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의 명물, 플랫 아이언 빌딩>
오늘도 자다가 일찍 깼습니다. 시차 적응을 못해서라거나 환경이 바꿔 신경이 예민해졌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다만 어제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서는 그대로 쓰러져 잤기 때문에 이렇게 이른 새벽에 깬 것입니다.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시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어제는 찍어온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미술관에 가는 대신 거리를 돌아다니다 책방에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보여드릴 사진은 잔뜩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그림 사진만 찍다가 카메라 렌즈로 거리 풍경을 스케치 하니 이야기보따리가 하나 가득입니다.
우선 뉴욕 날씨가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얇은 외투 하나면 충분할 정도입니다. 롱부츠를 입은 신은 여자들 두꺼운 노스페이스를 입고 나온 남자들이 꽤나 고생한 하루였습니다. 주말에는 미술관이 많이 붐빌 테니 오늘은 그냥 젖히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살던 23번가로 지하철을 타고 갔지요.
뉴욕 지하철은 아주 간단합니다.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것. 좌우로 가고 싶을 때는 버스를 타면 됩니다. 한 번만 지하철을 타보면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뉴욕입니다. 이제와 고백하지만 사실 저는 심한 길치입니다. 언젠가 파주 출판 단지에 간다고 차를 몰고 나갔다가 저 위에 국방 한계선(?), 헌병들이 지키고 있는 곳인데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고, 아무튼 철책으로 길을 막아 놓았더군요. '돌아가시오’ 하는 사인만 보이고. 그래서 다시 차를 돌려 그냥 집으로 와버린 적이 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길치도 뉴욕에서는 헤맬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동쪽 서쪽, 업 타운 다운 타운, 항상 이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되니까요.
23번가와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는 지하철 역 밖으로 나오니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솟은 플랫 아이언 빌딩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뉴욕의 마천루 역사에 있어 초기 작품이라 하는데 얼핏 다리미처럼 생긴 모습이 언제 봐도 신기합니다. 옛날 자기가 살던 동네를 다시 찾아간 기분은 참 묘합니다. 사람과 공간에 대한 기억들이 구석구석 담겨 있고, 예전의 내 모습 또한 저기 어딘가 길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런 사연과 장면들이 아직껏 이곳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는 듯합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오면 내가 주로 머물던 장소를 한번쯤 다시 기웃거리게 됩니다. 어떻게 변했는지, 얼마나 많이 내 모습을 지워버렸는지, 그로인해 내가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큼 떠나왔는지 확인하고픈 마음이 절로 드는 것입니다. 23번가 거리 모습은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새로 개축한 빌딩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이 거리에 흐르는 냄새, 공기와 사람과 소리의 흐름은 7년 전 그때와 전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우리가 가끔씩 아침마다 가던 베이글 코너 가게가 새롭게 단장한 현대식 카페로 탈바꿈 했다는 사실입니다. 뉴욕에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 있을 것 같은 아주 오래되고 낡은,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식당이었거든요. 가게 안에서 베이글도 직접 굽고, 나이든 아저씨 서너 명이 투박한 언어로 장사를 하던 베이커리 숍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23번가에 있는 옛날에 살던 빌딩 앞에서>
사보이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예전에 우리가 살던 빌딩을 바라보는 심정은 남달랐습니다. 건물 앞에서 시간이 딱 멈춰버린 듯 더 낡고 초라해진 느낌, 폐허 속 쇠락한 건물 기둥을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때도 저런 모습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주위가 그만큼 산뜻하게 정비된 탓도 있을 겁니다. 근처에 새로 생긴 콘도미니엄과 비주얼 스쿨 간판이 보이고, 길 건너에는 던킨 도넛 가게와 타이 식당 편의점 같은 것들이 새로 오픈한 듯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던 그 빌딩만이 세월의 잔재에 파묻힌 듯 더 어둡고 그늘지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옛날에 살던 집은 사람 마음을 애잔하게 만듭니다. 옛집은 옛날 내 모습이며 내 기억입니다. 옛집의 기억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지만 사실은 나로부터 분리된 그 시절의 내가 아직도 이곳 언저리를 맴돌며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이 라인, 첼시>
첼시 화랑 가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육교처럼 생긴 이상한 구조물이 나타났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의 설명에 의하면 공원이라고 하더군요. 공중에 떠 있는 공원이라니! 터키인가 스페인에서 공중 정원을 본적이 있는데 이것도 그런 콘셉트로 지은 것인가 싶어 철제 계단을 밟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하이 라인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제 정보가 정확한 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이 라인은 11번가와 12번가 사이에 위치하고 12번 스트리트에서 34번 스트리트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식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건물들 위를 가로지른 거대한 육교라 할 만 합니다.
사실 뉴요커들은 육교를 본적이 거의 없을 겁니다. 이곳이 새로운 명소인지 카메라를 매고 가족들 연인들과 함께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도시의 지붕을 가로지르는 구조물이나 중간 중간 설치된 미술조각 설치물들 모두 새로 꾸미거나 만들어 놓은 기색이 역력했고 곳곳에 심어 놓은 나무와 잔디밭 풍경도 아직까지는 어딘가 인위적인 냄새를 풍겼습니다.
그래도 허공에 떠 있는 이 산책로에는 센트럴 파크와는 또 다른 운치가 감돕니다. 무엇보다도 이 도시의 다른 얼굴, 지붕 위나 건물 틈새들, 오랜 세월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시간의 그림자들을 새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잘 정비된 도시라 해도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낯선 정체들이 존재합니다. 그 뒷모습의 표정과 흔적들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각도와 높이와 깊이가 필요합니다. 하이 라인은 그런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도시 지붕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일깨우고 사람들은 하이라인에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

<하이 라인 안의 산책로 풍경>

<하이 라인 위에서 내려다 본 23번가 도로 모습>

'하이 라인에서 바라본 건물과 건물들 사이의 틈새'
오후에는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바꿔 탄 뒤 유니언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토요일마다 프리마켓이 열리던 광장은 마침 공사 중이라 사방이 막혀 있었지만 공원 안은 한가하게 산책 나온 사람들이 벤치마다 가득 했습니다. 어딜 가나 자신에 대한 얘기를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옆에 앉아 있는 백인 아줌마에게 말을 건넸다가 무시를 당했는지 그 나이든 백인 남자는 자신의 과거사에 관해서 그리고 그 백인 아줌마의 야박함에 관해서 한참이나 큰 소리로 떠들어댔습니다. 그러나 백인 남자가 쏟아내는 무수히 많은 말들은 그 어떤 침묵의 벽도 뚫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외면했고 민망해 했으며 심지어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백인 아줌마도 손에 들고 있는 아이팟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백인 남자의 목소리만이 울릴 뿐입니다. 계속 떠벌여 대는 그의 말들이 허공의 벽에 부딪혀 고스란히 그 자리로, 자신의 침묵 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유니언 광장의 거리 화가>
공원 한쪽에서 길거리 화가들을 보았습니다. 어린 소녀들입니다. 붓을 들고 쓱쓱 아주 재미 있게 그어 대고 있습니다. 주위를 지나던 나이 든 백인 여자도 붓을 한 자루 달라고 하더니 꽃이 핀 풀잎을 그려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에 몰두한 사람들, 그것을 구경하느라 발길을 멈춘 사람들.. 11월의 맑은 햇살이 부서지는 한쪽에서 한참이나 우두커니 바라보다 문득 궁금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림을 그리는 걸까. 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걸까. 색채의 아름다움 때문에, 도구에 대한 애착과 흥미 때문에, 예술에 대한 호기심, 어쩔 수 없는 끌림 때문에...아니, 그 또한 뭔가 말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스스로의 벽에 갇혀 맴돌고 있는 언어들, 생각과 소통이 필요한 사연들을 토해내기 위해서 붓을 들고 물감을 섞고 그리고 어딘가에 화폭을 펼치고는, 그리고 또 그리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요.

<반스 엔드 노블 서점>
유니언 광장 근처에 있는 푸드 마켓에 들어가 뜨거운 클램 차우더 수프와 샐러드로 늦은 점심을 먹고는 근처에 있는 반스 엔드 노블 책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뉴욕에서 제일 큰 책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1층에서부터 4층까지 수많은 책들로 빼곡한 곳입니다. 예전에는 소설 섹션이 2층인가 3층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4층으로 옮겨져 있더군요. 그리고 4층에 있던 어린이북 섹션이 소설이 꽂혀 있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소설에 대한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가 바로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고 어쩐지 씁쓸한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소설은 죽었다... 그림은 죽었다...저 같은 사람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소리입니다. 그래도 한 겨울 히말라야 꼭대기에 있는 로지에서 난롯가에 모여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며 책의 소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7년 전 뉴욕 거리에서도 여기 저기 앉아 독서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내심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도시 어딜 가나 직사각형의 조그만 액정 화면만이 사람들의 시선을 꼭 붙잡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도 하다못해 무가지 신문을 읽는 사람도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코딱지 만한 화면이 사람들의 시간은 물론이요 영혼마저 몽땅 삼켜버릴 기세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길을 가다 혼자 웃고 떠드는 사람을 보면 실성했다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기계에 대고 혼자 말하고 웃고, 슬퍼하고 분노합니다. 덕분에 소설책 같은 건 대형서점 이층에서 삼층으로, 삼층에서 사층으로, 사층에서 다락방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소설이 고귀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는 손에 닿을 수 없는 것들이 더 신비해 보이는 법이니까요.
이러다 '죽은 자들의 도시'에 그 액정 화면만이 덩그마니 남아 동동 떠다니는 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듭니다. 이브 탕기의 초현실주의 그림에서처럼 모두가 사라진 회색 공간에 액정 화면들만이 살아있는 미생물처럼 증식해 가는 불길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상황을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제 표현이 조금 과하다는 건 알지만, 반스 엔드 노블에서 4층으로 쫓겨 간 소설 섹션의 실상을 보자 어쩐지 우울했습니다. 한국이라고 다른 실상이겠습니까. 돌이켜보니 교보문고에서도 참고서들이 예전에 있던 소설 자리를 빼앗았던 것 같던데...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소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브 탕기의 작품' 그다지 본문에 부합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메트에서 찍은 사진을 대신 올립니다.>
밤이 되어 밖으로 나오니 유니언 광장 중간에 높이 서 있던 동상이 말을 하고 있더군요. 누군가 그 위에 이미지를 비추고 연설 내용을 크게 틀어놓은 듯합니다. 어둠 속에서 펼쳐진 일루션 효과로 인해 정말로 동상이 손을 움직이고 표정을 짓고 연설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대의 음류 시인이 다시 환생한 듯 사람들을 발길을 멈춘 채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어쩌면 반스 엔 노블 4층으로 쫓겨 간 책들이 이런 방식으로나마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책의 또 다른 변신이라고나 할까요. 정말로 종이 문명이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방식의 메스미디어 세상이 우리 앞에 당도한 듯도 합니다.

<유니언 광장의 동상1, 낮에 촬영한 것임>

<유니언 광장의 말하는 동상2, 밤에 촬영한 것임>
돌아오는 지하철 역사 안에서 길거리 가수와 악사들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도나 서머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모르겠고 도나 서머의 노래 중에서 빠른 템포로 아직도 대중의 사람을 많이 받는 바로 그 곡입니다. 여가수는 아주 피곤해 보였고 남루했으며 목청에도 이미 무리가 많이 간 상태였지만 한편으로는 만족한 표정이었습니다. 누군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그녀는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매 순간 행복한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이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가지쯤 자신에게 행복한 일을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오늘도 행복하시기를..

<33번가 헤럴드 광장 지하철역 구내에서 공연 중인 흑인 여가수와 악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