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라일락> 유채, 1914, 마티스 (2012)
11월 13일 화요일.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저녁도 못 먹고 그대로 쓰러졌다. 오늘 아침, 서울에서 가져온 음식들은 이미 진절머리가 나 있었다. 미술관 가는 길에 42번가에서 내려 주위를 한참 돌며 아침 먹을 곳을 찾다가, ‘결국 여기밖에 없군.’ 하며 맥도널드 문을 밀고 들어갔다.
여행 중에는 맥도날드가 나에게 일종의 응급 대피소 같은 장소다. 여행기 ‘로마에서 길을 잃다’를 쓰기 위해 로마에서 한동안 머물렀을 때도, 나는 맥도널드를 중심으로 시내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었다. 결코 맥도널드에 열광하는 맹신자는 아니다. 다만, 음식이나 분위기에 다소 까다로운 내게 최선의 선책은 아닐지 몰라도 확실한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맥도널드 메뉴판은 어느 나라를 가나 거의 비슷하지만, 안에 든 내용물은 모두 같지 않다. 오늘 아침은 가장 푸짐한 빅 브렉퍼스트를 시켰다. 팬케이크 세 장의 크기를 보고, 한국 맥도널드가 조금 야박했던 건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커피는 모든 사이즈가 1달러라 제일 큰 걸 시켰다. 위층 테이블로 올라가 한참 먹다 보니, 혼자 너무 많이 먹는 건 아닌가 자책이 들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며 ‘저렇게 많이 먹으면서 어쩌면 저토록 마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맙소사, 조만큼밖에 안 먹으면서 어떻게 저토록 살이 찔 수 있지?’
기름에 바싹 튀긴 포테이토 케이크, 달걀 두 개와 비프 페리가 들어간 머핀, 달콤한 시럽까지 끼얹은 팬케이크를 단숨에 절반가량 먹었다. 남은 반은 남들 눈치도 보이고, 솔직히 소화할 자신도 없어서다. 미술관에 들어가면 언제 시간이 흘러가는지 몰라 끼니를 놓칠 때가 많다. 산악인이 히말라야 같은 고봉에 오르며 마지막 식사라 생각하고 잔뜩 먹어두는 것처럼, 나도 아침을 든든히 챙겼다.
다행히 나에게는 하루 두 끼가 딱 적당하다. 몸 상태가 그러니 아침에 많이 먹어도 체중에는 큰 영향이 없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이고, 다른 잔병도 없는 상태다. 그렇지만 이제 뼈에 바람이 숭숭 드는 나이를 생각하면, 커피는 조금 줄여야 할 것 같다.
요즘에는 블랙커피보다 우유나 크림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려 한다. 나이 듦이란 결국 이런 의미다. 음식을 먹을 때 점점 조심하게 되고, 매일 챙겨 먹어야 할 약이 하나씩 늘어난다. 젊을 땐 여행 중 아무리 강행군을 해도 밤늦게까지 쌩쌩했는데, 이제는 숙소에 겨우 들어와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여행도, 노는 것도, 공부도, 무엇이든 가능한 젊음일 때 마음껏 누리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다면 나이 들어서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인생을 관조하며 느긋하게, 온실 속 화초처럼 지내며 만보기나 차고 다니라는 건가. 아이고, 그런 성경 말씀 같은 소리는 사양이다. 현실의 이중성은 전혀 다른 설정과 적응 능력을 요구한다. 갱년기가 오고, 제2의 사춘기 같은 증세가 겹치면 삶의 중심축이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지난 시절을 반추하며 ‘젊었을 때 나는 어쩌구저쩌구’ 같은 말만 늘어놓으면서, 그 시절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오만을 지금 또 다른 젊음의 오만 속에서 발견하고 진저리나 쳐야 한단 말인가. 아니지. 그럴수록 더 열심히 여행하고, 꿈꾸고, 공부하고, 사랑하며, 온몸에 오만의 향기를 친친 감고 다니는 것이 가장 성스러운 생활 태도다.
자, 정신 건강을 위한 비타민 하나 꿀꺽 삼키고, 다시 일어나 구겐하임으로 출발!

사진<구겐하임 미술관> (2012)
산을 위한 산이 있고, 미술관을 위한 미술관이 따로 있다. 제주도의 한라산은 정말 산만을 위한 산이다. 정해진 시간까지 마지막 휴게소에 도착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고, 몇 시간 안에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등산객 수칙을 보고 진땀을 뺀 적이 있다.
"히말라야도 몇 번씩 갔다 온 사람이 왜 이렇게 빌빌대는 거죠?"
아침 일찍 산행길에 나섰던 사람이 타박하듯 말했다. 나도 질세라 한마디 덧붙였다.
"히말라야는 올라가다가 힘들면 쉬엄쉬엄 가도 되는 산이거든요. 중간에 음료수 파는 곳도 있고 잠잘 곳도 있고 화장실도 있어요. 여긴 거의 극기 훈련이 따로 없군요."
한라산은 히말라야를 하나로 압축해 놓은 듯한, 한반도 최고봉 중 하나인 순상화산이다. 아래쪽은 경사가 완만하지만 위로 갈수록 지형이 가팔라진다. 정상 부근에서 병풍처럼 펼쳐진 절경을 보면, ‘여기가 한국 맞나?’ 싶을 정도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설악산 숲길에 작은 식당이나 휴게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체력이 부실한 나는 험한 산행 중 자연 경관을 즐기고 관조할 여유를 거의 누릴 수 없었다. 그때는 운좋게 가능했지만, 이제는 죽을 때까지 다시 백록담 꼭대기까지 못 올라갈 것만 같다.
그렇다면 미술관만을 위한 미술관은 또 뭐란 말인가. 함부로 말할 순 없지만, 사실 구겐하임은 내게 꽤 불편한 장소였다. 그새 메트 미술관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 수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 매일 출근 도장 찍듯 메트에 다녔으니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구겐하임에는 마침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 외 볼거리가 거의 없고, 편히 앉아 작품을 볼 벤치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나선형 건물은 예술적으로 뛰어난 건축물이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전시 공간으로 이어진 경사로가 어지러웠다. 겨우 어른 허리 높이 난간 밖으로 사람이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해 하루 종일 두 눈 부릅뜨고 경비를 서야 하는 직원들의 모습도 딱해 보였다.
사진 촬영도 금지였다. 1층에서 건물 외관을 찍는 정도만 허용되었다. 로비에 피카소 조각품이 한 점 있었지만, 그마저 카메라에 담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깐깐하게 자기 챙길 것만 다 챙기는, 그런 깍쟁이 미술관이었다.
전시장에는 피카소 외에 선심 쓰듯 칸딘스키 작품 3점이 있었는데, 그 옆으로 바로 카페테리아가 연결되어 있는 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실도 남녀공용 유니섹스라 안에 들어가 문을 꼭 잠갔지만 불안했다. 피카소 작품이 많았느냐 하면, 그것도 약간 아리송했다. 백화점 명품관처럼 넓은 공간에 귀한 물건 몇 개만 놓인 느낌? 위축되고, 춥고, 어지럽고, 다리도 아프고….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계속 불평만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이번 구겐하임 전시는 의외로 나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별로 볼 게 없으니, 머리라도 열심히 굴려야 했던 모양이다.
한번 빗장이 풀리기 시작하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매듭이 풀리고, 분합문이 열리고, 열쇠 구멍이 하나씩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여행 노트에 스치는 생각을 빠르게 적었다. 여기서는 밝힐 수 없는 내용, 작업에 대한 깨달음과 아이디어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것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하늘이 열린 듯한 자각이었다. 글쓰기에 몰두하면 가끔 엉뚱한 상상이 떠오를 때도 있으니, 널뛰는 생각들을 다스리듯 펜 끝을 단속하며 계속 메모를 이어갔다.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작업실에 파묻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번 여행에서 피카소는 내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생각은 벌써 다른 데로 가 있으니, 피카소의 장식적 큐비즘이나 신고전주의가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사진 <센트럴 파크89번가에서 바라본 맞은편 스카이라인> (2012)

사진 <센트럴 파크, 조깅하는 사람들> (2012)
뉴욕 거리에는 사시사철, 낮이든 밤이든 조깅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꽁꽁 언 한겨울에도 짧은 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내 몸이 절로 떨린다. 2005년 12월 31일, 새해맞이 축제를 보러 나갔을 때였다. 불꽃놀이 직후 센트럴 파크에서 거의 옷을 다 벗다시피 한 차림으로 새해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었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떡하지. 심장마비라도 오면 어쩌지. 나이 많은 노인, 뚱뚱한 중년 부부, 변호사처럼 생긴 젊은 남자, 깡마른 아가씨들까지 쉼 없이 달린다. 뉴욕은 현대인이 집단적으로 앓고 있는 ‘건강 걱정 증후군’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도시다. 하지만 동시에 ‘러너스 하이’가 어떤 느낌일지 어느 정도 궁금해지기도 한다.
헉, 헉, 헉….
구겐하임에서 나와 센트럴 파크로 건너가 83번가까지 걸었다. 도착하니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거리에 투명한 햇살이 가득했다. 가을 단풍이 무르익은 센트럴 파크 풍광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근사했다. 형형색색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걷다 보니, 한참 전에 개봉했던 리차드 기어와 위노아 라이더 주연 ‘뉴욕의 가을’ 속으로 빨려든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영화와 현실을 비교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뉴욕 거리의 가을을 즐기면 될 뿐이었다.

사진 <메트 미술관 이집트 관에서 바라본 센트럴 파크 가을 풍경> (2012)
구겐하임에서 메트까지는 6블록 떨어진 거리였다. 미술관 앞 층계에는 사람들이 햇살을 즐기며 오후를 보내고, 계단 아래에서는 재즈 싱어들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모두 나이 지긋한 흑인 남자들이었다. 주축 멤버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면 다른 사람들은 신나게 몸을 흔들며 화음을 넣었다. 더블베이스 반주가 깔린 비밥 스타일의 노래는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없는 흥을 돋우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거리의 소음조차 자연스럽게 배경음으로 녹아들었다.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숙제도 없는 한가로운 오후였다. 먼 이국에서 온 여행자는 가방을 내려놓고 층계 한쪽에 주저앉았다. 살갗을 간질이는 가을 햇볕을 만끽하며, 음악에 잠겨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사진 <메트 앞에서 공연하는 재즈 가수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