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뉴욕의 쓰레기들, 어제 오전 모습> (2012)

 

아침에 뉴욕 거리를 걷다 보면 절로 고개를 젓게 된다. 많아도 너무 많다. 바로 쓰레기들이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쏟아낸 흔적들. 어제도 이렇게 버렸는데, 오늘은 더 큰 쓰레기 봉지가 거리 곳곳에 쌓여 있다. 최대한 많이 벌고 많이 쓰자! 이런 모토로 살는 현대인들이라 해도, 이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미국인들이 마구 소비하고 내다 버린 쓰레기들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이 가라앉지는 않겠지만, 팽창을 멈추지 않는 거대한 자본주의가 미국을 통째로 깔고 앉아 숨통을 조이는 듯하다.

 

사진 <뉴욕의 쓰레기들, 오늘 오전 모습> (2012)

 

아침마다 거리의 그늘진 모습을 연출하는 쓰레기 더미들은 뉴욕 도시의 작은 단면에 불과하다. 쓰레기의 부정적 면만 부각하는 것도 낯선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쓰레기는 한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런 모습, 삶의 흔적들이 모여 결국 시대의 화석대를 이루고 역사의 타임캡슐이 되기도 한다. ‘History comes to life’, 이 도시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일상이 역사가 되는 순간들을 수시로 목격할 수 있다.


어제는 소호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한 소규모 갤러리에서 샤갈 그림을 직접 판매하는 걸 보고 적잖이 놀랐다유화로 그린 작품의 크기는 50호쯤 되어 보였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걸려 있었다. 마치 화랑의 주인공처럼 정면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작년 겨울 서울 시립미술관 샤갈 전에서 전시된 그림과 흡사한 면모를 지닌 작품이었다. 회색빛이 감도는 거리 풍경, 마을 사람들, 세로로 긴 화면 구성. 그때 그 그림의 주인공은 십자가를 멘 예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호의 작은 갤러리에서 만난 샤갈 그림은 시립미술관에 걸려 있던 그림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작품성과 예술적 성취도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저거 진짜 샤갈이죠?"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다시 돌아서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백인 여자에게 물었다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었지만,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이렇게 작은 화랑에서 샤갈의 진품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 그럼요. 샤갈 맞아요.” 여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서 진짜로 파는 거예요? 샤갈 그림을?”


맞아요. 정말로 파는 거예요.”


여자의 대답에 내 눈은 더욱 동그래졌다.


혹시 가격은 얼마나 돼요?”


여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파이브 포인트 밀리언이에요.”


밀리언이란 단어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가격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거래되는 액수가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갤러리 밖으로 나온 뒤에야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포인트는 뭐지?’


파이브 포인트 밀리언이라는 말에서 중간의 포인트가 이해되지 않았다. 마침 지나가던 백인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파이브 포인트 파이브를 줄여 그렇게 말한 것 같다고 그녀가 설명했다.

, 그 샤갈 그림이 5.5밀리언 달러에 거래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5? 50? 500? 숫자 감각에 둔한 내 머리로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 당시 환율로 치면 대략 60억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소호에 있는 다른 화랑에 들어갔더니 남자 큐레이터가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전시 작품에 관해 이리저리 설명해 주었다. 필요하면 작품 가격이 적힌 리스트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마도 나를 미술품 컬렉터로 여긴 모양이었다.


젊어서는 이런 데 오면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이제는 고가의 그림 한 점쯤은 구매할 경제적 여력이 있는 연배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만큼 내가 늙어 보인다는 뜻일까. 어쩌면 경제력이 높아진 동양인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예전보다 훨씬 우호적으로 바뀐 탓일지도 모른다. 가끔 이곳 화랑을 찾아와 직접 작품을 구매해 가는 한국인이나 일본인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말로도 들렸다.


사진 <뉴욕의 어느 화랑에서, 작품 목록 안의 로스코와 수틴을 만나다> (2012)


어제에 이어 오늘도 미술관 순례에 나섰다메디슨 에비뉴 76번가를 지날 무렵쇼윈도에 근사한 미로 그림을 걸어 놓은 갤러리를 발견하고는 무조건 안으로 들어갔다뉴욕에서는 길거리 화랑에 들어가려면 대부분 밖에 달린 초인종을 눌러야 한다그러면 안에서 누군가 스위치를 누르는 찌잉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딸깍 열린다이내 문이 다시 잠겨 버리는 시스템이라 타이밍을 잘 맞추어 손잡이를 잡아당기거나 문을 안으로 밀어야 한다.


화랑 안에 들어가면 저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며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고 말한다괜히 쭈뼛거릴 필요는 없다물론 예의 차원에서 옷은 조금 깨끗하게 입는 편이 좋을 것이다하지만 여행 중에 옷차림에까지 큰 신경을 쓸 여유는 없다청바지에 패딩 점퍼운동화어깨에 둘러멘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그런 차림의 나에게까지 적극적으로 말을 건네는 걸 보면 아무래도 요즘 뉴욕 화랑가의 경기가 썩 좋지 않은 모양이다어쨌거나 어제도 소호에서 몇 번 비슷한 대접을 받은 터라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내 표정 또한 한결 느긋해졌다.

 

76번가 그 고급스러운 화랑에서는 Pablo Picasso 그림을 다섯 점이나 소장하고 있었다마크 로스코 Mark Rothko, 레제 Fernand Léger, 마그리트 René Magritte, 후안 미로 Joan Miró, 웨인 띠버드 Wayne Thiebaud 등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작가들의 작품이 벽에 주르륵 걸려 있었다.


이층에도 작품이 있다고 해서 올라갔더니, 2층 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자 직원이 전시 작품들의 가격 정보가 들어 있는 카탈로그를 건네주었다.


나는 한쪽 소파에 앉아 그것을 들여다보며 필요한 내용들을 메모하기 시작했다미술책에 나오는 유명 작가들의 리얼한 진면목(?)을 그대로 지나칠 수야 없었다그런데 베껴 써야 할 내용이 꽤 많았다이걸 무슨 수로 한 번에 옮겨 적나 난감해하던 차에마침 데스크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절묘했다아마도 나는 전생에 스파이거나 첩보 공작원이었을지 모른다보통 때는 버걱거리던 머리가 그 순간 쾌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했으니까.


지체 없이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조금 손이 떨렸다약간의 흥분결코 나쁘지 않았다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나를 밀어붙였다그다지 두꺼운 카탈로그는 아니었지만그 안에 들어 있는 작품 정보를 한꺼번에 카피하는 방법은 그 수밖에 없었다.


카탈로그는 활짝 펼칠 수 없게 제본된 것이었다나는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한 손으로는 이쪽 페이지를 누르고오른쪽 발끝으로는 다른 쪽 페이지를 눌러 고정한 다음 한 장씩 넘겨가며 디카로 펑펑 찍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 긴 시간이 흐른 건 아니었다재빨리 셔터를 누르는 동안 1층에서 직원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찻잔 부딪치는 소리복사기가 돌아가는 기계음 같은 것도 들린 듯했다여직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가까워졌다아무래도 곧 위로 올라올 것만 같았다어쩌면 이미 층계참까지 올라온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아직 수집해야 할 정보들이 남아 있었다여기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한순간 스쳤지만 포기하지 않았다중요한 것들은 늘 가장 평범한 얼굴로 어딘가에 숨어 있지 않은가단 하나의 키워드 같은 것생의 어떤 암시 같은 것이대로 지나치면 끝내 섭섭해질 것이 분명한 바로 그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다만 직감이었고나는 그걸 맹목적으로 따를 뿐이었다그 순간 나는 한 사람의 목격자이자 수행자였고동시에 사악한 염탐꾼이기도 했다그것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역할이었지만어쩐지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임무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욱 속도를 올리며 셔터를 눌러댔다.

조금만 더조금만 더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카메라까지 통째로 빼앗기지는 않겠지오로지 믿는 구석이라고는 그것 하나뿐이었다찰칵한 장 넘기고 찰칵또 한 장 넘기고또 넘기고또 넘기고


마침내 임무 완성!


사진 <파블로 피카소 작품 목록이 들어 있는 또 다른 페이지> (2012)

 

피카소 작품에는 확실히 ‘0’이 많이 붙어 있었다. , 이게 몇 개야? 하나, , , 그런데 내가 뭐 한 거지! 겨우 이런 걸 찍으려고 그랬단 말이야? 그렇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누가 감히 뉴욕 화랑의 심장부에 들어가 이런 희귀한 사진을 찍어 올 수 있었겠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뉴욕 거리의 쓰레기에 관한 이야기다.

아침마다 길모퉁이에 쌓이는 쓰레기 더미는 이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생산해내는 이미지의 잉여, 즉 과잉의 또 다른 얼굴처럼 보인다. 뉴욕 거리의 쓰레기 더미와 현대 미술 작품 사이에는 어쩌면 어떤 은밀한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메디슨 에비뉴의 갤러리를 나온 뒤, 나는 곧장 휘트니 미술관으로 향했다.


현대 미술의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그곳에서는 마침 웨이트 가이튼 Wade Guyton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아티스트는 보통 무언가를 표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작가들은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지우거나 부정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웨이드 가이튼이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하는 작가처럼 보였다.


웨이드 가이튼은 미국 인디애나에서 태어나 테네시에서 성장했고, 뉴욕 헌터 대학에서 로버트 모리스 밑에서 수학했다. 지금 그의 나이는 마흔. 그를 과연 청년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미술사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여든셋까지 작업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역시 노년에 이르기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진 오늘날이라면 가이튼 역시 앞으로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더 작업실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마흔의 나이에 휘트니 미술관에 입성한 작가를 보며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부러움이라기보다는 연민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제 그는 앞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작업실에서 고독한 내면의 순간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작품과의 끝없는 씨름. 끝을 알 수 없는 긴 노동의 흔적들. 긴 수명은 때때로 축복이 아니라 또 다른 숙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림 <웨이드 가이튼 'Untitled'> 2012

 

그의 작품은 대개 ‘X’라는 단순한 부호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과거의 화가들은 손과 붓으로 세상을 묘사했다그러나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화가들은 점차 기계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카메라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감각과 상상력을 앞세워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인상주의의 색채 실험입체파의 공간 해체초현실주의의 상상력 등 20세기 현대 미술은 그렇게 탄생했다.


웨이드 가이튼은 그 흐름을 다시 뒤집는다그는 붓 대신 컴퓨터와 프린터를 사용한다잡지나 신문에서 가져온 이미지 위에 기계적으로 ‘X’를 찍어 캔버스에 출력한다때로는 프린터의 오류나 잉크 번짐까지 그대로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현대인은 컴퓨터와 프린터를 통해 하루 종일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다광고뉴스사진화면 속 데이터들그 양은 이미 인간의 감각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넘쳐난다가이튼은 그 과잉 이미지를 끌어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시 배열한다일종의 이미지 재활용이자 해체 작업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업은 어딘가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나 앤디 워홀의 팝아트와도 닮아 있다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끌어와 새로운 맥락 속에 놓는 방식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가이튼의 관심은 소비문화의 화려함보다는이미지가 과잉 생산되는 시대의 공허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의 ‘X’는 단순한 삭제 표시가 아니다어쩌면 그것은 현대 사회의 과잉 이미지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표시혹은 지워진 자리 위에 남겨진 흔적일지도 모른다기계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화면이지만그 안에는 묘한 고독과 공허가 담겨 있다.

 

그림 <웨이드 가이튼 'Untitled'> 2012

 

생각해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풍요롭지만 동시에 공허한 나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문득 폴 오스터의 소설 속 인물들이 떠올랐다. 우연의 음악의 남자는 끝없이 차를 타고 달리고, 달의 궁전의 젊은이는 정처 없이 뉴욕 거리를 떠돈다.

 

그림 <잭슨 폴락>]

 

회화에서도 비슷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잭슨 폴락의 화면에는 우주적 규모의 고독이 담겨 있고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는 거대한 도시 속 인간의 왜소함과 고립이 스며 있다.


휘트니 미술관에서 마주한 웨이드 가이튼의 시리즈 속에서도 비슷한 감각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지워버린 뒤 남겨진 자리텅 빈 흔적그 위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표시.

나는 그 이미지 위에 조심스럽게 한 단어를 올려놓는다.


실종.


그림< 에드워드 하퍼, 유채, Office in a Small City, 1953>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정작 인간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거 뭐야? 누가 그린 거야?” 친구가 묻는다.

, 그 드로잉? 피카소 거지. 사인을 보고도 모르겠어?” 내가 대답한다.

피카소? 진짜 피카소?” 친구가 눈을 크게 뜬다.

그럼. 가짜 피카소도 있니? 난 뭐든 가짜는 안 키워.”


토마토 주스를 홀짝이며 턱을 높이 들어 올린다.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그러나 예술이 본업인 사람들의 일상은 엄혹하기 그지없다. 이 세상에는 눈이 먼 돈들이 넘쳐나지만, 현실의 민낯은 불공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 구조 안에서 이름 없는 예술가들 역시 사회 구성원이자 생산의 주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슬픔과 외로움을 기억한다.


나도 그 정도는 그릴 수 있어. 내 능력이 그들만 못할까? 노력하면 보여줄 수 있어복수할 거야!”


이런 생각을 곱씹으며 오늘도 작업에 몰두하는 무명 작가들이 많다. 어쩌면 그런 마음 하나로, 배가 고파도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X’라는 기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플랫폼과 자본의 언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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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 2012-11-17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60억 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