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이자 극작가 유미리의 신작,

다른 서평들을 두어 개 읽고 나서 이 책을 손에 잡았다. 왜냐하면 책소개를 읽고 슬픔에 잠길까봐, 코로나 블루라도 깊어질까 겁이 나서였다.

'노숙자이면서 노인의 이야기' 는 솔직히 요즘에 읽고 싶던 주제는 아니었기에 책을 받아들고 한참을 몇번을 망설였었다.


하지만 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의 쟂빛 표지 디자인은 내 취향 저격이었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자, 만 이틀만에 읽어내려갈 정도로 사려깊은 문장들이었다.


소리, 화자인 모리 노인에게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 누구인지 정체성과 동일시되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그가 죽는 순간의 묘사는 생각과 소리가 분간이 안되는 지점에 있다.


그 소리 나는 듣고 있다. ..또다시 그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만이 피가 통하며 살아 있는 것처럼ㅡ, 선명한 빛깔로 물든 물줄기 같은 소리ㅡ, 그 때는 그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소리는 죽지 않았다.


그렇다면 모리는 도쿄 우에노 역에서 왜 자살을 하는가? 아니 무엇이 그가 세상을 등지게 하는가? 그는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그의 고향은 여기가 아니다. 후쿠시마현 소마군 야사와마을이란 곳에서, 철이 들었을 무렵 전쟁이 터지지고 종전 후에 12살에 동생 일곱명과 부모의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고된 노동을 하며 살아야 했다. 어촌에서 조개를 잡거나 다시마를 수확하는 일을 할때는 가족과 있었지만, 허리를 다쳐 농사를 짓기 못하게 된 아버지를 대신해 학업을 이어야 하는 동생들을 위해 그는 도쿄로 왔다. 숙식을 해결하며 1964 도쿄올림픽 준비로 각종 체육시설의 토목공사장을 옮겨다니며 중장비를 만져본 적이 없는 그와 같은 시골출신 노동자들은 곡괭이나 삽으로 땅을 파고 손수레로 나르는 일만을 할 수 있었다.

과거 젊은 시절 열렸던 도쿄올림픽은 그가 70대가 된 2020년이 되어 한번 더 열릴 예정이었고, 그 사이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모리는 우에노온시 공원의 노숙자가 되어 비닐로 된 지붕과 골판지로 된 천막집에 살며 '특별 청소'라 불리는 강제 퇴거 날이 되면 천막을 해체하고 짐을 싸서 시에서 지시하는 대로 짐표를 붙이고 하루종일 공원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는가? 노숙의 삶은 누구도 일부러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한몸 따스하게 누일 곳에서의 삶을 누가 원하겠는가?

50년이 흐르는 사이 부모 형제가 죽고, 돌아갈 집이 없어진 이 공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노숙자들

모리는 얼마전에 죽은 동년배의 노숙자 시게를 안 적이 있다. 그는 아마도 머리 쓰는 일을 했던 것 같이 박식한 사람이었고, 누가 시게 천막집에 새끼 고양이를 던져 넣었고 그는 빈 캔을 판돈으로 동물병원에서 중성화 시키고, 애지중지 키우는 '에밀'이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반려동물이라는 게 내가 살고, 살만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재산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스스로의 양식 대신 고양이 사료를 먼저 사고 남은 돈으로 먹을 것을 살만큼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이었으며 모리는 그 사람의 초대를 받아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었고.

작가는 시게의 입을 빌어, 전쟁 도쿄 대공습의 참혹한 과거를 상기시켰고 모리의 지난 생을 반추하는 것으로 플래시백을 한다.

시게의 비밀이야기를 들을 뻔했지만 모리 자신의 비밀(노숙자가 된 과정)마저 털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자리를 파하고 나왔고,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시게가 죽었으며 고양이는 생사를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모리 자신이 어쩔 수 없었던 무력감을 투영하는, '노숙자'라는 정체성를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사람(인간성)이었지만, 외부인들에게는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는 지붕없는 인간(인간성의 소멸).



자신의 비밀, 아들 고이치가 21세에 자취방에서 홀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상주가 되어, 긴 여행(?)에서 잠깐 마을로 돌아온다. 아들딸이 장성할 동안 아내 세쓰코에게 연로한 부모님을 맡겨두고 자식들과 7 동생들 뒷바라지까지 했던 아내는 다 키운 아들을 보내며 무너지고, 소마의 토착민들과는 다른 불교 정토진종을 믿는 이주민(가가엣추)이었던 부모님과 함께, 아들의 장례를 불단에서 치르게 된다. 일하러 나가서 가족을 돌보지 못한 20년 동안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고 그런 그에게 아들의 죽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p63

얼굴을 씌운 흰 천을 두손으로 걷는다.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건 갓난아기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봄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노력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느꼈다. 나는 고이치의 죽음을 듣고 나서 노력하고 있다. ..죽고 싶다기보다도 노력하는 데 지쳤다.


우에노 공원에서 그리고 역 주변에서 현재의 모리가 다니는 곳들 곳곳에서 사람들의 이야기의 단편들이 들려오고, 그 소리들은 모리에게 어떤 의미였을 것 같지는 않지만,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 속의 작은 이야기 그러나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집이 있는 사람들과 자신처럼 집이 없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리라. 작가 유미리는 직접적인 모티브가 된 상경 노동자에 대한 인터뷰 외에도 후쿠시마 원전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 정토진종 이민 역사 그리고 주지스님과의 인터뷰를 거치며 이 하나의 이야기에 녹여내었다.

그가 60세가 지나 돌아온 그의 고향집, 노쇄한 부모님의 죽음 이후 헌신적인 아내는 7년을 함께 더 보냈지만, 매일 아들의 죽음을 생각하고 곁을 지키던 아내마저 죽음으로써 독자는 가족의 이 두 번째 죽음이 완전히 그를 무너뜨렸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두 번째 도쿄올림픽이 열리면서, 벼랑끝에 몰린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라는 정체성은 더이상 고향에 있지 않았고, '집'이란 곳에서 '노력'이라는 것을 놓기에 이른다.

걷고 있었다. 추위와 두통이 몸을 죄어오고 내가 나 자신에게서 밀려나버릴 것 같았으나 다리만큼은 앞으로, 앞으로 내밀었다.

마지막 있던 자리마저, 천황일가의 행차에 막혀 '이동금지' 된다.

수없이 많은 길이 지나갔고 눈앞에 단 하나의 길만 남았다. 그는 승강장으로 내려가며 머릿속으로 갖가지 환영들을 본다. 들리는 소리는 전철의 다가오는 소리였을 뿐이지만, 쓰나미 경보도 들리고 마지막 집에서 함께 살던 손녀와 그녀가 키우던 개를 바다가 집어삼키는 것을.


나는 내가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측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온 세계에 존재하는,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사실 작가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오는 몇 안되는 인생작으로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재일교포2세 작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번도 제대로(?)한국인인 적이 없는 그들을 대변하는 유미리. 그녀의 신작이 2020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19로 한 해 미루어지고 극적으로 올해에 열리므로써, 재조명 받으며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저자 소개에서 그녀는 논란의 중심, 전미도서상을 탄 이 책을 통해서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 리뷰는 소미미디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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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immm 2021-10-17 0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이 탁월 합니다.감사 감사