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뒤샹은 남자 화장실에 있던 변기를 들어다가 화랑 전시실에 놓음으로써 낯설게 하기, 변기라는 용도를 '샘'이라는 제목을 가지 예술품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장소를 떠난 오브제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의미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가이튼은 뒤샹과 달리 어딘가에 있던 이미지를 끌어다가 가공과 변형과정을 거칩니다. 기계를 통해, 그것도 다른 기술자의 손을 빌려 만든 것이지만, 결국 그걸 바꾸기 위한 노력은 가이튼의 의지와 노력에서 나왔다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평론가가 그의 작품을 두고 '미술사를 붙잡고 레슬링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니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웨이드 가이튼 'Untitled']
웨이드 가이튼이 일관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X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가이튼은 문자적인 의미, '부정'의 의미가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현대 사회의 과잉 포장된 이미지들을 지우고 있는 걸까요. 혹은 문명에 대한 거부, 현대 미술에 대한 부정은 아닐까요. 어쩌면 자신의 운명에 대한 회의, 그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또 다른 욕망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인간들 대부분도 약간의 저항은 있지만 결국에는 운명의 비극성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승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은 인간이 최후로 백기를 들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 어떤 생명체도 죽음을 넘어 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이튼은 최후의 운명성, 존재의 죽음조차도 거부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요.
그의 X가 어떤 뜻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은 일견 부정의 부정, 긍정으로도 해석됩니다. 다시 말해서 뭔가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으니 긍정도 할 수 있다는 그런 소리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비록 기계적인 방식에 의해 모두 제작된 것이긴 하지만, 인간의 한계, 어쩔 수 없는 존재의 운명성에 대한 저항 등으로 인해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 인간이 고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고백의 마지막은 허무함, 공백, 공허함과 또한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미국은 많은 면에서 풍요로운 나라지만 또한 너무도 텅 비고 공허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감수성을 소설 속에서 잘 녹여낸 작가가 바로 뉴욕의 소설가 폴 오스터 입니다. 그의 장편소설 '우연의 음악'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차를 몰고 끝없이 고속도로를 달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드라이브가 아닙니다. 아내가 떠난 뒤 어린 딸까지 누이에게 갖다 맡기고는 3일 동안 내리 피아노만 치다가 그것마저 팔아버리고는 마침내 길을 떠납니다.
그 후 이뤄진 그의 행적에는 목표점도 지행점도 없습니다. 그냥 달리고 달릴 뿐입니다.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남쪽으로 북쪽으로 온종일 매일같이 달려 나가기만 하는 겁니다. 그렇게 1년하고도 6일째 되는 날, 주인공 남자는 길에서 우연으로 포장된 어떤 허무의 공백 속으로 빨려들게 됩니다. 지난 1년간 고속도로에서 마주쳤던 허무를 실제 현실 속에서 다시 경험하게 된다, 뭐 그런 내용입니다. 나중에라도 그 책을 한번 읽고자 하시는 분을 위해 소설의 결말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폴 오스터의 다른 작품인 '달의 궁전'에 나오는 소년 역시 유일한 혈족인 삼촌을 잃은 뒤 뉴욕 거리를 마냥 정처 없이 떠돌아다닙니다. 소설 초반부는 주인공의 목적 없는 여정이 한동안 길게 이어집니다. 그러다 마침내 중요한 대상과 만나게 되는데 그 또한 허무의 끝을 연상시키는 터라 '우연의 음악'에 나오는 주인공의 경우와 어쩐지 흡사해 보입니다.

[잭슨 폴락 ]
그림에서도 절대의 고독, 우주의 고아가 된 것 같은 막막함을 담아낸 작가들이 있습니다. 잭슨 폴락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여기서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세계적 반열에 오른 1세대 미국 토종 화가 입니다. 한 미술 평론가는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을 두고 미국식 풍경화라고 말합니다. 카우보이가 달려 나가는 거친 황야 같은, 오로지 미국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미국식 풍경화, 그 우주적인 광활함, 그 속에 깃든 어쩔 수 없는 공허와 외로움...
미국 사람들은 땅이 넓은 곳에 살아서 그런지 정말이지 큰 것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잭슨 폴락의 작품들 역시 규모면에서 아주 미국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수영장처럼 큰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작은 사이즈지만 그래도 한 200호는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주위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게 큰 작품을 통째로 찍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주로 큰 캔버스를 다루다 보니 공업용 페인트를 사용 할 때가 많습니다. 경건한 예전 그림들이나 화풍에 대한 반발로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폴락은 붓을 손에 쥐고 직접 그리기보다 물감을 나무막대기에 찍어 뿌리거나 페인트 깡통에 구멍을 뚫어 사용했습니다. 온몸으로 그림을 그린 셈인데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두고 바위에 올라가서 오줌을 싼 것 같다고도 말하기도 합니다..

[에드워드 하퍼, 유채, Office in a Small City, 1953]
애드워드 하퍼도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사실주의 화가 중 하나 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국민 화가'라고나 할까요. 하퍼의 작품 역시 미국식 거대함과 그 속에 속한 인간의 왜소함 등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 풍요로워서 공허해지는 정서적 공백, 그 끝 모를 허무와 고독을 하퍼의 작품 속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정복했다는 말, 저는 결코 공감할 수 없습니다. 자연의 거대한 벽 앞에 선 인간은 너무도 작고 초라하고 고독한 존재들입니다. 그 곁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때론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미국식 거대한 자연은 하퍼의 그림 속에서 또한 거대한 사회구조로 변형되곤 합니다. 고작 한 사회의 부속물처럼 전락한 인간의 운명이 쓸쓸해 보입니다. 그림 속 남자는 주위의 환경에 비해 하잘 것 없을 만한 규모로 표현되었습니다. 남자는 낮에 일을 하는 동안 이렇게 창밖을 바라보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도시의 삶 속에서 이런 공백을 맞이한 순간 과연 어떤 생각들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휘트니 미술관에 전시된 웨이드 가이튼의 거대한 작품들, X를 기조로 하는 시리즈물들 속에서 바로 그런 느낌, 또 다른 방식의 미국식 허무와 공허를 느낍니다. 모든 것을 지우고 난 뒤의 그 텅 빈 자취,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픈 막막한 감수성을 현대인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 곳에 '실종'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습니다.
요즘 와서 엑스 맨 영화나 X를 내세운 많은 것들이 부각되는 걸 보면(아까는 많이 생각났었는데 지금은 한 가지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대신 생각해 주십시오.) 그것은 현대인들의 무의식적인 생각들, 지워버리고 삭제하고픈 욕망을 은연중에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많이 가질수록 공허하고 허전해 지는 그런 기분, 소설책이나 영화에서 많이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조금씩 경험하는 느낌입니다. 없이 사는 것이 그다지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뭐 이런 허접한 결론이나 내리려고 꺼낸 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제 머릿속에는 오전에 메디슨 에비뉴 76번가 화랑에서 본 피카소니 로스코 같은 작가들의 작품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마음 같아서야 이왕 본 김에 한번 질러보고도 싶습니다. 그런다고 지옥으로 끌려갈 것도 아니고..아무리 비싸도 하나쯤 가지고 싶다는 생각, 너무나 흥분되지 않습니까. 아주 작은 드로잉이라도 괜찮습니다. 내 집 거실에 미술책에서나 봤던 위대한 작가의 드로잉을 떡하니 한 점 걸어 놓는다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거 뭐야? 누가 그린 거야?" 내 친구가 묻습니다.
"아, 그 드로잉? 피카소. 그림에 있는 사인을 보고도 몰라?"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합니다.
"피카소? 진짜 피카소?" 친구는 두 눈이 화등잔만 해져서 다그쳐 묻습니다.
"그럼. 이 세상에 가짜 피카소도 있니? 난 가짜 같은 건 안 키워." 주스 한 모금을 홀짝 들이키고는 턱을 더욱 높이 추켜세웁니다.
히히,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지요. 그러나 현실 속 실제 상황은.....뉴스를 보면 눈 먼 돈이 마구 굴러다니는 것 같던데...도대체 이놈의 돈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만인이 평등하다고들 그러더니만, 세상은 화가 날 정도로 불공평합니다. 아니, 이런 일로 기운 빼는 건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이름 없는 예술가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의 생산자이자 공급자라는 사실을 잠시 깜빡했습니다.
'나도 그 정도는 그릴 수 있어! 내 능력이 그들만 못한가? 이제부터 노력하면 돼. 기어코 보여 주고 말 거야.... 복수 할 거야!'
이런 생각들을 곱씹으며 오늘도 작업에 몰두하는 무명작가들이 이 세상에는 부지기수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 맛에 배고파도 일개 작가로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