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티스 [라일락, 1914]
11월 13일 화요일.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저녁도 못 먹고 그대로 쓰러져 잤는데, 오늘 아침에는 서울서 싸가지고 온 음식들도 진력이 나고 해서 미술관 가는 길에 42번가에서 내려 주위를 뺑뺑 돌며 아침 먹을 곳을 찾다가, '결국 여기밖에 없다는 결론이군.' 하며 맥도널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행 중에는 맥도날드가 나에게 일종의 구세주 같은 장소다. 오죽했으면 로마에 갔을 때도 맥도널드를 중심으로 로마 지도를 다시 그려보았겠는가. 결코 맥도널드 광신자라는 소리는 아니다. 이런 발언, 정말 정말 한심하다 하실 분도 있겠지만 어느 면에서 음식이나 분위기에 대해 까다롭다 할 수 있는 내게 최선책은 아니라 해도 확실한 차선책은 될 수 있다는 거다.
맥도널드 메뉴판은 어느 나라를 가나 거의 비슷하지만 안에 든 내용물의 질적 차원까지 모두 흡사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만 해도 아침 메뉴 중 가장 푸짐한 빅 플레러를 시켰는데 3장씩이나 함께 나온 팬케이크 사이즈를 보고는 한국 맥도널드가 너무 야박했던 건 아닌가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커피도 모든 사이즈가 1달러라 해서 제일 큰 걸 시켜가지고 위층에 있는 테이블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한참 먹다보니 나 혼자만 너무 많이 먹고 있는 건 아닌가 자책이 들 지경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음식에 대한 나의 탐욕스러운 태도를 훔쳐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저렇게 많이 먹으면서 어쩌면 저토록 마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맙소사! 조만큼씩 밖에 안 먹으면서 어쩌면 저토록 살이 찔 수 있는 거지?'
기름으로 바싹 튀긴 포테이토 케익에 달걀 2개와 비프 페리가 들어간 고소한 머핀, 거기다 달달한 시럽까지 끼얹은 팬케이크를 단숨에 절반가량 먹어치웠다. 팬케이크를 반씩이나 남긴 건 남들 눈치도 약간 보였기 때문인데 솔직히 그 많은 걸 다 소화시킬 자신도 없었다. 사실 미술관에 한번 들어가면 언제 시간이 흘러가는지 몰라 끼니때를 놓치곤 한다. 산악인이 히말라야 같은 고봉에 도전할 때처럼 이번이 마지막 식사다 생각하며 가능한 잔뜩 먹어 두는 것이 상책이다. 다행히 내게는 1일 2식이 딱 적당하다. 몸 상태가 그러니 아침에 얼마큼 많이 먹든지 체중 변화에 상관이 없다. 아직껏 콜레스트롤 수치도 정상이고 다른 잔병도 없고...그렇지만 이제 뼈에 바람이 숭숭 들 나이가 되었다는 걸 감안해서 커피는 좀 줄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에는 가능한 블랙 커피는 사양하고 우유든 크림이든 잔뜩 들어 있는 커피만 마신다. 나이 든다는 것은 결국 이런 의미다. 음식을 먹을 때도 차츰 조심하게 되고, 매일 챙겨 먹어야 할 약들이 한 가지씩 늘어나는 것. 젊어서 여행을 다닐 때는 아무리 강행군을 해도 밤늦게까지 쌩쌩했는데 이제는 숙소에 겨우 기어들어 와 쫙 뻗어버리기 일쑤다. 여행도,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가능한 젊어서 맘껏 하는 게 최고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이 들어서는 도대체 뭘 하면서 살라는 건가. 인생을 관조하며 느긋하게, 마냥 온실의 화초처럼 지내며 만보기나 차고 다니라는 건가. 아이고, 맙시사! 그런 성경 말씀 같은 소리는 사양하겠다. 현실의 이중성은 전혀 다른 설정과 적응 능력을 요구한다. 나이 들어 갱년기 오고 오춘기 증세 느껴지면 삶에 대한 중심축이 바뀐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지난 시절이나 반추하며 젊었을 때 나는 어쩌구저쩌구 그런 말이나 늘어놓으면서, 그 시절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나의 오만을 또 다른 젊음의 오만 속에서 발견하고는 혼자 진저리나 쳐야한단 말인가. 아니지, 그럴수록 더 열심히 여행 다니고 꿈꾸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온몸에 오만의 향기를 친친 감고 다니는 거야말로 가장 성스러운 생활 태도 아니겠는가. 자, 정신 건강을 위한 비타민 하나 꿀꺽 삼키고 다시 일어나 구겐하임으로 출발!

[구겐하임 미술관]
산에도 산 만을 위한 산이 있고, 미술관에도 미술관 만을 위한 미술관이 따로 있다. 일례로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은 정말로 산 만을 위한 산이라 할 수 있는데, 정해진 시간까지 마지막 휴게소에 가야 정상 정복이 허용되고, 몇 시간 안으로 다시 밑으로 내려와 하산해야 한다는 식의 등산객 수칙 사항을 보고는 정말로 학을 뗀 적이 있다.
"히말라야도 몇 번씩 갔다 온 사람이 왜 이렇게 빌빌대는 거죠?"
함께 동행하던 사람에게 결국 한 소리 듣고는 나도 한 마디 덧붙였다.
"히말라야는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도 되는 산이거든요. 거긴 가면서 음료수 파는 데도 있고 잠잘 곳도 있고 화장실도 있다고요!!"
사실 한라산은 히말라야를 하나로 압축해 놓은 듯한 그런 산이다. 정상 부근에 병풍처럼 둘러싼 절경은 여기가 정말로 한국인가 싶을 정로도 감탄을 자아낸다. 그 산 속에다 휴게소를 지었으면 좋겠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 자연의 경관을 즐기고 관조하는 여유 따위, 부실한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백록담 꼭대가까지 못 올라갈 것만 같다. 그렇다면 미술관 만을 위한 미술관은 또 무슨 소리인가. 이런 말 함부로 했다가는 욕 들어 먹기 십상이지만... 사실 구겐하임은 내게 꽤나 불편했다. 그새 내가 너무 메트 미술관에 익숙해진 탓일까. 여기 와서 매일 같이 거기에 갔으니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마침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오로지 그들이 전시해 놓은 것 외에 구경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 우선 실망스러웠고, 편히 앉아 작품을 볼 수 있는 벤치조차 변변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나선형 구조의 미술관 건축물에 대해 사람들은 칭송을 아끼지 않지만 솔직히 그런 미술사나 건축학적 개론보다 내게는 그 경사로가 어지러울 뿐이었다. 겨우 어른 허리 보다 약간 높은 난간 밖으로 사람이라도 추락하면 어쩌나 싶어 내 마음이 다 조마조마 했다. 그걸 온종일 신경 바짝 세우고 지켜봐야 할 경비원들 신세도 참 딱하지 않은가.
아쉽지만 사진 촬영도 일체 금물이었다. 관람객에게 허용된 범위는 일층에서 미술관 건물을 찍는 것 정도였다. 로비에 피카소 조각품이 딱 한 점 놓여 있었는데 언감생신 그 또한 카메라 렌즈에 담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이렇게 깍쟁이 같은 미술관이었다니! 서비스는 아주 야막하면서 챙길 건 다 챙기는 그런 식당 같은 미술관이라고나 할까.
전시 내용 중 피카소 작품 외에 선심 쓰듯 칸딘스키 작품이 3점 걸려 있었는데 그 옆으로 카페테리아가 바로 연결되어 있는 걸 보고는 또 한번 휴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도 남녀공용 유니섹스라 하니 안에 들어가서도 어쩐지 불안하고. 피카소의 좋은 작품들을 많이 가져다 놓았느냐하면 그것도 약간 아리송하고....명품관에 들어가면 넓은 공간에 물건 몇 개만 전시되어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왠지 위축되고 춥고 어지럽고 다리는 아프고...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계속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 누가 좋다 하겠는가. 사실 이번 전시가 내게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나름대로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의외의 구석이 있었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볼 게 별로 없으니 생각이라도 많이 해야 할터..
한번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잇따라 매듭이 풀리고 빗장이 벗겨지고 열쇠 구멍들이 돌아갔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거! 내가 이걸 찾아 여기까지 온 거야! 속으로 거듭 탄성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여행 노트에 스쳐가는 생각들이 달아날까 빠르게 메모를 했다. 물론 여기서는 다 밝힐 수 없는 내용들, 작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과 아이디어 같은 것들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반 흥밋거리가 되지 않지만 본인에게만은 하늘이 열리는 듯한 그런 자각들. 내가 너무 부풀려서 표현을 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에 몰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뻥쟁이가 될 때가 간혹 있으니까. 아무튼 어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작업실에 파묻히고픈 마음만이 간절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피카소는 나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생각이 전혀 딴 데 가 있으니 피카소의 큐비즘이니 신고전주의 같은 게 눈에 들어올 턱이 있겠는가.

[센트럴 파크89번가에서 바라본 맞은편 스카이라인]

[센트럴 파크에서 조깅하는 사람들: 뉴욕에는 사시사철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다.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에 짧은 소매 반바지 차림으로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 살갗이 다 덜덜 떨릴 지경이다. 실제로 12월 31일 새벽 0시를 기해 센트럴 파크에 모여 거의 다 벗은 차림새로 함께 조깅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저러다 정말로 쓰러지겠는걸. 심장마비라도 오면 어쩌지.' 싶은 나이 많은 노인이나 뚱뚱한 중년부인들, 바싹 마른 아가씨들도 간혹 눈에 띄어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현대인이 집단적으로 앓고 있는 건강 걱정 증후군에 관해서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뉴욕에 오면 절로 떠오를 수 밖에...'러너스 하이'라는게 과연 뭔지 약간 궁금해 지기도 하고, 헉헉헉...]
구겐하임에서 나온 뒤 건너편에 있는 센트럴 파크로 들어가서 83번가까지 걷기 시작했다. 도착하자마자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거리에 다시금 투명한 햇살이 가득하다. 가을 단풍이 무르익은 센트럴 파크의 풍광은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근사하다. 형형색색의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을 밟으며 천천히 걷다보니 한참 전에 개봉했던 리차드 기어와 위노아 라이더 주연의 '뉴욕의 가을' 영상 속으로 빨려든 듯 착각마저 들었다. 영화와 현실의 차이점에 관해서 애써 논할 필요는 없다. 그냥 이렇게 뉴욕 거리의 가을을 즐기기만 하면 될 뿐이니까.

[메트 미술관 이집트 관에서 바라본 센트럴 파크 가을 풍경]
구겐하임에서 메트까지는 고작 6블록 떨어져 있을 뿐이다. 미술관 앞 층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해바리기를 하며 즐거운 오후 한때를 보내고 있고, 계단 바로 아래에서는 재즈 싱어들의 공연이 한창이다. 모두 나이 지긋한 흑인 남자들이었는데 주축 멤버로 보이는 할아버지뻘 되는 남자가 노래를 부리고 다른 사람들은 신나게 몸을 흔들며 화음을 넣고 있다. 더블베이스 반주가 깔린 비밥 스타일의 노래들은 아무 데에서나 쉽게 맛볼 수 없는 흥을 돋우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킨다. 거리의 소음 조차 자연스레 배경 음악으로 녹아든다.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서둘러 끝마쳐야 할 숙제도 없는 한가로운 오후였다. 먼 이국에서 온 여행자는 가방을 내려놓고 층계 한쪽에 가만히 주저 앉았다. 살갗을 간질이는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음악에 취해 한동안 움직일 줄을 몰랐다.

[메트 앞에서 공연하는 재즈 가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