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 쫌 아는 10대 - 데카르트 vs 레비나스 : 내가 먼저일까 친구가 먼저일까 철학 쫌 아는 십대 1
이재환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소년 도서가 때론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에서는 자아(주체)가 중요한지, 타자가 존중되어야 하는지를 문제로 다루면서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검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이 예로 든, ‘죄수의 딜레레마‘는 개인(주체)을 우선시하는 사고 방식과 타인을 긍정하고 소통하는 사고 방식이 어떤 차이를 낳게 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타인과 협력하면서 소통하고 살아가는 것이 역설적으로 주체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4-04-30 2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인가요. 리뷰를 읽으니 성인이 읽어도 좋은 책 같습니다.
마루님, 내일부터 5월입니다. 좋은 일들 가득한 한 달 되세요.^^

마루☆ 2024-04-30 23:28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청소년 대상인데 성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 같네요. 서니데이님 말씀대로 5월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 보겠습니다~^^
 

남이 나에게 무언가를 대가로 지불할 것이라는 기대 없이 그저 타자를 위해 헌신하는 자세. 그게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신의 목소리이다. 그것이 타자의 목소리이다.

내 안에 신성이 있다는 것을 나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남의 신성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냥 지적인 추론으로 사랑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양심의 소리는 특정한 내용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윤리적인 선한 내용을 강요하는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양심의 소리는 무언의 소리로서(SZ., 273쪽) 아무 내용도 전달하지 않는다. - P128

이렇게 양심의 소리를 원하고 선택하는 것을 하이데거는 "결단"이라고 부른다. 양심의 소리를 결단할 때 그는 비로소자신의 가장 고유한 실존 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SZ., 288쪽) " - P128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인 존재는 주체가 아니라, 주체에 의해 은폐된 존재이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기존의 형이상학이 주장해 온 "주체 중심적인 철학"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 P129

이와 같이 레비나스의 경우, 불안과 공포는 모두 외부적인 어떤것에서 비롯되고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이다. 또한 불안과 공포는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나의 본래적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하는 나, 고통스러워하는 구체적인 나를 드러낼 뿐이다. - P140

오히려 타자에 의해서 일깨워진 주체가 그것을 자신의 존재로 받아들이는것이다. 왜냐하면 타자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 곧바로 자신의존재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 P139

결국 레비나스가 주장하는 진정한 주체는 타자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떠나는 adieu 자이며, 이때 타자 안에서 무한자인 신을 발견하고,
신을 향하는a Dieu 자를 뜻한다. - P1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런데 현존재로 하여금 일상적인 비본래성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하고 본래적인 존재로 돌아서게 하는 것은 "죽음에의 존재"를 결단할 때 들려오는 음성이다. 이 음성을 하이데거는 "양심의 소리"라고 부른다. - P1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은 비본래적 삶에 빠져있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일상인을 멱살을 잡아 끌고 죽음 앞에, 무의미함 앞에 데려다 준다.

그리고 물음을 던진다. 왜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정말 죽을 때까지 그렇게 존재자가 다 떨어져나가도록 할 ㅣㄴㄱᆢㄴ은%6

불안은 일상성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현존재가 느끼는 확실성과친숙함도 파괴해 버린다. 이와 같이 불안은 존재자 전체와 인간 현존재 모두를 무의미 속으로 미끄러져 사라지게 한다 - P111

불안은 익숙했던 세계의 의미 연관성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렇게 존재자 전체를 거부하고 사라지게 하는 것을 하이데거는 "무화Nichtung"라 부른다. 불안이 무를 드러내고, 무는 존재자 전체를 무화시키는 것이다. - P111

이러한 불안과 무를 통해 현존재는 일상적 자신으로부터 본래적인 자신으로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불안과 무는 인간 현존재가 자신을 찾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경험이라고 볼 수 있다. - P112

그렇다면 불안은 언제 인간 현존재에게 찾아오는가?
그것은 일상성 속에서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현존재가 자신이 "죽음의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이다. - P1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는 존재의 시작과 끝에서 울려퍼지며, 인간을 불안하게 한다.
‘무화‘에 대한 염려가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이다.

누구나 ‘무화‘하고 싶지 않다. ‘나‘의 존재 의미를 뚜렷한 건축물로 세우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에.. 그렇게나 빨리.


그의 탄생보다 앞선다. 이처럼 한 인간의 존재 안에는 이미 그의 부모, 부모의 부모 등 존재의 메아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메아리들 중 어떠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는 비로소 그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런 존재의 메아리를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근거"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근거는 인간 현존재가 선택하거나 지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근거들이 그를 구성하며 이 근거에 대하여 그는 무력하다. - P105

인간 현존재는 탄생 이전의 존재의 메아리와 죽음으로부터 들려오는 조종의 메아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며 그의 존재 안에는 항상 이러한 "무"의 메아리가 맴돌고 있는 것이다. - P106

이렇게 두 "끝"으로부터 들려오는 "무"의 메아리가 인간 현존재를 불안하게 하며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인간 현존재의 존재를
"염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SZ., 285쪽) - P1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