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리원 프로젝트 - 노력으로 시간을 채워 나를 브랜딩하는 방법
김현 지음 / 북스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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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라는 착각, 한 사람의 재능보다 노력이 99프로라는 미덕은 양극화된 현대 사회에 신화임이 깨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인싸맨 김현이라는 40대 초반의 한국 남성은 한 권의 책으로 '노력'이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프랜차이즈 실무 경험을 쌓았고 현재는 마케팅 회사를 창업해 예비창업자와 가맹본부를 위한 틈새시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2022 신지식인에 선정될 정도로 업계 안팎에서 인정을 받아온 그는, 유투브 인스타그램 등으로도 자신의 영역을 국한하지 않는 행보를 보이며 바쁜 시간을 쪼개어 집필을 해냈다고 하니 동년배로서 리스펙하게 되었다.

사실 자기계발이란 현재의 자리에서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 적성을 고려한 제2의 삶을 끊임없이 상상하는 일이다.

당장 몇 년 후가 보이지 않았으며 가진 무기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노력했고 맨땅에 헤딩해 가며 온갖 시행착오를 겪었다. ...여러분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공감해 주는 누군가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완벽이라는 화려함을 좇는 삶은 힘들며 완성 또한 없지만 그 과정에서 웃고 때로는 슬퍼하는 삶을 살아보면 어떠하냐고, 마음속에 콘텐츠를 찾아 자기다운 삶을 누리라며 친구로서 Only one이 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학력도 집안도 내세울게 없어, 일찍부터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도전/가능성/차별화/실행을 통해 거듭날 수 있다고 그만의 팁을 공유하고 있는데, 경단녀인 나로서는 같은 연령대이긴 하지만 백프로 받아들이거나 또는 아예 받아들일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자신을 가다듬고 일에 매진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공감했다가, 번아웃을 겪으며 쉼을 온전히 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부분에서 그래 그거다라고 공감했더랬다.



아무것도 모르고 20대에 사회생활의 기본기를 갖추고, 30대 초반 자신의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공부하며 정진해갔고, 비로소 30대 후반 그동안의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전문성으로 평생의 업을 찾아 퇴사를 했던 10 여 년간의 로드맵이 그려졌다고 한다. 나의 토양을 단단하게 다지며 넓히며 손안에 쥐어진 '씨앗'을 찾았다고 나를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가장 먼저라고.



그는 중견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업무를 하던 당시, 자신의 과오를 돌아본다. 정체된 업무를 하고 있는 것, 정체된 생각은 정체된 행동으로 이어져 결국 그 사람을 정체된 사람으로 만든다. 업무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공간과 환경에 익숙함에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던 과거를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동기화 하고 있는가?

새로운 업무 환경에 적응하고 무섭게 변하는 회사 안팎의 시스템에 업데이트를 수시로 하고 있는지, 명사형의 한계를 벗어나 동사형, 즉 자신만의 액션플랜을 짜고 그것을 실행을 옮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리더가 될 것인가 단순히 상사가 될 것인가?

자신의 실무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팀을 이끌 것인지 본인이 잘 하는 것보다 구성원을 다독여 조직이 일이 잘 할 수 있도록 이끌 것인가?

진정성이 있다는 것은 나 스스로 떳떳한가?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가?

성공하지 못한 결과에 대해 낙심하지 말며, 성공했다고 너무 방심하지도 말라...






결과적으로 그 말은 거침없이 달리던 나에게 브레이크가 되어 주었다.

내가 나를 넘어서는 방법 중에서


언제나 일정하게 좋은 평판을 갖지 못했을 때도 그 자신은 마음속의 지나친 의무와 책임감을 내려놓고 가면을 내려놓고 재정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로일잘러의 비밀, 실무 경험, 일의 퍼포먼스, 명확한 마무리를 위한 보고 등 현실적인 조언을 받고자하는 사회초년생들에게 뿐아니라 중장년 현직에 근무하는 직장인들 추후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하고자하는 분들까지 고려하여 각 니즈에 맞는 부분을 발췌해 읽어도 좋고, 전반적인 마음가짐 팀원으로서 미래의 팀장이나 사업가로서의 태도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의도에 공감하는 분들도 읽으면 좋을 듯한 책이다.


우리의 인생은 이제 시작이고,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신을 믿는 것에서부터 그 삶은 시작된다.


​이 리뷰는 북스고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온리원프로젝트
#북스고출판사
#김현인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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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현대지성 클래식 4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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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중단편에서 죽음은 직간접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진 문제이다. 삶이란 반대편이 아닌 또다른 형태의 '죽음의 모습'이라는 인식이 처음에 어렵게 다가왔지만 문학작품이 아니더라도..우리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큰 충격과 함께,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하지 않게 된 주제이자 궁극이 아닐까 싶다. 톨스토이가 실제로 만난 적 있는 검사 이반 일리치 메치니코프가 질병으로 사망한 소식을 그리고 고인의 부인에게 들은 고인의 죽음에 관한 생각, 살아온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나눈 대화를 토대로 작품을 썼다는 당시 주변 증언들이 있다고 한다.

죽음을 두려워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을 무의미하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깨달음을 얻는 내용일 터,

사실 단편은 집약이기 때문에 작품해제에서 나오듯 '사건이 있고 고찰이 있을 뿐' 이야기 상 등장인물 관계나 사건의 발전의 일정한 체계(슈제트)는 자리 잡기 어렵다고 했다.


삶이 지속가능하다 생각하거나 아니면 아무 일이 없다고 무의식 속에, 우리가 죽음을 의식 속에 넣지 않듯이, 단편의 주인공들은 사회적 관성대로 삶을 소비하고 있다. 이반 일리치는

결혼 과정과 신혼 시절 부부의 애정이 끈끈했고 새 가구와 식기, 새 옷과 더불어 아내가 임신할 때까지 너무나 흥겹게...유쾌하게 지냈다. 삶의 본질로 여겼던 유쾌하고 가볍고 '고상한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방식' 을 유지하는 중에 부인이 임신으로 인해 '변덕스럽게' 삶의 즐거움과 품위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직무 공적인 일로 독립적 세계에 울타리를 치고 편안과 유쾌한 삶을 지키기 위해 카드 게임을 하거나 클럽에 다녔다. 첫 아이를 낳아 함께 육아를 하겠다는 여성의 외침은 그저 불쾌하고 무례하며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결혼 생활이라는 것을 집에서의 식사, 집안 관리, 잠자리 같은 편익...

여론이 요구하는 품위 있는 외양을 잘 맞춰주길 바랐다.

1886년 백년이 넘는 시간과 러시아라는 공간을 초월해 '결혼과 육아'란 것이 남성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며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지 이렇게 잘 표현한다는 것도 놀랍고, 부인의 생활방식이나 남편의 태도와 행동에 실망한 심리상태까지 묘사해내는데 작가의 훌륭함에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최근 나온 한국 영화 <아름다운 인생>처럼 가족에 헌신한 아내처럼, 가장인 이반 일리치는 가족의 재산과 품위를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성공을 바탕으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생명이란 존엄을 더이상 이어갈 수 없다는 것,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의지와 다르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주인공의 마음.


결혼... 그것은 아주 우연히 찾아왔고 이어진 실망 그리고 아내의 입냄새 그리고 관능, 가식! 그리고 이 쓸모없는 직무, 돈에 대한 집착, 그렇게 한 해, 두 해 , 십 년, 이십 년 그리고 똑같은 삶. 그리고 다음은 죽음. 산 위로 올라간다고 상상했지만, 사실은 완벽하게 일정한 속도로 내리막길을 간 거였다.

삶에 대한 회의,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 왜 고통 속에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 그가 익숙한 법정이라고 상상하고 재판이 진행 중이며 '잘못이 없다'라고 아무리 외쳐도 답을 찾을 수 없었고 정당한 삶이 이렇게 끝나야 하는가에 고통스럽다.

그의 일, 삶의 방식, 가족, 사회적 및 직업적 이해관계 역시 모두 거짓일 수도 있었다.

고통이 사흘째 지속되던 날, 죽기 한 시간 전 아들의 머리에 닿은 손 아들이 붙잡은 그의 손, 아내에게 미안함으로 단 한번의 손짓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를 괴롭힌 것은 자신이 가족들을 괴롭혔다는 사실이며, 갑자기 '진짜 방향을 인식'한 그의 삶은 습관적 두려움 대신 어떤 편안함으로 '이렇게 기쁠 수가!'하고 깨닫게 된 것이다.

죽음 대신에 빛이 있었다.

톨스토이가 그린 그의 깨달음엔 물론, 질병 뿐아니라 곁을 지키는 게라심이라는 인물에서도 기인한다. 아내와 아이들의 거짓말 가식이 기만하지 않고 자신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유일한 조력자. 어린아이같이 단순한 삶을 사는 이를 보며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되돌아보게 한 것이다. <주인과 일꾼> 어리석게 사는 주인 바실리 안드레이치 브레후노프도 성실한 일꾼 니키타의 관계 설정도 유사하다. 차이점이라면 1890년대 작가가 이 진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형이상학적, 윤리적, 종교적으로 가져오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이는 정작 현실적인 부를 추구하는 주인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봉사하는 순수한 니키타의 태도에 중심점을 두고 있다. 니키타의 성스럽고 희생 앞에서 숙연해진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육체적 고통보다 이해타산에서 벗어난 삶의 의미에 대해 하느님의 명령을 느낀다. 얼마 전 동일한 출판사에서 번역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단편집에서 공통적으로 견지하고 있는 견해의 동일성을 발견했다.

톨스토이는 마지막 이야기 <세 죽음>에서 귀부인, 마부 그리고 나무의 죽음(십자가로 사용된 나무를 의인화)을 우화로 엮어 인간의 죽음의 의미가 자연의 그것과 다르지 않고 자연법칙에 따른 세계를 동일시하는 면모를 나타낸다. 고전이라는 의미는 동시대 뿐아니라 먼 후세대에게까지 동일한 질문을 던지며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정의해보면 그의 작품은 세대별 의미해석이 달라진다면 면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리뷰는 현대지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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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문학에서 나온 백온유의 새 소설, 이전 그의 작품 <유원>을 읽었을 때 아주 섬세한 감각으로 인물들과 서사를 잊지 못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경우 없는 세계>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소설 속의 젊은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천진하지도 순수하지도 않는...'경우있다'의 반대편에 있는 곳이란 짐작을 하며 가제본을 펼쳐보았다.


주인공 인수에게 가출청소년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소년 이호를 만나고, 어른으로서 자신과 동일시되는 소년의 삶을 배려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자신이 그랬듯 부모로부터 다른 어른들로부터 배려받지 못했던 소년은 무슨 속사정이 있었을까? 극은 바로 인수의 가출했던 과거,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가정에서 끊임없이 폭력을 저지르는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끔찍한 남편의 폭력에 반항할 의지조차 없이 살던 어머니를 보여준다. 그런 집마저 없다면? 인수는 폭력을 목도할 때마다 자신을 억누르지만 어느 날 매맞는 어머니를 방어하며 아버지를 막아서고...

그렇게 따뜻한 집을 탈출해 거리의 아이들을 만나고 자신과 같은 처지이거나 혹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정을 아예 잃은 '경우'와 같은 아이들과 생활하게 된다. 그 집의 이름은 Welcome to sweet home...'우리집'

우리집은 이 아이들에게 지친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쉴 수 있게 하는 장소이자, 이웃이나 뭇 어른들이 보기에 그곳은 시끄럽고 불온한 공간이다.

공간의 의미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것, 어느 날 갑작스럽고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아이들은 자신들의 처지와 사정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고, 인수는 비겁했던 자신에 대한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간다. 김경우가 함께 했던 기억으로부터 달아나지만, 결국 자신이 닮고 싶었던 경우를 향해 미처 말하지 못했던 닿지 못했던 마음.

경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마음.


우리는 안 미쳤는데, 사람들이 우리보고 미쳤다고 하잖아.



결국 아이들은 조금 더 이해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그랬다면 집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살기 위해 악독하고 지독하게 그 시절을 지나며 상처받지 않아도 될 마음들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어제보다 오늘 아이들을 '좀더 안아주어야겠다, 경우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이 리뷰는 창비출판으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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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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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에 대한 저자 유근표의 관심은 지난 20여 년간 그를 성곽과 병자호란에 대한 연구를 하게 했고 '서울성곽 탐방안내도'를 완성하여 관련 역사를 여러 곳에서 강의할 만한 체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중 남한산성에 주목한 그는 10여 년간 인조실록, 승정원 일기, 만문노당 등 1차 사료와 인조와 병자 호란과 관련되 수많은 저작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미 <남한산성과 병자호란>를 그리고 이번에는 병자 호란 전의 조정과 중국정세 전쟁 중의 인조와 굴욕적 외교, 전란 후의 정세까지 세세히 살펴보고 <인조1636-혼군의 전쟁, 병자호란>을 엮어냈다.

병자호란은 조선이 친명배금 정책으로 멸시하던 후금과 중국에서 명을 제치고 세력을 확장하고 대륙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 청으로 이어지는 정세 속에 인조 반정으로 권력을 지키려는 내부의 문제에만 신경 쓴 나머지, 국방과 백성의 삶을 도외시 한 '정권의 나쁜 예'였고 예견된 치욕이었다.<인조실록>에서 이 전쟁 직후 청군이 잡아간 이들을 '피로인'이라 지칭하고, 그 수가 50만 명은 될 것이라고 최명길 문집에 전하는데 대부분 노예가 되고 젊은이들은 청나라 장수에 첩이 된 여인들, 군제에 편입되어 총받이가 되는 남자들로 당시 사회적 파장이 엄청났다.

저자는 서문에서 조, 청, 명 3국이 얽힌 2개월의 기록은 단순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 그리고 8년 간 청의 볼모였던 소현세자 일가가 국환한 후 얼마 안가 죽음에 따른 의혹 등 단순 추정이나 흥미 위주의 그 간 나온 이야기는 배제하고 전란 중 대중이 잘 몰랐던 내용을 싣고자 했다고 전한다.

1623 인조 반정 이듬해 인 1624 이괄의 난이 남긴 상처는 컸다. 선조의 적자가 아니지만 왜란 중에 나라를 재건하려고 노력한 광해군을 몰아내고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인조의 반정 주체들은 1등 공신부터 3등 공신까지 총53명에 이르고 거사 중에 김류와 이귀 등이 1등 공신에 책록된 반면 결정적 역할(병력)을 했던 이괄이 2등 공신에 머물렀다. 병력을 부릴 수 있는 그의 권력을 견제하고자 김류와 이귀는 인조를 설득하여 반대파 제거하듯 역모 혐의를 씌우려했다. 나라의 부름대로 변방 수비에 매진하고 있던 이괄은 반기를 들었던 것. 반군은 관군을 물리치고 도성까지 진격한 사이 인조 일가는 공주로 몸을 피했다. 반군은 새 왕으로 흥안군을 내세우고 입성했으나 이틀만에 진압되는 과정에, 도성 안의 백성들은 임진왜란 때 조정대신과 임금(선조)를 떠올려 인조 정권에 실망이 컸다. 인조가 환궁한 이후에도 반군에 협력했던 세력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 애꿎은 백성들을 처형하는 모습은 민생을 외면한 채 자신들만 살 길을 찾아 떠났던 왕과 조정이 책임을 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이후 인조는 왕의 경호를 강화하고 어영군을 늘리며, 신라 문무왕이 쌓았던 성이 남아있던 폐허나 마찬가지인 곳에 선조 때와 광해군에 수축을 시작했으나 자금확보 등의 문제등으로 중단되어 방치된 남한산성. 인조는 후금의 침입에 대비해 유사시 입보처로 삼고, 반대론을 누르고 만2년에 걸쳐 수축 공사를 완성한다.

책 마지막 부록으로 실린 남한산성 지도를 보니 경기 북부인 하남에서 남부인 성남, 광주까지 넓게 분포된 이 성은, 둘레가 총 11.76킬로미터로 내성과 외성을 이루며 4개의 성문, 4개의 장대, 5개의 옹성, 16개의 암문, 2개의 봉화대 125개 군포 시설을 갖추었다. 행궁 뿐아니라 종묘, 사직, 관아, 재옥, 객사 등 유사시 임시수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으로 풀이 된다는 것이다.

압록강 건너 요동 땅은 본래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여진족) 세력이 발해를 이루었고 거란족의 나라 요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여진을 괴롭히고 탄압했다. 천여년이 이르는 탄압 속 명맥을 잇던 생여진에서 금을 세운 태조는 불과 건국 10년 만에 요를 멸망시켰다. 끊임없는 대륙의 힘겨루기는 금이 '정강지변'으로 송나라를 멸하고 이후 몽골제국의 2대 태종은 영토확장에 탁월했던 칭기즈칸에 의해 멸하게 된다. 거란족과 몽골족 이후 한족이 세운 명에게 온갖 설움을 당한 여진은 여러 부족으로 찢어져 대항하는 세력을 누르고 누르하치가 통일하여 후금으로 칸에 오르며 여진의 패권을 쥐게 된다. '팔기군'이라는 강력한 군을 확립해 타락해가는 명에 대적하는데, 이에 명은 임진왜란 때 지원군을 보냈다는 이유를 들어 조선에 원군을 요청 압박해온다. 누르하치의 강한 복수극에 광해군은 후금과의 마찰을 우려해 명나라 장수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적당히 싸우다 항복을 해도 좋다는 의미로 원군을 보내게 된다. 압록강을 건넌 조선군은 군량도 충분치 않아 굶주리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 명군은 기세등등한 팔기군에 패전을 거듭하여 강홍립이 이끄는 조선군은 1만3천명 중 8천을 잃었다고 한다.

누르하치의 숙원인 명을 정벌하는 일은 아들 홍타이지 대에 실현된다. 요동 벌을 제패하긴 했으나 농사지을 땅에 사람이 부족했고 명이나 조선과의 무역이 아니면 경제적으로 모든 물자가 부족했다. 기마병을 앞세우고 약탈했던 것 과거와 달리, 홍타이지는 영민했고 대외정복의 명분으로 조선을 정벌하기로 한다.

정묘년 1627년 1월 여진족, 한족, 몽골족의 다국적군 3만이 압록강을 건너 의주로 들어와 3천 병력으로 주둔 중인 의주성이 함락된다. 당시 의주부윤 이순신의 조카 이완이 결사항전을 했으나 후금군에 패해 전사했다고 한다. 안주와 평양을 거쳐 한양까지 밀고 들어온다는 소식이 조정에 알려지자 당황한 인조는 세자에게 26명을 붙여 분조를 맡기고 종묘의 신주와 종실 가족들을 이끌고 강화도로 몽진을 가며 후금군이 수전에 약하리라 생각해 안전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후금은 여러 패륵들의 연합으로 한양으로 오기도 전 분열을 겪으며 화친을 제의해오고 '조선은 명과의 왕래를 끊고 형제국이 되자'는 것이다. 강화를 반대하는 척화파와 찬성하는 주화파는 격렬하게 나뉘는 중에 결국 후금과 협상으로 3월3일 후금 대신들 앞에 강화를 맹약하게 된다. 조정은 외교에서 한발 물러섰지만 압록강 하구 용천부와 철산부에서 백성을 대피시킨 용천부사 이희건은 100여 명의 군사에 불과해 용골산성을 지키려다 전사. 정봉수 의병장 같은 이는 왜구 토벌에서 활약해 따르는 의병들이 4천명을 모집해 반격했으며 백성들은 이에 힙입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싸웠다고 한다. 개전 이래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 조선군을 격파하던 팔기군도 용골산성전투에서는 패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끈질기게 맞선 백성들과 의병들이었다는 점에서 기억해야 할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조가 강화를 맺고 후금에 꺽인 반면, 그의 아들인 소현세자는 어떤 행보를 보였는가? 이괄의 난과 같은 비상시 분조를 대비해 원자를 바로 세자로 책봉된 소현세자는 열여섯에 불과했고 세자의 어린 나이를 감안해, 세자를 가르치는 무리 세자시강원의 강관들 26명을 분조행렬로 1월24일 도성을 떠났다. 수원을 지나 여타 고을에서 군사와 백성들에게 전란으로 인한 고충을 묻고 충청도 감영 공주에서 그리고 전주에 이르며 의병을 모집해 전장으로 보내는 등의 분조 업무를 했다고 한다. 세자는 삼남 지역 민심을 고려해 문.문과의 과거를 총괄하고 후금과의 정묘약조 이후 강화행궁을 떠나 4월 도성에 환궁한다.

평안도와 황해도의 피해는 심각했으며 정묘호란을 바라보는 명에서는 조선이 가도의 모문룡을 제거하기 위해 후금을 끌어들이고 군량까지 지급한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후금은 실제로 약조에 포함되지 않은 세폐까지 욕받고 군비와 전함까지 요구했지만 인조는 숭명 사상이 아니어도 약해진 국방력과 파탄 직전의 경제 여력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명과 후금 사이 균형있게 외교를 했던 광해군이 전쟁을 피해갔지만 인조 정권은 엄청난 피해로 곤욕을 겪고도 10년 동안 가도의 모문룡 문제로 혹은 집권 후 권력 유지를 위한 일에 몰두하고 팽창하는 후금을 배척하는 외교를 함으로써 병자호란을 자초한 것이라 평가된다.

' 오랑캐와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러 조만간에 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르니, 충의로운 선비는 각기 있는 책략을 다하고 용감한 사람은 종군을 자원하여 다 함께 어려운 난국을 타개하고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 는 교서를 발표하고 기밀문서를 역관 정명수에 의해 홍타이지에게 까지 들어가며 1636 병자년 12월 마침내 몽골, 청군, 한군 총 12만 대군에 침략을 당한 것이 병자호란이다.

적병이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고립된 성에서 인조와 군신들은 위태로움을 느끼고... 막강한 청군에 대항한 조선군은 수많은 외침에 훌륭한 작전 경험 기개있는 무장들이 있어 승리와 패배를 반복. 류림의 지휘하에 치뤄진 승전 김화전투같은 기록도 있었다.

오늘의 전투에서는 우리가 천행으로 승리했으나, 화살과 탄환이 이미 떨어져 더이상 싸움을 지속할 여력이 없게 되었다.

..전열을 정비한 후 남한산성으로 달려가야 한다.

전국 각지에서 출동했던 근왕병이 거의 격파되고 장수들과 병사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다. 이조는 1637 정축년이 밝자 청군에 화친을 청했지만 국서들이 오가는 중, 척화파 김상헌은 후금의 홍타이지를 황제라 칭하는 이조판서 최명길의 답서를 보고 찢어버렸다고. 이에 죄없는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찢어진 국서를 다시 정서해 청 진영을 보내자 화친을 반대한 척화신과 세자를 보내어 결국 조선의 항복을 받아내고 정축조약을 이행하게 하였다. 소현세자 일행이 서울을 떠난 후에도 북으로 끌려가는 수많은 피로인 행렬이 어마했다고 전한다. 청은 세자와 봉림대군을 심양에 볼모로 잡고 중요한 제사나 행사 명과의 전쟁을 치를때에도 세자 형제를 참가시켜 전투 장면을 직접보게 했다고 한다.

소현세자는 청에 머무는 동안, 1644년 청나라 군대에 의해 명의 최후를 목격했고 북경 자금성에 머물며,천문과 역법에 밝은 선교사를 원했던 중국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요청으로 1622년에 북겨에 와 있던 독일인 선교사 아담 샬을 만나게 된다. 명 황제의 신임을 받아 온 이후 청이 1644년에 입성해서도 서양 과학 문명을 인정했던 조정에 신임을 얻고 있던 아담 샬 지닌 서양 과학 문명. 세자는 언젠가 조선에 돌아가 부강하게 만들 꿈을 꾸는 조선이 떠받들던 명나라가 무너지며 인질 신분의 세자의 조선 환국이 결정되며 아담 샬을 조선 행에 동행하고자 했으나 황제가 허락하지 않아 좌절되었다. 소현세자는 8년 동안 갖은 고초를 겪다 돌아왔지만 아버지인 인조는 세자의 귀환을 겉으로와는 달리 속으로 반기지 않았고, 세자의 독살 의혹도 있을 만큼 세자와 세자빈을 냉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함께 귀국한 봉림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한 이듬해 소현과 세자빈의 아들 삼형제까지 제거하며 끝까지 왕권에 대한 광기와 집착을 보였다.

물론, 자신의 자녀이나 다른 후궁들의 입김에 조선의 왕들은 같은 핏줄을 내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군신들 또한 자신들의 세력 팽창이나 입신을 위해 왕가와 결혼시키며 정치적 도모를 했다고 감안하더라도 인조가 무리하게 왕권을 빼앗고 허술하게 국방을 유지했던 방식과 외침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해 무능한 정권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

작금의 외교적 상황이 소환되며 훌륭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정권의 결말이 심히 걱정되는 것은 이 책이 절묘한 시기에 나와주어 오욕의 역사마저 되돌아보는 일이 매우 의미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만 같다.


이 리뷰는 북루덴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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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크리스천 맞아? 이어령 대화록 2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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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뀌고 변해도 신 앞에선 피조물일 뿐

자신의 죄 인정 않는 사람이 대역죄 짓는 것

이 책은 우리나라 문학계의 큰 별이셨던 이어령 선생님이 타개하신 작년 이전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기독교 관련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의 7가지 대담을,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묶은 것이다.

서구 합리주의와 실존주의로 무장한 채 항상 자신은 무신론자라 주장했던 이어령.

이제 내가 신자가 된다고 했을 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차원이 달라진 것이지요. 내가 해온 것을 바라볼 줄 아는 또 하나의 시선이 생긴 것입니다. 내 언어를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가 생긴 거죠.

그는 메타언어인 바이블의 언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일반 교회에서는 안 믿던 사람이 믿는 프로세스의 간격을 설명해주지 않아 세속적인 일반 사람들에게 그 간격을 설명해주고자 한다고 했다. '선생 말은 안 들어도 학생들 중에 잘나 보이는 애들 말은 듣는 학생'처럼 본인이 그 가교 역할이라고...

그리고 그가 교회나가는 걸로 평가하지 말아달라 평생 말하고 글 쓰는 것을 배웠으니 그걸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겠다라고 밝혔다.

무신론자로서 살던 그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계기는 하와이에서 살던 딸이 실명 진단을 받고 딸이 다닌 자그마한 교회에서 맹세하기를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인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라고 했고 이후 딸을 한국에서 재검사했을 때 하와이 병원의 진단이 오진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례를 받는다. 그러나 얼마 안가 딸의 큰아들, 손주의 병을 알게 되고 신앙심이 흔들리게 된다.

신이 정말 존재하는가. 있다면 참 잔인하다, 혹은 무분별하다. 왜 악인은 멀쩡하고 선한 자는 비참한가.

그때는 경황이 없었어요. 절실했고. 딸애가 내 앞에서 그릇도 깨뜨리고 더듬더듬했거든요.

성서도 못 읽고. 믿음이든 지성이든 계산된 행동은 아니었어요.

그냥 그렇게 무릎 꿇고......이것은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니구나.

내 지적판단이나 이성적인 사고로 어찌 못하는 신의 세상이 있구나. 나를 넘는 어떤 힘이 있구나. 그래서 그냥 포기한 거예요. 아유, 그냥 맡기자. 마음대로 하십시오.

p101.나 아닌 사람을 진정 사랑한 적이 있던가

신을 받아들여도 삶의 모순, 세상의 모순, 역사의 모순은 해결되지 않았고 부조리를 뛰어넘으려는 그이 노력은 계속되었다. 아멘이나 할렐루야가 쉽게 입밖으로 나오지 않고 아직도 경계인 '문지방'에서 한 다리는 여기에, 다른 다리는 저기에 걸치고 몸부림치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 신을 안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구원의)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 믿는다면서 실제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실랄한 비판과 함께.

지금 나는 생명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테마를 얻어 그걸 실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세살마을'이니 '창조학교'니 하는 게 다 그런 거지요.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에요.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건.

처음으로 에고이스트가 아닌 활동을 하고 있는 거죠.

p127

요즘 '나는 신이다'(넷플릭스 2023)로 공개된 사이비 교주에 대한 다큐가 세간의 화제라 종교 서적을 읽는다는 행위가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일로서 지나간 사람들의 행적, 피조물로서 가소롭게도 세치혀로 창조자가 되기로 한 범죄자들을 하늘에서 심판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나또한 하루하루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독교를 믿기 전에도 허욕을 부리거나 재물을 탐내지 않고 평생 살았던 그가 하는 이야기. 사랑하는 법, 타자를 배려하게 된 것, 생명 자본주의를 노래하는 걸로 세상에 변화된 문학세계를 선보인 것. 생명가치 사랑의 시스템이 우위에서 번영을 꽤하여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이 여러 대담으로 저서로 울림을 준다.

이 리뷰는 열림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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